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서울 강남구 한 부동산 중개업소에 붙은 매물 정보. 연합뉴스
정부의 세제·대출 규제 이후 서울 아파트 시장의 상승 중심축이 강남권에서 노원·도봉·성북 등 외곽 중저가 지역으로 이동하고 있다. 고가주택이 몰린 강남·서초에서는 세 부담과 정책 불확실성으로 하락 거래가 이어지는 반면, 대출을 상대적으로 많이 받을 수 있는 15억원 이하 중소형 아파트에는 실수요가 몰리며 저가 매물이 빠르게 소진되는 모습이다.
4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8월 다섯째 주(지난달 31일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전주보다 0.22% 올랐다. 상승폭은 전주 0.29%에서 0.07%포인트 줄었지만 서울 안에서는 지역별 흐름이 뚜렷하게 엇갈렸다.
강남구 아파트값은 한 주간 0.41% 떨어졌다. 전주 하락률 0.11%보다 낙폭이 0.30%포인트 확대됐다. 압구정·대치동 주요 재건축 단지를 중심으로 가격을 낮춘 매물이 거래된 영향이다.
서초구도 반포·잠원동을 중심으로 0.23% 하락해 전주(-0.05%)보다 내림폭이 커졌다. 강남·서초는 정부의 세제개편안 발표 이후 4주 연속 약세를 이어갔다. 송파구 상승률도 0.01%에 머물러 사실상 보합에 가까워졌다.
세제개편안이 일부 수정됐지만 고가주택의 실제 보유세 부담을 결정할 핵심 내용과 입법 과정의 불확실성이 남으면서 매도자와 매수자 모두 관망하는 분위기가 강해진 것으로 풀이된다.
반면 서울 외곽에서는 상승세가 계속됐다. 성북구가 정릉·하월곡동 대단지와 중소형 아파트를 중심으로 0.54% 올랐고, 중랑구도 신내·상봉동 역세권 단지 위주로 0.52% 상승했다. 노원구는 상계·월계동 중심으로 0.50%, 강북구는 0.45% 올랐다. 강서구(0.45%), 관악구(0.43%), 동대문구(0.42%), 구로구(0.41%)도 서울 평균을 크게 웃돌았다.
KB부동산 조사에서도 같은 흐름이 나타났다. 8월 다섯째 주 서울 아파트값이 0.23% 오른 가운데 노원구는 0.63% 상승해 서울에서 가장 높은 오름폭을 기록했다. 도봉구도 0.45% 올랐다. 반면 강남구는 0.04% 떨어지며 3주 연속 하락했다.
15억원까지 '대출 절벽' 피해…중저가 단지로 수요 이동
서울 외곽의 상승세에는 가격대별로 차등 적용되는 주택담보대출 한도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수도권 주택담보대출은 집값이 15억원 이하이면 최대 6억원까지 받을 수 있지만 15억원을 초과하면 한도가 4억원으로 줄어든다. 25억원을 넘으면 2억원까지 낮아진다.
같은 서울에서도 비교적 적은 자기자본으로 접근할 수 있는 15억원 이하 주택에 실수요가 집중되는 배경이다. 특히 대출 의존도가 높은 30대와 신혼부부 수요가 중소형·역세권·대단지로 움직이면서 가격이 낮은 매물부터 소진되고 있다.
실제 노원구 공릉동 태릉해링턴플레이스 전용면적 84㎡는 지난달 17일 14억4500만원에 거래됐다. 지난 7월 거래가 12억8000만원보다 1억6500만원 높은 가격이다.
성북구 종암동 종암SK뷰2차 전용 59㎡도 지난달 7일 직전 거래보다 1억5000만원 오른 11억2000만원에 손바뀜했다. 길음동 길음뉴타운8단지래미안 전용 59㎡는 지난 6월 14억원에 거래돼 신고가를 기록했다. 지난해까지 10억원 이하에서 거래되던 주택형이 반년 만에 15억원 선에 근접한 것이다.
중저가 단지가 밀집한 지역에서는 15억원이 새로운 가격 상단으로 작용하는 '키 맞추기'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저가 매물이 빠진 뒤 집주인들이 대출 한도가 줄어드는 15억원 직전까지 호가를 높이고, 매수세는 대출 활용이 쉬운 중형 주택형에 집중되는 구조다.
도봉구의 한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방학·쌍문동은 대단지와 학교가 밀집했지만 지하철 접근성이 떨어지고 노후 단지가 많아 서울에서도 가격이 상대적으로 낮았다"며 “최근 전셋값이 오르자 3억~6억원대 매물을 찾는 실수요자가 매매로 돌아서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재건축 추진과 우이신설선 방학역 연장 기대까지 겹치면서 저가 매물이 빠르게 소진되고 있다"며 “아직은 실거래가보다 호가가 먼저 오르는 단계지만 역세권 예정 단지와 학군이 좋은 대단지를 중심으로 매수 문의가 확실히 늘었다"고 전했다.
노원구에서는 학군과 생활 인프라를 갖춘 중소형 단지가 상승세를 주도하고 있다. 노원구의 한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노원은 4·7호선과 중계동 학원가, 대형마트·병원 등이 잘 갖춰져 있어 젊은 부부와 자녀를 둔 실수요자의 선호가 꾸준하다"며 “전세 매물이 줄고 보증금이 오르자 전세를 구하던 수요까지 매매로 돌아서면서 상계·중계·월계동의 중소형 아파트부터 저가 매물이 소진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노원구 안에서도 모든 단지가 같은 폭으로 오르는 것은 아니라는 게 현장의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재건축과 창동 일대 개발 기대감으로 집주인들이 매물을 거두거나 호가를 높이고 있다"면서도 “노후 단지가 많고 도심 출퇴근 시간이 길다는 한계가 있어 역세권·학군·대단지 여부에 따라 가격 차별화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성북 등 4개구 누적 상승률 10% 돌파
올해 누적 상승률에서도 외곽 지역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지난달 말까지 서울에서 아파트값 누적 상승률이 10%를 넘어선 곳은 성북구(12.44%), 구로구(10.24%), 강서구(10.10%), 서대문구(10.02%) 등 4곳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는 송파구 한 곳뿐이었다. 노원·동대문·관악·영등포구 등도 9%대 후반까지 올라섰다.
반면 강남 3구의 평균 상승률은 지난해 같은 기간 10.77%에서 올해 3.45%로 낮아졌다. 지난해 강남과 한강변이 먼저 급등한 뒤 규제가 강화되자 상대적으로 가격이 덜 오른 지역이 뒤따라 상승하는 순환매 흐름이 나타난 셈이다.
정비업계 한 관계자는 “강남권을 겨냥한 세제·대출 규제가 서울 전체의 주택 수요를 없앤 것이 아니라 실수요자가 접근할 수 있는 가격대로 이동시킨 측면이 있다"며 “대출을 상대적으로 많이 받을 수 있는 15억원 이하 중소형 아파트가 많은 노원·도봉·강북·성북으로 수요가 몰리면서 저가 매물이 소진되고 호가도 따라 오르는 풍선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전세난에 “차라리 사자"…강북 중위가격 10억원 돌파
전세가격 상승도 외곽 아파트 매매가격을 밀어 올리는 요인이다. 같은 기간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0.21% 상승했다. 강남구(-0.13%)와 서초구(-0.10%)는 하락했지만 성북구와 강북구는 각각 0.38%, 노원구는 0.37% 올랐다.
입주 물량 감소와 집주인의 실거주 확대 등으로 전세 매물이 줄어든 가운데 보증금과 월세가 함께 오르자 일부 임차 수요가 매매시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높은 전세보증금을 마련하느니 대출을 더해 집을 사겠다는 수요가 중저가 지역으로 유입되는 구조다.
KB부동산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강북 14개구의 아파트 중위 매매가격은 10억167만원으로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처음 10억원을 넘어섰다. 전월 9억8750만원보다 한 달 만에 1417만원 올랐다.
다만 외곽 상승세가 장기간 이어질지는 지켜봐야 한다. KB부동산의 서울 매수우위지수는 78로 전주보다 0.9포인트 떨어졌다. 지수가 100을 밑돌면 집을 사려는 사람보다 팔려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다. 가격이 빠르게 오르고 있지만 매수자가 경쟁적으로 추격하는 전면적 상승장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기준금리가 연 3.00%까지 오른 점도 대출 비중이 큰 외곽 시장에는 부담이다. 단기간 오른 호가와 실제 거래가격 사이의 간극이 커지고 이자 부담까지 늘어나면 실수요자의 추격매수가 약해질 수 있다.
강남권 가격 조정이 서울 전역의 안정으로 이어질지, 상대적으로 가격이 낮은 외곽 지역의 추가 상승을 부르는 풍선효과로 굳어질지가 향후 서울 주택시장의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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