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지배구조 개편 작업이 무산된 두산그룹이 계열사를 중심으로 그룹 재편의 새로운 청사진을 가다듬어 외부에 공개하고 있다. 재계 안팎에서는 새로운 청사진에 대한 기대와 함께 기존의 지배구조 개편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우려가 동시에 나온다. 에너지경제신문은 두산그룹의 신규 청사진을 들여다보고 그 방향성 살펴본다. <편집자주>

▲두산로보틱스의 협동로봇이 전기차 충전기 케이블을 탈거하기 위해 위치를 조정하고 있다.
지난해 두산그룹이 내놓은 지배구조 개편안은 두산로보틱스의 육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막강한 현금창출력을 가진 두산밥캣을 자회사로 흡수 합병해 로보틱스의 체급 자체를 키우겠다는 전략이다.
이는 두산그룹의 일부 계열사의 의존도가 매우 높다는 고민에 대한 해답이기도 하다. 두산그룹은 두산에너빌리티와 밥캣 2개 계열사의 영업실적이 그룹 전체의 80~90%를 차지할 정도로 의존도가 심각하다. 이에 두산그룹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에너빌리티와 밥캣의 의존도를 다소 완화하기 위해서 세 번째 주력 계열사로 로보틱스를 낙점하고 육성에 집중하고 있다.
◇에너빌리티·밥캣이 그룹 전체 실적 좌우
20일 재계에 따르면 두산그룹 상장 7개사의 누적 3분기(1~9월) 합산 영업이익은 1조478억원에 달한다. 이 중 에너빌리티와 밥캣의 영업이익 합계는 9571억원으로 전체의 91.34%를 차지한다.
또한 7개사의 합산 매출액 6조4230억원 중에서도 에너빌리티와 밥캣의 합산이 5조846억원으로 전체의 79.16%를 차지한다.
지난해 6월 말 기준 두산그룹에 비상장사 15개사가 더 존재하나, 대규모 영업실적을 기대할만한 계열사는 거의 없다. 결국 두산그룹은 영업실적의 80~90% 가량을 에너빌리티와 밥캣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의존도가 높은 만큼 두 계열사가 호황을 맞이하면 그룹의 전체 성과도 좋았다. 반대로 둘 중 어느 한 곳이라도 실적이 악화된다면 그룹의 전체 실적도 악화를 면치 못했다. 문제는 두 계열사가 영위하는 사업이 중공업과 건설장비 판매로 호황과 불황의 격차가 큰 업종이라는 점이다.
이를 감안하면 두산그룹 입장에서는 에너빌리티와 밥캣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줄 세 번째 주력 계열사가 필수적이다. 다만 아직 두 계열사와 나머지 계열사에 대한 격차가 매우 심각하게 벌어져 있다.
◇로보틱스, 당장 적자 내지만 미래 성장성 돋보여
우선 지주사인 ㈜두산도 지난해 누적 3분기까지 영업이익 593억원에 그쳤다. 두산테스나와 두산퓨얼셀의 영업이익은 각각 435억원, 26억원에 그친다.
비상장사도 마찬가지다. 두산그룹의 핵심 계열사와 사업범위가 연결된 곳들은 적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전력변환장치 관련 사업체인 두산모빌리티이노베이션은 지난해 영업손실 129억원을 기록했다. 소프트웨어 개발 관련사인 두산로지스틱스솔루션도 같은 기간 영업손실 278억원으로 집계됐다.
제조업 기반이 아닌 계열사 중에서는 흑자를 내는 곳이 있다. 두산그룹의 광고회사인 오리콤과 전 한화계열 광고회사였던 한컴 등이 100억원 미만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다만 해당 계열사들은 광고사업을 영위하고 있어 두산그룹의 기존 주력 사업과 너무 동떨어져 있고, 향후 주목을 받기에도 어려운 산업군이라는 분석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두산그룹은 지난해 누적 3분기 영업손실 207억원을 기록한 로보틱스를 세 번째 주력 계열사로 낙점했다. 테스나와 퓨얼셀보다 실적이 좋지 않은 계열사를 낙점한 점을 감안하면 두산그룹은 당장의 성과보다 향후 미래 성장성과 안정성 등에 더욱 초점을 맞춘 것으로 보인다.
재계 관계자는 “두산그룹은 지난 2020년 두산중공업(현 에너빌리티)의 유동성 위기가 발생하면서 채권단 관리를 받는 등 큰 곤경을 겪었다"며 “지난 2022년 채권단 관리 체제를 빠르게 졸업했지만 이후에는 다시 이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안정적인 세 번째 주력 계열사를 육성하려고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