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이 심했던 지난 1일 우크라이나 키이우 중심가에서 개가 안개 분무장치 근처 물웅덩이에서 더위를 식히고 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인류가 배출한 온실가스로 지구가 달궈지면서 전례 없는 폭염과 열돔 현상이 지구촌을 덮치고 있다. 그래도 우리들은 선풍기·에어컨·얼음으로 더위를 식힐 수 있다.
반면 우리 곁의 야생 동식물들은 피할 곳 없는 뜨거운 태양 아래서 생존의 한계에 부딪히며 소리 없이 죽어가고 있다. 생태계가 무너져내리고 있는 것이다.
생태학자들은 “야생동물이 오히려 사람보다 폭염에 훨씬 취약하다"고 말한다. 에어컨도 없는 그들은 오직 진화과정에서 얻은 적응 능력만으로 갑자기 나타난 극한의 환경을 견뎌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의 폭염은 과거와 성격이 다르다. 최고기온은 더 높아지고, 폭염은 더 오래 지속하고, 밤에도 기온이 떨어지지 않는다. '열돔' 현상은 거대한 고기압이 뜨거운 공기를 지표면 가까이에 가두면서 도시와 숲, 바다를 거대한 오븐처럼 만는다.
문제는 인간이 초래한 기후변화가 생태계에 피해를 주고, 부메랑이 돼 다시 우리를 향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후 신호등'에서는 폭염과 기후변화가 생태계를 어떻게 파괴했는지, 그 사례들을 살펴본다.
▲2021년 여름 북아메리카를 덮친 열돔 당시 해안에서 폐사한 홍합. (사진=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교 해양생물학자 크리스토퍼 할리).
◇2021년 북미 열돔: 바다에서 벌어진 '대량 학살'
2021년 6월 기록적인 '열돔(Heat Dome)' 현상이 북미 서부 지역을 강타했다. 캐나다 라이턴은 기온이 49.6℃까지 치솟았다. 2026년 유럽을 휩쓸고 있는 열돔보다 더 강력했던, 2021년 열돔은 자연이 수 세기 동안 적응해 온 임계치를 단 며칠 만에 파괴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캐나다 빅토리아대학의 줄리아 K. 바움 교수팀이 최근 '네이처 생태학 및 진화 (Nature Ecology & Evolution)'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당시 조사 대상 종의 75% 이상이 부정적인 영향을 받았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해양 생태계의 피해였다. 썰물로 바닷물이 빠진 뒤 해안가 바위 온도가 50°C를 넘어서면서 이동 능력이 없는 홍합(92% 폐사)과 따개비(90% 폐사) 등 수십억 마리의 무척추동물이 바위 위에서 말 그대로 '구워져' 죽었다.
불과 며칠 만에 해안을 뒤덮던 홍합 군락은 하얀 껍데기만 남긴 채 사라졌다. 연구자들은 약 10억 마리 이상의 홍합이 폐사한 것으로 추정했다.
아울러 작은 하천의 수온이 23~24°C까지 치솟으면서 산소 부족으로 고통받던 연어와 송어가 집단 폐사했다.
◇나무 위에서 떨어져 죽은 원숭이들
2024년 5월 멕시코 남부 지역은 45°C에 육박하는 살인적인 폭염에 휩싸였다. 이 폭염은 영장류인 '유카탄검은짖는원숭이(과테말라검은짖는원숭이)'들에게 사형 선고와 같았다.
멕시코 환경부와 생물다양성 보전 단체인 '코비우스'에 따르면, 타바스코와 치아파스 주에서만 최소 157마리의 원숭이 사체가 수거됐다.
처음에는 전염병이나 독극물이 의심됐지만, 원인은 따로 있었다. 현지 동물생태학자들은 “원숭이들이 심각한 탈수와 열사병 증세를 보이며 높은 나무 위에서 마치 익은 사과가 떨어지듯 툭툭 떨어져 죽었다"고 증언했다.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 채 단 몇 분 만에 생리적 기능이 붕괴된 것이다.
구조대원들이 물과 얼음을 들고 숲으로 들어갔지만, 원슝이들을 살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는 기후변화가 야생 동물에게 얼마나 즉각적이고 치명적인 위협이 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 됐다.
▲지난 2024년 5월 멕시코 남부에서 폭염으로 쓰러진 유카탄검은짖는원숭이 새끼가 구출돼 영양 공급을 받고 있다. (사진=AP/연합뉴스)
◇지능을 잃어버린 동물들
더 무서운 사실은 폭염이 동물의 '뇌'까지 망가뜨린다는 점이다.
지난해 '로열 소사이어티 오픈 사이언스(Royal Society Open Science)'에 논문으로 발표한 서(西)호주대학의 행동 생태학자 아만다 리들리 교수팀의 연구에 따르면, 남아프리카의 '남부점박이꼬리치레'는 기온이 올라가면 인지 능력이 현저히 저하됐다.
남부점박이꼬리치레는 검은색과 흰색 깃털을 가진 중간 크기의 새인데, 평소에는 투명한 장애물 너머의 먹이를 얻기 위해 쉽게 장애물을 돌아서 갔다. 연구팀은 이 새가 고온에 노출되면 쉽게 풀던 과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장애물인 벽면만 반복해서 쪼는 등 심각한 인지적 혼란을 겪는다는 사실을 정량적으로 입증했다.
심지어 이 새들은 온도가 35.6°C에 도달하면 포식자인 제넷고양이와 일반 나무 상자를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판단력이 흐려졌다.
스웨덴 스톡홀름대학의 신경과학자 에밀리 베어드는 지난해 '로열 소사이어티 오픈 사이언스'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뒤영벌을 대상으로 한 실험결과를 소개했다.
벌들에게 단맛(설탕물, Sucrose)은 파란색과 연관이 있고, 쓴맛(퀴닌, Quinine)은 노란색과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시키는 실험이었고, 벌들이 색상을 보고 어떤 꽃(또는 급여 장치)을 방문해야 영양분을 얻을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떤 곳을 피해야 하는지를 인지하고 기억할 수 있는지 테스트했다.
그런데 25℃에서는 대부분의 벌이 학습에 성공했으나, 32℃에서는 절반 미만의 벌만이 학습에 성공했다.
이 연구는 폭염이 꿀벌의 인지 능력과 기억력을 손상시켜 수분 활동을 방해하고, 결과적으로 농작물 수확량 감소와 식량 안보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심각한 경고를 담고 있다.
▲2021년 여름 열돔 이후 숲의 나무들이 갈색으로 변하는 '엽편 열화' 현상이 관찰됐다. (사진=Nature Climate Change, 2026)
◇새들도 뜨거운 둥지를 버리다
불가리아 야생동물 구조센터(WRBC)의 루스코 페트로프 박사팀이 지난 2일 '생물다양성 데이터 저널(Biodiversity Data Journal)'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최근 불가리아에서는 폭염으로 인한 산불이 급증하면서 날지 못하는 새끼 황새들이 둥지에서 몰사하는 비극이 반복되고 있다.
폭염이 시작되면 많은 새들은 번식을 포기하고 둥지를 버린다. 폭염이 지속되면 둥지 내부 온도는 사람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높아진다.
햇빛을 그대로 받는 전봇대 위 둥지나 절벽 위 둥지의 온도는 50~60℃를 넘기도 한다. 부모 새는 알을 보호하기 위해 날개를 펼쳐 그늘을 만들기도 하지만 한계가 있다.
부모 자신도 견디기 어렵고, 결국 많은 새들이 번식을 중단하거나 새끼를 잃는다.
2021년 북미 열돔 당시 둥지 안의 극심한 더위를 견디지 못한 맹금류 새끼들이 약 18m 높이의 둥지에서 뛰어내려 골절상을 입거나 폐사하는 사례가 속출했다.
사람은 체온을 약 37℃로 유지한다. 야생동물도 마찬가지다. 종마다 차이는 있지만, 일정한 체온 범위를 벗어나면 생명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진다.
사람에게 나타나는 열사병과 같은 상황이 야생동물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다만 차이는 야생동물이 치료받을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지난 2일 프랑스 남서부 푸졸-미네르부아에서 민간 보안 소속 대시 파이어가드 항공기가 산불 진화제를 투하하고 있다. 폭염이 장기화하면서 프랑스 등 유럽 곳곳에서 산불이 발생하고 있다. (사진=AFP/연합뉴스)
◇거대하게 돌아오는 부메랑: 산불과 생태계 붕괴
폭염은 산림 생태계에도 치명적이다. 산림을 거대한 불씨로 만든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UC 머세스)의 드미트리 A. 칼라시니코프 박사팀이 지난달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미국 서부 산불 소실 면적의 42%가 폭염 기간 및 직후 5일 이내에 집중됐다.
산림 지역의 산불 소실 면적은 2001년 이후 약 2.5배 증가했는데, 이러한 증가의 63%는 폭염 발생 탓으로 분석됐다. 만약 폭염 일수가 증가하지 않았다고 가정할 경우, 누적 산림 소실 면적은 실제보다 약 37% 낮았을 것으로 추정됐다는 것이다.
폭염은 낮 동안 수분을 뺏을 뿐만 아니라 밤에도 기온을 높게 유지하면서 밤사이 습도가 다시 올라가는 '야간 습도 회복' 과정을 방해한다. 산불이 밤새 타오르는 '야간 연소'를 부추 진화 작업을 어렵게 만든다.
폭염 속에서 식물은 잎의 기공을 열어 수분을 증발시키면서 온도를 낮춘다. 하지만, 폭염과 가뭄이 동시에 닥치면 상황이 달라진다. 수분을 아끼기 위해 기공을 닫게 되는데, 이산화탄소를 흡수하지 못하고 광합성을 멈추게 된다. 성장도 멈추게 된다는 얘기다.
2021년 북미 열돔 당시에도 육상의 산림 또한 비명 없는 고통을 겪었다. 미국 오리건주립대학의 크리스토퍼 J. 스틸 교수와 미시간 기술대학의 마이클 폴 넬슨 교수는 지난달 '네이처 기후변화(Nature Climate Change)' 저널 기고문에서 이 현상을 '지상판 산호 백화 현상(terrestrial analogue of coral bleaching)'이라고 명명했다.
강한 열기가 나뭇잎 조직을 직접적으로 파괴해 광범위한 산림이 갈색으로 변하는 '엽편 열화' 현상이 나타난 것을 두고 바다속 산호가 더워진 바닷물 탓에 하얗게 변하며 죽어가는 것이 지상에서 벌여졌다고 설명한 것이다. 이는 단순한 가뭄 피해가 아니라, 열 자체가 식물의 세포 통합성을 무너뜨린 결과였다. 미 서부 워싱턴 및 오리건주 산림의 약 5%에 달하는 면적이 이러한 피해를 입었다.
▲섭씨 39도가 넘는 고온을 기록한 지난달 30일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시내의 분수대에서 비둘기들이 더위를 식히고 있다. (사진=EPA/연합뉴스)
◇자연의 경고를 들어야 할 때
최근에는 폭염으로 위험에 처할 야생동물을 미리 예측하려는 연구도 시작됐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식물연구소와 미국 코네티컷대, 미 항공우주국(NASA) 등 국제 공동연구진은 지난달 '네이처 기후 변화'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생물다양성 폭염 조기경보 시스템'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연구진이 개발한 '생물다양성 폭염 조기경보 시스템'은 기상청의 폭염예보를 야생동물 보호에 적용한 개념이다. 계절 기상예보를 이용해 몇 달 뒤 어느 지역에서 극한 폭염이 발생할지를 예측한 뒤, 각 동물의 내열 한계와 서식지 정보를 결합해 어떤 종이 생리적 한계를 넘어설 가능성이 큰지를 미리 계산한다. 다시 말해 '폭염이 온다'는 사실이 아니라 '어떤 생물이 위험해질 것인가'를 사전에 경고하는 시스템이다. 이를 통해 보호구역 관리기관은 물 공급, 모니터링, 구조 인력 배치 등 보전 조치를 폭염이 시작되기 전에 준비할 수 있다.
연구진은 2024년 5월 예측에서 전 세계 척추동물 3500여 종과 멸종위기종 1250여 종이 극한 폭염에 노출될 것으로 전망했으며, 특히 멕시코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히말라야 지역의 위험이 클 것으로 예측했다. 이후 멕시코에서는 실제로 고함원숭이가 집단 폐사하는 등 예측과 부합하는 사례가 나타나기도 했다.
▲생물다양성 위험 완화를 위한 우선순위 지역. 극한 폭염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고, 동시에 멸종위기종이나 많은 척추동물이 서식하기 때문에 보전 정책을 가장 먼저 시행해야 하는 지역을 말한다. 전 세계 400개의 우선 순위 지역은 국가 단위 바로 아래의 행정 수준(우리나라의 시도, 미국의 주 등)으로 표시됐다. 한국의 전남광주 지역도 상위 400개 지역에 들어가는 것으로 표시돼 있다. (자료=Nature Climate Change, 2026).
한편, 미국 코네티컷 대학의 코리 머로우 교수는 지난해 미국 '국립과학원 회보(PNAS)'에 발표한 논문에서 2024년 한 해 동안 전 세계 척추동물 6종 중 1종이 기록적인 고온에 노출됐고, 이는 종의 생존 확률을 누적적으로 저하시키는 '멸종 부채(extinction debt)'를 유발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멸종 부채는 '현재는 살아 있지만 미래의 멸종이 이미 예정된 상태'를 의미한다. 즉, 현재는 개체가 남아 있지만 서식지 파괴나 기후변화 등으로 인해 장기적으로는 멸종이 거의 확정된 상태를 의미한다.
사람들은 기후변화를 '나중의 문제' 혹은 '먼 나라의 이야기'로 치부해 왔다. 하지만 폭염으로 멸종 부채가 쌓이고, 생태계가 파괴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인간에게 되돌아오게 된다. 꽃가루받이를 돕는 곤충이 사라지면 식량이 부족해지고, 산림이 죽으면 공기가 탁해지고 산사태 등 재해는 더욱 빈번해질 수밖에 없다.
생태학자들은 “인간이 촉발한 기온 상승이 야생을 죽이고, 그 죽음이 다시 인간의 삶을 위협하는 이 악순환을 끊기 위해 우리는 지금 당장 행동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연이 살 수 없는 지구에서 인간 또한 안전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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