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건설사들이 최근 '제2의 중동신화'를 꿈꾸며 해외 건설 시장 진출에 나서고 있다. 국내 건설 경기가 워낙 침체된 데다 사우디아라비아 등에서 굵직굵직한 건설 프로젝트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해 330여억달러에 이어 올해엔 400억 달러를 넘겠다는 장밋빛 전망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해외건설 수주가 기업 생존은 국내 경제에 도움을 줄 정도로 '남는 장사'가 되기 위해선 걸림돌이 많다. 당장 중동의 경우 자국민 의무채용과 지역본부 설립 등 현지화 정책이 강화되면서 대규모 프로젝트 발주에 국내 업체들이 쉽게 참여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상황이다. 중국 등이 거세게 도전해 오면서 공사비를 낮춰 수익도 예전같지 않다. 특히 공사만 담당해 리스크가 적지만 이익도 작은 도급형 위주에서 위험을 감소하더라도 금융조달까지 부담해 이득을 키우는 투자개발사업 위주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 중동시장 현지화 정책 강화
21일 해외건설업계에 따르면 대형 건설 프로젝트들이 줄줄이 발주되고 있는 중동 지역에서 최근 각국 정부의 공공 공사 발주시 이윤 회수, 자국내 일자리 창출 등을 목적으로 '현지화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2021년 2월 사우디 정부가 공공공사 입찰시 RHQ(Regional Headquarter) 설치 의무화 정책을 도입한게 대표적이다. RHQ를 설립하면 사우디 자국민 의무 채용비율이 10년간 면제되고 정부 발주 입찰 참가기회가 제공되며 비자 한도 면제 및 발급 소요시간을 단축하는 인센티브가 주어진다.
아랍에미리트(UAE)도 늘어나는 외국인 근로자 속에서 자국민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스폰서, 로컬 에이전트 정책, 공공부문 채용 등 정책을 펼치고 있다. ICV(In-Country Value)라는 시스템을 통해 현지생산이나 현지투자, 자국민 고용 비중을 평가해 공사 입찰시 반영한다. 카타르의 '타우틴(Tawteen)' 프로그램도 이와 유사하다. 사우디는 이미 2011년 '니타카트(Nitaqat)'라는 자국민 의무고용 정책을 시행 중이다. 기업을 업종별, 인원 규모별로 세분화해 자국인 고용 비율에 따라 플래티넘(Platinum)부터 그린(green high/medium/low), 옐로우, 레드 등급으로 나눠 차별 대우하는 방식이다.
문제는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든다는 것이다. RHQ 하나를 설립, 유지하는데 연간 수십억원이 필요해 왠만한 공사 수익이 예상되지 않는 한 선뜻 나서기 힘들다. 특히 현지인 고용의 경우 공기 지연은 물론 이중으로 비용이 들어 기업들의 수익성을 악화시킨다.
해외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현지인들의 생산성이 매우 낮아 분위기를 흐리고 공기를 맞추기 위해 추가 인력을 더 투입해야 한다"며 “천일야화 속 '알리바바의 도둑들'에게 당하지 않으려면 사전 협상 단계에서 현지화율을 최대한 낮추려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도급 방식 벗어난 PPP사업 등 주목
이같은 중동 국가들의 현지화 정책에 맞서기 위해선 총체적 대응이 필요하다. 특히 공사만 따내는 도급방식에서 벗어나 PPP(민관협력사업) 사업 등 투자개발 방식을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PPP 사업은 민간이 공공기반시설에 대한 투자·건설·유지보수 등을 수행해 수익을 얻고, 정부는 세금 감면과 일부 재정을 지원하는 구조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해외수주액 중 '개발형'이 차지하는 비중은 4.4%에 불과하고 대부분이 '도급형'으로 수주하는 방식을 벗어나지 못했다.
반면 세계적으론 투자개발형 사업 발주가 '대세'다. MENA(중동·북아프리카) 지역의 2023년 총 PPP 계약액은 지난 2022년 181억 대비 17.7% 증가한 213억 달러로 집계됐다. 지난 5년간(2016년~2020년)간 PPP 계약액 중 최대치가 123억 달러였던 점을 감안하면 큰 변화다. 특히 사우디가 지난해 계약액 전체의 54.5%인 116억 달러를 발주한 바 있다.
정지훈 해외건설협회 책임연구원은 “사우디 등 중동이 현지화 정책을 강화하는 분위기에서 신규건설 시장을 확대하기 위해선 현지 합작법인(JV)을 구성해 중장기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며 “해외도시개발 사업을 하나의 브랜드화해서 도시개발사업에 대한 수주전략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