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이 2조5000억원 규모로 추진하려 했던 유상증자 결정을 철회했다. 10월 30일 '기습 발표' 된 유상증자는 직후 시장의 강한 반발에 부딪혔고, 금융당국으로부터도 제지를 받았다. 결국 발표 이후 15일 만에 전격 철회로 해프닝은 막을 내렸다. 13일 고려아연이 개최한 기자회견에서 최윤범 회장은 “주주 보호와 시장의 안정을 도모하고, 신뢰를 회복하는 가장 합리적이고 최선의 방안이라고 판단해 일반공모 유상증자를 관련 법규와 정관 등이 정한 절차에 따라 철회하기로 결의했다"고 밝혔다. 최초 유상증자 결정이 공시된 후 불과 15일 만의 일이다. 앞서 고려아연은 영풍-MBK파트너스 연합과의 경영권 분쟁으로 올 10월 4일부터 23일까지 자사주 공개매수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공개매수가 마무리된 이후에도 영풍 측보다 많은 지분을 가질 수 없던 상태였다. 업계에서는 오히려 영풍 측의 우위를 점치던 상황이었다. 급기야 고려아연은 10월 30일 보통주 373만2650주를 주당 67만원에 발행하는 대규모 유상증자를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발행 규모는 전체 발행주식의 20%, 총 2조5000억원 규모에 달했다. 성공만 한다면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에 우호 지분 3~4% 추가 확보가 예상됐다. 하지만 대규모 주가 희석이 예상되는 만큼 발표 직후 시장의 반발이 거셌다. 자사주 공개매수를 위해 차입한 2조6000억원의 상환 자금을 조달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공개매수 당시 고려아연이 내세웠던 자사주 소각 등 주가 부양책도 속임수에 불과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급기야 150만원에 달하던 고려아연 주가는 내리막길을 거듭한 끝에 10월 31일 99만원대까지 급락하기도 했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경영권 방어 목적의 차입금을 일반 주주에게 전가하는 행위"라며 반대 성명을 냈다. 당국도 좌시하지 않았다. 금융감독원은 10월 31일 고려아연 측에 대해 “부정 거래 등 위법 혐의가 확인되는 경우 해당 회사뿐 아니라 관련 증권사에도 엄중히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공개매수 종료부터 유상증자까지 불과 일주일의 시간밖에 걸리지 않은 만큼, 공개매수 중 유상증자를 계획했으면서 이를 사전에 주주들에게 알리지 않았다고 본 것이다. 공개매수 및 유상증자 주관·모집 등을 담당한 미래에셋증권과 KB증권에 대해 현장검사에 착수하기도 했다. 미래에셋증권의 경우 공개매수와 유상증자를 동일 팀에서 진행한 점이 도마 위에 올랐다. 또한 이사회 승인 과정에서 충분한 검토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이에 11월 1일 고려아연이 유상증자와 관련한 해명 입장문을 냈으나 시장과 당국에서는 대체로 미흡하다는 반응이었다. 이어 6일에는 금감원이 고려아연에 유상증자 정정 신고를 요구, 공모 효력 정지를 결정하기도 했다. 그 사이 영풍-MBK파트너스 측이 장내 매수로 고려아연 지분을 추가 취득하며 포위망을 좁혀오자, 결국 고려아연도 백기를 들었다. 고려아연은 지난 8일부터 주말까지 주요 기관투자자들과 면담을 진행하며 유상증자에 관한 의견을 청취했다. 전날 고려아연 컨퍼런스 콜에서는 유증 철회를 암시하는 발언이 나왔으며, 결국 이날 오전 이사회를 통해 유증 철회가 결정됐다. 이날 최윤범 회장은 “앞으로도 주주들과의 적극적인 소통을 통해 신뢰를 회복하고, 기업가치 제고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성우창 기자 suc@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