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경연 발표회] 공기열 히트펌프, 사실상 ‘경제성 없음’ 판명

건물 난방을 화석연료 대신 전기로 전환하기 위한 방안으로 히트펌프가 주목받고 있지만, 실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여러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탄소배출권 가격을 톤당 5만원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히트펌프 설치비를 절반까지 낮추며, 전기요금 누진제를 적용하지 않을 때에야 수소혼소 가스보일러와 경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히트펌프 확산을 뒷받침할 열에너지 정책 거버넌스 구축이 시급하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24일 서울 강남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2025년도 연구성과 발표회'를 열고 건물부문 탄소중립 전략을 논의했다. 첫 번째 세션에서는 '건물부문 탄소중립을 위한 열에너지 효율화 및 통합관리 전략'을 주제로 히트펌프 역할과 정책 방향이 집중적으로 다뤄졌다. 히트펌프는 전기를 사용해 공기·지열·수열 등 주변의 열을 끌어올려 냉난방과 온수를 동시에 공급하는 설비로, 화석연료 난방을 대체할 수 있는 대표적 기술로 꼽힌다. 정부도 최근 발표한 '2035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NDC)'에서 히트펌프를 '대한민국 녹색전환(K-GX)' 추진 과제에 포함하며 건물 탈탄소화 핵심 수단으로 활용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러나 현재 비용 구조만 놓고 보면 히트펌프의 자발적 확산은 쉽지 않다는 평가다. 오세신 에경연 연구위원은 히트펌프와 가스보일러의 균등화열생산비용(LCOH)을 6개 시나리오로 비교한 결과를 공개했다. 그 결과, 5개의 시나리오에서는 공기열 히트펌프의 LCOH가 가장 높은 것으로 나왔고, 공기열 히트펌프에 가장 유리한 조건이 제시된 시나리오5에서만 수소혼소 가스보일러보다 경제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나리오5에서는 탄소배출권 가격을 톤당 5만원으로 높이고, 히트펌프 설치비를 50% 낮추며, 전기요금 누진제를 적용하지 않았다. 이때 공기열 히트펌프의 LCOH는 기가칼로리(Gcal)당 13만1859원으로 나타나 가스보일러(수소 혼소) 13만9581원보다 낮았다. 하지만 이때도 순수 가스보일러(12만4443원)와 열병합발전 기반 난방(11만9639원)보다는 여전히 높은 수준을 보였다. 최근 3년 평균 배출권 가격인 톤당 9490원을 적용한 현실적 조건에서는 공기열 히트펌프 LCOH는 19만5643원까지 올라 가스보일러(11만4145원)와 열병합발전(11만2547원) 대비 경쟁력이 크게 떨어졌다. 이는 배출권 가격 인상과 설비 비용 절감, 전기요금 체계 개선이 동시에 이뤄지지 않으면 히트펌프가 기존 난방체계를 대체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정책적 지원 없이는 시장 확산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오 연구위원은 “히트펌프는 초기 설치비가 가스보일러보다 7배 이상 높아 소비자 부담이 크다"며 “열에너지 탈탄소화를 위해서는 법·제도 차원의 정책 거버넌스 정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열에너지 탈탄소화 법적 명문화 △열에너지 전환법 제정 △난방 연료공급자에 대한 탄소세 또는 배출권 부과 △히트펌프 설치비 보조와 세액공제 도입 등을 제안했다. 아울러 히트펌프 보급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기존 건축물의 에너지 효율 향상도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종우 에경연 연구위원은 그린리모델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단열 보강, 고효율 냉난방장치 도입, 신재생에너지 설치, 건물에너지관리시스템(BEMS) 구축 등 기존 건물 성능 개선이 온실가스 감축의 핵심 수단이라고 설명했다. 내년부터 2030년까지 연평균 약 910만㎡ 건물에 그린리모델링 의무를 적용할 경우, 누적 약 22만 톤의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추산된다. 김 연구위원은 “민간 부문까지 그린리모델링을 확대해야 건물부문 탄소중립이 가능하다"며 “공공이 선도적으로 나서 시장을 이끌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기후테크] 더 귀해진 희토류…고사리 채굴법까지 등장

전 세계적으로 희토류(REEs) 공급망의 불안정성이 심화되면서, 각국은 첨단 기술의 필수 요소인 이 핵심 광물을 확보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희토류 원소(REEs)는 스칸듐(Sc)과 이트륨(Y)을 포함한 란타넘족(族) 원소들로 구성된다. 독특한 자기촉매 특성 덕분에 풍력 터빈과 전기 자동차, 국방 및 첨단 전자 기술 등 현대 기술 분야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국제에너지기구(IEA) 보고서에 따르면, 2040년까지 희토류 수요는 현재보다 3~7배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가운데 미국과 중국 무역갈등 속에 희토류 공급망도 흔들리고 있다. 전통적인 광물 자원 외의 대안을 찾는 것이 시급해졌다. 최근 발표되는 연구 결과는 이런 사정을 고려해 전통적인 채굴 방식에서 벗어나 다양한 채굴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석탄 폐기물에서 희토류를 추출하기도 하고, 특수한 식물, 심지어 유전자 변형 바이러스를 활용하기도 한다. 최근 학계에서 주목하는 혁신적인 희토류 채취 및 분리 기술들을 정리했다. ◇산업 폐기물 재활용: 석탄 재(coal ash) 및 광미(tailings)에서 회수 석탄 발전소에서 발생하는 석탄 비산재(fly ash)나 석탄 광미(鑛尾, 광산 잔재물)는 환경 폐기물이지만 희토류를 많이 함유하고 있어 희토류의 잠재적 공급원으로 주목받고 있다. 미국에서만 매립된 석탄재를 통해 연간 약 1만2000톤의 희토류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현재 미국의 소비량을 넘어서는 양이다. 미국 텍사스대학의 지하에너지·환경센터 연구팀은 지난 9월 '환경 과학 기술(Environmental Science & Technology)'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석탄 비산재에서 희토류를 추출하는 새로운 방법을 내놓았다. 이른바 '건식 소화' 추출 방식이다. 석탄 비산재에서 희토류를 추출하는 전통적인 방법은 산 침출(acid leaching)이다. 칼슘(Ca) 함량이 높은 석탄재는 희토류 회수율이 약 70~100%로 높아 매력적이지만, 산성도가 높을 경우에는 침전물로 인해 경제성이 떨어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반대로 산성도가 낮으면 희토류 회수율이 약 33~55%로 떨어진다. 연구진은 대안으로 건식 소화, 즉 산 베이킹(acid baking) 방법을 개발했다. 고농도 질산으로 전처리한 후, 물에 녹여내는 방식이다. 이 방법으로 눈에 띄는 침전물 없이 약 74%의 높은 희토류 추출 효율을 달성했다. 더욱이 최종 침출액에서 알루미늄(Al), 철(Fe), 규소(Si) 등 불필요한 이차 양이온의 농도가 낮아져 후속 분리 공정의 부담도 줄였다. 미국 노스이스턴 대학교 화학공학과 연구팀은 지난달 '환경 과학 기술'에 발표한 논문에서 석탄 광미에서 희토류를 추출할 때 알칼리 전처리 과정을 추가하면 효율이 높아진다고 밝혔다. 알칼리 전처리는 희토류를 둘러싸고 있는 알루미노실리케이트 구조(주로 카올리나이트)를 분해한다. 특히 알칼리 전처리는 경희토류(LREEs, 주기율표 상에서 란타넘(La)에서 가돌리늄(Gd)까지의 원소를 말함)를 함유한 광물에 효과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중희토류(HREEs)보다 추출 효율을 더 크게 향상시킨다는 의미다. 중희토륨은 가돌리늄(Gd)·터븀(Tb)·디스프로슘(Dy) 등을 말한다. ◇ 친환경 채굴: 고사리를 이용한 '식물 채굴' (phytomining) 중국 광저우 지구화학 연구소와 미국 버지니아 공대 연구팀은 지난 13일 '환경 과학 기술'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식물 기반 금속 채굴(phytomining) 방법을 소개했다. 이 전략은 '초축적 식물(hyperaccumulator plants)'을 이용해 토양에서 특정 금속을 추출해 식물 체내에 농축한 다음, 수확된 바이오매스에서 금속을 회수하는 방식이다. 연구팀은 중국 남부의 이온 흡착형 희토류 광상에서 자생하는 희토류 초축적 식물인 고사리(Blechnum orientale)를 조사한 결과, 식물의 세포 외 조직에서 나노 크기의 모나자이트 결정이 자연적으로 형성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모나자이트는 생물학적으로 유도된 광물화와 비평형 자기 조직화 과정을 통해 보통의 환경 조건(상온, 상압)에서 수지상(dendritic, 나뭇가지 모양) 나노 결정 형태로 만들어진다. 이는 고온과 고압이 필요한 전통적인 지질학적 모나자이트 형성 방식과는 완전히 다른, 식물이 매개하는 광물 형성 경로다. 연구팀은 “이번 발견은 희토류 초축적 식물이 희토류를 격리하고 해독하는 새로운 메커니즘으로 밝혀졌다"면서 “식물에서 형성된 나노 모나자이트는 높은 표면적과 향상된 반응성을 가지고 있어서 코팅· 발광체·방사성폐기물 관리 등 광범위한 첨단 응용 분야에 적합하다"고 설명했다. ◇바이러스를 활용하는 희토류 분리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바이오공학과 이성욱 교수 등은 최근 '나노 레터스(Nano Letters)'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실 모양의 박테리오파지(세균을 공격하는 바이러스)를 이용해 희토류를 분리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희토류 원소들은 화학적 유사성 때문에 분리하는 것이 특히 어렵고, 기존 분리 기술은 혹독한 화학 물질과 에너지 집약적인 다단계 공정(주로 용매 추출)에 의존한다. 이 교수팀은 이러한 희토류 분리 과정의 환경적 부담을 줄이기 위해 박테리오파지를 이용한 열반응성 희토류 분리 플랫폼을 개발했다. 이 바이러스는 LBPhELP라고 불리는 '이중 기능 생체 틀'로 설계됐다. 바이러스 껍질 표면 단백질에는 세균(Methylobacterium extorquens)에서 유래한 란탄족 결합 펩타이드(LBP, 펩타이드는 짧은 단백질)가 발현되도록 조작했다. 이 LBP는 희토류 이온과 선택적으로 결합하게 된다. 흥미롭게도 이 LBP는 경희토류를 선호하는 일반적인 LanM 단백질과 달리, 중희토류에 대해 결합 선호도를 보인다. 이 성질을 활용하면 희토류를 쉽게 분리할 수 있다. 온도에 반응하는 엘라스틴 유사 펩타이드(ELP)는 용액의 온도를 높이면 (예: 20°C에서 ∼50°C로) 소수성 모티프(펩타이드 중 물을 싫어하는 부위)가 노출돼 바이러스 입자의 응집이 일어난다. 만일 단백질에 희토류 이온이 결합하게 되면 열 응집 온도가 낮아진다. 연구팀은 “이 LBPhELP 시스템은 실제 광산 샘플(산성 광산 배수 및 알라나이트 광석 침출액)의 복잡한 금속 이온 혼합물에서도 중희토류에 대한 높은 선택성을 유지했고, 이러한 흡착-탈착 사이클을 여러 번 반복해도 성능 저하 없이 재사용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방법은 전통적인 희토류 채굴과 분리 방법과 비교할 때, 훨씬 작고, 스마트하며, 환경에 덜 해로운 방식이다. 미래 기술의 재료를 확보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는 셈이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전국 곳곳 겨울비…26일부터 아침 영하권

오는 25일 전국 곳곳에 겨울비가 내릴 전망이다. 비가 그친 뒤에는 기온이 다시 떨어지겠다. 24일 기상청 단기예보에 따르면 25일 예상 강수량은 수도권·강원 내륙·충청권·전북 5~15mm, 광주·전남·제주도 5~10mm, 강원 산지·동해안 5~20mm로 예보됐다. 비는 늦은 새벽부터 중부지방(강원 동해안 제외)과 전라권, 제주도에서 시작돼 오전부터는 경상권으로 확대되고, 낮부터는 강원 동해안에도 내리겠다. 오후에는 대부분 그치겠으나 강원 산지와 동해안 등 일부 지역은 밤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해발고도가 높은 지역에는 비 대신 눈이 내릴 가능성도 있다. 25일 전국 예상 최저기온은 3~11도(℃), 최고기온은 9~16℃로 예보됐다. 26일에는 최저기온이 -2~7℃, 최고기온은 9~16℃도로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권으로 내려가며 다시 추워지겠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김성우 시평] 탄소규제 강화와 기업의 고민

김성우 김앤장 법률사무소 환경에너지연구소장/기후대응기금 운용심의위원 지난 11일 정부는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2018년 순배출량 대비 53~61%로 최종 확정했다. 이번 목표는 11월 10일부터 브라질 벨렝에서 개최된 제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0)에서 공식 발표되었고, 연내에 UN에 제출될 예정이다. 부문별로 살펴보면, 목표의 편차가 크다. 전력 부문은 2018년 대비 68.8~75.3%라는 고강도 감축 목표가 설정되었고, 건물 부문은 53.6~56.2%, 수송 부문은 60.2~62.8%를 감축해야 한다. 반면 산업 부문은 24.3~31.0%로 상대적으로 완화된 목표가 제시되었다. 이는 온실가스 다배출 제조업 중심의 산업 구조와 감축기술의 실현 가능성을 고려한 결과라고 한다.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정부는 다양한 정책 수단을 통해 기업의 감축을 강제하기 때문에 NDC는 기업에 대한 탄소규제 강도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마침 NDC가 확정된 날에 제4차 배출권거래제 할당계획도 확정되었다. 향후 5년간 기업들이 배출할 수 있는 탄소의 총량과 이를 할당하는 방식이 법정 계획을 통해 결정되어, NDC와 연동된 기업에 대한 탄소규제의 강도가 정해진 것이다. 과거와 가장 큰 차이는 전력 부문의 유상할당 비율을 현행 10%에서 2030년 50%까지 단계적으로 상향한다는 점이다. 산업 부문의 경우, 철강, 석유화학, 시멘트, 정유,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탄소누출업종은 국제경쟁력을 고려해 100% 무상할당을 유지하지만, 나머지 산업 부문은 현행 10%에서 15%까지 유상할당 비율이 확대된다. 이러한 정책 변화가 기업에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다. 향후 5년간 유례없는 의무감축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3차 계획기간(2021~2025년)의 배출허용 총량 대비 제4차 계획기간(2026~2030년)의 총량이 약 17% 감소하고, 그 총량 중 유상할당 비율이 확대되며, 시장안정을 위해 정부가 비축할 배출권 수량도 기업들이 할당받을 배출권 수량내에서 예비할 예정이므로 기업이 받을 무상할당량은 더욱 축소될 전망이기 때문이다. 한 증권사의 전망에 따르면, 산업 부문의 경우 2030년의 무상으로 받을 할당량은 2018년 대비 3분의 2 수준으로 줄어 들 전망이고, 전력 부문의 경우 2018년 대비 30%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런 상황에서 오랜 자문 경험을 바탕으로 기업내 탄소감축을 담당하는 조직의 주요 고민을 대별해 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회사 내 컨센서스 부족이다. 탄소를 감축하기 위해서는 기획, 원료, 생산, 투자 등 다양한 부서의 역할이 필요한데, 아직은 탄소규제 대응은 담당 조직의 숙제로 인식되거나 단순 비용으로만 간주되는 상황이라는 점이다. 더욱이 경영환경 악화까지 겹치면서 전사적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탄소감축은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릴 수밖에 없다. 둘째, 대응수단의 모호성이다. 주요 대응 수단은 감축기술 활용, 재생에너지 사용, 배출권 확보인데, 감축 기술의 가용 시점이 언제일지, 재생에너지와 탄소배출권의 가격 및 수급은 원활할 지 등을 판단하기 어려워 미리 계획을 수립하기 힘들다는 우려다. 셋째, 정책 불확실성이다. 주기적으로 달라지는 감축목표 수준 및 주요 감축수단 등으로 정책시그널이 혼란스러웠기 때문에, 앞으로도 탄소규제 관련 상세 지침이 변경되지는 않을지, 감축 지원이 얼마나 실효가 있을지 불확실하다는 걱정이다. 미국의 기후정책 변화가 한국 정책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도 이 불확실성에 포함되어 있다. 넷째, 기업의 리스크가 다양해지고 있다는 부담이다. 감축 투자를 늘려야 하는데 기업의 투자 여력은 점차 감소하고 있고, 기후정보공개 요구에 대응해야 하는데 공개시 그린워싱으로 인한 평판 리스크가 커지는 등 리스크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국가별 각자도생에 기반한 글로벌 경제위기에 지정학적 리스크가 고조된 상황에서, 점차 경쟁이 버거워지는 중국 제조업의 약진 등 대내외 여건상 우리 기업이 탄소를 대규모로 감축할 여력이 없다는 주장은 일리가 있는 말이다. 다만, 기업이 탄소감축을 어떤 속도로 얼마나 이행할지 판단하기 전에, 관련 규정이 복잡하고 부서별 임원이 다르다는 이유로 그 동안 탄소감축은 담당하는 조직만의 이슈로 여겨온 것은 아닌지, 관련 부서 임원들과의 공감대는 얼마나 형성되어 있는지, 최고경영층은 (전사적 자원 배분을 위한) 탄소배출 관련 디테일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할 시점이다. 김성우

COP30 폐막: ‘화석연료 로드맵’ 빠진 절충안에 합의

브라질 아마존 인근 도시 벨렝에서 2주간 개최된 제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30)가 예정된 폐막일인 21일(현지시간)을 넘겨 22일에 공동선언문(Mutirão Decision)을 채택하며 막을 내렸다. 브라질은 이번 총회를 '이행의 COP'이자 '진실의 COP'로 규정하며 다자주의 강화와 기후 정책의 이행 가속화를 강조했다. 하지만 기후 변화의 주범인 화석연료의 단계적 퇴출 로드맵 마련을 놓고 산유국과 유럽연합(EU) 및 기후 취약국 간의 첨예한 갈등이 지속되면서 협상은 난항을 겪었다. 이번 COP30의 결과는 다자주의가 시험받는 지정학적 분열의 시기 속에서 최소한의 공동 합의를 이끌어냈다는 긍정적인 평가와 함께 화석연료 로드맵 부재 등으로 인해 과학이 요구하는 수준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는 비판을 동시에 받고 있다. 브라질 의장국은 화석연료 전환 로드맵을 포함한 여러 약속을 COP30 이후에도 계속 추진할 것을 다짐했다. ◇최대 쟁점: 화석연료 로드맵 부재 COP30에서 가장 큰 관심사는 석유·석탄·가스 등 화석연료의 사용을 단계적으로 감축하고 에너지 전환에 관한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합의문에 명문화할 수 있을지 여부였다. 주최국인 브라질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대통령은 화석연료 의존에서 벗어날 '명확한 로드맵'을 촉구하며 정치적 의지를 표명했고, EU와 콜롬비아, 소규모 섬나라를 포함한 80여 개국이 화석연료 퇴출을 위한 시간표 마련에 힘을 모았다. 콜롬비아는 '화석연료로부터의 전환'을 지지하는 선언문 발표를 주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 등 주요 석유 생산국은 화석연료 감축 로드맵에 완강히 반대했다. 이들은 로드맵 대신 탄소 포집과 같은 기술을 통해 배출량 자체를 줄이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폐막을 앞두고 발표된 최종 합의문 초안에는 화석연료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모두 사라졌는데, 이는 산유국들의 입김이 크게 반영된 것으로 평가됐다. 이에 EU는 초안 내용이 너무 약하다며 수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막판 밤샘 협상 끝에 절충안을 받아들였다. 결국 합의문은 2023년 COP28에서 합의된 '화석연료로부터의 전환'을 상기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국제사회에서는 합의문에 화석연료에 대한 언급이 빠진 것을 두고 “산유국들의 승리"이자 “COP의 후퇴"라는 평가가 나왔다. ◇기후 재원 및 적응 목표 강화 기후 재원 조성 계획은 COP30의 또 다른 핵심 쟁점이었다. 합의문은 개발도상국의 기후 행동을 위한 재원 조달 규모를 2035년까지 연간 최소 1조3000억 달러(약 1923조원)로 확대할 수 있도록 모든 행위자가 협력해야 한다는 요청을 재확인했다. 이 목표는 지난해 COP29에서 합의된 연간 최소 3000억 달러를 포함하는 신규 기후재원 조성 목표(NCQG)의 일환이다. 또한 기후 변화 적응 지원과 관련하여, 합의문은 적응 재원을 2035년까지 현 수준의 약 3배로 늘리기 위한 노력을 촉구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는 적응 재원 격차를 해소하고 선진국에 대한 압박을 유지하는 중요한 정치적 신호이지만, 개발도상국이 요구한 수준의 야심 찬 목표에는 미치지 못했다. 일부에서는 목표 시점이 늦춰지거나 기준 연도가 후퇴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초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2030년까지 적응 재원을 3배로 늘리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손실과 피해 대응 기금(Loss and Damage Fund), 녹색기후기금(GCF), 지구환경시설(GEF)의 재원 보충을 기대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아마존 보전 노력과 브라질의 이니셔티브 COP30 개최지인 벨렝은 세계 최대의 열대우림 생태계인 아마존에 인접해 있어, 브라질은 아마존의 중요성을 느끼도록 개최지를 선정했다고 밝힌 바 있다. 브라질은 열대우림 보호를 위한 장기적인 재정 지원을 목표로 하는 열대우림보전기금(TFFF)의 출범을 공식화했다. TFFF는 초기 기금 예상치 250억 달러(약 36조 원)와 민간 부문을 포함한 목표 재원 1000억 달러(약 145조 원) 규모로 추진된다. 브라질은 또한 '글로벌 무치랑(Global Mutirão)' 정신(브라질 토착어로 '공동 협력'을 의미)을 바탕으로 협상의 진전에 이바지하겠다고 밝혔다. ◇무역 장벽 및 NDC 격차 논의 합의문에는 기후 변화 대응 조치가 국제 무역에 있어 자의적이거나 부당한 차별 수단이 돼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는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등 기후 관련 무역 장벽에 대한 중국과 인도 등 개발도상국들의 우려를 반영한 것이다. 최종 합의문은 기후 변화 대응 조치가 자의적이거나 부당한 차별, 또는 국제 무역에 대한 위장된 제한 수단이 돼서는 안 된다는 점을 재확인했다. 무역의 역할과 관련한 국제 협력 강화를 논의하기 위해 보조 기구에서 세 차례의 대화(dialogue)를 개최하기로 결정했다. 한편, 각국이 제출한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완전히 이행하더라도 지구 온도 상승 폭이 파리협정 목표인 1.5°C 이하가 아닌 2.3~2.5°C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에 따라, 감축 목표와 필요한 감축량 간의 '격차 해소' 방안도 주요 의제로 다뤘다. COP30은 파리협정의 1.5°C 목표를 재확인하고, 일시적인 온도 초과(overshoot) 수준과 기간을 제한하기 위한 노력을 추구할 것을 강조했다. 각국에는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 이행 및 투자 계획을 개발하고 NDC를 경제 개발 전략과 연계하도록 권고했다. 화석연료 전환 로드맵은 결정문에서 제외되었으나, COP 30 및 31 의장국이 주도하는 '1.5도를 향한 벨렝 미션'을 출범시키기로 결정했다. 이는 향후 화석연료 전환 로드맵을 위한 발판을 제공할 수 있을 전망이다. 아울러 NDC의 이행 가속화를 위해 협력적이고 자발적인 이니셔티브인 '글로벌 실행 촉진 기구(Global Implementation Accelerator)'도 출범시키기로 했다. ◇정의로운 전환와 성평등 문제도 다뤄 이번 회의에서는 '정의로운 전환 (just transition)' 문제도 다뤄졌다. 각국은 국제 협력, 기술 지원, 역량 강화 등을 강화하기 위한 '정의로운 전환 메커니즘'을 개발하기로 합의했다. 이는 정의로운 전환 작업 프로그램(just transition work programme)을 보다 실행 가능하게 만드는 점에서 큰 진전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아울러 성평등 행동 계획 (gender action plan, GAP) 협상도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여기에는 의사 결정 시 분리된 데이터와 성별 분석을 사용하는 것, 그리고 기후 행동을 추진하는 데 있어 인종·장애·연령 등 다차원적 요소가 사람들의 경험을 형성한다는 인식이 포함됐다. ◇미국 불참과 중국의 역할 확대 이번 총회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기후 과학을 '사기극(con job)'으로 치부하며 연방정부 차원의 공식 대표단을 파견하지 않았다. 미국이 유엔 기후 총회에 불참한 첫 사례로 기록됐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중국은 딩쉐샹 국무원 부총리를 대표단으로 파견하며, 녹색 전환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보였다.기후변화 대처 리더십을 차지하려는 의지를 내비쳤다는 평가를 받았다. COP30 의장 안드레 꼬레아 두 라고는 중국이 저탄소 에너지의 최대 생산국이자 소비국으로 부상해 “전 세계 모두를 위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COP30은 치솟는 숙박비 문제와 더불어 폐막 직전 전시장 인근에서 화재 사고가 발생하는 등 혼란 속에서 진행됐으나, 다자간 협력을 통해 합의를 도출해냈다. 그러나 합의문에서 화석연료에 대한 직접적인 조치가 빠지면서, 이는 기후위기 대응의 시급성에 미치지 못하는 '불충분한 결과'라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국내 기업엔 부담과 기회 양면적 영향 예상 우선 기업에는 수출규제와 무역장벽 강화 위험이 커질 전망이다. 이번 회의에서 EU의 CBAM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었으나, 각국이 온실가스 감축을 강화해야 할 필요성은 제기됐기 때문이다. EU 등은 앞으로도 CBAM 등 자체 규제와 녹색 규격을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로 인해 국내 수출기업은 제품·공정의 온실가스 감축 노력과 더불어 온실가스 배출성적 표기 등으로 인해 관련 비용의 상승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전력·교통·건물·배터리·그린수소 등 분야에선 기술·서비스에 대한 수요 증가가 수출·투자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 반면 전통적 석유화학·정유·철강은 구조적 수요 축소로 재편 압력이 커질 수 있다. 한국 정부의 경우 외교 부담이 늘어날 전망이다. 개별 경제권 규제가 강화되면서 외교·무역 대응이 그 만큼 더 필요해졌다. 정부는 2035 NDC와 관련한 로드맵을 상세히 작성하고, 재원계획도 수립할 필요가 있다. 산업별 전환지원(보조금·세제·직업전환) 프로그램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기후신호등] 글로벌 ‘그린 보호주의’ 파도…산업 대전환으로 넘어야

최근 산업연구원(KIET)는 국민경제자문회의에 보고서를 제출했다. 본지가 단독 입수한 이 보고서의 제목은 '대외환경 변화에 따른 기후환경·에너지 정책 분석과 산업별 대응 방안'이다. 보고서는 전 세계적인 기후·에너지 정책 환경 변화가 국내 주력 산업에 중대한 구조적 위협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보고서는 이러한 '글로벌 그린 보호주의' 격랑을 소극적으로 피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온실가스 다배출 산업 비중이 높고 수출 의존도가 심각한 한국 경제의 특성상, 불확실성이 증대되는 글로벌 통상 질서와 기후 통상 정책 변화에 민감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할 정책적 재정비가 시급하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은 선진국을 따라가는 '추격자(fast follower)'였지만, 선진국과 같은 조건에서 출발하는 저탄소 시대을 맞아 적극적인 '선도자(first mover)'로 전환한다면 추월도 가능하다고 보고서는 강조했다. 국민경제자문회의는 국민경제와 관련된 정책에 대한 대통령 자문을 수행하기 위해 헌법(제93조1항)에 근거해 설립된 기관이다. 다음은 보고서의 주요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미국, 보호무역 강화와 에너지-AI의 충돌 보고서는 주요국의 정책 변화를 자세히 다뤘다. 우선 미국의 경우 기후 정책 후퇴 및 보호무역주의 심화가 두드러진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상호 관세 도입을 포함한 강한 보호무역주의 기조가 글로벌 통상 질서의 불확실성을 증대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우리 기업의 대미 수출뿐만 아니라 글로벌 교역 둔화 등 부정적인 간접 효과를 유발할 것으로 예상했다. 트럼프 2기에서는 파리 기후 협정 탈퇴와 더불어 바이든 행정부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의 전면적 축소 또는 폐지 가능성, 친환경 투자 인센티브의 대폭 축소가 예상된다. 특히,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One Big Beautiful Bill Act, OBBBA)'의 제정으로 IRA에 기반한 전기자동차(EV) 세액공제는 2025년 9월까지, 충전 인프라 세액 공제는 2026년 6월까지 폐지될 예정이다. 한편, 공화당은 철강·알루미늄 등 특정 수입품의 탄소 집약도가 미국 제품보다 10% 이상 높으면 수수료를 부과하는 '해외 오염 관세법(Foreign Pollution Fee Act)' 발의를 통해 자국 제조업 경쟁력 강화를 시도하고 있다. ◇EU, 청정산업딜과 규제 완화 패키지 유럽연합(EU)은 기후 환경 규제를 통해 글로벌 탄소중립 주도권을 선점하는 기존 전략에서 성장과 전환을 동시에 도모하는 기조로 변화하고 있다. 기존 그린딜을 대체하는 '청정산업딜(Clean Industrial Deal)'을 통해 에너지 집약 산업 지원과 산업경쟁력 확보를 강조하고 있다. 아울러 규제를 간소화하기 위해 '옴니버스 패키지'를 발표했다. 여기에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보고 의무 간소화, 기업 지속가능성 보고 지침(CSRD) 적용 대상의 약 80% 축소 및 보고 기한 2년 연기, 공급망 실사 지짐(CSDDD) 적용 시기 1년 연기 등이 포함됐다. 하지만 CBAM은 예정대로 내년 1월 본격 시행될 예정이다. 독일은 탄소 가격 변동 리스크를 정부가 보전해주는 탄소차액계약(CCfD) 입찰을 시작해 중공업 저탄소 전환을 지원하는 등 규제와 지원을 병행하는 전략을 추진 중이다. 이런 가운데 일본은 GX(Green Transformation, 녹색 전환) 추진법을 기반으로 2050년 탄소중립을 위한 법적 토대를 마련했다. 일본은 탄소세와 GX-ETS(배출권거래제, 2026년 의무화)를 결합해 탄소 가격 신호를 확대하고 있다. 이를 통해 거둬들인 수익은 GX 경제전환 채권을 통해 탈탄소 기술·인프라에 재투자하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할 계획이다. 중국은 '2030년 이전 탄소 피크 도달과 2060년 탄소중립'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신규 설치한 발전 설비 용량 가운데 86%를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등 국가 주도로 빠른 전환을 추진 중이다. 특히 철강 분야에서는 지난해 상반기 신규 설비(710만 톤) 모두를 전기로(EAF)로 채우는 등 산업 구조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AI 혁명: 데이터센터 증가와 전력 수요 폭증 전 세계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는 지난해 415 TWh(테라와트시)에서 2030년 945 TWh로 두 배 이상 증가할 전망이다. 특히 AI 최적화 데이터센터의 전력소비는 2030년까지 4배 이상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기존 데이터센터 대비 6배 수준의 전력 소모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AI 데이터센터는 24시간 중단 없는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필수적이므로, 간헐적인 재생에너지보다 안정적인 화석연료나 원자력에 대한 의존이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실제로 미국 데이터센터 전력의 탄소 집약도는 미국 평균보다 48% 높다. 이러한 전력 수요 압박에 대응하여 구글·마이크로소프트·메타 등 주요 빅테크 기업은 에너지 수요를 완화하기 위해 원자력 발전소와의 직접전력구매계약(PPA)을 확대하고 있다. 구글은 소형모듈원자로(SMR) 개발 계약을 통해 2030년부터 50MW 전력을 공급받을 예정이다. 마이크로소프트와 메타는 콘스텔레이션 에너지와의 장기 PPA를 통해 원자력 발전을 확보했다. 이는 원자력과 재생에너지를 결합한 혼합형 PPA의 확산 가능성을 시사하며, 에너지 믹스 논의에 새로운 변화를 줄 것으로 보인다. ◇재생에너지 및 그린 제품 시장의 지속적 성장 글로벌 정책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재생에너지의 보급 속도는 가파르게 증가해 전력 믹스의 핵심 전원으로 자리 잡고 있다. 2023년 기준 태양광의 평균 발전단가(LCOE)는 석탄보다 낮은 수준에 도달했으며, 2024년 신규 전원 중 재생에너지 비중은 92.5%에 달했다. 민간 이니셔티브인 RE100(재생에너지 100%)은 2023~2025년 동안 회원사가 450개사로 증가하는 등 순항 중이다. 반면 국내 기업에게 RE100은 중요한 수출 규제로 인식되고 있다. 또한, 재생에너지와 그린수소 등을 기반으로 하는 '그린 철강' 시장은 2024년 약 37억5000만 달러에서 2032년 약 1290억 달러로 연평균 55.6%의 급격한 성장이 예상된다. BMW와 포드 등 주요 자동차 제조사들은 탄소 배출 감소를 위해 그린 철강 공급 계약을 체결하는 등 저탄소 제품 수요를 확대하고 있다. ◇국내 산업 '이중고': 수익성 악화와 정책적 부담 가중 국내 경제는 철강·화학 등 주요 기초 소재 산업은 중국발 공급과잉과 내수 침체, 통상 환경 불확실성으로 경영상 위기에 직면했다. 지난해 주요 소재 산업의 영업이익률은 2010년 이후 최저 수준을 기록하며 제조업 평균(5.6%)을 하회하고 있다(예: 석유화학 2.2%, 철강 4.0%). 이러한 심각한 업황 부진은 향후 저탄소 전환을 위한 주력 산업의 투자 여력을 제한하는 구조적 문제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더욱이 환경규제 강화에 따른 전력비 등 생산비 인상 부담을 가격 결정력이 약한 소재 기업들이 떠안으면서 수익성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실제로 산업용 전기요금은 1961년 통계 작성 이래 처음으로 주택용을 추월했는데, 일부 전력 다소비 업종에서는 국내 생산 중단 사례까지 발생하고 있다. 여기에 최근 확정된 2035 NDC 목표(2018년 대비 최대 61% 감축)로 인해 산업 부문의 실질적 감축 부담은 기존 대비 3배 이상으로 높아질 전망이다. 또한, 배출권거래제(ETS) 제4차 계획기간(2026~2030년)에는 기업의 감축 의무와 비용 부담이 눈에 띄게 강화될 예정이다. 특히 발전 부문의 유상할당 비율이 현재 15%에서 2030년 50%로 증가하면서 전력 요금 추가 인상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경기 침체로 수익이 축소된 상황에서 전환 투자비용과 배출권 구매 비용이 동시에 발생하면서 기업 부담은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 '전환 역량' 강화 통한 추월 기회 확보해야 보고서는 국내 주력산업의 위기를 극복하고 미래 저탄소 시장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선제적 산업전략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첫째, 탄소중립 이행을 성장 동력으로 전환하는 산업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를 위해 연구개발(R&D) 체계를 혁신하고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현재 개발이 지연되거나 중단된 탄소중립 100대 핵심기술 목록을 새로 짜고, 철저히 이행 관리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특히 장기·고난도 혁신 기술은 '국가전략기술'로 지정해 시설투자 및 R&D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를 대폭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기후대응기금의 안정적 재원 기반 구축이 시급하다. 이를 위해 배출권 경매 수입 증가분의 재투자를 확대하고 환경부담금 체계도 다시 설계해야 한다. 이에 앞서 탄소(배출권) 가격의 정상화부터 이뤄져야 한다. 셋째, 고배출 산업의 저탄소 전환을 촉진하기 위한 전환금융(transition finance)을 조속히 도입해야 한다. 고배출 산업의 업종별 전환경로(decarbonisation pathways) 로드맵을 선제적으로 수립하고, 이를 근거로 과학적 기반의 전환금융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투자 실행력과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 또한, 민간 금융기관이 전환금융 추진 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공시 상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과도기적 투자의 회계 및 공시 기준을 명확히 정립해야 한다. 넷째, 저탄소 제품 수요 창출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수소환원제철 등 혁신기술의 조기 상용화를 위해 그린 철강 생산 시범사업을 실제 시장 적용으로 확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와 공공기관의 인프라 사업에 그린 철강 사용을 일정 비율 의무화하거나, 민간기업 채택 시 차액계약(CfD) 제도를 시범 도입해 초기 수요를 창출하고, 생산비용 격차를 보조하는 방안도 검토돼야 한다. 현재 전체 공공조달 규모 대비 2%에 불과한 녹색 공공조달 제도의 성과지표를 개선, 실질적인 녹색제품 수요를 견인할 필요가 있다. ◇균형 잡힌 무탄소 에너지 전환 믹스 실현 에너지 전환 정책은 에너지 안보, 탄소중립, 계통 안정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균형감 있는 무탄소 전원 믹스(mix)를 실현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보고서는 강조했다. 보고서는 “에너지시스템의 탈탄소화와 에너지 안보 확보를 위해서는 특정 에너지원을 배제하는 전원믹스와 에너지정책은 지양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태양광·풍력의 간헐성 등 물리적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SMR을 포함해 수소발전, 탄소포집활용저장(CCUS) 등 모든 무탄소 전원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해상풍력 등 재생에너지의 높은 발전비용(LCOE)을 낮추기 위해서는 인허가 절차를 단순화하고, 지역공유형 비즈니스모델을 도입해 주민 수용성을 강화해야 한다. 또한, 내수 시장 기반의 국산화 및 규모의 경제 확보를 통해 장기적으로 발전단가를 하락시키고, 에너지고속도로(HVDC, 해저케이블) 구축을 조기 달성해 수급 불균형과 송전 제약을 해소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인공지능(AI) 확산과 탄소중립 전력화에 따라 전력 수요가 크게 확대될 것에 대비해 산업 부문 에너지 효율 개선 제도 확대 및 고도화 노력도 병행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미래지식융합학회, 추계학술대회서 ‘지속가능한 미래’ 논의

사단법인 미래지식융합학회가 22일 충북대학교에서 '지속가능한 미래사회를 위한 지식융합의 혁신'을 주제로 추계학술대회를 개최했다. 기조연설을 맡은 김연준 기후회복실천문화원 원장은 '기후위기 시대, 사랑의 적분'을 주제로 강연했다. 김 원장은 “자연과 어울려 사는 데 지혜나 정서가 부족한 '생태맹(生態盲)'이 아닌지 스스로를 점검해야한다"며 “환경 감수성을 키우고, 가까운 곳에서부터 탄소 중립을 실천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날 발표 세션에서는 인공지능(AI) 기반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 AI 서비스 로봇의 활용, 스마트 물류 자동화 시스템 등을 집중 조명했다. 이지훈 미래지식융합학회 학회장은 “지식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인문학과 과학기술, 예술과 데이터, 인간과 인공지능이 하나로 융합되는 시대에 우리는 그 변화의 중심에서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다"며 “이번 추계학술대회는 '지속가능한 미래사회를 위한 지식융합의 혁신'을 주제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통섭적 시각을 나누고 지식을 재구성하는 뜻깊은 장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정희순 기자 hsjung@ekn.kr

[주말 날씨] 기온 오르며 포근…강원 산지 강풍·건조 산불 위험

이번 주말에는 기온이 일시적으로 오르며 비교적 따뜻한 날씨가 이어질 전망이다. 다만 강원 산지를 중심으로 대기가 건조해져 산불 위험이 커질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20일 기상청 예보브리핑에 따르면 서울 지역의 오는 22~24일 예상 기온은 각각 3~15℃(도), 5~15도, 8~14도로, 낮 최고기온이 15도까지 오르며 따뜻한 날씨가 예상된다. 이동성 고기압의 영향으로 주말 동안 기온은 완만하게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 주말까지 서풍이 이어지면서 동쪽 지역의 건조도는 더욱 심해질 전망이다. 특히 강원 산지·동해안·경북 북동 산지는 강풍과 건조가 겹치며 작은 불씨도 크게 번질 수 있어 산불 예방이 필요하다. 지난 18일에는 시베리아 대륙고기압이 남하하면서 북서풍을 타고 찬 공기가 유입돼 기온이 크게 떨어졌다. 이후 고기압이 다소 남쪽으로 이동하면서 20에는 서풍 계열의 바람이 불었고, 낮에는 기온이 오르는 반면 밤에는 복사냉각으로 일교차가 크게 벌어졌다. 상공의 대기 흐름도 동서 방향으로 원활해지면서 주말까지는 찬 공기의 강한 남하가 없고, 고기압의 영향으로 뚜렷한 강수도 예상되지 않는다. 20일 새벽부터는 강화된 서풍의 영향으로 눈구름대가 국내로 유입되며 전국적으로 구름이 많았다. 오후에는 저기압이 동해상으로 빠져나가고 그 앞쪽에서 서풍이 더욱 강해지면서, 강원 내륙과 산지에는 오후부터 저녁 사이 눈이 날릴 가능성이 있다. 일부 도로에는 살얼음이 생길 수 있어 교통 안전에도 유의해야 한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EE칼럼] 다시 생각해 보는 지속가능발전

우리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정책이 급변하고 있다. 국무회의에서 2018년 대비 2035년의 온실가스 감축량을 53~61% 범위로 정했다. COP30에서 한국은 탈탄소 클럽에 가입했다. 2040년까지 탈석탄을 마쳐야 한다. 세계 5대 석탄 수입국 중 처음이며 싱가포르를 제외한 아시아 국가 중에서도 처음이다. 우리나라는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라 가동 중인 61기 석탄발전소 중 40기를 2038년까지 폐지하려고 한다. 이제 나머지 21기도 2040년까지 조기 폐쇄한다는 것이다.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는 이러한 석탄발전소 폐지 계획이 담길 것으로 전망된다. 21세기 초반 전 세계를 뒤흔드는 가장 큰 화두 중 하나는 지속가능발전(Sustainable Development)이다. 지속가능발전은 유엔 산하 국제기구 '환경과 개발에 대한 세계위원회(일명 브룬트란트 위원회)'가 1987년 유엔 총회에서 발표한 '우리 모두의 미래'라는 보고서 제2장에 처음 등장한 개념이다. 이에 따르면 지속가능발전이란 미래 세대가 당면한 필요를 해결하기 위한 능력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현세대의 필요를 해결해 나가는 발전방식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이 보고서는 '필요'의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로 가난의 극복을 들고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 현재와 미래의 필요를 해결하기 위한 기술과 사회제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지속가능발전이란 단어는 인류의 미래를 위해 환경을 보호하는 가장 핵심적인 표어와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많은 전문가가 이 개념을 구체화하기 위한 다양한 논의를 제기하였다. 20년 전인 2005년에 학술지 '환경(Environment)'에 “지속가능발전이란 무엇인가?"란 논문이 게재되었다. 이 논문은 1987년 이후 그때까지 여러 분야에서 인용된 이 단어의 의미와 활용 그리고 구체적 논의에 대해 방대한 문헌을 조사하였다. 이 논문은 “지속가능발전이란 개념은 환경 잡지, 872만 개 웹페이지의 대표적인 타이틀 개념으로 인용되었고 수많은 프로그램, 장소, 기관의 목표로 쓰였으며, 문장을 아름답게 끝맺는 용어로 손쉽게 사용되었으나 그 정의는 '창의적'으로 모호하다."고 평하고 있다. 그만큼 지속가능발전이란 말은 인용하기에 가장 그럴싸한 단어이지만 그 내용은 구체성이 없다는 것이다. 유엔을 중심으로 국제적인 에너지전환 논의가 이루어져 국가적 목표를 제시하기로 2015년 파리협정이 타결되었다. 여기에 2018년 IPCC 보고서가 경각심을 제기한 이래로 1.5℃로 기온상승을 제한하자는 새로운 목표가 제시되었고 이에 따라 우리나라를 비롯한 일부 국가가 NDC를 공격적으로 제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COVID-19가 불러온 세계적인 불경기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나타난 유럽과 전 세계의 에너지 가격 상승은 '환경'보다 '성장'에 대한 관심을 불러들였다. 여기에 두 번째 등장한 트럼프는 취임 후 즉시 파리협정에서 탈퇴하여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국제적 공조를 무력화시키고 있다. 게다가 세계 최대의 시장 미국이 사실상 전 세계를 상대로 한 관세전쟁을 불붙이는 바람에 각국은 자국의 경제적 이해가 더 시급한 관심사가 되고 있다. 오늘도 수많은 환경론자, 경제학자, 정치가, 사업가들이 자신들이 내세우는 주장과 이론과 정치적 슬로건과 상품을 지속가능발전이란 개념으로 장식하고 있다. 지속가능발전이란 아주 단순해 보이지만 사실 매우 어려운 목표를 쉽게 포장한 말이다. 성장을 유지하면서도 환경을 지키자는 말이면서 현실성과 당위성의 균형을 유지하자는 의미이다. 운전으로 비유하자면 당장 놓지 말아야 할 운전대에 집중하면서도 내일까지 가야 할 목적지를 내비에 잘 찍어놔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가 찍어 놓은 목적지가 지도상에 존재하는지, 거기에까지 이르는 길이 있는지, 우리가 운전하는 차량으로 갈 수 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이처럼 지속가능발전은 현재와 미래 그리고 우리 인류에 대한 그리고 이 지구라는 행성에 대한 아주 제한된 정보와 불확실성 위에 얹혀 있다. 그리고 우리 모두 처음 가보는 길이다. 아직 가본 나라가 없다. 조성봉

일주일만에 3만명 죽을수도…최악 폭염 시나리오 나왔다

기후 변화가 극심한 폭염 현상의 빈도와 강도를 높이면서, 인류 건강에 심각한 위협을 가하고 있다. 기후변화로 지구 평균 기온이 산업화 이전보다 3°C 상승했을 때 과거 폭염 참사를 빚었던 2003년 여름 유럽의 기상 조건이 나타난다면 어떻게 될까. 기후변화로 인한 기온 상승과 과거의 극한기상이 만난다면 일주일간 3만2000명이 초과 사망할 수도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런 상황이 예상되지만 현재의 적응 전략으로는 대규모 인명 피해를 막기 역부족이라는 진단도 나온다. 근본적인 온난화 완화와 새로운 대비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미국 스탠퍼드대학 연구팀은 최근 '네이처 기후변화(Nature Climate Change)'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지구 기온이 이미 상승한 상태에서 과거 유럽을 강타했던 치명적인 기상 패턴이 다시 발생할 경우, 그때보다 훨씬 큰 규모의 인명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 과거 폭염 재현 시 피해는 얼마나 커지는가? 기후 위험 분석과 적응 계획에 있어 예외적인 극한 폭염 사태의 잠재적 사망자 규모를 정확히 예측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에 연구팀은 기계 학습 기반 예측 모델을 사용해 과거 유럽의 5가지 역사적인 폭염 사례를 현재 또는 미래의 지구 온도 조건에 대입해 대규모 사망을 초래할 잠재적 위험을 정량화했다. 특히, 가장 충격적인 결과는 2003년 8월 유럽을 덮쳤던 바로 그 기상 조건이 현재나 가까운 미래에 재현될 경우 나타났다. 2003년 6~8월 유럽은 이례적으로 강한 고기압이 장기간 정체하면서 폭염이 지속됐다. 열이 밤새 식지 않는 고온 현상과 극심한 가뭄이 겹치며 환경·보건 시스템이 동시에 압박받았다.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유럽 전역에서 약 3만~5만 명의 초과 사망이 발생했는데, 에어컨 보급률 부족, 노인·만성질환자 등 취약계층의 고립, 오존 등 대기오염 악화가 피해를 키운 주요 원인으로 지적됐다. 지구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 대비 1.5°C 상승한 조건에서 만약 2003년 8월의 기상 조건이 다시 발생한다면, 유럽 전역에서 단 일주일 만에 1만7800명의 초과 사망자가 발생할 것으로 예측됐다. 지구 평균기온이 3°C 상승한 환경에서 2003년 8월 상황이 재현될 경우 초과 사망자 수는 3만2000명으로 급증할 것으로 예상됐다. 이러한 사망자 수는 유럽의 코로나19 팬데믹 최고치 기간의 사망자 수와 맞먹는 수준이다. 3°C 상승 환경에서 재현돼 3만2000명이 사망한다고 했을 때 이 중 2만3000명은 지구 온난화로 인한 추가 사망자로 분류된다. 이는 전체 사망자 수의 72%가 인위적인 온난화의 책임임을 시사한다. 연구팀은 “이러한 '조건부 접근 방식(storylines)'이 개별적인 극단적 사건이 미래 기후 변화 하에서 얼마나 극심할 수 있는지 탐색할 수 있게 한다"면서 “이는 현실적인 기상 시스템을 기반으로 분석됐기 때문에 신뢰할 수 있는 극단적 시나리오를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어떻게 막고 대비해야 할 것인가? 극심한 폭염 사태는 높은 기온 자체뿐만 아니라, 대규모 대기 고기압 시스템과 건조한 토양이 상호작용해 열 축적을 증폭시키는 물리적 요인과, 고온 노출에 대한 인체의 생리적 반응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한다. 이번 연구 결과는 추가적인 지구 온난화를 완화하는 것이 폭염 사망률을 줄이는 데 필수적임을 시사한다. 온난화가 극심한 인명 피해의 주된 원인이기 때문에, 근본적인 기후 변화 완화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는 것이다. 온난화를 사전에 예방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셈이다. 문제는 현재까지 유럽 전역에서 다양한 기후 적응 노력이 진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사망 사건을 실질적으로 줄이는 데는 미흡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미래 적응을 고려했을 때 폭염 기간 동안의 최고 사망률은 평균적으로 단 10%만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3°C 상승 환경에서 2003년 조건으로 인한 최고 사망자 수는 적응을 고려하지 않았을 때 3만2000명이었으나, 추가 적응을 허용했을 때도 여전히 2만8800명(95% 신뢰 구간 2만1300~3만6200)으로 높게 예측됐다. 연구팀은 “기존 적응 대책으로는 극한 기후 사건의 사망률 영향을 줄이는 데 한계가 있는 만큼 보건시스템의 확충 등 새롭고 효과적인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폭염이 보건 및 응급 서비스를 한계를 넘어설 정도로 압박할 수 있으므로, 병원 과밀 및 의료 시스템의 대응 능력을 평균적인 예측이 아닌 가장 있을 법한 극한 시나리오에 맞춰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럽만 문제인가 - 한국은? 스탠퍼드대학의 논문에서는 다른 지역보다 고온 현상이 빠르게 증가하는 유럽 상황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한국이나 아시아에 대한 구체적인 예측이나 분석 내용은 없다. 하지만 이번 연구 결과는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에도 참고할 만한 중요한 교훈을 제시한다. 우선, 미래의 극한 시나리오에 맞춰 대비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특정 지역의 과거에 치명적이었던 기상 패턴이 지구 온난화 환경에서 재현될 경우, 기존 피해 규모를 훨씬 초과하는 대규모 인명 피해(mass mortality)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한국도 가장 극심한 기상 조건(예: 1994년 7월 조건이나 2018년 8월 조건 등)을 가정한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 둘째는 적응 전략의 재검토다. 온도가 상승하는 지역에서 관찰되는 기존의 적응(예: 에어컨 설치, 행동 변화)은 극한 폭염의 사망률을 완전히 상쇄하지 못할 수 있다. 한국 역시 현재 시행 중인 폭염 대책 외에, 극한 상황에서도 작동하는 혁신적이고 새로운 공중 보건 및 의료 시스템 대응 전략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셋째, 온난화 완화의 시급성이다. 극한 폭염으로 인한 사망률의 상당 부분(70~80%)이 인위적인 온난화 탓에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지역적인 적응 노력과 함께 지구 온난화를 줄이는 근본적인 노력이 가장 강력한 예방책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 연구팀은 “지구 온도가 안정화되더라도, 극한 폭염의 위협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고, 이런 위협을 줄이기 위해서는 상당하고 새로운 적응 조치가 요구된다"고 결론지었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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