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부산 부산진구 동의과학대학교 운동장에서 열린 '2026 DIT 폴 인 북스(Fall in Books)' 행사에 참여한 학생 100여 명이 빈백에 앉아 2시간 동안 스마트폰을 잠시 내려놓고 가을 날씨를 만끽하며 독서하고 있다.
한국에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독서 열풍이 확산하자 주요 외신이 이를 비중 있게 조명했다. 그러나 정작 책을 읽는 행위보다 관련 상품을 구매하거나 독서 행사에 참여하는 데 더 큰 관심을 보이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스마트폰과 인공지능(AI)에 익숙한 젊은층이 독서를 '힙하다'고 받아들이면서 책이 지식 습득의 수단을 넘어 자신의 취향과 정체성을 표현하는 새로운 소비문화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이러한 열풍이 실제 독서 습관으로 이어질지, 일시적인 유행에 그칠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30일 블룸버그통신은 '한국 젊은 세대의 최신 유행은 독서'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온라인 환경에서 성장한 한국의 젊은 세대가 스마트폰을 끊임없이 들여다보는 습관에서 벗어나기 위한 수단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독서가 단순한 취미를 넘어 사회적 활동이자 미적 취향, 나아가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단위 : %, 괄호는 증감율(자료=문체부)
◇성인 독서율은 하락하는데 20대만 상승…'텍스트힙' 열풍
실제로 한국의 전체 성인 독서율은 감소하는 추세지만 20대를 중심으로는 정반대의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 3월 발표한 '2025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성인의 연간 종합독서율은 38.5%로 집계됐다. 이는 직전 조사인 2023년보다 4.5%포인트 하락한 수치다.
성인의 연간 평균 독서량도 2023년 3.9권에서 지난해 2.4권으로 1.5권 감소했다.
그러나 20대의 독서율은 정반대의 흐름을 보였다. 만 19~29세의 연간 종합독서율은 2023년 74.5%에서 지난해 75.3%로 0.8%포인트 상승했다. 모든 성인 연령대 가운데 독서율이 상승한 연령층은 20대가 유일했다.
젊은 세대의 도서 구매도 증가하고 있다. 예스24에 따르면 올해 1분기 10~20대의 소설·시·희곡 구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3.6% 늘었다. 젊은 구매층에서는 최근 2년 동안 두 자릿수 증가세가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독서 열풍의 전환점 중 하나는 2024년 10월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이었다. 한국인 최초이자 아시아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의 작품은 수상 이후 일주일 동안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상위 10위 가운데 9개를 차지했으며, 판매량도 100만부를 넘어섰다.
2024년 초에는 영국 일간 가디언이 Z세대(1997~2012년생)의 종이책과 오프라인 서점에 대한 열광을 조명하면서 '텍스트'와 '힙'을 결합한 '텍스트힙'이라는 유행도 대중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고 블룸버그는 설명했다.
오지은 서울도서관장은 “Z세대는 태어날 때부터 스마트폰과 함께 살아왔다. 이들에게 디지털 세계는 공기와 같은 존재"라며 “바로 그렇기 때문에 생각하고 성찰하는 일이 희귀해졌고, 젊은 세대는 이를 오히려 멋진 것으로 여기게 됐다"고 말했다.
블룸버그는 세계 각국의 교육자와 연구자, 문화평론가들이 영상과 AI가 넘쳐나는 미래에 인간의 비판적 사고 능력이 사라질 수 있다고 우려하는 상황에서 한국의 텍스트힙 열풍이 독서의 새로운 미래를 보여주는 사례일 수 있다고 짚었다.
▲(사진=우먼센스 인스타)
◇책보다 굿즈가 먼저?…독서 열풍의 이면
이러한 독서 열풍은 책을 읽는 행위 자체를 넘어 관련 상품을 구매하거나 각종 행사에 참여하는 등 새로운 문화로 확장되고 있다. 젊은 세대가 독서를 단순한 지식 습득의 수단이 아니라 자신의 취향과 개성을 표현하고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는 활동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책과 관련된 굿즈 소비다.
출판사 민음사는 지난 8월 말 편의점 GS25 등과 협업해 고전문학 작품의 표지를 활용한 우유크림빵을 출시했다. 무작위로 제공되는 수집용 책갈피까지 포함된 이 상품은 약 두 달 만에 200만개가량 판매됐다.
최근 서울에서 열린 민음사의 팝업스토어에도 16일 동안 2만명이 방문했다. 방문객 대부분은 20~30대로, 책뿐만 아니라 스티커와 책 커버, 열쇠고리 등 다양한 관련 상품을 구매했다.
오 관장은 서울국제도서전에서 나타난 소비 행태와 관련해 “젊은 사람들은 먼저 책 커버를 고른 다음 그 안에 들어갈 책을 찾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블룸버그는 “굿즈가 먼저, 독서는 선택 사항"이라고 짚었다.
독서 모임 역시 단순히 책을 읽는 것을 넘어 외로움을 해소하고 새로운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교류의 장으로 발전하고 있다.
서울도서관이 지난해 선보인 온라인 독서 모임 '힙독클럽'에는 모집 시작 2시간 만에 1만명이 신청했다. 신청자의 약 82%가 Z세대였으며, 이 가운데 약 절반이 실제로 활동하고 있다.
독서 모임 플랫폼인 트레바리에서는 현재 약 6000명의 회원을 확보하고 있다. 회원들은 책값과 별도로 월회비를 내며, 매달 약 500~600개의 독서 모임이 운영되고 있다. 모임에서는 책을 매개로 가족과 인간관계, 슬픔, 정치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눈다.
윤수영 트레바리 대표는 “우리 모임에서 많은 부부가 탄생했다.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블룸버그에 말했다.
트레바리는 나이트클럽에서 DJ가 하우스와 테크노 음악을 틀고 참가자들이 책을 읽는 행사까지 개최하고 있다.
▲6월 28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6 서울국제도서전을 찾은 시민들이 전시를 둘러보고 있다
◇일시적 유행에 그칠까…AI 시대 독서의 미래 주목
다만 이러한 독서 열풍이 장기적으로 지속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블룸버그는 한국에서 유행이 빠르게 등장했다가 사라지는 만큼 독서 열풍도 1년 뒤에는 다시 과거의 유물처럼 취급되거나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겉치레로 전락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독서에 대한 관심은 사라지고 구매한 굿즈만 먼지를 뒤집어쓴 채 남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책방지도에 따르면 한국 독립서점은 지난 3월 기준 처음으로 1000곳을 돌파했지만 신규 개점 증가세는 둔화하고 있다. 2018년 143곳으로 정점을 찍었던 연간 신규 개점 수는 지난해 36곳으로 줄었다.
청계천에서 소설 '데미안'을 펼쳐 들고 있었던 26세 여성은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책을 읽는 척하고 있다"며 “스마트폰의 숏폼 콘텐츠에 중독돼 있는데, 순간적인 도파민 자극에서 벗어나기 위해 책을 읽고 일기를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독서가 취미가 되고 내 삶을 바꿔줬으면 좋겠다. 어쩌면 그렇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독서 열풍이 실제 독서 습관의 정착으로 이어질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다만 전문가들은 책을 읽기 시작한 동기가 무엇이든 독서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사실 자체에는 긍정적인 의미가 있다고 평가한다.
문체부 정책 담당자는 “책은 AI 시대에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는 소중한 자산"이라며 “'책 읽는 대한민국' 독서 캠페인을 통해 국민이 일상에서 다양한 독서 활동에 참여하도록 뒷받침하겠다"고 밝혔다.
오 관장 역시 “AI 시대에 우리는 생각하는 일을 기계에 맡기기 시작했다"며 “인간은 스스로 사고하는 능력을 보존하고 강화해야 한다. 젊은 세대도 점점 더 그러한 능력을 갈망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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