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여수에 위치한 LG화학 여수공장의 나프타분해시설(NCC). 사진=LG화학
산업 소재(素材)의 역사에서 강재는 제조업 전반을 고도화했고, 플라스틱과 합성고무는 대량생산을 현실화하는데 혁혁한 역할을 수행했다. 리튬과 니켈 같은 희토류로 만든 배터리 소재는 세계 전동화를 이끌고 있다. 실리콘 또한 반도체부터 항공우주 산업까지 특수환경 구현에 필수이다. 한마디로 소재를 알면 산업이 보인다. 차세대 산업을 견인하고 변화시킬 핵심소재 종류와 특성을 소개함으로써 국민생활과 국가경제를 지탱하는 '산업 영양소'의 중요성을 조명해 본다. <편집자주>
실적 부진, 가동률 저조, 미래 경쟁력 약화라는 파고에 부딪힌 국내 석유화학 업계의 미래를 재설계하기 위해 석화사들이 '에틸렌 생산설비 감축' 압박을 받고 있다. 그러나, 고부가가치 소재가 아니라고 에틸렌 생산을 무작정 줄이면 공급망 문제에 부딪힐 수 있다다는 게 석화업계가 처한 딜레마다.
애물단지 취급을 받는데도 석화사들이 에틸렌을 쉽게 내려놓지 못하는 이유는 에틸렌이 주요 석화제품을 제조하는 '쌀'이기 때문이다. 석화사들이 연말 사업 재편안 제출 시한을 앞두고 애타게 찾는 것은 에틸렌 축소와 고부가 확대 사이의 접점이다.
1일 석화업계에 따르면, 석화사들은 연말까지 에틸렌 생산 감축을 포함한 사업 재편 자구안을 산업통상부에 제출해야 한다. 전체 생산량의 18~25%인 연간 270만~370만톤을 어느 기업이 얼만큼 감축하고 설비를 통폐합할 것인지를 두고 석화사들이 머리를 쥐어짜고 있다.
조합하면 고부가…저수익에도 필요한 기초유분 생산
▲나프타를 에틸렌 등 기초유분으로 분해하는 공정을 설명한 개념도. 사진=LG화학
에틸렌은 수소 2개가 달린 탄소 2개가 이중결합한 물질로, 원유를 섭씨 30~200℃에서 증류하면 나오는 나프타를 열분해(크래킹)해 얻는다. 탄소 개수와 결합 구조에 따라 다양한 물질이 섞여 있는 원유를 가열하면 끓는점에 따라 개별 물질을 증류한다. 이 중 탄소를 5~12개 가진 물질들을 나프타라고 한다. 이 나프타에 열을 가해 쪼개면 나오는 물질 중 하나가 에틸렌이다.
얼핏 제3자 입장에서는 과감한 NCC(나프타 분해설비) 폐쇄로 에틸렌 생산을 확 줄이면 될 일인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에틸렌 생산 수익성이 낮기 때문이다.
산업통상부 원자재가격정보에 따르면, 11월 기준 에틸렌 판매 가격과 나프타 생산 가격의 차이를 나타내는 에틸렌 스프레드의 평균은 톤당 118.27달러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0% 가까이 작다.
업계는 에틸렌 스프레드의 손익분기점은 대개 톤당 300달러로 보고 있다. 석화 산업 위기가 한창 불거지기 시작하던 2022년 하반기에도 200달러선 아래쪽에 걸쳐 있었다. 석화사들은 석화부문 기준 분기별로 천억원 넘는 영업적자를 내오기도 했다.
하지만 석화사들이 에틸렌 생산 감축을 머뭇거리는 이유는 석화산업의 생산 구조 때문이다.
에틸렌은 다양한 석화 소재를 탄생시키는 대표적인 기본 단위다. 에틸렌을 여러 모양으로 연결하고 다른 물질을 첨가하는 방식이다. 이는 탄소라는 물질의 특성에서 비롯된다.
탄소는 다른 원자와 연결하는 '팔'을 4개 가지고 있다. 주로 수소와 결합하는 것을 좋아하고, 산소나 질소 등 등 다른 원자와 연결해 소재 특성을 강화할 수 있다. 탄소들끼리 선형으로 길게 연결하거나, 5~6개 탄소가 모여 하나의 고리를 만들기도 한다. 첨가물, 반응 촉매, 가열 방식 등에 따라 수백개에 이르는 무궁무진한 소재를 만들 수 있다.
에틸렌으로 만드는 대표적인 물질은 폴리에틸렌(PE)과 폴리염화비닐(PVC) 등이다. PE는 에틸렌 분자 여러 개를 죽 연결하는 '중합반응'으로 얻는 물질이다. 고온에서 반응시키면 저밀도 폴리에틸렌(LDPE)이, 저온에서 반응시키면 고밀도 폴리에틸렌(HDPE)을 얻을 수 있다.
PVC는 에틸렌에 있는 수소 원자 하나를 염소로 바꾼(치환) 것을 중합반응으로 줄줄이 이어 만든다. 염소를 첨가해 내구성을 키우고 부식에 강하다. 비닐봉지가 대표적인 PVC 제품이다.
이들 제품은 범용성을 띠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 석화사들의 수익성을 높여왔다. 한국이 효율과 품질이 우수한 생산 설비를 갖췄기 때문이다.
산유국에서 석유를 들여와 세계 각국의 제조기업들이 쓸 수 있는 형태로 수출하는 구조가 탄생했다. 특히 산업화로 성장하는 중국에서 수요가 늘며 성장세가 가팔랐다. 그러나 산유국이 모여 있는 중동과 원가 경쟁력이 우수한 중국이 이 사업에 뛰어들면서 한국 석화사들에게 적자 품목이 돼버렸다.
에틸렌 생산 조절, 수익 개선과 고부가 확대 사이
▲전남 여수에 위치한 여수 석유화학 산업단지의 전경. 사진=여수시청
하지만, 에틸렌 생산을 줄이기 위해 NCC를 끄면 다른 고부가가치 품목에 해당하는 제품을 생산하지 못하게 된다. NCC에서는 나프타 분해 방식에 따라 에틸렌 뿐만 아니라 프로필렌, 부타디엔 같이 기초 유분을 생산한다. 에틸렌은 800도 이상으로 가열해 열분해하는 방식으로 생산되는 반면, 탄소가 3개인 프로필렌과 4개인 부타디엔은 이보다는 낮은 500도 수준의 온도에서 촉매를 가해 얻어낸다.
대표적으로 프로필렌에 물을 첨가하는 수화반응으로 만들어지는 이소프로필 일코올(IPA)은 접착제나 페인트 용제, 세정제 등으로 쓰인다. 반도체 산업에 이를 적용하면 먼지 하나 들어가선 안 되는 웨이퍼를 세정하는 물질로 쓰인다.
부타디엔은 탄소 8개가 3중결합으로 연결된 스티렌과 함께 타이어와 신발 등을 만드는 합성고무의 원료로 쓰인다. 스티렌-부타디엔 고무(SBR)와 용액 스티렌-부타디엔 고무(SSBR)는 부타디엔과 스티렌을 화학 반응으로 혼합해 여러 개를 연결하면 생기는 고분자 제품이다. 전기자동차 특성에 적합한 합성고무 재질을 만들면 수익성을 높일 수 있다.
석유화학 기업들이 요구받는 고부가가치·스페셜티 중심 사업 포트폴리오 전환은 기초유분이라는 토대 위에서 가능하다. 전동화나 인공지능(AI) 같이 새로운 산업 트렌드에 맞춘 석화 소재를 개발해낸 뒤 생산 단계로 넘어가려면 핵심 원료 조달이 문제로 떠오른다. 석화사들이 기초유분 공급 과잉으로 수지타산이 안 맞아 손해를 보면서도 NCC 가동을 멈추기 어려운 이유는 고부가가치 소재 생산을 염두에 둔 것이다. NCC는 가동을 멈춘 뒤 다시 돌리려면 고온 가열을 위해 에너지를 더 투입해야 한다.
'석화 빅딜 1호' 타이틀을 안은 롯데케미칼과 HD현대오일뱅크가 추가 논의해야 할 과제도 NCC 축소와 고부가가치 소재 생산 사이의 접점 모색이다. 두 회사는 지난달 26일 산업통상부에 충남 대산에 보유한 공장들의 사업 구조를 재편하는 방안을 제출했다.
롯데케미칼 대산공장을 물적 분할 형식으로 떼어내 HD현대오일뱅크와 롯데케미칼이 각각 60%, 40%씩 출자해 만든 HD현대케미칼에 합병하고, 합병 HD현대케미칼의 양측 지분을 절반씩으로 조정한다는 계획이다.
롯데케미칼 대산공장과 HD현대케미칼은 에틸과과 프로필렌, 벤젠 같은 웬만한 기초 유분과 저밀도폴리에틸렌(LDPE), 폴리프로필렌(PP) 같은 합성수지를 생산해왔다. HD현대케미칼의 경우 판매 제품을 전부 롯데케미칼과 HD현대오일뱅크에 판매해 왔다.
원유 정제부터 기초유분 생산, 고분자화합물(폴리머) 형태의 석화 소재 공급에 이르는 과정을 어떻게 설계할지에 합병 법인의 수익성 개선 여부가 결정되는 구조다. 이는 각 단계별 원료 투입량과 기초 유분·고분자 제품 생산량, NCC 세부 공정 조정을 세밀하게 계산하는 문제다. 법인을 합치고 NCC 한 기를 멈춘다고 해결될 일이 아닌 것이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명예교수는 롯데와 HD현대의 사업 재편안 제출에 관해 “석유화학 구조조정은 기업들이 보유한 설비를 줄이기만 할 문제가 아니다"라며 “외부인이 세부 공정 같은 기업 기밀을 알 수 없겠지만, 롯데케미칼과 HD현대케미칼이 설비 통합과 효율화를 어떻게 할지, 사업 경쟁력을 개선할 가능성은 있는지 등을 충분히 검토해놨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빅딜 1호의 교훈은 전남 여수 산단과 울산 산단에서도 마찬가지다. 여수에서는 LG화학과 GS칼텍스, 롯데케미칼과 여천NCC가 사업 재편안을 논의하고 있다. 울산에서는 SK지오센트릭과 대한유화, 에쓰오일이 머리를 맞댔다.
석화 산단 3곳 중 에틸렌 생산 능력이 가장 큰 여수도 NCC 규모를 축소하되 부동액 같은 데 쓰이는 에틸렌글리콜(EG)나 수술용 장갑 등 특수 용도에 많이 쓰이는 라텍스 등 고부가 소재의 생산 능력을 유지하는 중간 지점을 찾아내는 과제가 풀려야 한다.
석화업계 한 관계자는 “석화산업 구조재편은 NCC를 멈춘다고 될 문제가 아니다"라며 “충남 대산이 석화 사업 재편에서 진도를 가장 빨리 냈지만, 설비 최적화 방안을 비롯해 추가 논의할 게 남아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승현의 소재 탐구] “NCC 줄여라” 석화 애물단지 불구 ‘고부가가치 핵심소재’](http://www.ekn.kr/mnt/thum/202512/news-p.v1.20251201.a8d832e2bd6b4891b97f10755d0c6319_T1.png)



![[여전사 풍향계] BC카드, 외국인 위한 선불카드 ‘콘다’ 출시 外](http://www.ekn.kr/mnt/thum/202512/news-p.v1.20251201.4b2b84e8862844e3b0629a8ba05c742e_T1.jpg)

![[EE칼럼] 깐부에서 꼰대가 되어 버린 에너지 효율화 정책](http://www.ekn.kr/mnt/thum/202512/news-p.v1.20240331.e2acc3ddda6644fa9bc463e903923c00_T1.jpg)
![[EE칼럼] 브라질 아마존에서 열린 COP30의 현실](http://www.ekn.kr/mnt/thum/202511/news-p.v1.20240521.f1bf8f8df03d4765a3c300c81692086d_T1.jpg)
![[김병헌의 체인지] 12·3 계엄이 남긴 의미있는 역설](http://www.ekn.kr/mnt/thum/202512/news-p.v1.20240625.3530431822ff48bda2856b497695650a_T1.jpg)
![[이슈&인사이트] 급격히 확산하는 국제사회 반이민·반난민 정서](http://www.ekn.kr/mnt/thum/202512/news-p.v1.20240325.ede85fe5012a473e85b00d975706e736_T1.jpg)
![[데스크칼럼] ‘AI 기본사회’로 가는 제3의 길](http://www.ekn.kr/mnt/thum/202511/news-p.v1.20251130.6de1a8d38d1e452497c3706db08b7e2e_T1.jpg)
![[기자의 눈] 원화 가치 끝없는 하락에…내국인에게만 비싸진 집값](http://www.ekn.kr/mnt/thum/202511/news-p.v1.20251130.79a9017e562d4f7da02327921c1364b9_T1.p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