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한대림 혹은 타이가(Taiga)라고 하는 '보레알 숲(boreal forest)'은 특정 국가나 지역을 가리키는 지명이 아니라, 기후 조건과 식생 구조로 정의되는 산림 생태대(帶)를 의미한다. 보레알 숲은 북반구 고위도 지역에 띠 모양으로 분포하며, 알래스카와 캐나다 북부, 러시아 시베리아, 북유럽 일부 지역을 포괄한다. 이 지역은 겨울이 길고 춥고 여름이 짧으며, 가문비나무·전나무·소나무 등 침엽수가 우점하는 것이 특징이다. 분해 속도가 느린 기후 조건 때문에 토양에 유기물이 두껍게 축적되고, 일부 지역에는 영구동토층이 존재한다. 이 보레알 숲에서도 낙엽활엽수의 비중이 높아질수록 산불로 인한 피해와 탄소 배출 규모가 뚜렷하게 감소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국내에서도 소나무 등 침엽수 위주의 산림 조성이 대형 산불 피해를 키운다는 지적이 이어지는 가운데, 북미 고위도 산림을 대상으로 한 이번 국제 연구는 국내 문제 제기에도 중요한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미국 노던아리조나 대학교와 우드웰 기후연구센터 소속 연구팀은 최근 국제 학술지 '네이처 기후 변화(Nature Climate Change)'에 '낙엽활엽수의 우점 증가가 보레알 숲의 산불 탄소 손실을 줄인다'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활엽수림, 침엽수림보다 산불 탄소 손실 '절반 이하' 연구진은 알래스카와 캐나다 유콘 지역에서 발생한 8개 대형 산불 지역 내 242개 조사구를 대상으로 산불 이후의 탄소 손실량과 수종 구성을 정밀 분석했다. 그 결과, 낙엽활엽수가 우점한 숲에서는 산불 발생 시 연소로 인해 손실되는 탄소량이 침엽수림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차이는 나무의 생리적·구조적 특성에서 비롯됐다. 자작나무와 사시나무 같은 낙엽활엽수는 가문비나무 등 침엽수에 비해 잎의 수분 함량이 높고, 불이 붙더라도 불길의 확산 속도가 느리다. 또한 활엽수는 불에 비교적 강한 굵은 줄기 형태(fire-resistant boles)로 탄소를 저장하는 경향이 있어, 산불이 발생해도 장기 연소와 대규모 탄소 방출로 이어질 가능성이 낮다. 반면 침엽수림은 수 세기 동안 지표에 축적된 두꺼운 토양 유기물층(soil organic layer)이 산불과 함께 타면서 막대한 탄소를 대기 중으로 방출한다. 연구 대상이 된 보레알 숲의 경우, 전체 산림 탄소의 60~85%가 바로 이 토양 유기물층에 저장돼 있어, 산불 피해의 핵심은 나무보다 토양 연소에 있다는 점이 확인됐다. ◇인위적 조림보다 자연 복원이 산불에 강해 논문은 산불 이후의 숲 복원 방식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시한다. 연구진은 심각한 산불로 토양 유기물층이 크게 소실된 지역에서는 침엽수를 다시 심지 않아도 활엽수가 자연적으로 먼저 정착해 우점화되는 경향이 뚜렷하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자연 복원이 진행되면 경관 차원에서 산불 발생 확률이 낮아지고, 화재가 발생하더라도 연소 면적이 줄어들며, 화재 진압 실패 가능성 또한 감소하는 효과가 나타난다. 연구진은 이를 산불–기후–식생 사이의 양의 피드백, 즉 “산불 → 탄소 배출 → 온난화 → 더 큰 산불"이라는 악순환을 지연시키는 자연적 완충 메커니즘으로 평가했다. ◇국내 산림에 적용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한국의 산림은 이러한 보레알 숲에 속하지 않으며, 기후적으로는 온대 몬순 기후의 온대림에 해당한다. 따라서 이번 연구 결과를 국내에 그대로 수치화해 적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연구가 국내 산림 정책에 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토양 구조나 기후 조건은 다르지만, 수종 간 기능적 차이는 기후대가 달라도 상당 부분 공통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국내의 참나무류 등 낙엽활엽수 역시 소나무에 비해 수분 함량이 높고, 불길 확산이 느리며, 지표 연료를 상대적으로 덜 형성한다. 이는 산불 피해지 복원 과정에서 과거처럼 침엽수를 대규모로 다시 심기보다, 활엽수의 자연 복원과 혼합림 조성을 유도하는 전략이 장기적으로 산불에 더 탄력적인 산림을 만들 수 있음을 시사한다. 다만 연구진은 기후 변화가 일정 임계점을 넘어서면 활엽수의 산불 억제 효과조차 극심한 고온·가뭄·강풍 같은 기상 조건에 의해 압도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는 자연의 자정 능력에만 의존하기보다, 온실가스 감축과 산림 관리 전략이 병행돼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산불과 탄소를 함께 줄이는 산림 전환 전략 이번 연구는 “활엽수 중심의 숲은 산불에도 덜 타고, 탄소도 덜 잃는다"는 사실을 생태학적으로 입증했다. 보레알 숲이라는 특수한 조건을 감안하더라도, 산불 대응과 탄소 중립이라는 이중 과제를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한국 산림 정책에 중요한 참고 자료가 된다. 산불 피해지에서의 무조건적인 침엽수 재식재가 아니라, 자연 천이를 존중하고 수종 다양성을 높이는 방향으로의 산림 관리 전환이 기후 위기 시대의 새로운 해법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이 연구는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