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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중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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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곡 왜관철교, 전쟁의 상징에서 야간관광 명소로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6.08.04 05:57

1950년 8월 3일 오후 8시 30분 폭파된 '낙동강 방어선'의 상징…역사의 현장 찾다


전쟁의 비극 품은 호국의다리, 이제는 시민 쉼터이자 평화 되새기는 역사문화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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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 폭발음이 울려 퍼졌던 경북 칠곡군 왜관철교(호국의다리)가 1950년 8월 3일 폭파 시각인 오후 8시 30분, 평화의 불빛으로 낙동강을 밝히고 있다. 사진= 박종석 칠곡군 홍보팀장


칠곡=에너지경제신문 손중모기자 1950년 8월 3일 오후 8시 30분. 낙동강을 가르던 거대한 폭발음은 76년이 흐른 지금, 잔잔한 음악과 은은한 조명으로 바뀌었다.




폭파 시각에 맞춰 찾은 칠곡 왜관철교는 한여름 밤의 불빛 속에서 조용히 낙동강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강물 위로 길게 드리운 철교의 조명은 마치 전쟁의 상처를 어루만지듯 수면을 비췄고, 다리 아래 음악분수에서는 평화를 노래하는 선율이 흘러나왔다.


지금은 시민들이 산책을 즐기고 관광객들이 야경을 감상하는 명소지만, 76년 전 이곳은 나라의 운명을 가를 치열한 격전지였다.


왜관철교는 6·25전쟁 당시 서울과 부산을 잇는 경부선의 핵심 철도교량이었다.


1950년 8월 3일 오후 8시 30분께 미 제1기병사단장 호바트 R. 게이(Hobart R. Gay) 소장의 명령으로 교량 일부가 폭파됐다.


북한군의 남하를 늦추고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하기 위한 군사작전이었다.


당시 왜관 방면 두 번째 경간 약 63m가 끊어졌고, 이 작전은 유엔군이 방어 태세를 정비할 시간을 확보하며 이후 낙동강 방어와 인천상륙작전으로 이어지는 전세 역전의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전략적 의미만큼이나 깊은 상처도 남겼다.


당시 철교 주변에는 남쪽으로 피란하던 주민들이 몰려 있었고, 폭파 과정에서 적지 않은 민간인이 희생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지역 주민과 참전용사들이 전하는 이야기에는 지금도 전쟁의 참상이 생생히 남아 있다.


철교가 끊기자 한 어머니는 포대기에 갓난아이를 업은 채 낙동강의 얕은 물길을 건넜다.


그러나 강을 건넌 뒤에야 등에 업고 있던 아이가 물에 빠져 숨졌다는 사실을 알고 통곡했다는 사연은 전쟁이 남긴 비극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국가등록문화유산인 왜관철교는 주민들에게 '호국의다리'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하다.


한때 생사를 가르던 통로였던 이곳은 이제 시민들의 산책길과 운동 코스,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칠곡의 대표 역사문화 명소가 됐다.


다리를 걷다 보면 곳곳에 남겨진 전쟁의 흔적과 낙동강 전투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다.


해가 저물자 철교에는 하나둘 조명이 켜졌고, 낙동강은 평온한 여름밤의 풍경을 담아냈다.


폭발음이 메아리쳤던 자리에는 음악분수의 물줄기가 춤을 추고, 총성이 울리던 강변에는 시민들의 웃음소리가 이어졌다.


76년이라는 시간은 전쟁의 폐허를 일상으로 바꿔 놓았지만, 호국의다리는 여전히 그날의 기억을 품고 있다.


과거의 희생을 잊지 않는 일이 오늘의 평화를 지키는 힘이라는 사실을, 낙동강 위에 우뚝 선 철교는 말없이 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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