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덕수 국무총리의 탄핵심판 선고 날인 2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심판정에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을 비롯한 재판관들이 착석해 있다. 헌재는 이날 한 총리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를 기각했다. 사진=연합뉴스
한덕수 국무총리에 대한 탄핵소추안 기각이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결과의 가늠자가 될지 이목이 집중된다. 무엇보다 기각 5인, 각하 2인, 인용 1인으로 재판관들의 의견이 엇갈린 것이 주목된다. 직무정지 87일만에 복귀한 한 권한대행은 가장 시급한 미국과의 통상정책과 산불 등의 현안을 챙기는데 주력할 방침이다.
24일 헌법재판소와 정치권, 정부에 따르면 여권 내부에서는 한 총리 탄핵이 기각되면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도 비슷한 결과가 나올 수 있지 않겠나 하는 기대감을 보이고 있다.
당초 헌재가 탄핵심판 중 윤 대통령 사건을 최우선으로 심리하기로 했지만 한 총리 사건을 먼저 선고했기 때문이다. 헌재가 대통령 탄핵심판 평의에서 일말의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는 방증이라는 것이다. 윤 대통령 탄핵심판은 각하 또는 기각될 것이기 때문에 빨리 결론을 내줘야 한다는 게 국민의힘의 입장이다.
한 총리 탄핵을 밀어붙인 민주당은 12·3 비상계엄의 위헌·위법성을 이유로 한 총리에 대한 '탄핵 인용'을 전망했지만 기각 결정이 내려지며 다급해졌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광화문 천막당사 여론전을 선포하면서 한 총리의 탄핵 심판 선고가 윤 대통령보다 먼저 이뤄지는 데 대해 강한 유감을 표시하며 당장 윤 대통령 탄핵을 선고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최우선으로 하겠다던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우선 기각 의견을 낸 5명 중 4명(문형배·이미선·김형두·정정미 재판관)은 한 총리가 국회에서 선출된 조한창·정계선·마은혁 재판관 후보자의 임명을 보류한 것이 헌법과 법률 위반에는 해당한다면서도 파면을 정당화하는 사유로는 인정하지 않았다.
이들은 한 총리가 국회가 선출한 3인을 재판관으로 임명해야 할 헌법상 구체적 작위의무를 부담한다고 봤으며, 그 의무를 위반했다고 봤다. 그러면서도 재판관들은 임명 거부가 현직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을 진행하는 헌재를 무력화시키기 위한 목적 또는 의사에 기인했다고까지 인정할 증거나 객관적 자료는 발견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파면을 정당화하는 사유가 존재한다고 볼 수 없다는 얘기다.
재판부는 한동훈 당시 국민의힘 대표와 '공동 국정 운영 체제'를 꾸리려 시도하고 윤 대통령 관련 특검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를 조장·방치했다는 탄핵소추 사유도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이번 결정은 대통령이 아닌 국무총리에 대한 것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게 정치권의 시각이다. 즉 총리로서의 직무상 의무를 다하지 못한 점은 문제가 있지만 그것만으로 파면의 사유는 되지 않는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통령 탄핵 소추 사안은 별개로 봐야 한다는 얘기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총리 탄핵 소추안 기각의 내용을 놓고 여야가 각각 해석을 하겠지만, 기본적인 것은 대통령이 아니라 총리에 대한 결정이라는 것"이라며 “대통령은 내란의 수괴로서 민주주의와 헌정 질서를 파괴하는 내란을 도모했느냐가 쟁점인 만큼 결정의 기준점이 명확하게 다르다"고 지적했다.
한 대행은 이날 헌재 결정 직후 출근길에서 “우리 모든 국민들은 이제 극렬히 대립하는 정치권에 그러지 말아야 한다는 목소리를 확실하게 내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이제 좌우는 없다고 생각한다. 오로지 우리나라가 위로, 앞으로 발전하는 것이 정말 중요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다만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의 임명 여부를 묻는 말에는 “이제 곧 또 뵙겠다"며 답변하지 않았다.
또 “통상과 산업 담당 국무위원, 민간과 같이 민관 합동으로 세계의 변화에 대응하면서 대응을 준비하겠다"며 “지정학적 대변혁의 시대에 발전을 계속할 수 있도록 국무위원과 정치권, 국회, 국회의장과 힘을 합칠 것"이라고 말했다. 총리실에 따르면 경제부총리가 매주 1회 진행해온 대외경제현안간담회를 민간 전문가들도 참여하는 체제로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정부에 따르면 총리실을 지난 주말 한 총리의 복귀 가능성에 대비한 실무 준비를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헌재가 기각을 결정하면서 한 대행은 정부서울청사로 출근해 대국민 담화를 통해 국정운영 계획을 밝혔다.
한 대행은 “지금 세계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취임과 함께 미·중 패권 경쟁이 격화되고, 새로운 지정학적 대변혁과 경제 질서 재편에 직면하고 있다"며 “헌법과 법률에 따라 안정된 국정 운영에 전력을 다하는 한편 이미 현실로 닥쳐온 통상 전쟁에서 우리나라의 국익을 확보하는 데 모든 지혜와 역량을 쏟아붓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모든 판단의 기준을 대한민국 산업과 미래 세대의 이익에 두겠다"면서 “극단으로 갈라진 사회는 불행으로 치달을 뿐 누구의 꿈도 이루지 못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대한민국이 지금의 위기 국면을 헤치고, 다시 한번 위와 앞을 향해 도약할 수 있도록 여야의 초당적 협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한 대행은 이날 복귀 첫 일정으로 정부서울청사 1층의 중앙재난안전상황실 서울상황센터를 방문해 관계기관에 범정부적 총력 대응을 지시했다. 또 안보·치안 유지와 관련 긴급 지시를 내리고 대통령 권한대행직을 수행했던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약 30분간 면담했다. 이후 국무위원들과 오찬을 겸한 간담회도 가졌다.
이날 외교부는 한 대행에 대한 헌재의 탄핵 기각 결정이 나오자 미국, 일본, 중국 등 주요국 주한대사에게 국내 상황을 설명했다. 초대 통상교섭본부장과 주미 대사를 지낸 한 대행은 직무 정지 기간 미국의 관세 부과와 글로벌 무역전쟁 이슈에 관한 연구보고서 등을 탐독하는 등 미국의 통상 압력에 대처할 방안을 숙고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