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내에 설치된 시중은행 현금지급기
국내 은행과 보험사들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해외 투자에 본격적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국내 금융업계의 핵심 타깃이었던 내수 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른 데다 급속한 고령화마저 겹친 탓이다. 탄탄한 재무구조를 바탕으로 다양한 투자처를 물색하면서 국내 금융업계 사상 최대 규모의 해외 투자가 잇따를 가능성도 제기된다.
29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국내 주요 금융사들은 최근 미국과 아시아를 중심으로 보험사와 자산운용사, 은행, 소매금융사 등에 대한 지분 투자와 인수합병(M&A) 기회를 잇따라 검토하고 있다.
가장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곳은 삼성그룹 계열 금융사들이다. 삼성생명은 미국 자산운용사 프린시펄파이낸셜그룹 지분 10%대 중반을 인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거래 규모는 최대 6조원(44억달러)에 이를 수 있다.
블룸버그는 삼성생명의 투자가 실제로 성사될 경우 그동안 국내 금융사들이 주로 공략해온 신흥 아시아 시장이 아닌 미국 시장에 대규모로 베팅하는 상징적인 거래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삼성화재도 해외 사업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삼성화재는 지난 2019년 영국 로이즈 시장의 전문보험사 카노피우스그룹에 1억5000만달러를 투자한 데 이어 지난해 지분율을 40%까지 끌어올렸다. 최근에는 보유 지분을 최대 90%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S&P글로벌레이팅스의 에밀리 이 아시아태평양 금융기관 평가 담당 디렉터는 “삼성화재의 자본력은 향후 2년간 점진적인 해외 사업 확장을 추진할 수 있는 충분한 여력을 제공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국내 은행과 증권사들도 해외 투자 기회를 적극적으로 찾고 있다.
JB금융그룹은 최근 인도네시아 금융당국으로부터 KB부코핀파이낸스 지분 85% 인수 승인을 받았다.
KB국민은행은 베트남 테크콤뱅크를 잠재적인 투자 대상으로 검토하고 있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블룸버그에 “테크콤뱅크는 검토 중인 여러 잠재적 투자 대상 가운데 하나"라면서도 “현재 구체적인 지분 인수 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미래에셋증권도 해외 투자 기회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상태다.
국내 금융사들의 해외 진출 움직임이 본격화하면서 글로벌 투자은행(IB) 업계도 주목하고 있다. 통상 연간 두 차례 정도 한국을 방문하던 한 글로벌 금융업계 고위 관계자는 올해 들어 이미 다섯 차례 한국을 찾았으며 연말 이전에 다시 방문할 예정이라고 블룸버그에 말했다.
글로벌 투자은행 씨티그룹의 카우스투브 쿨카르니 아시아태평양 투자은행 총괄은 “더 많은 한국 은행과 보험사들이 해외 성장을 모색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블룸버그는 한국 금융사들의 해외 인수합병 자체가 새로운 현상은 아니지만 이번에는 잠재적인 투자 규모가 과거와 다르다고 평가했다. 특히 낯선 해외 기업을 단번에 인수해 경영권을 확보하기보다는 먼저 소수 지분을 취득하거나 파트너십을 맺어 현지 사업에 대한 경험을 쌓은 뒤 단계적으로 투자를 확대하는 방식을 검토하는 금융사들이 늘고 있다.
▲일본 도쿄 거리(사진=EPA/연합)
이 같은 전략은 일본 금융사들의 해외 진출 경험을 적극적으로 참고한 결과로 풀이된다. 일본 금융업계는 현재 한국이 겪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저성장과 고령화, 내수시장 포화에 대응하기 위해 수십 년 전부터 해외 사업을 확대해왔다.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는 도쿄해상홀딩스가 꼽힌다. 도쿄해상은 잇따른 해외 인수를 통해 내수 중심 보험사에서 글로벌 보험사로 탈바꿈했으며 현재 해외 사업이 전체 이익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많은 한국 보험회사들이 일본 금융사들을 연구하면서 어떻게 하면 '한국의 도쿄해상'이 될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일본 금융사들의 해외 진출 경험이 모두 성공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미쓰비시UFJ파이낸셜그룹(MUFG)과 스미토모미쓰이파이낸셜그룹(SMFG) 등 일부 일본 은행들은 동남아시아 금융회사들을 높은 가격에 인수했다가 이후 해당 기업들의 주가가 급락하면서 대규모 손상차손을 반영해야 했다.
국내에서도 비슷한 시행착오 사례가 있다. 국민은행은 2018년 인도네시아 부코핀은행(현 KB뱅크) 지분 22%를 인수한 뒤 2020년 경영권을 확보했지만, 유상증자를 통해 2021년 3935억원, 2023년 7090억원을 투입해 경영 정상화에 나섰다.
블룸버그는 이러한 경험이 국내 금융업계의 해외 투자 전략을 보다 선별적으로 바꾸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짚었다.
국내 주요 금융그룹들은 10년 넘게 동남아시아에서 사업 기반을 구축해왔으며 인도와 베트남 등은 높은 성장 잠재력 덕분에 여전히 매력적인 시장으로 꼽힌다. 그러나 최근에는 단순히 해외 사업의 외형을 키우기보다 실제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는지에 더욱 무게를 두는 분위기라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국내 금융주들이 수익성 개선과 배당 확대, 자사주 매입 등에 힘입어 투자자들로부터 재평가를 받고 있는 점도 해외 투자에 대한 눈높이를 높이고 있다. 해외 진출 역시 단순한 외형 확대가 아니라 주주가치를 높일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수익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심종민 CLSA증권 서울 리서치 총괄은 “국내 시장이 성숙했고 인구구조도 악화하고 있어 한국 금융사들에게 해외 진출은 사실상 피하기 어려운 선택이 되고 있다"면서도 “역사를 보면 단순히 해외에서 성장을 사들이는 방식은 자본을 훼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기업들은 수익성에 집중해야 한다"며 “주주들은 금융사들이 해외에서 무작정 '복권'을 사듯 투자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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