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방문한 홈플러스 인천청라점 곳곳에 비어있는 입점업체 매장 모습. 사진=백솔미 기자
“홈플러스가 살아야 우리도 살 수 있습니다."
26일 기자가 찾은 홈플러스 인천청라점은 매장 안으로 들어갈수록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1층 출입구 주변에는 일부 입점업체가 문을 열고 손님을 맞고 있었지만, 지하 1·2층으로 내려가자 영업을 중단한 매장들이 다수 눈에 띄었다. 이미 짐을 뺀 업체부터 영업 중인 매장에서 어두운 표정으로 자리를 지키는 점주까지 홈플러스 영업 재개 이후에도 현장의 정상화는 쉽지 않아 보였다.
홈플러스는 이달 13일부터 전국 104개 점포 가운데 67개 점포의 영업을 재개했다. 남은 37개 점포는 폐점 절차를 밟고 있다. 다음달 4일 회생계획안 가결 시한을 앞두고 있는 만큼 67개 점포의 영업 정상화 여부와 폐점을 앞둔 37개 점포 입점업체의 실질적 지원 방안이 과제로 남아 있다.
하지만 홈플러스 영업 재개가 곧 입점 점포의 매출 회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인천청라점에서 10년 이상 의류 매장을 운영한 한 점주는 “5월부터 정산이 밀렸다"며 “(홈플러스가) 영업을 재개했지만 (우리 매장이) 매출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9월 4일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이렇게 일하러 나오는 것도 '자리 지키기'"라며 “혹시라도 매장을 빼버리면 향후 정산에서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에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토로했다.
액세서리 업종 점주의 사정도 다르지 않았다. 이 점주는 “이제는 지칠 대로 지쳤다. 답이 보이지 않아 매일이 고통스럽다. 근무 시간도 하루 13시간을 넘어가고 있고, 아르바이트생도 3개월 전부터 고용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은 자리를 지키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전날인 25일 중소벤처기업부가 서울 영등포구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수도권지원센터에서 개최한 홈플러스 협력·입점업체 간담회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전해졌다.
입점·협력업체들은 홈플러스의 회생이 단순히 대형 유통기업 하나를 살리는 문제가 아니라 이곳을 판로로 삼아온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이 간담회에서 한 입점업체 대표는 “홈플러스 매출이 전체 매출의 40%를 차지한다"며 “20년 동안 영업해왔지만 홈플러스 회생절차가 길어지면서 18억원의 자금이 묶였다"고 전했다. 이어 “금융기관의 이자 부담까지 커지고 있어 유동성 문제가 심각하다"며 “결국 매출을 회복하려면 홈플러스가 정상화돼야 한다"고 호소했다.
납품업체들은 대금 미정산뿐 아니라 판로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한 업체 관계자는 “당장 대금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형 유통 플랫폼 자체가 사라지면 장기적으로 판매처를 잃는 손실이 더 크다"며 “홈플러스 회생을 대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연결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생존 문제로 봐달라"고 당부했다.
홈플러스 전용 상품과 재고도 업체들의 부담을 키우고 있다. 다른 유통채널에서는 판매하기 어려운 전용 재고가 쌓이면서 헐값에 처분해야 하는 상황까지 발생하고 있는 실정이다.
▲25일 열린 홈플러스 협력·입점업체 간담회에서 발언 중인 이병권 중기부 제2차관. 사진=백솔미 기자
문제는 정부가 각종 홈플러스 입점·협력업체 금융지원책을 내놓고 있지만 사실상 대출이 전부이고, 이마저도 대상에서 배제되거나 기존 부채 때문에 추가 대출이 어려운 경우가 많아 정작 당사자들에게는 별 도움이 안된다는 것이다.
한 입점업체 대표는 “버티고 버티다 지원을 신청했는데 기존 대출과 똑같은 잣대를 적용하더라. 이게 무슨 지원 정책인가 싶어 답답했다"며 “홈플러스에서 받지 못한 대금을 기준으로 실질적인 지원이 이뤄져야 업체들의 숨통이 트일 것"이라고 했다.
서울의 한 홈플러스 점포에서 약국을 운영하다가 폐업한 약사도 “긴급지원을 신청했지만 지원대상에서 배제됐다"며 “약사가 돈을 잘 번다고 여기는 것 같은데 나는 이 약국을 내기 위해 7억원을 투자했고 지금도 빚이 3억원 남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특히 입점업체들은 영업을 재개한 67개 점포와 폐점을 앞둔 37개 점포를 구분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영업 재개 점포는 매출 회복을 통해 정상화를 기대할 수 있지만 폐점 예정 점포의 입점업체는 새로운 영업처를 구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지원 방향 자체가 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이날 간담회에서 김병국 홈플러스 입점점주협의회 회장은 “우리에게는 재난에 준하는 상황이다. 67개 점포와 37개 점포는 처한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고 설명했다.
폐점 예정 업체들은 정부의 '희망리턴패키지' 역시 현실적인 대안이 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장기간 매출 감소와 자금난을 겪은 업체들은 폐점 이후 새로운 사업장을 마련할 초기 자금조차 부족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한 카페 운영자는 “희망리턴패키지는 다시 일어서라고 하는데 지금은 다시 시작할 돈도 없다"며 “대출을 받아도 갚을 여력이 없는 상황"이라고 힘들게 입을 뗐다.
이 같은 현장 요구에 중기부는 기존 지원책을 다시 살펴보겠다는 입장이다. 이병권 중기부 제2차관은 이날 간담회에서 입점 소상공인의 융자 기준을 다시 살펴보고 대출 금리를 낮출 수 있는지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폐점 예정 업체에 대해서는 희망리턴패키지를 재검토하는 등 맞춤형 지원이 필요하다는 현장 의견에도 공감했다.
현재 중기부는 홈플러스 협력·입점업체를 대상으로 소상공인 긴급경영안정자금과 중소기업 긴급경영안정자금을 운영하고 있다.
소상공인 대상 500억원 규모 전용자금과 중소기업 대상 400억원 규모 전용 트랙을 마련해 금리·한도·지원 요건 등을 우대·완화했다. 기술보증기금도 긴급경영안정보증을 통해 기존 보증의 만기 연장과 신규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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