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날씨가 전기를 만든다’ 재생에너지 시대, 기상정보의 가치

최근 5년 동안 우리나라에는 극단적인 기상현상이 빈번하게 발생하며, 1970년대 대비 폭염일수는 2.3배, 집중호우 빈도는 3.1배 증가했다. 기후위기로 인한 기상재해가 먼 미래의 일이 아닌 지금 우리 앞에 닥친 현실이 된 것이다. 기후위기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18세기 산업혁명을 기점으로 확대된 화석연료 기반 에너지 생산으로,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궁극적인 대응책은 재생에너지를 중심으로 하는 저탄소 에너지 시스템의 구축이다. 현재 국제사회는 이를 향해 빠르게 나아가고 있으며,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23년 기준 30%, 2024년 기준 32%에 달하는 전 세계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2030년에는 43% 수준까지 도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국제적 흐름에 발맞추고자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제11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2023년 기준 8.4%로 전 세계 평균에 크게 못 미치지만, 2030년에는 두 배 이상인 18.8%로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는 에너지 대부분을 해외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나라 에너지 구조의 취약성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기도 하다. 2024년 기준 우리나라의 에너지 수입 의존도는 93.7%로, 올해 2월 말 시작된 중동사태가 에너지 위기로 이어지면서 국가 에너지 체질을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완전히 탈바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진 바 있다. 대표적인 재생에너지로 태양광과 풍력을 들 수 있다. 태양광과 풍력은 '날씨에 따라 발전량이 달라지는 전기'라는 점에서 기존의 발전 방식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맑은 날에는 태양광 전기가 많이 생산되지만, 구름이 끼거나 비가 오면 발전량이 급격히 줄어든다. 풍력 발전 역시 바람이 약하거나 너무 강할 때, 풍향이 이리저리 자주 바뀔 때는 제 역할을 하기 어렵다. 결국 재생에너지 비중을 확대하려면 날씨에 따라 들쭉날쭉한 발전량을 잘 예측하고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때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기상정보이다. 이에 기상청은 재생에너지로의 전환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재생에너지 기상정보 플랫폼'에서 맞춤형 기상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재생에너지의 출발점은 기상자원을 정확히 읽어 최적의 발전 위치를 찾아내는 '발전단지 입지 선정'이다. 이를 위해서는 특정 지역에 햇빛이 얼마나 잘 드는지, 바람이 얼마나 안정적으로 부는지 알 수 있는 장기간 기상기후자료가 필요하다. 기상청은 바람 분석정보(재현바람장)와 햇빛 분석정보(일사량 자원지도)를 제공하고 있으며, 발전사업 관련 기관과 기업들은 이를 풍력과 태양광발전 시설의 입지 선정에 활용할 수 있다. 발전단지 구축 후 본격적인 발전기 운용 단계에서는 발전량에 영향을 주는 일사량, 구름의 양, 풍속 등의 기상예측정보가 요구된다. 수 시간에서 수일에 이르는 기상예측자료는 발전량 예측 정확도를 결정짓는 핵심 요소로, 전력시장 운영과 직결된다. 기상청은 올 하반기에 한국형 수치예보모델의 일사량과 풍력터빈 고도의 바람 예측정보를 제공하여, 전력 공공기관과 발전단지 등이 이를 발전량 예측에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또한, 기상정보는 발전설비의 유지관리 측면에서도 활용 가치가 크다. 강풍, 낙뢰, 폭설, 염해 등은 발전설비의 주요 고장 원인으로 작용하기에, 이를 사전에 예측해 대응하면 사고를 줄이고 유지관리 비용도 절감할 수 있다. 재생에너지 기상정보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경우, 우리 사회와 경제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는 상당하다. 신뢰도 높은 기상정보를 바탕으로 발전량 예측 정확도가 향상되면 전력계통 운영 비용이 절감되어 에너지 효율을 높일 수 있으며, 관련 산업의 경쟁력 강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재생에너지 시장의 안정성과 투자 신뢰도를 높여, 재생에너지 확대의 선순환 구조를 형성한다. 이는 에너지 구조 변화에 그치지 않고, 장기적으로 우리나라의 에너지 안보와 기후위기 대응 리더십을 높여 국가 위상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처럼 기상정보는 날씨 안내, 그 이상의 커다란 가치를 가진다. 기상청은 재생에너지 맞춤형 기상정보를 지속적으로 고도화하고, 전력 공공기관, 정책기관 등과의 협력은 물론이고 재생에너지 산업계와 실질적인 연계를 강화하고자 한다. 신뢰성 높은 기상정보를 제공하여 에너지 전환 시대에 재생에너지 산업을 지원하는 중추적 기관으로 거듭나고,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데에 이바지할 것을 다짐한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공원에 1달러 넣었더니 3.6달러로…도시 녹지의 ‘대박 수익률’ [환경포커스]

도시의 공원과 녹지가 단순한 휴식 공간이 아니라 막대한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자연자본(Natural Capital)'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자연자본은 숲·하천·습지·공원과 같은 자연환경을 하나의 자산으로 보고, 이들이 제공하는 다양한 생태계 서비스를 경제적 가치로 평가하는 개념이다. 최근 연구들은 도시 녹지가 시민의 건강을 증진시키고 홍수 피해를 줄이며, 부동산 가치를 높이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도시 경제에 기여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의 자연보전 비영리단체인 공공토지재단(Trust for Public Land, TPL)은 최근 발표한 보고서(지역사회 공원과 녹지가 창출하는 확실한 경제적 가치: 2026 파크스코어 보고서)에서 매년 공원과 녹지에 투자한 돈의 3배가 넘는 경제적 편익을 창출한다고 분석했다. 이 보고서는 TPL의 선임 연구원인 리사 W. 포데라로, 윌 클라인, 제니퍼 클린턴 등이 공동 집필했고, 미국 11개 대도시의 공원 시스템을 대상으로 비용-편익 분석을 수행한 결과를 담고 있다. 보고서는 대상 도시들의 주민 1인당 연간 평균 지출액(Costs)은 196달러였고, 이를 통해 얻는 연간 평균 혜택(Benefits)은 716달러로 나타나 약 3.66배의 수익률을 기록했다고 지적했다. 연구진은 공원이 단순한 여가시설이 아니라 도로·하수도·도서관과 같은 핵심 사회기반시설이라고 평가했다. 분석 결과 공원 투자로 발생하는 경제적 편익은 크게 의료비 절감, 홍수 저감, 소비자 비용 절감, 부동산 가치 상승, 민간 투자 유치 등 다섯 가지 분야에서 나타났다. ◇운동과 건강이 만드는 경제 효과 도시 녹지가 제공하는 가장 큰 혜택 중 하나는 의료비 절감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연간 의료비 지출은 2024년 기준 5조3000억 달러(약 8000조 원)에 달하며, 신체 활동 부족으로 인한 비용만 연간 2050억 달러에 이른다. 연구진은 공원을 이용해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권장하는 주당 150분 이상의 운동량을 채우는 시민들이 만성질환 위험을 낮추고, 결과적으로 1인당 연간 평균 2298달러(약 348만원)의 의료비를 절감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특히 공원은 헬스장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운동하는 공간으로 나타났다. TPL이 2026년 실시한 전국 여론조사에서는 야외 공공공간이 미국인들의 가장 중요한 운동 장소로 조사됐다. ◇정신 건강까지 지키는 녹지 도시 녹지의 가치는 신체 건강에만 머물지 않는다. 2021년 오스트리아 빈 대학교와 영국 엑스터 대학교 연구진은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츠(Scientific Reports)'에 관련 논문을 발표했다. 연구진이 18개국 1만6307명을 분석한 결과, 자연과의 접촉이 많고 녹지를 자주 방문하는 사람일수록 삶의 만족도가 높고 정신적 스트레스가 적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TPL 보고서 역시 공원이 사람들의 사회적 교류를 촉진하고 외로움을 줄이는 '제3의 장소(Third Place)' 역할을 한다고 설명한다. 연구진은 자연 속에서 보내는 시간이 스트레스 완화, 집중력 향상, 심혈관 건강 개선 등에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이는 우울증과 사회적 고립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자연자본 가치로 평가된다. ◇공원은 도시의 거대한 스펀지 기후위기 시대에 도시 녹지의 가치는 더욱 커지고 있다. 최근 세계 여러 도시에서는 집중호우가 잦아지면서 하수도 시설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빗물이 유입되고 있다. 보고서는 공원과 녹지가 미국 도시 면적의 약 14%를 차지하지만, 전체 투수성 면적의 22%를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나무와 토양, 잔디는 빗물을 흡수해 하수도 시설의 부담을 줄이고 홍수 피해를 예방한다. 특히 생태수로(Bioswale), 저류지, 투수성 포장 등을 갖춘 공원은 거대한 천연 스펀지 역할을 수행한다. 연구진은 미국의 사례에서 공원이 연간 수백만~수천만 달러 규모의 우수(雨水) 처리 비용을 절감하는 효과를 낸다고 분석했다. ◇시민의 지갑을 지켜주는 무료 인프라 공원은 시민들의 생활비 부담도 덜어준다.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민간 헬스장 평균 이용료는 연간 828달러(약 125만 원)에 달하지만, 공원의 운동시설은 대부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또한 무료 운동 프로그램, 문화행사, 어린이 프로그램 등도 제공된다. 연구진은 시민들이 공원 서비스를 이용함으로써 얻는 소비자 잉여(Consumer Surplus)가 연간 약 600달러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이는 물가 상승으로 가계 부담이 커지는 상황에서 공원이 중요한 사회안전망 역할을 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부동산 가치와 지역경제도 끌어올린다 공원은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엔진 역할도 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사람들은 잘 관리된 공원에서 약 150m 이내에 있는 주택에 대해 5~15%의 가격 프리미엄을 지불할 의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부동산 가치 상승은 지방정부의 재산세 수입 증가로 이어지며, 다시 공공서비스 확충에 활용될 수 있다. 또한 공원은 관광객을 유치하고 주변 상권을 활성화한다. 미국 국립레크리에이션공원협회(NRPA)에 따르면 공원과 레크리에이션 산업은 미국에서 연간 2010억 달러의 경제활동과 11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 ◇“도시의 녹지는 가장 수익률 높은 투자" TPL 연구진은 공원을 도시의 '슈퍼푸드(Superfood)'에 비유했다. 하나의 공원 투자가 건강 증진, 홍수 대응, 공동체 형성, 지역경제 활성화, 기후변화 적응 등 여러 효과를 동시에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자연자본 관점에서 보면 도시 녹지는 단순한 조경 시설이 아니다. 시민의 건강을 지키고, 기후위기에 대응하며,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생산적인 자산인 셈이다. 이에 따라 과거에는 공원을 비용으로 여겼다면, 이제는 도시의 미래를 위한 투자 대상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공원에 심은 나무 한 그루가 결국 시민의 삶의 질과 도시의 경제력을 함께 키우기 때문이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기획] ① 뜨거워지는 바다, 발전소 온배수의 경고

기후위기로 바다 수온이 상승하는 가운데 전국 곳곳에서 발전소 온배수 문제가 새로운 환경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여수국가산단 일대에서 추진 중인 LNG복합화력발전소 건설을 계기로 온배수가 해양생태계와 어업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는 반세기 넘게 발전소 온배수를 직접 규제하는 법적 기준조차 없는 실정이다. 에너지경제신문은 여수 LNG발전소 논란을 계기로 전국 온배수 문제의 실태와 제도적 허점을 3회에 걸쳐 짚어본다. 전남광주=에너지경제신문 문승용 기자 전남 여수국가산단에 추진 중인 LNG복합화력발전소를 둘러싸고 해양생태계 훼손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환경단체와 어민들은 발전소에서 배출되는 온배수가 바다 생태계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사업자는 기술적 문제는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어 갈등이 커지고 있다. 논란의 중심은 한국동서발전이 추진 중인 신호남 LNG발전소다. 발전소는 발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열을 식히기 위해 대량의 해수를 끌어와 냉각수로 사용한 뒤 다시 바다로 방류하는 관류냉각 방식을 채택할 계획이다. 환경단체들은 이 과정에서 배출되는 온배수가 해양생태계에 미칠 영향을 우려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발전소 온배수는 주변 해역보다 7~8도 높은 상태로 방류된다. 신호남 LNG발전소 역시 초당 200톤이 넘는 해수를 사용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수환경운동연합은 최근 성명을 통해 여수산단과 인근 지역에서 추진되는 LNG복합화력발전소가 모두 6기에 달한다며 사업 전면 재검토를 요구했다. 이 단체는 총 설비용량이 약 2600MW에 달하는 발전시설이 추가 건설될 경우 전남지역 전력수급 상황을 감안할 때 과잉 공급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온배수 배출이 증가하면 이미 기후변화로 고수온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여수 연안의 해양환경에 추가 부담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어민들의 우려도 적지 않다. 최근 수년간 여수 연안에서는 적조와 고수온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여기에 발전소 온배수까지 더해질 경우 산란장 파괴와 어족자원 감소가 가속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환경단체들은 특히 여수 앞바다가 반폐쇄성 해역 특성을 일부 갖고 있어 열이 장기간 축적될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해수 순환이 원활하지 않을 경우 특정 해역의 수온이 지속적으로 상승해 생태계 교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반면 발전사업자는 환경영향평가와 기술 검토를 거쳐 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법적 기준을 충족하고 있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여수 논란은 단순히 지역 발전소 건설 문제를 넘어 전국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온배수 갈등의 축소판이라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실제 다른 지역에서는 이미 어업 피해와 생태계 변화 논란이 현실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문승용 기자 symnews@ekn.kr

[내일날씨] 수도권·강원도 흐려 소나기 주의

오는 10일 전국이 대체로 맑으나 수도권과 강원도 지역은 흐리고 비가 오는 곳이 있겠다. 9일 기상청 단기예보에 따르면 새벽부터 아침 사이 경기 북부와 강원 북부 내륙에는 0.1㎜ 미만의 빗방울이 내릴 것으로 예보됐다. 오전부터 저녁 사이에는 경기 북부 내륙과 강원 북부, 강원 중부내륙에는 비가 가끔 내리겠다. 예상 강수량은 경기 북부 내륙과 강원 북부, 강원 중부내륙이 5∼20㎜, 서해5도가 5㎜ 안팎이다. 서울은 최고기온이 26℃(도)로 비교적 시원하고 대구는 30도로 덥겠다. 전국 최저기온은 13~17도, 최고기온은 24~30도로 예보됐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소양호 붕어 떼죽음…정부 “이른 성층화 탓” vs 일각 “봄철 물 뒤집힘 때문”

강원도 소양호 상류에서 올해 4월 발생한 붕어류 집단 폐사 원인이 저층부 산소 부족과 산란기 면역력 저하, 세균 감염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정부 조사 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정부가 설명한 호수 성층화 자체보다는 봄철 물 뒤집힘(turnover) 현상 탓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기후에너지환경부와 국립환경과학원은 9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소양호 붕어류 폐사에 대한 정밀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특정 독성물질 유입이 아니라 호수 저층의 빈(貧)산소화와 산란기 생리적 스트레스가 겹친 복합적 현상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지난 4월 초부터 소양호 상류에서 관찰된 폐사로 49개 어가가 조업을 중단하는 등 큰 피해를 입었다. 정부는 원인 규명을 위해 관계기관과 전문가, 지역 어민이 참여하는 협의체를 구성하고 지난달 현장 정밀 조사를 실시했다. 이날 기후부가 밝힌 조사 결과에 따르면 소양호 상류 일부 지점에서는 저층 용존산소 농도가 2mg/L(2ppm) 이하로 떨어지는 빈산소 현상이 확인됐다. 연구진은 상류에서 유입된 유기물이 호수 바닥에 퇴적된 뒤 분해되는 과정에서 산소를 지속적으로 소비했고, 이로 인해 저층 수역의 산소가 부족해진 것으로 분석했다. 국립환경과학원 김경현 물환경연구부장은 “올해 봄에는 높은 수위와 상대적으로 높은 기온, 적은 강수량이 겹치면서 표층과 저층이 잘 섞이지 않는 성층화 현상이 일찍부터 심화된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성층화가 저층의 산소 부족을 더욱 악화시켰다"고 설명했다. 성층화는 따뜻한 표층수와 차가운 심층수가 층을 이루며 분리되는 현상으로, 일단 형성되면 산소가 풍부한 표층수와 산소가 부족한 저층수의 교환이 제한된다. 실제 조사에서는 퇴적층 위 1m 이내 저층부에서 빈산소 상태가 확인됐으며, 폐사한 떡붕어의 아가미 조직에서는 염증과 변형도 관찰됐다. 또 다른 요인으로는 산란기 스트레스가 지목됐다. 폐사체 대부분은 산란기에 접어든 성체 떡붕어였으며, 폐사 지점 역시 떡붕어 산란장이 집중된 38대교 상류 지역이었다. 연구진은 산란 과정에서 체력과 면역력이 저하된 상태에서 환경 스트레스가 가중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여기에 자연 담수 환경에 흔히 존재하는 에로모나스(Aeromonas)균 감염도 확인됐다. 에로모나스균은 일반적으로 건강한 물고기에게 치명적이지 않지만, 저산소 환경이나 산란 스트레스 등으로 면역력이 약해질 경우 궤양, 출혈성 병변, 패혈증 등을 일으킬 수 있다. 이에 따라 기후부는 “저층 산소 부족 → 산란기 면역력 저하 → 세균 감염"이라는 연쇄적인 복합 작용이 폐사를 유발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일부에서 제기된 황화수소 중독 가능성에 대해서는 제한적인 증거만 확인됐다. 조사 결과 황화수소는 수층 전체에서는 검출되지 않았으며, 호수 바닥 공극수(퇴적물 입자 사이의 물)에서만 미량 검출됐다. 환경과학원은 붕어류가 저층에서 먹이활동을 하는 특성을 고려할 때 황화수소 역시 스트레스 요인 중 하나로 작용했을 가능성은 있지만, 직접적인 폐사 원인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중금속과 농약 등 외부 독성물질은 검출되지 않았거나 모두 기준치 이하로 확인됐다. 하지만 여름철 호수 성층화가 6~9월에 강하게 나타난다는 점에 비춰 성층화 자체가 아니라 겨울철 내내 지속된 역(逆)성층화 현상이 봄철 수온 상승으로 수층 전체가 뒤섞인 게 원인일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물 뒤집힘 현상으로 저층의 빈산소층이나 황화수소가 확산된 탓일 수 있다는 것이다. 환경과학원 측은 이에 대해 “붕어 치어가 아닌 성체만 피해를 본 것이라는 점에서 성층화 현상 탓이 맞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환경과학원이 “붕어 성체는 치어보다 활동량이 많아 산소 부족에 취약하다"고 밝혔던 점을 고려하면 물 뒤집힘이 성체 폐사의 직접 원인일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이에 따라 보다 명확한 원인 규명을 위해서는 물고기 폐사 시기를 전후한 수층별 수온과 용존산소 분포 등 추가 자료 공개가 필요한 상황이다. 한편, 기후부는 이번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향후 물고기 폐사가 재발하지 않도록 대책을 추진하기로 했다. 우선 유기물 농도가 많은 퇴적물 축적을 막기 위해 소양호 상류 고랭지밭의 경작 구조 개선(작물 전환과 계단식 밭 조성)과 가축분뇨 관리 강화, 고농도 유기물 퇴적물 준설 제거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또, 저층 용존산소 농도와 산화환원전위(ORP)를 상시 모니터링하고, 물순환장치를 활용해 저층 빈산소화를 예방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어민 피해 회복을 위해 어구·어망 등 어업용 소요자재 반값 지원, 생태계 교란 어종 수매 등을 통해 어가 소득을 지원하기로 했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재생에너지 이격거리 왜 또 논의하냐”…기후시민회의에 쏟아진 국민 제안

국민들이 기후위기 대응 정책과 관련한 다양한 의견을 정부에 직접 제안하고 나섰다. 재생에너지 입지 규제, 지역별 전기요금제, 환경교육 의무화는 물론 친환경 소비문화 확산까지 생활 밀착형 아이디어가 기후시민회의를 통해 쏟아지고 있다. 대통령 직속 국가기후위기대응위원회는 기후시민회의 의제 제안 홈페이지를 통해 접수된 국민 의견을 시민참여단 숙의 과정을 거쳐 향후 정부 정책 권고안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8일 밝혔다. 기후대응위는 국민 누구나 기후위기 대응과 관련한 정책 아이디어를 제안할 수 있도록 온라인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다. 홈페이지에는 기후·에너지·환경 분야를 중심으로 여러 제안이 등록되고 있으며, 이용자들은 다른 시민이 제안한 의제도 확인할 수 있다. 현재 공개된 의제 중에는 재생에너지 정책과 관련한 의견이 눈에 띈다. 한 시민은 “재생에너지법 공포 후 이격거리안 세부안을 또 논의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며 “수년에 걸쳐 논의된 사안을 법 공포 이후 다시 검토하는 것은 업계 혼란을 키울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시민은 최근 정부가 추진 중인 지역별 전기요금제 도입과 관련해 “용인 반도체 산단 전력 공급을 위한 송전망 건설 과정에서 주민 의견 수렴이 부족하다"며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기 위해 지역별 전기요금 차등제를 기후시민회의에서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기후위기 대응 과정에서 교육 확대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한 시민은 어린이집 단계부터 탄소중립 교육을 의무화해야 한다며 교직원 교육과 학부모 대상 환경교육 확대, 체험형 교육 프로그램 도입 등을 제안했다. 기후위기 대응 인식을 어릴 때부터 형성할 수 있도록 국가 차원의 교육 체계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환경호르몬 문제를 기후·환경 정책 의제로 다뤄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한 시민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국민을 대상으로 환경호르몬 노출 검사를 무료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임신부와 영유아 부모, 청소년 등을 우선 대상으로 검사를 실시해 국민들이 자신의 환경호르몬 수치를 직접 확인하도록 하면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는 자발적인 행동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생활 속 탄소 감축을 위한 아이디어도 다수 제시됐다. 대중교통 이용을 활성화하기 위해 전국 어디서나 사용할 수 있는 통합 교통카드를 도입하고, 이용 횟수가 많을수록 할인 혜택을 제공하자는 의견이 대표적이다. 이 밖에도 친환경 배달문화 정착, 일회용품 없는 공공행사 의무화, 홍보 인쇄물 규제 등 정책 제안이 등록됐다. 기후시민회의 의제 제안 홈페이지는 상시 운영되며, 오는 30일까지 의제를 등록한 참여자 가운데 100명을 추첨해 경품도 제공한다. 이창훈 국가기후위기대응위원회 민간위원장은 “기후위기 대응은 국민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며 “생활 속 경험과 아이디어가 실제 정책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값싼 상품은 부국으로, 오염은 빈국으로”…국제 무역이 낳은 ‘건강 불평등’[환경포커스]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스마트폰·의류·가전제품·철강제품 등은 어디에서 만들어질까. 세계화 시대의 소비자는 국경을 초월해 상품을 구매하지만, 그 상품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대기오염과 건강 피해는 결코 공평하게 나뉘지 않는다. 올들어 발표된 두 편의 국제 연구는 국제 무역이 단순히 부를 교환하는 것이 아니라, 대기오염과 조기 사망의 부담까지 국가 간에 재분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부유한 국가가 누리는 깨끗한 공기와 값싼 상품 뒤에는 저소득 국가 주민들의 건강 악화와 조기 사망이 숨어 있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확인됐다. ◇무역이 초래한 '보이지 않는 사망' 미국 일리노이대학교 어배너-섐페인 캠퍼스의 시위안 왕 연구원과 크리스토퍼 테섬 교수 연구팀은 지난 4월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에 발표한 논문에서 국제 무역이 전 세계 대기오염 사망을 어떻게 재분배하는지 분석했다. 연구진은 약 200개국의 무역·배출·건강 자료를 통합 분석해 초미세먼지(PM2.5)로 인한 전 세계 조기 사망의 약 14~18%가 국가 간 소득 격차를 가로지르는 무역과 연관돼 있다고 밝혔다. 쉽게 말해 미국·유럽·한국·일본과 같은 고소득 국가가 소비하는 상품을 생산하기 위해 중국과 인도,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오염을 감수하고 있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건강 피해 역시 생산국 주민들이 떠안고 있다는 의미다. 연구진은 이를 '사망 수출(export of mortalities)'이라고 표현했다. 소비는 부유한 국가에서 이루어지지만,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대기오염과 조기 사망은 상대적으로 가난한 국가에서 발생하는 구조다. 과거 '오염 수출'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이 같은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는 글로벌 공급망 구조 때문이다. 고소득 국가는 금융·정보기술·연구개발·서비스업 등 상대적으로 오염이 적은 산업에 집중하는 반면, 에너지 집약적 제조업과 원자재 생산은 저소득 국가에 의존한다. 값싼 노동력과 느슨한 환경 규제를 찾아 생산기지를 해외로 이전하는 과정에서 대기오염도 함께 이동한다. 결과적으로 소비국은 깨끗한 공기를 유지하면서도 값싼 상품을 얻고, 생산국은 경제성장의 대가로 오염과 건강 피해를 감수하게 된다. 연구에 따르면 약 80%의 국가에서 소비로 인해 발생하는 대기오염 사망의 상당 부분이 국경 밖에서 일어난다. 다시 말해 오늘날의 국제 무역은 상품뿐 아니라 건강 위험까지 함께 거래하는 구조, 돈으로 떠넘기는 구조가 된 셈이다. ◇석탄 공급망이 만든 또 다른 건강 불평등 이 같은 문제는 석탄 무역을 분석한 또 다른 연구에서도 확인된다. 중국 난징대학교의 웬신 자오 교수와 미국 하버드대학교의 크리스 닐슨 등이 참여한 국제 공동연구팀은 지난달 미국화학회 학술지 '환경 과학 기술 (Environmental Science & Technology)' 에 '석탄 관련 CO₂ 배출 및 환경 보건 부담의 글로벌 무역 경로 추적'이란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연구진은 1992년부터 2020년까지 국제 석탄 무역과 상품 무역을 추적해 석탄 사용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과 건강 피해를 분석했다. 그 결과 국제 석탄 무역(ICT)은 연평균 약 7만4700명의 조기 사망과 관련이 있었고, 석탄을 사용해 생산된 상품과 서비스의 국제 무역(IGST)은 연평균 약 16만6600명의 조기 사망과 관련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연구는 석탄을 수출하는 국가와 이를 이용해 생산한 상품을 소비하는 국가 사이의 책임 분리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호주와 인도네시아는 대표적인 석탄 수출국이고, 미국과 서유럽은 석탄을 이용해 생산된 제품을 대량 소비하는 지역이다. 반면 중국, 인도,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대기오염과 건강 피해를 직접 감내하고 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이번 연구에서 한국 역시 자유롭지 않다. 석탄 무역 연구에 따르면 한국은 일본·독일 등과 함께 국제 석탄 무역에 의해 발생한 이산화탄소 배출과 건강 부담이 큰 국가로 분류됐다. 특히 한국은 석탄 수입과 소비 규모가 큰 국가이고, 글로벌 공급망을 통해 생산된 제품을 대량 소비하는 경제구조를 갖고 있다. 또한 한국 기업들이 사용하는 원자재와 중간재 상당수는 중국과 동남아시아의 석탄 기반 전력에 의존해 생산된다. 따라서 한국이 소비하는 상품의 환경 비용 일부는 생산국 주민들의 건강 피해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동남아시아는 특히 취약하다. 연구에 따르면 동남아시아와 남아시아 지역은 국제 석탄 무역과 관련된 건강 부담이 가장 크게 집중되는 지역 가운데 하나로 나타났다. 인구가 많고 환경 규제가 상대적으로 약하기 때문이다. 왜 이런 불평등이 계속될까. 문제의 핵심은 경제학에서 사용하는 '통계적 생명가치(VSL·Value of Statistical Life)'에 있다. 현재 많은 경제 분석은 국가 소득 수준에 따라 사람의 생명 가치를 다르게 평가한다. 소득이 높은 나라 국민의 생명은 더 높은 가치로 계산되고, 저소득 국가 국민의 생명은 상대적으로 낮은 가치로 평가된다. 이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는 오염 산업을 저소득 국가로 이전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유리해질 수 있다. 환경 피해가 발생하더라도 비용 계산상 손실이 작게 잡히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이런 방식이 결과적으로 오염 산업의 해외 이전을 부추기고 건강 불평등을 심화시킨다고 비판했다. ◇새로운 대안, '오염에 대한 공정무역' 이번 연구들은 국제 무역이 단순히 상품과 자본의 이동이 아니라 건강과 생명의 이동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오늘날 부유한 국가의 깨끗한 하늘과 값싼 소비재 뒤에는 다른 나라 사람들의 폐와 심장이 놓여 있을 수 있다. 20세기 세계화의 핵심 질문은 '누가 더 많은 이익을 얻는가'였다면 21세기에는 '누가 그 대가를 치르는가'라는 질문이 추가됐다. 연구진은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오염에 대한 공정무역(Fair Trade in Pollution)'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안했다. 핵심은 생산국 주민의 생명 가치를 소비국 주민과 동등하게 평가하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 기업이 저소득 국가에 공장을 건설할 경우, 오염 피해 비용을 현지 주민의 낮은 소득 수준이 아니라 미국인의 생명 가치 기준으로 계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이러한 방식이 투자자와 기업이 오염 산업을 저소득 국가로 이전하려는 유인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석탄 무역 연구는 또 다른 해결책도 제시했다. 연구진은 중국과 인도,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오염방지 기술과 제조 기술이 미국과 서유럽 수준으로 향상될 경우 무역과 연계된 건강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를 위해서는 고소득 국가들의 기술 이전과 재정 지원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국제 탄소세, 공급망 환경정보 공개, 친환경 무역협정, 기업의 공급망 책임 강화 같은 정책도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결국 지속가능한 무역이란 단순히 관세를 낮추고 거래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무역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과 건강 비용을 공정하게 나누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제 무역의 진정한 성공은 GDP(국내총생산) 증가가 아니라, 누구의 건강도 희생시키지 않는 번영을 만드는 데 있기 때문이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EE칼럼] 불 꺼진 집에 기본사회는 없다: 이제는 기본에너지다

기본소득 논의가 다시 정책의 앞줄로 올라섰다. 이재명 정부는 '기본이 튼튼한 사회'를 국정 목표 중 하나로 내세웠고, 보건복지부는 소득·돌봄·의료를 기본사회 전환의 핵심축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대통령 직속 기본사회위원회도 출범했다. 그만큼 논의의 무게중심은 “소득을 얼마나 보전할 것인가"에서 “국민의 일상이 무너지지 않도록 어떤 기본 조건을 보장할 것인가"로 넓어지고 있다. 이 흐름에서 에너지도 뒤로 밀려 있어서는 안 된다. 전기, 열, 가스, 연료는 단순한 요금 고지서의 항목이 아니다. 집안의 조명을 켜고, 음식을 보관하고, 휴대전화를 충전하고, 냉난방을 유지하고, 의료기기를 작동시키는 기반이다. 소득이 일부 보전되더라도 단열이 잘되지 않는 주택에 살거나, 요금 체납으로 전기가 끊기거나, 산소발생기 전력 사용을 감당하지 못한다면 인간다운 생활은 곧바로 흔들린다. 여기서 필요한 개념이 '기본에너지'다. 기본소득이 현금의 바닥을 말한다면, 기본서비스는 의료·돌봄·교육·주거처럼 시장 구매력에만 맡기기 어려운 서비스를 함께 보장하자는 구상이다. 기본사회는 이런 여러 기본 보장을 묶는 더 큰 정책 틀이다. 기본에너지는 그 틀 안에서 에너지 분야의 생활 하한을 정하는 개념이다. 이는 전기를 마음껏 공짜로 쓰자는 주장이 아니다. 폭염과 한파 속에서 위험에 빠지지 않고, 식품 보관과 취사, 조명, 통신, 위생, 필수 의료 이용이 멈추지 않도록 하는 최소한의 에너지 접근을 제도화하자는 뜻이다. 한국의 에너지복지는 결코 빈손이 아니다. 에너지바우처는 여러 연료 구입을 지원하고, 전기·도시가스·지역난방에는 취약계층 감면 제도가 있다. 생명유지장치 사용 가구에 대한 전기요금 할인, 저소득층 에너지효율 개선사업, 공공요금 감면 신청 체계도 이미 운영 중이다. 문제는 이 제도들이 대체로 “누구에게 얼마를 깎아줄 것인가"라는 방식으로 설계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 정도의 에너지 기능만큼은 누구도 잃지 않게 하겠다"라는 기준은 아직 약하다. 사각지대는 바로 그 틈에서 생긴다. 바우처를 받아도 오래된 집의 열 손실이 크면 난방 효과는 낮다. 요금 할인을 받아도 의료기기 사용 때문에 전력 수요가 많은 가구에는 부족할 수 있다. 도시가스가 닿지 않는 지역의 등유·LPG 사용 가구, 공동계량을 쓰는 임차 가구, 신청 절차를 모르는 고령 가구도 빠지기 쉽다. 에너지복지를 기본에너지로 바꾼다는 것은 현행 제도를 없애자는 말이 아니라, 흩어진 지원을 생활 기능 중심으로 다시 배열하자는 제안이다. 가장 상징적이고도 현실적인 첫걸음은 전기요금에 '기본사용량 무상 구간'을 두는 것이다. 보호 대상 가구에 대해 매월 일정량의 전력을 무상 또는 사실상 무상으로 보장하고, 그 이상 사용분은 통상 요금을 적용하는 방식이다. 중요한 것은 작은 생명선 구간을 분명히 설정하는 일이다. 무한정 보조가 아니라 전기의 첫 구간만 사회적으로 보호하는 장치여야 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브라질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 남아공은 저소득 가구에 월 50kWh의 무상 전기를 제공하는 제도를 운용해 왔다. 브라질은 사회요금 수급 가구가 월 80kWh까지의 전기 사용분을 부담하지 않도록 제도를 개편했다. 두 사례 모두 모든 전력 소비를 국가가 떠안는 방식이 아니다. “처음의 작은 구간은 보호하고, 초과분은 일반 요금체계로 돌린다"는 단순한 원리가 핵심이다. 한국도 이 원리를 그대로 베끼기보다, 기후·주거·가구 규모·의료 필요를 반영한 한국형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에너지복지는 오랫동안 할인, 바우처, 긴급지원의 언어로 말해 왔다. 이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기본사회가 국민의 삶을 떠받치는 최소 조건을 다시 쓰는 프로젝트라면, 에너지는 그 목록의 주변부가 아니라 출발점에 가까워야 한다. 불이 꺼진 집에서 돌봄은 작동하지 않고, 냉난방이 없는 주거는 안전하지 않으며, 전력이 불안한 곳에서 의료와 통신도 제 기능을 하기 어렵다. 에너지복지에서 기본에너지로의 전환은 더 많은 전기를 나누자는 구호가 아니다. 누구도 생활의 필수 기능을 잃지 않게 만드는 사회정책의 다음 단계다. bienns@ekn.kr

[기후 신호등] “하늘에서 떨어지는 얼음 폭탄” 도시를 정조준하다

지난해 5월 3일 파리를 비롯한 프랑스와 독일 일부 지역에 지름 3~4㎝에 이르는 대형 우박이 쏟아졌다. 이 우박은 탁구공(40㎜)과 비슷한 크기였다. 이 우박으로 인해 자동차 차체가 파손되거나 찌그러졌고, 건물 유리창이 깨지고 지붕도 손상을 입었다. 도시 교통도 차질을 빚었고, 샤를 드골 공항 등에서는 항공기 운항도 지연됐다. 농촌에서는 포도밭 등 농작물 피해도 컸다. 프랑스 기후·환경과학연구소(LSCE)에 따르면 이 우박으로 인해 3억 유로(약 5000억 원)가 넘는 보험 손실액이 발생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얼음 덩어리 우박. 과거에는 봄철이나 초여름에 간헐적으로 나타나는 국지성 기상현상으로 여겨졌다. 농작물 일부를 망치거나 차량에 흠집을 내는 정도의 피해가 일반적이었다. 최근 국제 학술지에 발표된 연구들은 기후변화가 우박 발생 환경 자체를 변화시키고 있음을 보여준다. 과거에는 드물었던 대형 우박이 점차 흔해지고 있으며, 도시가 만들어내는 인위적 열이 우박 폭풍을 더욱 강력하게 만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후변화는 단순히 기온만 높이는 것이 아니라 대기의 에너지 구조를 바꾸어 우박을 '하늘에서 떨어지는 얼음 폭탄'으로 변화시키고 있다는 분석이다. 기후과학자들은 우박이 더 이상 '작은 자연재해'가 아니라고 경고한다. 우박 횟수는 늘지 않더라도, 살아남아 떨어지는 우박은 더 크고 더 무거워서 더 파괴적인 형태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인구와 인프라가 밀집한 대도시가 새로운 위험지대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은 기후변화에 따른 우박 대형화가 예상되는 중위도 지역에 속하는 동시에, 서울·수도권을 비롯한 초고밀도 도시권을 보유하고 있어 미래 위험이 결코 남의 일이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기후변화가 우박을 바꾼다…선별적 거대화 중국 베이징대학교 장스이 교수와 미국 센트럴미시간대학교 존 T. 앨런(John T. Allen) 교수 연구팀은 지난 5월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에 발표한 연구에서 기후변화가 우박의 크기 분포를 크게 바꾸고 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전 세계 1만4000건 이상의 우박 사례를 분석하고, 과거 기간인 1985~2014년과 미래 기간인 2071~2100년 예측치를 비교했다. 온실가스 고배출 시나리오(SSP585) 하에서 비교한 결과, 지름 30㎜ 이상 대형 우박의 형성 가능성이 38~51% 증가하는 반면, 30㎜ 미만의 작은 우박은 4~12% 감소할 것으로 예측했다. 이는 얼핏 모순처럼 보인다. 기온이 상승하면 얼음이 줄어들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정반대 현상이 나타난다. 핵심은 대기 에너지 증가다. 온난화된 대기는 더 많은 수증기를 품고 있으며, 이는 강력한 상승기류를 만들어낸다. 상승기류는 우박 알갱이를 구름 속에 오랫동안 붙잡아 두면서 과냉각 물방울을 계속 흡수하게 만든다. 과냉각 물방울은 0℃ 이하인데도 아직 얼음으로 변하지 않고 액체 상태를 유지하는 물방울을 말한다. 과냉각 물방울은 매우 불안정한 상태이기 때문에 작은 충격이나 얼음 결정과의 접촉만 있어도 즉시 얼어붙습니다. 이런 이유로 우박은 야구공 크기에 가까운 대형 우박, '괴물 우박'으로 성장할 수 있다. 반면 기온 상승은 어는점이 나타나는 고도(高度)도 함께 높인다. 작은 우박은 지상에 떨어지는 과정에서 녹아 사라지고, 충분히 크게 성장한 우박만 살아남는다. 우박의 '양극화 현상'이다. 결국 기후변화는 우박을 더 많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더 크고 더 위험한 우박만 살아남게 만드는 셈이다. ◇2㎝ 차이가 만든 재앙…파리가 보여준 미래 이 같은 변화는 이미 현실에서 나타나고 있다.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원(CNRS)의 다비데 파란다 박사 연구팀은 최근 '대기 과학 회보 (Atmospheric Science Letters)'에 발표한 논문에서 지난해 5월 3일 파리를 강타한 기록적 우박 폭풍을 분석했다. 이 연구는 기후변화가 특정 우박 사건의 강도를 얼마나 키웠는가를 정량적으로 분석한 유럽 최초의 우박 기후 귀속(attribution,기여도 분석) 연구다. 연구진은 지난해 5월 우박 크기가 과거 기후변화가 없었을 때보다 약 2㎝정도 더 커진 것으로 분석했다. 기후변화가 없었다면 '경미한 피해 수준'에 머물 수 있었던 사건이 '명백한 파괴적 사건'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우박 크기 2㎝ 차이는 사소해 보이지만 피해 규모는 전혀 다르다. 기상학자들은 우박 피해가 크기에 비례하지 않고 비선형적으로 증가한다고 설명한다. 우박 지름이 커질수록 질량은 급격히 증가하고, 낙하 충격력은 그보다 더 빠르게 커진다. 이 정도 크기면 차량 유리가 깨지고 태양광 패널이 손상되며 건물 외장재와 지붕, 항공기 동체까지 파손될 수 있다. 연구진은 같은 기압 배치와 같은 폭풍이 발생하더라도, 지금의 따뜻해진 기후에서는 △ 대류 가용 잠재에너지(CAPE)가 증가하고 △어는점 고도가 높아지고 △우박 발생 확률이 최대 30% 증가하고 △우박 크기는 약 2㎝ 커진다고 분석했다. CAPE는 공기가 위로 솟아오를 수 있는 에너지의 양을 뜻한다. 기후변화로 대기가 더 많은 열과 수증기를 품게 되면서 CAPE가 증가하고, 이는 강력한 상승기류를 만들어 우박이 더 크고 무겁게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도시가 우박을 키운다…'병합형 우박'의 등장 최근 연구들은 도시가 단순한 피해자가 아니라 우박을 키우는 환경이 될 수 있다는 사실도 보여주고 있다. 중국 난징대학교의 저우앙 박사와 자오쿤 교수 연구팀은 도시의 인위적 열이 우박 폭풍을 증폭시키는 메커니즘을 규명해 지난 3월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Nature Communications)'에 논문으로 발표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건물 냉난방과 자동차, 산업시설, 데이터센터 등에서 발생하는 열은 도시 경계층을 가열한다. 이 열은 대기 불안정성을 높여 짧은 시간 안에 여러 개의 뇌우 세포(thunderstorm cell)를 만든다. 뇌우 세포는 상승기류와 하강기류를 중심으로 형성되는 하나의 독립적인 '폭풍 덩어리'를 말하는데, 폭우와 우박, 번개를 발생시킨다. 문제는 여러 개의 뇌우 세포가 서로 합쳐질 수도 있다는 점이다. 연구진은 이를 '병합형 우박(Merger Hailstorm)'이라고 불렀다. 여러 폭풍 세포가 하나로 합쳐지면 상승기류가 급격히 강화되고 더 많은 수증기가 상층으로 공급된다. 결과적으로 일반 우박보다 훨씬 크고 강한 우박이 만들어진다. 시뮬레이션 결과, 도시에서 인위적인 열 방출이 증가할 경우 우박 피해 면적은 최대 71%까지 확대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도 예외 아니다…서울 등 수도권이 특히 취약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학교의 티모시 로파크 박사 연구팀은 최근 '네이처 기후변화(Nature Climate Change)' 저널에 발표한 연구에서 우박 발생 지역이 점차 극지방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밝혔다. 북미 북부, 북유럽, 동아시아 중위도 지역에서는 대형 우박 위험이 증가하는 반면, 열대와 아열대 일부 지역에서는 오히려 감소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난징대 연구팀은 동아시아는 북미와 함께 우박 재해가 가장 빈번한 지역 중 하나로 지목했다. 동아시아 대도시권에서는 병합형 우박 발생 빈도가 농촌 지역보다 약 95% 높게 나타났으며, 강력한 우박 폭풍의 경우 도시와 농촌 간 발생 빈도 차이가 130%까지 벌어졌다. 광저우와 선전이 위치한 주강삼각주, 상하이를 중심으로 한 양쯔강 삼각주 등 중국의 메가시티가 대표적 사례다. 이들 해외 연구 결과에 비추어 한국은 기후변화로 인한 우박 대형화 위험과 도시 열섬 효과가 동시에 작용하는, 대형 우박 위험이 높은 지역으로 분류될 수 있다. 특히 서울·인천·수원·성남으로 이어지는 수도권은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고밀도 도시권이다. 즉 서울과 수도권은 기후변화가 키운 대형 우박과 도시 열섬이 유도하는 병합형 우박이 동시에 나타날 가능성이 있는 지역인 셈이다. 실제로 한국에서도 최근 수년간 대형 우박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 2023년 6월 강원도와 충북, 경북 북부 지역에서는 지름 5㎝ 안팎의 대형 우박이 쏟아져 사과·복숭아·포도 농가에 큰 피해를 입혔다. 2024년 5월에는 경기 북부와 강원 일부 지역에서 골프공 크기의 우박이 관측돼 차량 수백 대가 파손됐고, 비닐하우스와 태양광 시설 피해도 보고됐다. 기상청 관계자도 “한반도에서는 봄철과 초여름에 강한 상층 한기와 지상 고온이 만나면서 우박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최근에는 지상 기온 상승으로 대기 불안정성이 커지면서 대형 우박 발생 조건이 강화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농촌도, 공항도 새로운 위협에 직면 우박 피해는 도시만의 문제가 아니다. 연구자들은 동아시아에서 겨울 작물의 우박 위험이 커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기후변화로 우박 발생 시기와 작물 생육 시기가 겹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 보리, 밀, 과수 산업이 특히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사과와 배는 개화기와 어린 열매 시기에 우박을 맞으면 상품성을 거의 잃게 된다. 최근 기후변화로 인해 과수 재배지가 북상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형 우박 위험까지 증가하면 농업 부문의 경제적 부담은 더욱 커질 수 있다. 전문가들은 공항을 미래 우박 재난의 핵심 취약 시설 가운데 하나로 꼽는다. 파리 샤를 드골공항 사례처럼 대형 우박은 항공기 동체와 조종석 유리를 손상시키고 활주로 운영을 중단시킬 수 있다. 한국의 인천국제공항 역시 연간 수천만 명이 이용하는 동북아 허브 공항인 만큼 우박에 따른 항공기 파손이나 운항 차질이 발생할 경우 경제적 파급효과가 매우 클 수 있다. 특히 수도권 열섬 효과와 병합형 우박 가능성을 고려하면 향후 공항 기상예측 체계와 시설 내구성 기준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래 도시의 과제는 '우박 회복력' 과학자들은 미래의 우박 재난에 대응하기 위해 도시 설계 개념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선 건축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 태양광 패널, 외장재, 유리창, 지붕재 등이 지름 4㎝ 이상의 우박 충격을 견딜 수 있도록 설계 기준을 상향할 필요가 있다. 도시 열섬 완화 정책도 중요하다. 녹지 확대, 건물 에너지 효율 개선, 폐열 감소 정책은 폭염 대응뿐 아니라 병합형 우박 위험 감소에도 기여할 수 있다. 예측 기술 역시 발전해야 한다. 기존 기상 모델은 개별 뇌우를 중심으로 설계된 경우가 많다. 기상청과 지방자치단체는 도시형 고해상도 예측 모델을 구축해 병합형 우박 발생 가능성을 조기에 탐지해야 한다. 농업 부문에서는 우박 방지망 보급 확대와 재해보험 개선이 요구된다. 과거의 우박이 농경지를 위협하는 자연현상이었다면, 미래의 우박은 도시의 심장부를 직접 타격하는 새로운 기후 재난이 될 수 있다. 과학자들이 지금 우박을 주목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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