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현 금융부 기자.
“새해에도 대출문이 열릴 것을 장담할 수 없다. 작년 말부터 고객도 부동산시장도 더 단단히 대비하는 형국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가 “고객들이 규제 강화에 대비해 기존 대출을 유지하고 이자를 내는 쪽을 택한다"며 최근 대출시장 현상에 대해 건넨 말이다.
차주들은 작년에 빌릴 수 있었던 만큼 내년에도 빌릴 수 있을지 알 수 없다는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 대출 한도 자체도 줄어들었지만 금리가 높아지며 사실상 대환대출 조건도 까다로워지고, 은행들이 리스크 관리를 강화하면서 개인 신용대출 문턱도 높아지고 있다. 2금융권에선 높은 이자로 인해 급전이 필요할 때 쓰던 최후의 수단들도 막히는 추세다.
올해도 이런 축소 기조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자 언제까지 규제가 유지돼야 하냐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실수요자가 대출받기 어려워진 상황 자체는 차치하더라도, 정부가 그토록 지적했던 '금융계급제'가 되려 강해지는 등 부작용이 적지 않아서다.
정부가 가계부채 억제를 명분으로 획일적인 대출 규제를 밀어붙이는 동안 은행권에선 초고신용자 위주의 선별 대출을 강화시키며 저신용자가 아예 시장 밖으로 밀려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10월 기준 5대 시중은행이 취급한 가계대출의 평균 신용점수는 939~946점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하단 기준이 5점이나 상승했다.
은행도 가계부채 규제로 인해 신용점수에 따라 차주를 걸러낼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런 구조는 결국 중·저신용자가 더 높은 금리를 물게 돼 계급화와 양극화를 오히려 부추길 수 있다. 1금융에서 밀려난 차주들이 2금융권으로 이동하면서 가계 이자 부담이 커지는 동안 금융 취약계층은 여기서 더 밀려나며 부채 위험을 눈덩이처럼 키우고 있다.
당국은 은행들이 새해 영업재개를 맞아 대출 문턱을 다시 낮추지 못하도록 선제적인 관리에도 나설 것으로 보인다. 연초에 상대적으로 과하게 대출을 풀었다가 연말에 목표치 충족에 맞춰 급하게 문을 걸어 잠그는 행태가 반복되지 않도록 경각심을 주겠다는 것이다. 금융위원회는 올해 중순 가계부채 점검회의를 열어 가계대출 관리 기조 논의에 들어가기로 했다.
일관적 기조로 밀고 가야 정책상 효과를 보는 것은 당연하다. 부동산 리스크를 막기 위한 정부의 규제 필요성이 여전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당장 이사를 가지 못하고, 신용이 좋아도 대출을 받을 수가 없는 점은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다. 일방적이고 목표중심적이기만 한 접근에 소비자들의 불편과 계급화라는 부작용이 동반되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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