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종업원이 노년층 고객의 키오스크 주문을 돕고 있다.
우리나라가 초고령 사회로 진입한 가운데 노년층을 비롯한 정보취약계층의 디지털 소외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이에 산업계는 이들의 특성에 맞춘 서비스를 속속 선보이고 있지만, 노년층 특화 기술은 상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 산업계의 움직임을 뒷받침할 정부 정책의 한계도 보완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11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의 '2023 디지털정보격차 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장·노년층의 디지털정보화 역량이 평균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컴퓨터·모바일 이용 능력을 의미한다. 평균 수치를 100으로 환산했을 때, 60대는 61%·70대 이상은 30%로 집계됐다. 20·30대가 130%를 돌파한 것과 대조적이다. 접근성 문제는 상당 부분 개선됐지만, 활용·역량 측면에서 심각한 격차를 보였다.
코로나19 이후 이같은 현상이 심화되고 있어 디지털 격차를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해 통과된 '디지털 포용법' 또한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디지털 포용은 모든 사람이 기술·시스템을 동등하게 누리고, 충분한 활용 능력을 갖추도록 보장하는 것을 뜻한다. 법안은 이를 토대로 제조·운영사에 배리어프리 키오스크 기준을 준수한 제품 개발 의무를 부여한다. 특히 '이용자 조작에 따라 서류 발급, 정보 제공, 상품 주문, 결제 등의 사항을 처리하는' 키오스크로 규정한 게 특징이다. 위반 시 시정명령과 함께 30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되며, 내년 1월부터 시행된다.
이에 정보기술(IT) 업계를 중심으로 정보취약계층의 편의성을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계층별 특성을 고려한 기술 개발을 중점 추진하는 모습이다. 이용자가 주로 사용하는 감각에 맞춘 서비스를 만들어 선택권을 넓히고, 시·공간적 제약 없이 제품을 이용하는 독립성을 확보한다는 설명이다.
KT와 카카오모빌리티는 지난 10일 노년층의 이동 편의를 높이기 위해 114 번호로 카카오 택시를 호출하는 서비스를 도입했다. 고객이 114에 택시 호출을 요청하면, 전문 상담사가 이를 진행한 후 배차 성공 여부와 예상 도착 시간, 차량번호 등을 안내하는 시스템이다.
네이버는 거대언어모델(LLM) 기반 대화 가이드를 토대로 자폐 아동과 부모의 의사소통을 돕는 액세스 토크(AACessTalk)를 오픈소스로 공개했다. 대화의 내용과 맥락을 분석해 개인화된 어휘·가이드를 양측에 제공, 의사소통에 대한 부모의 부담을 완화시킨다는 설명이다.
게임업계 또한 색약 보정 기능 등 배리어 프리(Barrier-free, 물리·심리적 장애물을 없애 사회적 약자의 편의성을 높이는 것) 적용 범위를 넓혀 게임 접근성을 개선하고 있다. 디지털 포용법 시행을 1년가량 앞둔 만큼 이러한 움직임은 더욱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현재로썬 노년층 특성을 고려한 기술 및 서비스가 상대적으로 적다는 점은 한계로 꼽힌다. 이들의 경우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기보단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숙련도를 높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활용 역량을 일부 개선할 순 있으나,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근본 대책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디지털 포용법의 정책적 한계 보완도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중견·중소기업의 경우 의무대상 등 기준이 모호해 대응 방안 모색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서다. 특히 과기정통부 산하 정보통신전략위원회가 법안 심의를 주도하도록 명시돼 다른 정부부처 및 산·학·연과의 협력 방안이 구체화돼 있지 않다는 점도 한계로 꼽힌다. 서비스 확산 과정에서 체계 공백이나 새로운 규제가 발생할 수 있다.
송민호 한국디지털포용협회장(경기대 교수)은 “초고령 사회 진입 단계임을 감안하면, 장·노년층을 위한 디지털 포용 기술을 개발하는 게 급선무로 보인다"며 “복잡한 인터페이스를 단순화하거나 음성 지원 기능 등 보조 기술을 추가하는 방식의 기술 설계를 고려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송 협회장은 이어 “포용법의 경우 정부 주도의 톱다운 방식이 주가 돼 민간·산업계와의 협력 방안을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며 “정책의 궁극 목표 달성을 위해선 민관산학 협력 거버넌스를 체계적으로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