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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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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호르무즈 해협은 영해, 통행세 내라”…미국 “항행은 자유”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6.03.23 11:38

트럼트 대통령 “48시간 내 개방” 최후통첩
이란, 여전히 강경 대응…통행세까지 검토
유엔해양법협약은 자유로운 선박 통행 허용
국내법 ‘해양영역법’에 따라 ‘무해통행’요구
휴전에도 통행세 계속 부과하면 고유가 고착

IRAN-CRISIS/ENERGY

▲호르무즈 해협을 보여주는 지도. (사진=로이터/연합뉴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공방이 3주를 넘긴 가운데 전쟁은 호르무즈 해협의 항행 문제에 집중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21일(현지시간) 이란에 48시간 내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을 요구하며 사실상 '최후통첩'을 보냈다.


하지만 이같은 최후통첩이 이란을 더욱 자극해 향후 전쟁이 더욱 격화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란은 여전히 세계 경제의 목줄인 호르무즈 해협을 무기화하고 있다.




당장 이란군을 통합 지휘하는 중앙군사본부 하탐 알안비야의 에브라힘 졸파가리 대변인은 22일(현지시간) “이란 발전소를 겨냥한 미국의 위협이 실행되면 호르무즈 해협은 완전히 폐쇄되고 발전소가 재건될 때까지 다시 열리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국제해사기구(IMO) 이란 대표인 알리 무사비는 “호르무즈 해협은 이란의 적과 연계된 선박을 제외하고 모든 선박에 개방돼 있다"면서 “이란 정부와의 보안·안전 조율을 거치면 통과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란의 이러한 행보가 '사실상의 봉쇄(De facto closure)' 상황을 이어가는 효과를 낼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란은 또 통행료(통행세) 부과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국과의 전쟁이 마무리돼도 통행료를 계속 부과한다면 자칫 국제 유가를 세 자릿수(달러화 기준)로 고착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란의 전 부통령 모하마드 모크베르는 최근 “전쟁이 끝난 뒤 이란이 강력한 지위를 갖는 '새로운 체제'를 호르무즈 해협에 도입할 것"이라고 밝혀 통행세 징수 등이 공식화될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사실 호르무즈 해협의 항행을 둘러싸고 미국과 이란은 과거부터 논쟁을 벌여왔다.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을 국제 해협이 아닌 자국 영해로 간주해 이 '무해 통항' 체제를 적용하려 하는 반면, 미국은 더 넓은 자유가 보장되는 '통과 통항' 체제를 주장하며 대립해왔다.


이 논쟁은 유엔 해양법협약(UNCLOS) 등과도 연결된다. 지난 2020년 아산정책연구원 이기범 연구위원이 이 문제를 짚었고, 최근 독립연구자인 미리 샤하브(Myra Shahab)도 관련 논문을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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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스라엘이 이란의 전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지난 11일 유조선들이 아랍에미리트 북부 라스알카이마에서 호르무즈 해협 인근 페르시아만을 항해하고 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이란의 '통행료' 주장, 법적 근거는


이란이 통행료 징수를 정당화하기 위해 내세우는 핵심 논리는 UNCLOS에 대한 독자적 해석이다. 이란은 비당사국에게는 '통과 통항권(transit passage)'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조약법 원칙을 근거로 삼아 통행료 징수와 같은 실력 행사를 정당화하고 있다.


이란은 협약의 모든 권리와 의무가 하나로 묶인 '패키지 딜(package deal)'임을 강조한다. 즉, 협약의 혜택인 '통과 통항권(국제 해협을 방해받지 않고 통과할 권리)'은 협약을 비준한 국가들 사이에서만 유효하고, 특히 협약에 가입하지 않은 비당사국인 미국 등은 이 권리를 누릴 수 없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정작 이란은 1982년 UNCLOS 협약에 서명은 했으나 비준은 하지 않은 상태다. 그러면서 이란은 국제법상 '지속적 반대자(persistent objector)' 지위를 가졌음을 내세운다. 특정 국제 관습법이 형성될 때부터 지속적으로 반대해 온 국가는 해당 규칙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는 원칙이다. 오래 전부터 '통과 통항권'에 반대했다는 주장이다.


이란은 1993년에 제정한 국내법(해양 영역법)에 바탕을 두고 호르무즈 해협을 자국의 영해로 간주하고 있다. 이에 따라 연안국의 안전을 해치지 않을 때만 허용되는 '무해 통항(innocent passage)' 체제를 적용하겠다고 주장한다. 무해 통행 체제는 외국 선박이 연안국의 평화, 질서, 및 안전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그 영해를 자유롭게 통과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


이에 따라 이란은 군함과 잠수함, 원자력 추진 선박이 호르무즈 해협을 지날 때 사전 승인을 받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잠수함의 경우는 수면 위로 부상한 상태로 국기를 게양하고 통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 전체를 단독 영해로 주장하기보다는, 해협의 상당 부분(특히 항로가 포함된 구역)이 자국과 오만의 영해 내에 존재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주권적 통제권을 주장하고 있다.


국제법상 연안국은 해안선으로부터 최대 12해리(약 22㎞)까지 영해를 설정할 수 있다. 호르무즈 해협은 가장 좁은 지점의 폭이 약 33㎞(21마일)에 불과해, 해협 전체와 그 안의 주요 항로가 물리적으로 이란과 오만의 영해 내에 완전히 포함된다.


이란은 해협 전체가 이란만의 것이라고 주장하기보다는 해협 내의 항로가 자국 영해를 지나므로 관습법상 '무해 통항'의 원칙에 따라 이란이 통제권을 행사할 권리가 있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항행의 자유' vs '연안국 주권'... 팽팽한 대립


미국은 이란의 주장을 '과도한 해양 주장'으로 규정하고 '항행의 자유 작전(FONOPs)'을 통해 맞서고 있다. 미국은 통과 통항권이 이미 보편적인 관습 국제법으로 굳어졌으므로 UNCLOS 비당사국이라도 이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UNCLOS의 통과 통항에 관한 규정은 협약 제정 이전부터 존재했거나 제정 이후 관습 국제법으로 굳어졌다고 미국은 주장한다. 즉, 협약에 가입하지 않았더라도, 전 세계적인 국가 관행과 법적 확신(opinio juris)에 의해 확립된 보편적인 법규이므로 모든 국가에 적용된다는 논리다.


미국은 협약의 모든 내용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자국의 이익에 반하는 특정 조항(예: 심해저 자원 개발 관련 규정)만을 이유로 비준을 하지 않았을 뿐, 항행의 자유와 관련된 조항들은 이미 확립된 국제법적 원칙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호르무즈 해협의 또 다른 연안국인 오만은 1989년 UNCLOS를 비준했지만, 이란과 마찬가지로 영해 내 군함 통항 시 사전 승인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안보 주권을 강조하고 있다.


유조선 등이 오만 쪽 영해를 이용하려 해도 해협 자체가 너무 좁아 이란의 영향권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 현재 호르무즈 해협은 물리적인 차단보다는 이란의 미사일 위협, 기뢰 매설 가능성, 드론 공격 등으로 인한 '사실상의 봉쇄(De facto closed)' 상태에 가깝다. 이란은 고속정이나 잠수함 등을 이용해 해협 전체에 걸쳐 공격을 가할 능력이 있으므로, 단순히 오만 쪽 영해로 치우쳐 항해한다고 해서 공격 위험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는 어렵다.


영국 퇴역 해군 사령관 톰 샤프는 “해협 통제는 언제나 이란의 '트럼프에 맞설 카드'였다"고 평가하면서도, “이란 원유의 최대 구매자인 중국이 큰 피해를 보게 되므로 이란이 해협을 완전히 막지는 못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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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과 갈등을 빚으면서 호르무즈 해협의 교통량이 줄어든 가운데 지난 12일 유조선 칼리스토호가 오만 무스카트의 술탄 카부스 항에 정박해 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1970년대 쇼크의 3배"암울한 전망


현재 호르무즈 해협은 물리적 차단은 아니더라도 공포와 비용 상승으로 인해 통과 선박이 전쟁 전보다 95% 급감한 상태다.


에너지 연구소 'MST 마키'의 수석 애널리스트 사울 카보닉은 “호르무즈 해협이 폐쇄될 경우 1970년대 아랍 석유 금수 조치보다 3배나 더 심각한 시나리오가 전개될 수 있고, 유가는 세 자릿수(100달러 이상)에 진입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실제로 해운업계에는 이미 실질적인 비용 부담이 발생하고 있다. 중동에서 중국으로 향하는 슈퍼탱커 운임이 일주일 만에 두 배로 뛰어 40만 달러를 돌파하는 등 '보험료 폭탄'이 현실화되고 있다.


이와 더불어 로이드 리스트 인텔리전스는 최근 “한 유조선 운영 업체가 안전 통과를 조건으로 이란 측에 200만 달러(약 30억 원)의 통행료를 지급했다"고 보도했다.


항행의 자유가 '공짜'였던 시대가 저물고, 각국이 직접 군함을 보내거나 통행료를 내야 하는 해양 질서의 위기가 닥쳐오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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