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3일 서울 한국금융연수원에서 열린 '사외이사 양성 및 역량 강화 업무협약식'에 참석한 임종룡 우리금융그룹 회장(왼쪽)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당초 2월까지 마무리하기로 했던 금융감독원의 우리금융지주 경영실태평가가 지연되면서 우리금융의 동양·ABL생명 인수가 속도전에 접어들었다. 임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앞장서 지배구조 안정화를 피력하고 있는 가운데 시장에선 여러 정황을 고려해 '긍정론'에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연기된 경영평가 발표...우리금융, 계약금 몰취 이행 두고 '긴장'
4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감원 은행검사1국은 우리금융에 대한 경영실태평가 결과 발표의 막바지 작업에 접어들었다. 은행검사국의 검토가 끝나면 이를 제재심의국이 넘겨받은 뒤 한 번 더 검토하고 금융위원회로 송부한다.
앞서 금감원은 우리금융의 동양생명 인수·합병(M&A) 인가의 주요 판단 요건인 경영실태평가 결과를 지난달까지 금융위원회에 송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경영실태평가 결과 도출이 2월 중 이뤄져야 금융위에서 3월 안에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계산에서다. 우리금융이 인수합병 승인 심사를 신청한 건 지난 1월 15일로, 심사 기한은 2개월이다. 금감원은 경영평가 등급 산정에 최소 수개월이 걸리지만 제재 절차와 투트랙으로 분리해 신속하게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이었다.
그러나 우리금융이 보험사 편입을 위해 받아야 하는 경영실태평가 등급 결과가 늦어지면서 이달 중 이뤄지려던 금융위의 최종 승인 결정은 내달로 미뤄졌다. 이에 우리금융에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계약에 따라 금융당국의 인수 불허나 심사 기한 초과의 경우, 인수가의 10%인 1500억원가량을 몰취 당할 수 있어서다. 당초 우리금융은 중국 다자보험 그룹과 1조5493억원 규모의 주식매매계약(SPA)를 체결하며 인수가액의 10%인 1550억원을 계약금으로 설정한 바 있다.

▲금융감독원.
앞서 금융권에선 금감원의 검사 초기부터 우리금융의 등급 하락이 사실상 확정적이란 전망에 무게감이 실렸다. 이복현 금감원장이 검사 중 '매운맛'이란 표현을 사용한 데다 정기검사 중간 결과 발표 당시에도 우리금융의 내부통제 부실을 강하게 비판했기 때문이다.
다만 평가 등급 발표 지연에도 최근 긴박했던 분위기는 다소 완화된 형국이다. 특히 금융권에선 금감원이 우리금융의 등급을 3등급으로 평가하고, 금융위가 인수를 승인하는 시나리오가 유력하게 떠오르고 있다.
우선 금감원의 경우 정기검사 중간발표 당시 보도자료의 절반 이상을 우리금융에 할애하는 등 강하게 질타해 온 만큼 우리금융에 2등급을 매긴다면 용두사미로 끝난다며 '봐주기' 논란에 휩싸일 수 있다. 또한 우리금융을 3등급으로 하향해도 자본금 증액 등 조건을 통해 금융위가 인수를 승인하는 길이 열려있기에 적절한 방안이 될 것이란 시각이다.
계약이 성사되지 못할 경우 당국 또한 책임론에서 자유할 수 없단 시각도 이런 시나리오에 힘을 더하고 있다. 앞서 '계약금 몰취조항'을 두고 금융당국으로 하여금 승인을 내줄 수밖에 없도록 강제한 부분이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지만, 그럼에도 당국이 인수를 승인하지 않을 시 계약 파기에 따른 손해가 금융당국의 책임이란 화살로 작용할 수 있다.
몰취조항 포함에 대한 당국의 비판 또한 금융권 내에선 특이한 일이 아니라는 인식이 퍼지기도 했다. 해당 계약은 M&A 딜에 있어 흔한 일이며 다자보험 측이 우리금융에 계약금을 돌려주는 조항도 포함돼 우리금융에만 불리한 점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질타만을 일삼던 금융당국으로부터 최근 미묘한 기류 변화가 감지된 점은 명백한 긍정적 시그널로 읽힌다. 지난달 19일 이복현 금감원장이 은행장 간담회 후 “임종룡 회장이 갑자기 빠지게 되면 거버넌스 관련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임 회장 중심 지배구조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금감원이 우리금융에 다소 우호적인 스탠스를 비춘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임 회장 내부통제 혁신·선제적 금리 인하에 당국발 '훈풍' 돌아
이런 가운데 임종룡 회장은 당국의 정책에 충실히 발을 맞추는 한편 내부통제 혁신에 사활을 거는 등 막판 스퍼트를 내고 있다. 금융사고에 대한 사후 수습 역량이 향후 진행될 금융위 최종 승인 심사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분석된다. 이미 나타난 내부통제 미흡과 자본비율 하락 등에 따라 경영실태평가 등급 하락은 불가피하더라도, 최종 승인 권한을 지닌 금융위의 심사 단계에 미리 대비하려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우리금융은 내부통제 시스템을 한층 강화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임 회장 주재 내부통제 회의에선 우리은행에 '내부통제 3중 관리체계'를 구축하고, 우리금융 사외이사진을 새로 꾸려 윤리경영을 강화하기도 했다. 임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 이어 지난달 27일 첫 내부통제 현장점검회의에서도 “완전히 탈바꿈할 우리의 경쟁력을 시장과 고객에게 보여주자"며 변화 의지를 강조한 바 있다.
최근 금융위에서 4대 은행 중 가장 먼저 금리를 인하한 점에 칭찬을 받으며 온화한 분위기가 나타나기도 했다. 금융위는 지난 '2025년 가계부채 관리 방안' 브리핑에서 “우리은행 하는 것을 좀 보라"며 “다른 은행들도 우물쭈물할 상황이 아니다"고 언급했다.
시장은 인수 막바지 금융당국 심사 고비를 남겨둔 상황에서 분위기가 그리 나쁘지 않다는 시각을 비추고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임종룡 회장이 내부통제 강화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보이는 점이나 당국 정책에 빠르게 행동하는 건 전략적인 판단인 것으로 해석된다"며 “당국으로부터도 간접적으로나마 훈풍이 느껴지는 점에 보험사 인수 가능성에 무게감이 실리는 분위기"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