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이 연내 '소상공인 맞춤형 지원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한 가운데 그 배경에는 소상공인, 자영업자의 대출 문턱이 높아진 점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은행권은 내수 부진 등으로 소상공인, 개인사업자의 연체율이 높아지면서 건전성 관리 차원에서 개인사업자에 대한 여신 심사를 강화하고 있다. 여기에 은행권이 올해 들어 40조원이 넘는 이자이익을 거둔데다 가계대출 예대금리차가 상승세인 점도 정치권의 '상생금융' 압박에 불을 지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현재는 내수부진으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이 고통을 겪고 있는 만큼 은행권이 실질적인 지원책을 가동하는 동시에 정부 역시 대출 규제 완화, 서민금융상품 대출 금리 완화 등을 가동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올들어 은행 이자수익 44兆...“예대금리차 뛰어"
3일 금융감독원, 은행권에 따르면 시중은행, 지방은행, 인터넷은행, 특수은행을 포함한 국내은행은 올해 1~3분기 누적 기준 44조4000억원의 이자이익을 거뒀다. 1년 전보다 2000억원 증가한 수치다. 은행권은 작년에도 이자이익으로만 59조2000억원을 벌어들였다.
한국은행의 연이은 기준금리 인하에도 은행권이 가계대출 관리 차원에서 대출 문턱을 높이면서 예대마진도 꾸준히 상승세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KB국민, 신한, 하나, 우리, NH농협은행의 정책서민금융 제외 신규 가계대출의 예대금리차는 10월 기준 1.036%포인트(p)로 집계됐다. 이는 전월(0.734%포인트) 대비 0.3%포인트 넘게 오른 수치다. 예대금리차는 대출금리에서 저축성 수신금리를 제외한 값으로, 예대금리차가 올랐다는 것은 그만큼 예금과 대출 금리 격차에 따른 은행의 마진이 크다는 뜻이다.
9월만 해도 정책서민금융 제외 가계예대금리차가 1%포인트대인 곳이 NH농협은행(1.05%p) 한 곳에 불과했지만, 10월에는 KB국민은행(1.18%p), 신한은행(1.01%p), NH농협은행(1.20%p) 등 세 곳으로 늘었다.
외면받는 개인사업자, 중저신용자
문제는 은행권이 내수 부진 등 경기침체로 대출 문턱을 높이고 있다는 점이다. 5대 은행의 지난달 말 기준 개인사업자 대출 잔액은 총 327조103억원으로 전월(327조2153억원) 대비 2050억원 감소했다. 통상 개인사업자 대출은 정책성 대출 공급으로 인해 연초에 급증했다가 연말로 갈수록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최근 같은 경우 이같은 특수성과 함께 은행권이 건전성 관리를 강화하면서 대출 문턱을 높인 점도 영향을 미쳤다.
은행권 관계자는 “은행 입장에서는 부실이 발생하면 자본비율 등 다방면으로 타격을 입기 때문에 지금은 더더욱 여신 심사를 강화할 수밖에 없다"며 “내수 부진 등으로 경기가 침체기이다보니 어쩔 수 없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저축은행이 상대적으로 건전성이 양호한 고신용자의 대출 비중을 늘리면서 중저신용자의 금리 부담은 더욱 가중됐다. 저축은행중앙회에 따르면 가계신용대출을 취급하는 저축은행 35곳 가운데 대출금리 10% 이하 취급비중은 올해 1월 6.03%에서 11월 현재 9.71%로 커졌다. 이 기간 대출금리 18% 초과 20% 이하 취급비중은 31.71%에서 25.66%로 하락했다. 저축은행마저 대출금리가 높은 중저신용자 대출 비중을 축소한 셈이다.
저축은행 관계자는 “서민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우량고객 신용도가 하락했고, 반대로 (은행권 대출 규제로 인해) 신용도가 우량한 고객들이 저축은행으로 유입된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 가계대출 규제 완화 및 정책금융상품 금리 인하해야"
전문가들은 국내 경기가 내수 침체, 소비여력 축소 등으로 악순환에 빠져 있는 만큼 은행권이 소상공인,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실질적인 지원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실제 은행권은 연내 소상공인 맞춤형 채무조정을 포함한 지원방안을 마련해 발표할 계획인데,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상황이 호전되면 은행권의 건전성도 개선될 수 있는 만큼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나아가 금리 인하기에 맞춰 햇살론15(대출금리 연 15.9%) 등 최저신용자 대상 정책서민금융상품 금리도 적극적으로 인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안용섭 서민금융연구원장은 “금융산업도 하나의 생태계이고, 어려운 상황일 수록 금융의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에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포용금융을 확대해야 한다"며 “정책금융상품은 수익 창출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부실 발생보다는 사회적 가치와 상품 활성화에 중점을 두고 금리 인하 등도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시중은행의 가계대출에는 소상공인 대출도 포함돼 있는 만큼 당국이 주도적으로 은행권의 가계대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금융당국이 은행권의 대출규제 가이드라인을 완화해야만 은행권도 소상공인 대출을 포함한 가계대출 공급에 여력이 생긴다"며 “정책금융상품 금리를 인하하면서 은행권에는 대출 규제를 완화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다면 최악의 위기를 막을 수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