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성 굿프롬프트 대표

▲김한성 굿프롬프트 대표
AI는 이제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가 되었다. 미국은 이미 OpenAI, 구글 등을 앞세워 플랫폼 우위를 굳혔고, 중국은 국가 주도 투자를 가속화했다. 유럽은 세계 최초의 AI법을 제정해 규제 표준을 선점했다. 한국은 어디에 서 있는가. 지난 수년간 정치 및 정책 공백이 길어지는 동안 실리콘밸리에서는 매주 새로운 AI 스타트업이 수십억 달러의 투자를 유치했고, 바이두와 알리바바는 차세대 AI 모델을 경쟁적으로 발표했다. 이전 정부가 공언한 '5년간 16조원 AI 펀드'와 '2027년 세계 3위' 목표는 아직 가시적인 이행 로드맵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왜 속도를 잃었을까. 그러나 앞서 우리가 처한 상황에 대한 질문에 답하기 보다 더 시급한 것은 우리가 정말 AI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차별화된 전략을 가지고 있느냐는 것이다.
문제의 본질을 들여다보자. 현재 AI 경쟁은 단순한 기술 개발 경쟁이 아니다. 이는 국가의 인지적 역량과 사회적 지혜를 총동원하는 문명적 전환이다. 마치 산업혁명 시대에 증기기관을 도입하는 것과 전체 사회 시스템을 공장제로 바꾸는 것이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였던 것처럼 말이다. 삼성전자가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를 만들 수 있다고 해서 자동으로 AI 강국이 되는 것은 아니다. 반도체는 AI의 하드웨어 기반일 뿐이다. 진짜 경쟁력은 그 위에서 돌아가는 소프트웨어, 즉 AI 모델을 설계하고 훈련시킬 수 있는 인재(AI Talents)와 데이터(AI Data)에서 나온다.
여기서 첫 번째 현실적 장벽으로 '심각한 AI 인재 부족'이다. 앞서 있는 미국과 비교하더라도 그 격차가 상당한 가운데, 더 심각한 점은 2024년 연구개발 예산 삭감의 여파로 최고 수준의 AI 인재들이 해외로 눈을 돌리는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경제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혁신 파이프라인이 흔들리고 있다. 국제 연구 협력은 줄어들고, 벤처 투자도 감소하며, STEM 전공 졸업생들은 창업이나 R&D보다 의대나 해외 이민을 선호하고 있다. 두 번째는 '데이터의 질적 한계'이다. AI 성능은 학습 데이터 품질에 수렴한다. 중국이 14억 인구의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자국 언어에 특화된 AI 모델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우리도 한국어와 한국 문화의 미묘한 맥락을 이해하는 AI를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보유한 고품질 한국어 데이터셋은 흩어져 있고 체계적인 도메인 온톨로지도 부족하다. 이 처럼 인재와 데이터라는 두 핵심 기반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까?
바로 여기서 한국만의 독특한 기회가 보인다. 우리는 동서양 문화의 교차점에 위치해 있다. 서구의 개인주의적 혁신 문화와 동양의 집단주의적 협력 문화를 모두 이해하는 '문화적 실리콘'은 AI 개발에서 편향 최소화라는 강력한 자산이 될 수 있다. 또한 네이버의 하이퍼클로바, 카카오브레인의 연구 성과, 그리고 특히 최근 LG AI연구원의 '엑사원' 같은 하이브리드 모델은 한국어 기반 AI 및 범용 AI 경쟁력을 입증했다. 그러나 개별 기업의 분전만으로는 세계 톱티어를 추적하기 어렵다. 국가 차원의 체계적 접근이 필요하다.
먼저 AI 인재 생태계를 근본적으로 재설계해야 한다. 단순히 AI 학과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자들이 한국에서 연구하고 싶어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현재 한국은 'K-문화'로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지만, 글로벌 표준으로 삼을 만한 규제는 없다. 이른바 'K-규제'는 AI 기술 개발과 상용화를 돕기에는 부족하다. 이런 상황을 개선하고 AI 산업 발전을 촉진하기 위해 'AI 특별구역'을 지정하고 규제 샌드박스를 적극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세계 최고 수준의 AI 연구소들과 공동 협력하며, 글로벌 AI 인재들에게 연구비, 생활비, 영주권 패키지를 제공하는 파격적 정책이 필요하다. 싱가포르가 금융 허브로 성장한 것처럼, 한국을 아시아의 AI 허브로 만드는 전략이다. 데이터 문제도 창의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한류 콘텐츠, K-팝, 웹툰, 게임 등 우리가 세계적으로 경쟁력을 갖고 있는 문화 콘텐츠들을 AI 학습 데이터로 활용하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AI는 단순히 기술적으로 우수한 것을 넘어서 한국의 문화적 감수성을 이해하는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게 된다.
나아가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AI 생태계 조성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으로 AI를 도구가 아닌 파트너로 인식하는 사회적 전환(Social Transformation, SX)이다. AI는 일자리를 빼앗는 경쟁자가 아니라 인간의 잠재력을 극대화하는 최고의 파트너가 될 수 있다. 의사가 AI와 함께 희귀병을 조기에 진단하고, 교사가 AI를 활용해 모든 학생에게 맞춤형 교육을 제공하며, 예술가가 AI의 영감으로 상상조차 못 했던 작품을 창작한다. 이는 단순한 효율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온정과 지혜를 한 단계 끌어 올리는 일이다. 이런 변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교육 시스템의 근본적 혁신'이 필요하다. 단순 암기 중심의 교육에서 창의적 사고와 협업 능력을 기르는 교육으로 전환해야 한다. 초등학교부터 AI와 대화하기, AI의 답변을 비판적으로 검증하기, AI와 팀 프로젝트 수행하기 등을 가르치는 AI 리터러시 커리큘럼이 필수다.
결국 AI 강국이 되는 것은 기술 개발을 넘어선 사회 전체의 혁신이다. 이는 마치 스마트폰이 단순히 통신 기기를 바꾼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활 방식 자체를 바꾼 것과 같다. AI 강국은 AI 기술을 가진 나라가 아니라, AI와 함께 사는 법을 먼저 터득한 나라다. 한국은 이미 그런 경험을 가지고 있다. 1960년대 농업국에서 2000년대 IT 강국으로 변신한 것처럼, 우리는 빠른 변화에 적응하고 위기를 기회를 만드는 DNA를 가지고 있다. 이제 그 DNA를 AI 시대에 맞게 활성화할 때다. 기술에 맞춰 사회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가치와 꿈에 맞춰 AI를 설계할 때, 한국은 진정한 AI 강국으로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