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의 심장' 대구의 경고… “이념보다 먹고살기 먼저"
6·3 지방선거를 앞둔 대구 지역의 민심 기류가 심상치 않다.
▲좌측부터=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추경호국민의힘. 이수찬 개혁신당 대구시장 후보들 모습 사진=손중모기자
대구=에너지경제신문 손중모기자 전통적으로 '보수의 심장'이자 특정 정당의 철옹성으로 분류되던 대구이지만, 이번 선거를 앞두고 바닥 민심에서 감지되는 경고음은 과거와 확연히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만성적인 지역 경제 침체와 청년층의 도심 이탈, 고물가로 인한 민생 피로감이 한꺼번에 분출되면서 정당 충성도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이제 대구 시민들은 이념적 선명성 대신 '누가 진짜 지역 경제를 살릴 수 있는가'라는 실용주의적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지난23일 박근헤 전 대통령과 함께 대구 칠성시장을 방문 시장 상인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는 모습. 저녁 7시에는 추경호 대구시장 후보가 서문시장 야시장을 찾아 MZ 세대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사진=손중모기자
◇냉골 바닥 경기… “장사 안되는데 정치 얘기가 눈에 들어오나"
지난 23일 오전 찾은 대구의 대표적 전통시장인 북구 칠성시장 골목은 평일임을 감안해도 쓸쓸한 기운이 역력했다.
매대마다 싱싱한 채소와 과일이 가득 쌓여 있었지만, 지갑을 여는 손님들의 발길은 뜸했다.
이곳에서 30년 넘게 채소가게를 운영해 온 신모 씨(72)는 한숨을 쉬며 매대를 정리했다.
신 씨는 “예전에는 오전 장사만 끝나도 가져온 물건의 태반이 팔려 나갔는데, 지금은 하루 종일 꼬박 자리를 지켜도 매출이 과거의 절반 토막"이라며 “요즘 상인들끼리는 정치 이야기 안 한다.오늘 당장 몇 만 원이나 쥐고 갈 수 있는지가 유일한 관심사"라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또 다른 중심 상권인 중구 서문시장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김부겸 대구시장 후보가 지난23일 달성공원앞 새벽시장을 찾아 시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사진=손중모기자
20년째 의류점을 해온 박모 씨(67)는 정치권을 향해 쓴소리를 뱉었다.
박 씨는 “선거 때마다 후보들이 찾아와 전통시장을 살리겠다, 경제를 활성화하겠다고 외치지만 피부로 와닿는 변화는 눈을 씻고 봐도 없다"며 “우리 같은 자영업자들에게는 여당이든 야당이든 손님 한 명 더 오게 만들어 주는 사람이 최고"라고 말했다.
대구는 섬유산업 쇠퇴 이후 이렇다 할 스타 기업이나 신산업 기반을 잡지 못한 채, 제조업 하청 구조와 영세 자영업에 의존해 왔다.
여기에 코로나19 여파 장기화와 최근의 고물가·고금리 직격탄까지 겹치면서 서민 경제의 버팀목인 자영업 체감 경기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지역 정치권 관계자는 “과거 대구 선거는 공천 결과나 중앙 정치의 구도에 따라 초반에 승패가 가름 나곤 했지만, 이번에는 민생 피로감이 워낙 커 유권자들이 쉽게 마음을 주지 않고 흔들리는 형국"이라고 진단했다.
▲지난24일 달성공원앞 세벽시장을 찾은 시민들과 함께 하고 있는 추경호 대구시장 후보 모습 사진=손중모기자
◇ '일자리가 없다' 고향 등지는 청년들, 표심도 표류
이번 선거의 가장 강력한 뇌관은 청년층의 표심 변화다.
대구의 미래를 책임질 대학가와 동성로 일대에서 만난 2030 세대들은 하나같이 '일자리 절벽'을 호소했다.
지역 대학을 졸업하고 1년째 구직 중이라는 윤모 씨(27)는 “대구 내에서 취업을 하려고 해도 연봉이나 복지, 성장 가능성을 기대할 만한 번듯한 기업 자체가 없다"며 “동기들 대부분은 결국 고향을 떠나 수도권으로 가야 대안이 나온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대학생 박모 씨(24) 역시 “청년들은 이제 무조건적인 당 색깔을 보고 표를 주지 않는다. 당장 내 월세와 생활비 부담을 덜어주고, 미래를 그릴 수 있게 해주는 실질적인 대책이 있느냐가 기준"이라고 말했다.
▲지난21일 달성군 화원시장을 찾은 김부겸 대구시장 후보가 더불어민주당 박형룡 달성군 국회의원 보궐선거 유세현장을 방문 관계자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제공=김부겸 대구시장 후보 캠프
실제로 대구는 수년째 극심한 청년 인구 유출 문제를 겪으며 도시의 활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청년층의 이 같은 '정치적 무당파' 성향과 실용주의 확산은 선거 결과의 예측 가능성을 극도로 낮추는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직장인 김모 씨(37)는 “거대 양당 모두 막상 뽑아놓고 보면 기존 정치 체제와 다를 바 없다는 피로감이 크다"며 “누가 더 참신하고 실현 가능한 청년·경제 비전을 보여주는지가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24일 부처님 오신날 대구 동화사에서 대구시장 후보들이 봉축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사진=손중모기자
◇ 9.0%p 격차의 함수… 여전한 '보수 결집' vs 파고드는 '실용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구의 전통적인 정치 지형이 단숨에 뒤바뀌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만만치 않다.
대구는 오랜 세월 보수 정당의 핵심 보루 역할을 해온 만큼, 선거일이 임박할수록 진영 대결 구도가 뚜렷해지며 보수층이 강력하게 결집할 가능성이 항상 상존하기 때문이다.
남구에 거주하는 최모 씨(67)는 “지방 행정 권력까지 야당에 넘겨줄 수는 없다는 위기감이 어르신들 사이에는 여전하다"며 “막판에는 결국 보수 성향 후보로 표가 몰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러한 기류는 최근 여론조사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CBS 의뢰로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실시한 대구시장 후보 지지도 조사에서 국민의힘 추경호 후보는 50.1%,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후보는 41.1%를 기록했다.
두 후보 간 격차는 9.0%포인트로 오차범위 밖에서 추 후보가 앞서 나가고 있다.
정당 지지도 역시 국민의힘(50.0%)이 민주당(25.5%)을 크게 앞서며 보수 우위 구도의 건재함을 증명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민주당 김 후보가 대구에서 40%대 지지율을 확보하며 추격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단순한 진영 대결이었다면 불가능했을 수치가 나온 것은, 그만큼 '경제 심판론'과 '인물론'이 지역 바닥 민심에 파고들고 있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현재 국민의힘 추 후보는 경제부총리 출신이라는 프리미엄을 내세워 '대구 경제 대개조'를 약속했다.
TK 신공항을 중심으로 한 첨단 산업벨트 구축과 대기업 유치로 정면 돌파하겠다는 전략이다.
이에 맞서는 민주당 김 후보는 정당 색채를 지운 '실용형 경제시장'을 표방하며 중도층과 청년층을 공략, 미래 산업 투자와 일자리 확대를 핵심 공약으로 밀고 있다.
결국 이번 대구시장 선거는 단순한 지방자치단체장 선출을 넘어, 보수의 심장에서 일어나는 민심의 질적 변화를 가늠하는 척도가 될 전망이다.
선거 막판 '보수 수성론'이 다시 한번 위력을 발휘할지, 아니면 깊어진 민생고와 청년층의 실용주의가 새로운 정치 지형을 만들어낼지 대한민국 정치권의 이목이 대구로 쏠리고 있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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