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오염 감시망. 드문드문 설치된 정규 대기오염 측정망과 더불어 저렴한 측정 센서를 촘촘히 설치할 경우 시민 건강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자료=챗GPT 이미지)
2017년 5월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직후 서울의 한 초등학교를 찾아 전국 초·중·고 1만1000곳에 간이 미세먼지 측정기를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대통령은 대당 600만원 정도인 측정기를 전국 학교에 설치하는 데 약 600억원을 투입하겠다는 구상을 내놨다. 학교 주변의 미세먼지를 보다 촘촘하게 측정하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곧바로 반론이 나왔다. 간이 측정기의 정확도가 낮아 학교마다 설치하는 것이 과연 실효성이 있느냐는 지적이었다. 당시 교육계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미 환경부 조사에서 간이 측정기의 정확도 문제가 제기됐다는 주장도 나왔다. “정확하지 않은 측정기를 학교마다 설치하는 것보다 공기청정기 등 실제 대응수단에 예산을 쓰는 것이 낫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국회 예산심사 과정에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결국 2017년 7월 국회 예결위 조정소위는 문 대통령이 약속했던 학교 미세먼지 측정기 사업의 국가 예산 90억원을 삭감했다. 당시 반대 측에서는 간이 측정기가 학생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고, 기존 대기질 정보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대형공사장에 설치된 미세먼지 간이측정기. [사진= 서울시보건환경연구원]
◇'정확하지 않으니 무용지물'이라는 생각, 맞았을까
9년이 지난 지금 이 논쟁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연구가 나왔다.
미국 노스이스턴대 연구진은 최근 국제학술지 '환경 과학 기술(Environmental Science & Technology)'에 발표한 논문에서 도시 대기질 측정망의 공간적 한계를 분석했다. 연구진은 보스턴 지역에서 기준에 맞는 고정식 측정소와 저비용 이동형 센서를 반경 250m 이내에서 비교했다.
결과는 흥미로웠다. 평균적인 초미세먼지(PM2.5) 농도 차이는 ㎥당 2.0㎍(마이크로그램, 100만분의 1g)정도였지만, 특정 국지적 오염 사건에서는 두 측정값의 상대적 차이가 300%를 넘었고 농도 차이가 최대 800㎍/㎥에 이르기도 했다.
'좋음', '보통', '나쁨' 등 대기질지수의 등급(AQI) 자체가 달라진 경우도 10.4%에 달했고, 한 지점에서는 봄철 측정 기간의 21.8%에서 서로 다른 AQI 등급이 나타났다.
◇'정확한 측정소 하나'보다 '촘촘한 눈'이 필요한 이유
연구진이 주목한 것은 측정기의 정확도만이 아니었다. 도시의 공기는 생각보다 훨씬 불균일하다는 사실이었다.
실제로 연구에서는 건물에서 발생한 연기와 측정소 주변에서 공회전하던 배송 트럭 등 국지적인 오염원이 불과 한 블록 이내의 공간에서도 급격한 PM2.5 농도 차이를 만들어냈다. 건물 사이의 바람길이나 도로 교통량 같은 조건도 수십m 단위의 오염 농도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다.
따라서 아무리 정확한 측정기라도 측정소가 멀리 떨어져 있다면 그 측정소가 측정하지 않은 공간의 오염 상태까지 정확하게 대변한다고 보기 어렵다.
반대로 개별 센서의 측정값에 어느 정도 오차가 있더라도 이를 수백~수천 개의 지점에 촘촘하게 설치하고, 기준측정소와의 비교·보정 및 데이터 분석을 병행한다면 도시의 오염 분포를 훨씬 세밀하게 파악할 수 있다.
▲대기오염 자동 측정 장치 [사진=연합뉴스. 전남보건환경연구원 제공]
◇'정확도'와 '공간 해상도'는 함께 봐야
이는 2017년 한국에서 벌어졌던 논쟁에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당시 논쟁은 주로 “간이 측정기가 얼마나 정확한가"에 초점이 맞춰졌다. 그러나 최신 연구가 보여주는 것은 정확도만으로 측정망의 가치를 판단할 수 없다는 점이다. 측정기의 정확도와 측정망의 공간적 밀도는 서로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국가 기준측정소는 여전히 반드시 필요하다. 대기환경 기준을 판단하고 장기간의 추세를 비교하기 위해서는 정확하고 표준화된 측정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시민의 실제 미세먼지 노출을 모두 설명하기는 어렵다. 학교, 어린이집, 통학로, 골목길, 도로변, 산업시설 주변처럼 생활공간에 저비용 센서를 촘촘하게 설치하고 기준측정소와 연계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촘촘히 설치한 저비용 센서의 오염 수치가 높다면 집중적인 원인 파악에 나서고, 그에 따른 대책을 수립해 추진하면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
핵심은 '정확한 측정소냐, 부정확한 간이 측정소냐'의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정확한 기준측정소를 '기준점'으로 삼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센서를 '촘촘한 눈'으로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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