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인상엔 권력 공백기가 적기인가. 계엄령 파동과 탄핵정국에 따른 국정 불안의 어수선한 틈을 타 지난해 말부터 식품·화장품·패션 등 업종에서 가격인상 물꼬가 터졌다. 지난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줄인상에 나섰던 유통업계에 또 다시 국정 불안이 호재로 작용하는 있는 분위기다.
“원부자재·물류비 상승으로 불가피하게 가격을 올렸다"는 업계의 해명마저 8년 전과 '판박이'다. 더욱이 물가 안정을 내걸고 몇 년 간 가격 동결의 뚝심을 보였던 업체마저 인상 카드를 꺼내든 것이 시기의 우연이라 보기엔 찝찝한 느낌을 남긴다.
물론 업체들 속사정을 들어보면 나름 억울한 면이 없지 않다. 글로벌 통상 환경 등 대외변수까지 맞물리며 원달러 환율 1500원(6일 오전 현재 1469.5원)을 넘보고 있어 기업의 가격 인상은 수익성 보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지라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소비자들의 소득은 제자리걸음인 상황에서 서민생활과 밀접한 품목의 가격만 치솟고 있어 국민들의 생계를 더욱 옥죄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시간당 최저임금(시급)은 지난해(9860원)보다 170원(1.7%) 찔끔 오른 1만30원이다. 코로나19 팬데믹 확산세로 위기 상황이던 2021년(1.5%) 이후 역대 최저 인상률이며, 지난해 소비자물가 상승률(2.3%)에도 못 미친다는 점에서 '최저임금 1만원대 시대'라는 의미 부여는 서민생활과 동떨어진 느낌을 준다.
물가 인상이 컨트롤타워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구조에서 진행되는 점도 문제다.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아 1인 4역을 소화해야 하는 형국인지라 물가 안정을 포함한 주요 민생현안이 뒷전으로 밀리고, 민간시장의 동향을 실효적으로 제어할 조치 능력마저 버거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최근 4개월 연속 1%대 물가 상승률을 유지중이지만 환율 급등 여파로 1월 소비자물가가 다시 반등할 가능성이 있다는 한국은행의 진단이 나왔다. 국정이 혼란스러울수록 빨리 수습하고, 국민생활을 안정시키는 게 정부의 책무다.
물가 변동성이 확대되는 설 명절이 3주 앞으로 다가왔다. 과일을 비롯해 국내 농산물 가격이 급등하고 있으며, 수입가공식품도 고환율로 인상 압박을 받고 있다. 가격인상 충격을 최소화하는 실효성 높은 물가대책이야 말로 국정 혼란을 막고 민심을 진정시키는 상책(上策)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