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일요일까지 강추위 지속…서쪽 지방에는 23~24일 눈 소식도

일요일인 오는 25일까지 내륙을 중심으로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 10℃ 이하로 떨어지는 강추위가 지속될 것으로 예보됐다. 기상청은 22일 “대한인 지난 20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번 한파는 상층 블로킹과 서고동저형 기압계의 영향으로 찬 공기가 계속해서 유입되면서 이어지고 있다"면서 “다음주도 평년보다 낮은 기온 분포를 보이겠다"고 밝혔다. 지난 19일 강수 이후 기온이 급격히 하락하면서 시작한 이번 대한 한파로 서울의 경우 22일 아침 최저 기온이 영하 13.2℃를 기록했다. 이처럼 강추위가 지속되는 이유는 한반도 서쪽에 고기압이, 동쪽에는 저기압이 위치하는 서고동저형 기압 배치가 형성됐고, 여기에 대기 상층에서 공기의 흐름을 막는 블로킹 현상이 나타나면서 기압계가 정체된 탓이다. 이로 인해 북쪽의 찬 공기가 한반도로 유입되는 통로가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25일 이후에는 이러한 서고동저형 기압계가 일시적으로 완화되겠지만, 다음 주에도 여전히 북풍 계열의 기류가 우세하게 나타나 평년보다 낮은 기온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기상청은 25일까지 강추위가 이어지겠고, 이후 기압계가 일시적으로 완화되겠지만, 다음 주에도 여전히 북풍 계열의 바람이 우세해 평년보다 낮은 기온이 나타날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따라 수도계량기 동파 예방과 한파 피해에 대한 각별한 유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추위와 함께 서쪽 지역을 중심으로는 눈 소식도 있다. 토요일인 24일까지 전라권과 충남권, 제주도를 중심으로 눈이 내리겠다고 기상청은 예보했다. 23~24일 예상 적설량은 ▶충남·전북 서해안, 전남권 서부, 제주 산지 1~3㎝ ▶충청 내륙, 제주 해안 1㎝ 안팎 ▶인천·경기 남부, 강원 남부 내륙 등 1㎝ 미만이다. 특히 23일에는 약한 기압골의 영향이 더해지면서 눈이 내리는 지역이 확대될 수 있고, 서울에도 늦은 오후부터 밤 사이 눈이 날리는 곳이 있겠다. 기상청 관계자는 “북풍 계열의 바람이 우세해지면서 북쪽의 차가운 한기가 남하하는 흐름이 강해졌다"면서 “이러한 찬 기류가 상대적으로 따뜻한 해수면 위를 지나며 해기차(대기와 해수면의 온도 차)에 의한 구름대를 형성하였고, 이로 인해 전라권과 충남권 등에 눈이 내릴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서쪽 지방과는 달리 동해안과 경상권 중심으로는 매우 건조한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당분간 건조특보가 지속될 것으로 보여 산불 등 각종 화재도 우려된다. 한편, 다음 주 월요일인 26일과 화요일인 27일 사이에는 남쪽 저기압의 영향으로 비 또는 눈이 내릴 가능성이 있으나, 저기압의 위상과 강도에 따라 변동성이 커 향후 발표되는 기상정보를 확인해 달라고 기상청은 당부했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EE칼럼] 기후위기라는 ‘면죄부’를 거둘 때

오늘날 우리는 거의 모든 기상 이변과 자연재해의 원인을 '기후변화' 혹은 '기후위기'라는 한 단어로 환원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과거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폭우, 유례없는 폭염, 대형 산불, 한겨울의 극한 한파까지—언론과 국민 대다수는 약속이라도 한 듯 그 주범을 기후위기로 지목한다. 그러나 모든 문제를 '기후 탓'으로 돌리는 거대한 담론 뒤에, 정작 우리가 해결해야 할 본질적인 과제들이 가려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냉정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기후가 산업혁명 이전과 비교해 이미 변했고, 그 변화의 속도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 국민은 물론 세계인들이 기후변화를 체감하는 가장 중요한 근거가 무엇인지 짚어보자. 그것은 '경험하지 못한 위험기상 현상의 빈번한 출현'이다. 이러한 현상들이 실제로 기후변화 때문에 야기되었는지를 과학적으로, 지금보다 더 명확히 규명하는 것이 대응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그 합리적인 결과를 토대로, 자연재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기상재난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기후 탓' 이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대응 기반을 먼저 갖춰야 한다. 에너지 정책을 포함한 기후 대응책 역시, 막연한 위기감과 정서에 앞서 정밀하게 설계되고 실행되어야 한다. 감성이 정책을 앞서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우선 해야 할 일은 어렵지만 분명하다. 위험기상과 그에 뒤따르는 재난 속에서 '기후변화'라는 거인의 실체를 가능한 한 정량적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본격적인 기후위기 이전에도 최고기온, 일 최대 강수량, 시간당 강수량과 같은 극값은 시간이 지나며 갱신되어 왔다. 이는 자연현상의 한 모습이다. 중요한 것은 현재의 기후위기 시대에 극값 그 자체보다, 그 빈도와 강도가 과거의 추세와 비교해 어떤 주목할 만한 변화를 보이는지이다. 충분히 축적된 기상·기후 데이터를 근거로, 그 변화가 우리가 예측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 기후변화 말고는 설명할 수 없는 결과인지 가려내는 일은 매우 의미 있는 출발점이다. 만약 어떤 현상이 오로지 기후변화로만 설명될 수 있다면, 사회 전반에 걸쳐 시간이 걸리더라도 장기적인 합의를 바탕으로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 반대로 위험기상과 재난에 자연현상의 요소가 일부라도 포함되어 있다면, 즉시 취약한 부분을 점검하고 단기간에 실행할 수 있는 대책부터 시작해야 한다. 2022년 8월 8일, 서울 동작·관악·강남 일대에 시간당 141.5mm라는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다. 이로 인해 신림동의 반지하 주택에 살던 일가족 세 명이 안타깝게도 목숨을 잃었다. 이 폭우는 지금까지도 기후변화 없이는 과학적 설명이 어려운 부분이 많다. 그러나 '기후변화의 결과'라는 한 걸음 뒤에서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미리 대비할 수 있었던 일은 없었는가? 만약 서울이 지금까지 경험해온 약 110mm 수준의 시간당 강수량에 머물렀다면, 이런 비극은 피할 수 있었던 것인가? 강남 한복판이 침수된 상황에서 2010년대 초반부터 계획되었던 강남 일대 '대도심 터널' 사업이 왜 지연되었는지, 그 이유라도 명확히 밝혀야 하지 않는가? 기후변화는 인류가 공동으로 대응해야 할 거시적 과제다. 그러나 눈앞의 폭우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일은 미시적이고 구체적인 행정의 영역이다. '기후 탓'이 행정의 지연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지는 않았는지,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재난 대응과 더불어, 기후위기 시대에 숙고해야 할 또 하나의 핵심은 에너지 문제다.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에너지 정책 역시, 막연한 불안과 두려움이라는 정서가 과도하게 반영되어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야 한다. 새로운 일을 추진할 때 속도가 중요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급히 삼킨 음식이 머지않아 강력한 소화제를 요구하는 상황이 되어서는 안 된다. “에너지 전환의 속도가 국가 경제의 체력을 감당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포함해, 현실성과 실용성에 기반한 정밀한 검토와 계획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 기후위기는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관리하고 해결해야 할 구체적인 과제다. 우리는 '기후변화'라는 이름 뒤에 숨어 책임을 회피하고 있지는 않은가. 충분한 점검과 준비 없이 세금을 사용하고 있지는 않은가. 기후위기 시대의 재난 대응과 에너지 정책은 철저히 데이터에 기반한 과학적 진단이 우선되어야 하며, 그 위에서 비로소 현실적이고 본질적인 대비를 시작해야 할 때다. 이제는 '기후 탓'이라는 면죄부를 거둘 시간이다.

전 세계 해안에서 바다로 가는 플라스틱 쓰레기 연간 3만7000톤

전 세계 해안 지역에서 바다로 직접 유입되는 플라스틱 폐기물이 연간 3만7000톤 수준인 것으로 분석됐다. 이 양은 강과 하천, 선박 등을 통해 바다로 들어가는 플라스틱 폐기물과는 별도다. 중국 톈진대학교와 칭화대학교 연구팀이 머신러닝 기법을 동원해 플라스틱 폐기물의 규모와 특성을 파악한 이번 연구는 최근 국제 학술지 '환경 과학 기술 (Environmental Science & Technology)'에 게재됐다. 연구진은 전 세계 3468개 해안 샘플링 지점에서 수집한 2만5892개의 데이터 포인트를 바탕으로 머신러닝 모델을 구축했고, 국가·지역별 해안 플라스틱 배출량을 추정했다. 그 결과 2019년 기준 전 세계 해안에서 바다로 직접 유입된 플라스틱 폐기물은 매년 3만7000톤(중앙값, 최소 1만5300톤에서 최대 5만9000톤)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아시아 지역의 비중이 두드러졌다. 아시아 해안에서만 매년 약 1만4000~2만1800톤의 플라스틱이 직접 바다로 유입되는 것으로 추정됐으며, 이는 전 세계 해안 플라스틱 배출량의 40.6%에 해당한다(중앙값 기준). 급격한 소비 증가와 해안 인구 집중, 폐기물 관리 인프라의 불균형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연구팀은 전 세계 해안을 사회·경제적 특성과 배출 구조에 따라 네 개의 클러스터로 분류했다. 이 가운데 중국과 일본은 '클러스터 1'에 포함됐는데, 이 유형은 인구 밀도가 높고 대도시 해안권이 발달했으며, 물류·관광·소비 활동이 집중된 지역이라는 특징을 갖는다. 이들 지역에서는 음료병과 식품 포장재 등에 사용되는 페트(PET)와 폴리프로필렌(PP) 등 일회용 플라스틱이 주요 배출원으로 확인됐다. 한국의 경우 논문에 직접 언급은 되지 않지만, 높은 인구 밀도와 소비·물류 구조 측면에서 이들과 유사한 해안 특성을 지닌 것으로 보인다. 해안 플라스틱 오염이 단순한 환경 문제를 넘어 지역 경제에 직접적인 피해를 초래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국내 사례도 함께 언급됐다. 연구에 따르면, 2011년 경남 거제도 인근에서는 집중호우와 태풍 이후 부유 플라스틱, 폐어구, 스티로폼 부표, 생활 쓰레기가 대량으로 유입됐다. 이로 인해 당시 관광객 감소와 지역 경제 손실이 발생했다. 이는 해안 플라스틱 문제가 관광 산업과 연안 지역 생계에 실질적인 위험 요인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국가별 해안 플라스틱 배출량 추정치에서는 필리핀(3140톤), 인도네시아(2710톤), 인도(1440톤) 등이 상위권을 차지했다. 중국은 약 1270톤으로 6위, 일본은 980톤으로 10위에 올랐다. 한국은 따로 순위를 밝히지 않았다. 동남아시아와 동아시아 국가 상당수가 플라스틱 소비 증가 속도를 폐기물 관리 체계가 따라가지 못하면서, 해양 플라스틱 오염의 주요 거점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연구팀은 해안 플라스틱 배출을 결정짓는 가장 핵심적인 요인으로 '부실하게 관리된 플라스틱 폐기물(mismanaged plastic waste, MPW)'을 지목했다. 단순히 플라스틱 생산량을 줄이는 것보다, 이미 발생한 폐기물이 적절히 수거·처리·재활용되지 못하고 환경으로 유출되는 구조를 개선하는 것이 해양 오염 저감에 더 결정적이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연구진은 동아시아와 같은 고밀도 소비·도시화 지역에서는 재활용 인프라 확충, 해안 인접 지역의 폐기물 수거 체계 강화, 그리고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의 실효성 있는 운영이 시급하다고 제언했다. 특히 해안 도시를 중심으로 한 맞춤형 관리 전략이 필요하다는 점도 강조됐다. 한편, 이번 연구는 해안 지역이 해양 플라스틱 오염의 핵심 경로임을 데이터 기반으로 입증한 사례로 평가된다. 동시에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들이 해양 생태계 보호는 물론 관광·연안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보다 정교하고 지역 특성을 반영한 해안 폐기물 관리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는 정책적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환경 포커스] 임신 중 대기오염 노출, 아기 신경발달장애 위험 키운다

최근 국내외에서 임신 기간 중 대기오염에 노출될 경우 태아의 뇌와 신체 발달에 장기적으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잇따라 발표돼 임신부의 주의가 필요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특히 임신 중 대기 오염물질인 이산화질소(NO₂)와 이산화황(SO₂)에 노출될수록 자녀가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포함한 신경발달장애를 진단받을 위험이 유의미하게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150만 명 대규모 코호트 추적 연구 서울대 분당병원 오탁규·송인애 교수팀은 최근 국제 학술지 '아동 심리학 및 정신의학 저널(Journal of Child Psychology and Psychiatry)에 2010~2014년에 태어난 출생아 143만여 명을 최대 13년간 추적 분석한 연구 결과를 논문으로 발표했다. 이는 국내에서 임신 중 대기오염 노출과 자녀의 신경발달장애 간 연관성을 검증한 연구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전국 단위 코호트 분석이다. 코호트(cohort)란 공통된 시점이나 조건(예를 들어 출생 연도, 특정 노출, 질병 여부 등)을 가진 집단으로, 일정 기간 동안 추적 관찰하며 건강 결과나 변화 양상을 분석하는 경우를 말한다. 연구 결과, 임신 기간 동안 대기 중 이산화질소(NO₂) 농도가 0.01ppm 증가할 때마다 자녀가 신경발달장애(neurodevelopmental disorders)를 진단받을 위험은 약 18% 증가했다. 이산화황(SO₂) 역시 농도 증가에 따라 신경발달장애 위험이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상승했다. 이 같은 영향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ASD), 지적장애, 발달 지연,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행동·정서 장애 등 주요 신경발달장애 전반에서 일관되게 관찰됐다. 특히 임신 후기에는 NO₂ 노출의 영향이 더욱 크게 나타나, 태아 뇌 발달의 민감 시기와 대기오염 노출이 맞물릴 경우 위험이 증폭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NO₂는 고온 연소 과정에서 질소가 산소와 반응하며 생성되는 질소산화물(NOx)로, 자동차 배기가스나 발전소나 산업용 보일러 등에서 주로 배출된다. SO₂는 황 성분이 포함된 석탄이나 석유 연료를 태울 때 직접 배출되는 오염물질로, 발전소나 선박 등에서 많이 배출된다. 연구팀은 논문에서 “현행 대기환경 기준에 근접한 수준의 오염이라 하더라도 태아의 뇌 발달에는 충분히 해로울 수 있다"며 “임신부를 환경오염 취약계층으로 명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임신 초기 이산화황 노출, 사지 기형 위험도 높아져 해외 연구들과도 맥을 같이한다. 중국 우한 어린이병원 연구팀은 최근 국제 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츠(Scientific Reports)'에 임신 전후 대기오염 노출과 신생아의 선천성 사지 기형 간의 연관성을 분석한 논문을 발표했다. 연구팀은 2011~2017년 우한 지역에서 등록된 51만550쌍의 산모와 영유아 자료를 분석한 결과, 임신 초기 3개월 동안 높은 농도의 SO₂에 노출될 경우 아기의 선천성 사지 기형(congenital limb defects) 발생 위험이 유의하게 증가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대기 중 SO₂ 농도가 ㎥당 10㎍(마이크로그램, 1㎍=100만분의 1g) 증가할 때마다 기형 발생 위험을 나타내는 조정 승산비(adjusted odds ratio, aOR)는 1.033~1.043으로 상승했다. 사지 기형이 발생할 위험이 약 3~4% 증가한다는 의미다. 특히 손가락이나 발가락 수가 정상보다 많은 다지증, 팔다리가 비정상적으로 짧아지는 사지 단축 등 특정 기형 유형에서 SO₂ 노출과의 상관성이 두드러졌다. 연구진은 임신 초기가 태아의 사지가 형성되는 결정적 시기라는 점을 강조하며, 이 시기의 대기질 관리 중요성을 지적했다. ◇임신 후기 산불 연기 노출, 자폐증 위험 22% 증가 대기오염의 위험은 도시형 오염 물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미국 툴레인대학교 연구팀은 최근 '환경 과학 및 기술(Environmental Science & Technology)' 저널에 산불 연기로 인한 초미세먼지 노출과 자폐증 위험 간의 연관성을 분석한 연구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2006~2014년 남부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난 약 20만 명의 아동을 대상으로 임신 기간 중 산불 연기 노출 일수를 추적한 결과, 임신 마지막 3개월 동안 산불 연기에 10일 이상 노출된 산모의 자녀는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자폐 스펙트럼 장애 진단 위험이 약 22.5% 높았다. 연구진은 임신 후기가 태아의 신경 회로와 회백질이 급격히 발달하는 시기라는 점을 들어, 이 시기의 고농도 오염 물질 노출이 뇌 발달에 특히 치명적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산불 연기에는 다환방향족탄화수소(PAHs)와 중금속 등 독성이 강한 물질이 다량 포함돼 있다. 두 개 이상의 벤젠 고리가 서로 융합된 화학 구조를 가진 PAHs 는 불완전 연소 과정에서 생성되는 독성 유기화합물로, 산불 연기 외에도 자동차 배기가스, 석탄·목재·쓰레기 연소, 산업 공정에서 배출된다. ◇임신부 보호, 개인 주의 넘어 공중보건 과제로 이처럼 국내외 연구 결과를 종합하면, 임신 중 대기오염 노출은 태아의 신체 기형뿐 아니라 신경발달 전반에 장기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구조적 위험 요인으로 드러난다. 초미세먼지(PM2.5)와 그에 흡착된 PAHs·중금속, 그리고 NO₂·SO₂와 같은 가스상 오염물질은 모체 혈액에 흡수된 뒤 태반 장벽을 부분적으로 통과하거나 태반 기능을 교란해 태아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산화 스트레스, 염증 반응, 호르몬 신호 교란, 태반 혈류 감소가 발생하고, 이것이 태아의 신체 형성이나 뇌 신경 발달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것으로 설명된다. 이에 따라 임신 초기와 후기에는 대기질 정보를 수시로 확인하고, 오염 농도가 높은 날의 외출을 최소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산불이나 고농도 미세먼지 발생 시에는 실내에서 HEPA 필터(미세 입자를 걸러내는 고성능 공기 정화 필터)가 장착된 공기청정기를 사용하고, 외출 시에는 초미세먼지 차단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임신부 개인의 주의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고 지적한다. 야외 근무가 잦은 직업군의 임신부에 대해서는 근무 환경 조정과 추가 보호 조치도 요구된다. 연구진들은 “기후 변화로 산불이 잦아지고 대기오염이 상시화되는 상황에서, 임신부를 환경 취약계층으로 명확히 규정하고 대기질 관리·경보·의료 상담을 연계한 맞춤형 공중보건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태아에게 안전한 공기는 더 이상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사회가 책임져야 할 기본 조건이라는 지적이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김소희 의원 “공기열 히트펌프 무차별적인 재생에너지 인정 중단해야”

김소희 국민의힘 의원이 기후에너지환경부가 공기열 히트펌프를 재생에너지로 인정하도록 하는 시행령 개정안을 추진하자 반발했다. 김 의원은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업계와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공기열 히트펌프는 전기를 필수적으로 사용하는 설비이고 특히 혹한기에는 다량의 전력 소모가 필요하다"며 “아직 재생에너지 비중이 10% 수준에 불과한 우리나라에서 전력 소비를 크게 늘리는 설비 보급을 무작정 밀어붙이는 것은 저탄소 전환이 아니라 오히려 배출 증가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위험이 뻔히 보이는데도 정부는 일단 재생에너지로 인정하고 올해에만 145억원의 예산을 편성했으며 2035년까지 350만대를 보급하겠다는 정량 목표부터 제시했다"며 “기후부의 시행령 개정안 입법예고에는 1800건이 넘는 반대 의견이 제출됐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지난 15일 효율이 높은 공기열 히트펌프만 재생에너지로 인정하고 지원하도록 하는 '신에너지 및 재생에너지 개발·이용·보급 촉진법 일부개정법률안'과 '에너지이용 합리화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그는 “탄소중립은 검증되지도 않은 수단을 하나 늘린다고 달성되는 것이 아니다"라며 “정부에 즉각 무차별적인 재생에너지 인정과 보급 확대를 중단하고 실제 운전 조건을 반영한 최소한의 성능 기준부터 마련할 것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히트펌프 보급, 재생에너지 확대와 함께 가야 의미 있어”

전 세계적으로 기후 위기 대응이 시급한 과제로 떠오른 가운데, 화석연료를 직접 태우는 대신 외부의 열을 옮겨 난방하는 '히트펌프'가 탄소 중립을 위한 핵심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국내에서도 2050 탄소 중립 달성을 위해 건물 부문의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야 하는 상황이라 보급 확대를 둘러싼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기후에너지환경부를 비롯해 히트펌프를 적극적으로 보급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기대에 못 미치는 에너지 효율이나 높은 초기 비용 등을 들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당장 21일에도 국회에서는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김소희 의원(국민의 힘) 주최로 '공기열 히트펌프, 과연 재생에너지인가'를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고, 정부의 급속한 보급 확대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 압도적인 탄소 저감 효과와 에너지 효율 히트펌프는 투입된 전기 에너지보다 몇 배 많은 열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는 고효율 장치다. 전기에너지를 투입해 차가운 장소에서 따뜻한 장소로 열 에너지를 강제로 이동시킨다. 여름철 실내를 식히는 에어컨을 반대 방향으로 트는 것과 같은 원리다. 뜨거운 열기를 내뿜는 실외기를 실내에 두는 셈이다. 히트펌프의 효율성을 나타내는 성능 계수(COP)는 보통 3.0 이상으로, 전기 1kWh를 투입해 3kWh 이상의 열을 생산할 수 있다. 이러한 특성 덕분에 이미 존재하는 공기·지열·수열 등의 열원을 활용해 난방비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한국산업기술시험원 소속 최준영 수석연구원과 이기원 주임연구원이 지난해 11월 '대한설비공학회(Korean Journal of Air-Conditioning and Refrigeration Engineering)'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국내 단독주택 난방 시스템을 고효율 히트펌프로 전면 전환할 경우 국가 전체로 연간 약 364만 톤의 이산화탄소를 감축할 수 있다. 단독주택 난방 및 급탕 부문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36%를 줄일 수 있다는 얘기다. ◇한국의 기후 특성과 실질적인 가동 효율의 과제 하지만 한국의 뚜렷한 사계절과 혹독한 겨울 기온은 히트펌프 보급의 기술적 장벽이 되기도 한다. 대전대 신우철 교수팀은 충남 공주의 단독주택에서 1년간 실측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히트펌프의 실제 운영 효율을 분석, 지난해 12월 국제 학술지 '에너지스(Energies)'에 논문으로 발표했다. 논문에 따르면, 히트펌프의 연간 평균 COP는 난방 시 2.27, 급탕 시 2.06을 기록했다.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지는 겨울철에는 카탈로그상 성능보다 효율이 약 18%가량 저하되는 현상도 확인됐다. 이 연구는 현재 한국의 전력 생산 방식이 여전히 탄소 집약적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재생에너지 비율이 낮아 전력의 탄소 배출계수가 높은 현재 상황에서는 히트펌프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콘덴싱 가스보일러보다 약 8.6% 높게 나타날 수도 있다. 따라서 히트펌프가 진정한 친환경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재생에너지 확대와 전력망의 탈탄소화가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 한편, 농업 분야에서는 뚜렷한 성과가 이미 나타나고 있다. 충남대 정선옥 교수팀이 지난해 '정밀농업과학기술(Precision Agriculture Science and Technology)'에 발표한 실증 연구에 따르면, 스마트 온실에 고온수 공기열 히트펌프를 적용했을 때 기존 경유 보일러 대비 운영비를 약 67% 절감할 수 있었다. ◇초기 비용과 제도적 개선: 보급 확대를 위한 열쇠 경제성 측면에서는 저렴한 운영비에도 불구하고 매우 비싼 초기 설치비가 걸림돌이다. 기존 콘덴싱 보일러는 설치비가 100만 원 이하인 반면, 공기열 히트펌프는 축열조와 제어반을 포함해 약 1400만 원의 비용이 발생한다. 이에 기후부에서는 국비로 560만 원, 지방비로 280만 원을 지원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이 경우에도 가구당 약 560만 원의 자기부담금이 발생한다. 기존 가스보일러 설치비와 비교하면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 문제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히트펌프를 가동할 경우 월 평균 전기 사용량이 누진제 최고 구간에 진입할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정부는 누진제가 없는 전용 요금제 신설을 검토하고 있다. 아울러 정부는 효율이 높은 히트펌프 기술을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효율 표준을 강화하고, 계절성능지수(SPF)를 향상시킴으로써 장기적으로 가계의 난방비 부담을 가스 대비 15~20%가량 절감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SPF는 특정 기간(주로 난방 시즌 전체) 동안 히트펌프가 공급한 총 열에너지와 이때 소비된 총 전기 에너지의 비율을 나타낸다. COP는 특정 순간의 효율인 반면, SPF는 한 시즌(수개월) 동안의 장기적인 평균 효율을 말한다. 카탈로그상의 COP는 주로 히트펌프 단품의 성능에 집중하지만, SPF는 순환 펌프와 보조 가열기 등 시스템 전체를 고려한 포괄적인 지표다. 히트펌프의 경제성과 탄소 저감 효과를 정확히 예측하기 위해서는 단순 COP보다는 실제 기후 조건과 시스템 손실이 반영된 SPF를 사용하는 것이 훨씬 정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검증 안 된 채 보급확대, 탈탄소에 역행" 이날 국회 토론회에서 주제 발표에 나선 홍희기 경희대 기계공학과 교수는 “세계적으로 히트펌프 보급이 늘어나는 추세인 것은 맞지만, 10kW 수준의 소규모 설비가 주종"이라며 “유럽도 빠르게 늘다가 최근 다소 주춤한 상태"라고 말했다. 홍 교수는 “성능이 검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히트펌프를 전면적으로 허용할 경우 탄소중립정책에 역행할 수도 있다"면서 “COP가 너무 낮으면 가스보일러보다 탄소 배출량 많을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전면적으로 가스 보일러를 대체할 경우 전기 소비량이 급증해 전력망이 붕괴 우려가 있고, 대기업이 시장을 독과점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임용훈 숙명여대 기계시스템학부 교수는 “히터펌프를 겨울철에 사용하다 보면 급탕(더운물) 사용에서 병목 현상이 생길 수 있다"면서 “축열조와 급탕부스터, 전기보일러 등을 추가 설치할 경우 자부담이 늘어나면서 시장에서 수용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한국의 재생에너지 비율은 10% 수준이어서 유럽보다 COP 기준이 더 높아야 한다"면서 “이론적 수치로 COP 기준을 정할 것이 아니라 실제로 광범위하게 측정한 다음에 그것을 바탕으로 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술 융합과 미래의 방향성 히트펌프 보급을 확대하려면 기술 개발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지능형 제어'와 '에너지 기술 융합' 등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산대 남유진 교수팀이 지난달 학술지 '에너지 전환 및 관리: X(Energy Conversion and Management: X)'에 발표한 연구는 태양광 열(PVT) 시스템과 히트펌프를 결합하고 딥러닝(DNN)으로 제어하는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제시했다. 이 시스템은 실시간 수요에 따라 유량을 조절하여 기존 방식보다 에너지 소비를 2.8% 줄이고 시스템 COP를 5% 향상시켰다. 히트펌프는 단순히 열을 내는 기기를 넘어 전력망의 안정성을 돕는 '유연성 자원'으로 활용될 수 있다. 2025년 스위스 취리히공대(ETH Zurich) 보고서 등에 따르면, 스마트 제어가 적용된 히트펌프는 전력 피크 수요를 최대 90%까지 줄이거나 전력 수입을 20% 감소시키는 등 에너지 안보에 기여할 수 있다. 홍희기 교수도 “공기열 히트펌프만 할 것이 아니라 지열과 수열, 태양열 등과 공생체계(하이브리드)로 하자"고 제안했다. 이슬기 산업연구원 박사는 토론회에서 “히트펌프의 성능은 설치 단계의 정격 성능 외에도 실제 운전 환경에서 얼마나 저하가 되는지도 살펴봐야 한다"면서 “냉매를 친환경적인 것으로 대체하는 문제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히트펌프 보급은 필요하지만 철저한 준비를 한국도 히트펌프 보급에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는 데는 전문가들도 동의한다. 건물 부문 온실가스 배출량이 국가 전체의 약 25%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히트펌프는 가스보일러를 대체할 유일한 대안이기 때문이다. 다만, 현재의 전력 믹스나 겨울철 저온 환경에서의 효율 저하와 같은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연구개발 등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전력망 문제를 해결하고 재생에너지 확대도 필요하다. 이와 관련, 기후부가 2035년까지 히트펌프 350만 대 보급을 목표로 설정한 만큼 ▶초기 설치비 지원 확대 ▶누진제 없는 전용 요금제 마련 ▶신축 및 기존 건물에 적합한 표준 설계 기준 확립에 박차를 가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권병철 기후부 열산업혁신과장은 이날 토론회에서 “상업용 건물 시스템에어컨은 지원 대상이 아니고 공기로 물을 데우는 방식의 히트펌프만 보급대상"이라고 분명히했다. 권 과장은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서 기준을 정할 터인데, 김소희 의원이 발의한 법안과 마찬가지로 정부에서도 유럽연합(EU)의 재생에너지 인정 기준인 SPF 2.875보다 높은 수치로 정할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올해는 (겨울이 따뜻한) 제주도와 경남·지역을 중심으로 예산 범위 내에서 시범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EE칼럼] 우크라이나 전쟁이 바꾼 에너지안보의 기준

우크라이나 전쟁은 2022년 2월 러시아의 전면 침공으로 시작해 2026년 1월 현재까지 길어지고 있다.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공격 방식도 달라졌다. 전선의 이동과 별개로 전력·난방 같은 '생활 인프라'를 반복해서 때리는 양상이 뚜렷해졌다. 한 번 파괴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복구할 만하면 다시 공격한다. 복구 자원을 계속 소모시키고, 전력 공급의 불확실성을 일상으로 만드는 전략이다. 실제로 겨울철에는 정전이 난방·상수도까지 흔들어 시민 고통이 커진다. 이런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정부는 대응의 초점을 “완전 정상화"가 아니라 “최소 기능 유지"로 옮겼다. 1월 14일 젤렌스키 대통령은 에너지 부문 '비상사태' 선포 방침을 공식화했다. 수도 키이우에 상설 조정본부를 두고, 전력·설비를 가능한 한 빨리 수입하라고 지시했다. 응급복구, 수요관리(순환정전), 필수시설 우선공급 같은 운영 조정도 함께 돌렸다. 핵심은 하나다. 정전의 '규모'를 줄이는 것만큼, 정전의 '길이'를 줄이는 데 정책 역량을 집중했다는 점이다. 여기서 에너지안보의 기준이 바뀐다. 우리는 흔히 에너지안보를 “연료를 얼마나 확보했나?"로 설명한다. 석유·가스 비축이 충분한가, 수입선을 다변화했는가 같은 질문이다. 그러나 전쟁처럼 전력망 자체가 표적이 되는 상황에서는 이 질문만으로 부족하다. 연료가 창고에 있어도 송전망·변전소가 손상되면 전기는 못 보낸다. 특히 송전·변전 설비는 대체가 쉽지 않고, 부품 조달에도 시간이 걸린다. 그러면 '복구 지연'이 곧 '안보 손실'이 된다. 결국 논점은 물량이 아니라 '복원력(resilience)'으로 옮겨간다. 복원력이란 충격을 받았을 때도 핵심 기능을 유지하고, 손상 지점을 우회하거나 빠르게 복구해 공급 중단 시간을 줄이는 능력이다. 단단하게 버티는 힘(견고성)만이 아니다. 고장 나도 돌아갈 길을 여러 개 만들어 두는 중복성, 인력·장비·자원을 동원하는 능력, 그리고 복구 속도가 함께 작동해야 한다. 또 중요한 전제가 있다. 모든 것을 한 번에 원래대로 만드는 '정상화'가 아니라, 의료·통신·상수도·전력 같은 필수 서비스부터 최소 수준으로 먼저 살리는 '단계적 복원'이 현실적인 목표가 된다. 이 문제의식은 국제 의제에서도 커지고 있다. 영국과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25년 4월 런던의 '미래 에너지안보 정상회의'에서 전통적 공급안보(다변화·비축)와 함께 '회복탄력성(복원력)'을 별도의 과제로 끌어올렸다. 배경은 단순하다. 위협이 지정학·연료 수급에만 머물지 않기 때문이다. 극한기상은 송전망을 직접 흔들고, 디지털화·연결성 확대는 사이버 위험을 키운다. 즉 “연료가 있느냐"를 넘어 “전력망이 제대로 기능하느냐"가 에너지안보의 중심으로 들어온 것이다. 이 흐름은 한국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한국의 에너지안보는 평시의 수급과 가격 안정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위기 상황에서는 가격 충격뿐 아니라, 공급 중단과 복구 지연처럼 '시간의 충격'이 핵심 피해로 나타날 수 있다. 더구나 전력망이 촘촘히 얽힌 수도권에 수요가 집중된 구조에서는 특정 구간의 장애가 광범위한 기능 저하로 번질 가능성도 크다. 전력·통신·상수도·데이터가 서로 의존하는 사회에서는 하나가 멈추면 연쇄 장애로 이어질 수 있다. 그래서 정책 질문도 바뀌어야 한다. “연료 비축이 충분한가"만으로는 부족하다. “충격이 발생했을 때 언제까지 무엇을, 어느 수준까지 복원할 수 있는가"가 목표로 명시돼야 한다. 의료·통신·상수도와 함께 에너지 같은 핵심 서비스는 복구 목표 시간을 분명히 제시하고, 그 시간표를 기준으로 운영·투자 우선순위를 다시 세워야 한다. 용량·비축의 규모가 중요하듯, 피해가 지속되는 시간을 최소화하는 것도 필수다. 안보의 언어를 물량에서 시간과 기능으로 옮겨야 한다. 결국 복원력은 구호가 아니다. '복구 목표시간'과 '최소 서비스 수준'을 기준으로 예비자원, 조달체계, 훈련을 숫자와 절차로 관리하는 국가 역량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보여준 것은 단순한 교훈이 아니다. 에너지안보의 기준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는 신호다. 김재경 외부기고 bienns@ekn.kr

‘떠오르는’ 그린란드: 빙하 녹아내리지만 해수면 낮아지는 역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눈독을 들이면서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그린란드. 이 그린란드가 실제로 떠오르고 있다는 과학적인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전 세계적으로 기후 변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이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는 가운데, 정작 거대한 빙하가 녹아내리고 있는 그린란드에서는 해수면이 오히려 낮아질 것이라는 내용이다. 미국 컬럼비아대학교와 우즈홀해양연구소, 캐나다 오타와대학 등 국제연구팀은 20일(현지 시간) 국제 학술지인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에 해당 연구 결과를 담은 논문을 게재했다. 연구팀은 논문에서 그린란드의 해수면이 이번 세기 동안 전 세계적인 추세와는 반대로 1m에서 최대 4m가까이 낮아질 것으로 예측했다. 유독 그린란드에서만 해수면이 낮아지는 현상에 대해 연구팀은 크게 두 가지 과학적 원리로 설명하고 있다. 첫째는 '지각 평형 반동(glacial isostatic adjustment)' 현상이다. 거대한 빙하가 지각을 누르고 있다가 빙하가 녹으면서 그 무게가 가벼워지는데, 짓눌려 있던 땅이 마치 매트리스 위의 볼링공을 치웠을 때처럼 다시 솟아오른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지구 내부 맨틀의 흐름이 예상보다 빨라 지각이 반동하는 속도가 기존 모델보다 훨씬 빠르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런 현상은 아랄해에서도 관측된 바 있다. 거대한 호수의 물이 말라버리자 짓눌리던 아랄해 바닥의 지각이 솟아올랐다. 둘째 이유는 '중력의 약화'다. 그린란드의 거대한 빙하 자체는 엄청난 질량을 가지고 있어 주변의 바닷물을 중력으로 끌어당기고 있다. 그러나 빙하가 녹아 질량이 감소하면 이 끌어당기는 힘(중력)이 약해져 주변에 모여 있던 바닷물이 다른 곳으로 흘러가게 된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글로벌 탄소 배출 시나리오를 적용해 그린란드 해수면 변화를 예측했다. 탄소 배출을 줄여 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2°C 이내로 제한할 경우(RCP 2.6 시나리오), 2100년까지 그린란드 주변 해수면은 중간값 기준으로 약 0.9m 하강할 것으로 전망됐다. 반면 탄소 배출이 계속되는 고배출 시나리오(RCP 8.5)에서는 평균 2.5m, 일부 지역에서는 최대 3.8m까지 해수면이 낮아질 것으로 분석됐다. 해수면 하강은 그린란드 주민들에게 새로운 도전 과제를 던져줄 것으로 보인다. 그린란드의 경제적, 문화적 중심지인 서부와 남부 해안은 특히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해수면이 낮아지면 기존의 항구와 수로의 수심이 얕아져 대형 선박의 출입이 어려워지고, 이는 해운 물류와 식량 안보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또한, 바다 속에 잠겨 있던 암초가 드러나 항해 위험 요소가 증가하고, 홍합이나 미역과 같은 연안 생태계가 마르면서 서식 환경이 파괴될 우려도 크다. 하지만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낮아진 해수면은 바다와 맞닿은 빙하의 끝부분을 안정시켜 빙하가 무너져 내리는 속도를 늦추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이 연구는 해수면 변화가 전 지구적으로 균일하게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준다. 그린란드 당국은 이제 해수면 상승이 아닌 '땅이 솟아오르고 바다가 물러나는' 상황에 대비한 새로운 인프라 구축과 기후 적응 전략을 세워야 할 시점에 직면했다. 만일 트럼프의 미국이 그린란드를 차지하게 된다면 해수면 하강으로 인해 발생할 문제도 고려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李 대통령, 원전 건설 논쟁에 “숙의 정치로 풀어야”

이재명 대통령이 원자력발전소 신규 건설 문제를 두고 “충분히 의견을 수렴하고 난타전을 하더라도 따로 헤어져 싸우지 말고 모여서 논쟁하게 하라"고 밝혔다. 정부가 추진 중인 원전 2기와 소형모듈원자로(SMR) 1기 건설 여부를 둘러싸고 사회적 숙의를 거쳐 합리적 결론을 도출하라는 취지다. 이 대통령은 20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으로부터 원전 사업 관련 여론조사 진행 상황을 보고받는 자리에서 이같이 주문했다. 정부는 원전 2기와 SMR 1기 신규 건설을 지난해 2월 확정했지만,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해당 사안에 대한 재검토를 진행 중이다. 환경부는 지난달과 이달 초 두 차례에 걸쳐 공개 토론회를 열었고, 두 개 기관을 통해 대국민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정부는 이 같은 절차를 토대로 조만간 신규 원전 건설에 대한 최종 방향을 발표할 계획이다. 이 대통령은 회의에서 “국민 여론은 압도적으로 전기 문제를 해결하려면 원전이 필요하다 그런 거죠"라고 물었고, 이에 김 장관은 “그렇다"고 답했다. 이 대통령은 또 “'결론을 정해놓고 하는 것 아니냐' '왜 여론조사로 하느냐'며 저한테 항의 문자가 온다"고 언급하며 논란의 현실을 전했다. 그러면서 “어쨌든 최대한 의견 수렴하시고 사실 이게 일종의 이념 의제화돼 가지고 합리적 토론보다는 정치 투쟁 비슷하게 된 경향이 있는데 그걸 최소화하고 충분히 의견 수렴하라"고 지시했다. 김하나 기자 uno@ekn.kr

[EE칼럼] 재생에너지 확대, 유연한 발전원 없이는 불가능하다

최근 정부가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누적 설비용량을 100GW까지 확대하겠다는 목표를 발표했다. 탄소중립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 확대가 불가피하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질문은 외면하고 있다. 재생에너지를 늘리기만 하면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가능한가. 답은 명백히 '아니오'다. 재생에너지는 태생적으로 '간헐성'이라는 치명적 약점을 안고 있다. 태양광은 해가 뜨지 않으면 한 와트도 생산하지 못하고, 풍력은 바람이 불지 않으면 거대한 철 덩어리에 불과하다. 기후변화 대응의 선봉장을 자처했던 독일에서 '둥켈플라우테'라는 신조어가 생겨났다. 바람이 불지 않고 구름이 가득한 날이 며칠간 지속되면서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급락하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결국 독일은 프랑스의 원전과 북유럽의 수력으로 만든 전기를 비싼 값에 수입하는 처지가 됐다. 독일 경제에너지부 부국장이 방한하여 독일은 재생에너지가 충분하지만 전력망이 부족하여 5,000km를 깔아야 하고 조기 달성이 어려워서 천연가스발전소 10GW와 수소혼소 발전소 2GW를 추가로 건설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현재 독일의 가정용 전기요금은 우리의 3배이고 산업용은 2배를 넘어선다. 전기요금은 폭등했고, 제조업 경쟁력은 급락했다. 유럽 경제의 엔진이었던 독일이 3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이라는 굴욕을 겪었다. 재생에너지의 간헐성 문제를 해결하는 해법은 명확하다. 유연한 발전원이다.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급변할 때 즉각적으로 출력을 조절해 전력망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발전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재생에너지 비중이 30%를 넘어서면 전력 시스템의 유연성 확보가 필수라고 강조한다. ESS는 가장 응동성이 좋은 자원이어서 주파수 안정화에 기여하고 태양광과 연계하면 밤시간을 버텨줄 중요한 자원이다. 하지만 기후조건이 나쁜 날이 며칠간 지속되면 여전히 재생에너지과 ESS를 엄청난 양으로 설치한다고 해도 그 단독으로는 무용지물이다. 재생에너지를 충분히 증가시킨 유럽이 지속적인 가격 폭등을 경험하는 것도 기후조건을 완벽하게 상쇄할 수 없기 때문이다. LNG 발전 역시 단기적으로는 중요한 유연 발전원이다. 출력 조절이 쉽고 빠르게 가동할 수 있어 첨두부하를 담당하는 데 적합하다. 탄소중립을 가는데 있어서 여전히 허점이 있지만 당분간 충분한 용량을 공급하면서 재생에너지 과다 발생일 때 출력을 낮추고 과소 공급일 때 출력을 급격히 올려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전원이다. 특히 제주도는 이미 재생에너지가 과도하여 출력제약이 일상화되고 있다. 물리적 출력제약을 입찰제도라는 재무적 출력제약으로 강제하고 있는 것도 재생에너지 사업자들에게는 엄청난 재무적 손실이다. 재생에너지를 더욱 많이 받기 위해서라도 제주도에 LNG 발전소를 계획대로 건설해야 한다. 재생에너지 100GW 목표는 향후 5년간 매년 12GW씩 설비를 늘려야 달성할 수 있는 도전적 목표다. 그러나 설비만 늘린다고 끝이 아니다. 전력 시스템의 유연성을 확보하지 않으면 독일처럼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치르게 될 것이다. 한국은 섬나라다. 유럽처럼 주변국과 전력망이 연결돼 있지 않아 부족한 전력을 수입할 수도, 남는 전력을 수출할 수도 없다. 정부가 정한 재생에너지 대폭 확대를 통한 탄소중립 달성은 매우 치밀한 전력시스템의 구성이 필요하다. 그래서 원전, 재생에너지, LNG, ESS 등 모든 카드를 동원한 균형 잡힌 에너지 믹스가 필요하다. 에너지는 산업의 혈액이다. 안정적이고 저렴한 전력 공급 없이는 어떤 산업도 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다. 한국은 제조업이 GDP의 30%를 차지하는 제조업 강국이다. 전기요금이 중국의 2배를 넘어선 지금, 유연성 없는 재생에너지 확대로 전기요금이 더 오르면 반도체, 자동차, 석유화학 등 주요 산업이 버티기 어렵다. 2026년은 에너지 대전환의 분기점이 될 것이다. 원전과 재생에너지의 유기적인 상생 전략, ESS, LNG 수소전환 등의 유연한 전원을 결합한 통합 전략 없이는 탄소중립 목표 달성도, 산업 경쟁력 유지도 불가능하다. 재생에너지를 늘리되, 유연한 발전원을 함께 확보하는 현실적인 에너지 믹스 정책을 설계해야 할 때다. 조홍종 외부기고자 bienns@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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