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광재 “정치인 평가할 ‘성적표’ 만들어 고성방가 정치 끝내야”

“거대한 파도가 밀려오고 있다." 이광재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은 7일 국회 본관 예결위원장실에서 진행된 에너지경제신문과 인터뷰에서 “기술혁명이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과 세계 질서 재편으로 이어지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인공지능(AI)과 데이터센터, 플랫폼을 새로운 '디지털 경제 영토'"로 규정한 그는 “여의도가 아직 충분히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위원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정보기술(IT) 혁명 당시 빌 게이츠와 앨빈 토플러 등을 직접 만나며 변화에 대응했던 사례를 언급하면서 “지금은 젠슨 황(엔비디아 CEO) 같은 세계적인 기업 최고경영자(CEO)를 대통령과 장관, 국회로 초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고 했다. 이 위원장은 당장 특정 분야부터 제로베이스 예산을 적용하기에는 이르다면서도 국가의 돈을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시스템부터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그가 제시한 '네 개의 돈주머니'는 △약 820조원의 예산 △1500조원 규모의 연기금 △3500조원 규모의 국공유 자산 △금융시장에서 움직이는 자금이다. 지금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각 부처가 서로의 장부를 제대로 보지 못한 채 예산을 편성하지만,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반드시 예산만 써야 하는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연기금이 해외 부동산을 사는 것과 국내 주거 문제 해결에 활용하는 것 가운데 어느 쪽이 국가 목표에 더 도움이 되는지 함께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국공유 자산 역시 마찬가지다. 이 위원장은 “하남에만 800만평이 넘는 국공유 자산이 있다"며 “이를 제대로 활용하려면 국가자산기본법과 전자적 통합관리 체계가 필요하다"고 했다. “청년 자립기금과 아동 자립기금, 국민성장펀드, 국부펀드 등도 재정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금융 시스템을 활용해 국가 자금을 운용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게 이 위원장의 구상이다. 이 위원장이 그리고 있는 방향은 '돈을 쓰는 국가'에서 '돈을 벌어 국민의 삶을 안심시키는 국가'로의 전환이다. AI가 발전할수록 대기업과 자본이 AI를 통해 소득을 가져가고 노동소득의 비중은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는 출생한 아이에게 1억원을 국부펀드 형태로 지급하고 연 7% 수익률을 가정하면 20세에 3억8600만원으로 늘릴 수 있다는 구상을 제시했다. 이 가운데 1억원은 청년 시기의 도전 자금으로 활용하고 나머지를 장기 운용해 노후자금으로 연결하는 방식이다. “AI 시대에는 이런 자산 형성 구조가 필요하며 현재 약 25조원에 달하는 기초연금 지출과도 연결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다음은 주요 문답. ◇ 연평균 40조 불용액…투자심사부터 AI로 ―매년 반복되는 예산 불용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무엇인가. “엄격한 투자심사가 필요하다. 이월금은 다음 해에 쓸 수 있지만 연평균 40조 원가량 발생하는 불용액이 심각한 문제다. 단년도 회계 방식의 구조적 한계도 있으나, 애초 사업 계획이 충분히 준비되지 않았거나 급하게 추진된 사업에서 불용액이 발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중앙정부뿐 아니라 지방정부와 기초자치단체 단계부터 투자심사를 전면 강화해야 한다." ―투자심사에 인공지능(AI)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는데. “AI가 투자심사와 사업평가에 큰 강점을 보일 수 있다. 국회가 자체 대규모언어모델(LLM)을 구축 중이지만 아직 성능에 한계가 있어 내부 데이터를 학습시키며 활용도를 높이는 중이다. 예산 심사와 투자심사에 AI를 적용하는 작업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고 있으며, 올해 실제 예산 심사 과정에서 시범 활용하는 방안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 AI 산업 발전을 위한 정부의 역할은. “하드웨어와 반도체 산업 지원을 넘어 서비스 영역 등 다양한 분야를 살펴야 한다. 현재 AI 관련 예산이 36조 원에 이르지만 연구개발(R&D) 사업의 성공률이 지나치게 높게 잡혀 있다. 성공률이 98%인 R&D는 존재하기 어렵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수준의 성공률을 참고해 실패 가능성이 있는 미지의 영역에도 과감히 투자해야 한다." ―특별히 집중해서 주목하는 AI 분야가 있다면. “생활 속 AI 서비스 분야다. 반도체와 하드웨어는 대기업이 상당 부분 주도할 수 있으므로, 정부는 젊은 창업자들이 영상편집, 사진, 웹툰, 드라마 등 다양한 실생활 AI 서비스를 만들도록 집중 지원해야 한다. 의료와 교육 분야에서도 API를 개방해 AI 개인 주치의나 AI 교사 같은 혁신 서비스를 창출하도록 국가 차원의 선택과 투자가 시급하다. 세계적 핵심 기술을 확보함과 동시에 한국이 직접 경쟁력을 가지는 AI 서비스 생태계를 넓혀야 한다." ―AI와 클라우드 이용료를 '디지털 임대료'라고 표현했다. “기업이 클라우드 비용을 내고 개인도 AI 서비스 이용을 위해 지속해서 비용을 지불하는 구조가 점차 커지고 있다. 한국이 외국 플랫폼에 계속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는 상황을 그대로 방치해선 안 된다. 정부와 민간이 적극 협력해 핵심 기술을 확보하고, 우리가 세계 시장에서 주도할 수 있는 서비스를 직접 만들어야 한다." ◇ 정치인도 성적표 받아야…국민 삶의 질로 평가 ―4년 만에 국회로 돌아온 소감은. “정치가 과거보다 더 나빠졌다고 체감한다. 정치인들이 국가를 어떻게 바꿀지에 대한 뚜렷한 목표와 계획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정책 경쟁보다는 언론의 주목을 끌기 위한 자극적인 말과 행동에 치우치는 경향이 심해졌다." 이 위원장은 지난 6·3 보궐선거 당시 하남갑 공천을 받아 당선돼 국회에 다시 입성했다. 그는 “이전 지역구였던 태백·영월·평창·정선이 정겨운 시골이었고, 원주가 활력의 기업도시였다면 하남은 그 둘을 섞어놓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이 위원장의 e메일 아이디는 'hanamkap'이다. ―정치를 바꿀 구체적인 해법이 있나. “정치인에게 국민 삶의 질 성적표를 매겨야 한다. 일자리·소득·주거·보육·교육·의료·문화·생활환경·공동체·불평등과 사회이동성 등을 객관적 지표로 만들어 광역단체와 234개 지방정부의 삶의 질을 매년 또는 6개월마다 낱낱이 평가하는 구상이다. 과거 지역별 대학 진학률을 투명하게 공개해 교육당국의 자발적 경쟁을 유도했던 경험처럼, 삶의 질 지표를 예산 배분과 정치인 평가에 직결시켜야 한다. 이젠 고성방가 정치를 끝내야 한다." ―국회의원 평가 기준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뜻인가. “법안 발의 수보다 지역 주민의 실제 삶이 얼마나 나아졌는지를 핵심 평가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지역구는 표를 얻는 공간을 넘어 정치인이 땀 흘려 성과를 내는 실무 현장이 되어야 한다. 기업 실적을 철저히 평가하듯 정치인도 지역 일자리·소득·주거·교육·의료 등에서 도출한 구체적인 결과물로 심판받아야 마땅하다." ◇ “검찰개혁 논쟁보다 일자리·주거에 집중을" ― 검찰개혁을 둘러싼 당내 강경파와 온건파 간 갈등을 어떻게 보나. “정치권 내부의 정쟁보다 정부 여당이 국민에게 보여줄 실질적 성과 창출에 집중해야 한다. 국민에겐 당내 옳고 그름의 논쟁보다 일자리·주거·노후 불안 같은 현실적인 민생 문제가 훨씬 더 절실하다." ―중대범죄수사청장 후보자를 둘러싼 논란도 이어지고 있다. “청문회를 통해 투명하게 판단하면 된다. 프랑스의 드골 전 대통령이 이념 성향이 확연히 다른 앙드레 말로를 문화부 장관으로 기용해 문화 전성기를 이끌었고, 사르트르를 품었던 역사적 용기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링컨의 사례처럼 정치에서 서로 다른 의견이 존재하는 것 자체는 나쁜 현상이 아니다. 상대를 비판하기는 무척 쉬우나 대안을 제시하려면 열 배 이상의 공부가 필요하다. 자신의 판단이 틀렸을 가능성을 인정하고 국민 삶을 최우선 기준으로 삼아 정치적 오류를 끊임없이 수정해 나가는 용기가 지금 정치권에 가장 필요한 덕목이다." ■ 이광재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 프로필 △1965년 강원 평창 출생 △원주고-연세대 법학과 △노무현 국회의원 비서관 △노무현 대통령 당선인 기획팀장 △대통령비서실 국정상황실장 △17~18대 국회의원(강원 태백·영월·평창·정선) △제35대 강원도지사 △21대 국회의원(강원 원주시갑·민주당) △국회 외교통일위원장 △제35대 국회사무총장 △22대 국회의원(경기 하남갑·보궐선거) △제22대 국회 후반기 예산결산특별위원장 대담=최경호 정경부장(부국장) squeeze@ekn.kr 정리=이상무 기자 rokmc@ekn.kr

[기획] 역대급 초과세수 63조…“미래세대 빚, 국채부터 갚아야”

올해 63조원 넘게 더 걷힌 세수는 미래 세대와 시장 안정을 위해 1500조에 육박한 국가채무를 갚고, 이자 부담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정부가 초과세수 일부를 미래대응기금에 적립할 것이란 전망에 국채 발행을 줄여 조달 비용을 낮추는 것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일회성 초과세수를 대규모 재정지출 사업으로 소진하지 않도록 재정 준칙 등 견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재정경제부가 지난 30일 올해 국세수입을 재추계한 결과 총 478조6000억원이 걷힐 전망이다. 지난 2월 정부가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 당시 예상했던 세수 415조4000억원보다 63조2000억원(15.2%) 많은 규모다. 현재 정부는 초과세수의 활용 방안을 논의 중인 가운데 주거 안정과 일자리, 서민금융 사업 등을 유력한 안으로 검토 중이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주거안정 플랜 119만호 공급, 국민 일자리 사업, 포용금융 확대 등 가용한 자원을 집중 투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재경부 관계자는 7일 “초과세수의 구체적인 활용 방안은 아직 결정된 게 없다"며 “국채 상환 포함 미래대응기금 적립 등 다양한 안을 두고 관계부처와 논의 중에 있다"고 말했다. 초과세수 활용 방안이 여전히 열려 있는 셈인데 무엇보다 먼저 국채 상환이 거론되는 이유는 법에 명시돼 있기 때문이다. 현행 국가재정법상 초과세수는 국채를 우선 상환하거나 국채 발행 축소에 쓰고, 당해 연도에 추경을 편성해 활용할 수 있다. 지난 4월 추경안 26조2000억원이 편성됐을 때도 국채 상환에 1조원이 쓰였다. 정부는 또 지난 1일 초과세수를 활용, 10월 국고채 발행 물량을 당초 계획보다 5조원 줄이겠다고 했다. 다만, 정부는 국채 발행을 추가로 줄이는 것은 시장 상황을 보고 판단한다는 입장이다. 윤후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6일 열린 국회 재정경제기획위원회 재경부 국정감사에서 11~12월 국고채 발행 축소 계획에 대해 물었다. 국고채 조달금리가 오른 상황에서 초과세수로 국채발행을 줄이는 방향이 바람직하다는 지적도 곁들였다. 이형일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시장 상황을 보고, 필요하다면 초과세수를 활용해 국고채 발행 물량 추가 축소도 검토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신규 국채 발행에 리스크 큰 상황 최근 국내외 금융시장 상황을 보면 장기채 금리 상승과 함께 이자 부담이 커져 신규 국채 발행에 리스크가 큰 상황이다. 초과세수를 국채 상환과 더불어 국채 발행 물량을 줄이는 데 쓰는 것이 우선 순위라는 주장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최근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는 5%를 넘어 2007년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국내 국고채 10년물 금리도 4~5%로 치솟았다. 높은 금리가 이어지면 정부의 국채 발행뿐 아니라 기업의 회사채 발행도 부담이 커진다. 가계와 기업의 이자 비용이 커지고, 자금 조달도 어려워진다. 반대로 정부가 국채 발행 물량을 축소하면 금리 상승 압력을 줄일 수 있다. 더구나 나라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상황에서 장기채 금리 상승은 국가 재정에도 부담이다. 정부의 2026~2030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국가채무는 올해 1413조8000억원에서 2027년 1519조8000억원으로 늘고, 2030년에는 1734조원으로 1700조원을 넘어서게 된다. 여기에 국가채무로 인한 이자비용은 올해 36조5000억원, 2027년 42조8000억원, 그리고 2030년 53조3000억원으로 50조 이상 기록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추가 재원 마련을 위해 국채를 발행하면 시장 금리는 더 오르고, 민간의 자금 확보가 어려워지는 이른바 '구축효과'를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조동철 전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은 “전체 재원에 한계가 있는데 정부가 재정 지출을 위해 더 쓰려고 하면 민간의 몫이 줄어드는 구축효과가 발생한다"며 “초과세수는 국채 발행 축소로 물가와 금리 상승 압력을 완화하고, 기업, 가계 등 생산 활동에 도움이 되도록 민간에 재원 활용 여지를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도 “내년 슈퍼급 예산안 등 정부가 지출을 최대한 늘린 상황에서 국채를 발행하면 구축 현상이 생기는만큼 초과세수는 50조 이상, 90% 가량 국채 상환에 써야 한다"며 “미래 세대를 위한 우선 순위는 주택공급, 일자리 등 지출 사업이 아닌 초과세수로 국채를 갚고, 이자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50조원 넘는 초과세수를 미래대응기금에 적립하기보다 국채 상환과 국채 발행 축소 규모를 더 키우는 방향으로 써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정부는 내년 162조3000억원 규모의 미래대응기금을 통해 청년·성장동력·지방·교육 등에 투자하고, 남는 자금은 향후 세수 감소에 대비, 축적해 놓는 소위 '재정 저수지'로 활용할 계획이다. 여기서, 정부는 국회에 제출한 국가재정법 개정안에 따라 초과세수는 미래대응기금에 전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지방교부세·교육교부금 개편을 통해 100조원 넘는 추가세수를 미래대응기금에 적립하기로 했는데 초과세수마저 넣는 건 과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초과세수 자동으로 미래대응기금에 넣는 건 부적절" 지적도 김 교수는 “채무에 이자비용까지 계속 불어나는 상황에서 초과세수를 50조원 이상 미래대응기금에 쌓아두는 것은 비정상적"이라며 “미래 세대를 위한다면 기금에 적립해 지출 사업으로 쓸 것이 아니라 초과세수로 바로 국채를 상환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초과세수 활용 관련 국채 상환에 쓸 규모를 우선 정한 뒤 미래대응기금 등에 활용하도록 준칙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초과세수 발생 시 당시 경기와 국채금리, 국가채무 상황 등을 보고 국채를 덜 발행할지, 추가 지출에 쓸지, 기금에 넣을지를 판단하는 배분 원칙을 세워야 한다는 제언이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채 상환에 얼마나 필요한지, 기금에 얼마나 축적할지 초과세수 활용안에 대한 준칙을 정하는 국회 논의가 필요하다"며 “기금은 국회 변경 신청 없이도 30%가량 사업지출이 가능해 정부가 자의적으로 쓰지 않도록 운용 과정과 절차를 투명하게 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도 “초과세수가 생기면 자동으로 미래대응기금에 넣는 방식은 적절하지 않다"며 “기금 적립을 법률상 고정할 경우, 법적 형식에 따라 재원이 배분돼 경제적 실질이 적고 더 효율적인 재정정책 선택을 어렵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원승일 기자 won@ekn.kr

세종에 1조8000억원 AI 데이터센터 추진…내년 착공 목표

세종=에너지경제신문 김은지 기자 세종시에 1조8000억원을 투입하는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건립이 추진된다. 액티스코리아가 2027년 착공을 목표로 사업을 추진하고, 세종시는 인허가와 기반시설 확보 등을 지원한다. 세종시는 6일 시청 세종실에서 조상호 시장과 최용석 액티스코리아 대표이사가 AI 데이터센터 건립 협력을 위한 투자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고 밝혔다. 액티스코리아는 세종시 내 약 13만㎡ 부지에 100MW급 AI 데이터센터를 지을 계획이다. 협약에 따라 투자재원을 조달하고 사업에 필요한 사항을 이행하기로 했다. 지역기업의 사업 참여와 지역인재 채용도 추진한다. 시는 인허가 등 행정 절차를 지원하고, 부지와 기반시설 확보에 필요한 관계기관 협의에도 협력할 방침이다. 액티스코리아는 세종스마트국가산업단지에 AI 관련 추가 투자 의향도 밝혔다. 시는 후속 절차를 지원해 실제 투자로 이어질 수 있도록 돕겠다는 입장이다. 액티스코리아는 글로벌 인프라 투자사 액티스의 한국법인이다. 2020년 국내 데이터센터 시장에 진출한 이후 안양 에포크 데이터센터 등을 통해 국내 투자를 늘려 왔다. 조상호 시장은 “이번 협약은 세종의 미래산업 기반을 확충하는 의미 있는 출발점"이라며 계획된 투자가 차질 없이 이행되고 스마트국가산단 추가 투자로 이어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최용석 대표는 세종을 시작으로 국내 주요 거점에 데이터센터를 계속 확대할 계획이라며, 스마트국가산단 추가 투자를 구체화하기 위해 관계기관과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김은지 기자 elegance44@ekn.kr

구미시, 태국 중소기업진흥청과 이차전지 협력

소재·부품·장비 기업 태국 진출 지원…양국 투자·기술·인력 교류 확대 구미=에너지경제신문 윤성원기자 구미시가 태국 정부와 이차전지 산업 분야의 경제협력 강화에 나섰다. 구미시는 2일 구미시청에서 태국 중소기업진흥청(OSMEP)과 이차전지 산업 협력 및 기업 투자 활성화를 위한 협력 의향서를 체결했다고 밝혔다. 이날 협약식에는 김장호 구미시장과 파니타 친나왓 태국 중소기업진흥청장 직무대행을 비롯한 양국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이차전지 산업 분야의 협력 방안과 기업 간 투자·기술·인력 교류 확대 방안 등을 논의했다. 이번 협약은 전기차와 이차전지 산업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육성하고 있는 태국과 구미시가 산업 협력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마련됐다. 태국 정부의 중소기업 지원 전담기관인 중소기업진흥청과 협력해 구미지역 이차전지 소재·부품·장비 기업의 태국 시장 진출을 지원하고 양국 기업 간 교류를 확대한다는 게 핵심이다. 구미시는 우선 지역 이차전지 소재·부품·장비 기업의 태국 시장 진출과 현지 투자, 판로 확대를 지원할 수 있는 협력 채널을 구축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태국 기업의 구미 투자와 산업단지 입주를 지원하는 등 양국 기업의 상호 투자 활성화에도 힘을 쏟기로 했다. 특히 이번 협약을 계기로 이차전지 산업을 중심으로 양국 기업의 기술 및 인력 교류를 확대하고, 구미 기업의 글로벌 공급망 진입과 해외시장 개척을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김장호 구미시장은 “태국 중소기업진흥청과의 이번 업무협약은 구미 이차전지 산업이 국내를 넘어 글로벌 시장으로 확장하는 중요한 협력의 출발점"이라며 “구미의 우수한 이차전지 소재·장비 기업들이 세계 시장에 안정적으로 진출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태국 기업의 구미 투자와 양국 기업 간 기술·인력 교류도 적극 확대해 실질적인 경제협력 성과를 만들어가겠다"고 덧붙였다. 윤성원 기자 won56789@ekn.kr

[EE칼럼] 전력 공기업 구조조정, 미래를 위한 투자와 혁신을 기대한다

허은녕 서울대학교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 전 세계에너지경제학회(IAEE) 부회장 지난 9월 3일 정부가'공공기관 기능개혁 추진 방안'을 발표하였다. 109개에 이르는 공공기관의 구조조정을 시작하겠다는 발표였다. 공공기관 구조조정은 21세기 내내 꾸준히 필요성이 제기되었으나 사실 제대로 진행된 적이 없었기에 이번 정부의 발표는 전문가는 물론 일반 국민들도 큰 관심을 보였다. 무엇보다도 대중의 주목을 받은 것은 지난 2001년 총 6개의 자회사로 분할하였던 한국전력공사의 발전 부문 중 한국수력원자력을 제외한 5개 발전 자회사를 가칭 '한국발전'으로 통합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도 이번에는 상당한 수준의 전력 분야 공기업 혁신이 진행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2001년'전력산업 구조개편'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구)한국전력공사의 분할은 사실 1997년 IMF 외환위기가 발화점이었다. 대량의 외화가 필요하였던 정부는 외국 자본이 눈독을 들이던 발전사업을 매각하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주요 발전소를 하나씩 쪼개어 매각하려 하였다. 이후 주제는 매각보다 분할과 경쟁 또는 민영화로 넘어갔는데, 김대중 정부는 학계와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자 하였다. 그 덕분에 막 대학에 자리를 얻었던 필자를 포함 수십명의 학자들이 관련 연구를 진행하였으며 학술대회와 토론회에서 치열한 토론이 이루어졌다. 토론의 대표적인 키워드는 '규모의 경제(economies of scale)'였다. 즉, 전력회사의 규모가 어느 정도일 때 전력 생산단가가 가장 낮은가 하는 논의다. 발전 부문의 분할에 찬성하는 쪽은 그시절 한국전력공사의 발전 부문이 너무 커서 몇 개 기업으로 나누어도 충분한 규모가 되며 경쟁을 통해 단가가 하락할 것이라는 연구결과를, 분할에 반대하는 쪽은 규모가 더 커야 규모의 경제를 이룰 수 있으며 특히 원료를 100% 수입에 의존하고 있기에 나누어 수입하게 되면 구매단가가 올라갈 것이라는 연구결과를 내어놓았다. 김대중 정부는 분할과 경쟁이 원가를 낮출 수 있다는 쪽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2015년 파리협정 등 기후변화협약으로 인한 국제적인 압박이 강해지자 정부는 이를 달성하기 위하여 석탄발전소를 폐쇄하기로 결정하고 그 대신 재생에너지를 확대하기로 한다. 또한 정부가 바뀔 때마다 원자력 발전에 대한 입장차이를 보이면서 발전원에 대한 국민 갈등이 깊어졌다. 이러한 변화들은 기존의 '규모의 경제'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이슈였기에 학계는 전력산업의 구조와 역할에 대한 추가적인 개편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여러번 제기하였으나 더 이상 진행되지 못하였다. 그러면서 기존 구조개편의 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연구개발이 그 하나이다. 2001년 구조개편 이전에는 발전 및 송배전 기술의 연구개발이 하나의 회사에서 이루어졌다면, 이후에는 발전 자회사 6개와 송배전을 담당하는 한국전력공사 등 총 7개의 회사로 나누어 진행하다보니 제대로 된 신기술 개발이 부족해졌다는 지적을 받게 되었다. 또한 자원개발비리 등으로 정부가 공기업의 해외투자를 억제하자 세계 최고 수준이던 국내 전력산업의 국제경쟁력이 크게 약화되었으며, 정부의 전력요금 억제 정책의 지속으로 부채가 200조원이 넘는 부실기업이 되었다. 이제는 매물로 내어놓아도 아무도 원하지 않는 기업이 된 것이다. 따라서 이번 전력 공기업의 개혁 목표가 단순히 2001년의 구조개편 이전으로의 원상복구여서는 부족하다. 통합을 통하여 규모의 경제를 이루는 것은 물론 AI, IoT, Big Data 등 4차산업혁명을 선도하는 국제적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과감한 투자와 혁신이 수반되어야 한다. 혁신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전력 공기업에 쌓여있는 빛더미를 해결할 방안은 더욱 더 찾기 어려울 것이며 그 미래는 크게 어두워질 것이기 떄문이다. 멀리 볼 필요도 없다. 이번 공공기관 기능개혁 추진 방안에 포함된 또 하나의 공기업인 대한석탄공사가 좋은 사례이다. 대한석탄공사는 19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가장 잘나가는 공기업이었지만 천연가스 등 새로운 에너지원도 함께 담당할 기회를 거부하고 석탄만 고집하다가 잊혀진 기업이 되었으며, 이름만 겨우 유지하다가 이번에 역사에서 사라지게 된다. 다음 기회는 없다. 정부와 전력 공기업들은 이번 기회를 놓치지 말고 미래를 제대로 준비하는 투자와 혁신을 이루어내어야 할 것이다. bienns@ekn.kr

성주 메뚜기 축제, 이틀간 약 12만 명 몰렸다

메뚜기 잡고 메기 잡고 고구마 캐고…'농촌 체험'이 관광객 불렀다 부모에겐 옛 추억, 아이에겐 살아있는 농촌 교육…가성비 축제 주목 성주=에너지경제신문 윤성원기자 1억 3,500만 원의 예산을 투입한 농촌 축제에 이틀 동안 12만 명이 몰렸다. 단순 계산하면 관람객 1명당 투입 예산은 1,000원 남짓이다. 화려한 공연이나 유명 연예인보다 '논과 메뚜기, 농촌 체험'을 앞세운 경북 성주의 메뚜기 축제가 지역 축제의 새로운 경쟁력을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3~4일 열린 제 6회 성주 메뚜기 축제에는 주최 측 추산 약 12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찾았다. 해를 거듭할수록 방문객이 늘면서 성주의 대표적인 가을 농촌 축제로 자리 잡는 모습이다. 축제의 중심은 이름 그대로 '메뚜기'와 농촌이었다. 황금빛으로 물든 들판에서 아이들이 메뚜기를 쫓아 뛰어다니고, 부모들은 어린 시절 농촌 풍경을 떠올렸다. 단순히 보고 즐기는 축제가 아니라 직접 논과 흙을 밟으며 농촌을 경험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구성한 점이 가족 단위 방문객을 끌어모았다. 행사장에서는 메뚜기 잡기를 비롯해 연못 메기 잡기, 황금 들녘 보물찾기, 떡 메 치기, 사과 낚시, 고구마 캐기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이 이어졌다. 어린이들이 평소 도시에서는 쉽게 접하기 어려운 농촌의 생태와 수확 과정을 직접 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호응이 컸다. 대구에서 가족과 함께 축제장을 찾은 김 모 씨는 “부모 세대에게는 어린 시절의 향수를 되살려 주고, 아이들에게는 '쌀 나무'라고 알고 있던 벼가 실제로 어떻게 자라고 그 사이에서 메뚜기가 어떻게 살아가는 지를 직접 보여줄 수 있어 좋았다"며 “놀이와 교육이 함께 있는 체험이었다"고 말했다. 김천에서 아들과 딸을 데리고 온 한 가족은 올해까지 여러 차례 축제 장을 찾았다. 이 가족은 “3회 축제 때부터 매년 찾고 있다"며 “메뚜기 잡기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메기 잡기와 보물찾기, 떡 메 치기, 고구마 캐기 등 아이들이 직접 해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많아 다시 찾게 된다"고 했다. 이 같은 '재방문 가족'이 늘고 있다는 점도 성주 메뚜기 축제의 경쟁력​으로 꼽힌다. 일회성 공연 중심의 축제와 달리 자녀의 성장 과정에 따라 매년 다른 체험을 할 수 있어 가족 단위 관광객을 다시 불러들이는 구조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지역 경제 파급 효과도 기대된다. 대규모 방문객이 몰리면서 농 특산물 판매와 먹거리 부스, 인근 음식점과 상권에도 관광객 발길이 이어졌다. 성주의 친환경 농업과 농촌문화를 관광 콘텐츠로 연결하면서 농산물 홍보와 관광객 유치를 동시에 노리는 효과도 거뒀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투입 예산 대비 방문객 규모다. 성주군에 따르면 이번 축제에 투입된 예산은 약 1억 3,500만 원이다. 지방자치단체 축제마다 유명 가수 섭외와 대형 무대 설치 등에 상당한 예산을 투입하는 가운데, 성주 메뚜기 축제는 지역이 이미 보유한 농촌과 들판, 농산물과 자체를 콘텐츠로 활용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축제의 외형만 키우기보다 현재의 농촌 체험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방문객 증가에 맞는 기반 시설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성주군 관계자는 “1억 3,500만 원의 예산으로 12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은 것은 예산 대비 성과 측면에서도 의미가 크다"며 “가성비 대비 지역 특성을 살린 체험형 축제로 성공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전국 지방자치단체가 앞다퉈 축제를 열고 있지만 관광객의 선택을 받는 축제는 많지 않다. 거액의 무대나 유명 연예인 대신 가을 들판과 메뚜기, 농촌에서 답을 찾은 성주 메뚜기 축제가 '돈 많이 쓰는 축제'보다 '다시 찾게 만드는 축제'가 경쟁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윤성원 기자 won56789@ekn.kr

[기획] 800조의 약속, 이제 ‘첫 삽’이 답할 차례…서남권 반도체 현실화 시험대⑤

광주 군공항 250만평 국가산단 후보지 지정…63만평 우선 공급 추진 삼성·SK하이닉스 실무협의 본격화…투자계획서 부지 확보·착공 단계로 팹 건설 넘어 소부장·일자리까지 연결돼야…'발표의 숫자'를 '현실의 숫자'로 전남광주=에너지경제신문 문남석기자 서남권을 대한민국 제2의 반도체 생산거점으로 만들겠다는 대규모 투자계획이 발표된 지 석 달이 지났다. 지난 6월 말 정부와 기업들이 내놓은 계획의 규모는 숫자부터 압도적이다.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앰코 등이 서남권에 제시한 전체 투자계획은 896조원에 이른다. 이 가운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반도체 메모리 팹 4기 건설에 투입하겠다고 밝힌 규모가 약 800조원이다. SK하이닉스는 약 470조원을 투자해 메모리 메인 팹 2기와 1GW 규모의 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하고, 삼성전자는 425조원을 투자해 메모리 팹 2기와 국가 AI 컴퓨팅센터 등을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앰코 역시 광주에 1조원을 투자해 첨단 패키징 팹을 증설한다는 구상을 내놨다. 숫자만 놓고 보면 서남권 산업지형을 바꿀 수 있는 규모지만, 이 숫자가 곧바로 지역에 투입되는 현금성 투자액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기업들이 제시한 중장기 투자계획을 실제 생산시설 건설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기업별 투자 결정과 부지 확보, 인허가, 산업단지 조성 등 여러 절차가 순차적으로 진행돼야 한다. 결국 이번 프로젝트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800조원을 투자할 것인가'가 아니다. 이미 기업들이 대규모 투자계획을 발표한 만큼 이제 남은 질문은 그 계획을 얼마나 빠르게 실제 사업으로 전환할 수 있느냐에 있다. 그 과정에서 첫 번째 시험대가 될 곳이 광주 군공항 일원이다. 정부는 지난 7월 광주 군공항 일원 약 250만평을 호남권 반도체 국가산단 후보지로 우선 지정하고 한국토지주택공사(LH)를 예비 사업시행자로 지정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는 전체 부지를 한꺼번에 개발하기보다 우선 활용 가능한 약 63만평을 먼저 공급해 기업의 투자 일정에 맞추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기업들의 움직임도 투자계획 발표 이후 달라지고 있다. SK하이닉스는 광주 군공항 부지에 가능한 한 넓은 생산부지를 확보하려는 의사를 나타냈고, 전남광주통합특별시는 투자계획 발표 이후 SK하이닉스와 별도의 소통채널을 마련해 7월부터 9월까지 모두 9차례 경영진·실무진 협의를 진행했다. 삼성전자 역시 호남권 투자와 관련한 준비 시점을 앞당길 수 있다는 입장을 나타내며 부지와 기반시설 등에 대한 실무 협의를 이어가고 있다. 아직 공장 착공이라는 결과로 이어진 것은 아니지만, 기업의 투자계획이 행정기관과의 구체적인 협의로 넘어가고 있다는 점은 앞으로 사업 진행 상황을 판단할 중요한 대목이다. 이제는 '투자액'보다 '착공 시계'다 앞으로 사업의 현실성을 판단할 기준은 의외로 단순하다. 투자계획이 실제 부지 확보로 이어지는지, 산업단지 조성이 예정된 일정대로 시작되는지, 기업별 착공 일정이 구체화되는지를 차례로 확인하면 된다. 특히 반도체 생산시설은 일반적인 공장 건설과 달리 투자 결정부터 생산까지 긴 시간이 필요하다. 부지가 준비됐다고 해서 곧바로 반도체가 생산되는 것도 아니다. 공장 건설 이후 생산장비 설치와 시험가동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초기 일정이 뒤로 밀릴 경우 전체 생산 일정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정부와 전남광주통합특별시가 기업의 투자 일정에 맞춰 산업단지 조성을 서두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부는 기업 투자가 계획에 머물지 않도록 산업단지 조성 기간을 단축하고 기반시설 구축을 지원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기업 입장에서도 투자 시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생산시설이 들어설 부지와 기반시설이 제때 준비돼야 한다. 결국 앞으로 몇 년간은 발표된 투자 규모보다 실제 현장에서 벌어지는 변화가 훨씬 중요하다. 산업단지에서 첫 삽을 뜨는 순간, 기업이 생산부지를 확정하는 순간, 첫 번째 팹의 착공 일정이 공개되는 순간마다 '800조원'이라는 계획의 현실성이 한 단계씩 확인될 수 있다. 여기서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대기업 투자와 지역산업의 연결이다. 800조원이 실제 집행된다고 하더라도 대부분의 자금이 외부에서 들어와 생산시설 건설에만 머문다면 지역이 체감하는 변화는 제한적일 수 있다. 반도체 장비와 소재·부품 기업, 연구기관, 물류와 건설 등 관련 산업이 함께 움직여야 대규모 투자가 지역경제 전반으로 확산될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는 대기업의 투자액뿐 아니라 협력기업의 추가 투자와 지역기업 참여 여부도 함께 봐야 한다. 반도체 클러스터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팹을 중심으로 여러 기업이 연결되는 공급망이 필요하고, 연구개발과 생산현장을 연결할 인력도 지속적으로 공급돼야 한다. 결국 800조원의 진짜 가치는 투자액 자체보다 그 돈이 얼마나 많은 기업과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지역 안에서 순환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 점에서 이번 프로젝트는 단순한 산업단지 조성사업과 성격이 다르다. 대기업 생산시설 몇 곳을 유치하는 것으로 끝나는 사업이 아니라 생산시설을 중심으로 소재·부품·장비, 연구개발, 교육, 인력, 정주환경이 연결되는 새로운 산업권을 만드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800조의 진짜 시험대는 이제부터다 지난 석 달 동안 서남권 반도체 프로젝트는 적지 않은 진전을 보였다. 대규모 투자계획이 공개됐고, 정부는 광주 군공항 일원을 국가산단 후보지로 지정했다. 우선 개발부지를 마련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으며 기업과 행정기관 사이의 협의도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여기까지가 끝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기업의 투자계획이 실제 계약과 부지 확보로 이어지고, 산업단지 조성이 시작되고, 생산시설 착공으로 연결돼야 한다. 그 과정에서 기업이 요구하는 조건을 행정이 얼마나 신속하게 해결하는지, 관련 기업들이 얼마나 빠르게 서남권으로 모이는지도 사업의 속도를 좌우하게 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간이다. 반도체 산업은 시장 변화가 빠르고 기업의 투자 판단도 글로벌 경쟁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서남권이 새로운 생산거점으로 자리 잡으려면 기업이 필요로 하는 시기에 부지와 기반시설을 제공하고, 계획된 투자 일정에 맞춰 산업 생태계를 갖춰야 한다. 그래서 앞으로의 서남권 반도체는 '800조원'이라는 숫자로 평가받기보다 얼마나 빨리 현실의 숫자로 바뀌는가로 평가받게 된다. 투자계획이 착공으로, 착공이 생산으로, 생산이 지역기업과 일자리로 연결될 때 비로소 800조원은 지역의 산업지도를 바꾸는 실질적인 투자로 기록될 수 있다. 지난 1편에서 던졌던 질문은 '왜 서남권인가'였다. 이어 반도체 벨트의 가능성을 짚고, 전력·용수·인력이라는 기반을 살폈으며, 대규모 투자가 가져올 경제지도의 변화까지 살펴봤다.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하나다. 계획이 현실이 되는지를 현장에서 확인하는 일이다. 서남권 반도체의 미래는 더 이상 투자 규모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어느 기업이 먼저 부지를 확보하고, 언제 첫 삽을 뜨며, 그 뒤를 어떤 기업들이 따라오는지가 앞으로의 방향을 결정한다. 800조원의 약속은 발표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첫 공장이 올라서고, 첫 생산라인이 가동되고, 그 주변에서 새로운 기업과 일자리가 만들어질 때 비로소 현실이 된다. 서남권 반도체 5부작이 던지는 마지막 질문도 여기에 있다. 800조원의 약속을 현실로 만드는 다음 장면은 이제 현장에서 시작돼야 한다. 문남석 기자 ans7200@ekn.kr

추석 전 떼인 하도급 대금 지급, 24% 증가 그쳐

추석 전 중소 하청업체들이 받지 못했던 하도급 대금 약 290억원이 지급돼 전년보다 24%가량 증가하는 데 그쳤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전국 '미지급 하도급 대금 해결센터'를 통해 유도한 결과다. 공정위는 대금을 지급하지 않고 있는 업체를 현장 조사해 밀린 이자까지 지급하도록 엄정 조치할 방침이다. 공정위는 지난 8월 5일부터 9월 23일까지 50일간 전국 12곳에 '미지급 하도급 대금 해결센터'를 설치·운영한 결과를 2일 밝혔다. 이 기간 총 173개 중소 하도급 업체가 미지급 대금 289억원을 받았다. 아파트 신축공사 중 타일 공사 완료 후 대금 5억원, 산업단지 조경공사 수행 후 4억3000만원 등이다. 지난해 추석 기간 지급된 232억원과 비교하면 불과 24.6% 늘어 여전히 미지급된 사례가 많은 것으로 확인됐다. 공정위 관계자는 “센터를 통해 상담 단계에서부터 적극적으로 원청사업자의 대금 지급, 당사자 간 합의를 독려해 신속히 대금이 지급될 수 있도록 유도했다"고 설명했다. 공정위는 여전히 하도급 대금을 지급하지 않은 업체들 대상으로 자진시정을 유도하기로 했다. 센터 운영 기간 접수된 사건 가운데 법정 하도급 대금 지급 기한인 60일을 넘긴 업체는 지연이자 포함 대금 지급을 완료하도록 시정 조치할 방침이다. 이후에도 자진 시정을 하지 않으면 현장 조사 등을 벌여 엄정 조치할 계획이다. 아울러, 108개 기업이 1만6175개 중소 하도급 업체에 약 2조2359억원의 하도급 대금을 조기 지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위가 자금 수요가 집중되는 추석 전에 대금 지급을 요청한 결과다. 기업별로는 계룡건설산업이 1237개 하청에 1899억원을 조기 지급해 1위를 차지했다. 이어 현대건설 426개 업체에 1742억원, 한온시스템 704개 업체에 1407억원, 현대위아 542개 업체에 1202억원 등의 순이었다. 공정위는 센터를 통해 취합된 실적을 집계한 것으로, 실제 조기 지급된 하도급 대금은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내다봤다. 원승일 기자 won@ekn.kr

충청광역연합에 권한·재정 싣는다…4개 시도 특별법 공동 추진

충남=에너지경제신문 김은지 기자 충청권 4개 시도가 충청광역연합의 권한과 재정을 강화할 특별법 제정에 공동으로 나섰다. 연합이 광역사업을 직접 시행하고 국가 재정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특례를 마련하는 것이 핵심이다. 대전·세종·충남·충북은 2일 서울 켄싱턴호텔에서 열린 '충청광역연합 특별법 제정을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특별법 제정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협약에는 충청광역연합장인 박수현 충남지사, 허태정 대전시장, 조상호 세종시장, 신용한 충북지사, 구형서 충청광역연합의회 의장이 참여했다. 이번 협약은 전국 최초 특별지방자치단체인 충청광역연합이 충청권 공동 현안을 해결하고 초광역 협력사업을 실질적으로 추진할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4개 시도는 국회와 중앙정부에 특별법 제정을 공동 건의하고 관련 토론회와 간담회를 함께 열기로 했다. 주민 대상 홍보·소통 활동을 추진하고 협약 이행을 위한 실무 협력 체계도 구축한다. 검토 중인 특별법안에는 초광역 협력사업에 대한 국가 재정 지원과 국고 보조율 상향, 광역사업 직접 시행과 인허가 일괄 의제 등의 특례가 담겼다. 국무총리 소속 지원위원회 설치, 조직·정원 자율 운영, 첨단산업 공동 육성과 규제자유특구 지정, 연합장의 국무회의 배석도 포함됐다. 지역별 주요 현안에도 힘을 모은다. 충남의 치의학연구원 천안 유치, 대전의 국가반도체 연구소 구축, 세종의 행정수도특별법 연내 제정, 충북의 중부고속도로 확장 등이다. 이날 토론회에는 4개 시도지사와 구 의장, 김경수 대통령 정무특별보좌관, 중앙부처 관계자, 전문가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최지민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센터장은 정부의 초광역특별협약·초광역특별계정 도입 일정에 맞춰 충청광역연합을 협약 체결과 계정 집행의 주체로 정립하고 관련 일반법 정비를 병행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최환용 한국법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특별법을 '사무 확정-권한 부여-재원 보장-책임 확보'의 4단계로 설계하고 교통 분야부터 특례를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패널 토론에서는 국가 권한의 포괄적 이양과 재원 직접 교부, 구성 시도 간 분담금 산식과 이익 공유 규칙 등을 특별법에 담아야 할 과제로 꼽았다. 보건·의료 등 주민이 체감할 수 있는 사무를 확대해야 한다는 데도 의견을 모았다. 박수현 지사는 “정부는 5극 3특 전략으로 국가 균형 성장의 새 판을 짜고, 충청은 충청광역연합을 통해 전국 처음으로 5극 3특 시대를 주도할 기틀을 마련했으나, 선언적 제도만으로는 초광역 행정 실행력을 담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충청광역연합 특별법은 초광역 협력의 성과를 견인할 확고한 토대가 될 것"이라며 “초광역 협력으로 충청권 전체의 동반성장을 이끄는 동시에, 대전·충남 행정통합을 통해 대혁신의 물꼬를 트고, 대한민국의 새로운 중심으로서의 충청의 미래를 만들어 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상호 시장은 “충청권의 역량을 하나로 모아 3대 메가프로젝트와 5극3특 등 국가균형발전정책을 주도해 나가야 한다"며 “특별법 제정을 위해 국회와 정부에 충청권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국회 입법 과정에서도 4개 시도가 함께 긴밀히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4개 시도는 토론회 의견과 충청광역연합의 연구용역 결과를 토대로 특별법안을 보완하고 국회와 정부에 조속한 제정을 건의할 방침이다. 김은지 기자 elegance44@ekn.kr

[기획] 800조 반도체가 바꿀 광주·전남…공장 넘어 ‘산업·생활지도’ 다시 그린다④

팹 4기 들어서면 소부장·R&D·물류까지 연관 산업 재편 가능성 상시인력 2만3000명 전망…일자리 따라 주거·교육·의료 수요도 변화 대기업 투자 넘어 지역기업 공급망 참여·청년 정착까지 이어져야 전남광주=에너지경제신문 문남석기자 800조원 규모로 제시된 서남권 반도체 투자가 현실화할 경우 광주·전남의 산업 지형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예상된다. 그동안 광주·전남 산업은 자동차와 가전, 철강, 석유화학 등 기존 주력산업을 중심으로 성장해 왔지만, 여기에 반도체라는 대규모 첨단산업이 새로운 축으로 자리 잡으면서 산업 구조 자체가 달라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단순히 반도체 생산공장이 들어서는 데 그치지 않고 소재·부품·장비를 비롯해 연구개발과 물류, 인력양성 등 연관 산업 전반으로 파급효과가 이어질 수 있어서다. 정부와 기업이 제시한 구상에서 핵심 입지로 거론되는 곳은 광주 군공항 이전부지다. 약 250만평 규모의 부지를 활용해 반도체 생산시설을 구축하고, 인근 지역까지 관련 산업이 연결되는 광역 산업권으로 확장하는 그림이 제시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각각 메모리 반도체 팹 2기씩, 모두 4기를 구축하는 계획을 내놓으면서 서남권 반도체 산업도 단순한 '유치 구상'을 넘어 실제 산업단지 조성과 전력·용수 등 기반시설 확보를 논의하는 단계로 접어드는 모습이다. 그러나 반도체 공장 하나가 들어선다고 지역경제가 곧바로 커지는 것은 아니다. 생산라인이 안정적으로 가동되려면 반도체 소재와 부품, 장비는 물론 산업용 가스와 초순수, 대규모 전력 공급망, 폐수처리시설, 설비 유지보수 등 다양한 기반산업이 함께 갖춰져야 한다. 결국 대규모 팹 투자의 성패는 생산시설 자체에만 달린 것이 아니라 주변에 얼마나 촘촘한 산업 생태계를 만들어내느냐에 달려 있는 셈이다. 반도체 산업을 대표적인 '생태계 산업'으로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생산공장 주변에 형성될 새로운 산업지도 서남권에서 가장 먼저 주목할 부분은 반도체 생산시설을 중심으로 형성될 소부장 기업과 협력업체의 움직임이다. 대규모 팹이 가동되기 시작하면 생산에 필요한 장비와 부품, 소재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기업의 역할이 커질 수밖에 없다. 장비 유지보수와 공정 지원은 물론 산업용 가스, 폐수처리 등 생산시설 가동을 뒷받침하는 기반 서비스 분야도 함께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광주에 반도체 생산시설이 들어설 경우 주변 산업단지 역시 변화가 불가피하다. 반도체 관련 기업이 입주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고, 전력과 용수, 물류 등 생산활동을 뒷받침할 기반시설을 갖추는 작업이 뒤따라야 한다. 여기서 핵심은 지역 기업이 반도체 공급망에 얼마나 참여할 수 있느냐다. 대기업 생산시설만 지역에 들어서고 핵심 소재·부품·장비는 다른 지역 기업이 공급하는 구조라면 투자 규모에 비해 지역경제로 이어지는 효과는 제한적일 수 있다. 반면 지역 기업들이 소부장과 장비, 유지보수, 물류 등의 분야에서 공급망에 참여할 경우 반도체 투자가 기존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새로운 기업을 끌어들이는 계기로 이어질 여지가 커진다. 이런 점에서 광주를 중심으로 나주와 무안 등 인접 지역의 기능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도 중요한 과제로 떠오른다. 나주는 에너지와 연구개발 기반을 활용할 수 있고, 무안은 국가산업단지 후보지와 공항 등 교통·물류 인프라를 바탕으로 배후 산업공간의 역할을 맡을 가능성이 거론된다. 광주에 생산 기능을 두고 주변 지역이 소재와 장비, 에너지, 연구개발, 물류 등을 나눠 맡는 방식으로 산업 기능을 연결하는 구상이다. 물류 역시 빼놓기 어려운 분야다. 반도체 생산 과정에서는 각종 장비와 소재가 지속적으로 오가고, 생산된 제품 역시 국내외 시장으로 신속하게 이동해야 한다. 광주 생산거점과 인접 산업단지, 공항·항만을 연결하는 물류망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특히 반도체는 생산 과정에서 공급망의 작은 차질도 생산 일정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산업인 만큼 안정적인 물류체계를 확보하는 것이 산업단지의 경쟁력과도 맞물릴 수밖에 없다. 이렇게 보면 서남권 반도체 산업의 공간을 광주 군공항 이전부지 하나로만 볼 수는 없다. 광주에서 반도체 생산이 이뤄지고, 인접 지역에서 소재와 장비, 에너지, 연구개발, 물류 기능을 나눠 맡는 연결 구조가 만들어져야 비로소 하나의 산업벨트가 모습을 갖출 수 있어서다. 이 과정에서 기존 산업단지의 역할도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반도체 관련 기업의 신규 입주와 함께 기존 기업이 업종을 전환하거나 사업 영역을 넓히면서 산업단지의 기능 자체가 재편되는 흐름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일자리 따라 주거·교육·의료도 움직인다 산업의 변화는 결국 사람의 이동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반도체 팹이 실제 가동에 들어가면 생산인력뿐 아니라 연구개발과 설비, 품질관리, 안전, 전기·가스, 시설관리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인력이 필요해진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는 반도체 팹 4기 운영에 필요한 상시 인력을 약 2만3천명 수준으로 보고 있어, 이 같은 인력 수요가 현실화할 경우 지역 고용시장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예상된다. 문제는 이 인력을 어디에서 확보하느냐다. 외부 인력을 데려오는 방식에만 의존하면 지역에 남는 경제적 효과에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 지역 대학과 특성화고, 직업교육기관이 산업 현장에서 필요한 인력을 길러내고, 지역에서 교육받은 청년이 지역 기업에 취업해 정착하는 연결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반도체 산업이 지역 대학의 교육과정까지 바꿀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공정과 장비, 소재, 설계 등 현장에서 요구하는 분야에 맞춰 교육과정을 조정하고 기업과 대학이 공동교육과 현장실습, 연구개발을 확대하면 수도권으로 빠져나가던 청년 인력이 지역에 머물 수 있는 새로운 통로도 열릴 수 있다. 사람이 늘어나면 자연스럽게 주거 문제가 따라온다. 산업단지 근로자뿐 아니라 가족 단위의 정착까지 이어질 경우 아파트와 임대주택 등 주거 수요가 커지고, 어린 자녀를 위한 학교와 돌봄시설, 의료기관, 생활편의시설을 찾는 수요도 함께 늘어날 수 있다. 따라서 반도체 산업단지를 조성하면서 공장과 도로, 기반시설만 갖추는 방식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실제 근로자와 가족이 생활할 수 있는 하나의 생활권을 함께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광주와 나주, 장성 등 인접 지역을 연결하는 교통망을 비롯해 주거·교육·의료·문화시설을 어디에 배치할 것인지도 산업단지 조성과 함께 살펴봐야 할 과제로 떠오른다. 특히 대규모 산업시설이 들어서는 지역에서는 기존 주민과 새롭게 유입되는 인구가 함께 생활할 수 있는 도시계획이 중요하다. 산업단지 주변에 주거지가 충분하지 않으면 출퇴근 차량이 늘어나고 인접 도시의 주택 수요와 교통 여건에도 변화가 나타날 수 있어서다. 의료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전문인력이 대거 유입되고 가족 단위 정착이 늘어나면 병원과 약국 같은 기본적인 의료서비스부터 응급의료, 소아·청소년 진료 등 생활권 단위의 의료 수요까지 커질 가능성이 있다. 결국 반도체 투자는 산업단지만의 문제가 아니다. 기업이 들어오고 일자리가 생기면 사람이 움직이고, 사람이 움직이면 집과 학교, 병원, 교통망과 상권까지 함께 움직이게 된다. 광주에 생산시설이 자리 잡고 나주와 무안 등 주변 지역에 연관 산업과 물류 기능이 연결될 경우 지금까지 행정구역을 중심으로 나뉘어 있던 광주·전남의 산업권과 생활권에도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대규모 투자계획만으로 지역경제의 변화를 단정하기에는 아직 넘어야 할 과제도 많다. 현재 공식적으로 제시된 핵심 투자계획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메모리 반도체 팹 4기다. 관련 기업의 구체적인 입주 규모와 투자 시기, 산업단지 조성 일정 등은 앞으로 후속 절차를 거치며 구체화될 부분이 많다. 800조원이라는 투자 규모가 지역경제의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지려면 대기업 생산시설만 들어서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지역 소부장 기업과 협력업체가 공급망에 참여하고, 지역에서 길러낸 인재가 일자리를 얻은 뒤 지역에 정착하는 구조까지 연결돼야 한다. 광주에서 반도체를 생산하고 주변 지역에서 소재·부품·장비와 연구개발, 에너지와 물류를 뒷받침하면서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광주·전남에 거주하고 교육과 의료, 소비활동을 이어가는 구조가 만들어질 때 비로소 대규모 투자가 지역경제의 변화로 연결될 수 있다. 서남권 반도체 사업을 둘러싼 관심이 투자액에서 산업 생태계로, 다시 사람과 생활의 문제로 확대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제 중요한 것은 800조원이라는 숫자 자체가 아니다. 실제 현장에 어떤 기업이 들어오고 어떤 일자리가 만들어지는지, 지역 인재가 얼마나 산업 현장에 참여하고 정착할 수 있는지에 따라 대규모 투자가 지역에 미치는 영향도 달라질 수 있다. 결국 남는 질문은 하나다. 지금 제시된 거대한 투자 구상이 실제 산업 현장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생산시설을 지을 부지는 제대로 마련되고 있는지, 막대한 전력과 용수는 제때 공급할 수 있는지, 관련 기업과 인력은 얼마나 준비돼 있는지, 무엇보다 계획으로 제시된 투자가 실제 착공과 가동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하나씩 따져볼 필요가 있다. 800조원의 약속이 지역의 현실이 되기 위해 넘어야 할 조건은 무엇인지, 마지막 5편에서 그 구체적인 조건과 과제를 짚어본다. 문남석 기자 ans7200@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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