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와 산업통상자원부가 한달여 남은 21대 국회 회기 안에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고준위 특별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다.
22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와 산업부 고위관계자에 따르면 김진표 국회의장이 직접 산자위 여야 간사와 법안 발의 의원들을 만나 회기 내 법안처리를 설득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산자위 관계자는 “회기가 사실상 한달 밖에 남지 않은 가운데 상임위인 산자위 법안소위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라 일정이 매우 촉박하다"며 “그래도 국회의장이 직접 나서서 법안 통과를 챙기고 있는 만큼 여야 합의로 회의가 열리기만 하면 마지막 기회는 있다"고 말했다.
상임위를 통과하지 못한 법안은 국회 회기가 종료되면 자동 폐기된다. 총선 이후 이번에 법안을 발의한 의원들이나 다른 의원들이 다시 추진해야 한다.
에너지업계에서는 총선까지 여당이 승리하지 못한 가운데 이번에 법안 통과가 불발되면 윤석열 정부의 원전 확대 정책은 물론 현재 가동 중인 원전의 안전보 보장하기 어렵다며 우려하는 분위기다.
법안을 발의한 김영식 의원(국민의힘 구미시을)은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포화가 가시화하고 있는 가운데 여야가 당리당략에 매몰되어 특별법 제정이 무산될 경우 그 모든 부담은 결국 국민과 미래세대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다"고 호소했다.
고준위특별법이란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영구 처분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드는 내용을 포함한 법안이다. 현재 일부 원전의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은 임시저장소 포화가 임박한 상태고 원전을 아직 가동해야 하기에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저장시설을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여야는 고준위 특별법은 폐기물 처분 시설의 용량을 정하는 문제를 두고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폐기물 처분 시설의 용량을 많이 정해놓으면 그만큼 원전을 추가로 지을 여력을 남겨놓아야 한다는 논란을 불러 일으킨다는 의견이다.
야당에서는 고준위 특별법을 원전 확대를 위한 법이라고 규정하고 있는 반면, 여당과 원전업계는 이념적으로 접근하지 말고 현재의 원전을 안전하게 운영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정범진 원자력학회 회장은 “현 정부는 지난 정부의 탈원전이 잘못됐다고 비판만 했을 뿐 원전 확대와 수출 성사를 위한 실질적 제반 사항 조치 마련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일단은 법안이 없어도 신규원전 건설은 가능하다. 다만 포화가 임박한 한빛 원전은 폐쇄해야 한다. 아니면 기존 원자력안전법을 일부 수정해 신규 원전 부지내 저장소에 사용후핵연료를 저장하는 방법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산업부에서도 연일 최남호 2차관이 직접 원전단체들과 국회에 법안통과를 위한 협조를 촉구하고 있다. 최 차관은 지난주 국회에서 열린 '무탄소에너지 확대를 위한 정책세미나'에서 “방사성폐기물 관리는 안전한 원전 운영을 위한 전제조건"이라며 “고준위 특별법의 조속한 제정을 통해 원전 전주기 생태계를 완성해나가는 것이 시급하다. 정부는 특별법이 21대 국회에서 통과할 수 있도록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산자위 관계자 역시 “주무부처인 산업부의 입법의지가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유지되고 있다"며 “오랫동안 이 이슈를 바라본 입장에서 지금이 최적의 시점"이라고 말했다.
조용성 고려대 식품경제학과 교수는 “고준위 특별법은 원전의 완벽한 폐기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가동 중단된 고리 1호기를 완벽하게 폐기하려면 고준위 폐기물을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며 “폐기물 처분시설 용량을 크게 하면 계속 더 지어야 하는 거 아닌가 우려를 주는 점도 있다. 일반 시민들이 불안해할 수 있어 이야기하는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정재학 경희대 교수는 “필요성에 대한 인식은 여야를 막론하고 공유하고 있다"며 “다만 현재 야당 쪽에서 주저하는 부분들은 원전의 계속 운전과 확대를 막는 것과 연결하려는 무리한 시도를 하고 있어 법안 통과가 안 되고 있다고 본다. 그러나 결코 이념의 문제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