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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온의 건설생태계] “텅 빈 상가를 주택으로”…도심 공급 ‘대안’ 급부상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5.11.02 09:59

서울 상가 공실률 9.27%, 오피스 공실률 3년 만에 최고치…공실 건물 ‘주거 전환’ 논의 재점화
문재인 정부 8·4 대책서 법적 근거 이미 마련…“이번엔 제도보다 실행이 관건”
전문가 “주차·피난 등 안전기준 완화 신중해야”…국토부 용도변경 절차 완화 연구 중
LHRI “5년간 전국 1만가구 전환 가능”…“역세권·청년층 중심 시범사업 필요”

[서예온의 건설생태계]는 매주 건설업계 내부의 주요 현안을 깊이 있게 다루는 기획 코너입니다. 산재(산업재해)·수주전·제도 변화 등 업계가 직면한 쟁점을 현장 취재와 전문가 분석으로 입체적으로 전합니다. <편집자주>



안암호텔

▲지난 7월 10일 서울 성북구 안암동 리첸카운테 호텔을 리모델링한 청년 임대주택인 '안암생활'에서 이정헌 국정기획의원과 청년 입주민들의 간담회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국토교통부

정부의 '10·15 부동산 대책' 발표 이후 도심 내 주택 공급 확대 필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가운데, 대규모 상가·오피스·지식산업센터 등 비어 있는 상업용 건물을 주거용으로 전환해 사용하는 방안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재건축·재정비나 신규 택지 개발을 통한 공급에는 최소 3~4년, 길게는 10년 이상 걸리지만 공실 상태의 비주거 건물을 주택으로 리모델링하면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 안에 입주까지 마무리할 수 있다. 경기 침체와 고금리, 과잉 공급 여파로 상업용 건물들의 공실률이 높아진 상황도 이 같은 논의에 힘을 보태고 있다.


다만 문재인 정부 시절에도 한차례 추진됐으나, 제도적 한계와 비용 부담 등으로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점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법적 근거는 이미 마련돼 있다는 만큼 실행 단계에서의 제도 개선과 안전 기준이 관건"이라는지적이 나오고 있다.





늘어나는 상가·오피스 공실률…'비주거→주거 전환 실험', 이미 있었다

올 들어 서울 도심의 상가와 오피스 공실이 빠르게 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서울 집합상가의 공실률은 9.27%로, 최근 1년 내 가장 높은 수준이다. 경기 침체와 고금리, 유동인구 감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강동구 대단지 아파트 상가와 동대문 쇼핑몰 등 한때 '불야성'이던 상권조차 임대 문의가 끊겼고, 연남동·서촌 등 MZ세대(1980년~2000년 초반 출생)가 주도하던 골목상권에서도 공실이 속출하고 있다.


오피스 시장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올해 1분기 서울 오피스 공실률은 3개월 연속 상승하며 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종로 등 도심권(CBD)은 2년 만에 4%대로 진입했고, 강남권(GBD)은 상대적으로 안정세를 보였지만 신축 빌딩의 공실률은 오히려 높았다.


8월 기준 서울 오피스 거래량은 급감했고, 꼬마빌딩 거래액은 3년 새 절반으로 줄었다. 고금리와 투자 위축이 맞물리며 공실이 늘고 거래는 줄어드는 '이중 침체'가 본격화하는 모습이다.




이 같은 흐름은 단순한 경기순환이 아니라 도심 공간 구조의 변화를 알리는 신호로 읽힌다. 비어 있는 건물을 단순한 '유휴공간'이 아닌 '주거 자원'으로 전환하려는 시도는 이미 5년 전부터 있었다.


문재인 정부는 2020년 '8·4 대책(서울권역 등 수도권 주택공급 확대방안)'을 통해 상가·오피스 등 비주거 건물을 주거용으로 전환해 임대주택으로 공급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당시 국토교통부는 “민간사업자도 공실 오피스·상가를 주거용으로 전환해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으로 공급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며 리모델링 비용 융자 지원과 주차장 증설 면제 등 규제 완화책을 담은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그 결과 실제 사업도 추진됐다. 서울 성북구 안암동의 '안암생활'은 기존 관광호텔을 리모델링해 청년 임대주택으로 바꾼 대표 사례다. 서울시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2020년부터 1인 청년가구를 위한 공공임대주택으로 공급했으며, 개인 주방과 화장실이 딸린 원룸형 구조에 공용 라운지·세탁실을 결합한 도시형 생활주택 모델로 주목받았다. 입주 경쟁률은 10대 1을 넘길 만큼 반응이 뜨거웠다.


LH는 또 서울도시주택개발공사(SH공사)와 함께 2020~2021년 서울 등 수도권 도심의 공실 오피스·상가를 매입해 장기공공임대주택으로 리모델링하는 시범사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종로·영등포·중구 등 10개 사업지에서 총 1200가구, 즉 노후 업무시설과 상업용 건물을 도시형 생활주택·오피스텔·원룸형 주택으로 바꿔 공급했다. 교통과 생활 인프라 접근성이 높고 임대료가 낮아 사회적 반향도 컸다.


그러나 이러한 비주거 건물 주거 전환 실험은 기대만큼 확산되지 못했다. 가장 큰 이유는 구조 변경 비용과 안전 규제 부담이었다. 바닥 난방과 욕실 설치 등 개조에 수천만 원이 들고, 구분소유자와 임차인 동의 절차도 복잡했다. 리모델링 과정에서 하자 발생 시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 민간 사업자의 참여가 저조했다. 제도적 장치는 마련됐지만, 실제로 '사업성이 보장되는 모델'은 아직 자리 잡지 못했다는 평가다.



전문가들 “법은 이미 있다…이젠 실행이 문제" “주차·피난 등 안전기준 해쳐선 안 돼"

전문가들은 실행 단계에서의 제도 보완과 안전 확보가 관건이라고 입을 모은다. 최원철 한양대 부동산융합대학원 교수는 “서울은 이제 땅이 아니라 제도의 문제로, 비주거 건물을 주거로 전환할 법적 근거는 이미 마련돼 있다"면서 “현장의 인식과 해석, 사업성 판단이 운동장 차이를 만들었다. 이번에는 정부가 제도만큼 실행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송파구 가든파이브처럼 공실이 많은 상업시설이나 도봉구 성균관대 야구장 등 활용도가 낮은 부지는 복합용도로 전환하는 게 현실적"이라고 덧붙였다.


조주현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주거 전환의 핵심 변수는 안전 규제 완화 여부"라며 “주거시설은 상시 체류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소방·피난·주차 기준이 매우 까다롭다"고 지적했다. 그는 “용도 변경 시 구조 하중이나 정화조 용량까지 바꿔야 해 비용이 크게 늘 수 있다"며 “공공이 주도하는 시범사업을 통해 기술적 검증을 선행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주거 전환에는 건축적으로 까다로운 기술 기준 충족이 필수적이다. 주거시설은 상시 체류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화재감지기·비상등·피난구 설치 등 소방설비와 피난·방화 구조, 주차장 기준, 정화조 용량 산정 등 추가 요건을 갖춰야 한다. 특히 정화조는 업종별 예상 오수 발생량과 저장일수에 따라 크기가 결정되고 건축허가 단계에서 설계도면 반영과 보건소·지자체 기준 검토가 병행돼야 한다. 결국 용도 변경에는 구조 안정성·위생·화재안전·주차 등 다각도의 기술 검증이 뒤따라야 하며, 그만큼 추가 비용과 공사 부담도 클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김은선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공실이 늘고 있지만 지역별 용도지구 구조가 달라 모든 건물이 전환 가능한 것은 아니다"며 “상업지역이나 준주거지역 등 이미 복합용도가 가능한 곳부터 시범사업을 확대하는 게 현실적"이라고 조언했다.


국토부 “용도변경 완화 연구용역 진행 중…내년 초 결과 발표"

국토부도 다시 적극적인 검토에 나서고 있다. 최근 상가·오피스 등 비주거 건물의 주거 전환을 제도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용도변경 절차 완화'를 주제로 한 연구용역을 진행 중이다. 문석준 국토부 건축정책관 과장은 “공실 상가나 오피스를 주거로 바꾸는 절차가 복잡해 실제 사업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며 “이를 개선하기 위한 연구용역을 올해 초 착수했고 내년 1월 결과를 공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기존 생활형숙박시설을 오피스텔로 전환할 때 적용했던 성능설계, 외부 주차 인정, 피난·소방 기준 보완 방식 등을 오피스·상가 전환에도 확대할 수 있는지 검토 중"이라며 “안전 기준은 유지하되 절차적 장벽을 낮추는 방향으로 제도를 보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LH 산하 토지주택연구원(LHRI)은 지난 9월 발간한 '비주택 리모델링 사업의 동향과 추진 여건' 보고서를 통해 “LH가 비주택 리모델링 임대주택 사업을 다시 추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보고서는 코로나19 이후 도심 오피스·상가의 공실이 늘어난 상황에서 이들을 주거용으로 전환할 경우 향후 5년간 전국 1만 가구, 서울 4600가구의 공급이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세부적으로는 숙박시설 1740가구, 업무시설 2440가구, 상가 190가구, 노유자시설 230가구 등으로 전환 잠재력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LHRI는 “역세권 반경 250m 내 상업용 건물의 전환 가능성이 가장 높다"며 “청년층 임대주택을 중심으로 시범사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보고서는 또 해외 사례로 뉴욕·런던 등의 오피스 전환 정책을 인용했다. 미국 뉴욕시는 팬데믹 이후 '오피스 투 레지던셜(Office to Residential)' 프로그램을 통해 세금 감면, 용적률 상향, 신속 인허가를 제공하며 현재까지 약 2만8500가구를 공급했고, 2030년까지 7만 가구 추가 공급을 목표로 하고 있다. LHRI는 “국내에서도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면 공급 확대와 도심 활성화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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