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왼쪽)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지난달 2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재산 분할 파기환송심 2차 변론기일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에게 이혼에 따른 재산분할금으로 9440억 원을 지급하라는 파기환송심 판결이 나오면서, 거액의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지에 재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혼소송이 시작된 지 9년 만에 나온 이번 판단으로 총수 개인의 이혼 소송이 그룹 전체의 지배구조와 주가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SK그룹에 미칠 파장에도 이목이 집중된다.
서울고법 가사1부는 24일 오후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재산분할 등 사건 파기환송심 선고기일에서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재산분할금 9440억 원과 이에 대한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는 2024년 5월 항소심에서 결정된 1조3808억 원보다 31.6% 줄어든 금액이지만, 2022년 12월 1심이 인정한 665억 원과 비교하면 14배가 넘는 규모다.
▲서울고등법원 가사1부는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세기의 재산분할' 파기환송심에서 최 회장이 재산분할금 9440억 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선고했다. 그래픽=김하나 기자
◇ 1심·2심·대법원 엇갈린 판단…쟁점은 SK㈜ 주식
이번 소송의 최대 쟁점은 최 회장이 보유한 SK㈜ 주식이 부부 공동재산으로서 재산분할 대상에 포함되는지 여부였다. 1심은 이 주식을 혼인 전부터 보유한 최 회장의 '특유재산'으로 보고 분할 대상에서 제외했다. 반면 항소심은 혼인 기간과 재산 형성 시점·과정 등을 종합해 노 관장의 기여를 인정하고 해당 주식을 분할 대상에 포함했다. 대법원은 지난해 10월 이혼과 위자료 부분은 그대로 확정하면서도, 노태우 전 대통령 측이 전달한 것으로 알려진 300억 원의 비자금은 설령 실제 존재하더라도 불법 자금인 만큼 노 관장의 재산 형성 기여로 평가할 수 없다고 보고 재산분할 부분만 파기환송했다.
이번 파기환송심 재판부도 항소심과 마찬가지로 SK㈜ 주식을 분할 대상에 포함했다. 재판부는 “해당 주식은 혼인 기간 중 최 회장 명의로 취득한 재산으로 부부 모두가 형성과 가치 유지·증가에 기여했다고 인정된다"며 노 관장의 가사·양육과 그룹 관련 대외 활동이 주식 가치 유지·증가에 기여했다고 판단했다.
다만 대법원 판단에 따라 노태우 전 대통령 측 지원금 300억 원은 노 관장의 기여도 산정에서 제외했고, 혼인 파탄 이전 이미 증여된 재산도 분할 대상에서 빠지면서, 재산분할 비율은 최 회장 3분의 2, 노 관장 3분의 1로 환송 전보다 노 관장 몫이 소폭 낮아졌다.
◇ '16만원이냐 81만원이냐'…주가 산정 기준일 쟁점
분할 대상 재산의 가액을 어느 시점 주가로 산정할지도 핵심 쟁점이었다. 재판부는 재산 가액 산정 기준일을 환송 전 항소심 변론 종결일(2024년 4월 16일)로 정했다. 당시 SK㈜ 주가는 16만 원대였지만, 파기환송심 변론이 종결된 지난달 26일에는 81만 원대까지 오른 상태였다. 재판부는 재판상 이혼 확정 후 재산분할을 청구하더라도 분할 대상 재산과 가액은 원칙적으로 이혼소송의 사실심 변론 종결일을 기준으로 정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들며 “주가 상승에 최 회장의 경영적 기여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볼 수 없고, 이혼이 확정된 후 주식 처분 여부에 따라 발생한 이익이나 손해까지 모두 전 배우자와 나눠야 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다만 재판부는 “이후 주가 상승분을 재산 가액 자체에는 반영하지 않는 대신, 공동재산을 보다 공평하게 나눈다는 취지에서 재산분할 비율을 정할 때 이를 고려했다"라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부부 공동재산의 상당 부분은 혼인 기간 중 형성·취득된 자산"이라며 “쌍방의 협력으로 이룩한 공동재산을 공평하게 분배하기 위해 환송 전 항소심 변론 종결일 이후 최 회장 보유 주식 가치가 큰 폭으로 상승한 점을 참작했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또 SK㈜ 주식이 최 회장의 SK그룹 경영권과 지배력의 기반이라는 점 등을 고려해, 주식을 직접 나누는 현물분할이 아닌 현금 지급 방식으로 재산분할을 명령했다.
◇ 현금 9440억 원, 어떻게 마련하나
▲최태원, 9440억 어떻게 마련하나. 그래픽=김하나 기자
가장 빠르고 확실한 현금 확보 방법은 SK㈜ 주식 매각이다. 최 회장은 SK㈜ 보통주 1297만 5472주(지분율 17.76~17.9%)를 비롯해 SK디스커버리 보통주 2만 1816주(0.12%)와 우선주 4만 2200주(3.22%), SK케미칼 우선주 6만 7971주(3.21%), SK텔레콤 보통주 303주, SK스퀘어 196주, SK실트론 보통주 1970만 4865주(29.4%) 등을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친인척과 계열사 임원 등 우호 지분을 합치면 SK㈜ 지분율은 25.42%에 이른다. 만약 재산분할액 9440억 원 전액을 SK 주식 매각으로 충당한다고 가정하면, 최 회장의 지분율은 15%대로 낮아질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다만 주식 외 다른 재산도 함께 분할 대상이 되는 만큼 실제 지분 감소폭은 이보다 작을 가능성이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보유 중인 SK 주식을 팔아서 지급하는 게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인 건 맞다"며 “그러나 SK㈜는 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지주회사이기 때문에, 최 회장이 대규모 지분을 한번에 내놓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에 SK 주식을 직접 팔기보다 다른 방식으로 현금을 마련할 것이란 예상도 적지 않다. SK텔레콤 등 우량 계열사가 주주 배당을 확대하면 지주사로 유입되는 현금이 늘고, 최대주주인 최 회장에게 돌아가는 몫도 커질 수 있다. 실제로 재산분할 판결 직후 SK텔레콤 주가가 상승한 것도 이런 시나리오에 대한 기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 밖에 최 회장 개인 명의의 SK실트론 지분(29.4%)을 매각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다만 비상장인 SK실트론 매각이 완료될 때까지는 법원이 정한 지연이자를 부담해야 한다는 점은 부담 요인으로 꼽힌다.
재계에서는 SK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받는 방안 쪽에 더 무게가 실린다는 관측이 나온다. 지분을 팔지 않고도 현금을 마련할 수 있어 경영권에 미치는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이유에서다. 한 재계 관계자는 “국세청에 법인세나 상속세를 낼 때 연부연납 제도를 통해 나누어 내듯이, 재산분할금 역시 경영권이 흔들리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일괄 지급이 아닌 연부연납 방식으로 나누어 지급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며 “보통 상속세도 5년 정도에 걸쳐 내는 것처럼, 이 자금 역시 10년에 걸쳐 나누어 내도록 한다면 현실적으로 훨씬 더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 1988년 결혼부터 2017년 이혼소송까지
최 회장과 노 관장은 미국 시카고대 유학 시절 만나 교제한 뒤 1988년 9월 청와대 영빈관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노태우 당시 대통령의 딸과 선경그룹(現 SK그룹) 회장 장남의 결혼으로 세간의 큰 관심을 모았으며, 슬하에 세 자녀를 뒀다. 결혼 생활은 순탄치만은 않아 선경그룹의 1990년대 초 제2이동통신 사업자 선정 당시 정권 특혜 의혹이 제기됐고, 두 사람은 외화 밀반출 의혹으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가 혐의를 벗기도 했다. 파경은 2015년 12월 최 회장이 언론에 보낸 편지를 통해 노 관장과의 10년 넘는 갈등과 혼외 자녀의 존재를 알리며 공개됐다.
최 회장은 2017년 7월 이혼 조정을 신청했고, 처음에는 반대하던 노 관장도 2019년 12월 반소를 제기하며 이혼을 받아들였다. 최 회장 측 법률대리인은 이날 선고 후 “최 회장은 지금까지의 과정에서 많은 분들께 심려를 끼친 것에 대해 송구하게 생각하고 있다"며 “판결에 대한 구체적 입장은 판결문을 면밀히 검토한 뒤 말씀드리겠다"고 밝혀, 재상고 가능성을 열어뒀다. 노 관장 측 변호인단은 취재진의 질문에 별다른 언급 없이 법원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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