미국 우선주의로 무장한 트럼프의 재집권이 한국 경제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뒤흔들 전망이다. 수출 주도형 성장을 근간으로 해온 한국 산업이 관세폭탄과 비관세장벽이라는 이중고에 직면할 수 있다는 위기감 속에 70년간 이어온 한미 경제 동맹의 새로운 국면이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최상목 부총리는 7일 긴급 경제장관회의를 소집하며 선제 대응을 지시했다. 트럼프의 재집권에 따른 구조적 변화에 대한 위기감이 정부와 산업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예외 없는 관세 부과' 공언에 산업계 우려
산업계에 따르면 모두가 한목소리로 우려하는 것은 관세문제다. 트럼프 당선인의 공약 중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미칠 정책은 전방위적 관세 부과라는데에 이견이 없다.
트럼프는 모든 수입품에 10%의 기본관세를 부과하고, 중국산 제품에는 최대 60%의 고율 관세를 매기겠다고 공언했다. 특히 “우리 동맹들은 소위 '적국'보다 우리를 더 부당하게 대우했다"며 한국을 포함한 동맹국에도 예외 없이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는 작년 한국이 기록한 444억 달러의 대미 무역흑자가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트럼프는 이러한 무역불균형 해소를 위해 강력한 보호무역 조치를 예고하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모든 수입품에 10%의 기본관세를 부과하고, 중국산 제품에는 최대 60%의 고율 관세를 매기겠다는 구상을 밝힌 바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이 정책이 실현될 경우 한국의 총수출액이 최대 448억 달러 감소할 것으로 추정했다. 이는 2023년 한국 총수출액의 약 7.2%에 해당하는 규모다.
이와 연계해서 우려되는 것은 미중 무역갈등의 심화다. 중국의 대미 수출이 줄어들면 중국에 중간재를 판매하는 한국의 수출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한국은행은 미국의 대중 관세 인상으로 한국의 대중 수출 연계 생산이 6% 이상 감소할 것으로 추정했다.
트럼프의 관세 정책이 글로벌 보호무역주의를 촉발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화투자증권은 “트럼프의 관세 공약이 실현되면 다른 국가들도 경쟁적으로 관세 인상에 나서면서 1930년대와 같이 경기가 급격하게 위축되고 물가가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국내 자동차 산업은 직격탄이 예상된다. 트럼프는 “미국 국경을 넘는 모든 차에 10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언했다.
현대차와 기아는 조지아주 메타플랜트 등 현지 생산기지를 확대했지만, 여전히 국내 생산 물량의 30% 이상을 미국에 수출하고 있어 타격이 불가피하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는 “100% 관세가 부과될 경우 한국산 자동차의 미국 시장 점유율이 현재의 11%에서 3% 미만으로 급감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비관세장벽'도 높아질 가능성…산업계 영향력 상당해
트럼프의 재집권으로 한국 경제가 직면할 위협은 관세 인상만이 아니다. 오히려 더 큰 위협은 다양한 형태의 비관세장벽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따르면 비관세장벽이 무역제한에 미치는 영향은 관세의 2~3배에 달한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는 국가안보와 환경, 기술표준 등을 내세워 더욱 교묘한 형태의 무역장벽을 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기술규제 강화다. 트럼프는 중국 견제를 명분으로 반도체와 배터리, 인공지능(AI) 등 첨단기술 분야에서 새로운 규제를 도입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해당 분야에서 중국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맺고 있는 한국 기업들에게 직접적인 타격이 될 수 있다.
통관절차 강화도 큰 부담이다. 산업계에서는 통관에서 하루가 지연될 때마다 0.6~2.3%의 추가 관세효과가 발생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안보심사 강화를 내세워 통관절차를 까다롭게 할 경우, 신선식품이나 중간재를 수출하는 기업들이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
환경 관련 새로운 무역장벽도 예상된다. 트럼프는 IRA와 같은 친환경 정책에는 반대하지만,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독자적인 환경기준을 도입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한국의 자동차, 철강 등 주력 수출산업에 새로운 부담이 될 전망이다.
공급망 재편도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동맹국들에게 공급망 재편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중국에 생산기지를 둔 한국 기업들의 전면적인 사업재편으로 이어질 수 있다.
석화·방산 등 일부 업종은 기대 중
다만 일부 산업은 반사이익이 기대된다. 화학·정유 산업은 트럼프의 화석연료 산업 부활 정책으로 수혜가 예상된다.
셰일가스와 원유 생산 확대로 인한 원자재 가격 안정은 국내 화학업계에 호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SK이노베이션, LG화학 등은 미국 내 석유화학 설비 투자를 확대할 것으로 알려졌다.
방위산업도 기회요인이 있다. 트럼프는 국방비 증액을 공약했고, 이는 한국 방산업체들의 수출 기회로 이어질 수 있다. 현재 한화에어로스페이스, LIG넥스원 등은 미군 납품 실적을 보유하고 있다. 다만 미국 자국 중심의 방산 공급망이 강화될 것으로 예상돼 실제 수혜 여부는 지켜봐야 한다.
이에 대해 한국무역협회는 “기업들이 모든 대미 포트폴리오를 완전히 새로 짜야 하는 상황"이라고 경고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도 “글로벌 관세정책이나 공급망 블록화의 부정적 영향을 완화하기 위해 핵심산업의 경쟁력 제고와 공급망 다변화가 시급하다"고 제언했으며, 산업연구원도 “동남아, 중남미 등 제3국 시장 개척과 함께 내수시장 활성화를 위한 구조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