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억원 신임 금융위원장이 1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15일 취임하면서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첫 금융당국 수장 체제가 본격화됐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이찬진 금융감독원장과 함께 직원들의 동요를 가라앉히고 정부의 조직개편안을 이행하는 작업에 주력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정부의 금융감독체계 개편을 두고 물밑에서 금융위와 금감원 간에 힘겨루기가 계속되고 있어 이를 어떻게 수습할지가 관심이다. 금융당국 안팎에서는 경제정책통으로 불리는 이억원 위원장이 추후 감독 기능에 집중된 금융감독위원장을, 소비자 보호를 강조하는 이찬진 원장이 금융소비자 관련 부서가 제외된 금융감독원장을 맡는 것이 역설적이라는 이야기가 새어나온다.
조직개편 발표 이후 금융위-금감원 대응 온도차
금융권에 따르면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이날(15일) 취임식에서 금융위 직원들에게 “금융 소비자, 금융 일선의 담당자들로부터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것을 업무의 중심에 두고, 실제로 시장과 국민들이 변화를 '체감'할 수 있도록 정책의 전달체계까지 꼼꼼히 챙겨야 한다"면서도 “과중한 업무에 다시금 부탁만 드리는 것 같아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는 “제가 여러분들의 힘이 되어드리고 작은 불편까지도 귀 기울일 수 있도록 먼저 다가가고, 항상 문을 열어두는 금융위원장이 되겠다"고 부연했다.
이 위원장의 이러한 발언은 정부가 금융감독체계 개편을 발표한 이후 금융위 분위기가 어수선한 점을 염두에 둔 것으로 읽힌다. 정부는 금융위의 금융정책 기능을 분리해 재정경제부로 넘기고, 남은 조직은 금융감독위원회(금감위)로 개편해 금융 감독 기능을 맡긴다. 금융감독원 내부조직인 금융소비자보호처는 금융소비자보호원으로 분리·신설하고, 금감원과 금융소비자보호원은 공공기관으로 지정한다. 금융위가 재정경제부와 금감위로 분리되면 일부 직원들은 세종으로 이전해야 한다.
다만 금융위 직원들은 공무원 신분이다 보니 정부 개편안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 발표를 자제하고 있다. 직원들 개인별로는 세종행에 대해 부담이 크지만, 공무원으로서 정부의 지침에 강하게 목소리를 내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분위기다. 반면 금융감독원은 윤한홍 정무위원장을 만나 금융감독체계 개편안에 반대하는 내용의 서한을 전달하는 등 적극적으로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해당 서한에는 금융감독체계 개편안이 소비자보호 강화 효과가 불명확하고, 오히려 관치금융 강화라는 부작용이 야기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금융당국 수장, 주 전공과 동떨어진 업무 맡는다

▲금융감독체계 개편을 두고 물밑에서 금융위와 금감원 간에 힘겨루기가 계속되고 있다. 사진은 금융감독원.
실제 금감원 내부에서도 금감원의 공공기관 지정, 금소원 분리와 함께 금융위가 금감원의 권한을 축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을 두고도 반감이 크다는 전언이다. 금융위는 현재 금융감독원장 전결인 은행·보험사 CEO 중징계와 함께 금감원 핵심 기능 중 하나인 분쟁조정위원회를 금감위로 이관하는 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CEO 중징계 권한은 금융위와 금감원이 오랜 기간 다퉈온 이슈이기도 하다. 금융사 임원에 대한 제재 수위는 해임 권고-직무 정지-문책 경고-주의적 경고-주의 등 5단계로 나뉜다. 이 중 문책 경고 이상은 3~5년 금융사 취업을 제한하는 중징계로 분류된다. 금감원장은 금융지주사 임원, 금융투자업 임원에 대해 주의, 주의적 경고 등 경징계까지 전결로 처리할 수 있다. 문책 경고 이상의 중징계는 금융위원회 의결로 결정된다. 이와 달리 은행·보험사 임원에 대해서는 금감원장 전결로 주의, 주의적 경고, 문책 경고까지 확정할 수 있다.
금융위 입장에서는 금융지주, 금융투자업 임원처럼 은행 임원에 대해서도 중징계 권한을 가져와야 한다고 보고 있다. 반대로 금감원은 기존에도 금융위에 금융사 제재 권한이 집중돼 있는 점을 들어 금감원장이 금융지주사, 금융투자업 임원에게도 중징계를 내릴 수 있도록 권한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해당 사안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안 그래도 정부 조직개편안 자체가 복잡해 조직 안정이 급선무인데, 떡 본 김에 제사지내는 식으로 금융위와 금감원 간에 힘겨루기로 비화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며 “해임 권고와 같은 중징계는 금융사의 지배구조와 직결된 만큼 금융위의 전결로 처리하는 것이 합리적이지만, 금감원의 임원 징계에 대한 전결권을 기존보다 축소할 경우 금감원의 검사·감독의 위력도 함께 약화되는 등의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에서는 정부 조직개편안이 본격화될 경우 이억원 위원장과 이찬진 원장의 역할이 대대적으로 바뀌는 것에 대해서도 우려가 크다. 가령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기획재정부 미래전략과장, 물가정책과장, 종합정책과장 등을 지낸 정통 경제 관료 출신이자 대표적인 거시경제 전문가로 불린다. 그러나 이억원 위원장이 금융감독위원장을 맡게 되면 국내 금융정책이 아닌 감독 기능에만 집중해야 한다. 업권별 릴레이 간담회를 통해 금융소비자 보호를 강조 중인 이찬진 원장도 정부 조직개편안이 이행되면 '소비자보호' 기능이 제외된 금융감독원장 업무에 주력해야 한다.
당국 한 관계자는 “현재는 금융위원장, 금융감독원장으로 각각 금융정책과 소비자보호를 강조하고 있지만, 조직개편이 완료되면 수장들의 기조에도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