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세무사 업역 넓히려 댓글 공작까지…양천구 조례압박 나선 세무사회

한국세무사회가 민간위탁사무 검증을 세무사의 새로운 업무영역으로 확대하기 위해 회원들에게 온라인 댓글 작성을 독려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양천구가 연간 5억원 이상 민간위탁사업비에 대한 외부 회계감사를 의무화하는 조례 개정을 추진하자 세무사회가 이를 저지하기 위한 여론전에 나선 것이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16일 조세일보에 김선명 세무사회 부회장이 올린 ''감사'가 '검사'보다 우월하다는 착각'이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두고 세무사회 청년이사가 회원들에게 댓글 참여를 독려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해당 메시지에 “민간위탁 결산검사와 관련하여 하반기 입법 전쟁이 시작되었다"며 “기고문은 차후 방향을 결정 할 수도 있는 중요한 기고문이니 상단에 부정적인 댓글에 싫어요 버튼이라도 눌러서 상단 노출을 없애는데 도움을 부탁드린다"고 썼다. 특히 “댓글 참여 만으로도 양천구에 무언의 압박이 가능하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정부는 재정지원사업에 대한 회계감사(검증) 체계를 법률로 정하고 있다. 1억원 이상 국고보조금은 보조금법에 따라, 3억원 이상 지방보조금은 지방보조금법에 따라 회계검증을, 또한 양 법 모두 10억 원 이상에 대해서는 회계감사를 받도록 한다. 반면 같은 재원으로 노인복지 업무 등 민간기관에 위탁으로 운영하는 사업은 상위 법령에서 관련 규정을 명확히 정하고 있지 않아 지방자치단체가 조례를 통해 감독 방식을 정할 수 있다. 이미 서울시뿐만 아니라 서울 자치구 중 12곳이 민간위탁 회계감사 근거를 두고 있다. 강남·중구·관악·도봉·동대문·서초·영등포·은평구 등 12개 자치구는 기초구의회의 조례로서 연간 5억~10억원 이상의 사업을 회계감사 대상으로 규정했다. 양천구도 이 대열에 합류하는 조례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서울특별시 양천구 사무의 민간위탁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은 연간 위탁금액이 5억원 이상인 민간위탁사무에 대해 회계법인 또는 공인회계사의 외부 회계감사를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해당 조례안은 지난 11일 양천구의회 행정재경위원회를 통과했다. 그러나 세무사회의 조직적인 반발이 이어지면서 제2차 본회의에서는 안건 처리가 이뤄지지 못했고, 오는 23일에 다시 본회의가 열릴 예정이다. 제2차 본회의에서 조례 발의자인 유영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자유 발언을 통해 “민간위탁사업의 공공성·투명성·구민 이익의 추구를 위한 의회의 입법 활동이 특정 전문직이나 단체의 이해관계의 논리로 좌절되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세무사회가 양천구 조례 개정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배경에는 민간위탁사업비 검증 업무를 세무사의 새로운 업무영역으로 확대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구재이 세무사회 회장은 회원들을 대상으로 한 신년인사·지역세무사회 모임·회직자 워크숍 등에서 여러 차례 민간위탁사업 검사 등 세출 검증분야에서 새 업역을 창출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혀왔다. 기고문을 작성한 김 부회장 역시 세무사회 내부에 존재하는 여러 형태의 단체 대화 채널에서 민간위탁사업 검증 업무 확대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민간위탁 사업비를 비롯해 국고·지방보조금, 공동주택, 집합건물 등 세출 검증 분야로 세무사 영역을 넓혀가야 한다"며 “그 첫걸음이 민간위탁사업비 결산검사제도의 안착"이라고 했다. 다만 임원진들의 홍보와 선전에도 불구하고 세무사회 내부에서도 민간위탁사업비 사후검사 업무를 둘러싼 의견 차이가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김 부회장은 “민간위탁사업비 사후검증 관련해서 여러 의견이 있는 것을 잘 알고있다"면서도 “하지만 우리가 기장업무에만 머물러있다면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세무사 업무영역은 점점 좁아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서울시의회는 2021년에 세무사도 민간위탁사업비 결산검사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조례 개정을 의결했고, 서울시장이 해당 조례에 대한 재의를 요구했으나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오세훈 서울시장은 “공인회계사법상 회계감사는 공인회계사의 고유 업무이므로 세무사가 이를 수행하는 것은 법 위반"이라며 재의결 무효확인소송을 제기했다. 2024년 대법원은 오 시장의 청구를 기각했다. 대법원은 “민간위탁한 후 이를 관리·감독하는 업무는 '자치사무'"라며 “엄격한 회계에 의한 감사를 받게 할 것인지, 간이한 결산서 검사를 받게 할 것인지 선택할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판시했다. 지자체의 재량을 강조하는 판결에 취지에 따라 서울시의회는 2024년 다시 엄격한 회계감사를 거치도록 하는 조례안을 의결했고 2025년 3월 민간위탁 회계감사를 원상 복원했다. 이에 세무사회가 당초 모 의원안은 대법원 판결로 무효가 됐다고 주장하며 비판을 이어가자 서울시의회에서는 지난해 해명자료를 내어 “대법원 판결은 모 의원안을 다룬 것이 아니어서 무효가 된 사실조차 없다. 대법원의 판결은 지방의회의 자주권을 보장해 준 것"이라며 “세무사회의 서울시의회에 대한 거듭된 거짓 주장이 도를 넘고 있다"고 경고했다. 서울시 외에 세무사가 결산검사 주체로 포함된 일부 지방·기초지자체에서도 조례 제·개정 절차를 둘러싼 논란이 계속돼왔다. 지난해 최초로 '간이한 결산서 검사제도'가 도입된 경주시의회에서는 세무자 자격을 보유하고 있는 현직 의원이 세무사 추가 조례를 직접 발의해 '셀프입법' 문제가 불거졌다. 익명을 요구한 제보자는 “해당 조례안은 주요 사항 및 쟁점을 고의로 누락시켜 상임위를 통과했고, 본회의에서는 무기명 투표를 강행했다"며 “본회의 진행 도중에 세무사회 부회장이 직접 조례 통과 축하 현수막을 가져와 촬영을 했는데, 이는 조례안이 통과될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 아니냐"고 했다. 올해 초 전남광주통합특별시의회에서는 상임위에서 부결된 민간위탁사업 검사인에 세무사를 추가하는 내용의 조례안을 한 의원이 본회의 당일에 예고없이 기습상정해 통과시켰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의회 역시 주요 쟁점 누락 및 사실관계 왜곡이 발생해 현재 경찰조사가 진행 중이다. 민간위탁사업은 지자체가 감독 방식을 선택할 수 있지만, 연간 수억원의 세금이 투입되는 사업에 대한 검증인 만큼 사업 규모에 따라 보다 엄격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김 부회장은 “현재 회계감사라고 이름 붙인 검증도 실제로는 보고서 한 두 장으로 끝난다"면서 “실질에 맞지 않게 회계감사라는 명칭을 쓰고 검증보고서 형태로 나가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무사회는 경쟁이 확대되면 사후검증의 품질도 높아진다고 본다. 세무사와 회계사의 업무수행 범위가 다른데 경쟁이 가능할 것이라 보냐는 질문에 그는 “세무사도 회계 역량이 충분하다"며 “우리나라는 유독 회계감사라는 말이 들어가면 회계사만 할 수 있다고 보는데 이건 법에 의한 것이 아니라 회계사들의 주장"이라고 말했다. 다만 회계감사는 명칭과 관계없이 회계정보를 검증해 의견을 표명하는 업무이므로 대상이 기업의 재무제표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사업비 집행 내역의 적정성을 검증하는 것 역시 회계감사의 범주에 포함된다. 또 현행법상 공인회계사와 세무사는 법률상 부여된 전문 직무가 다르다. 세무사는 지출 검증에 대한 법적 권한이 없어, 세무사 업무에 지출 검증 업무를 추가하는 세무사법 개정안도 국회 심사 후 지난해 9월 폐기된 바 있다. 송윤주 기자 syj@ekn.kr

김천에 AI 반도체 ‘유리기판’생산공장 온다…JNTC 3470억 투자·430명 고용

경북도·김천시·JNTC 21일 투자협약 체결 2027~2030년 김천1산단에 TGV 생산공장 구축 AI·HPC 차세대 반도체 핵심소재…첨단산업 전환 신호탄 자동차·전자부품 중심 김천, AI·반도체 소재 생태계로 확장 김천=에너지경제신문 윤성원기자 김천에 인공지능(AI) 시대 차세대 반도체 핵심소재로 주목받는 'TGV 유리기판' 생산기지가 들어선다. 투자 규모는 3470억원, 신규 고용은 430여 명이다. 자동차·전자부품과 소재산업을 중심으로 성장해 온 김천의 제조업 지형이 AI·반도체 첨단소재 산업으로 확장되는 전환점이 될지 주목된다. 김천시는 21일 오전 김천시청 강당에서 경상북도, ㈜제이앤티씨(JNTC)와 TGV 유리기판 생산공장 건립을 위한 투자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협약에 따라 JNTC는 2027년부터 2030년까지 김천1일반산업단지에 약 3470억원을 투자해 TGV 유리기판 생산공장을 구축한다. 공장이 본격 가동되면 430여 명을 신규 채용할 계획이다. 이날 협약식에는 배낙호 김천시장과 이철우 경북도지사, 장상욱 JNTC 회장을 비롯해 송언석 국회의원, 오세길 김천시의회 의장, 안용우 김천상공회의소 회장과 도·시의원 등 30여 명이 참석했다. AI 반도체 성능 높이는 '유리기판'…김천서 생산 이번 투자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TGV(Through Glass Via)' 기술이다. TGV 유리기판은 유리에 미세한 구멍을 뚫어 전기적 신호가 통하도록 하는 첨단 패키징용 기판이다. AI와 고성능컴퓨팅(HPC)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반도체의 연산능력과 데이터 처리량이 크게 늘어나자 차세대 고성능 반도체를 구현하기 위한 핵심 소재로 주목받고 있다. 반도체 성능 경쟁이 칩 자체의 미세화뿐 아니라 여러 반도체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연결하고 패키징하느냐로 확대되면서 고성능 기판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JNTC는 이런 시장 변화에 맞춰 기존 커버글라스와 커넥터 중심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AI·반도체 분야로 확장하고 있다. 김천 공장이 그 생산거점 가운데 하나가 되는 셈이다. '3D 커버글라스' 기술 반도체로 확장 1996년 설립된 JNTC는 커넥터 사업을 시작으로 모바일과 차량용 커버글라스 등으로 사업영역을 넓혀온 정밀소재·부품 기업이다. 세계 최초로 3D 커버글라스를 개발했고 차량용 일체형 3D 커버글라스 등 고난도 유리 가공 분야에서 기술력을 축적해 왔다. 회사는 기존 사업 과정에서 확보한 유리 가공과 레이저 정밀가공 기술, 대량 생산 노하우를 TGV 유리기판으로 옮기고 있다. 이번 김천 투자는 단순히 생산시설 하나를 추가하는 차원을 넘어 JNTC의 사업구조를 커버글라스·커넥터에서 AI·반도체 첨단소재로 넓히는 신사업 전환의 성격을 갖는다. 회사는 김천1일반산업단지에 우선 생산기반을 구축한 뒤 글로벌 AI·반도체 시장 성장과 수요에 맞춰 생산라인을 단계적으로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3470억원·430명…김천 산업지도 바뀌나 김천시에도 이번 투자의 의미는 작지 않다. 김천은 그동안 자동차부품과 전자부품, 소재 등 전통 제조업을 중심으로 산업 기반을 키워왔다. 여기에 TGV 유리기판 생산시설이 들어오면서 AI·반도체와 연결되는 첨단소재 산업을 새로운 성장축으로 확보할 기반이 마련됐다. 특히 3470억원 규모의 직접 투자는 생산시설 건설과 장비 도입을 넘어 협력업체와 관련 소재·부품 기업의 추가 유입 가능성도 높일 수 있다. 430여 명의 직접 고용도 지역경제에는 적지 않은 규모다. 김천시는 향후 TGV 유리기판을 중심으로 연관 기업이 집적될 경우 산업단지의 업종 고도화뿐 아니라 청년층이 선호하는 첨단 제조업 일자리 확대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기존 자동차·전자부품 제조 기반에 AI·반도체 소재 산업을 결합해 산업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는 것이 김천시의 과제다. 공장 건설·인허가부터 전력·용수까지 지원 관건은 투자협약을 실제 공장 가동으로 얼마나 빠르게 연결하느냐다. 김천시는 JNTC의 투자가 계획대로 진행될 수 있도록 공장 입주와 건설에 필요한 각종 인허가 절차를 적극 지원하기로 했다. 대규모 첨단산업 시설 운영에 필수적인 전력과 용수, 폐수처리 등 기반시설 문제에도 경북도와 함께 선제적으로 대응할 방침이다. 기업이 생산시설을 조기에 구축하고 계획된 투자를 실행할 수 있도록 행정절차와 산업 인프라를 동시에 뒷받침하겠다는 것이다. 배낙호 김천시장은 “TGV 유리기판 사업의 생산거점으로 김천을 선택한 JNTC의 투자가 계획대로 추진되고 지역의 일자리와 경제 활성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경상북도와 함께 행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며 “앞으로도 미래 성장 가능성이 높은 첨단기업을 적극 유치해 김천의 산업 경쟁력을 높여 나가겠다"고 말했다. 장상욱 JNTC 회장은 “이번 투자협약은 당사의 중장기 신성장동력인 TGV 유리기판 사업이 고도화된 기술력을 바탕으로 본격적인 사업화 궤도에 올랐음을 의미한다"며 “기술과 품질, 원가 경쟁력을 바탕으로 AI 중심의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첨단소재 선도기업의 입지를 확고히 하고 김천 지역사회와도 상생 발전하겠다"고 말했다. '자동차부품 도시' 넘어 AI 반도체 소재 거점 노린다 이번 투자의 성패는 3470억원이라는 투자금액 자체보다 김천에 새로운 첨단산업 생태계를 만들어낼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AI 반도체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후공정과 첨단 패키징, 기판·소재 분야의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김천에 TGV 유리기판 생산라인이 안착하고 연관 소재·장비·부품 기업까지 뒤따라 들어올 경우 지역 제조업의 체질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다. 김천이 기존 자동차·전자부품 생산도시를 넘어 AI·반도체 첨단소재 생산거점으로 산업지도를 넓히는 첫 시험대가 시작된 셈이다. 윤성원 기자 won56789@ekn.kr

주병기 공정위원장, 쿠팡 소송 대응에 “굉장히 유감”…“현장조사 무력화”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은 21일 쿠팡 측의 대규모유통업법 위반 의혹 관련 공정위 현장조사 취소 소송에 유감을 표했다. 최근 쿠팡은 할인 비용을 납품업체에 전가한 의혹 관련 공정위 현장 조사를 거부하고, 직권 조사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주 위원장은 경쟁이 제한돼 왔던 방위산업 분야의 경우 신규기업 진입이 가능하도록 규제를 개선하는 방안을 협의 중이라고 했다. 그는 올 하반기 먹거리와 생필품, 교육, 에너지 등 민생 분야 담합 조사와 제재도 지속한다고 밝혔다. 정유사들의 석유류 가격 담합도 10월까지 조사를 완료, 심의 절차에 돌입하는 등 속도를 낼 방침이다. 주 위원장은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이 같이 밝혔다. 주 위원장은 “공정위의 현장조사에 대해 행정처분, 가처분 소송을 제기해 잠정적, 실질적으로 공정위 조사가 무력화된 것은 굉장히 유감"이라며 “전자상거래법으로 보호받고 있는 수십만 명 소상공인의 최소한 권익에 대한 보루를 무너뜨리는 행위여서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정위는 쿠팡 대상으로 대규모유통업법 위반 의혹 관련 자료 확보를 위해 19~28일 현장 조사할 계획이었다. 이에 쿠팡은 현장 조사를 거부하고 직권 조사 취소 소송까지 제기한 상태다. 주 위원장은 또, 김범석 쿠팡Inc 의장의 동일인 지정과 관련 허위자료 제출 의혹도 조사를 신속히 마무리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종전에 쿠팡 법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할 때 친족이 경영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각서를 제출했지만 공정위 조사에서는 이와 반대되는 자료가 있었다"며 “위법 사항을 신속히 확인해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주 위원장은 최근 미국 하원에서 쿠팡 등 미국 기업에 대한 차별 관련 외국 공무원의 입국 제한 대응 관련 지속적인 법 집행 의지도 내비쳤다. 주 위원장은 “공정위가 직접 대응하기보다는 필요하면 외교부를 통해 의견을 전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절차적 공정성을 지키면서 해외 기업을 차별하지 않고 법 집행을 지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주 위원장은 방산물자 및 방산업체 지정제도로 소수의 지정업체가 특정 방산물자 공급을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 대한 개선 의지도 내비쳤다. 그는 “하반기에 국가 안보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경쟁에 제한돼 있던 방위산업 분야의 규제 개선을 추진할 것"이라며 “방산물자 시장에 신규기업 진입을 촉진하기 위한 방안을 관계부처와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최근 한화그룹이 한국항공우주(KAI)의 2대 주주가 되면서 독과점 우려가 나오자 공정위가 신규 사업자 진입을 통한 규제 완화를 추진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주 위원장은 “한화-KAI 사례의 경우 공공부문이 대주주"라며 “국내 다른 방산업체들이 독점적 지위를 남용하지 않도록 감시하겠다"고 했다. 그는 설탕, 밀가루 등 먹거리에 이어 하반기부터 교복, 석유 등 에너지 관련 민생 담합 근절도 강조했다. 주 위원장은 “서민 생활과 물가에 직결된 정유사들의 석유류 가격담합 사건은 10월까지 조사를 마치고 심의 절차 개시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현재 공정위는 정유사들이 석유제품 가격을 담합했다는 의혹을 조사 중이다. 10월 조사를 완료한 뒤 결과를 담은 심사보고서를 위원회에 상정 여부를 결정한다. 그는 배달앱 수수료 상한제와 높은 수준의 광고료 관련 입점업체의 부담을 낮춰야 한다는 입장도 분명히 했다. 주 위원장은 “입점업체가 부담하는 수수료와 광고료가 과도한 것이 사실"이라며 “전체적인 부담이 현재 수준보다 내려가야 한다"며 “국회에 계류된 배달앱 관련 특별법안의 입법을 계속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원승일 기자 won@ekn.kr

구미시, 16조 투자 다음은 ‘시민의 삶’…골목·시장·농촌까지 바꾼다

김장호 시장 21일 민선 9기 생활혁신 구상 공개 공실률 71% 인동시장 주상복합 재개발 추진 구미역 광장 5459㎡로 확대…지하 130면 주차장 빈 점포엔 청년창업, 면 지역 학생엔 최대 2560만원 구미=에너지경제신문 윤성원기자 민선 8기 16조원이 넘는 투자 유치와 대형 국책사업으로 산업 성장의 판을 다시 짠 경북 구미시가 민선 9기에는 전통시장과 골목상권, 구도심, 농촌까지 도시의 '생활판'을 바꾸는 데 나선다. 대기업과 첨단 산업을 끌어오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시민들이 매일 오가는 시장과 골목, 역 앞 광장, 농촌학교까지 변화시켜 대규모 투자의 성과를 시민이 체감하는 도시 경쟁력으로 연결하겠다는 구상이다. 김장호 구미시장은 21일 구미 시청사 3층 대 회의실에서 언론 브리핑을 열고 전통시장 재개발과 골목경제 활성화, 구미 역 열린 광장 조성, 면 지역 초등학교 활성화 등을 담은 민 선 9기 실행 구상을 밝혔다. 민 선 9기 출범 이후 20조 원 규모의 투자 유치와 투자 계획이 잇따르고 삼성SDS AI 데이터센터 착공, 대구·경북 신 공항 경제권과 연계한 동 구미 역 신설도 가시 화 하는 가운데 구미시는 경제혁신·정주혁신·공간혁신을 3대 축으로 도시 체질 개선에 속도를 낸다는 방침이다. ■ 140개 점포 중 100곳 비었다…인동시장 '대수술' 첫 번째 변화의 무대는 쇠퇴한 전통 시장이다. 1988년 준공된 인동 시장은 전체 140개 점포 가운데 100개 가 비어 있다. 공실 률 만 71.4%다. 현재 영업 중인 40개 점포 가운데 37개도 노후·불량 건축물에 해당해 안전 문제와 상권 슬럼 화 우려가 이어져 왔다. 구미시는 더 이상 부분적인 시설 보수 만으로는 시장을 되살리기 어렵다고 보고 인동 시장 부지를 주상 복합 형태로 재 개발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강동 권의 중심 상권으로 기능을 재편한다는 구상이다. 올해 말까지 개발 방식과 사업 주체 등 세부 사업 계획을 마련하고 주민 설명회를 통해 토지 소유자와 주민 의견을 수렴한다. 이후 2028년부터 기본·실시 설계 등 사업을 본격화할 계획이다. 금오 공대 이전과 인구 유출 등으로 상권이 위축된 신 평 시장도 손 본다. 신평 상가와 대창 상가에는 아케이드를 설치하고 외벽 도색과 바닥·간판 정비 등 시설 현대 화를 추진한다. 그린상가는 소유주가 주도하는 재건축을 행정적으로 지원한다. 새마을중앙시장 국수골목은 '국수 특화거리'로 다시 만든다. 현재 국유지 내 영업으로 시설 정비에 제약이 있는 만큼 구미시가 국유지를 매입한 뒤 상가를 신축해 기존 상인에게 임대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신평시장과 국수골목은 주민·상인 의견수렴을 거쳐 2028년 상반기 시설 개선을 목표로 하고 있다. ■ 텅 빈 점포를 창업공간으로…청년 불러들이는 구도심 구미역과 문화로, 금리단길, 원리단길 등 구도심에는 창업과 문화 콘텐츠를 집어넣는다. 온라인 소비 확대와 상권 이동으로 빈 점포가 늘어난 데 대응해 '구도심 리(RE):채움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공실을 창업공간으로 전환하고 창업자에게 점포 환경 개선과 교육·컨설팅, 판로 개척 등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구미역 일원에는 민간 건물을 임차해 리모델링한 '기술창업공간'도 들어선다. 2028년부터 운영해 구미역 일대를 청년창업과 기술창업의 거점으로 육성할 계획이다. 골목 자체에도 사람이 머물 이유를 만든다. 정부 사업으로 확정된 '문화로 자율상권활성화사업'을 통해 거리 경관과 간판을 정비하고 공동 마케팅, 계절 별 축제, 대표 브랜드 개발을 추진한다. 현재 24곳인 골목 형 상점가는 50곳까지 늘린다. 지역에서 쓴 돈이 다시 지역 소상공인에게 돌아가도록 '구미 세일 페스타'도 추진한다. 지역 내 소비금액의 일정 부분을 상품권으로 돌려주는 방식이다. 공공배달앱 '먹깨비'는 가맹점 8000곳, 회원 10만 명을 목표로 혜택을 확대한다. '우리동네 반값데이'와 '소담스퀘어 경북' 등 온·오프라인 판로 지원도 병행한다. ■ 골목경제 전담 '국 단위 조직' 만든다 행정 조직도 현장 중심으로 바꾼다. 구미시는 2개 과, 8개 팀으로 구성된 국 단위 조직인 '골목상권지원단'을 신설할 계획이다. 골목 경제와 로컬 성장, 전통 시장 활성화, 시장 시설 정비 등 소상공인과 골목 상권 관련 업무를 전담한다. 정책 결정 과정에는 상인과 현장 종사자가 직접 참여한다. 요식· 숙박, 소매·유통, 지역 업체, 창업, 농업 등 5개 분과의 현장 종사자와 전문가가 참여하는 '지역경기살리기위원회'를 10월 중 출범시켜 지역경제 현장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할 계획이다. ■ 구미역 앞 1581㎡→5459㎡…도심의 '거실' 만든다 구미 역 앞 풍경도 크게 달라진다. 대경 선 개통으로 광역 교통 거점 기능이 강화된 구미 역 광장을 대폭 확대해 교통과 문화, 휴식이 결합된 도심 중심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현재 구미역 광장 면적은 1581㎡다. 구미시는 인근 상가와 유 휴지 3878㎡를 추가 확보해 전체 광장 규모를 5459㎡로 넓힐 예정이다. 지금의 3배가 넘는 규모다. 지상에는 공연장과 시민 쉼터, 택시 승강장, 차량 회 차로 등을 배치하고 지하에는 130면 규모의 주차장을 조성한다. 단순히 역 앞 공간을 넓히는 사업에 그치지 않는다. '구미역 열린광장'을 각종 공연과 축제가 열리는 문화공간으로 만들어 문화로와 새마을중앙시장 등 주변 상권으로 유동인구를 끌어들이는 것이 핵심이다. 역 이용객이 광장에 머물고, 다시 구도심 상권으로 이동하도록 사람의 동선을 바꾸겠다는 것이다. 시는 올해 주민설명회와 기본구상·타당성 조사 용역을 마무리한 뒤 내년 도시계획시설 변경과 재정투자심사 등을 진행할 계획이다. 2028년부터 토지보상 등 후속 절차에 착수해 2030년 준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 학생이 돌아와야 마을도 산다…농촌학교 살리기 저 출생과 고령화로 학생 수가 줄고 있는 농촌 면 지역은 '학교'를 중심으로 살린다. 대상은 무을·옥성·도개·해평·장천면이다. 구미시는 이들 면 지역에 주소를 두고 초등학교에 다니는 학생에게 졸업 때까지 최장 6년 간 학업 장려 금을 지원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특히 다른 시·군에서 면 지역으로 전입 한 학생은 전입 축하 금과 학업 장려 금, 진학 축하 금 등을 합쳐 6년 동안 최대 2560만 원의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단순히 현금 지원에만 의존하지 않는다는 게 구미 시의 설명이다. 학교 별 여건과 지역 자원을 활용한 특성 화 프로그램을 도입해 원어민·AI 활용 외국어 교육과 문화·예술, 스포츠, 생태·환경 체험 등 도시 학교와 차별화된 교육 과정을 운영한다. 자녀와 함께 면 지역으로 이주하는 가구에는 이사비와 주택수리비, 주거 임대료 지원 등을 연계해 초기 정착 부담을 낮춘다. 올해 하반기 세부계획과 지원 규모·방식을 확정하고 2027년 상반기부터 사업을 시행할 계획이다. ■ '기업이 오는 도시'에서 '사람이 머무는 도시'로 구미의 도시 전략에도 변화가 감지된다. 민 선 8기의 핵심이 반도체와 방산, AI 등 첨단 산업 투자 유치를 통해 산업 기반을 넓히는 것이었다면 민 선 9기는 규모 투자와 좋은 일자리 만으로 도시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라는 판단에서 다. 기업 유치가 도시의 외형을 키우는 일이라면 시장의 공 실을 줄이고, 구미 역 앞에 사람을 모으고, 농촌 학교에 학생을 다시 불러들이는 것은 도시의 체온을 높이는 일이다. 민 선 9기 구미의 성패를 가를 지점도 여기에 있다. 수십 조 원 대 투자 유치 실적이 실제 골목 상권의 매출과 구도심 유동 인구, 농촌의 정 주 인구 증가로 얼마나 이어질 수 있느냐 가 관건이다. 김장호 구미시장은 “좋은 일자리와 대규모 투자도 중요하지만 시민들이 '우리 동네가 달라졌다', '살기 좋아졌다'고 느껴야 진정한 혁신"이라며 “전통 시장과 골목 경제, 구도심, 농촌까지 생활 속 불편을 하나 씩 해결하고 시민의 삶을 바꾸는 실천으로 민 선 9기를 완성해 구미를 대한민국 모범 도시로 만들어가겠다"고 말했다. 윤성원 기자 won56789@ekn.kr

[EE칼럼] 한전 사장의 역할과 자질

2023년 9월 20일, 정치인 출신 김동철 전 의원은 제22대 한전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비장한 취임사를 발표했다. 직전 해인 2022년 한전은 역대 최대인 32조700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고 2023년에도 적자가 계속되고 있었다. 이런 경영상황에서 '전력 비전문가'였던 그는 글로벌 무한경쟁과 에너지 대전환 시대에 맞는 새로운 돌파구를 찾겠다며 KT와 포스코, 이탈리아 전력회사 ENEL을 소개했다. 독점 공기업에서 출발해 민영화와 시장개방, 사업구조 개편을 거치며 글로벌 기업으로 성공한 회사들이다. 약 100일 뒤인 2024년 1월 2일, 김 사장은 신년사에서 또 이 세 회사를 한전의 롤 모델로 들었다. “ENEL처럼 완전히 달라지겠다, 공기업 틀을 벗어나겠다"는 발언이 민영화로 해석될 수 있다는 보도가 나오자 산업통상자원부는 즉각 “한전 민영화는 전혀 검토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김 사장 역시 사업 다각화와 해외시장 진출 사례를 소개했을 뿐이라고 물러섰다. ENEL은 과거 이탈리아의 국영 전력회사로서 시장을 독점했지만, 1999년 전력시장 개방 이후 사업구조를 대대적으로 개편하고 세계적인 전력기업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한전의 변화를 말하면서 정작 변화의 핵심인 전력시장 구조와 한전의 역할에 대해서는 입을 닫았다. 정부와 노동조합을 설득하지 못하면서 개혁 동력도 약해졌다. 대표적인 사례가 전기요금이다. 코로나19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제 에너지가격이 급등하면서 한전 손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한전은 2021년 1월 모든 용도별 전기요금을 내린 이후 같은 해 10월부터 2024년까지 모두 여덟 차례 요금을 올렸다. 김 사장 취임 이후 두 번의 인상은 산업용에만 집중됐다. 2023년 11월과 2024년 10월이다. 한전 판매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산업용 전기요금이 계속 올라가면서 일부 대형 우량 수요자들은 한전을 떠나 전력거래소에서 직접 전기를 사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앞으로도 이러한 '고객 이탈'은 점점 더 늘어날 수 밖에 없다. 한전에게 유리한 고객은 떠나고 나머지 고객의 부담은 더 커지는 구조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비수도권 산업용 전기요금 인하도 마찬가지다. 비수도권 요금을 낮추면서 그만큼 수도권 요금을 올리지 못하면 한전의 요금수입은 크게 줄어든다. 산업정책과 지역정책의 비용을 한전 전기요금에 얹는 방식이다. 전기요금의 정치요금화가 더 깊어지고 있다. 문제는 전기요금만이 아니다. 재생에너지와 디지털 메가트렌드로 세계 전력산업은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 그러나 우리 전력시장은 한 발짝도 제대로 나아가지 못했다. 그 중심에 한전이 있다. 재생에너지는 지역 편재성과 간헐성, 변동성을 갖는다. 이를 늘리려면 발전량이 넘칠 때는 싸게 쓰고 부족할 때는 비싸게 쓰는 시간대별 가격신호가 필요하다. 저장장치와 수요반응, 분산자원이 자유롭게 움직이는 유연한 시장도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정부가 가격을 결정하고 한전이 판매를 독점하는 틀에 묶여 있다. AI, IoT와 빅데이터를 포함한 디지털 기술은 전력산업의 큰 틀을 바꿀 수 있다. 수요와 공급을 실시간 예측하고 수많은 분산자원을 연결하며 소비자가 가격에 반응하도록 만들 수 있다. 재생에너지의 약점을 보완하는 핵심 수단이다. 그러나 시장이 경직돼 있으면 아무리 좋은 기술도 수용되기 어렵다. 김동철 사장은 한전이나 전력업계에서 일한 경험이 없다. 전기에 관한 한 순백(純白)한 상태에서 사장에 취임했다. 그래서 오히려 기존 전력산업의 고정관념을 깰 수도 있었다. 실제로 그는 두 번이나 ENEL을 언급했다. 그렇다면 '민영화'라는 프레임이 씌워졌을 때 물러설 것이 아니라 왜 ENEL이 변했는지, 세계 전력산업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정면으로 설명했어야 했다. 전기요금도 마찬가지다. 산업용만 반복해서 올릴 것이 아니라 주택용, 일반용, 농사용을 포함해 용도별 원가와 원가회수율을 공개하고 국민을 설득했어야 했다. 정치인 출신 한전 사장이 오히려 전기요금의 정치화를 끊어냈어야 했으나 결과는 반대였다. 이렇게 된 데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김 사장이 전력산업 비전문가였고, 이슈가 발생했을 때 한전과 전력산업의 발전이 아니라 정치적 이해관계자의 반응에 민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차기 한전 사장 공모가 진행되고 있는 지금, 새로운 사장에게 필요한 것은 정무 감각이나 정치권과의 관계가 아니다. 재생에너지와 디지털 전환, 전력시장 개혁을 이해하고 이해관계자를 설득할 수 있는 사람, 한전을 ENEL처럼 세계적인 회사로 키우면서도 대한민국 전력산업의 장기적 목표를 설계하고 추진할 사람이 필요하다. 이번에는 정책과 실무에 정통한 전력 전문가가 한전 사장이 되어야 한다. bienns@ekn.kr

10년 내 반복 담합, 벌점 ‘4점’ 받아도 공공입찰 참여 제한

담합을 반복하다 적발될 경우 벌점 5점 초과에서 앞으로 4점만 받아도 공공입찰 참여가 제한될 수 있다. 10년 내 반복 담합으로 과징금이 아닌 시정명령만 2번 받아도 입찰 참가 자격이 제한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1일 이 같은 내용의 '입찰에 있어서의 부당한 공동행위 및 입찰참가자격 제한요청에 관한 지침' 개정안을 다음 달 12일까지 행정예고한다고 밝혔다. 이번 개정안에 따라 사업자가 담합을 반복하다 적발될 경우 공공 입찰에 참여할 수 없는 기준이 강화된다. 현재 국가계약법에 따르면 공정위의 요청이 있는 경우 조달청 등 공공 발주기관은 해당 사업자의 입찰 참가 자격을 제한할 수 있다. 현재 지침에는 '과거 5년간 입찰 담합으로 받은 벌점 누계가 5년을 초과하는 경우' 공정위가 입찰 참가 제한을 요청할 수 있다고 규정됐다. 이번 개정안으로 공정위가 반복 담합 여부를 판단하는 기간은 최근 5년에서 10년으로 확대된다. 벌점 산정 대상도 입찰 담합에서 모든 유형의 담합으로 범위가 넓어진다. 벌점도 가산된다. 입찰참가자격 제한 요청 기준은 현행 '5점 초과'에서 '4점 이상'으로 낮아져 입찰 기회가 더 줄어들게 된다. 현재 벌점은 경고 0.5점, 시정권고 1점, 시정명령 2점, 과징금 2.5점, 고발 3점 등이다. 또, 시정명령만 두 차례 받아도 누적 벌점이 4점이 돼 입찰 제한 요청 대상이 될 수 있다. 현재는 담합으로 과징금을 두 차례 부과되더라도 누적 벌점이 5점에 그쳐 제한 요청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공정위 관계자는 “반복 담합 사업자가 공공 입찰에 계속 참여하는 것을 제한해 제재의 실효성과 반복적인 법 위반에 대한 책임성을 높인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다만, 공정위는 제도 변경에 따른 사업자의 예측 가능성을 고려해 개정 지침 시행 전 담합으로 받은 벌점은 2031년 12월 31일까지 종전 규정을 적용하기로 했다. 공정위는 행정예고 기간 이해관계자 등의 의견을 검토한 뒤 전원회의 심의·의결 등을 거쳐 개정안을 확정, 시행할 계획이다. 자세한 내용은 공정위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원승일 기자 won@ekn.kr

10차 석유 최고가격 또 ‘동결’, 6개월 넘겨 언제까지?…“일단 유지, 조정될 수도”

10차 석유 최고가격이 또 다시 동결됐다. 최근 중동 정세가 다시 악화되면서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 달러를 넘어섰고, 물가 부담도 지속되고 있어서다. 정유사 공급가 상한은 이전 7~8차 때와 같이 리터(ℓ)당 휘발유 1784원, 경유 1773원, 등유 1380원으로 유지된다. 10차 최고가격은 19일 0시부터 4주 간 적용된다. 정부가 지난 3월부터 시행한 석유 최고가격제는 당초 계획보다 6개월을 넘어섰다. 산업통상부는 18일 “국제유가 상황을 면밀히 살피며, 최근 서민 물가 부담, 지난 최고가 지정 동향과 환율 하락세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민생 안정에 무게를 두고 최고가를 동결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산업부에 따르면 9월 들어 미국과 이란 간 전쟁이 다시 격화되고, 후티 반군이 홍해 지역 인근 도시 등을 점거하면서 중동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 8월 배럴당 90 달러 선을 밑돌았던 국제유가도 상승세로 돌아섰다. 이달 16일 기준 브렌트유 가격은 배럴당 105.8 달러, 서부 텍사스산원유(WTI)는 102.4 달러를 기록하며 100 달러 선을 넘어섰다. 유가와 함께 국제 석유제품 가격도 들썩이며 전체 물가를 끌어올리고 있다. 석유류 물가 오름세 속에 소비자 물가는 7월 2.8%에서 8월 3.1%를 기록하며 다시 3%대로 상승했다. 다만, 환율은 최고가격을 리터당 210원 올렸던 2차 최고가격 때보다 낮아졌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지난 3월 말 2차 최고가격 시행 당시 원·달러 환율은 1505원이었지만 9월 셋째 주 기준 1358원으로, 약 10% 낮은 수준이다. 환율은 국내 원유 도입가에 직접 영향을 주는 요인 중 하나다. 유가가 급등했지만 환율 하락세로 도입 원가가 어느 정도 상쇄된 점을 고려, 정부가 동결을 결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는 지난 3월 13일 1차 석유 최고가격제를 도입하면서 시행 기간을 6개월로 예상했다. 하지만 중동 정세 불안이 다시 고조되면서 최고가격제도 10차로 지속됐고, 당분간 제도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게 정부 판단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석유 최고가격제는 중동전쟁 발발 이후 높은 국제유가 변동성으로부터 국내 민생 경제를 보호하는데 주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6개월간 국제유가는 배럴당 약 60~100 달러 수준, 국제 석유 제품가는 배럴당 약 90~180 달러 수준으로 큰 등락폭을 보이고 있다. 정부는 석유 최고가격제로 중동전쟁 이후 3~8월간 소비자물가 상승률 평균 0.6%포인트(p) 내린 효과를 본 것으로 추산했다. 또, 주유소 총 소매판매량으로 집계한 국민 석유 소비량은 최고가격제 시행 후인 3월 둘째주부터 8월까지 휘발유는 전년대비 2.1%, 경유는 8.4% 각각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정부는 중동 상황이 안정될 경우 석유 최고가격제 종료를 검토하는 등 조정 가능성도 열어뒀다. 산업부 관계자는 “중동 정세 긴장이 지속되고 있는 만큼, 석유 최고가격제를 통한 민생 안정을 도모할 것"이라며 “국제유가 변동과 국내 석유 소비 추이 등을 면밀히 살피면서 유연하고, 신중하게 최고가격제를 운영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원승일 기자 won@ekn.kr

李대통령 “부동산 공화국 탈피 총력…집값 상승, 유동성도 원인”

이재명 대통령이 18일 취임 후 일곱 번째 기자회견에서 연임제 개헌과 조작 기소 의혹 특별검사, 호르무즈 해협 대응, 부동산, 대미 투자, 북미 대화 등 주요 현안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이 대통령은 모두발언에서 “언제나 국민은 옳다. 모두 저의 부족함 때문"이라며 “회복과 성장만큼 민생 개선에 더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취임 후 일곱 번째 기자회견 질의응답에서 부동산 관련 질문에 “부동산 공화국을 벗어나는 게 이 정부의 가장 중심 과제"라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집값 상승의 구조적 배경으로 수도권 집중을 먼저 짚었다. 이 대통령은 “모든 경제력, 기반 시설, 정주 여건이 서울, 경기, 인천으로 집중되고 있다"며 “그래서 국토 균형 발전 정책을 정말로 죽을힘을 다해 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갑자기 성장속도가 빨리면서 올해 명목성장률이 2분기 기준 20%를 넘었는데, 1970년대 이후 처음"이라며 “유동성이 많아지고 있고, 이것이 한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앞서 한국은행은 2분기 명목 GDP는 전 분기보다 9.2% 증가했다고 지난 8일 밝혔다. 전년 동기 대비로는 26.4% 늘어 1979년 3분기(27.7%) 이후 47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2분기 명목 국민총소득(GNI)은 1분기 대비 8.8% 늘었다. 명목 국외순수취요소소득이 13조7천억원에서 12조원으로 감소했으나, 명목 GDP가 증가한 결과다. 이 대통령은 단기적인 공급 부족에 대해서는 전 정권과 서울시 책임을 직접 거론했다. 이 대통령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 오세훈 서울시장이 당선된 2022년을 언급하며 “그해부터 허가와 착공 건수가 절반으로 줄었다"며 “22년, 23년, 24년 그리고 25년까지 거의 절반으로 줄어 공급이 확 축소된 것이다. 이게 단기적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최근 시장 흐름에 대해서는 “다행스러운 것은 최근 강남을 포함한 지역에 하락이 시작돼서 계속 하락이 확산되고 있다"며 “강남은 꼭대기, 다른 데는 낮게 돼 있는데 일종의 평탄화 작업이 진행되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시장 안정을 위한 해법으로는 신속한 공급 확대에 방점을 찍었다. 이 대통령은 “건축 허가를 포함한 택지 개발 또는 재건축, 재개발, 도시 정비 등 공급을 최대한 신속하게 늘려 나갈 것"이라며 “총리실에서 매일 체크하고 있고 제가 일주일마다 보고받으면서 구체적인 장소를 특정해 진척 상을 확인하고 있다"고 밝혔다. 공급 확대를 위한 금융 지원 방침도 재확인했다. 이 대통령은 “어떤 분들이 부동산 집값 잡는다면서 왜 금융을 늘리냐, 이렇게 비난하던데 그것은 핀셋 정책"이라며 “주택 공급을 늘릴 수 있는 분야에 대해서는 금융을 최대한 확대하고 있다. 그러니까 수요를 촉진시키는 이쪽은 기존의 대출 정책을 계속한다. 그래서 공급은 많이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규제, 공급, 세제 등에서 최대한 할 수 있는 조치를 할 것이기 때문에 부동산 시장은 점차 안정돼 갈 것"이라며 “다만 그 틈새에서 전월세 입주자들이 겪는 어려움에 대해서도 우리가 세부적인 정책들을 나름은 마련해 시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날 회견은 당초 오전 10시에서 30분 미뤄진 오전 10시30분 시작됐다. 회견장에는 '국민의 뜻, 국민의 삶 더 살피겠습니다'라는 문구가 내걸렸다. 이전 기자회견과 달리 이 대통령은 자리에 앉지 않은 채 모두발언을 이어갔다. 질의응답은 정치·외교와 정책·경제 두 분야로 진행됐다. 개헌 의제로는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부마항쟁 정신의 헌법 전문 편입, 국민 기본권 강화, 일부 대통령 권한의 국회·지방정부 분산, 정책 일관성과 국정 안정을 위한 대통령 연임제 도입 등을 제시했다. 다만 자신의 연임 가능성에는 선을 그었다. 이 대통령은 “헌법 개정을 통한 저의 연임은 헌법상 불가능하며, 저 역시 연임을 생각해 본 적조차 없음을 수차례 여러 경로로 밝혔다"고 말했다. 야권의 연임 포기 선언 요구에 대해서는 “마치 제가 연임을 구상하다 포기하는 프레임을 만들려는 정치공세라 생각했다"면서도 “그럼에도 이 기회에 다시 한번 확고하게 말씀드린다. 저는 연임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밝혔다. 기존 사건의 공소 취소 논란에 대해서는 “사실은 그 결과에 따라서 법과 원칙, 상식에 따라 처리되면 될 일인데, 이게 불필요하게 정치적 쟁점이 돼서 본질을 호도하고 있는 점에 대해서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했다. 중동 정세와 관련해선 호르무즈 해협 파병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전쟁에 관여 또는 개입하는 파병은 없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로서는 다른 국가들이 하는 것처럼 자국의 상선과 원유 수송로 또는 국민들의 생명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활동은 해야 된다는 점은 분명하다"면서 “다만 그게 혹여라도 경계선이 불명확해서 뒤섞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아마 우리 국민들께서 걱정하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청해부대와 관련해서는 “여러분이 아시는 것처럼 이미 청해부대가 파견돼서 해적 등을 포함한 선박 수송로 국민 안전 위협에 군이 대비하고 있다. 대응하고 있다"며 “근데 이를 좀 강화하는 부분에 대해서 우리가 검토하고 고심하고 있다는 건 또 사실이다. 그런데 이게 마치 전쟁의 개입 관여 또는 지원 하는 파병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상무 기자 rokmc@ekn.kr

[김병헌의 체인지] 권력은 왜 민심을 늦게 듣는가

대통령이 18일 국민 앞에 섰다. 추석을 앞두고 어려운 일상을 살아가는 국민에게 송구한 마음으로 인사한다고 했다. 472일간 나름의 최선을 다해 왔으며 지위나 권력이 아니라 모두를 위해 일할 기회와 힘을 달라고 했던 초심을 잃지 않으려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 걸음 더 물러섰다. 지방선거 이후 국민의 실망과 걱정에 당황했다고 털어놨다. 결론은 짧았다. “언제나 국민이 옳다." 정치인의 사과는 흔하다. 그러나 권력의 정점에 있는 대통령이 자신의 부족함을 먼저 말하는 것은 가볍게 볼 일은 아니다. 특히 이재명 대통령처럼 판단과 추진력을 정치적 자산으로 삼아온 지도자라면 그렇다. 적어도 이날 회견에서는 변명보다 성찰을 앞세우려는 진정성이 읽혔다. 진정성은 말만으로 확정되는 것이 아니라 이후의 국정운영으로 확인될 일이지만, 민심의 경고를 공개적으로 받아들이고 자세를 낮춘 것은 의미가 크다. 눈에 띈 것은 연임 문제였다. 이 대통령은 자신의 연임 가능성에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연임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했다. 동시에 대통령 연임제 자체를 포함한 개헌 논의는 여야와 국민의 합의에 따라 추진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여기에 권력의 오래된 역설이 숨어 있다. 힘이 없을 때 정치인은 민심을 찾아다닌다. 시장에서 손을 잡고 골목에서 이야기를 듣는다. 그러나 권력을 잡으면 보고서가 민심을 대신하기 시작한다. 여론조사 숫자가 밥상머리의 한숨을 대신하고, 참모의 정리된 보고가 거리의 거친 목소리를 걸러낸다. 국민이 멀어진 것이 아니라 권력과 국민 사이에 문이 하나씩 늘어난다. 그래서 권력은 민심보다 늘 반 박자 늦기 쉽다. 개혁도 마찬가지다. 방향이 옳다고 속도까지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다. 개혁은 자동차 경주가 아니다. 빨리 도착하는 것보다 함께 도착하는 것이 중요할 때가 있다. 개혁으로 얻는 사람이 있으면 잃는 사람도 있다. 그들의 손실과 두려움을 “개혁에 대한 저항"이라고만 부르는 순간 정책은 국민의 삶에서 멀어진다. 스웨덴은 1990년대 초 금융위기와 경기침체로 GDP가 크게 줄고 실업률이 급등하자 복지와 재정제도를 대대적으로 손봐야 했다. 정치적 비용이 엄청난 개혁이었다. 그런데 소수정부가 이어지는 상황에서도 연금과 재정제도 같은 굵직한 개혁에 정파를 넘는 합의를 만들었다. OECD는 이런 정치적 합의가 정권이 바뀌어도 개혁이 쉽게 뒤집히지 않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한다. 이 대통령은 이날 검찰개혁을 완수하겠다는 뜻도 분명히 했다. 다만 개혁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의 아픔과 상실감을 최소화하도록 더 세심하게 살피겠다고 했다. 이 대목이 앞으로 중요하다. 개혁을 멈추느냐 밀어붙이느냐의 양자택일이 아니다. 국민을 설득하면서 가느냐, 국민보다 앞서 달려가느냐의 문제다. 부동산에서는 한층 단호했다. 집값을 반드시 안정시키겠다는 의지를 거듭 밝혔다. 공급과 규제, 세제를 함께 활용하고 수도권 일극체제라는 구조적 문제까지 손보겠다는 구상도 내놨다. 서울을 경제수도, 세종을 행정수도로 발전시키겠다는 방향도 그 연장선이다. 부동산은 어느 정부에나 가장 까다로운 민심의 시험대였다. 집 한 채는 통계의 숫자가 아니다. 청년에게는 결혼과 독립의 출발선이고, 중년에게는 평생 모은 자산이며, 노년에게는 노후의 버팀목이다. 집값이 흔들리면 삶의 계획도 흔들린다. 그래서 “반드시 안정시키겠다"는 대통령의 의지는 매우 무겁다. 그만큼 정책의 일관성과 결과가 뒤따라야 한다. 국민은 정부의 설명보다 자신의 전·월세 계약서와 아파트 가격표를 먼저 보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다시 초심으로 귀결된다. 대통령은 취임할 때보다 시간이 흐른 뒤 더 많은 사람에게 둘러싸인다. 보고서는 두꺼워지고 의전은 촘촘해진다. 대통령을 만나는 사람들은 많아지지만 역설적으로 평범한 국민의 목소리는 더 멀어질 수 있다. 권력의 비극은 국민의 목소리를 듣지 않겠다고 결심해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잘 듣고 있다고 믿는 순간 시작되곤 한다. 그래서 이날 “국민이 옳다"는 말보다 더 오래 기억해야 할 말은 어쩌면 '초심'일지 모른다. 연임하지 않겠다는 선언도, 개혁을 완수하겠다는 약속도, 집값을 안정시키겠다는 다짐도 결국 그 초심 위에서 평가받을 것이다. 권력을 더 오래 갖는 것보다 주어진 시간에 무엇을 남길 것인가와 개혁을 얼마나 빨리 끝냈느냐보다 국민이 얼마나 함께 걸었느냐가 중요하다. 민심은 어느 날 갑자기 변하지 않는다. 작은 실망이 쌓이다 어느 날 숫자로 나타날 뿐이다. 그래서 권력이 민심을 들어야 할 때는 지지율이 떨어지고 경고등이 켜진 뒤가 아니다. 일이 잘 풀리고 박수가 클수록 작은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권력은 바로 그때 귀를 더 크게 열어야 한다.

[김병헌의 체인지] 논두렁에서 시작된 나비효과

요즘 농촌에서는 이상한 일들이 한꺼번에 벌어진다. 농민이 시장에서 받는 농산물값은 시원찮은데 평생 일군 농지 가격마저 힘을 잃고 있다. 논을 포함한 땅값이 내려가니 그 땅을 담보로 돈을 빌리기도 예전 같지 않다. 하나가 흔들리자 다른 하나가 따라 흔들리는 모습이다. 밭에서는 더 묘한 일이 벌어진다. 소비자는 마트에서 채소 한 봉지를 들고 “왜 이렇게 비싸졌느냐"고 하는데 정작 농민은 “남는 게 없다"고 한다. 실제 일부 채소 도매가격은 전년이나 평년보다 최대 30% 떨어졌다. 반대로 에너지와 농자재 부담은 커졌다. 많이 팔아도 손에 쥐는 돈이 적어진다. 이런 농촌에 올해 새로운 변수가 하나 들어왔다. 전국 농지 전수조사다. 정부가 들여다본 1013만 필지 가운데 284만 필지, 27%가 위반 '의심' 대상으로 분류됐다. 아직 불법으로 확정된 땅은 아니다. 현장을 확인해 실제 위반 여부를 가려야 한다. 투기 농지는 당연히 걸러내야 한다. 경자유전(耕者有田)은 헌법의 원칙이다. 농지는 아파트 분양권이 아니다. 문제는 농촌의 시간이 법전처럼 반듯하게 흘러오지 않았다는 데 있다. 평생 농사를 짓던 사람이 나이가 들어 농기계를 놓으면 이웃에게 논을 맡긴다. 부모가 세상을 떠나면 도시에서 사는 자식에게 논이 넘어가기도 한다. 몸이 아파 어느 날 갑자기 농사를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그 과정에서 계약서 한 장 없이 이웃끼리 믿고 논을 맡겨온 관행도 생겼다. 전수조사가 시작되자 이 오래된 질서가 흔들리고 있다. 정부도 이를 알고 서면계약과 농지대장 등재를 유도하고 계약이 끊긴 임차농에게 농지은행 농지를 우선 공급하고 있다. 농지은행 임대위탁 계약이 넉 달 만에 전년보다 78.3% 늘어난 것은 농촌이 얼마나 민감하게 움직이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농지는 농민에게 단순한 일터가 아니다. 도시민에게 집 한 채가 그렇듯 평생 일해 축적한 재산이다. 그런데 농지는 일반 부동산처럼 누구에게나 자유롭게 팔 수 있는 땅도 아니다. 조사에 대한 불안까지 더해져 거래가 위축된다면 농민의 자산가치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정부는 올해 농지가격 하락을 전수조사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고 반박한다. 농지가격은 이미 2021년부터 하락해왔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인과관계는 통계로 따져야 한다. 그러나 농민에게 중요한 것은 통계의 화살표만이 아니다. 당장 농사를 지을 돈을 어디서 마련하느냐가 더 절박하다. 농지는 농민들의 크나큰 담보이기 때문이다. 땅값이 내려가면 은행이 인정하는 담보가치도 영향을 받는다. 다음 농사를 준비하려고 돈을 더 빌리거나 기존 대출을 연장하는 일이 어려워질 수 있다. 농사를 지어 번 돈까지 줄었다면 원리금을 갚을 힘도 약해진다. 그 충격은 논두렁에서 멈추지 않는다. 맞은편에는 지역농협이 있다. 농협 상호금융 전체 대출 연체율은 2021년 0.88%에서 지난해 말 4.03%, 2025년 8월에는 5.07%까지 상승했다. 물론 기업대출과 부동산 관련 대출 부실의 영향이 큰 만큼 이를 농가대출이나 농지 전수조사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그래서 오히려 더 살펴야 한다. 이미 물이 차오른 둑에 농지담보 가치 하락이라는 또 다른 물결이 닿을 가능성은 없는지 말이다. 농민의 상환능력이 떨어지면 농협은 대출 심사를 강화할 수밖에 없다. 농협이 문턱을 높이면 다음 농사를 지을 농민의 돈줄이 더욱 좁아진다. 농민이 어려워져 농협이 움츠러들고, 농협이 움츠러들어 농민이 다시 어려워지는 악순환이다. 여기에 더 걱정스러운 지점은 농사를 지어도 남지 않는다는 대목이다. 평생 일군 땅도 제값을 받기 어렵다. 다음 농사를 위한 돈마저 구하기까지 힘들어진다면 젊은 사람에게 농촌에 남으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결국 농지 문제는 땅에서 끝나지 않는다. 농민이 떠난 논은 스스로 쌀 한 톨 만들어내지 못한다. 사람이 떠나면 생산이 줄고 그 빈자리는 수입 농산물이 채우게 된다. 어느 순간 농지 정책이 식량안보의 문제로 바뀌는 이유다. 그래서 정부의 처방도 농지조사 이후를 향해야 한다. 현장조사에서는 투기를 위해 농사짓는 시늉을 한 경우와 농촌의 불가피한 사정으로 이웃에게 농사를 맡긴 경우를 제대로 구별해야 한다. 오랫동안 실제 농사를 지어온 임차농이 하루아침에 논에서 밀려나는 일도 막아야 한다. 구두계약으로 이어져 온 임대차는 서면계약과 농지대장 등재를 통해 제도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현실적이다. 농지은행도 단순한 임대 중개기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나이가 들어 농사를 그만두려는데 땅을 팔지 못하는 농민에게는 출구가 되고, 농사를 더 짓고 싶은 사람에게는 그 땅이 들어가는 입구가 돼야 한다. 금융의 방파제도 필요하다. 정상적으로 농사짓는 농민이 일시적인 농지가격 하락 때문에 대출 연장이나 영농자금 조달에서 곧바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정책금융이 완충 역할을 해야 한다. 농산물 가격이 생산비를 따라가지 못할 때는 올해 시행된 가격안정제와 경영자금 지원이 실제 농가소득을 떠받치도록 작동해야 한다. 농지 전수조사는 내년에도 계속된다. 투기는 잡아야 한다. 경자유전도 지켜야 한다. 정책은 연못에 돌을 던지는 일보다 그 뒤의 물결을 읽는 일에 가깝다. 돌이 떨어진 자리만 보는 것은 단속이다. 그 파문이 논두렁을 넘어 농가의 통장으로, 다시 지역농협의 금고로 번지는 과정까지 살펴야 비로소 정책이 된다. 법은 오늘의 땅을 조사한다. 좋은 정치는 그 땅에서 농사지을 사람의 내일까지 살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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