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개발한 다목적 무인 차량들. 사진=박규빈 기자
방위사업청은 방위사업기획관리분과위원회를 열고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3세대 다목적 무인 차량(MPUGV, Multi-Purpose Unmanned Ground Vehicle) '아리온 스멧(Arion-SMET)'을 최종 기종으로 심의·의결하고 지난 29일 이를 제작사에 공식 통보했다. 이로써 대한민국 창군 이래 최초의 MPUGV 도입 사업이 마침내 마침표를 찍었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오는 8월 496억 원 규모의 양산 계약이 체결되고 2027년부터 일선 육군 보병 부대와 해병대에 실전 배치될 예정이다. 이번 결정은 병력 급감이라는 국가적 위기 속에서 추진되는 미래형 지상 전투 체계 육군 '아미 타이거(Army TIGER) 4.0'의 핵심 전력이자 향후 군에 도입될 무인화 전력의 운영 표준을 확립했다는 점에서 중대한 전략적 이정표로 평가받는다.
◇ 2016년부터 이어진 획득의 역사…규정 충돌로 벼랑 끝 달렸던 수주전
아리온 스멧의 뿌리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2016년부터 2019년까지 수행한 민군 협력 과제 '보병용 다목적 무인 차량' 사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내 최초로 시작된 이 프로젝트의 결과물을 바탕으로 합동참모본부는 2019년 신규 소요를 결정했다. 이후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자체 개발한 2세대 차량으로 2021년 육군 5사단 시범 운용을 거쳤고, 현재 사업에 선정된 모델은 이를 개량한 3세대 아리온 스멧이다.
그러나 수주전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무인 지상 차량 시장 선점을 위해 맞붙은 현대로템과 2년여 간 갈등을 빚었기 때문이다. 방사청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제안서상 요구 성능 지표를 물리적으로 충족하면 만점을 부여해야 한다"는 절대 평가 방식을 고수했다. 반면 현대로템은 “요구 기준을 초과하는 '실제 최대 성능'에 추가 점수를 줘야 한다"고 맞서며 평가 기준에 대한 팽팽한 이견이 발생했다.
여기에 '무단 반출 논란'이 기름을 부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측이 야전 시험 평가 중 방사청 승인을 얻어 자사 차량을 외부 방산 전시회에 반출하자 현대로템은 “통제된 시험 밖에서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가 조작됐을 가능성이 있다"며 이의를 제기했다.
이에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공식 허가를 거친 투명한 절차였음을 강조하며 반박했다. 연이은 충돌로 현대로템이 일시적인 '사업 보이콧'을 선언하며 도입 일정이 1년 이상 지연되는 파행을 겪었지만 방사청의 중재로 평가에 복귀하며 진흙탕 싸움은 간신히 마무리됐다.
◇ 결정적 승리 요인으로 작용한 '기초 체력'과 '극한의 신뢰성'
방사청의 시험 평가에서 아리온 스멧이 최종 승자로 낙점된 배경에는 전장 환경을 압도하는 기초 제원의 격차와 무결점의 신뢰성이 자리 잡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아리온 스멧과 현대로템의 'HR-셰르파'는 모두 차체 중량 1.8톤급의 6륜 구동(6x6) 전기 모터 기반 차량이지만 세부 설계 철학에서 명확한 급의 차이를 보였다.
가장 큰 격차는 적재 능력에서 생겨났다. 현대로템 HR-셰르파의 최대 화물 적재량은 약 200kg에 그친 반면,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아리온 스멧은 동일 중량임에도 구조적 강성을 극대화해 최대 450~550kg의 적재 능력을 확보했다. 완전 군장을 8명 기준 한 보병 1개 분대의 배낭과 예비 탄약을 통째로 짊어질 수 있고, 필요 시 대전차 유도 미사일이나 박격포탄 수송, 부상자 발생 시 생명을 구하는 '의무 후송(Medevac)' 플랫폼으로의 즉각적인 전환이 가능하다.
기동력 역시 승패를 갈랐다. HR-셰르파는 평지 최대 30km/h, 험지 10km/h에 머물렀지만 아리온 스멧은 포장 도로에선 43km/h, 비포장 험지 34km/h의 속도를 기록했다. 산악 지형이 70%인 한반도 환경에서 3배 이상 빠른 험지 돌파 능력은 생존성을 담보하는 핵심 요소다. 항속거리 또한 1회 충전 시 100km 이상 주행이 가능함을 증명했다. 무엇보다 아리온 스멧은 험지 주행·원격 사격 등 모든 야전 시험 평가 과정에서 기계적 고장이나 소프트웨어 오류를 일으키지 않는 '무고장'을 달성하며 군 수뇌부의 신뢰를 얻고 높은 평가를 받았다.
◇ 98% 국산화와 진화하는 AI…한화에어로스페이스, 지상 무인체계 전 분야 석권
아리온 스멧이 지닌 또 다른 강력한 무기는 원격 사격 통제 체계(RCWS, Remote Controlled Weapon Station)를 포함해 핵심 구성품의 98%를 국산화했다는 점이다. 외산 부품 의존도가 낮아 전시 상황에서 안정적인 후속 군수 지원과 즉각적인 유지·보수가 가능하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규제에서도 자유롭다는 이점이 있다.
차량에 탑재된 딥러닝 기반 AI 센서는 전술적 조력자의 역할을 극대화한다. 적의 기습 사격 시 외부에 장착된 'AI 음향 센서'가 총탄의 초음속 충격파를 수집, 1초 이내에 매복 위치를 특정하고 RCWS의 총구를 지향한다. 이때 차량의 장갑판은 보병들의 전술적 방패로 기능한다. 기계의 오판을 막기 위해 타격 시 반드시 지휘관의 사격 승인을 거치는 '인간 개입(Human-in-the-Loop)' 시스템을 적용했고 아군을 따라다니는 '선행 병사 추종 자율 주행 모드'를 통해 전투원의 임무 몰입도를 높였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이번 MPUGV 뿐만 아니라 국방 로봇 전 분야에서 절대적인 입지를 굳히고 있다. 우리 군 최초의 국방 로봇 전력화 사례인 '폭발물 탐지 제거 로봇'을 현재 양산 중이고 국방과학연구소(ADD) 주관으로 전차·장갑차보다 먼저 적진에 투입되는 '무인 수색 차량(USV, Unmanned Surveillance Vehicle)'의 체계 개발을 올해 완료할 예정이다.
또한 정찰 드론과 연동해 장애물을 개척하는 'AI 기반 유무인 복합 한국형 공병 전투 차량(K-CEV, K-Combat Engineer Vehicle)'과 국방기술진흥연구소가 주관하는 '유·무인 복합 화생방 정찰차(드론·다족 보행 로봇 연계)' 사업까지 시제 업체로 참여 중이다. 사실상 국내 군용 UGV 플랫폼의 대표 기업으로서 전 생태계를 주도하고 있는 셈이다.
◇ 적 수중에 떨어져도 아군 정보 지킨다…수주전 판가름 낸 '침입자 모니터링 특허'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3세대 다목적 무인 차량 '아리온 스멧'에 적용된 '무인 시스템에 침입한 침입자를 모니터링 하는 장치 및 방법' 기술 개념도. 그래픽=제미나이
특히 이번 획득전에서 군 수뇌부의 이목을 사로잡은 결정적 요소는 하드웨어 제원을 넘어선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독보적인 '소프트웨어 보안(사이버전) 체계'였다는 분석이다. 무인 지상 차량은 작전 중 적군에게 나포되거나 통제권을 피탈당할 경우 아군의 통신망과 핵심 정보가 통째로 넘어가는 약점을 지닌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이를 원천 봉쇄하기 위해 자사가 등록한 '무인 시스템에 침입한 침입자를 모니터링 하는 장치 및 방법' 기술을 아리온 스멧에 적용했다. 일종의 기만 전술인 '하니팟(Honey-pot)' 시스템이다.
만약 적군이 나포한 차량이나 통제 장치에서 비밀번호를 틀리거나, 인가되지 않은 외부 MAC 주소나 IP/포트로 접속을 시도할 경우, 시스템은 접속을 완전히 차단하는 대신 의도적으로 '페이크 사이트(Fake Layer)'로의 진입을 허용한다. 적군 입장에서는 윈도우나 리눅스 운영 체제의 루트나 관리자 계정을 해킹해 시스템 장악에 성공한 것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심지어 적이 기만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스크린에는 주행·임무가 계속 진행되고 있다는 가짜 운용 영상까지 띄운다.
적이 가짜 사이트 내부를 뒤지며 안도하는 사이 아리온 스멧 내부의 '역추적 모듈'은 은밀히 작동한다. 침입자의 △공간적 경유·위치 △체류 시간 △접속 IP·URL 등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해 아군 지휘소 스크린에 시간 순서대로 띄운다. 적의 탐색 의도와 출발점(네트워크 소스)을 역추적해 파악하는 것이다.
충분한 정보가 수집되거나 적이 가짜 계층을 넘어오려 시도하면 마지막 단계인 '고립화 모듈'이 가동된다. 시스템 로직이나 운용자의 원격 비상 삭제(Trigger) 명령에 따라 통제 차량·무인 차량 기록기·주요 전자 장비(LRU, Line-Replaceable Unit)에서 일제히 '비상 삭제 백그라운드 서비스'가 실행된다. 이 순간 운영 체제를 제외한 무인기 내부의 모든 실행 파일과 군사 데이터는 영구 삭제되며 시스템은 초기화된다. 스스로 적을 기만하고 기술 유출을 막는 '지능형 보안 무기'로서의 진가를 입증한 셈이다.
◇단품 판매 이상의 'MUM-T 턴키 수출'…미래 강군 위한 과제
첨단 무인 체계의 글로벌 시장은 폭발적인 성장을 앞둔 '황금 어장'이다. 글로벌 시장 조사 업체들에 따르면 전 세계 군용 UGV 시장 규모는 2024~2025년 약 19~39억 달러 수준에서 2030년대 중반 최대 121억4000만 달러(17조4852억 원)까지 연평균 14% 이상의 가파른 팽창을 거듭할 것으로 전망된다.
글로벌 시장에서의 검증도 이미 궤도에 올랐다. 2023년 한국 무인 차량 최초로 미국 하와이에서 미 해병대와 육군 지상차량체계연구소(GVSC)의 까다로운 해외 비교 성능 시험(FCT, Foreign Comparative Testing)을 통과하며 기술력을 입증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미군의 피드백을 즉각 수용해 적재량을 900kg으로 늘리고 항속거리를 290km로 연장한 4세대 파생 모델 '그룬트(GRUNT)'를 단기간에 개발해 냈다. 이를 바탕으로 2028년까지 차륜형·궤도형을 아우르는 소형·중형·대형 무인 차량 라인업을 완성한다는 구상이다.
이는 K-방산의 수출 패러다임 변화를 예고한다. 한화는 지난 루마니아 'BSDA 2026' 방산 전시회에서 지휘 장갑차 '타이곤'의 통제하에 무인 차량 '그룬트'가 선행 정찰을 수행하는 유·무인 복합(MUM-T, Manned-unmanned teaming) 체계를 성공적으로 시연했다. 과거 무기체계 '단품' 중심의 세일즈에서 탈피해 무인 차량이 따낸 좌표를 지휘 장갑차가 수신하고 K-9 자주포가 타격하는 '초연결 네트워크 중심전 패키지'를 턴키(Turn-key) 형태로 수출하는 고부가가치 영업이 가능해진 것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내달 양산 계약 직후 신속한 양산 체계를 가동해 군의 전력 공백을 최소화하겠다는 방침이다. 다만 아리온 스멧이 실전에서 성능을 온전히 내기 위해서는 전자전(EW, Electronic Warfare) 환경을 극복할 수 있는 '군 전용 대용량 광대역 주파수 통신망' 구축, AI 자율 교전에 대비한 '작전 교리와 교전 수칙(ROE, Rules of Engagement)'의 법적 명문화, 그리고 외부 민간 IT 기술을 자유롭게 이식할 수 있는 개방형 시스템 아키텍처(MOSA, Modular Open Systems Approach)의 도입이 시급해 관련 후속 조치도 뒤따라야 한다는 평가도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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