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영 숭실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과 전신을 20년 넘게 지켜봤다. 밖에서 보기엔 “예산도 늘고, 사업도 많고, 지원도 두터워졌다"고 말한다. 하지만 소진공이 소상공인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지에는 여전히 의문이다. 먼저 공단 직원들이 구조적 행정과부하에 지쳐 있다. 새로운 사업이 쏟아지고, 공고·심사·정산·평가까지 겹치면서 하루 대부분을 서류와 시스템 입력에 쏟아 넣는다. “이 사업을 왜 하는지, 무엇이 효과가 있었는지"를 놓고 토론하고 실험할 여유가 없다. 창의적 기획 역량은 있지만 행정 과부하에 밀리기 쉽다. 소상공인은 또 어떠한가. 정책자료집에는 사업 이름이 빼곡하다. '기업가형 소상공인 육성', '디지털 전환', '상권활성화' 같은 정책용어는 넘쳐나는데, 정작 소상공인들은 “나는 뭘 받아야 가게를 살릴지, 아니면 안전하게 정리할지"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공고가 나가도 신청자 채우기에 급급하고, 모집을 마쳐도 참여자 상당수는 사업 취지와 요구를 잘 모른 채 끌려온다. 컨설턴트의 질도 들쭉날쭉하다.
현장을 꿰뚫고 매출 개선에 기여하는 분들도 있다. 그러나 서류용 보고서만 양산하는 컨설팅도 적지 않다. 이는 컨설턴트 성의 부족만이 아니라, 컨설팅이 매출과 생존에 어떤 변화를 만들었는지 숫자와 이야기로 추적하지 않는 현재 사업 구조의 한계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답답한 대목은 “소상공인 여정이 없다"는 점이다. 소상공인 입장에서 필요한 것은 사업 목록이 아니라 경로다. 한 번 진단을 받고, “사장님은 지금 '버티기 단계'이니 1번 사업이 우선이고, 이 목표를 달성하면 다음 단계에서 2번·3번 지원으로 넘어갑시다"라고 안내받고 싶어 한다. 그런데 현실의 지원사업은 잘게 쪼개진 칸막이 속에 흩어져 있을 뿐, 소상공인의 생애주기와 위험도에 따라 이어지는 하나의 여정으로 설계되어 있지 않다. 사실 소진공은 전국에 촘촘히 깔린 지역센터망, 상권정보와 기금 데이터를 한 손에 쥐고 있고, 컨설턴트와 전문가 네트워크도 이미 갖추고 있다. 세계 어디를 봐도 이렇게 다양한 인프라와 데이터를 한 기관이 동시에 가진 사례는 드물다. 이제 필요한 것은 이 자산들을 '사업 목록' 중심이 아니라 '소상공인 여정' 중심으로 다시 엮어내는 일이다.
이제 소진공이 바꿔야 할 방향은 분명하다. 첫째, 사업을 패키지로 묶어야 한다. 부서·예산 단위가 아니라 소상공인의 삶 기준으로 재편하는 것이다. '창업·초기, 성장·혁신, 수출·도약, 위기·재기'처럼 몇 개의 굵은 코스로 나누고, 소상공인이 어느 코스에 있는지 진단을 해야 한다. 이 진단이야말로 소진공의 핵심역량이 되어야 한다. 진단이 정확해야 처방도 제대로 나오고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둘째, 창구를 진짜 원스톱으로 만들어야 한다. 장관이 바뀔 때마다 “원스톱 서비스"는 구호로 등장했지만, 여전히 지역센터·온라인(소상공인24)·콜센터· 지자체 창구가 제각각이다. 어느 창구를 먼저 찾아가도 한 장짜리 '통합 상담카드'로 상황을 파악하고, 과거 상담·지원 이력이 한 번에 보이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출발점이다. 셋째, 위기·폐업·재기·재난을 하나의 경로로 묶어야 한다. 연체가 시작되고, 임대료가 밀리고, 결국 폐업을 고민하게 되는 과정은 서로 다른 사건이 아니라 하나의 흐름이다.
그럼에도 정책은 재난, 채무조정, 폐업정리, 재창업 교육으로 나뉘어 있다. 당사자 입장에서는 가장 힘든 시기에 여러 기관을 전전하며 행정 절차까지 견뎌야 한다. 핵심은 새로운 사업이 아니라, 흩어진 제도를 연결해 주는 코디네이터와 표준 시나리오다. 마지막으로, 데이터는 보고서가 아니라 행동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소진공은 이미 BSI, 상권정보, 기금 데이터 등 많은 숫자를 모으고 있다. 이제는 이를 업종·지역별 '위험등급 지도'로 바꾸고, 경보 수준에 따라 어떤 지원을 앞당길지 룰을 만들어야 한다. 위기가 심한 지역에는 상권 활성화와 디지털 전환, 컨설팅과 정책금융이 먼저 들어가게 하는 선제적 개입이 필요하다. 소진공이 지향해야 할 방향은 복잡한 제도를 정리해, 소상공인들이 자기 여정을 따라갈 수 있게 돕는 것이다. 이제 지원사업의 숫자가 아니라, 경로의 단순화와 여정 설계를 중심에 두는 거버넌스 전환이 소상공인 정책의 다음 단계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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