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9월 08일(일)



[EE칼럼] 다가오는 수소시대, 국제에너지시장 의존도 낮추려면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4.02.28 15:07

하윤희 고려대학교 에너지환경대학원 교수

하윤희 고려대학교 에너지환경대학원 교수

▲하윤희 고려대학교 에너지환경대학원 교수

화석연료시대를 종식할 게임체인저로 수소에 대한 기대가 어느 때보다 고조되고 있다. '황금의 샘'의 저자 다니엘 예긴은 수소가 수출 상품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리프킨은 수소가 전 세계에 고르게 분포하고 있으며 공급량 또한 무한할 것이라고 했다. 이러한 수소의 성격은 수소의 무기화와 카르텔 형성을 불가능하게 해 기존 에너지 무역 지형을 근본적으로 재편할 것이라는 기대를 만들고 있다.


탈탄소 시대에 수소에 대한 기대가 높아진 만큼 세계 각 국은 수소경제 청사진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이는 전통적 에너지 다소비국가인 한국, 독일, 일본 같은 제조업 강국 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산유국인 UAE, 사우디아라비아, 새롭게 떠오르는 플레이어인 호주, 아르헨티나, 칠레 등 다양한 대륙과 국가를 포함한다. 이들 국가가 내놓은 수소경제 마스터플랜에 따르면 UAE는 2050년 수소자급률을 556%로 계획하고 있다. 이는 1991∼2020년의 에너지 자급률 386%를 훨씬 웃도는 것이다. 목표 달성을 위해 UAE는 원자력, CCS(탄소 포집 및 저장(, 재생에너지 등 다양한 기술을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수소를 이용해 자국 내 사업 활성화를 또한 꾀하고 있다. 이를 위해 지멘스에너지, 루프트한자, 일본 이토추 상사 등과 그린철강, 청정제트연료 사업을 위한 컨소시엄, 조인트 벤처 설립 등을 추진하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천연가스 자원과 풍부한 재생에너지 자원을 이용해 2050년 수소자급률 400%의 에너지대국으로의 부상을 꿈꾸고 있다. 우리나라의 수소경제위원회는 수소경제 정책방향에서 수소를 통한 에너지 안보 강화를 수소경제의 하나의 목표로 삼았다.


예긴, 리프킨과 같은 대가들과 각 국이 기대하듯 과연 수소가 기존 화석연료시대의 에너지 패권을 무너뜨리고, 더 다원화된 에너지시장을 만들 수 있을까? 아직 수소시대가 열리지 않은 상황에서 예단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하버드대학 벨퍼연구센터 연구진들은 수소시대에도 기존 밸류체인의 전환으로 일부 주요 플레이어의 변화만 있겠지만 생산국과 수요국으로 분리되는 국제 분업체계는 물론 에너지의 종속성은 여전할 것이라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이 연구는 자원보유, 기존 산업생산, 경제 관련성이라는 세 가지 기준으로 미래 수소시장에서 각 국의 역할을 매핑하고 있다. 미국, 중국과 같은 국가는 수소시장의 선두주자로 부상하고, 암모니아, 메탄올, 철강생산 같은 산업 응용 분야를 주도할 것이라고 보았다. 또 일부 자원이 풍부한 국가들은 일자리와 시장 점유율을 놓고 수입 의존 산업 강국과 경쟁할 수 있다고 예측한다.


안타깝게도 수소시대의 국제 에너지 분업에서도 우리는 수입 의존국일 수밖에 없다. 정부는 대규모 집중형 발전, 대형차, 산업의 전환에 수소 활용을 계획하며 청정수소의 90% 이상을 해외에서 도입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2050년에 예상되는 우리의 수소 자급률은 17.9%로 지난 30년간(1991∼2020)의 에너지자급률 17.6%와 차이가 없는 수준이다. 전통적인 제조업 강국으로 우리와 비슷한 환경을 가진 일본과 독일도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수치로만 보면 암울해 보이지만 전통 화석연료시대와 달리 약간의 희망은 있다. 산업화의 후발 주자로 우리의 에너지 확보는 글로벌 메이저 에너지기업들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수소시대는 새 판에서 시작된다. 우리가 가진 기술과 자본의 수준에 따라 비록 해외에서 생산될지언정 우리가 생산의 주역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 기회를 우리가 확실히 잡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우리의 청정수소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의 75%에 그치고 있고, 사용을 위한 인프라 구축도 순조롭지 않다. 해외 수소의 액화수소 운송이 언제 실현될지도 알 수 없다. 생산, 전환, 수송, 사용 등 밸류체인 전반에 이르는 균형된 발전전략이 제대로 작동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우리와 비슷한 조건을 가진 독일, 일본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보면 당장 무엇이 시급한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독일은 국가 수소계획에서 재정지원과 공급망 확보를 강조하고 있다. 독일은 재생에너지 전환과정에서 안정적인 공급망 구축과 정부 지원의 중요성을 이미 경험한 국가다. 이 경험이 수소계획에도 그대로 녹아있다. 2028년까지 EU 역내에 4500km의 수소 파이프라인 구축을 계획하고, 비교적 근거리인 아프리카 수소 유망국에서의 도입 가능성을 연구하고 있다. 또 그린수소 생산 R&D에 7억유로, 수소환원제철 등 산업부문 수소 전환에 500억유로 지원 계획을 포함하고 있다. 일본 또한 수소 공급비용을 2030년에 kg당 334엔, 2050년엔 222엔으로 낮추기 위해 기술개발에 대대적인 재정 지원을 하고 있다. 또한 일본의 상사들을 중심으로 해외수소 개발 및 도입 실증 프로젝트를 완료하는 등 공급망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새롭게 열리는 수소시대에 기회를 잡으려면 정부의 리더십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선 재정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하다. 기후대응기금, 전력산업기반기금 등의 재원 확보와 사용의 합리적 재조정을 통해 수소경제 대응을 위한 충분한 자금을 확보해야 한다. 또 기업의 적극적 참여를 위해 밸류체인 구축의 명확한 로드맵과 정량적 목표가 제시돼야 한다. 해외 협력 파트너 국가의 다양성 확보를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특정 국가에 편중된 파트너십은 화석연료시대와 유사한 리스크를 만들어낼 것이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 역내에서 수소를 생산하는 것이 가장 우선적인 에너지안보 보장 방안이라는 것이다. 중첩된 규제를 신속하게 풀어 대규모 해상풍력을 확보하고, 원자력을 활용하는 등 우리 내부의 여건을 성숙시킬 여지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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