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의 산업 활동과 온실가스 배출로 인한 지구온난화가 자연적인 지구 기후 주기마저 뒤흔들며, 원래대로라면 진행되었어야 할 '새로운 빙하기'의 도래를 막아섰다는 정밀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라몽-도허티 지구관측소의 니콜라스 영 연구원과 뇌르크 셰퍼 교수 등이 참여한 연구팀은 이 같은 연구 성과를 담은 논문을 22일(현지 시간)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에 발표했다. ◇ 고대 식물 유해 연대측정으로 밝혀내 과거 빙하기 때 북아메리카 대륙의 약 30%를 덮었던 거대한 '로렌타이드 빙상(Laurentide Ice Sheet)'은 대부분 소멸했지만, 캐나다 바핀섬(Baffin Island) 중앙 고원에는 그 마지막 잔재인 '반스 빙모(Barnes Ice Cap)'가 남아있다. 일반적인 빙하와 달리 반스 빙모(氷帽)는 바닥 암석에 얼어붙은 채 지면을 쓸고 내려가지 않아, 빙하 아래 묻힌 과거의 이끼와 식물 유해를 고스란히 보존하는 특성이 있다. 연구팀은 빙모 주변의 암석 표면 노출 연대를 측정하는 베릴륨(Be)-10 기법과 빙하가 확장하면서 덮어버린 고대 이끼·식물 유해의 방사성 동위원소 탄소 (¹⁴C)를 정밀 분석했다. 그 결과 반스 빙모는 약 3600년 전 최소 크기로 줄어들었다가, 약 2000년 전부터 여름철 온도가 낮아지면서 다시 확장하기 시작했음이 확인됐다. 지구의 자전축과 공전 궤도 변화(밀란코비치 주기)에 따른 여름철 일식량 감소로 빙하가 커지기 시작한 이 시점은 지구 기후 시스템상 자연스러운 '다음 빙하기(Glacial Inception)'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명확한 지질학적 신호였다. 실제로 소빙하기(Little Ice Age, 1780~1880년경)에 이르기까지 약 2000년 동안 북극권의 빙하는 꾸준히 세력을 넓혀왔다. ◇ 1960년대 인류 온실가스로 빙하기 진입 '종식' 그러나 2000년 동안 이어진 빙하기 진입 흐름은 20세기 후반 들어 급격히 꺾였다. 연구팀이 항공 사진과 위성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1960년대부터 반스 빙모는 확장세를 멈추고 빠르게 후퇴하기 시작했다. 특히 1980년대 이후에는 빙모 가장자리가 연평균 약 4m씩 줄어들고 있다. 이는 산업혁명 이후 가파르게 증가한 인류의 온실가스 배출과 이로 인한 여름철 기온 상승이 자연적인 기후 냉각 주기를 완전히 압도했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자연 상태라면 당연히 진행되었어야 할 빙하기 진입 과정이 인류가 만든 온난화에 의해 중단(termination)되었다"며 “인간 활동이 지구 기후 시스템에 얼마나 강력한 충격을 주었는지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라고 설명했다. ◇ 인류, 지구를 움직이는 '지질적 행위자'… '인류세'의 명확한 증거 이번 연구에 대해 위스콘신-매디슨대학교의 숀 마콧(Shaun A. Marcott) 교수는 '사이언스' 논평을 통해 “인간은 이제 수백만 년 동안 이어져 온 자연스러운 빙하기-간빙기 주기를 저지하고, 향후 수십만 년 동안 지구 기후를 변화시킬 수 있는 '지질적 행위자(geologic agent)'가 됐다"고 평가했다. 수십만 년 단위로 작동하던 지구의 거대한 지질학적·기후적 주기를 인류가 불과 수십 년 만에 완전히 역전시켰다는 이번 연구 결과는, 지질학적 시간 단위에서 인간이 지구 시스템의 가장 강력한 변화 주체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시대를 지구 역사의 새로운 지질 시대인 '인류세(Anthropocene)'라고 부르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럽고 타당하다는 점을 이번 성과가 강력히 뒷받침해주고 있다. ☞ 밀란코비치 주기(Milankovitch cycles) 지구의 공전 궤도와 자전축 방향·기울기가 주기적으로 변하면서 지구에 도달하는 태양에너지의 분포가 달라지는 현상을 말한다. 이러한 변화는 특히 고위도 지역의 여름철 일사량에 영향을 미쳐 빙하가 성장하거나 녹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밀란코비치 주기는 지구 역사에서 빙하기와 간빙기가 반복된 원인을 설명하는 주요 요인 가운데 하나다. 다만 현재의 급격한 지구온난화는 인간 활동으로 증가한 온실가스가 주된 원인이며, 밀란코비치 주기는 수만 년 규모로 작용하는 자연적 요인이다. 밀란코비치 주기의 주요 요인은 ① 이심률(지구 공전 궤도의 타원 정도, 약 10만~40만 년 주기), ② 자전축 기울기(약 4만 1,000년 주기), ③ 세차운동(자전축 방향의 변화, 약 1만 9000~2만 3000년 주기) 등이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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