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전지성 기자
석탄발전소 폐쇄가 본격화하는 가운데 발전공기업 통합본사 입지를 '정의로운 전환'의 관점에서도 따져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발전소 폐쇄로 일자리와 지역경제의 충격이 예상되는 지역에서 기존 발전공기업의 본사 기능까지 빠져나간다면 지역이 감당해야 할 부담이 커질 수 있어서다.
특히 경남은 삼천포와 하동을 중심으로 석탄발전 폐쇄가 이어지는 지역이다. 진주에는 삼천포발전본부 등을 운영하는 한국남동발전 본사가 자리 잡고 있다. 발전공기업 통합을 단순한 조직·인력 효율화에 그치지 않고 석탄발전 지역을 새로운 에너지산업으로 전환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핵심은 석탄발전소를 언제 폐쇄하느냐만이 아니다. 발전소와 함께 성장해온 협력업체와 노동자, 지역경제를 어떤 산업과 일자리로 연결할 것인지가 정의로운 전환의 성패를 좌우한다. 통합발전사가 향후 재생에너지와 에너지전환 사업을 주도한다면 본사 입지 역시 이러한 역할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지를 따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 발전소 폐쇄에 본사 기능까지…지역경제 '이중 부담'
경남이 통합본사 유치의 주요 근거로 내세우는 것은 석탄발전 폐쇄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전환의 현장'이라는 점이다.
삼천포·하동 등 기존 석탄발전 지역에서는 발전소 폐쇄에 따라 발전사 직원뿐 아니라 협력업체와 지역 상권 등으로 충격이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 발전공기업 통합 과정에서 기존 본사 기능까지 다른 지역으로 이전할 경우 공공기관 이전을 통해 형성된 고용과 소비, 지역기업과의 거래 관계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허성두 진주시 공공기관 유치위원장은 에너지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서부경남은 삼천포 등 석탄화력발전소 폐지에 따른 산업 전환을 앞두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기존 발전공기업의 본사 기능까지 지역에서 빠져나간다면 새로운 에너지산업과 일자리를 만들어야 하는 지역으로서는 이중의 부담을 안게 된다"고 말했다.
남동발전이 지역경제에서 차지하는 역할도 작지 않다는 게 진주 측 설명이다. 허 위원장이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남동발전의 2025년 지역인재 채용률은 38.7%로, 2018년 이후 340명의 지역인재를 채용했다. 지난해 지역 물품 구매 규모도 약 388억원에 달했다.
본사 이전의 영향을 단순히 직원 숫자로만 계산하기 어려운 이유다. 본사 기능이 이동하면 지역인재의 취업 기회뿐 아니라 지역기업의 물품·용역 구매와 협력사업, 임직원 소비 등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다만 이 같은 수치만으로 통합본사를 진주에 둬야 한다는 결론이 곧바로 도출되는 것은 아니다. 다른 발전공기업이 자리 잡은 지역 역시 통합에 따른 고용·경제적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통합본사 입지를 결정할 때 기존 본사 기능이 빠져나가면서 각 지역이 입게 될 손실까지 동일한 기준으로 비교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 '발전소 폐쇄'가 아니라 '산업 전환'이 돼야
정의로운 전환의 관점에서 더 중요한 문제는 기존 발전지역에 무엇을 새로 만들 것인가다.
허 위원장은 통합발전사의 구매·투자 기능을 경남 제조업과 연결하고, 해상풍력 등 재생에너지 사업을 조선·기계산업과 연계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통합공기업의 규모가 커지는 만큼 발전설비와 에너지 기자재 구매·투자 역량도 확대될 수 있어 이를 지역 제조업과 연결하면 기자재 국산화와 공급망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석탄발전 폐쇄지역도 새로운 에너지산업의 거점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허 위원장은 “기존 삼천포 등 석탄발전 지역을 새로운 에너지산업과 일자리의 거점으로 전환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라며 “발전소 폐지에 따른 지역경제의 충격을 줄이고 새로운 산업을 육성하는 전환 모델을 만들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보면 통합발전사의 역할은 발전소를 운영·폐쇄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석탄발전 지역에 남아 있는 발전산업 인력과 인프라를 활용해 재생에너지와 새로운 발전사업을 유치하고, 기존 협력기업이 새로운 시장으로 이동하도록 지원하는 역할까지 요구된다.
경남의 경우 발전공기업과 조선·기계 등 제조업, 석탄발전 폐쇄지역이 한 지역에 함께 있다는 점을 전환의 기반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게 진주 유치 측의 논리다. 허 위원장은 “에너지를 생산하는 발전공기업과 에너지 기자재를 만들 수 있는 제조업, 석탄발전에서 새로운 에너지산업으로 전환해야 하는 지역이 함께 있다는 점"을 경남의 강점으로 꼽았다.
◇ 본사가 온다고 일자리 생기나…'전환 계획'이 관건
통합본사 유치 자체를 정의로운 전환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는 점도 짚어볼 필요가 있다. 본사가 같은 지역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폐쇄 발전소 노동자의 고용이 승계되거나 새로운 산업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주 유치론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본사를 지켜야 한다'는 주장에서 한발 더 나아가 통합발전사의 투자와 사업이 실제 삼천포·하동 등 폐쇄지역으로 어떻게 연결될 것인지를 보여줘야 한다.
통합발전사의 재생에너지 투자 가운데 폐쇄 발전지역에 어느 정도를 배분할 것인지, 기존 발전인력을 어떤 직무로 전환할 것인지, 협력업체가 새로운 발전산업 공급망에 참여하도록 어떤 지원을 할 것인지 등이 구체화돼야 한다.
허 위원장 역시 통합이 단순히 5개 회사를 하나의 법인으로 합치는 데서 끝나서는 안 된다며 “재생에너지 확대와 정의로운 전환이라는 새로운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조직과 기능을 재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발전공기업 통합과 석탄발전 폐쇄가 동시에 진행되는 만큼 두 정책을 별개로 보기 어려워졌다. 통합본사 입지 역시 어느 지역에 공공기관 하나를 더 배분할 것인가가 아니라, 석탄발전 이후의 산업과 일자리를 어디에서,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라는 질문과 함께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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