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계 대미투자 전망
한미 간 3500억달러 규모 대미투자가 실행 단계에 들어선 가운데 통상 사령탑의 갑작스러운 공백을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직접 메우고 있다.
김 장관은 미국을 긴급 방문해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과 2000억달러 규모 전략투자 프로젝트의 막판 쟁점을 조율했다. 이미 투자가 확정된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그룹, 한화 등의 미국 사업이 당장 영향을 받을 가능성은 낮지만 앞으로 결정할 추가 투자와 한미 정부 간 프로젝트의 조건을 놓고 재계도 협상 결과를 주시하고 있다.
19일 정부와 업계 등에 따르면, 김 장관은 미국 워싱턴DC에서 러트닉 장관과 만나 대미 전략투자 프로젝트 추진 방향 등을 논의했다. 정부는 이르면 이달 말, 늦어도 9월 초 첫 프로젝트 발표를 목표로 미국 측과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김 장관은 미국 도착 직후 “막판이 되면서 실무적으로 다양하고 구체적인 쟁점들이 나오고 있다"며 이를 정리하기 위해 미국을 찾았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미국이 대미투자 이행 속도를 높이라고 압박하고 있다는 일각의 관측에는 자신은 직접 압박받은 적이 없다면서도 투자에 속도를 낼 필요성에는 공감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 3500억달러 이제 실행 단계…관건은 '첫 단추'
한국이 미국과 합의한 3500억달러 규모 대미투자는 크게 2000억달러 규모 전략투자와 1500억달러 규모 조선협력으로 나뉜다.
관심은 2000억달러 전략투자의 첫 프로젝트다. 정부는 에너지 분야를 중심으로 첫 투자사업을 미국 측과 협의해왔다. LNG와 발전 등 에너지 인프라가 후보로 거론돼왔지만 아직 사업이 공식 확정되지는 않았다.
첫 프로젝트가 중요한 것은 이후 투자사업의 기준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는 미국 측의 전략적 필요뿐 아니라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상업적 합리성'을 강조하고 있다.
한미가 첫 사업에서 투자구조와 수익 배분, 위험 부담 등을 어떤 방식으로 정하느냐에 따라 이후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국내 기업들의 셈법도 달라질 수 있다.
◇ 삼성·SK, 기존 투자보다 관심은 '후속 투자'
반도체 업계는 이미 미국에서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텍사스주 테일러를 중심으로 첨단 반도체 생산기지를 구축하고 있으며 SK하이닉스도 인디애나주에 AI 메모리용 첨단 패키징 생산기지를 조성하고 있다.
따라서 통상교섭본부장 교체가 이미 집행 중인 사업을 직접 흔들 가능성은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많다.
재계의 관심은 오히려 앞으로의 추가 투자다. AI 데이터센터 확대로 미국 내 첨단 반도체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데다 미국 정부 역시 자국 내 반도체 공급망 강화를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산업부는 최근 2000억달러 전략투자 1호 후보로 한국 반도체 기업의 미국 투자가 논의되고 있다는 보도에는 사실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따라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추가 투자는 한미 전략투자 1호 사업과 분리해 볼 필요가 있다.
◇ 현대차·철강, 이미 실행 단계…통상조건이 변수
현대자동차그룹도 미국 현지 생산능력 확대와 공급망 구축을 진행하고 있다.
자동차 생산시설뿐 아니라 현대제철을 중심으로 미국 현지 철강 생산기지를 구축하고 포스코가 참여하는 방안도 추진되고 있다. 자동차부터 철강까지 미국 내 공급망을 확대하는 전략이다.
이들 프로젝트 역시 이미 상당 부분 투자 방향이 구체화돼 통상교섭본부장 교체 자체가 사업을 중단시킬 가능성은 낮다.
다만 미국 내 생산을 크게 확대하는 기업일수록 향후 관세와 투자 인센티브, 현지 생산 조건의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한미 협상의 결과가 기존 투자보다 앞으로 결정할 투자 규모와 시기를 좌우할 가능성이 큰 이유다.
◇ 한화·HD현대, 1500억달러 조선협력 현실화 주목
조선업은 정부 간 협상 결과에 더욱 민감한 분야다.
3500억달러 가운데 1500억달러가 한미 조선협력에 배정돼 있어 한화와 HD현대 등 국내 조선사에는 미국 시장을 확대할 기회가 열려 있다.
한화는 이미 미국 필라델피아 필리조선소를 인수한 데 이어 대규모 추가 투자를 통해 생산능력을 확대하고 미국 함정·상선 시장 진출을 추진하고 있다.
HD현대 역시 미국 조선업계 및 현지 기업들과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앞서 한미 양국은 워싱턴DC에 조선협력센터를 설치하는 등 조선협력 실행을 위한 정부 차원의 기반 구축에도 들어갔다. 김 장관과 러트닉 장관도 지난 5월 대미 전략투자와 함께 한미 조선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조선은 미국 해군 함정과 상선 발주, 현지 조선소 투자, 공급망 구축 등 정부 정책과 직접 연결되는 부분이 많다. 1500억달러라는 큰 틀이 실제 기업의 수주와 투자로 어떻게 배분될지가 하반기 조선업계의 주요 관심사다.
현재까지 상황만 놓고 보면 여 전 본부장의 갑작스러운 면직이 국내 기업의 미국 투자를 직접 중단시키는 상황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재계에서는 기존 미국 투자보다 앞으로 결정해야 할 사업의 조건을 주목하는 분위기다. 2000억달러 전략투자의 첫 사업을 시작으로 1500억달러 조선협력, 기업별 추가 미국 투자까지 상당한 규모의 자금 집행 여부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이미 투자 결정이 내려져 진행 중인 사업이 통상교섭본부장 교체로 당장 영향을 받을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이라며 “기업 입장에서는 앞으로 추가 투자를 결정할 때 관세와 인센티브를 비롯한 사업 조건이 어떻게 정리되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 통상 전문가는 “장관이 직접 미국을 찾아 협상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에서는 당장의 협상 공백을 크게 볼 필요는 없다"면서도 “대규모 투자는 장기간 진행되는 만큼 후임 통상교섭본부장 인선 이후에도 협상 기조와 정부 간 채널의 연속성을 유지하는 것이 기업의 투자 판단에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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