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스를 수 없는 변화의 시대, 공공·민간 모두 국가 기간사업자로서 협업해 공공성과 효율성 두 가지 모두 충족해야 합니다." 국내 천연가스 인프라 건설의 기본 틀을 그리는 김경희 한국가스공사 기술기획실장은 지난달 30일 본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가스공사는 물론, 천연가스 시장 변화에 따라 국가 기간산업에 참여하는 사업자 간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 같이 밝혔다. 천연가스 직수입 확대로 장기 천연가스 수급계획에 반영된 천연가스 저장시설 이외의 민간사업자 독자적인 인프라 확장 등 각 기업의 이윤 극대화를 위한 추가적인 인프라 구축이 계속될 경우에는 좌초자산화가 크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김 실장을 만나 국내 천연가스 저장시설 과잉투자 논란에 대한 의견과 향후 가스공사의 천연가스 인프라 건설 전략 및 투자계획 등을 들었다. -국제적으로 우리나라의 액화천연가스(LNG) 설비 투자가 과잉됐다며 좌초자산 리스크가 높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어떻게 생각하나. ▲기존에는 경제성이 있어 투자가 이뤄졌으나 환경 변화에 따라 가치가 하락하고 부채가 돼버리는 자산을 '좌초자산'이라 한다. 좌초자산의 발생 원인인 과잉 투자는 국가 전체 천연가스 수요를 저장·공급하기 위해 요구되는 설비 규모를 초과해 구축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일각에서 LNG 설비에 대한 과잉 투자로 발생하는 좌초자산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고 있는 게 사실이다. 다만, 이는 수급계획 상 천연가스 장기수요를 고려한 적정 저장시설 규모와 건설 계획을 수립했음에도 불구하고, 자가소비용 직수입 시장의 확대와 더불어 일부 민간 부문에서의 국가 수급계획 이외의 추가적인 설비 구축 계획에 대한 우려라고 판단된다. 특히, 향후 국가 전력수급 정책 등에 따라 LNG 발전 수요가 더욱 줄어들 경우 국내 기존 LNG 설비의 효율성 저하 문제가 더욱 심화될 것으로 우려된다. 이렇듯 과거와 달리 급변하는 국내 천연가스 시장에서 과잉 투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나아가 기존 인프라의 효율적 활용을 제고할 수 있도록 시장의 모든 참여자가 이전보다 신중한 입장을 취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특별한 사유를 제외하고는 국내 다수 기업의 영리활동을 강제하기란 쉽지 않을 것 같다. 설비 과잉투자로 발생될 중대한 문제를 꼽는다면? ▲물론 국내 민간 기업의 이윤 추구를 위한 영리 활동을 적극적으로 규제하기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 무엇보다도 근본적으로 짚어봐야 할 문제로는 민간부문의 과잉 투자로 인한 가스공사 인프라의 효율 저하는 결국 도시가스 요금 상승을 유발해 국민의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킨다는 점이다. 직수입 시장 확대 추세와 더불어 민간기업은 LNG 설비 건설 등을 통해 이윤을 극대화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 천연가스 수요가 제한적인 상황에서 국가 수급계획을 초과한 설비투자, 즉 과잉투자는 국가 기반시설 및 도시가스사 설비의 효율 저하로 귀결되기 마련이다. 또한, 이러한 LNG 설비의 효율 저하는 인프라를 구축·운영하는 데 투입된 비용은 동일한데 수요, 즉 판매량이 줄어 설비 효율이 저하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곧 가스요금 구조상 원가를 상승시킴으로써 결국 국민들이 부담하는 가스요금 상승을 초래하게 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민간기업의 국내 LNG 터미널 경쟁적 확장은 몇가지 중요한 기술적 문제도 초래한다. 전국 모든 LNG 터미널에 저장된 천연가스는 대부분 우리나라 전체에 거미줄처럼 매설된 천연가스 배관망을 통해 각 수요처로 송출되는 구조다. 배관망은 물성적 한계 및 배관 말단 압력 유지 등 기술적 요인으로 인해 각 LNG 터미널에서 배관망을 통해 송출할 수 있는 총량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국 각 LNG 터미널이 인접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상호 송출제약이 불가피해 국가 전체적으로 인프라 효율 저하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천연가스 산업에서의 인프라 투자는 수조 원이 투입되는 국가 기간산업으로서 각 시장 참여자의 사회적 책임이 특히 강조돼야 하는 분야이다. 국민 편익을 증진하는 방향으로 국가적 관점의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투자 결정이 필요하다. LNG 설비 과잉 투자로 인해 국민의 가스요금 부담 증가가 예상될 경우에는, 제도 개선을 통해 모든 참여 사업자의 책무를 강화시키는 방안도 고려해볼 시기가 됐다고 생각한다. -결국 국가 기간산업 참여 사업자는 '사회적 책임을 전제로 한 영리활동'이 이뤄져야 한다는 의미다. 민간기업의 이윤 추구를 위한 영리활동이 도시가스 소비자 요금상승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하나. ▲국내 천연가스 수요는 크게 세 종류로 구분된다. 각 가정의 난방 등을 위한 민수용, 제조업 등에 사용되는 산업용, 전력 생산을 위한 발전용이 대표적이다. 여기서 산업용 및 발전용 천연가스는 그 수요가 일정하고 사용되는 양이 많아 천연가스 공급 설비의 효율이 높은 이른바 '양질 수요'로 평가된다. 반면, 가정에 사용되는 민수용 도시가스는 난방이 필요한 겨울에 수요가 집중되는 동고하저 패턴으로, 산업용 및 발전용에 비해 상대적으로 공급설비 효율은 좋지 않으며, 설비 운영비용은 높은 편이다. 그간 가스공사는 이러한 설비 효율 저하를 발생시키는 민수용 가스를 산업용 및 발전용의 양질 수요와 함께 통합 운영해 비용 상승을 억제해 왔다. 그런데, 최근 몇 년간 민간부문의 직수입량 급증으로 산업용·발전용 수요를 자체적으로 관리함으로써 최근 가스공사의 양질 수요가 약 20%까지 감소한 실정이다. 각 가정에 대한 민수용 요금상승의 일부는 이 같은 상황에서 기인한다. 가스공사는 적정 소비자 요금을 산정하기 위해 가스 공급에 지출된 전체 비용에 해당 수요량을 나누어 공급 단가를 결정한다. 기간산업 특성상 대규모 자원을 투입해 천연가스 공급설비를 구축한 이후에는 수요량이 줄더라도 지출되는 비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따라서 자가소비용 직수입 시장의 성장으로 기존에 가스공사가 공급하고 있었던 양질 수요가 직수입자 수요로 계속 이탈하면, 가스공사 설비 효율은 급격히 악화돼 각 가정의 가스요금 상승 폭이 더욱 커지는 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최대 천연가스 시설을 보유하고 있는 한국가스공사도 과잉투자와 그에 따라 발생되는 좌초자산, 공급비용 상승에 대해 고심하고 있을 것 같다. 대책이 있나. ▲신규 LNG 터미널에 대한 민간사업자의 본격적인 투자계획이 발표되고 있는 최근 몇 년간 가스공사는 다양한 방법의 시도를 통해 시장 안정화 방안을 모색해 왔다. 그중 민간사업자의 과도한 터미널 구축을 예방하고, 수요자에게 안정적으로 천연가스를 공급하기 위해 가스공사의 저장·배관시설을 민간에 임대하는 '시설이용서비스'가 대표적이다. 이를 통해 국내 천연가스 터미널의 전반적인 효율을 유지하고, 각 가정에 천연가스를 공급하기 위한 비용 상승을 최대한 억제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특히 저장용량의 50%를 민간 사업자에게 임대하는 것을 전제로 현재 건설 중인 가스공사의 당진 LNG 터미널은 국가 전체 천연가스 수요의 50% 이상이 집중돼 있는 수도권에 가스를 공급함으로써 인근지역 터미널의 과잉투자를 억제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가스공사는 정부 출연 연구기관인 에너지경제연구원과 함께 국가 전반적인 관점에서 국가 저장시설 적정 규모 산정 용역을 진행 중이며, 장기적으로 LNG 설비의 효율적 활용 방안도 모색해 그 결과를 정부와 협의해 나갈 예정이다. 가스공사는 설립 취지에 맞게 국민 생활의 편익 증진과 공공복리 향상에 이바지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다만, 천연가스는 전 국민이 이용하는 공공재로서 가스공사를 비롯한 모든 참여 사업자들이 대국민 '에너지 복지 우선'이라는 원칙 아래 함께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아야 될 시기가 도래했다고 생각한다. -대국민 에너지 복지를 위한 천연가스 기간산업 참여 사업자들의 역할에 대해 고심이 큰 것 같다. 천연가스 시장을 바라보고 있는 참여 사업자들에게 전할 말씀이 있다면. ▲천연가스 산업은 지난 40년간 국가 발전과 함께 많은 성장을 이룩해 왔으나, 현재는 탄소중립을 중심으로 한 정부 에너지 정책 변화로 그 성장세가 현저히 줄어들고 있다. 천연가스는 다음 세대로의 에너지 대전환 과정에서 브릿지 연료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며 그 중요성이 여전히 강조되고 있어 참여사업자로서의 책임이 막중한 것은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제 천연가스 공급이 안정화 국면에 접어들고 에너지 대전환 시대에 적극 대비해야 하는 만큼, 보다 성숙하고 건전한 천연가스 시장 질서를 조성해 할 시기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탈탄소로 귀결되는 새로운 시대적 흐름에 부응해 어떤 역할로 국민과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하고 대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김연숙 기자 youns@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