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는 더위 vs 찌는 더위, 견디기 더 힘든 쪽은? [기후 신호등]](http://www.ekn.kr/mnt/thum/202607/news-p.v1.20260730.1396d9a14173438bafedafde0d7759ff_T1.jpg)
지난 1일 경남 양산의 낮 최고기온은 41.6℃까지 치솟으며 국내 기상관측 이래 최고 기온을 기록했다. 부산도 지난달 29일 38.8℃로 기상관측을 시작한 이래 122년만에 최고 기온을 보였다. 올여름 폭염은 단순히 '더운 여름'이 아니다. 장마가 끝난 뒤 숨이 턱 막히는 찜통더위가 이어지는가 하면, 며칠 뒤에는 피부가 타들어 갈 듯한 건조한 열기가 전국을 덮친다. 같은 폭염이라도 성격은 전혀 다르다. 습도가 높아 땀이 마르지 않는 '찌는 듯한 더위'가 있는가 하면, 토양까지 바짝 말라 공기 자체가 뜨겁게 달아오르는 '타는 듯한 더위'도 있다. 두 얼굴의 폭염은 반복되고 있다. 2018년 홍천과 수도권에서는 40℃를 웃도는 기록적인 건조 폭염이 발생했다. 올여름도 영남 등 남부지방에 가뭄이 나타나는 가운데 경북 경산과 포항 등 곳곳에서는 푄(Foehn) 현상까지 겹치며 폭염 중대경보가 내려졌다. 반대로 지난달 장마 직후 서울 등 도심은 열대 지방을 방불케 하는 습한 폭염에 휩싸였고, 농촌 비닐하우스는 '습식 사우나'를 연상시키는 위험한 작업 환경으로 변했다. 해외에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올여름 미국 그랜드캐니언에서는 44℃의 건조 폭염 속에 등산객들이 목숨을 잃었다. 지난 6월 유럽은 사하라의 뜨거운 공기가 갇힌 '열돔(heat dome)' 현상으로 스페인과 프랑스에서 45℃ 안팎의 기록적인 고온과 산불 피해를 겪었다. 반면 지난 4~5월 인도와 파키스탄에서는 기온 상승에 높은 습도까지 겹치면서 수십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웃 일본은 최근 여름철 기온과 습도가 방콕·싱가포르를 닮아가는 '열대화' 현상으로 막대한 노동 손실을 겪고 있다. 기후변화가 가속화되면서 여름 폭염의 양상이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단순히 기온이 얼마나 높은지가 관심사였다면 이제는 '타는 듯한 건조한 폭염(dry heatwave)'과 '찌는 듯한 습한 폭염(humid heatwave)'을 구분해야 할 정도로 폭염의 성격이 다양해지고 있다. 두 폭염은 발생 원인도 다르고 인체를 위협하는 방식도 다르다. 하지만 결과는 같다. 사람의 체온 조절 기능을 무너뜨려 생명을 위협한다는 점에서 어느 쪽도 더 안전하지 않다. 최근 국제 학술지에 발표된 연구들은 건조한 폭염과 습한 폭염 모두 인간의 생존 한계를 위협하는 '승자 없는 죽음의 게임'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가뭄이 부른 '불의 역습'…타는 듯한 건조한 폭염 건조한 폭염은 대부분 토양의 수분 부족, 즉 가뭄에서 시작된다. 평소에는 태양으로부터 받은 에너지의 상당 부분이 토양 속 수분을 증발시키는 데 사용된다. 그러나 토양이 메마르면 이 에너지가 증발이 아닌 공기를 직접 가열하는 데 쓰이면서 지표면 온도가 급격히 상승한다. 중국 학술원 대기물리연구소 연구진은 지난해 8월 국제학술지 '지구의 미래(Earth's Future)'에 발표한 논문에서 2023년 중국 북부를 강타한 기록적인 폭염을 분석했다. 연구 결과, 당시 폭염은 이상 고기압뿐 아니라 평년보다 4배나 강력해진 토양 수분-온도 피드백(feedback)이 결합하면서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도 비슷한 경향을 보인다. 국립부경대학교 김상단 교수팀은 최근 '한국수자원학회 논문집'에 발표한 논문에 강릉과 서울 등 국내 주요 도시를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논문에 따르면 폭염 발생 약 한 달 전 토양이 건조할수록 여름철 극한 고온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게 높아지는 '음의 상관관계'가 확인됐다. 건조한 폭염이 무서운 이유는 스스로를 더욱 강하게 만드는 특성 때문이다. 토양이 마를수록 공기는 더 뜨거워지고, 더 뜨거워진 공기는 다시 토양을 더욱 건조하게 만든다. 이러한 악순환이 이어지면서 강력한 현열(顯熱, sensible heat)이 형성되고, 대기 순환의 도움 없이도 폭염이 장기간 유지·증폭될 수 있다. 현열은 물을 증발시키는 데 쓰이지 않고 공기나 지표의 온도를 직접 높이는 데 사용되는 열을 말한다. 토양이 마르면 태양 에너지가 물을 증발시키는 대신 공기를 직접 달군다는 의미다. 부경대 연구진은 논문에서 한국형 폭염의 물리적 메커니즘을 설명했다. 한국에서의 복합 극한 사건이 단순히 대기 순환의 문제만이 아니라, '토양 수분 결핍 → 증발산 억제 → 잠열 감소 및 현열 증가 → 지표 가열 강화'라는 물리적 과정을 통해 증폭된다고 설명했다. ◇바다와 폭우가 만든 또 다른 폭염…찌는 듯한 습한 더위 습한 폭염은 기온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온도는 건조한 폭염보다 낮더라도 높은 습도가 체온 조절 기능을 무너뜨리면서 훨씬 위험한 상황을 만들 수 있다. 독일 포츠담 기후영향연구소 연구팀은 지난 3월 '네이처 지구과학(Nature Geoscience)'에 발표한 연구에서 대규모 습한 폭염이 인근 해수면 온도 상승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밝혔다. 따뜻해진 바다가 대기로 더 많은 수증기를 공급하면서 육지의 습도가 높아지고, 이 수증기가 폭염을 더욱 치명적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습한 폭염이 치명적인 이유는 인간이 체온을 낮추는 거의 유일한 방법인 땀의 증발을 막기 때문이다. 땀이 흘러도 증발하지 못하면 몸속 열은 계속 축적되고, 결국 체온 조절 시스템 자체가 마비될 수 있다. 폭우도 역설적으로 폭염을 키울 수 있다. 중국 화중사범대학교 연구팀이 지난 5월 'npj 기후 대기과학(Climate and Atmospheric Science)'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전 세계 육지 면적의 73.4%에서는 기온보다 습도 이상 현상이 폭염을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장기간 비가 내린 뒤에는 토양에서 대량의 수분이 증발하면서 지표면 습도가 급격히 상승하고, 이 과정에서 습한 폭염으로 빠르게 전환되는 사례가 확인됐다. 한반도에서 나타나는 습한 폭염은 기후변화로 따뜻해진 주변 바다에서 증발한 수증기가 북태평양고기압 가장자리를 따라 유입되면서 시작된다. 여기에 상층의 티베트고기압과 하층의 북태평양고기압이 겹치는 이른바 '이중 열돔(double heat dome)'이 형성되면서 뜨겁고 습한 공기가 한반도에 장기간 갇히게 된다. 장마나 집중호우가 끝난 뒤에는 토양에 머금은 수분이 빠르게 증발해 지표면 습도를 더욱 끌어올리면서 한증막 같은 환경을 만든다. 경북 남부와 동해안 등에서는 산맥을 넘는 공기의 푄(Foehn) 현상까지 더해져 체감온도가 더욱 높아질 수 있다. 한반도의 습한 폭염은 바다와 대기, 토양, 지형이 함께 만들어내는 복합적인 기상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어느 쪽이 더 위험할까…답은 “둘 다 치명적" 오랫동안 과학계는 습구온도 35℃를 인간의 생존 한계로 여겨왔다. 하지만 최근 연구들은 이 기준이 실제보다 지나치게 낙관적이었다고 지적한다. 호주 국립대학교 연구팀은 지난 3월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Nature Communications)'에 발표한 연구에서 실제 폭염 사례를 분석한 결과, 건조한 폭염과 습한 폭염 모두 습구온도 35℃보다 훨씬 낮은 조건에서도 사망 위험이 크게 증가할 수 있다고 밝혔다. 건조한 폭염에서는 습도가 낮아 땀이 비교적 잘 증발한다. 하지만 사람이 만들어낼 수 있는 땀의 양에는 한계가 있다. 기온이 40℃ 안팎까지 치솟고 이런 환경에 장시간 노출되면 땀만으로는 열을 배출하지 못해 결국 체온이 위험 수준까지 상승한다. 반대로 습한 폭염에서는 기온이 30℃ 초반이라도 높은 습도 때문에 땀이 거의 증발하지 않는다. 신체의 냉각 장치가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낮은 온도에서도 열사병과 사망 위험이 급격히 높아질 수 있다. 결국 건조한 폭염은 지나치게 높은 기온이 문제이고, 습한 폭염은 열을 내보낼 수 없는 환경이 문제라는 차이가 있을 뿐, 두 폭염 모두 인간의 생존 능력을 넘어설 수 있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결론이다. ◇가장 먼저 쓰러지는 사람들…고령층과 야외 노동자 폭염의 피해는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지 않다. 가장 취약한 집단은 65세 이상 고령층이다. 나이가 들수록 땀샘 기능과 혈액순환 능력이 저하되면서 체온 조절 능력이 크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특히 직사광선을 피할 그늘이 없는 환경에서는 현재 수준의 폭염만으로도 고령층이 반복적으로 생존 불가능한 조건(non-survivable conditions)에 노출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나오고 있다. 이 밖에도 임산부와 어린이, 심혈관질환이나 호흡기질환 등 기저질환을 가진 사람들, 그리고 경제적 이유로 냉방시설을 충분히 이용하지 못하는 취약계층과 장시간 야외에서 일해야 하는 노동자들이 폭염의 직접적인 희생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심혈관 질환자는 열로 인해 심박수가 증가하고 혈압이 떨어지면서 심장에 과도한 부담을 받게 된다. 또한 만성 콩팥병 환자는 탈수로 인해 신장 기능이 급격히 악화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향정신성 의약품, 이뇨제, 항히스타민제 등 항콜린성 작용을 하는 약물은 체온 조절 경로에 영향을 주거나 땀 분비를 억제하여 고열 발생 위험을 높인다. 신체 조절 기능이 성인보다 미숙하거나 신진대사가 활발한 어린이도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기온만 봐서는 안 된다…폭염 대응도 달라져야 폭염 대응 방식 역시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 최근 연구들의 공통된 결론이다. 중국 하해대학교 연구팀은 지난 3월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발표한 연구에서 “건조한 폭염과 습한 폭염의 발생 원인이 서로 다른 만큼 지역 특성에 맞춘 대응 전략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우선 폭염 경보 체계부터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최고기온만 발표하는 것이 아니라 토양 수분 상태를 반영하는 가뭄지수(SPI)와 습도 또는 습구온도를 함께 고려하는 입체적인 폭염 경보 시스템이 필요하다. 도시에서는 그늘이 생명을 구하는 기반시설이 된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단순히 그늘 아래로 이동하는 것만으로도 열사병 위험을 절반 이하로 줄일 수 있다. 도시 녹지 확대와 가로수, 그늘막 설치는 폭염 적응을 위한 가장 비용 대비 효과가 높은 대책 가운데 하나다. 냉방 복지도 중요하다. 선풍기는 습도가 낮은 환경에서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기온이 지나치게 높거나 습도가 매우 높은 상황에서는 체온을 효과적으로 낮추지 못할 수도 있다. 실내 기온이 37℃ 이상일 때는 선풍기만 사용하면 오히려 탈수를 가속할 수 있으므로, 반드시 에어컨을 사용하거나 시원한 물로 몸을 식혀야 한다. 전문가들이 에어컨 접근성을 폭염 대응의 필수 인프라로 강조하는 이유다. 기후변화는 이제 단순히 평균기온만 높이는 것이 아니라 폭염의 성격 자체를 바꾸고 있다. 건조한 폭염은 대지를 태우고, 습한 폭염은 사람의 체온 조절 기능을 가둔다. 앞으로는 기온만 바라보는 시대를 넘어 토양 수분과 습도까지 함께 살펴야 진짜 폭염의 위험을 읽을 수 있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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