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원유시추기(사진=AP/연합)
미국과 이란이 전쟁 종식을 위한 합의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기대감이 커지면서 국제유가가 6년여 만에 최대 월간 하락폭을 기록했다. 다만 글로벌 원유 재고가 빠르게 고갈되고 있다는 경고도 이어지면서 유가가 다시 급등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30일 ICE선물거래소에 따르면 글로벌 원유 벤치마크인 브렌트유 선물 가격은 전장 대비 1.70% 하락한 배럴당 91.12달러로 5월 거래를 마쳤다. 지난달 말 배럴당 110.40달러와 비교하면 한 달 새 19.28달러 하락한 것이다. 이는 코로나19 팬데믹 충격으로 국제유가가 폭락했던 2020년 3월(23.32달러) 이후 최대 월간 하락폭이다. 월간 하락률은 17.46%로 지난해 4월 상호관세 충격(-18.34%) 이후 가장 큰 수준을 기록했다.
국제유가는 특히 지난 25일 하루에만 약 7% 급락한 이후 약세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미국과 이란이 휴전 기간을 60일 연장하고, 이란의 비핵화를 골자로 한 최종 합의를 추진하기 위한 양해각서(MOU) 체결에 근접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다. 여기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최종 승인만 남았다는 외신 보도까지 나오면서 종전 협상이 막바지에 접어들었다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9일(현지시간)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이란과의 종전 협상 MOU와 관련해 “최종 결정을 내리기 위해 지금 (백악관) 상황실에서 회의를 할 것"이라고 적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의 핵무기 개발 중단, 호르무즈 해협의 완전 개방과 통행료 폐지, 이란의 기뢰 제거, 고농축 우라늄에 대한 미국의 회수, 동결 자금 문제를 협상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 등을 주요 조건으로 제시했다.
양측이 실제 합의에 이를 경우 세계 원유 수송의 핵심 통로인 호르무즈 해협이 재개방되면서 전쟁 이후 급등했던 글로벌 에너지 가격 상승 압력도 완화될 수 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망했다.
스웨덴 최대 은행 SEB AB의 비야르네 실드롭 수석 원자재 애널리스트는 “시장은 현재 어떤 형태로든 해결 국면으로 진입하고 있다는 기대감이 매우 높은 상태"라며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는 완전한 합의라기보다는 향후 협상을 지속하면서 핵심 쟁점은 추후 해결하기로 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뉴질랜드은행(BNZ)의 제이슨 웡 선임 시장 전략가도 로이터에 “시장은 결국 합의가 이뤄지고 호르무즈 해협이 다시 개방될 것이라는 전망을 반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브렌트유 월봉(사진=트레이딩뷰)
다만 양측이 종전 합의에 도달하더라도 글로벌 원유 공급이 정상화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은 지적했다. 호르무즈 해협에 설치된 이란의 기뢰가 제거돼야 하고, 가동이 중단된 생산 시설도 재개까지 수개월이 소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란군 공습으로 훼손된 에너지 인프라 복구 작업 역시 필요하다. 원유 운반선이 주요 수입국에 도착하기까지도 수주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라이언 맥케이 TD증권 수석 원자재 전략가는 “원유 생산 정상화와 유조선 운항 재개까지 상당한 시차가 존재하기 때문에 원유 공급은 당분간 크게 제한될 가능성이 높다"며 “공급 정상화 과정에서 추가로 10억 배럴 규모의 공급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문제는 글로벌 원유 재고가 빠르게 고갈되고 있다는 점이다. 각국의 전략비축유 방출 등이 전쟁 이후 유가 급등을 억제해왔지만 시장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완충 여력이 빠르게 소진되고 있는 상황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세계 최대 산유국인 미국에서 정제유 재고는 20여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감소했고, 오클라호마주의 쿠싱 원유 허브 재고 역시 5주 연속 감소해 2300만배럴까지 줄었다. 이는 '최소 운영 수준'으로 여겨지는 2000만 배럴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라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최소 운영 수준은 시설 가동에 필요한 최소 재고량을 의미한다.
앞서 국제에너지기구(IEA)도 이달 초 보고서를 통해 글로벌 원유 재고가 기록적인 수준으로 감소하고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사진=로이터/연합)
미 석유공룡들도 재고 고갈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잇따르고 있다.
닐 채프먼 엑손모빌 수석부사장은 지난 28일 한 콘퍼런스에서 “우리는 전례 없는 수준의 재고 감소 국면에 접근하고 있다"며 “정말, 정말 낮은 수준의 재고"라고 말했다. 이어 “그 시점이 2주 뒤가 될지, 3주 뒤가 될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일단 그 수준에 도달하면 유가는 급등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채프먼 부사장은 재고가 수주 내 사상 최저 수준에 도달할 경우 브렌트유 현물 가격이 배럴당 150~160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어 “유가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상승하면 결국 수요 파괴가 발생하면서 시장 균형을 되찾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재고가 바닥나는 시점이 2~3주 뒤일지, 혹은 3~4주 뒤일지는 알 수 없다"면서도 “핵심은 재고가 최소 운영 수준과 사상 최저 수준에 도달하면 이후 방향은 하나뿐이라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의 또 다른 석유 메이저 셰브런의 마이크 워스 최고경영자(CEO) 역시 “완충 여력이 계속 고갈되고 있고, 현재 수급 불균형을 흡수할 수 있는 시장 능력이 전쟁 초기보다 급격히 축소됐다"며 “앞으로 수주 내 이런 압박이 실물 가격에 반영되면서 6월, 특히 7월로 갈수록 상승 압력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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