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 플라스틱 오염. (사진=영국 맨체스터 대학)
플라스틱 오염은 더 이상 해안가와 도시의 쓰레기 문제에 머물지 않는다. 인간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는 남극과 고산지대부터 우리가 매일 먹는 식탁과 수돗물에 이르기까지 지구 곳곳으로 확산하면서 심각한 환경·보건 위기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국제학술지에 잇따라 발표된 연구들은 플라스틱 오염이 해안과 강, 대기, 극지방 토양을 가리지 않고 침투하고 있고, 야생 생물의 생존과 번식은 물론 인간의 건강까지 위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미세플라스틱보다 작은 나노플라스틱이 식물의 뿌리를 통해 식용 부위까지 이동하고, 영유아가 사용하는 플라스틱 제품에서도 상당량의 미세·나노플라스틱이 방출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15일 파키스탄 카라치, 아라비아해 해안선이 쓰레기와 플라스틱 폐기물로 오염된 가운데 현지 주민들이 해변에서 소라를 줍고 있다. (사진=EPA/연합뉴스)
◇ 지구 구석구석 침투한 플라스틱 오염
영국 플리머스대학교 연구팀은 인도네시아 국가연구혁신청(BRIN), 브루넬대학교 등과 공동으로 전 세계 112개국 5300여 개 해안에서 조사한 결과를 분석해 지난 6월 국제학술지 '원 어스(One Earth)'에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에 따르면, 조사 대상 국가의 93%에서 일회용 식품·음료 용기 플라스틱이 가장 흔한 쓰레기 상위 3위(Top 3)에 들었다. 여기에는 식품 포장재와 병뚜껑, 페트병 등이 포함됐다.
연구팀은 이를 토대로 “지구 해안 플라스틱 오염의 주요 원인이 일회용 소비재라는 점을 지적하면서, 폐기물 처리 단계보다 생산 단계에서의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강을 통한 플라스틱의 해양 유입도 심각하다. 중국 베이징대학교 연구팀이 지난달 국제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전 세계 강을 통해 바다로 유입되는 미세플라스틱의 96%가 개발도상국(Global South)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동남아시아와 동아시아의 강에서 발생하는 유출량이 전 세계의 50% 이상을 차지했다.
연구진은 집중호우 등 기후변화로 인한 폭우가 발생할 때 강의 미세플라스틱 농도가 급격히 높아지는 '펄스 농축(pulse enrichment)' 현상에 주목했다. 평소 축적돼 있던 플라스틱이 폭우와 홍수 때 한꺼번에 하천으로 쓸려 내려가면서 해양 유출의 중요한 경로가 된다는 것이다.
◇ 플라스틱은 대기를 타고 이동하기도 한다.
스위스 연방 재료시험연구소 연구팀이 스위스 물과학기술연구소, 농업연구소와 함께 조사해 지난 8월 국제학술지 '대기 화학 및 물리학(Atmospheric Chemistry and Physics)'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취리히 도심부터 해발 1136m의 고산지대 쇼몽에 이르기까지 매년 약 219톤의 미세플라스틱이 대기를 통해 스위스 국토 지표면으로 내려앉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하수처리장을 통해 배출되는 미세플라스틱 양(연간 약 5톤)을 훨씬 웃도는 수준이다. 플라스틱이 물을 통해서만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대기를 타고 장거리 이동해 산악지역까지 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결과다.
청정 지역으로 인식돼온 남극도 예외가 아니다. 독일 라이프니츠 헬름홀츠 환경연구센터(UFZ)와 이탈리아 베로나대학교 연구팀은 지난 7월 '사이언티픽 리포츠(Scientific Reports)'에 발표한 논문에서 남극 맥머도 드라이 밸리의 상층 토양에서 폴리프로필렌(PP), 타이어 마모 입자(TWP), 폴리에틸렌(PE) 등 나노플라스틱(<1µm)을 처음으로 검출했다고 보고했다. 검출 농도는 토양 1g당 최대 295 ng(나노그램, 1ng=10억분의 1g)에 달했다.
연구진은 이 같은 결과가 장거리 대기 수송뿐 아니라 남극 연구기지와 관광 활동 등 인간의 활동이 남극의 청정 생태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 야생동물의 생존과 번식까지 위협
플라스틱 오염은 단순한 쓰레기 문제가 아니다. 동물이 플라스틱을 섭취하면서 생존과 번식, 면역·대사 등 생리 기능 전반이 훼손되고 있다.
호주 찰스 스터트대학교 걸발리 연구소와 영국 자연사박물관 연구팀이 15년간 조사해 지난달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갈색푸른발슴새 새끼가 1g 이상의 플라스틱을 삼키면 성체가 돼 번식지로 되돌아올 확률이 최소 11% 감소했고, 5g 이상 섭취하면 돌아오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같은 연구팀이 '어스 퓨처(Earth's Future)'에 발표한 16년 추적 연구에서는 2025~2026년 조사된 한 새끼 새의 위에서 894개의 플라스틱 조각(67.4g)이 발견됐다. 연구진은 이 같은 축적이 위 조직의 섬유화를 일으키는 '플라스틱증(Plasticosis)'과 장기 손상, 성장 정지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플라스틱의 세대 간 전달도 확인됐다. 아르헨티나 국립과학기술연구위원회(CONICET)와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데이비스 캠퍼스 연구팀은 지난달 '생태독성학 및 환경안전성(Ecotoxicology and Environmental Safety)'에 발표한 논문에서 파타고니아 연안 남방큰바다제비 새끼의 71.4%가 부모로부터 플라스틱을 전달받았으며, 간 효소 변화와 근육·면역 기능 이상 등이 나타났다고 밝혔다.
산호초와 남극 생태계도 영향을 받고 있다. 중국 산터우대학교 연구팀은 지난 5월 '환경 과학 기술(Environmental Science & Technology)'에서 플라스틱이 산호의 괴사·백화와 질병 감염을 높이고 칼슘 축적을 방해해 해수 온난화와 함께 산호초 붕괴를 가속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 스토니브룩대학교 연구팀은 '사이언티픽 리포츠(Scientific Reports)'에서 남극 크릴의 미세플라스틱 노출이 먹이사슬과 해양의 탄소 저장 기능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일본 규슈대학교와 이화학연구소(RIKEN) 연구팀은 지난 7월 '해양 오염 회보(Marine Pollution Bulletin)'에서 갯강구가 스티로폼(EPS)을 먹고 미세플라스틱으로 배설하는 과정에서 사이토크롬 P450 등 대사 관련 유전자 발현이 증가하고 장내 미생물 균형도 깨진다고 밝혔다. 플라스틱이 생물의 몸을 통과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생리와 미생물 생태계까지 변화시킬 수 있다는 의미다.
▲방사선 영상을 통해 나노플라스틱이 벼의 뿌리에서 줄기·잎 등 지상부로 이동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시간이 지날수록 뿌리보다 지상부에서 나노플라스틱 신호가 강해졌다. 다만 흡수되는 양 자체는 적고, 대부분의 나노플라스틱은 토양에 남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료=Chen, Y. 등. Envirionmental Science and Technology, 2026)
▲한약 속의 미세플라스틱 전자현미경 사진. (사진=에너지경제신문 DB)
◇ 식탁까지 들어온 나노플라스틱
플라스틱 입자는 크기가 작아질수록 문제가 복잡해진다. 특히 나노미터(nm) 크기의 입자(나노플라스틱, 1㎛ 미만)는 세포와 조직 장벽을 통과할 가능성이 있어 인체 건강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중국 저장대학교와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리버사이드 캠퍼스 연구팀이 지난달 '환경 과학 기술'에 발표한 연구는 방사성 동위원소(탄소, 14C) 기술을 이용해 80nm 크기의 폴리스티렌 나노플라스틱이 벼 뿌리를 통해 흡수된 뒤 쌀알까지 이동·축적된다는 사실을 정량적으로 입증했다. 쌀알에서 검출된 농도는 1g당 2.43 µg(마이크로그램, 1µg=100만분의 1g)이었으며, 연구팀은 성인 1인당 쌀을 통한 나노플라스틱 일일 섭취량을 약 0.35mg으로 추정했다.
연구진은 나노플라스틱이 세포막을 통과해 간·뇌 등 주요 장기에 축적되고 염증과 신경독성을 유발할 가능성을 경고했다. 다만 실제 인체에서의 건강 영향과 질병 발생의 인과관계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으며 추가적인 독성학·역학 연구가 필요하다.
영유아도 취약한 노출 대상이다. 영국 퀸즈대학교 벨파스트 캠퍼스 연구팀이 'npj 식품 과학(npj Science of Food)'에 발표한 체계적 문헌고찰에 따르면, 플라스틱 젖병(IFB)과 모유 저장팩 등 조리·수유 기구에서 미세·나노플라스틱과 합성 올리고머가 방출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영유아의 높은 체중당 섭취량을 고려할 때 산화 스트레스와 장내 미생물 불균형, 영양소 흡수 장애 등이 발생할 가능성을 지적했다.
수돗물 관리도 과제다. 미국 노스다코타주립대학교와 UCLA 연구팀은 '환경 과학 기술'에서 미세플라스틱 규제가 제도화 단계에 들어서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 환경청(EPA)은 지난 4월 음용수 예비 오염물질 목록(CCL 6)에 미세플라스틱을 포함했으며, EU와 미국 캘리포니아주 등도 측정·관리 표준화를 추진하고 있다.
▲지난달 20일 인도네시아 발리 덴파사르에서 사람들이 '세계 청소의 날(World Cleanup Day)' 행사의 일환으로 맹그로브 숲 지역의 플라스틱 쓰레기를 수거하고 있다. (사진=EPA/연합뉴스)
▲2024년 1월 12일 스페인 타라고나의 라 피네다 해변에서 관찰된 미세플라스틱. (사진= AFP/연합뉴스)
◇ '금지'에서 '원헬스'로… 플라스틱 규제 패러다임 변화
플라스틱 규제가 특정 제품을 금지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인간·동물·환경의 건강을 하나로 묶어 관리하는 '원헬스(One Health)' 접근으로 확대되고 있다.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팀은 지난 8월 국제학술지 '환경과학 프론티어스(Frontiers in Environmental Science)'에 미세플라스틱 규제를 원헬스 관점에서 분석한 연구를 발표했다. 연구진은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입법 과정을 사례로 들었다. 캘리포니아는 2015년 화장품의 미세구체(마이크로비드) 금지법(AB 888)을 시작으로 식수 내 미세플라스틱 측정(SB 1422), 건강 영향 평가(SB 1147), 종합 대응 전략(SB 1263)으로 규제를 확대했다. 2022년에는 일회용 플라스틱 생산자에게 재활용과 감축 책임을 부과하는 SB 54법을 도입했다. 특정 제품을 규제하는 방식에서 생산·소비·폐기 전 과정을 관리하는 체계로 발전한 것이다.
연구진은 “원헬스 접근이 플라스틱 오염을 환경 문제에 국한하지 않고 인간과 생태계의 건강 문제로 확대해 규제의 필요성을 높이고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참여를 이끌었다"고 평가했다. 국제적 규제를 위해서는 용어와 측정법의 표준화, 부처 간 협력, 플라스틱 원천 감축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국제 차원의 대응도 중요하다. 중국 칭화대와 미국 UC 샌타바버라, UC 버클리 연구팀은 지난달 '사이언스(Science)'에 국제 플라스틱 협정(Global Plastics Treaty)의 과제를 담은 정책 제언 논문을 발표했다. 연구진은 국가별 플라스틱 생산·소비·폐기 데이터의 표준화와 의무 공개, 신유재(Virgin plastic)와 재생 플라스틱(Secondary plastic)의 공급망 추적, 오염 핫스폿 관리 등을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전문가들은 '쓰레기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만으로 플라스틱 위기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일회용품과 포장재의 생산 감축, 산업용 원료 펠릿 유출 차단, 미세플라스틱 정수 기술 적용, 영유아 제품 안전기준 마련 등 생산부터 소비·폐기까지 전 과정의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결국 2027년 타결을 목표로 추진되는 국제 플라스틱 협정이 실질적인 법적 구속력을 확보하고 플라스틱 생산 감축이라는 핵심 과제를 담아내야 지구 생태계와 인류의 건강도 확보할 수 있을 전망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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