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이 RE100(사용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조달)에 대한 모순점 해결을 위해 직접 나섰다.
현행법상 기업이나 가정에서 생산한 재생에너지 전력은 팔 때와 달리 직접 사용할 때는 신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REC)를 발급받지 못한다. 이에 따라 “일단 재생에너지 전력을 생산했으면 사용하는 주체가 누구든 차별 없이 REC를 발급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기업들이 직접 제도 마련을 촉구하고 나선 것이다.
11일 기업재생에너지재단은 기업 혹은 가정이 자가소비하는 재생에너지 전력에 발급하는 RE100 인증서(I-REC)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규모 발전사는 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RPS) 제도에 따라 발전량의 일부는 재생에너지로 채워야 한다. 이에 따라 REC는 재생에너지 전력을 필요로 하는 대규모 발전사가 주로 구매한다. RE100을 이행하려는 기업이 REC를 구매하기도 한다.
재생에너지 사업자는 전력을 생산하고 이들에게 REC를 팔아 수익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재생에너지 사업자가 재생에너지 전력을 생산 후 직접 사용하게 되면 REC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REC 판매로 발생하는 수익을 얻을 수 없다.
결국 사업자들은 재생에너지를 전력시장에서 팔려하고, 직접 쓰겠다고 나서지 않는 구조가 만들어지게 됐다.
업계에 따르면 자가소비하는 재생에너지 전력에 REC가 발급되려면 전기사업법 개정이 필요하다.
기업재생에너지재단은 법 개정에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을 감안해 자체 I-REC 개발에 더욱 힘쓰고 있다. I-REC를 만들어 재생에너지 전력을 자가소비하는 기업이 일방적으로 손해 보지 않게 하겠다는 계획이다.
특히 당장 RE100을 이행하기 위해 재생에너지 전력을 필요로 하는 기업이 늘고 있어 제도 도입을 시급히 준비 중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2022년 8월 발표한 '국내 제조기업의 RE100 참여 현황과 정책과제 조사'에 따르면 국내 제조기업 300곳(대기업 80곳·중견기업 220곳) 중 대기업이 글로벌 고객사(거래처)로부터 재생에너지 사용 요구를 받은 비율은 28.8%, 중견기업은 9.5%였다.
I-REC가 도입되면 재생에너지 자가소비사업자는 두 가지 선택을 할 수 있다. 하나는 재생에너지 전력을 생산하고 받은 I-REC를 팔지 않고 자체 RE100 이행에 사용하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재생에너지 전력을 생산하고 받은 I-REC를 다른 기업에 판매하는 것이다. I-REC를 판매하면 자가소비사업자는 전기요금을 절약할 수는 있지만 RE100 이행에 참여하지는 않는다. 대신 해당 사업자로부터 I-REC를 구매한 기업이 RE100을 달성하는 데 I-REC를 인증수단으로 사용하게 된다.
I-REC가 도입되면 재생에너지 사업이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 RE100을 안 해도 되지만 전기요금 절약을 원하는 기업들이 재생에너지를 확보하고 I-REC로 추가 수익을 얻을 수 있어서다.
기업이 재생에너지 사업에 따른 수익이 늘어나는 만큼 재생에너지 확대에 추진력을 얻는다는 분석이 나온다. RE100을 원하는 기업들도 I-REC 구매로 더 쉽게 RE100을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진우삼 기업재생에너지재단 상임이사는 “우리나라 REC 제도는 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RPS)를 이행하기 위한 강제적인 시장에서 만들어졌다. 그러다 보니 의무제도에서 공급되는 게 아닌 자가소비 재생에너지 전력에는 REC 발행이 안됐다"면서 “RE100 같은 자발적 시장에는 상업용이나 자가용 상관없이 REC가 발급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등 60개국에서는 민간에서 I-REC 제도를 운영 중이다. I-REC는 정부 예산이나 일반 소비자의 전기요금과 상관없는 순수 민간기업들의 자발적 시장에서 이용되는 인증서"라며 “산업단지에 100개 기업이 있으면 2개는 RE100을 하려하고 98개는 전기요금을 절감하려 한다. 전기요금을 절감하는 98개 기업이 RE100을 하려는 2개 기업에 I-REC를 팔게 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진 상임이사는 “I-REC가 활성화되면 기업이나 가정이 자가소비용 재생에너지 설치를 정부 예산에 의존하지 않고 할 수 있어 결국 국민에게 이익"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기업재생에너지재단에는 삼성, SK 계열사, 네이버, 현대건설 등 RE100 추진 기업들이 특별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