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효순 메디컬전문기자
의료계가 윤석열 정부의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추진으로 유례 없는 진통을 겪고 있는 가운데 수백년 국민 속에 뿌리 내린 한의약이 잇단 호재 속에서 새롭게 조명을 받고 있다.
한약 독성에 관한 잘못된 인식을 불식하는 '빅데이터'가 쌓여가고,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의 범위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최근 한의 의료기관에서 처방한 한약은 간(肝) 독성으로부터 안전하다는 사실이 67만명이 넘는 대규모 환자군을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를 통해 입증됐다. 대한한의사협회(한의협)는 이같은 연구 결과를 내놓으며 “악의적으로 한약을 폄훼하며 거짓 뉴스를 퍼뜨리는 세력들은 깊은 반성과 국민 앞에 사죄하라"며 이례적으로 촉구했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원성호 교수팀과 단국대 이상헌 교수는 지난 2011년부터 2019년까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청구 데이터를 이용해 67만 2411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한의의료기관을 통한 한약 처방이 '약물유발 간 손상' 위험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연구를 진행했다.
그 결과, 한의의료기관에 내원했거나 한약 처방을 받은 후 90일 이내에 약물유발 간 손상 발생 위험이 증가하지 않았으며, 특히 외래환자군에서는 위험도가 1.01(95% 신뢰구간, 1.00∼1.01)로 거의 변동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반면에 일반 병의원에 내원해 약물 처방을 받은 환자군에서는 양방 병·의원 방문 후 3∼15일 이내 약물유발 간 손상 발생 상대 위험도가 1.55(95% 신뢰구간, 1.55~1.56)로 나타났다. 이번 연구 내용은 국제학술지 'Frontiers in Pharmacology' 올해 1월호에 게재됐다
한의협 측은 “이번 연구는 지금까지 '한약은 간에 나쁘다'며 국민을 호도하던 일부 양의계의 주장이 전혀 근거 없는 악의적인 거짓말이라는 것을 명명백백히 밝혀준 값진 결과"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어 “대규모 데이터를 활용한 학술논문을 통해 한약이 간에 안전하고 나아가 간 건강에 도움이 되는 사실이 입증된 만큼 한약을 폄훼하고 비방해 오던 세력들은 즉각 잘못된 행동을 멈추고 깊은 반성과 함께 국민과 한의계에 진솔한 사과를 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한의협은 지난 14일 국회에서 열린 '의료인력 수급추계기구 법제화를 위한 공청회'와 관련해 “의료인력 수급추계위원회는 단순히 양의사의 인력수급추계뿐 아니라 치과의사, 한의사, 간호사 등 의료인의 인력을 수급추계하고 결정하는 자리인만큼 논의 과정에서 반드시 한의사의 참여가 필요하며, 한의사가 배제된 의료인력수급 논의는 의료체계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불완전한 정책이 될 것임을 경고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의협은 '지역필수 공공의료한정의사' 제도를 의정갈등으로 야기된 의료대란 사태 해결의 대안으로 이미 제시한 바 있다. 2만명을 훌쩍 넘는 한의사를 활용함으로써 부족한 의료인력을 충원할 수 있으며, 의대 정원 증가 폭을 줄여 사회적 합의를 이룰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초음파와 뇌파계에 이어 X-레이 진단기기까지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을 인정하는 판결도 잇따르고 있다.
몇 년 전부터 한국한의약진흥원이나 한국한의학연구원 등 한의약 공공기관과 대한한의학회·대한약침학회 등 학계에서 한방치료법의 과학적 안전성과 유용성을 입증하는 연구 결과가 다수 쏟아졌다.
국가보건의료의 근간이 흔들리며 국민건강이 풍전등화에 처한 현실에서 정부와 보건당국은 한의약과 한의계를 도외시한 상태에서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하는 일이 더 이상 없어야 한다. 근거 없는 주장으로 한약 부작용을 호도하는 사례도 사라져야 할 것이다.
국민건강증진의 한 축으로 한의약을 적극 육성하는 전향적인 자세가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