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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성 인정해야” VS “형평성 어긋나”...기업은행, 노정갈등 ‘공회전’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5.01.08 16:40

공공기관인데 시중은행과 경쟁
특별성과급, 평균임금 등 격차 확대
“이젠 한계” 기업은행 노조, 거리로

은행 특수성 용인시 다른 기관 반발 불가피
작년 세수결손 연 30조원...기재부 ‘미온적’
김성태 은행장 “제도적 한계 극복 어려워”

기업은행 전경.

▲IBK기업은행 전경.

IBK기업은행 노동조합이 정부에 특별성과급 지급, 시간외수당 지급 등을 요구하며 이달 10일 2차 집회를 예고했다. 통상 노사 갈등과 달리 기업은행의 경우 노조가 금융위원회, 기획재정부 등 정부를 상대로 투쟁을 하는 이례적인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기업은행은 기타공공기관이라는 이유로 국책은행이면서도 시중은행과 경쟁하는 구조로 특별성과급, 평균임금 등에서 과도하게 규제를 받고 있다는 비판이다. 기업은행은 은행이라는 업권의 특수성을 인정해달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는 다른 공공기관들과의 형평성을 이유로 난색을 표하고 있어 협상의 실마리를 찾는 것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기업은행, 희망퇴직-특별성과급 모두 '남 일'

8일 금융권에 따르면 기업은행은 이달 10일 류장희 18대 기업은행지부 위원장 당선인의 이·취임식을 진행한 후 점심시간에 서울 을지로 기업은행 본점 옆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집회를 진행한다. 이번 집회에는 전국 600~700명의 대의원들이 참석한다. 기업은행은 지난달 27일 단독 총파업을 실시했음에도 추가 교섭에 진척이 없자 집회를 열기로 했다.


노조의 요구사항은 크게 차별 임금과 시간외근무 수당으로 대표되는 체불 임금이다. 통상 금융사 노조의 협상 대상이 사측인 것과 달리 기업은행 노조는 사측을 넘어 금융위, 기재부 측에 요구사항을 관철시켜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기업은행의 임금은 노사가 교섭하는 것이 아닌 최대주주인 기획재정부(지분율 59.5%)가 틀을 정하고 이를 금융위원회가 따르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기업은행은 공공기관 가운데 유일한 상장기업이지만, 이익을 내는 방식이나 근로자 업무가 시중은행과 동일하다. 시중은행과 경쟁하지만 기타공공기관이라는 이유로 기업은행은 시중은행 대비 30% 적은 임금을 받는다.


기업은행 노조 현수막.(사진=나유라 기자)

▲기업은행 노동조합이 체불된 시간외 수당을 지급하라며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은 서울 을지로 본점에 걸린 기업은행 노조 현수막. (사진=나유라 기자)

여기에 해마다 직원에게 쓸 수 있는 총인건비가 정해져있어 초과 이익 배분이나 특별성과급 지급은 불가능하다. 시중은행들이 연말 연초 희망퇴직을 실시해 특별퇴직금을 지급하는 식으로 인사 적체를 해소하고, 신규 채용 인력을 늘리는 것도 기업은행에는 '남 일'이다.




실제 2023년 말 기준 4대 시중은행의 평균 임금은 약 1억1600만원인 반면 기업은행의 평균 임금은 약 8500만원이다. 실적과 연계된 성과급 역시 기업은행 직원들에게는 언감생심이다. 기업은행의 2023년 당기순이익 2조7000억원 가운데 최대주주인 기획재정부의 배당금은 4668억원에 달했지만, 초과이익에 대한 직원들의 성과급은 0원이었다. 즉, '일한 만큼 정당하게 보상하는' 구조가 자리 잡지 않는 한 시중은행과의 임금 격차는 해소되기 어려운 구조인 셈이다.


직원들이 돈으로 받아야 할 시간외수당(보상휴가)도 미지급 상태로 쌓여있다. 노조에 따르면 현재 쌓여있는 미지급수당은 1인당 600만원, 전체 규모는 약 780억원이다.



세수결손만 30조원...기재부 '요지부동'

상황이 이렇다보니 고급 인력들이 기업은행보다 시중은행을 선호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결국 기업은행 노조가 거리로 나선 것은 오랜 기간 내부에서 쌓인 갈등이 이제야 폭발한 측면이 강하다. 기업은행 한 관계자는 “기업은행 채용 경쟁률도 5년 전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는데, 퇴사율이나 이직률은 반대로 높아지고 있다"며 “성과급은 커녕 임금 체불까지 발생하다보니 직원들의 자부심이나 로열티는 사라진 지 오래다"고 말했다.


김성태 기업은행장도 직원들의 고충을 인지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처우 개선으로는 이어지지 않고 있다. 김 행장은 작년 말 직원들에게 보낸 편지글에서 “각계각층의 주요 인사를 만나는 자리에서도 임금, 복지와 관련해 우리 직원들이 처한 어려운 상황을 설명하며 이해, 협조를 구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며 “그러나 처우개선에 있어 공공기관이 안고 있는 제도적 한계를 극복하는 일이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노조가 정부와의 협상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공공기관과의 형평성 때문이다. 만일 기재부가 산업별 특수성을 고려해 기업은행에 성과급을 지급한다면, 구조적으로 이익을 내지 못하는 다른 공공기관들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게다가 같은 금융공공기관이라도 기업은행,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 기관마다 임금제도 세부 내용에 차이가 있어 정부 입장에서도 결단을 내리는 것이 쉽지 않다. 기업은행 노조는 이익배분제를 도입하면 특별성과급을 지급할 수 있다고 대안을 제시했지만, 작년 연간 30조원의 세수 결손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현 시점에서 기재부가 기업은행의 배당금이나 성과급을 손보는 일은 요원하다.


금융권 관계자는 “기업은행은 직급 승진을 못해도 매년 연봉이 올라가는 호봉제인 반면 산업은행, 수출입은행은 승진해야지만 급여가 올라가는 구조"라며 “산업은행, 수출입은행은 기업은행처럼 총인건비가 부족하지 않아 기업은행에서만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은행 노조가 집회를 이어가는 것도 결국 회사 측의 움직임에 따라 정부와의 협상 분위기도 달라질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또 다른 기업은행 관계자는 “노조가 금융위, 기재부를 대상으로 공식 면담을 추진하고 있지만 쉽게 만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며 “노조가 사측(은행)을 압박해야만 은행이 정부를 설득하지 않겠나"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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