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은 크리스마스 이브에 주주들에게 '산타'가 되어 깜짝 선물을 내놓았다. 바로 이번 임시주총에서 집중투표제를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집중투표제는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지배주주의 전횡과 방만한 경영이 경제위기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되면서, 이를 개선하기 위한 자생적 노력의 일환으로 도입됐다. 소액주주의 권리를 보호하고 소액주주가 지배주주에 대한 견제 세력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는 제도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재계를 중심으로 대기업들이 이 제도를 환영하지 않는 분위기를 만들자 실제로는 도입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의 결과를 낳았다. 상법에 도입됐으나, 기업들이 정관에 반영해야 한다는 단서가 달렸기 때문이다. 즉, 원치 않는 기업들은 적용하지 않아도 됐다.
재계가 집중투표제 도입을 강력히 반대한 배경에는 지배구조가 흔들릴 수 있다는 불안감과 외부 인사의 이사회 진입을 차단하려는 의도가 자리잡고 있었다. 이처럼 재계가 사활을 걸고 저지하려 했다는 점은 오히려 이 제도가 얼마나 선진적인 기업 지배구조 개선책인지를 반증한다.
그런데 이번에 고려아연은 상식을 뒤집는 선택을 했다. 그들은 오히려 이사진을 열어주는 선택을 했다. 최윤범 회장 측의 지분율이 낮아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이는 타당한 주장이 아니다. 국내 상장사 중에는 낮은 지분율에도 다양한 방법을 통해 상대방의 지분을 인정하지 않고 승리한 경우가 많다. 지난달 상장사 주총에서는 법원이 의결권 행사금지 가처분을 인정했음에도 의결권을 행사하거나, 의결권 수거함을 들고 도망가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MBK파트너스가 지분율을 높이더라도 이사회 문턱을 넘지 못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이 많은 것이 K-주주총회의 현실이다.
그럼에도 최 회장은 MBK에게 이사진을 열어주는 통 큰 선택을 했다. 이는 고려아연을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의 회사로 격상시킬 전망이다. 우선, 주주권이 한 단계 격상됐다. 집중투표제가 도입된다면 1주의 가치는 예전보다 제고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집행임원제도를 도입해 이사회 중심의 선진 경영이 이루어질 전망이다. MBK와 같은 동아시아 1위 사모펀드가 엄선한 걸출한 이사 후보들이 이사진에 합류하면, 회의체 기구인 고려아연 이사회에서는 다양한 의견 교류가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최 회장은 집중투표제를 들고 나오며 이미지 쇄신에도 성공했다. 그간 최 회장은 유상증자라는 '최악의 수'를 둔 경영자로 인식됐으나, MBK 등 주주와의 공생을 선택함으로써 '대인배의 풍모'를 지닌 인물임을 보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