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울 원전 “국내 전력 10% 책임…K-원전 수출 확대”

경상북도 울진에서 현재 가동 중인 신한울 1·2호기의 국내 발전량 비중은 각각 1.5%, 총 3%를 차지한다. 2024년 기준 신한울 1호기가 연간 생산한 8800GWh(기가와트아워) 전력은 서울 전체 전력 소요량의 18%에 해당한다. 오는 2033년 10월 준공을 목표로 짓고 있는 신한울 3·4호기 발전량은 각 3.4%, 총 6.8%로 예상된다. 신한울 3·4호기 가동 시에는 연간 2만358GWh 생산이 가능해 서울 전력 소요량의 40%, 총 484만 가구에 안정적 전력 수급이 가능할 전망이다. 울진의 신한울 원전 4기가 국내 전체 전력의 10% 가량을 책임지고 있는 셈이다. 최근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산업 육성으로 예상되는 전력 수요 급증에 대비해 신한울 1~4호기가 주목받는 이유다. 중동전쟁 이후 국제 에너지 가격 폭등, 공급망 수급 불안에 따라 전력시장의 불확실성도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안정적이면서도 비용 경쟁력을 갖춘 원전이 중돌발 에너지 리스크를 줄임과 동시에 에너지 안보, 한국형 'K-원전' 수출 확대에도 기여하는 국가 에너지원으로 꼽히고 있다. 신한울 원전은 독보적 국내 기술로 지어진 1400MW(메가와트)급 신형경수로(APR1400)다. 운영 기간은 60년으로 기존 원전(40년)보다 수명이 20년 늘어났다. 지진에 대비, 내진 성능도 기존 0.2g(규모 6.5)에서 0.3g(규모 7) 수준으로 대폭 강화됐다. 특히, 제3세대 신형원자로로 꼽히는 신한울 1·2호기는 아랍에미리트(UAE) 수출 노형(원자로 또는 용광로의 형태)과 같다. UAE 바라카 원전, 이집트 수주 계약 체결 등 세계 6번째 원전 수출국이 된 우리나라가 추가로 해외 원전 수출을 추진 중인 모델이다. APR1400 국산 원전 건설·운영 경험을 통해 오는 2030년까지 원전 10기 수출이란 목표 달성에도 청신호가 켜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14일 본지는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운영·관리 중인 울진의 신한울 원전을 찾았다. '가급' 국가 보안시설인 원전은 출입 절차부터 까다로웠다. 사전에 출입 허가를 받았지만, 삼엄한 경계 속에 여러 번의 신분 확인을 거쳐 내부에 들어갈 수 있었다. 휴대폰, 노트북 등 전자기기도 차량에 두고 나와야 했다. 신한울 1·2호기는 지난 2010년 착공에 들어가 2024년 4월부터 운영에 들어갔다. 원자로 건물높이만 76.66m, 아파트 27층 높이로 시선을 압도했다. 김종인 한수원 차장은 “돔 구조로 굵은 철근을 동그랗게 빙 둘러 묶어 강한 압력을 형성시킨 뒤 콘크리트를 타설했다"며 “내부 기압을 외부보다 낮게 유지해, 방사성 물질이 밖으로 새 나가지 못하고 외부 공기가 안으로만 빨려 들어가게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신한울 1·2호기에 투입된 철근은 10만3000t, 63빌딩에 쓰인 양의 13배 많다. 신한울 원전의 외벽 두께는 122cm, 주증기 배관 등은 195cm에 달했다. 20~30cm 아파트 외벽과 비교해도 4~5배 이상 두껍다. 실제로 미국에서 원전 외벽과 같은 조건의 실험으로 27t의 팬텀기를 시속 800km 속도로 충돌한 결과, 비행기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됐지만 콘크리트 외벽은 5cm 정도 손상에 그쳤다. 발전소 내벽을 덮은 상아색의 특수 방호도장은 물과 불, 방사선으로부터 구조물을 보호하는 구조로 돼 있었다. 화재에 대비한 붉은색의 방화설비 배관들도 눈길을 끌었다. 비상 발전기 등 핵심 설비는 지상에 위치하고, 방수문까지 버티고 있어 침수 우려도 없다는 게 한수원 설명이다. 김 차장은 “일본 후쿠시마 원전의 경우 쓰나미로 지하에 있던 비상 발전기가 침수됐다"며 “당시 핵연료 냉각에 실패해 수소가 폭발했던 사고와는 전혀 다른 구조"라고 강조했다. 신한울 원전을 총괄 통제·관리하며 비행기 조종석 역할을 하는 주제어실은 '원전의 두뇌'라 불린다. 총 6개조가 3교대로 근무하는 구조다. 주제어실 근무자들은 햇빛 한 줄기 들지 않는 공간에서 실시간 발전소 상태를 모니터링하고 있었다. 자리를 비울 수 없어 식사도 배달시켜 먹는다고 했다. 주제어실 제어 설비는 발전소의 안전을 위해 삼중으로 설계돼 있다. 전체 제어 설비는 디지털이지만, 아날로그 보드판도 정착돼 있다. 디지털 제어반이 고장났을 때 백업할 수 있는 설비다. '원전정지 제어실'은 근로자들의 상주가 불가능한 상황에 대비해 발전소를 안전한 상태로 정지하고 유지하기 위한 공간이다. 일반인들 눈에 띄지 않는 은밀한 곳에 위치해 있다. 황민호 신한울 운영실장은 “근무시간 내내 긴장의 연속으로 퇴근 후에도 회사에서 전화 오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며 “국가 에너지 공급이라는 임무의 무게로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터빈룸은 전기가 생산되는, 발전소의 최종 단계다. 물이 핵연료 사이를 지나 데워지고, 데워진 물이 증기발생기에서 열교환한 뒤 증기가 돼 들어오는 구조다. 내부는 한겨울에도 40℃를 웃돈다. 터빈룸으로 들어온 고압, 고온의 증기는 고압터빈, 저압터빈의 날개를 분당 약 1800회 돌린다. 이어 터빈에 연결된 발전기에서 전기가 생산된다. 푸른색 물이 반짝이는 수조에는 사용후핵연료가 보관돼 있다. 물이 방사선을 막는 가장 훌륭한 차폐체 역할을 해 수조에 보관하는 것이다. 원전은 18개월에 한 번씩 계획예방정비를 한다. 이때 사용한 연료의 1/3을 사용후핵연료저장조로 옮기고 신 연료로 교체한다. 신한울 3·4호기 건설 현장에서는 덤프트럭이 쉴 새 없이 토사를 실어 나르고, 거대 크레인이 구조물을 들어올리고 있었다. 공사장 면적은 140만 제곱미터. 월드컵 경기장 197개를 합친 규모다. 신한울 3호기는 원자로 격납건물 철판을 설치하는 공정이 진행 중이다. 4호기는 최초 콘크리트 타설을 앞두고 원자로 건물 기초 지반을 다지고 있다. 바다 쪽으로는 해안선을 건드리지 않고 해저 터널을 뚫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냉각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 바다 깊은 곳에서 차가운 물을 끌어오고, 데워진 물은 다시 심해로 돌려 보내는 구조다. 지난 2023년 6월 공사에 착수한 신한울 3·4호기의 종합 공정률은 올해 4월 말 기준 29.8%다. 오는 2033년 10월 준공이 목표다. 총사업비 12조3000억원이 투입된 거대 국가 프로젝트다. 문재인 정부 들어 '탈원전' 정책에 따라 사업이 중단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신한울 3·4호기 건설사업은 지난 2016년 1월 한수원이 건설 허가를 신청하면서 본격 시작됐다. 하지만, 2017년 10월 에너지전환 로드맵이 국무회의를 통과하면서 사업이 중단됐다. 이후, 2022년 7월 윤석열 정부 들어 새정부 에너지정책에 따라 사업이 재개됐다.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반영되면서 건설 사업은 속도감 있게 진행 중이다. 신한울 1·2호기에 3·4호기가 추가로 건설되면 울진은 한울 원전 6기 포함, 대형 원전 10기가 밀집한 최대 원전단지가 된다. 한수원에 따르면, 국내 원전은 총 26기, 이 가운데 15기가 가동 중이고, 10기는 정비가 진행되고 있다. 에너지원별 발전 비중은 2024년 기준, 원전이 31.7%, 석탄과 액화천연가스(LNG)가 각각 28.07%를 차지한다. 원전 10기가 멈춰 서면서 원전 이용률은 현재 60%대에 머물러 있다. 정부는 원전 이용률을 향후 80%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아울러, 정부와 한수원은 원전 수출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UAE 바라카 원전, 체코 두코바니 원전 수주에 이어 베트남 등에도 신규 원전 수출을 진행 중이다. 신한울 공사 현장에 붙어 있는 '최고의 안전! 신뢰의 K-원전'이란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황희진 한수원 공사관리부장은 “우리가 짓는 것은 단순한 발전소가 아니다"며 “세계가 우러러보는 가장 안전한 원전, 'K-원전'이라는 책임감으로 대한민국의 국격을 높이겠다"고 말했다. 원승일 기자 won@ekn.kr

시민이 직접 만드는 기후정책…‘기후시민회의’ 공식 출범

그동안 전문가들 위주로 구성됐던 대통령 직속 국가기후위기대응위원회에 시민 참여가 확대된다. 국가기후위기대응위원회는 지난 16일 서울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기후 공론 상설기구인 '기후시민회의' 발대식을 개최했다. 지난 3월 기후시민회의를 신설하는 내용을 담은 탄소중립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됐다. 기후시민회의는 국가 온실가스감축목표(NDC) 수립 등 주요 정책 결정 과정에 공동으로 참여하게 된다. 또한 시민들이 직접 기후위기 대응 정책을 제안하는 장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동안 기후위원회가 전문가 중심으로 운영돼왔다는 점에서 시민 참여 확대는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이번 발대식을 시작으로 올해 말까지 활동할 시민참여단은 대표성과 포용성을 확보하기 위해 10대 청소년, 장애인, 고령자, 다문화가정 구성원 등 시민 220명으로 꾸려졌다. 이를 통해 미래세대를 포함한 다양한 사회 구성원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할 예정이다. 기후위원회는 시민참여단 구성원을 주기적으로 교체해 더 많은 시민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기후시민회의 시민참여단은 발대식을 시작으로 생활밀착형 기후정책 전반에 대한 전문가 교육을 받고, 의제 선정과 토론·숙의, 정책 제안 활동 등에 참여한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기후시민회의는 시민이 정책의 대상이 아니라 정책 형성과 실행의 주체로 직접 참여하는 새로운 기후 거버넌스 모델"이라며 “다양한 시민의 경험과 의견이 실제 기후정책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실효성 있는 숙의 체계를 운영하고, 그 결과가 정부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환경포커스] 대기오염이 곤충의 사랑 신호를 지운다

인간이 배출한 대기오염 물질이 곤충들의 '사랑의 언어'를 방해하고, 그 결과로 생태계 붕괴와 식량 부족에 이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영국 생태·수문학센터의 벤 랭포드 박사와 독일 막스 플랑크 화학연구소의 조너선 윌리엄스 교수, 프랑스 투르대학교의 제롬 카사스 교수 등이 참여한 국제 공동연구팀은 최근 국제학술지 '커뮤니케이션스 지구와 환경(Communications Earth & Environment)'에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논문을 발표했다. 이번 연구는 특히 산업화 이후 증가한 대기오염이 곤충의 화학적 의사소통 체계를 어떻게 무너뜨리는지를 정량적으로 분석했다. 연구진은 곤충이 사용하는 성 페로몬(pheromone)과 알람 페로몬이 대기 중에서 얼마나 오래 살아남는지, 또 오염 조건에 따라 어떤 변화를 겪는지를 물리화학 모델로 계산했다. 페로몬은 같은 종의 개체들 사이에서 짝짓기, 경고, 먹이 탐색, 집단 행동 같은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몸 밖으로 분비하는 화학 신호물질을 말한다. 분석 결과, 특히 밤에 활동하는 나방류가 사용하는 성 페로몬의 수명(공기 중에서 신호 역할을 유지하는 시간)이 심하게 오염된 환경에서는 수십 시간에서 단 몇 분 수준으로 크게 줄어들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곤충의 짝짓기 성공률을 급격히 떨어뜨릴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성 페로몬은 더 취약하다 곤충이 위험을 알릴 때 사용하는 알람 페로몬은 대체로 분자량이 작고 휘발성이 높다. 쉽게 증발해 공기 중으로 빠르게 퍼지고, 오염 입자에도 잘 달라붙지 않는다. 반면 성 페로몬은 대부분 분자량이 크고 휘발성이 낮은 반휘발성 유기화합물(SVOC)이다. 공기 중에 오래 머물며 멀리 퍼져 짝에게 도달해야 하는 만큼 외부 환경 변화에 민감하다. 특히 이중결합을 여러 개 가진 복잡한 구조가 많아 산화 반응으로 쉽게 파괴된다. 연구진은 대기오염이 성 페로몬을 무력화하는 두 가지 메커니즘을 제시했다. ① 산화제가 페로몬을 파괴한다 대기 중에는 강력한 산화제인 오존(O₃), 수산화 라디칼(OH), 질산염 라디칼(NO₃)이 존재한다. 라디칼은 전자를 하나 잃거나 얻어서 매우 불안정한 상태라 다른 분자와 쉽게 반응힌다. 낮에는 OH와 오존이 활발히 작동하지만, 밤이 되면 햇빛이 사라져 OH 생성이 줄어들고 질산염 라디칼이 지배적 산화제로 등장한다. 문제는 많은 성 페로몬이 질산염 라디칼과 매우 빠르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오염이 심한 도시의 밤에는 질산염 라디칼 농도가 청정 지역보다 최대 100배 높아질 수 있다. 이 경우 성 페로몬 분자는 방출 직후 산화돼 구조가 변형되고, 수컷 곤충의 더듬이는 이를 더 이상 짝짓기 신호로 인식하지 못하게 된다. 쉽게 말해 상대에게 보내는 연애 편지가 도착하기도 전에 글자가 번져 읽을 수 없게 되는 셈이다. ② 미세먼지가 신호를 가로챈다 성 페로몬은 원래 기체 상태로 공기 중에 퍼져야 한다. 그런데 대기 중에 미세먼지나 유기 에어로졸이 많으면 페로몬 분자가 이 입자 표면에 흡착되거나 내부로 스며든다. 그러면 더 이상 자유롭게 떠다니는 기체 신호가 아니라 입자 속에 갇힌 비활성 물질이 된다. 곤충의 후각 수용기는 이런 상태의 페로몬을 감지하기 어렵다. 연구 모델에 따르면 고농도 오염 조건(유기 에어로졸 m³당 50 ㎍(마이크로그램, 1㎍=100만분의 1g))에서는 일부 성 페로몬의 60~90%가 에어로졸에 흡수될 수 있다. 즉 신호가 화학적으로 파괴되지 않더라도 전달되기 전에 '납치'당하는 것이다. ◇추운 밤일수록 피해가 커진다 연구진은 특히 기온이 낮은 밤시간대일수록 성 페로몬 신호가 더 빠르게 사라진다는 점에 주목했다. 핵심은 온도가 낮아질수록 화합물의 증기압(vapor pressure)이 떨어진다는 데 있다. 증기압은 물질이 기체 상태로 존재하려는 성질을 뜻하는데, 온도가 내려가면 이 힘이 약해지면서 공기 중에 떠 있으려는 능력이 감소한다. 분자량이 크고 휘발성이 낮은 반휘발성 유기화합물인 성 페로몬은 기온이 조금만 내려가도 기체 상태를 유지하기가 훨씬 어려워진다. 결국 공기 중을 자유롭게 떠다니기보다 주변의 미세먼지나 유기 에어로졸 입자 표면에 달라붙거나 내부로 흡수된다. 일단 입자에 포획되면 곤충의 더듬이가 이를 감지하기 어려워져 사실상 신호 기능을 잃게 된다. 연구팀의 계산에 따르면 밤 기온이 15℃ 이하로 떨어질 경우 성 페로몬의 에어로졸 흡착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졌으며, 특히 5℃의 심한 오염 환경에서는 공기 중에서 유효한 신호로 남아 있는 시간이 90% 이상 줄어들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청정한 환경에서는 수십 시간 동안 유지되던 짝짓기 신호가, 오염되고 차가운 밤에는 불과 몇 분 만에 사실상 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특히 온대 지역의 봄·가을철 밤, 고산지대, 숲 가장자리처럼 기온이 빠르게 떨어지는 지역에서 활동하는 야행성 곤충들이 가장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런 지역은 동시에 도시나 산업지대에서 날아온 미세먼지가 축적되기 쉬운 조건을 갖추고 있어, 차가운 공기와 높은 에어로졸 농도가 겹치며 성 페로몬 교란 효과를 더욱 증폭시킬 수 있다. ◇생태계와 경제에도 큰 파장 이같은 현상은 곤충의 짝짓기 범위를 극적으로 좁힌다. 원래 수 ㎞ 떨어진 상대에게 도달할 수 있었던 신호가 수백 m도 가지 못하고 소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수컷은 암컷의 위치를 찾지 못하고, 암컷이 어렵게 방출한 신호도 허공에서 사라진다. 연구진은 이런 현상이 반복되면 번식 성공률 저하와 개체군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더 큰 문제는 단순히 곤충 몇 종의 번식 실패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곤충은 전 세계 농작물 수분(꽃가루받이)의 상당 부분을 담당한다. 곤충 매개 수분의 경제적 가치는 연간 수천억 달러 규모로 추산된다. 만약 페로몬 교란으로 수분 매개 곤충 개체군이 줄어들면 과일·채소·견과류 생산량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새와 박쥐 등은 화학 신호를 감지해 천척 곤충을 찾아 잡아먹는다. 이 시스템이 붕괴되면 해충 개체 수가 증가하고, 농가는 더 많은 살충제를 사용해야 한다. 이는 생산비 상승과 추가 환경오염이라는 악순환을 초래한다. 더 근본적으로 곤충은 먹이사슬의 기초를 이룬다. 곤충 감소는 새와 박쥐, 양서류 감소로 이어지고 결국 생태계 전체 안정성을 흔들 수 있다. 연구진은 이번 결과를 '인류세의 숨겨진 생태학적 위협'이라고 평가했다. 인류세(人類世, Anthropocene)는 인간 활동이 지구의 기후와 생태계, 지질 환경을 지배적으로 바꿀 만큼 큰 영향을 미치면서 20세기 후반 이후 새로운 지질시대로 접어들었다는 의미다. 연구진은 대기질 개선이 인간 건강뿐 아니라 지구 생태계의 보이지 않는 통신망을 복원하는 일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EE칼럼] 최고가격제의 연착륙을 준비해야

지난 3월 13일부터 시헹한 '석유제품 최고가격제'가 사회 안정에 절대적인 도움이 되고 있다. 최고가격제가 아니었다면 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았을 것이다. 지방선거를 앞둔 정부·여당에게도 최고의 선거 전략이 된 셈이다. 그런데 최고가격제는 공짜도 아니고, 지속가능하지도 않다. 이제는 최고가격제의 연착륙을 걱정할 때다. 언제, 어떻게 종료할 것이고, 정유사에 무작정 떠넘겼던 최고가격제의 사회적 비용을 공정하게 정리할 묘책을 찾아내야 한다. 전 세계 원유 공급량의 20%가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의 봉쇄기 국제 원유 공급망을 강타했다. 휘발유·경유·항공유와 같은 석유제품의 가격이 치솟고, 공급이 불안해졌다. 우리나라 기름값의 기준인 싱가포르 석유 시장에서 휘발유는 배럴당 79.64달러에서 134.28달러로 68.6%나 올랐고, 경유는 배럴당 92.90달러에서 178.67달러로 92.3%나 뛰어버렸다. 미국의 기름값도 예외가 아니다. 휘발유는 35.6%가 올랐고, 경유는 47.1%나 뛰었다. 원유 공급의 70%를 호르무즈 해협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가 받은 충격이 가장 심각하다. 지난 4월의 원유 도입량은 평소의 57%까지 떨어졌다. 그런데도 우리의 기름값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다. 2월 말 리터당 1616원이었던 휘발유가 4월 말에는 1929원으로 19.3% 올랐고, 리터당 1545원이었던 경유가 1918원으로 24.1% 올랐을 뿐이다. 최고가격제가 아니었다면 오늘날 우리는 기름값이 리터당 2000원이 아니라 3000원을 넘어설 것을 걱정하고 있었을 것이다. 석유사업법 제23조에 명시된 최고가격제는 1997년 '유가 자유화'의 과정에서 등장한 제도다. 지금까지 한 번도 시행하지 않았던 낯선 비상조치다. 정부가 시장의 가격 결정 기능을 강제로 정지시키고, 정유사가 주유소에 공급하는 공장도 가격을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극약 처방이다. 최고가격제를 시행하는 정부의 준비가 턱없이 어설펐다. 최고가격을 결정하는 원칙도 없었고, 비상조치의 종료에 대한 고민도 없었다. 역시 석유사업법 23조에 명시된 최고가격제의 '손실 보전 규정'도 충분히 검토하지 않았다. 지난 2달 동안 정유사가 주장하는 '손실'의 규모는 무려 3조1557억 원이나 된다. 등심·갈비와 똑같이 연상품(連商品)인 휘발유·경유의 회계학적 특성을 무시한 '원가'를 들먹일 때가 아니다. 휘발유의 '원가' 논란은 회계사 출신이라고 목청을 높였던 15년 전 최중경 산업부 장관에 의해 확실하게 정리된 일이다. 어설프게 '정제 마진'을 들먹일 때가 아니다. 정유사의 손실 보전은 싱가포르 석유제품 가격(MOPS)을 기준으로 할 수밖에 없다. 애꿎은 '정제 마진'을 들먹일 일이 절대 아니다. 오히려 물가 안정을 위해 엄청난 재정적 불확실성을 기꺼이 감수한 정유사에게 감사해야 하는 형편이다. 최고가격제의 부작용도 심각했다. 소비자가 원유 공급망 붕괴의 심각성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휘발유·경유보다 종량제 봉투의 수급을 더 심각하게 걱정하는 현실은 어처구니없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휘발유·경유의 적극적인 소비 억제에는 실패했다. 정부가 시늉이라도 내고 싶었던 자동차 5부제·2부제도 어정쩡하게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국제 석유시장에서 경유 가격이 휘발유보다 크게 치솟은 것도 걱정이다. 싱가포르 국제 석유시장에서 경유는 휘발유보다 33%나 더 비싸게 거래된다. 미국에서도 경유는 갤런당 5.46달러로 휘발유 4.18달러보다 31%나 더 비싸다. 지난 4월 6일에는 싱가포르 시장에서 경유가 국내보다 1000원 이상의 높은 가격으로 거래되기도 했다. 경유가 싸구려 기름이라는 우리의 낡은 인식은 서둘러 바로잡아야 한다. 이제 유류세로 시장을 왜곡하는 일은 포기해야 한다. 정유사가 부당한 이익을 챙기고 있다는 지적도 조심스러운 것이다. 석유사업법에 따른 60일 치의 원유 재고에서 발생하는 단기적 수익은 치솟은 원유 도입비를 충당하는 용도에 꼭 필요한 것이다. 정부가 원유 2억7300만 배럴과 나프타 210만 톤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추가 수익 덕분이었다. 더욱이 국제 원유가가 떨어질 때는 정유사가 재고에 따른 손실을 떠안아야 한다. 이제 '기름값이 묘하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으로 촉발된 정유산업에 대한 맹목적인 거부감은 청산해야 한다. 최고가격제의 연착륙을 위한 적극적인 준비가 필요하다. 길은 하나뿐이다. 휘발유와 경유의 최고가격을 싱가포르 석유제품 가격(MOPS)에 점진적으로 근접시키는 것이다. 물론 국제 석유제품 가격이 고공 행진을 계속하는 상황에서는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다른 꼼수가 있는 것이 아니다. bienns@ekn.kr

[기후 신호등] ‘다크 데이터’…디지털 쓰레기인가, 숨어있는 자산인가

지금 인류는 역사상 유례없는 '데이터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2025년 한 해 동안 전 세계에서 생성된 데이터의 양은 약 180 제타바이트, 즉 180조 기가바이트(GB)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1GB 영화 180조 편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양이다. 이 거대한 데이터 경제의 이면에는 거의 주목받지 못한 또 하나의 위기가 자리 잡고 있다. 바로 활용되지 않은 채 방치되고 있는 데이터, 즉 '다크 데이터(Dark Data, 암흑 데이터)'다. 지난해 여름 디지털 임팩트 얼라이언스(DIAL)의 지원을 받은 연구자인 헤더 오픈쇼는 “인공지능(AI) 시대에 정부의 다크 데이터에 불을 밝히다"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서 오픈쇼는 정부와 공공기관이 수집한 데이터의 절반 이상, 많게는 75%까지가 실제로는 분석되지 않은 채 저장만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크 데이터의 실체 오픈쇼는 이 보고서에서 다크 데이터 문제를 단순한 비효율의 문제가 아니라, 환경·경제·안보·인권을 동시에 위협하는 복합적 구조의 위기로 규정하기도 했다. 다크 데이터는 조직이 일상적인 업무 과정에서 수집하고 저장했지만, 다른 목적이나 의사결정에 활용되지 않는 정보 자산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서버 로그, 이메일 첨부파일, 센서 데이터, 오래된 문서, 메타데이터 등이 포함된다. 보고서는 이러한 데이터를 화려한 전시실 아래 먼지와 거미줄로 가득 차 정작 무엇이 들어있는지조차 모르는 '지하 수장고'에 비유한다. 겉으로는 체계적으로 운영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무엇이 들어 있는지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않은 상태라는 것이다. 특히 오늘날 데이터의 약 80%가 영상, 음성, 문서 등 비정형 데이터로 구성돼 있어 분석 자체가 쉽지 않다. 이로 인해 데이터는 축적되지만, 실제로 활용되는 비율은 매우 낮은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데이터도 탄소를 배출한다 다크 데이터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환경 비용이다. 지난 2월 영국 노섬브리아대학교 컴퓨터과학부 앨런 고드프리 교수팀이 국제 학술지 'npj 디지털 의학(Digital Medicine)' 에 발표한 논문 '눈에 보이지 않는 의료 분야 디지털 폐기물 문제 해결'은 데이터 저장이 실제 탄소 배출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정량적으로 제시했다. 이 연구에 따르면, 100 테라바이트(TB)의 불필요한 데이터를 1년간 데이터센터에 저장할 경우 약 4000kg의 CO₂가 발생한다. 이러한 배출은 단순 저장만으로도 발생한다. 데이터는 저장되는 동안에도 지속적으로 전력 공급, 백업, 냉각 과정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혹시 몰라서' 지우지 않는 이메일 첨부 파일 하나, 의미 없는 로그 데이터 하나가 실시간으로 지구 온난화를 가속하고 있는 셈이다. 현재 데이터센터는 전 세계 전력 소비의 약 3%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 전력의 상당 부분은 여전히 화석연료에 의존하고 있다. 결국 다크 데이터는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지속적으로 탄소를 배출하는 '디지털 오염원'이라고 할 수 있다. 고드프리 교수팀의 논문에 따르면 데이터가 과도하게 축적될 경우 △검색 속도 저하 △백업 및 복구 시간 증가 △시스템 복잡성 증가 △유지 비용 상승 등의 문제가 발생한다. 특히 오래된 데이터와 사용되지 않는 애플리케이션은 최신 보안 체계를 적용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해킹 위험이 높다. 즉, 다크 데이터는 단순히 “쓸모없는 파일"이 아니라, 비용을 지속적으로 발생시키면서 동시에 위험을 키우는 구조적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국가 안보와 인권 위협: '모르는 데이터'의 위험 다크 데이터 문제는 기술이나 비용의 차원을 넘어 국가 안보와 인권 문제로 확장된다. 오픈쇼의 보고서는 정부가 자신이 보유한 데이터의 범위와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할 경우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민감 정보 노출 △정책 오류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특히 문제는 AI와 결합될 때 더욱 심각해진다.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지만,편향되거나 오래되고 불완전한 데이터를 학습할 경우 잘못된 판단을 강화할 수 있다. 보고서는 다크 데이터 관리가 부실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치명적인 위협 사례들을 제시했다. 방글라데시 정보국(NTMC)은 설정 오류로 인해 시민들의 성명, 생년월일, 과거 시험 결과는 물론 휴대전화 복제나 추적에 악용될 수 있는 메타데이터까지 담긴 거대 데이터베이스를 인터넷에 노출시켰다. 2024년 터키 정부에서 유출된 300만 명 이상의 시리아 난민 개인정보는 인신매매 집단 등에 악용될 우려를 낳았다. 가자지구 전쟁 이전부터 이스라엘의 감시 시스템 '레드 울프(Red Wolf)'는 팔레스타인 인구의 생체 인식 데이터를 수집해 이동을 제한하는 데 활용됐다. 이는 다크 데이터가 국가 권력에 의해 어떻게 인권 침해의 도구로 변질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강력한 경고다. 이들 사례는 “자신이 가진 데이터를 모르면 책임질 필요도 없다"는 안일한 인식이 국가적 재난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다크 데이터는 관리되지 않을 경우 보안 취약점이자 동시에 인권 침해의 잠재적 도구로 작동할 수 있다. ◇다크 데이터의 잠재적 가치도 흥미로운 점은 다크 데이터가 위험인 동시에 엄청난 기회를 제공한다는 사실이다. 창출되는 공익적 가치도 어마어마하다. 2002년 브라질은 5000개 이상의 지자체에 흩어져 방치되어 있던 데이터베이스를 통합했는데, 이를 통해 사회 복지 혜택에서 누락된 취약 계층을 찾아냈고, 현금 지원 프로그램의 효율성을 획기적으로 높였다. 아프리카 우간다에서는 머신러닝을 활용해 과거에는 쓸모없다고 여겨졌던 야간 위성 이미지를 분석했다. 이를 통해 마을의 전력 공급 여부와 경제 성장 사이의 상관관계를 입증하고, 효율적인 지역 개발 전략을 수립할 수 있었다. 경제성장에 보탬이 된 것이다. 케냐에서는 기존 금융권에서 소외됐던 사람들의 휴대전화 사용 패턴(다크 데이터)으로 신용도를 평가하는 핀테크 혁신을 통해 수혜자들의 월평균 소득이 21% 증가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다크 데이터는 '위험한 폐기물'이 아니라 '관리되지 않은 자산'이라는 말이다. ◇왜 관리가 어려운가: 구조적 한계 그렇다면 왜 다크 데이터는 계속 쌓이기만 할까. 데이터 관리의 어려움은 단순히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과 '조직'의 복합적인 문제다. 오픈쇼의 보고서는 세 가지 구조적 원인을 제시한다. 첫째, 데이터 표준화가 안 돼 있다. 부처와 기관마다 서로 다른 형식으로 데이터를 저장하기 때문에 통합과 분석이 어렵다. 둘째, 기술과 인력이 부족하다. 특히 저소득 및 중소득 국가에서는 데이터 분석 인력과 인프라가 부족해 데이터를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셋째, 법과 정책이 갖춰지지 않았다. 데이터 보호와 활용에 대한 규정이 일관되지 않아 책임 있는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 이 세 가지 요인이 결합되면서 데이터는 계속 생성되지만 활용되지 않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디지털 위생'과 데이터 거버넌스가 필요 전문가들은 다크 데이터 문제 해결을 위해 기술적 접근과 제도적 접근이 동시에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① 데이터 생애주기 관리: 데이터는 생성부터 삭제까지 전 과정을 관리해야 한다. 특히, 일정 기간 격리 저장(Quarantine), 검토 기간 설정을 통해 안전하게 데이터를 삭제할 것을 논문은 권고한다. 이른바 '디지털 위생'의 강화다. ② AI 기반 자동화: 중복 파일, 오래된 백업, 쓰지 않는 앱을 식별하는 도구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AI는 비정형 데이터를 구조화하고, 중복 데이터를 제거하고, 중요도 분류와 패턴 분석을 수행할 수 있다. 다만 반드시 사람의 감독과 윤리 기준이 병행되어야 한다. AI와 머신러닝을 활용해 수작업으로 불가능한 방대한 데이터를 자동으로 분류(Tagging)하고 가치를 부여해야 한다. ③ 디지털 공공 인프라(DPI) 구축: 보고서는 특히 DPI 구축을 핵심 해법으로 제시한다. 이는 데이터 표준화, 기관 간 연계, 접근 권한 관리, 투명성 확보를 가능하게 하는 기반 시스템이다. 에스토니아와 핀란드가 공유하는 '엑스로드(X-Road)' 사례처럼, 시민이 자신의 데이터에 누가 접근했는지 투명하게 모니터링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 신뢰를 쌓아야 한다. ④ 조직과 개인의 실천: 최고 데이터 책임자(CDO)와 데이터 보호 책임자(DPO)를 의무적으로 채용해 부서 간 칸막이를 없애고 표준화된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정기적인 데이터 감사를 통해 중복·오래된 데이터를 삭제하고, 콜드 스토리지 활용하며 자동 삭제 정책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 콜드 스토리지(Cold Storage)는 자주 꺼내 쓰지 않는 데이터를 저렴하게, 장기 보관하는 저장 방식을 말한다. 당장 필요 없는 데이터는 전력 소모가 적은 오프라인 저장소로 옮길 수도 있다. 또한 매년 시행되는 '디지털 클린업 데이'와 같은 캠페인은 실제로 에너지 절감과 보안 강화에 기여할 수 있다. 매년 3월 세 번째 토요일인 '디지털 클린업 데이'에 맞춰 회사 전 직원이 데이터 삭제 캠페인을 벌이는 것도 방법이다. ◇저장의 시대에서 '관리의 시대'로 지금까지 데이터 전략은 '가능한 많이 저장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책임 있게 관리하고 활용하는가이다. 다크 데이터는 환경을 오염시키고, 비용을 증가시키며, 보안을 위협하고 인권을 침해할 수 있다. 다크 데이터는 '나중에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우리가 쌓아둔 '미래에 대한 부채'다. 이제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저장'하던 관행에서 벗어나, 데이터의 생성부터 삭제까지 책임지는 '디지털 위생'의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 그렇지만 다크 데이터는 동시에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고, 정책 혁신과 경제 성장의 핵심 자원이 될 수도 있는 만큼 데이터를 줄이고 지우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결국 보이지 않는 데이터의 어둠을 그대로 둘 것인지, 아니면 공공의 자산으로 전환할 것인지는 이제 각 국가와 조직의 선택에 달려 있다. 정부와 기업은 투명한 데이터 거버넌스를 구축하고, 개인도 불필요한 데이터를 과감히 삭제하는 용기를 가질 때, 비로소 우리는 지속 가능한 디지털 미래를 맞이할 수 있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기후위기가 바꾼 5월… 온화하던 계절의 여왕, ‘폭군’이 됐다

한때 '계절의 여왕'으로 불리며 일 년 중 가장 온화한 달로 꼽혔던 5월이 '폭군'으로 변하고 있다. 한여름 같은 더위와 함께 강한 자외선으로 대기 오염물질인 오존의 농도를 치솟게 하기 때문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 15일 서울의 낮 최고기온이 31.3℃를 기록하는 등 전국 곳곳이 때 이른 한여름 날씨를 보였다. 16일에는 서울의 한 80대 남성이 온열질환으로 사망한 것으로 신고됐다. 질병관리청의 온열질환 응급실 감시체계에 따르면 이번 사망사례는 온열질환 응급실 감시가 시작된 이래 가장 이른 것이다. ◇이미 여름이 되버린 5월 전날인 14일에도 서울 낮 기온이 31.5℃까지 오르며 2021년 이후 가장 빠른 시기에 30℃를 넘어섰다. 지난해 첫 30℃ 돌파일(5월21일)과 비교해도 일주일이나 앞당겨진 것이다. 기상청 기상자료 개방포털에 따르면 서울의 5월 평균 기온 평년값(1991~2020년 평균)은 18.2℃다. 최근 가팔라진 기후변화로 이 평년값을 훌쩍 넘어서는 해가 갈수록 잦아지고 있다. 2010년대(2011~2020년) 서울의 5월 평균기온은 18.8℃로 평년값보다 이미 1℃가량 높았다. 2019년과 2023년에는 5월 평균이 20℃ 안팎까지 올랐다. 최근 30년(1996~2025년) 동안 5월에 서울 기온이 30℃ 이상인 날은 총 35일로, 이전 30년(1966~1995년)의 12일보다 3배로 늘었다. 봄이 짧아지고 여름이 5월로 앞당겨지고 있는 것이다. 1991~2000년 사이 10년 동안 서울의 5월 최고기온 평균값은 22.9℃였는데, 2016~2025년 사이 최근 10년 동안에는 24.4℃를 기록했다. 25년 사이에 5월 최고기온이 평균 1.5℃나 상승한 셈이다. ◇강한 햇살 속에 자외선도 주의해야 기온만 오르는 게 아니다. 5월의 햇살도 더 따가와졌다. 기상청 자외선지수 기준으로도 5월에 '매우 높음'(8 이상) 단계에 이르는 날이 잦아졌다. 자외선 차단 없이 15~20분만 노출돼도 피부 손상이 시작되는 수준이다. 7~8월 한여름에나 나타나던 자외선 강도가 이제는5월 중순부터 시작되고 있다. 구름 없는 맑은 날씨 속 강한 햇볕이 지면을 그대로 달구면서 단 몇십 분만 노출돼도 피부 화상을 입을 수 있는 수준이다. 이는 백내장 등 안과 질환 위험을 높이는 요인으로도 꼽힌다. 5월은 장마 전 단계로 강수량이 적고 대기가 건조해 지표면에 도달하는 자외선량이 많다. 특히 피부 깊숙이 침투해 노화를 유발하는 자외선 A(UV-A)는 5~6월 사이 가장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2025~2026년 관측 자료에 따르면, 상층의 찬 공기가 잠시 유입되는 시기를 제외하면 한반도 상공에 자리 잡은 기압능(기압이 주변보다 높은 영역)과 이동성 고기압이 자리 잡으며 일사량이 급증하고 있다. ◇호흡기 자극하는 오존 오염도 심해져 기온과 자외선이 동시에 올라가면 대기 중 오존 생성 조건이 강화된다. 강한 자외선과 높은 기온은 대기오염물질과의 광화학 반응을 촉진해 '오존'이라는 또 다른 위협을 낳는다. 특히, 기온이 높고 햇볕이 강하며 바람이 잔잔한 날, 대기 중 질소산화물(NOx)과 휘발성유기화합물(VOCs)이 광화학반응을 일으켜 지표면 오존이 대량 생성된다. 실제로 15일 서울과 수도권을 비롯해 전국 곳곳에 오존주의보가 잇따라 내려졌다. 서울시는 오후 2시를 기점으로 서울 전 권역에 오존주의보를 발령했고, 서대문구 측정소에서 시간당 0.1275ppm을 기록했다. 이에 앞서 오후 1시에는 경기 중부권 수원·안산·안양·부천·시흥·광명·군포·의왕·과천·화성·오산 등11개 시에도 오존주의보가 내려졌다. 기온이 30도를 웃도는5 월의 맑은 하늘 아래'보이지 않는 오염'이 수도권을 덮은 것이다. 서울의 오존주의보 발령 횟수는 지난 30년간 극적으로 변했다. 오존경보제가 시작된 1995년 주의보는2회(1일)에 불과했다. 이후 2000년대에는 연간 2~23회 사이를 오갔고, 2016년 33회(17일), 2018년 54회(13일), 2024년 115회(35일) 등으로 늘었다. 과거에는 6월 말 이후 집중되던 오존주의보가 최근에는 4월 말부터 발령되는 등 시기가 점점 빨라지는 추세다. 2024년에는 4월 19일에 처음 내려졌고, 올해도 4월 19일에 첫 주의보가 발령됐다. 오존은 마스크로도 걸러지지 않는다. 시간당 농도0.12ppm 이상이면 주의보가 발령된다. 반복 노출 시 눈과 기관지에 피해를 줄 수 있어, 어린이와 노약자, 호흡기·심혈관 질환자는 실외활동을 자제해야 한다. ◇올여름 더위의 '예고편' 여름이 길어지면서 봄을 집어삼키고 있다. 지구온난화 추세 속에 일시적 고온 현상이 겹치면서 5월에 30℃를 웃도는 초여름 더위가 나타난다. 14일 시작된 이번 고온 현상은 대기 상층의 기압능이 북쪽 찬 공기의 진입을 막고, 하층 고기압의 하강 기류가 구름 생성을 차단하면서 맑은 하늘 아래 강한 햇볕이 지면을 달구는 구조 때문이다. 고온 현상은 다음 주 초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우진규 기상청 통보관은 “이동성 고기압이 예년보다 강하고 느리게 이동하면서 최근 고온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상청은 18일에도 서울의 낮 최고기온이 30℃ 안팎까지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18일 대구는 34℃, 구미·안동·영월 등은 33℃까지 오르겠다. 19일에도 대구·구미 31℃, 안동 30℃, 서울 27℃ 등의 기온 분포를 보이겠다. 문제는 5월의 이 같은 '폭주'가 다가올 여름이 예년보다 훨씬 더 혹독할 수 있음을 예고한다는 점이다. 기상청은 6월 중순까지 전국 기온이 평년과 비슷하거나 높을 확률을 80~90%로 전망했다.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는 6~8월에는 폭염이 더 복합적이고 장기적인 재난 양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한편, 질병관리청은 폭염 시기가 빨라진 것을 감안해 온열질환 응급실 감시체계 가동을 15일로 앞당겼다. 당초 5월 20일이던 운영 개시를 지난해부터 5일 당겼다. 전국 516개 응급실 운영 의료기관이 참여해 9월30일까지 폭염으로 인한 온열질환자 현황을 파악하고 일일 발생 정보를 제공한다. 올해 감시 첫날인 15일 응급실을 방문한 온열질환자 수는 7명이고, 이들 중 온열질환 추정 사망자가 1명 발생했다. 온열질환자는 2022년 1,564명에서 지난해 4,460명으로 3년 새 3배 가까이 늘었고, 사망자도 매년 30명 안팎을 기록하고 있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이현진 인턴기자, 김하연 인턴기자

탄소배출권 경매 미달 옛말…경쟁 과열에 톤당 2만원 눈앞

탄소배출권 경매시장이 미달되는 건 옛말이 됐다. 배출권 시장에 공급 부족 우려가 커지면서 경매시장이 과열 양상을 보이며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이에 따라 산업계의 탄소 감축도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15일 배출권시장 정보플랫폼에 따르면 지난해분 거래상품인 'KAU25'의 이달 배출권 경매 최종 낙찰가격은 톤당 1만9600원으로 집계됐다. 경쟁률은 2.19대 1로, 참여 물량이 입찰 모집 물량의 두 배를 넘었다. 이에 따라 경매 외 시장에서도 이날 평균 거래가격은 톤당 1만9613원을 기록했다. 이는 4차 배출권거래제 기본계획(2026~2030년) 시행 전 마지막 경매 낙찰가격인 톤당 1만300원과 비교하면 약 1.8배 오른 수준이다.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예상한 올해 배출권 가격에 이미 도달했다. 이호현 기후부 2차관은 지난해 11월 국회 기후위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내년 배출권 가격이 톤당 1만9000~2만원까지 오를 수 있다"고 전망한 바 있다. 배출권 경매는 정부가 기업에 유상할당 방식으로 배출권을 배분하기 위해 여는 시장이다. 기업들은 경매를 통해 배출권을 확보한 뒤 이를 필요로 하는 다른 기업에 판매할 수 있다. 그러나 과거에는 배출권 경매시장이 반복적으로 미달되면서 매달 열리던 경매 자체가 취소되는 일도 있었다. 지난해 1~2월에는 당시 환경부가 공급량 조절을 위해 경매를 아예 열지 않기도 했다. 특히 2023년 거래분인 KAU23은 경매 미달이 잦았다. 2023년 8월부터 2024년 2월까지 7개월 연속 참여 물량이 입찰 모집 물량에 미치지 못했다. 이에 지난 2024년 이전까지는 환경부가 유상할당 경매의 월별 입찰 모집 물량을 연초에 미리 공개했지만 이후에는 이를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시장 상황에 따라 해당 월 초에만 경매 물량을 공개하는 방식으로 변경했다. 시장 상황에 따라 당초 월 경매 물량으로 계획했던 500만톤을 100만톤 수준까지 줄여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 4차 배출권거래제 기본계획이 시작되면서 공급량 감소 전망이 확산되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4차 계획기간에 참여하는 772개 할당 대상 기업에 배정된 온실가스 배출권은 총 23억6299만톤으로, 3차 계획기간(2021~2025년)의 배출 허용 총량인 28억7841만톤보다 5억1542만톤(17.9%) 감소했다. 올해 들어 지금까지 총 5차례 경매가 열렸는데 낙찰가격은 1월 톤당 1만700원에서 시작해 △2월 1만2700원 △3월 1만5100원 △4월 1만7660원 △5월 1만9600원으로 매달 상승했다. 배출권 경매 과열은 다음 달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배출권 가격 상승은 기업들의 탄소 배출 비용 증가를 의미하는 만큼 산업계의 감축 압박도 한층 커질 것으로 보인다. 탄소배출권 전문기업 에코아이의 박현신 팀장은 “다음 달까지 배출권 경매 과열이 이어지면서 장내 가격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며 “배출권 가격이 종가 대비 10%나 오른 것은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주말 전국 맑고 낮 최고 33도, 여름 날씨

주말 대구 낮 최고기온이 33℃(도)까지 오르는 등 전국이 강한 햇볕 아래 초여름 더위를 맞겠다. 14일 기상청 예보에 따르면 16~17일 주말부터 다음 주 초까지 전국 대부분 지역의 낮 기온이 31도 안팎까지 오르는 등 본격적인 초여름 날씨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평년보다 3~5도 높은 수준으로, 5월 중순임에도 사실상 6월 초순에 해당하는 기온 분포다. 특히 대구를 비롯한 내륙 일부 지역은 낮 최고기온이 33도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해당 지역에는 폭염 영향예보가 발표될 가능성이 있어 노약자나 야외 활동객들의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다만 이번 더위는 습도가 낮아 후텁지근하기보다는 강한 햇볕 아래 건조한 더위가 나타날 전망이다. 이번 기온 상승의 원인은 고기압이 우리나라 상공에 강하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고기압의 영향으로 구름이 잘 만들어지지 않으면서 햇볕이 지표면을 빠르게 달구고, 여기에 건조한 공기까지 더해져 낮 기온이 크게 오를 전망이다. 일교차에는 주의가 필요하다. 내륙 지방을 중심으로 하루 기온차가 18도 이상 벌어지는 곳이 있겠다. 낮에는 반팔을 입어도 더울 정도지만 해가 진 뒤에는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는 곳이 많아 건강관리에 신경 써야 한다. 이번 더위는 오는 20일 저기압 영향으로 전국에 비가 내리면서 한풀 꺾일 것으로 보인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현장] 10m 콘크리트 처분고 20개 우뚝…경주 방폐장 2단계 가보니

경주역에서 버스로 동쪽으로 약 1시간을 달려 도착한 경북 경주시 문무대왕면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에는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이 바다 인근 언덕을 따라 늘어서 있었다. 이곳은 국내 원자력발전소에서 나온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을 처리하는 국내 유일의 방폐장이다. 기자가 지난 13일 찾은 현장에서는 '2단계 표층처분시설' 준공식이 열렸다. 새 시설은 원전에서 발생하는 장갑·방호복·필터류 등 저준위 방사성폐기물을 보관·처리하기 위한 시설이다. 총사업비 3141억원이 투입됐으며 200리터 드럼 기준 총 12만5000드럼 규모를 처리할 수 있다. 해당 시설은 향후 25년 가량 운영될 예정이다. 현장에서 마주한 표층처분시설은 가까이서 보니 훨씬 거대한 규모였다. 가로·세로 20m, 높이 10m 규모의 콘크리트 처분고 20개가 일렬로 배치돼 있었고 폐기물을 옮기는 이동형 크레인이 설치돼 있었다. 폐기물을 실은 차량이 시설 안으로 들어오면 천장 위를 오가는 크레인이 드럼을 집어 처분구 안으로 옮긴다. 이경환 한국원자력환경공단 시공관리팀장은 “드럼을 한 층씩 적재한 뒤 내부를 채우고 이를 반복해 총 9단까지 쌓는다"며 “이후 콘크리트 슬라브와 흙으로 덮어 완전히 밀봉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처분이 완료된 시설은 이후 약 300년 동안 지속적인 방사선 및 환경 모니터링이 이뤄진다. 2단계 표층처분시설 준공의 의미는 1단계 동굴처분시설에 보관하던 저준위 폐기물을 건설비가 더 저렴한 시설에서 처리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1단계 동굴처분시설에는 저준위 폐기물을 넣지 않아도 돼 방사능 수치가 더 높은 중준위 폐기물을 더 많이 보관할 수 있게 된다. 실제로 1단계 동굴처분시설의 총사업비는 1조5436억원으로 2단계 시설 사업비 3141억원의 약 5배에 이른다. 기자는 2단계 표층처분시설을 살펴본 이후 버스를 타고 지하 동굴처분시설로 이동했다. 터널을 따라 약 3분간 내려가자 지하 약 120m 아래 거대한 원통형 사일로 시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곳은 상대적으로 방사능 농도가 더 높은 중준위 폐기물을 처리하는 1단계 동굴처분시설이다. 2단계 시설은 지상에 건설된 저준위 폐기물 처리 시설인 만큼 특별한 방호복 없이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1단계 시설로 들어가기 전에는 방사능 측정기가 부착된 방호복을 착용해야 했고 스마트폰도 반납해야 했다. 현장 방사능 수치는 외부 건물과 큰 차이가 없다고 했지만 보안과 안전 관리가 훨씬 엄격했다. 지하 시설 내부는 거대한 지하 플랜트에 가까웠다. 높이 50m, 직경 24m 규모의 사일로 6기가 동시에 운영되고 있었고 폐기물을 실은 전용 차량이 동굴 내부까지 직접 들어왔다. 이후 자동 크레인이 차량 위 콘크리트 처분용기를 집어 사일로 내부 지정 위치로 옮긴다. 조윤영 원자력환경공단 중저준위안전실장은 “폐기물은 발생지 예비검사와 현장 인수검사, 원자력안전위원회 처분검사 등 총 세 번의 검사를 거친 뒤 최종 처분된다"며 “처분 용기를 옮겨 실제 사일로 내부에 적재하기까지 약 1시간 이상이 소요된다"고 설명했다. 이번 2단계 표층처분시설 준공으로 경주 방폐장은 기존 10만 드럼 규모 동굴처분시설과 함께 총 22만5000드럼 규모의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 능력을 확보하게 됐다. 정부는 오는 2031년 3단계 매립처분시설까지 추가 구축해 총 38만5000드럼으로 처리 능력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방폐장 전체 부지는 약 206만㎡ 규모로, 최종적으로 총 80만 드럼을 처분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국회에서 지난 2월 고준위 방폐장 특별법이 통과된 만큼 정부는 중·저준위보다 방사능 세기가 높은 폐기물을 처리하는 고준위 방폐장 시설 부지 확보에도 나설 계획이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경제 성장하고, 오염은 뚝”…서울, 세계가 주목한 ‘그린도시’ 성공작

서울 등 국내 도시들이 경제가 성장하면서도 공기는 오히려 맑아지는 선진국형 '그린(Green) 도시'의 단계에 진입했다는 국제적인 평가가 나왔다. 경제성장을 이어가면서도 화석연료 기반 오염물질은 줄이는 데 성공하면서, 이른바 '탈동조화(decoupling)' 단계에 진입한 것이다. 특히 한국은 분석 대상 도시 전체가 '녹색 성장' 범주에 포함돼 전 세계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성과를 보였다. 이는 도시가 커지고 경제가 성장하면 대기오염도 함께 늘어나지만, 경제성장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다시 대기오염이 줄어든다는 '환경 쿠즈네츠 곡선'이 현실화된 것이기도 하다. 이번 연구는 노르웨이 대기연구소(NILU) 등 국제 공동연구진이 수행했고, 최근 국제 학술지 '네이처 시티즈(Nature Cities)'에 논문으로 발표됐다. 연구진은 2019~2024년 전 세계 인구 10만 명 이상 도시 5435곳을 대상으로 경제 성장과 화석연료 의존도의 상관관계를 분석했다. ◇'탈동조화'… 성장과 오염의 연결고리 끊기 연구의 핵심 개념은 '탈동조화'다. 일반적으로 경제가 성장하면 산업 생산과 교통량이 늘어나면서 화석연료 소비와 오염물질 배출도 증가한다. 이를 경제와 환경오염이 함께 움직이는 '동조화(coupling)' 상태라고 한다. 반면 탈동조화는 경제가 성장하는 동안에도 오염은 줄어드는 현상을 뜻한다. 쉽게 말해 '더 부유해지면서도 더 깨끗해지는 성장'이다. 이는 지속가능한 도시 발전의 핵심 지표로 평가된다. 연구진은 도시별 화석연료 의존도를 측정하기 위해 대기 중 이산화질소(NO₂)를 활용했다. 이산화질소는 자동차, 발전소, 산업시설 등 화석연료 연소 과정에서 주로 발생하는 대표적 오염물질이다. 연구진은 유럽우주국의 위성(Sentinel-5P)에 탑재된 대류권 관측장비 트로포미(TROPOMI) 센서를 활용해 도시 상공의 이산화질소 농도를 장기 추적했다. 이산화질소는 화석연료 소비의 강력한 지표 물질이다. 하지만, 한계도 있다. 이산화질소는 도시 전체 탄소배출량을 완벽히 반영하지는 못한다. 외부 지역에서 생산된 상품 소비 과정의 '숨은 탄소'나 코로나19 시기의 일시적 배출 감소 효과도 일부 반영됐을 가능성이 있다. 위성 관측을 통해 전 세계를 동일한 기준으로 장기간 추적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도시별 친환경 전환 속도를 측정하는 객관적 지표로 적합하다는 설명이다. ◇서울의 성적표… “더 부유해지고, 더 깨끗해졌다" 분석 결과 서울은 경제 성장과 오염 감축을 동시에 달성한 대표적 '그린(Green) 도시'로 분류됐다. 2019~2024년 서울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 구매력평가 기준)은 꾸준히 증가한 반면, 같은 기간 대류권 이산화질소 농도는 유의미하게 감소했다. 연구진은 이를 '더 깨끗해지고 더 부유해진 도시'라고 평가했다. 서울은 논문에 제시된 세계 주요 거대도시 비교에서도 대표적 성공 사례로 꼽혔다. 일본 도쿄와 중국 베이징·상하이·광저우 등과 함께 경제 성장과 오염 감소가 동시에 나타난 도시군에 포함됐다. 이는 경제활동이 확대되더라도 반드시 오염 증가를 동반할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서울의 성과는 우연이 아니라 정책 전환의 결과로 해석된다. 연구진은 동아시아의 녹색 도시들이 공통적으로 강력한 배출 규제, 청정에너지 투자 확대, 대중교통 전기화, 스마트 인프라 구축 등을 추진해왔다고 분석했다. 서울 역시 노후 경유차 제한, 전기버스 확대, 수도권 대기질 특별관리 정책, 친환경 건물 전환 등의 정책을 지속적으로 시행해왔다. 이러한 변화가 화석연료 의존적 성장 구조를 약화시키는 데 기여한 것으로 평가했다. 이같은 사실은 서울시의 발표에서도 확인된다. 최근 서울시는 '경유차 매연 줄이기' 정책 19년만에 미세먼지가 47% 줄었다고 발표했다. 서울시는 2006년부터 경유 시내버스 8900여 대를 압축천연가스(CNG) 버스로 전환하고 전기버스를 확대하는 한편, 노후 경유차 53만 대에 매연저감장치 부착과 조기 폐차를 지원했다. 그 결과, 서울의 초미세먼지(PM2.5) 농도는 2006년 30㎍/㎥에서 2025년 18㎍/㎥로 약 40%, 미세먼지(PM10)는 60㎍/㎥에서 32㎍/㎥로 약 47% 감소했다. ◇여전히 화석연료 성장에 묶인 해외 도시들도 연구진은 이를 환경경제학의 대표 이론인 '환경 쿠즈네츠 곡선(EKC)'의 하강 국면과 연결 지었다. 일정 수준의 경제 발전 이후 기술 혁신과 규제 강화, 시민의 환경 요구 확대에 따라 오염이 감소하는 단계에 진입했다는 것이다. 환경 쿠츠네츠 곡선은 GDP 통계 체계를 정립한 미국 경제학자 사이먼 쿠츠네츠(1901~1985)가 제시한 가설을 응용한 것이다. 1990년대 연구자들이 쿠츠네츠의 '역 U자형 발전 곡선' 아이디어를 환경오염 문제에 응용, 경제가 성장 초기에는 오염이 늘지만 일정 소득 수준을 넘으면 오히려 줄어든다는 이론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모든 도시가 같은 길을 걷는 것은 아니다. 연구진은 도시들을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첫째는 서울처럼 경제는 성장하고 오염은 줄어드는 '그린' 도시다. 부산·인천·대구·대전·광주·울산 등 연구에 포함된 한국의 인구 10만 명 이상 도시들은 모두 예외 없이 '그린 도시' 범주에 속했다. 국내 도시들이 경제 성장과 오염 저감을 동시에 달성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연구진은 이를 동아시아에서 가장 성공적인 절대적 탈동조화 사례 중 하나로 평가했다. 한국은 국가별 '그린 도시' 비중 순위에서 100%라는 수치로 세계 1위를 차지했다. 이는 독일(98%), 스페인(82%), 프랑스(80%) 등 유럽의 주요 선진국들보다도 높은 비율이다. 그린 도시는 도쿄·런던·파리 등 조사 대상 도시의 80%를 차지했다. 둘째는 경제와 오염이 함께 늘어나는 '브라운(Brown)' 도시다(전체의 16%). 대표적인 브라운 도시로는 이란 테헤란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러시아 모스크바 등이 꼽혔다. 이들 도시는 여전히 석유·석탄 기반 에너지 시스템과 자동차 중심 교통 구조에 의존하고 있고, 환경 규제와 청정기술 투자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것으로 분석됐다. 셋째는 경제와 오염이 함께 감소하는 '그레이(Gray)' 도시로 아프가니스탄의 카불이나 레바논의 베이루트 등이 사례로 꼽혔다(약 4%). 넷째는 경제는 침체됐는데 오염은 오히려 늘어나는 '레드(Red)' 도시다. 레드 도시 사례로는 우르미아·피슈바·가르차크 등 테헤란의 일부 위성도시들이 해당됐다(약 1%).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