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 증권가 전경. [사진=연합뉴스]
세 차례 상법 개정으로 주주 견제가 강해지면서 기업 자금조달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유상증자 대신 지분 희석이 없는 주가수익스왑(PRS)과 신종자본증권을 찾는 기업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 신용평가 3사는 이들 수단이 장부상 부채를 줄여 보이게 할 뿐, 실질 상환부담은 기업에 그대로 남는다고 경고했다.
상법 개정에 높아진 유상증자 문턱
13일 신용평가업계에 따르면, 상법 개정 이후 유상증자처럼 지분 희석이 생기는 자본거래는 절차적 부담이 커졌다. 지난해 7월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에 '주주'가 추가됐고, 올해 집중투표제 의무화와 자기주식 소각 의무화가 잇달아 시행되면서다. 이에 따라 이사회는 거래조건의 공정성을 입증해야 한다.
강원구 NICE신용평가 수석연구원은 “유상증자 대신 신종자본증권이나 PRS 등 기존 주주의 지분 희석을 최소화할 수 있는 조달수단에 대한 선호가 높아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마트·신세계푸드의 포괄적 주식교환은 달라진 분위기를 보여주는 사례다. 이마트가 헐값에 신세계푸드를 완전 자회사로 편입한다는 주주 반발이 나오자 일반주주 의견을 반영해 특별위원회를 다시 설치했다. 이후 신세계푸드 주식매수청구가격은 주식교환 기준가액 대비 30% 할증한 수준으로 올렸다.
국내 기업은 원래 유상증자 의존도가 낮았다. NICE신용평가에 따르면 2020~2025년 비금융기업의 유상증자 조달액은 은행대출 순증과 회사채 순조달을 합한 금액의 평균 9.4%였다. 같은 기간 미국은 24.5%였다.
장부엔 '자본'과 '매각', 실질은 빚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일반기업의 신종자본증권 연간 발행액은 2023년까지 2조원대 이하였다. 그러다 2024년 6조9000억원, 지난해 6조3000억원으로 뛰었고, 지난해 말 잔액은 15조2000억원(80개사)이다. 신종자본증권은 회계상 자본으로 잡힌다. 이 때문에 발행 기업의 평균 부채비율은 182%로 낮아지는 추세다. 그러나 신종자본증권을 부채로 재분류하면 209%로 오히려 계속 오르고 있다.
▲일반기업 신종자본증권 비중 추이/일반기업 부채비율 추이 [자료=한국기업평가]
김정현 한국기업평가 전문위원은 “신종자본증권 의존도가 커지면서 자본의 질적 저하가 심화하고 있는 점도 신용위험 측면에 부정적인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콜옵션 행사시점이 5년 미만인 물량이 67%에 달하고, 올해와 내년에만 8조8000억원어치의 조기상환 시점이 몰려 있다.
PRS는 이보다 더 빠르게 커지고 있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PRS 계약잔액은 지난달 기준 20조원을 넘어섰다. PRS는 형식상 주식 매각이지만 주가 하락 위험은 기업이 진다.
정익수 한국신용평가 수석애널리스트는 “표면상 주식 매각이나 증자로 보이더라도 기초자산 가격 변동위험이나 투자자 원금 회수위험이 여전히 기업에게 귀속되어 있다면 경제적 실질은 부채에 가까울 수 있다"고 밝혔다.
위험은 이미 현실화하고 있다. 그룹별 누적 발행액은 SK 7조3000억원, 한화 3조6000억원, 포스코 2조5000억원 순이다. SK그룹의 PRS 관련 파생상품부채는 지난해 말 7726억원에서 올해 6월 말 2조3000억원으로 불었다. 계약잔액의 32.3%에 해당한다. 배터리·에너지 관련 기초자산 주가가 내려간 영향이다.
회계처리 재정비가 변수…“합리적 유상증자 수용해야"
PRS를 매각으로 볼지 차입으로 볼지를 두고 금융감독원과 한국회계기준원의 기존 견해는 엇갈려 왔다. 회계기준원은 지난해 12월 국제회계기준 해석위원회(IFRS IC)에 공식 질의했다. 금융당국은 가이드라인 마련 등 후속 검토를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차입거래로 재분류되면 부채비율과 이자보상배율은 즉시 나빠진다. 신용등급이 떨어지면 조기정산을 요구하는 '등급 트리거'가 붙은 계약이라면 유동성 압박도 겹칠 수 있다.
정 수석애널리스트는 “PRS를 단순히 만기 연장 가능성이 높은 거래로 취급하기보다, 일정 조건에서 단기자금소요로 전환될 수 있는 잠재 상환부담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다만 회계 변경 자체를 곧 신용도 하락으로 보지는 않았다. 그는 “회계처리 변경은 새로운 위험의 발생이라기보다 기존에 내재해 있던 위험의 가시화"라고 덧붙였다.
신평사들은 보통주 자본확충이 필요하다는데 입을 모았다. 김 전문위원은 “신종자본증권 발행 이외에 이익유보와 유상증자를 통한 보통주 자본확충을 병행하여 자본의 질적 저하를 방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한국기업평가는 최근 발행 여건 변화를 반영해 신종자본증권 자본인정기준 일부 완화도 검토하고 있다.
강 수석연구원은 “유상증자를 통한 자기자본 조달이 위축될 경우 차입이나 구조화금융 등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져 기업의 상환부담과 재무위험이 확대될 수 있다"고 짚었다. 이어 “유상증자에 대한 일방적인 부정적 인식이 불식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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