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위성·발사체·AI데이터 총출동…‘대한민국 우주·미래항공 시대’ 앞당긴다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5.10.21 16:35

■ ADEX 2025로 미리 본 ‘뉴 스페이스’ K-우주시대

방산 거인들의 대전환, 지상 너머 우주 패권 정조준

한화의 수직 계열화부터 현대로템의 ‘메탄 엔진’까지

작지만 강한 선구자들…스타트업, 신 우주 경제 개척

든든한 정부 지원…민간 발사체 ‘한빛-나노’에 쏠린 눈

발사체·위성에 데이터 분석까지…밸류 체인 경쟁 점화

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ADEX) 2025 한화그룹 부스 전경. 사진=한화그룹 제공

▲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ADEX) 2025 한화그룹 부스 전경. 사진=한화그룹 제공

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ADEX) 2025는 단순 방산 전시회를 넘어 대한민국이 민간 주도의 '뉴 스페이스(New Space)' 시대를 향한 원대한 포부를 전 세계에 공식적으로 선언하는 장으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역대 최대 규모로 치러진 이번 행사는 전 세계 35개국 600여 개 기업이 참가하며 그 위상을 과시했다. 특히 올해 행사는 K-방산과 항공우주 산업의 양적, 질적 팽창이 더는 전통적인 공간에 머무를 수 없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이번 ADEX 2025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변화는 단연 우주와 미래 항공 모빌리티(AAM)를 위해 특별히 마련된 '신기술관'의 등장이었다.


파리 에어쇼의 스페이스 허브에 이어 세계 두 번째 규모로 조성된 이 공간은 △우주 발사체 △인공 위성 △우주 농장 △우주 인터넷 △우주 쓰레기 수거 장치 등 미래 기술의 향연을 예고하며 한국의 전략적 무게 중심이 어디로 이동하고 있는지를 명확히 했다.


국내 주요 방위산업체들은 ADEX 2025를 기점으로 우주를 더 이상 부수적인 사업 영역이 아니라 그룹의 미래를 책임질 핵심 성장 동력으로 격상시켰다. 이들은 막대한 자본력과 수십 년간 축적된 첨단 기술 개발 역량을 바탕으로 우주 시장의 판도를 바꿀 '게임 체인저'로 나서고 있다.




한화그룹, 발사에서 데이터까지…수직 계열화된 우주 가치 사슬 구축

한화그룹의 전략은 우주 가치 사슬의 모든 단계를 내재화하는 완벽한 수직 계열화에 있다. 그들의 역사는 K-9 자주포와 같은 정밀 무기 체계의 추진 기술에서 시작됐다. 화학 에너지와 정밀 공학에 대한 깊은 이해는 자연스럽게 로켓 엔진 기술로 이어졌고, 이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 고도화 사업의 총괄 주관사로 선정되는 결정적 배경이 됐다. ADEX에서는 오는 11월 27일로 예정된 4차 발사를 앞둔 누리호의 성과를 집중적으로 홍보하며 발사체 시장에서의 독보적인 '업스트림(Upstream)'의 입지를 재확인했다.


가치 사슬의 '미드스트림(Midstream)'에 해당하는 궤도상 자산 부문은 한화시스템이 책임진다. 한화시스템은 세계 최고 수준인 0.15m급 해상도의 초고해상도 합성 개구 레이더(SAR) 위성을 전면에 내세웠다. SAR 위성은 날씨나 주야에 무관하게 지구를 관측할 수 있어 군사 정찰·재난 감시의 핵심 자산으로 꼽힌다. 발사체와 위성을 모두 보유하게 된 한화그룹은 강력한 시너지를 창출할 기반을 마련했다.


마지막으로 '다운스트림(Downstream)'인 데이터 활용 단계에서 한화그룹의 전략은 정점에 달한다. 이번 전시의 대주제인 '내일을 위한 AI 국방(AI Defense for Tomorrow)'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었다. 한화시스템은 SAR 위성 솔루션과 인공지능(AI) 영상 분석 기술을 결합해 적의 위협 탐지 능력을 극대화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는 단순히 하드웨어를 판매하는 것을 넘어, 위성에서 수집된 데이터를 가공하여 고부가가치의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서비스 기업으로의 진화를 의미한다.


이처럼 한화그룹은 '발사체→위성 제작→데이터 분석 서비스'에 이르는 완결형 밸류 체인을 구축함으로써 글로벌 시장에서 하드웨어 제조사를 넘어 엔드-투-엔드(End-to-end) 솔루션 제공 기업으로 경쟁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제공권 장악에서 궤도 자산 확보로

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ADEX) 2025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부스 전경. 사진=박규빈 기자

▲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ADEX) 2025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부스 전경. 사진=박규빈 기자

KAI는 KF-21, FA-50 등 최첨단 항공기를 개발하며 쌓아온 시스템 통합 역량을 우주 분야로 성공적으로 확장하고 있다. KAI의 전략은 단순히 위성을 제작하는 것을 넘어, 자사가 구축하고 있는 미래형 전투 체계의 핵심 노드로 우주 자산을 통합하는 '시스템의 시스템(System of Systems)' 접근법에 기반한다.


ADEX 2025의 KAI '우주존'은 이러한 전략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었다. 이곳에는 위성 군집 운용에 필수적인 초소형 위성부터 KAI가 직접 제작에 참여한 차세대 중형위성, 광학 위성 등 다양한 위성 모델들이 전시되어, 위성 플랫폼에 대한 KAI의 폭넓은 기술 스펙트럼을 입증했다. 이는 KAI가 항공기 플랫폼뿐만 아니라 위성 플랫폼 시장에서도 주요 공급자로 자리매김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LIG넥스원, 궤도 위의 수호자, 첨단 센서 기술의 정점

LIG넥스원은 기술 집약적인 핵심 위성의 임무 장비(페이로드, Payload) 분야에 집중하는 '선택과 집중' 전략을 구사한다.


그 전략의 정점에는 ADEX 2025에서 처음으로 대중에게 공개된 정지 궤도 기상 위성 '천리안 5호'가 있다. 약 3200억 원 규모의 이 사업은 대한민국 최초로 민간 기업이 주관하는 대형 정지 궤도 위성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이는 정부 주도의 '올드 스페이스'에서 민간이 혁신을 이끄는 '뉴 스페이스'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상징하는 것으로, LIG넥스원이 복잡한 우주 시스템 전체를 통합하고 관리할 수 있는 역량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았음을 의미한다.


이와 함께 LIG넥스원은 초고해상도 SAR 위성과 초소형 SAR 위성 체계 기술도 선보이며, 한화시스템과 함께 국내 SAR 위성 시장에서 건전한 기술 경쟁 구도를 형성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탐지-방어-장악'으로 이어지는 LIG넥스원의 전시 부스 구성에서 위성 시스템은 모든 방어 체계의 시작점인 '탐지' 능력을 책임지는 핵심 자산으로 소개됐다.


이처럼 LIG넥스원은 무기체계의 '두뇌'에 해당하는 첨단 센서와 전자 기술을 우주로 확장함으로써, 글로벌 시장에서 L3해리스나 BAE 시스템스와 같이 대체 불가능한 핵심 기술을 보유한 전문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우주 발사체에 적용될 재사용 메탄 엔진. 사진=박규빈 기자

▲우주 발사체에 적용될 재사용 메탄 엔진. 사진=박규빈 기자

현대로템 전시 부스 핵심은 단연 '메탄 엔진'이었다. 메탄은 스페이스X의 스타십 등 차세대 재사용 발사체의 표준 연료로 주목받고 있다. 기존의 케로신보다 연소 효율이 높고 그을음이 거의 발생하지 않아 엔진 재사용에 절대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이다. 현대로템이 35톤급 메탄엔진 개발 성과를 공개한 것은 , 단순히 새로운 엔진을 만드는 것을 넘어 세계적인 기술 트렌드인 '재사용 발사체' 시장을 정조준하고 있음을 선언한 것이다.


새로운 우주 경제를 정의하는 스타트업들

과감한 투자를 진행하는 대기업들과 함께 K-뉴 스페이스 생태계가 건강함을 증명하는 또 다른 축은 바로 우주 분야에 특화된 전문 스타트업들의 성장이다. 이들은 민첩성과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무기로 새로운 우주 경제의 최전선을 개척하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위성 사업 계열사이자 대한민국 1호 우주 벤처인 쎄트렉아이는 ADEX 2025 참가를 통해 단순한 위성 제조사를 넘어 데이터 서비스 기업으로 진화하는 뉴 스페이스 시대의 전형적인 성공 방정식을 제시했다. 이 변화의 중심에는 세계 최고 수준인 25cm급 초고해상도를 자랑하는 지구관측위성 '스페이스아이(SpaceEye)-T'가 있다.


과거 '올드 스페이스' 시대의 비즈니스 모델이 정부나 특정 기관에 수백, 수천억 원짜리 위성을 한 번 제작해 납품하는 것이었다면 '뉴 스페이스' 시대의 핵심은 자체적으로 위성 군집을 소유·운영하며 여기서 생산되는 데이터를 구독 서비스 형태로 판매하는 것이다. 쎄트렉아이는 스페이스아이-T를 통해 바로 이 비즈니스 모델의 전환을 성공적으로 실행하고 있다. 최근 유럽의 한 주요 기관과 특정 지역의 위성 영상 직수신 권한을 7년간 제공하는 수백만 유로 규모의 계약을 체결한 것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이는 일회성 하드웨어 매출이 아닌, 지속적이고 예측 가능한 '반복 매출'을 확보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전략적 전환은 쎄트렉아이의 자회사 구조에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위성 영상 판매를 담당하는 SIIS와 AI 기반 영상 분석 솔루션을 제공하는 SIA를 통해 , 쎄트렉아이는 위성 제작에서부터 데이터 판매, 고부가가치 분석 정보 제공에 이르는 수직적 데이터 가치 사슬을 완성했다. 쎄트렉아이의 이러한 진화는 글로벌 뉴 스페이스 시장의 흐름을 정확히 반영하는 것으로, 국내 우주 스타트업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중요한 이정표가 되고 있다.


한빛-나노 발사대-발사체 체계 연동 시험 현장. 사진=이노스페이스 제공

▲한빛-나노 발사대-발사체 체계 연동 시험 현장. 사진=이노스페이스 제공

우주 산업 생태계에서 가장 근본적이면서도 중요한 조각은 바로 '우주로의 접근성'이다. 이노스페이스는 소형 위성 발사체 '한빛-나노'를 통해 바로 이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K-뉴 스페이스의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국내의 수많은 위성 개발 기업과 연구 기관들이 아무리 뛰어난 위성을 만들어도 그것을 원하는 시점에 원하는 궤도로 쏘아 올릴 수 없다면 반쪽짜리 성공에 불과하다. 스페이스X와 같은 해외 발사체에 의존할 경우, 비싼 비용과 긴 대기 시간은 물론 국가 전략적 필요에 따른 신속한 발사가 불가능하다는 한계에 부딪힌다. 이노스페이스와 같은 독자적인 민간 발사 기업의 존재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 국내 우주 산업 전체의 경제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승수 효과(Force Multiplier)'를 가져온다.


정부 역시 이노스페이스의 전략적 중요성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다. 우주청이 ADEX 2025에서 브라질 정부를 상대로 이노스페이스를 위한 직접적인 외교 지원에 나선 것은 국가가 민간 발사 역량 확보를 얼마나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로 여기는지를 보여준다. 이는 단순한 격려를 넘어 국가가 직접 나서서 시장을 창출하고 초기 기업의 리스크를 줄여주는 적극적인 산업 육성 정책의 일환이다.


업계에서는 곧 브라질에서 진행될 첫 상업 발사의 성공 여부는 이노스페이스의 기술력을 검증하는 동시에, 대한민국이 독자적인 우주 수송 능력을 갖춘 국가로 발돋움하는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노스페이스의 성공은 더 많은 위성 스타트업의 탄생을 촉진하고, 이는 다시 이노스페이스의 고객이 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자생력 있는 국가 우주 생태계의 초석을 다지게 될 것이다.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