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지구의 날] 한계 도달한 지구…국가 단위론 해결 못하는 수준

22일은 지구의 날. 1970년 미국에서 처음 행사를 개최한 지 56주년을 맞았다. 인류 활동이 지구 생태계에 미친 영향을 되돌아 보고, 지속가능한 발전으로 전환할 방법을 생각하는 날이기도 하다. 국제 사회는 기후·에너지 위기를 걱정하고 있지만, 현재 지구가 직면한 위기는 기후 문제가 전부는 아니다. 기후 위기 외에도 종다양성의 붕괴, 심화되는 물 부족, 그리고 통제 불능 수준으로 증가하는 폐기물 문제도 있다. 지구의 날을 맞아 각각의 실태와 전망, 대응 과제를 짚어본다. ◇종다양성 위기: “육지 80% 영향권" 종다양성 상실은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니라 인류 생존 기반인 생태계 서비스를 흔드는 구조적 위기다. 미국 듀크대학교의 스튜어트 핌 교수팀이 지난 2월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미 항공우주국(NASA) 관측 자료 기준으로 지구 육지의 약 80%가 이미 인간 활동의 영향을 받고 있고, 이 가운데 절반은 농업 용지로 전환된 상태다. 특히 전 세계 육상 생물종의 약 3분의 2가 서식하는 열대우림의 파괴는 종다양성 감소를 가속화하는 핵심 요인으로 지목됐다. 세계자연기금(WWF)과 런던 동물학회(Zoological Society of London)은 전 세계 척추동물 개체군 변화를 추적해 '살아있는 지구 지수(LPI)'를 산출해 발표하는데, 1970년 대비 각 개체군의 규모가 평균적으로 73% 줄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 수치는 일부 지역과 종에서의 급격한 감소가 반영된 결과로, 생태계 전반의 압박 수준을 보여주는 지표로 해석된다. 듀크대 연구팀은 LPI가 제시하는 '73% 개체군 감소' 같은 수치가 경고 효과는 크지만, 현장의 실제 변화 양상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신 지역별·종별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실증적 보전' 접근이 필요하고 강조했다. ◇수자원 위기: '데이제로 가뭄' 현실화 기후변화와 인구 증가가 맞물리면서 물 부족은 새로운 임계점에 접근하고 있다. 기초과학연구원(IBS) 기후물리연구단과 부산대 통합기후시스템과학과 연구팀이 지난해 9월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에 게재한 논문은 '데이제로 가뭄(DZD)'의 위험성을 구체적으로 경고한다. 이는 강수 부족과 수요 증가가 겹치며 저수지가 완전히 고갈되는 극한 상황을 의미한다. 연구에 따르면 지구 평균기온 상승 폭이 산업화 이전 대비 1.5℃ 수준에 도달할 경우, 전 세계 인구 약 9%인 7억5000만 명 이상이 이러한 극단적 물 부족에 노출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지중해 연안, 남아프리카, 북미 일부 지역은 2030년대에 이미 이 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산업 부문의 물 수요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중국 동북대 연구팀이 지난해 10월 '네이처 지속가능성 (Nature Sustainability)'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소재 생산 과정에서 소비되는 '블루 워터'는 1995년 251억㎥에서 2021년 507억㎥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이 가운데 철강 생산이 약 39.4%를 차지하며 가장 큰 비중을 보였다. 전문가들은 물 위기 대응을 위해 △지구 온난화 억제 △하수 재이용 및 해수 담수화 확대 △소재 소비 절감 등 '물-소재 넥서스' 기반의 통합 전략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폐기물 위기: 순환경제 전환 시급 폐기물 문제는 인류 경제 활동이 남긴 가장 가시적인 부담이다. 최근 세계은행(World Bank)이 발표한 '폐기물의 모든 것(What a waste) 3.0'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전 세계 도시 고형 폐기물 발생량은 25억6000만 톤이며, 현재 추세가 지속될 경우 2050년에는 38억6000만 톤까지 증가할 전망이다. 이 보고서는 2012년과 2018년에 이어 세 번째로 발간된 개정판이다. 특히 저소득 국가의 폐기물 발생량은 124% 이상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관리 인프라는 이를 따라가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 전 세계 폐기물의 약 30%는 수거되지 않거나 비위생적으로 처리되고 있다. 이는 홍수, 질병 확산, 해양 오염으로 이어지는 직접적 원인이다. 플라스틱의 경우 연간 발생량의 29%인 약 9300만 톤이 부적절하게 관리되고, 이 중 65%는 일회용 제품이다. 폐기물 부문 온실가스 배출도 심각하다. 2022년 기준 이산화탄소 환산(CO₂e)톤으로 약 12억8000만 톤가 배출됐는데, 대부분은 메탄으로 기후변화를 가속한다. 경제적 손실 역시 크다. 동남아시아 중소득 국가에서는 미수거 폐기물로 인한 손실이 톤당 약 375달러에 달해, 적정 처리 비용을 상회한다. 세계은행은 보편적 폐기물 관리 체계 구축을 위해 중소득 국가는 국내총생산(GDP)의 0.3~0.5%, 저소득 국가는 약 0.8% 수준의 공공 투자가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해법으로는 생산자책임재활용(EPR) 확대, 제품 설계 단계에서의 폐기물 감축, 음식물 쓰레기 분리·퇴비화 등을 통해 '순환경제'로의 구조적 전환이 요구된다.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 지구가 보내는 신호는 분명하다. 생물다양성을 복원하고, 수자원을 보존하며, 폐기물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은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다. 문제는 종다양성, 물, 폐기물 문제는 서로 얽혀 있으며, 개별 이슈로 나눠 대응하는 것으로는 해결이 어렵다는 점이다. 미국 미시건주립대 류젠궈 교수팀은 지난 1월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발표한 논문에서 이를 '메타커플링(metacoupling)' 구조로 설명했다. 한 지역의 자원 소비와 정책이 전 지구적 연쇄 영향을 만든다는 것이다. 이는 어느 한 국가가 울타리 내에서 독자적인 노력만으로 문제에서 풀려날 수도 없다. 글로벌하게 연결돼 있어 국제적 협력이 필수적이라는 의미다. 최근 국제 저널 '거주가능한 행성(Habitable Planet)'에 발표한 논문에서 스위스 쥐리히 연방공과대 연구팀은 “현재의 환경 위기는 단순한 '지속가능성' 문제가 아니라 문명의 존속 여부를 가르는 '존재론적 리스크'"라고 지적했다. 특히 인간 사회는 단기적 이익을 추구하도록 진화한 행동 패턴을 가지고 있어, 자원 고갈, 기후 변화, 전쟁과 같은 자멸적 경로로 쉽게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정책과 사회 시스템은 수십 년이 아니라 수백만 년 단위의 장기적 관점에서 재설계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기후활동가 김보림 씨 ‘골드만 환경상’ 수상…국내 두번째 수상자

2026년 '환경 노벨상'으로 불리는 골드만 환경상 수상자로 한국의 기후활동가 김보림(33)씨가 선정됐다. 아시아 지역 대표로 이름을 올린 이번 수상은 한국 환경운동이 '세대 주도형 권리 투쟁'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으로 평가된다. 골드만 환경상 재단은 20일 김씨 등 올해 수상자 6명의 명단을 공개했다. 골드만 환경상은 1989년 미국의 자선가 리처드와 로다 골드만 부부가 제정한 상으로, 매년 전 세계 6개 지역에서 풀뿌리 환경운동가를 선정한다. 수상자에게는 각각 20만 달러(약 3억 원)의 상금이 수여되며, 국제적으로 가장 권위 있는 환경상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김 씨의 수상 배경에는 단순한 캠페인을 넘어 지난 2020년부터 '헌법 소송'이라는 전략을 선택한 점이 있다. 그는 청소년 단체 '청소년기후행동'의 핵심 활동가로서, 전국 청소년 원고단을 조직하고 법률가·연구자들과 협력해 국가의 기후정책을 헌법적 쟁점으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다. 특히 △기후위기가 청소년의 생존권과 환경권을 직접적으로 침해한다는 점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과학적 기준에 미달해 미래세대에 과도한 부담을 전가한다는 점 △장기 감축 경로가 부재해 정책의 실효성이 없다는 점 등을 핵심 논거로 정리해 소송 전략을 구축했다. 이 과정에서 김 활동가는 단순한 참여자를 넘어, 청소년 당사자의 목소리를 사회적 의제로 확장하는 데 집중했다. 거리 집회와 학교 기반 캠페인을 통해 원고단을 확대했고, 기후과학 자료와 정책 분석을 결합한 대중 설명 활동을 병행했다. 또한 해외 청소년 기후소송 사례를 조사해 국내 법리에 맞게 재구성하며, 한국형 '기후 헌법소송' 모델을 정립하는 데 기여했다. 그 결과 2024년 8월 헌법재판소는 정부의 기존 기후정책이 미래세대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위헌 결정을 내렸다. 재판부는 특히 국가가 장기적 감축 경로를 명확히 제시하지 않은 점을 문제로 지적했고, 이에 따라 정부는 2031년부터 2049년까지의 법적 구속력이 있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수립해야 하는 의무를 지게 됐다. 이와 관련 최근 국회 기후위기특별위원회에서는 공론화위원회를 운영한 바 있다. 이번 수상은 한국 환경운동의 역사와도 연결된다. 한국에서는 최열 환경재단 이사장이 1995년 같은 상을 수상한 바 있다. 그는 공해 문제를 사회적 의제로 부각시키고 시민 환경운동의 기반을 구축한 공로를 인정받았으며, 당시 상금을 환경센터 건립에 기부했다. 31년 만에 다시 한국 수상자가 나온 이번 사례는 '시민운동 1세대'에서 '기후권리 세대'로의 전환을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온다. 2026년 수상자는 모두 여성이라는 점도 특징적이다. 나이지리아의 이로로 탄시는 멸종위기 박쥐 서식지 보호 운동을 이끌었고, 영국의 세라 핀치는 화석연료 개발 전 기후영향 평가를 의무화하는 판결을 끌어냈다. 파푸아뉴기니의 테오닐라 로카 매트봅은 광산 피해 복구 약속을 받아냈으며, 미국의 알래나 아칵 헐리는 알래스카 대형 광산 개발을 저지했다. 콜롬비아의 유벨리스 모랄레스 블랑코는 수압파쇄 도입을 막아낸 공로로 선정됐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22일 ‘지구의 날’ 본사 주최 ‘ESG 생물다양성 및 자연자본 포럼’ 개막

에너지경제신문과 환경재단이 공동 주최하는 '2026 대한민국 ESG 생물다양성 및 자연자본 포럼'이 지구의 날인 오는 22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개최된다. 이번 포럼은 기후변화와 생물다양성 상실로 지구 생태계가 위기를 맞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기업의 새로운 경영 과제로 부상한 자연자본(Natural Capital) 공시와 생물다양성 보존 문제에 실질적인 대응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번 행사에는 정부, 학계뿐만 아니라 주요 기업 관계자, 관련 전문가 등 약 500여 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오후 1시 30분 국제회의장에서 열리는 개막 행사에서는 이창석 국립생태원장이 기조연설을 맡는다. 이 원장은 기조연설에서 온전한 생태계를 모방하는 '참조 정보(Reference information)' 기반의 과학적 복원이 탄소 흡수 능력을 극대화하는 핵심이고, 이를 입증하는 정량적 데이터를 자연 관련 재무 정보 공개 협의체(TNFD) 공시 보고서에 담아야 한다고 밝힐 예정이다. 개회식에서는 또 박기영 환경재단 그린CSR센터 국장과 염형철 사회적협동조합 한강 대표, (주)땡스카본 김해원 대표 등의 사례 발표도 이어진다. 사례 발표에서는 국내외 기업의 자연자본 공시 준비 사례를 발표할 예정이다. 또, 생물다양성 보전 활동이 단순한 사회공헌(CSR)을 넘어 기업의 핵심 비즈니스 전략과 재무적 가치로 연결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될 전망이다. 특히, 훼손된 생태계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떻게 기능을 회복했는지 측정하는 정밀한 모니터링 데이터가 기업의 공시 신뢰성을 확보하는 강력한 수단임을 설명하는 발표도 준비돼 있다. 본 포럼에서는 3개의 세션이 진행될 계획이다. 개회식에 이어 오후 3시부터 국립생물자원관 주관으로 '자연자본 공시와 측정동향'을 주제로 한 제1세션이 진행된다. 세션 1은 자연자본 공시가 자발적 참여를 넘어 국제회계기준과 연계된 글로벌 의무 제도로 급격히 전환되고 있는 최신 규제 동향을 집중적으로 다루게 된다. 특히 SK증권의 TNFD 시범 보고서 발간 사례가 공유될 예정인데, 이는 자본시장의 평가 기준이 '기후'에서 '자연'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또 제2 세션은 개막식에 앞서 이날 오전 대한상의 의원회의실에서는 국립생태원 주관으로 열리며 '기업과 생물다양성'이 주제다. 세션 2에서는 국내 상장사들의 TNFD 권고안 준수율이 평균 21%로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어, 식별된 자연 리스크를 재무적 영향과 의사결정에 내재화하는 고도화 전략이 필요하다는 점이 강조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내륙습지와 같이 저평가된 탄소흡수원을 선제적으로 확보하여 네이처 포지티브(Nature Positive, 자연 순증) 목표를 달성하는 자연자본 자산화 방안이 구체적으로 제시된다. '지속가능한 공시 성공적 안착 방안'이 주제인 제3 세션은 의원회의실에서 오후 3시부터 한국환경산업기술원 주관으로 열린다. 세션 3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공시 성과가 기업의 자본비용 절감과 부도 리스크 감소로 이어지는 강력한 '투자의 언어'이자 자본 배분의 수단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데이터로 입증했다. 포스코홀딩스의 내부 탄소가격제 등 선도적인 공시 대응 사례와 함께, 환경산업기술원이 추진하는 공시 인프라 강화 및 중소·중견기업 지원 로드맵이 상세히 소개될 예정이다. 한편, 행사 참가 사전 접수는 지난 17일 마감됐으나, 개막식과 제1세션 등은 현장 접수 후 참가할 수 있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12차 전기본의 뜨거운 감자 ‘LNG’…“역할 재정의 필요”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올 연말까지 수립할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은 오는 2040년까지 15년 간 우리나라가 사용할 전력량을 예측하고 공급 방안을 마련하는 것으로, 향후 에너지 정책 수립의 최우선 기초 자료가 된다. 지난해 2월에 확정된 11차 전기본에 따르면, 한국의 전력 수요는 2023년 약 580TWh(테라와트시, 1TWh=10억 kWh)에서 2038년 약 735.1TWh까지 증가할 전망이다. 기후부는 오는 22일 개최할 예정인 국민 대토론회에서 2040년까지의 전력수요 전망결과(잠정안)을 공개할 예정인데, 11차 전기본보다 전력 수요-공급을 낮게 전망할 수도, 높게 전망할 수도 있다. 문제는 전력을 충분히 공급하는 것만이 목표의 전부가 아니라는 데 있다. 탄소중립 달성이라는 글로벌 목표와 국가 경제성장 전략을 동시에 구현해야 하는, 사실상의 국가 미래 설계도에 가깝다. 특히, 전력 수요에 따라 전원 믹스의 내용도 달라질 수밖에 없는데, 이는 산업 경쟁력과 직결되는 핵심 정책 변수인 만큼 세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최근 국내외 학계에서 발표된 연구들은 현재의 한국 에너지 정책 경로가 국제 기준과 상당한 괴리를 보이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보다 정교하고 과학적인 접근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들 전문가들의 지적을 12차 전기본 수립에 반영한다면, 어떤 점을 고려해야 할까. ◇“가장 큰 문제는 LNG"…글로벌 기준과의 구조적 괴리 현재 전력 계획에서 가장 시급하게 재검토해야 할 부분은 천연가스(LNG) 발전 비중이다. 카이스트(KAIST) 경영공학부 엄지용 교수팀이 최근 국제 학술지 ' 아이 사이언스(iScience)'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파리협정(1.5~2℃ 목표)을 충족하는 글로벌 시나리오에 맞춘다고 하면, 2050년 국내 가스 발전 용량은 29.4GW(기가와트, 1GW=100만 kW)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시나리오들의 중앙값 기준). 그러나 제11차 전기본에서는 이미 2038년에 69.2GW까지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어, 글로벌 기준과 비교할 때 두 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연구진은 이러한 차이를 '실질적인 부조화'로 평가했다. 이는 한국의 전력 정책이 국제적 탈탄소 경로와 충분히 정합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여기에 최근 벌어지는 미국과 이란 전쟁으로 LNG 공급이 불안정해진 것, 가격이 급등한 점도 고려해야 할 사항이다. 따라서 12차 전기본에서는 LNG의 역할을 근본적으로 재정의할 필요가 있다. 구체적으로는 2030년 이후 가스 발전 용량을 점진적으로 감축하는 경로를 명확히 제시하고, LNG를 장기적인 주력 전원이 아니라 재생에너지로 이행하기 위한 '제한적 교량 연료'로 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기존 LNG 발전소에 수소를 혼합하거나 암모니아를 혼소하는 기술을 도입함으로써, 화석연료 의존도를 단계적으로 낮추는 전략이 병행되어야 한다. ◇재생에너지, “양적 확대 넘어 질적 전환으로" 재생에너지 정책 역시 단순한 보급 확대를 넘어 구조적 전환이 요구된다. 홍익대 상경학부 김수이 교수는 최근 '에너지경제연구'에 발표한 논문에서 1990~2023년까지의 국내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화석연료 공급이 1% 증가할 때 국내총생산(GDP)는 0.192%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또, 원자력은 공급이 1% 늘어날 때 GDP가 0.097% 증가했다. 반면, 재생에너지는 1% 증가할 때 GDP 증가는 0.032%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결과는 한국의 재생에너지 정책이 환경적 측면에서는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지만, 산업적·경제적 측면에서는 아직 충분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 원인으로는 2023년 기준 재생에너지 비중이 5.95%에 불과할 정도로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점과, 태양광 및 풍력 산업의 핵심 기술과 장비를 해외에 의존하고 있는 구조적 한계가 지목된다. 따라서 12차 전기본은 단순히 재생에너지 비중을 확대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되고, 이를 국가 산업 전략과 긴밀히 연계해야 한다. 태양광 분야에서는 폴리실리콘과 웨이퍼 등 핵심 소재의 국산화 전략이 필요하고, 풍력 분야에서는 핵심 부품과 시스템 기술의 자립도를 높이는 정책이 요구된다. 또한 국산 장비 사용에 대한 인센티브를 강화하고, 기존의 공급의무화(RPS) 중심 정책에 더해 발전차액지원제도(FIT)를 병행하는 등 정책 수단의 다변화가 필요하다. ◇원자력, 이념 아닌 데이터로 접근해야 원자력 발전에 대해서는 보다 균형 잡힌 접근이 필요하다. 아랍에미리트 샤르자대학교와 터키 니샨타쉬대학교 연구팀은 최근 국제 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츠(Scientific Reports)'에 발표한 연구에서, 원자력 에너지 소비가 1% 증가할 경우 생태발자국이 0.067%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또한 재생에너지 확대를 포함한 녹색성장은 1% 증가 시 생태발자국을 0.107% 감소시키는 효과를 보였다. 이는 원자력이 환경 질 개선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에너지원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동시에 글로벌 탄소중립 시나리오와의 정합성 문제도 존재한다. 한국의 원전 용량은 2023년 기준 24.7GW인 반면, 파리협정 준수 시나리오를 따를 경우 중앙값은 2050년 기준으로 16.3GW 수준에 불과하다. 글로벌 수준보다는 현저히 높다. 글로벌 기준에서 원전 확대를 제한적으로만 허용하는 것은 비용과 건설 기간, 사회적 수용성 등의 현실적 제약이 반영된 결과다. 국내 원전 설비 용량이 반드시 글로벌 수준을 따라야 할 이유는 없는 셈이다. 다만 현실에서는 제약도 적지 않다. 원전은 출력 조정이 제한적이어서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아질수록 계통 운영 부담이 커질 수 있고, 신규 건설에는 장기간이 소요된다. 또한 투자 비용과 사회적 수용성 문제도 여전히 변수다. 결국 12차 전기본에서 원자력 정책은 '확대냐 축소냐'라는 이분법적 접근을 넘어, 계통 안정성과 탄소 감축 효과, 글로벌 경로와의 정합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최적화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다양한 신기술까지 반영한 통합적 에너지 모델링이 필수적이다. ◇전력계획을 넘어 '국가 전략'으로 한국 에너지 정책에 대한 국내외 비판을 종합하면, 12차 전기본은 단순한 전력 공급 계획을 넘어 국가 산업과 기후 전략을 아우르는 통합적 정책으로 재설계되어야 한다. 앞의 논문들에서 전문가들은 “재생에너지를 중심으로 한 전원 믹스를 구축하고, 원전은 보완적 역할로 활용하며, 화석연료 의존도를 과감히 낮추는 동시에, 재생에너지 산업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육성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원자력 역시 정치적 논쟁의 대상이 아니라 데이터와 과학적 근거에 기반해 그 역할을 설정해야 한다. 재생에너지는 변동성이 크지만, 원전은 안정적인 기저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 이론적으로는 재생에너지 중심 구조에 원전이 보완적으로 결합하는 방식이 가능하다. 두 에너지원의 동시 확대는 단순한 정책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전력망·에너지 저장장치·수요관리 등 시스템 전반의 혁신이 함께 이뤄질 때 가능한 과제다. 결국 12차 전기본의 핵심은 전기를 어떻게 생산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경제를 어떤 에너지 구조 위에 구축할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선택이 돼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번 12차 전기본 수립 과정은 한국의 에너지 정책 방향을 결정 짓는, '골든타임'이 될 수 있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EE칼럼] 지구의 날, 다시 생각하는 환경의 의미

4월 22일 오후 8시, 서울 남산타워를 비롯하여 주요 랜드마크와 공공기관의 조명이 꺼진다. 1970년 시작된 지구의 날(Earth Day)을 기념하기 위해 2009년부터 우리나라가 시작한 소등행사다. 이 행사를 통해 얻는 전력 절감 효과는 작지만, 그보다 도시의 불빛이 잠시 멈추는 장면은 평소 당연하게 사용하던 에너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상징성을 갖고 있다. 1969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발생한 원유유출 사고를 계기로 시작된 지구의 날은 레이첼 카슨의 저서, “침묵의 봄"과 함께 근대 환경운동의 시작이 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당시 발표된 “지구의 날 선언문"은 인간이 환경파괴와 자원 낭비로 인해 자연과 조화롭게 살던 전통적 가치가 파괴되고 있음을 경고하면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시민의 생활 문화 개선을 촉구했다. UN이 정한 환경의 날(6월 5일)은 국가와 정부 중심의 하향식(top-down) 성격을 가진 반면, 지구의 날은 시민이 중심이 되어 환경 문제를 국가 및 사회적 의제로 끌어올린 상향식(bottom-up) 운동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해외에서는 해변 청소, 나무 심기, 학교 교육, 지역 장터, 기후행진 같은 시민참여형 활동이 많이 이뤄지고 있다. 올해 지구의 날 주제는 “Our Power, Our Planet"이다. 여기서 Power는 전기와 에너지 외에 시민의 힘을 뜻한다. 이 주제를 선정한 배경에는 전쟁과 경기 침체,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세계의 관심이 당장의 경제와 안보 문제에 집중되면서 환경에 대한 투자와 관심이 밀리고 있다는 현실적 우려가 반영되어 있다. 유엔환경계획(UNEP)에 따르면 매년 1,900만~2,300만 톤의 플라스틱 폐기물이 강과 호수, 바다로 흘러들어가고 있고, 세계보건기구(WHO)는 전 세계 인구의 대부분이 권고 기준을 넘는 오염된 대기환경에서 생활하고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해외 주요 언론들도 지구의 날을 맞아 환경문제의 현실적 영향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로이터(Reuters)는 물 부족과 생물다양성 문제가 농업과 생활비에 직접 연결되어 있다고 보도했고, 영국 가디언(Guardian)은 자연생태계 훼손이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니라 재난 대응 능력과 식량 및 물 공급 안정성을 약화시킨다고 지적했다. 결국 환경은 식량과 물 공급, 에너지 안정처럼 우리의 일상이 흔들리지 않도록 지탱하는 중요한 조건이자 기반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물론 국가와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수자원 관리, 산업 규제, 에너지 전환, 폐기물 제도는 제도적 설계 없이는 작동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에너지 사용, 소비 습관, 이동 방식, 생활 속 선택은 결국 시민의 행동에서 결정된다. 결국 올해, 지구의 날 주제어가 전하는 핵심 메시지는 지구를 지키는 일은 정부만의 일이 아니라 시민의 작은 실천과 지속적인 행동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제 대한민국도 소등이라는 상징에 머무르지 않고 참여의 폭을 더 넓힐 필요가 있다. 지역 단위 청소 활동, 학교 중심 환경교육, 생활 속 자원순환 실천 같은 작지만 구체적인 행동이 함께할 때 지구의 날은 더 현실적인 의미를 갖게 된다. 환경은 거대한 선언보다 반복되는 생활의 변화 속에서 오래 남는다. 미국에서 도시 녹화와 생활환경 개선 운동을 이끌었던 전 영부인 레이디 버드 존슨은 “환경은 우리 모두가 만나는 곳이며, 모두가 함께 공유하는 유일한 것"이라고 말했다. 4월 22일, 전국의 불빛이 10분간 잠시 줄어드는 시간은 단순한 캠페인이 아니다. 그 짧은 시간은 환경을 정부의 과제로만 남겨둘 것인지, 아니면 시민 각자가 생활 속에서 먼저 실천할 것인지를 묻는다. 결국 환경은 누군가 대신 책임질 수 없는, 우리 모두가 함께 지켜야 할 삶의 기본 조건이다. ekn@ekn.kr

내일 아침 기온 ‘뚝’…“역대 가장 늦은 한파 특보”

오는 21일 전국의 아침기온이 5~10℃(도) 가량 떨어질 전망이다. 이날 관측 이래 가장 늦은 한파특보가 발령됐다. 20일 기상청은 강원 남부 산지와 충남 공주·금산, 전북 무주에 한파주의보를 발령했다. 한파주의보는 아침 최저기온이 이틀 이상 영하 12도를 밑돌거나, 급격한 기온 하강으로 큰 피해가 예상될 때 내려진다. 이번 한파특보는 한파특보를 체계적으로 기록하기 시작한 지난 2005년 7월 이후 가장 늦은 기록이다. 종전 기록은 2021년 4월 13일 오전 10시 중부와 남부 내륙, 산지 지역에 발령된 사례다. 북서쪽에서 찬 공기가 유입되면서 21일 전국의 아침 최저기온은 2~11도, 낮 최고기온은 6~22도로 예보됐다. 아침 기온은 전날보다 5~10도 가량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 강원 내륙과 산지는 아침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면서 얼음이 어는 곳도 있겠다. 북서풍을 타고 황사도 유입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미세먼지 농도는 전국에서 '매우 나쁨' 수준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기후 신호등] 원유 수입다변화, 준비는 됐나? 韓 정유산업에 묻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으로 세계 에너지 공급의 핵심 동맥인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된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이란의 봉쇄에 미국이 '역봉쇄'로 맞서면서 언제 다시 완전히 열릴지 알 수 없는 상태다. 글로벌 원유 공급량의 20% 이상이 이 좁은 해협을 통과한다는 점에서, 이번 사태는 단순한 지역 분쟁을 넘어 세계 경제 전반에 구조적 충격을 주고 있다. 특히 원유의 안정적 수급에 산업 기반을 의존하고 있는 국가들, 그중에서도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약 70%에 이르는 한국은 직접적인 타격을 받고 있다.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우리 정부와 정유업계도 긴급 대응에 나섰다. 미국산 셰일 오일과 서아프리카산 원유 도입을 확대하고, 장기 계약 구조를 재조정하면서 물류 경로 다변화까지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대응은 어디까지나 '조달 전략'에 불과하다. 진짜 문제는 그 다음 단계에 있다. 즉, 도입된 원유를 기존 설비에서 안정적으로 처리할 수 있느냐는 기술적 문제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한국의 석유화학 산업은 지난 수십 년간 중동산 원유를 전제로 설계·최적화돼 왔다. 이 때문에 원유 수입 다변화는 단순한 원료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정유 공정 전체의 열역학적 조건, 반응 경로, 촉매 선택, 설비 재질까지 모두 연결된 '시스템의 문제'다. ◇설계 원유(Design Crude)에 묶인 산업 구조 정유 공장은 특정 성질의 원유를 처리하도록 설계된다. 이를 '설계 원유(design crude)'라고 하는데, 이 기준은 단순한 참고값이 아니라 공정 설계의 출발점이다. 상압증류시설(CDU)의 온도 프로파일, 가열로의 열부하, 열교환기 네트워크, 촉매 반응 조건 등은 모두 이 설계 원유의 물성에 맞춰 최적화된다. 불가리아 국립과학아카데미 연구팀이 지난 2024년 국제 학술지 '자원(Resources)'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설계 원유와 다른 대체 원유를 투입할 경우 정유 공정 전반에서 복합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대표적으로 파울링(침적물 형성), 부식 증가, 장비 고장, 촉매 비활성화가 동시에 나타날 수 있다. 이러한 문제는 단일 공정에 국한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상압증류시설에서 발생한 분리 효율 저하는 진공증류, 수소첨가분해, 탈황 공정 등 다음 공정(다운스트림) 전반으로 연쇄적으로 확산된다. 즉, 원유의 변화는 공정 전체의 불안정성을 유발하는 '시스템 리스크'로 작용하게 된다. 특히, 한국처럼 중동산 원유에 맞춰진 구조에서는 이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중동산 원유는 일반적으로 황 함량이 높고 비중이 큰 '중질·고유황유'인 반면, 미국산 셰일 오일은 비중이 낮고 황 함량이 적은 '경질·저유황유'인 경우가 많다. 이러한 차이는 단순한 품질 차이를 넘어 공정 조건 자체를 변화시키는 요인이다. ◇수압파쇄 기술로 생산되는 셰일오일 미국산 셰일오일이 '경질유'로 분류되는 이유는 지질학적 특성과 조성 때문이다. 셰일오일은 수압파쇄(hydraulic fracking) 기술을 통해 근원암에서 직접 생산되는데, 상대적으로 짧은 탄화수소 비율이 높다. 이 때문에 사슬이 짧은 저비점 탄화수소, 즉 가솔린 범위의 가벼운 성분 비중이 높다. 또한 셰일오일은 포화 탄화수소 비중이 높고 아스팔텐과 같은 중질 성분이 거의 없어 점도가 낮고 흐름성이 좋은 특징을 보인다. 황과 니켈, 바나듐과 같은 불순물 함량도 낮아 '저유황 경질유(light sweet crude)'로 분류된다. 이러한 특성은 'API 중력'이 일반적으로 40°(40도) 이상 높은 값으로 나타난다. 여기서 'API(미국석유협회) 중력'은 원유의 '가벼움(밀도)'을 나타내는 지표다. 쉽게 말해 물 대비 상대 밀도를 기준으로 환산한 지표다. API가 31°를 초과하면 경질유이고, 22~31°는 중간유, 22°도 미만이면 중질·초중질유로 분류한다. 다만 이처럼 가벼운 특성은 가솔린 수율을 높이는 장점이 있지만, 중질유 처리에 최적화된 기존 정유 설비에서 설계 원유와 다른 조성의 원유가 유입될 경우 공정 불안정성이 발생할 수 있다. 한편, 환경 측면에서 볼 때 수압 파쇄는 암반층에 고압의 물·모래·화학물질을 주입해 균열을 만들고 그 틈으로 원유나 천연가스를 추출하는 방식이어서 지하수 오염과 토양 오염 위험이 제기된다. 또한 지반 균열 확대와 관련된 유도 지진, 그리고 메탄 누출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 증가도 주요 환경 문제로 지적된다. ◇미국산 원유 도입이 가져오는 '설비 충격' 대체 원유 도입 시 가장 먼저 영향을 받는 정유공장 설비는 가열로(furnace)다. 가열로는 원유를 일정 온도까지 가열해 증류 공정에 투입하는 핵심 설비로, 설계 시 특정 원유의 비중과 증류 특성에 맞춰 열부하가 결정된다. 불가리아 연구팀 논문에 따르면, 설계보다 가벼운 원유를 처리할 경우 증발 특성 차이로 과열 또는 국부적 열 집중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진다. 가열로는 고온·고압 환경에서 작동하는 설비이기 때문에 이 문제는 공정 전체의 안전 문제로 이어진다. 불가리아 연구팀 논문에 따르면 실제 사고로 이어지기도 했다. 불가리아의 루크오일 네프토힘 부르가스(LUKOIL Neftohim Burgas, LNB) 정유소는 2009년에 상압증류시설 1호기(CDU-1)를 개보수했는데, 1년 뒤인 2010년에 설계 유종인 우랄 원유보다 훨씬 가벼운 카자흐스탄산 경질유(CPC)를 약 25% 혼합해 처리했다. 이 과정에서 열전달 불균형과 과열 구간이 발생하면서 열부하 분포가 설계 범위를 벗어나고, 결과적으로 총 열부하도 증가했다. 결국 고온·고압 환경을 견디지 못한 가열로 코일이 파열되는 중대 사고로 이어졌다. 또한 경질유는 증류 특성이 달라 증류탑 내부의 유동 패턴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는 분리 효율 저하, 거품 발생 등으로 이어지고, 결과적으로 제품 품질과 수율에 영향을 주게 된다. ◇촉매 오염과 공정 붕괴의 위험 정유 공정의 또 다른 핵심은 촉매다. 특히 수소첨가분해(hydrocracking)와 탈황 공정에서는 촉매의 활성도가 곧 생산성과 직결된다. 대체 원유 도입 시 가장 문제가 되는 요소 중 하나는 나트륨(Na) 오염이다. 산도가 높은 원유를 처리하기 위해 가성소다(NaOH)를 투입하거나 탈염 공정이 부실할 경우 나트륨이 촉매 표면에 축적돼 활성 부위를 차단한다. 불가리아 연구팀 논문에 따르면, 가성소다 투입량을 4배 증가시키면 촉매 내 나트륨 농도는 약 3배 증가하고, 이는 촉매 수명을 크게 단축시키는 요인이 된다. 나트륨은 단순한 오염 물질이 아니라 '촉매 독(poison)'으로 작용한다. 촉매 기공을 막아 반응 경로를 차단하고, 활성 금속의 기능을 저하시킨다. 그 결과 반응 효율이 떨어지고, 동일한 생산량을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에너지와 원료가 필요하게 된다. 또한 염화나트륨(NaCl, 소금)과 같은 성분은 고온에서 염산(HCl)을 생성해 설비 내부를 부식시킨다. 이는 열교환기, 배관, 증류탑 등 주요 설비의 수명을 단축시키고 유지보수 비용을 급증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혼합의 함정'…블렌딩이 만능은 아니다 정유업계는 일반적으로 서로 다른 원유를 혼합해 설계 원유와 유사한 특성을 맞추는 방식으로 대응한다. 그러나 서로 다른 원유를 혼합할 경우, 특히 설계 범위를 벗어난 원유가 급격히 투입될 경우 공정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변화 예측과 달리 점도·증류곡선이 달라질 수 있고, 특히 증류 과정에서 비정상적인 거품 발생이나 분리 효율 저하가 발생할 수도 있다. 또한 혼합 원유의 수율은 단순 평균이 아니라 비선형적으로 거동하기 때문에 기존 경험적 모델로 정확히 예측하기 어렵다. 중국 화동 이공대학교 연구팀이 지난 2021년 '컴퓨터와 화학공학 (Computers and Chemical Engineering)'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새로운 원유 도입 시 중간 생성물의 수율 예측 오류가 다운스트림 공정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생산 계획 문제를 넘어, 정유사의 수익 구조 자체를 흔드는 요인이 된다. 해외 연구에서는 몇 가지 해결책도 제시하고 있다. ▶해결책 ①: 인공지능 기반 '확률적 공정 최적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핵심 기술 중 하나가 '2단계 확률적 프로그래밍'이다. 중국 화동이공대학교 연구팀의 논문에 따르면, 원유 품질의 불확실성을 반영한 확률적 모델을 통해 공정을 최적화할 수 있다. 다양한 원유 조합에 따른 수율 분포를 확률적으로 계산하고, 최적의 블렌딩 전략과 공정 조건을 도출한다. ▶해결책 ②: 원유 '지문 분석' 기술 수입 다변화 환경에서는 원유의 성질을 신속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란 샤리프 공과대학교 연구팀은 지난 2020년 '마이크로케미칼(Microchemical Journal)'에 발표한 연구에서 기체크로마토그래피(GC-FID)와 적외선 분광법(FT-IR)에 기반한 '지문 분석 기술'을 활용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이 기술로 원유의 화학적 '지문'을 분석해 경질유인지 중질유인지, 산성 성분이 포함되어 있는지 등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다. ▶해결책 ③: 공정 시뮬레이션과 열 통합 영국 헐 대학교 연구팀이 지난 2023년 '에너지원(Energy Sources)' 저널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아스펜 하이시스(Aspen HYSYS) 기반의 공정 시뮬레이션과 열 통합 기술을 활용하면 다양한 원유 조합에서도 최적 운전 조건을 도출할 수 있다. 아스펜 하이시스는 석유·가스 및 화학 공정의 흐름과 반응을 가상으로 계산해 설계와 운전 조건을 최적화하는 공정 시뮬레이션 소프트웨어다. ▶해결책 ④: 설비 개보수(Revamp)의 현실 궁극적인 해결책은 설비 개보수다. 그러나 이는 단기간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대규모 정유 설비 개보수는 수천억 원 이상의 투자와 수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원유'가 아닌 '산업'을 바꿀 각오를 현재 한국이 직면한 상황은 단순한 공급망 위기가 아니다. 원유 수입 다변화는 필연적이지만, 기존 정유시설이나 산업 구조와 충돌할 수도 있다. 공급망 다변화가 곧 리스크 해소가 아닐 수 있다는 말이다. 중동산 원유에 맞춰 설계된 정유 시스템은 미국산 셰일 오일과 같은 대체 원유를 받아들이는 순간 한계에 직면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블렌딩 기술, 인공지능(AI) 기반 공정 최적화, 지문 분석, 설비 개보수 등 복합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결국 중동 전쟁 위기는 한국 정유산업에 “어떤 원유든 유연하게 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출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한다면, 공급망 다변화는 또 다른 리스크가 될 수 있다. 반대로 이를 기술 혁신과 설비 유연성(flexibility) 확보의 계기로 삼는다면, 한국의 정유 산업은 지정학적 위기를 넘어 구조적으로 진화할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수돗물 속 과불화화합물, 손자 세대 건강까지 위협할 수도 있다

우리가 매일 마시는 수돗물 속에 포함된 미량의 과불화화합물(PFAS)이 세대를 뛰어넘어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연구 결과가 해외에서 발표됐다. 비록 동물 실험 결과이지만, 실제 수돗물에서 검출되는 수준의 농도에서도 생식 기능 저하와 배아 손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과불화화합물 오염이 심한 국내 일부지역 주민들에게도 현실적인 경고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호주 애들레이드대학 로빈슨 연구소 연구팀은 최근 '환경 연구(Environmental Research)'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수돗물에서 검출되는 수준의 PFAS 노출이 3세대에 걸쳐 배아의 미토콘드리아 기능을 저하시킨다는 사실을 쥐 실험을 통해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 연구의 핵심은 '현실적인 노출 수준'이다. 연구팀이 실제 호주 애들레이드 지역 수돗물을 분석한 결과, PFAS 평균 농도는 L당 약 3ng(나노그램, 1ng=10억분의 1g)이었고, 이를 반영해 5ng/L와 50ng/L 농도를 실험에 적용했다. 특히 5ng/L는 미국의 강화된 수돗물 기준(4ng/L)과 사실상 같은 수준이며,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는 농도에 해당한다. 그러나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5ng/L의 PFAS에 노출된 암컷 쥐에서 생성된 배아는 미토콘드리아 막 전위(MMP)가 감소하고, DNA 이중가닥 절단(γH2A.X 증가) 등 유전적 손상이 뚜렷하게 증가했다. 또한 배반포 단계에서 세포 수가 최대 26~37% 감소하는 등 배아의 질 자체가 저하된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 중요한 점은 이 영향이 단발성에 그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PFAS에 노출된 어미(F0)뿐 아니라, 이후 깨끗한 물만 섭취한 딸(F1)과 손주(F2) 세대에서도 동일한 미토콘드리아 기능 저하와 DNA 손상이 반복적으로 확인됐다. F2 세대는 이미 F0(할머니) 세대의 자궁 속에서부터 PFAS에 노출된다. F0 쥐가 임신했을 때 그 태아인 F1(어머니)의 몸속에는 장차 F2가 될 원시 생식 세포가 이미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생식 세포 형태인 F2는 독립된 개체가 되기 전, F1의 태아기 단계에서 이미 할머니가 섭취한 PFAS에 직접 노출돼 미토콘드리아가 손상을 입게 된다. 연구진은 이를 “생식세포 수준에서의 지속적 프로그래밍 변화"로 해석하면서, PFAS가 세대 간 건강 리스크를 유발할 수 있음을 강조했다. 특히 실험에서는 별도의 농도를 맞춘 물이 아닌, 수돗물 자체(약 2.7~3ng/L PFAS)를 마신 그룹에서도 동일한 손상이 나타났다는 점이 주목된다. 이는 '실험용 고농도'가 아니라 실제 일상적 노출만으로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비가역성 또한 확인됐다. 연구팀은 PFAS 노출을 중단하거나 항산화제(BGP-15, MitoQ)를 투여했지만, 활성산소는 일부 감소했을 뿐 핵심 지표인 미토콘드리아 막 전위는 회복되지 않았다. 이는 PFAS가 단순한 산화 스트레스가 아니라 세포 에너지 시스템 자체를 장기적으로 교란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한편, 지난해 10월 핀란드 투르쿠대학교와 스웨덴 오레브로대학교 공동 연구팀이 '랜싯 지구 보건(The Lancet Planet Health)'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는 임산부 혈중 PFAS 농도가 아이의 뇌 구조와 기능 변화와 유의한 연관성을 보인다고 밝혔다. PFAS는 태반과 혈뇌장벽을 통과할 수 있어 태아와 어린이에게 더욱 취약하다는 것이다. 호주팀의 연구 결과를 쥐 실험이라는 이유로 무시할 수만은 없는 이유다. ◇낙동강 수계 수돗물에서 흔히 검출되는 농도 이번 연구 결과는 국내 상황과 맞물리며 더욱 심각한 의미를 갖는다. 특히, 낙동강 수계는 이미 PFAS 오염 문제가 반복적으로 지적되어 왔다. 환경단체와 학계에 따르면 낙동강 상수원수와 정수장 수돗물에서 PFAS가 지속적으로 검출되고 있고, 일부 지역에서는 미국 기준을 초과하는 사례도 확인됐다. 부산대 오정은 교수 연구팀이 2021년 낙동강 유역 14개 정수장을 조사한 결과, 시료의 77.8%가 미국 환경청(EPA)의 기준치 4ng/L를 초과했다. 또한 국립환경과학원의 조사에서는 일부 정수장에서 이 기준의 두 배 수준까지 검출된 사례도 보고됐다. 문제는 이러한 수치가 이번 연구에서 실제 생식 독성이 확인된 농도와 겹친다는 점이다. 즉, 낙동강 수계를 이용하는 일부 지역 주민들은 실험에서 3세대 영향이 나타난 수준 이상의 PFAS에 노출되어 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정수 기술의 한계도 문제다. 전문가들은 활성탄만으로는 PFAS를 완전히 제거하기 어렵고, 막여과 등 고도 처리 기술은 비용 부담이 크다고 지적한다. 결국 사후 처리보다 오염원 차단이 더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는 2028년까지 PFAS 수질 기준을 마련하겠다는 계획과 함께 정수장 모니터링 확대 및 고도 정수기술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연구가 보여주듯 문제는 이미 '현재 진행형'이다. 이번 호주 연구팀의 연구 결과는 수돗물 안전 기준을 시급히 재설계하라는 경고인 셈이다. ◇'영원한 화합물' 과불화화합물은 탄화수소의 기본 골격에 불소 원자가 잔뜩 붙어 있는 화학물질로, 1만 종이 넘는다. 안정한 화학구조로 돼 있어 열에 강하고 가수분해·광분해·생분해가 잘 안된다. '영원한 화학물질(forever chemical)'로 불리는 이유다. 전선용 절연체, 소방용 거품, 조리기구의 테플론 코팅, 합성섬유 등에 사용된다. 국내에서는 먹는 물에서 과불화화합물 기준이 없지만, 대표적인 과불화화합물인 퍼플루오로옥탄산(PFOA)와 퍼플루오로옥탄술폰산(PFOS) 등을 감시 항목으로 정하고 모니터링하고 있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기후부가 ‘산림 훼손’…송전탑 공사 피해 속출

기후에너지환경부와 한국전력공사가 추진 중인 '동해안~신가평 500kV HVDC(초고압직류송전선) 동부 구간' 건설 사업이 산림을 불법적으로 훼손하고, 산사태 등 재해 위험을 방치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비판을 받고 있다. 특히, 산림청으로부터 '경고성' 협조 공문까지 받은 것으로 확인돼 자연생태계 보전을 담당하는 기후부가 체면을 구기게 됐다. 녹색연합은 16일 현장 조사 결과 발표를 통해 사업 주체인 기후부가 허가받은 면적을 초과해 산림을 파괴하고, 산사태 예방 조치를 소홀히 하여 주민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총 37개소(경북 봉화 16곳, 강원 삼척 11곳 , 경북 울진 10곳)에서 불법 훼손이 확인됐다는 것이다. 녹색연합은 현재 울진·삼척·봉화 일대 약 120개소에서 진행 중인 공사가 하류 주민의 생명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고위험 상태라고 경고했다. 동해안~신가평 500kV HVDC 사업은 경북 울진에서 경기 가평까지 약 230km 구간에 440여 기의 철탑을 세워 동해안에서 생산된 전력을 수도권으로 보내는 대규모 전력망 프로젝트로 지난해 11월 착공했다. 한전은 1단계로 올해 10월까지 4GW 규모의 송전망을 구축하고, 2단계 사업이 완료되는 2027년까지 송전 용량을 대폭 확대할 계획이다. 녹색연합에 따르면, 가장 심각한 훼손이 발견된 곳은 경북 봉화군 춘양면 애당리 방목이골로 이미 산사태의 일종인 토석류(土石流)가 진행 중이다. 40도에 달하는 급경사지에서 폭 15m, 길이 70m 규모의 토석과 암석이 계곡 아래로 쏟아져 내리고 있고, 토사를 막으려 설치한 톤백(마대자루)은 찢어진 채 방치돼 있다. 이곳은 2008년과 2023년에 이미 산사태로 주민 8명이 목숨을 잃은 지역이라 주민들 불안감이 크다는 것이다. 강원도 삼척시 풍곡리 용소골 역시 심각하다. 송전탑 부지 절취 과정에서 발생한 토사가 30~100m 구간에 걸쳐 계곡으로 유출됐고, 특히 광산골 32번 철탑 부지에서는 지반 침하까지 확인돼 부실 시공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녹색연합은 “국가 기간망 확충이라는 명분 아래 국내 최고 수준의 생태계를 보유한 백두대간과 산림유전자보호구역이 무분별하게 파괴하고 있다"고 기후부 등을 비난했다. 환경영향평가와 재해영향평가 협의 사항인 '토사 유출 방지' 의무를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녹색연합은 이번 사태의 핵심 원인으로 기후부의 '구조적 결함'을 지목했다. 사업 추진 주체가 같은 기후부의 전력망정책관실이어서 환경영향평가와 사후 모니터링을 담당해야 할 기후부의 지방환경청이 감시를 소홀히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과거에는 송전선 건설이 산업부 업무였는데, 지난해 10월 기후부로 통합됐다. 기후부 이호현 2차관은 최근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업무가 기후부로 통합되기 전에) 산업부 전력국장으로 일할 때 횡성과 홍천, 영월 등 안가본 곳이 없을 정도로 많이 다녔다. 동해안~신가평 송전선로의 경우 철탑도 상당히 많고 생태 1급지를 지나가는 곳이어서 주민과 지역사회는 물론 환경청 등 관계기관과도 긴밀하게 협의하면서 진행한 기억이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산림청은 사안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기후부에 협조를 요청하는 공문을 발송하는 한편 국유림관리소를 통해 현장 조사에 나섰다. 산림청 산지정책과 관계자는 “계곡에서 토사 유출이 발생해 하류 주민들 피해가 예상돼 기후부에 재해 방지 조치를 취하라고 요청했다"고 말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환경부(현 기후부)는 농림축산식품부 외청인 산림청을 흡수하려는 시도를 보였고, 이로 인해 환경부와 산림청은 껄끄러운 관계가 지속되고 있기도 하다. 녹색연합 서재철 전문위원은 “전력망 구축을 명분으로 불법 공사와 재해 위험을 방치하는 시대는 지났다"면서 “기후부는 즉각 공사를 중단하고 정부 전문가 합동 긴급 안전 점검과 함께 230km 전 구간에 대한 재해 위험 전수 조사를 실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한전 관계자는 “토사 유출과 산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철탑 공사현장에 대형 마대를 임시 설치하는 등 피해 예방 대책을 시행하고 있으나, 공사 기간이 길어지면서 일부 마대가 부식됐다"면서 “지반이 얼었다 녹고, 빗물이 침투하면서 토사 유출이 발생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한전 측은 현재 산림청(국유림관리소)과 재해 방지조치 등을 협의 중이라면서 보수계획을 승인받아 보수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산지 전용 허가지역 외에 산림 훼손이 일어나지 않도록 현장 관리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덧붙였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건강한 생태계가 기업 자산”…정부, 생태계 계정 구축에 나선다

글로벌 생활소비재 기업 유니레버는 지난 2018년 이후 팜유 공급망에 위성 추적 시스템과 '산림 파괴 금지' 정책을 도입했다. 2020년 기준 약 95%의 원료를 추적 가능한 공급망으로 전환해 열대우림 훼손 논란을 줄였다. 글로벌 식품·음료 기업인 네슬레 역시 지난 2019년 '산림 파괴 제로'를 선언한 뒤, 커피·코코아 재배지에 재생농업과 혼농임업을 도입했다. 재생농업은 토양 건강과 생태계 기능을 회복하는 지속가능한 농업 방식이고, 혼농임업은 농작물과 나무를 함께 재배해 생물다양성과 탄소 흡수를 높이는 토지 이용 방식이다. 네슬레는 이를 통해 2022년까지 주요 공급망의 90% 이상을 모니터링하고 있고, 일부 지역에서 실제로 생물다양성이 회복된 성과도 확인했다. 이처럼 글로벌 기업들이 자연자본(Natural Capital) 관리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기후 리스크와 생물다양성 손실이 기업 경영에 막대한 영향을 주면서 자연을 더 이상 외부 변수로 취급할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자본은 숲·토양·물·생물다양성 등 자연이 제공하는 자원과 생태계 서비스의 총합으로, 인간의 경제 활동과 삶을 지탱하는 기반이 되는 자산이다. 국내에서도 자연자본을 정량화해 경제 시스템에 편입하려는 시도가 본격화되고 있다. 국가 정책과 기업 경영 모두에서 '생태계 계정(Ecosystem Accounting)'이 핵심 인프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 차원의 '생태계 계정' 구축 추진…자연을 경제 지표로 통합 최근 한국환경연구원(KEI)은 이현우·이승준 선임연구위원 등 연구팀이 작성한 '생태계 계정 구축 및 생물다양성 주류화 정책 개발' 보고서를 공개했다. 이 보고서는 국가 차원의 생태계 계정을 체계적으로 수립하고 생물다양성 가치를 정책 전반에 반영하기 위한 전략을 제시하는 내용이다. 특히, 자연의 비(非)시장적 가치를 정량화해 경제 지표와 연계함으로써, 환경과 경제를 통합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통계 기반을 마련하려는 것이다. 연구팀은 2030년까지 단계별로 진행될 생태계 계정 구축 로드맵을 수립하고, 생태계의 규모, 상태, 서비스, 자산을 아우르는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제안했다. 보고서에서 말하는 생태계 계정은 생태계의 규모(extent), 상태(condition), 서비스(service), 자산(asset)을 포괄적으로 측정해서 이를 경제 지표와 연계하는 '공간 기반' 통합 통계 체계다. 이 보고서는 기존 국민계정체계(SNA)가 반영하지 못했던 공기 정화, 수질 개선, 홍수 조절과 같은 비시장적 '생태계 서비스'의 가치를 계량화하는 데 생태계 계정의 본질적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특히 보고서는 생태계 계정이 단순한 환경 통계를 넘어 정책 의사결정의 핵심 도구로 기능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자연자본과 생물다양성 정보를 경제 활동과 연계함으로써, 개발과 보전 사이의 의사결정을 보다 정량적이고 객관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2030년 완성 목표…3단계 로드맵 추진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생태계 계정 구축 사업은 '제5차 국가생물다양성전략(2024~2028)'에 근거해 2030년까지 완성을 목표로 추진된다. 우선 1단계(2025~2027년)는 실험 단계로, 계정 구축 로드맵을 수립하고 일부 계정을 시범적으로 구축하는 데 초점이 맞춰진다. 이 과정에서 관계부처 협의체 구성과 플랫폼 설계가 병행된다. 2단계(2028~2030년)는 본 구축 단계로, 규모·상태·서비스·자산 계정을 본격적으로 구축하고 이를 통합하는 국가 생태계 계정 플랫폼이 완성된다. 이 단계에서는 생물다양성이나 탄소 저장량 등 주제별 계정도 함께 구축된다. 마지막 3단계(2031~2033년)는 고도화 단계로, 계정의 정밀도를 높이고 이를 국가 승인 통계로 전환하는 한편, 제도적 활용 기반을 확립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러한 정책 추진의 법적 근거는 '환경정책기본법' 제9조인데, 정부가 환경과 경제를 통합적으로 평가하는 지표를 개발하고 정책에 활용해야 할 의무를 명시하고 있다. 보고서는 특히 '생태자산 종합평가' 기법을 중요한 정책 도구로 제시한다. 이는 토지피복 기반 데이터를 활용해 사업 전후 생태자산의 변화를 정량적으로 비교하는 방식으로, 기존의 종 중심 평가를 넘어 생태계 기능과 서비스까지 포함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 방식은 환경영향평가나 개발사업 타당성 검토 과정에서 활용될 수 있으며, 자연자본의 총량 유지라는 정책 목표를 실질적으로 구현하는 수단으로 평가된다. ◇해외에서는 기업의 의사결정 도구로 활용 해외 주요 국가들도 생태계 계정을 정책·재정·기업 의사결정에 직접 활용하는 도구로 발전시키고 있다. 생태계 계정을 공공·기업·금융이 함께 활용하는 플랫폼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자연자본을 정책 평가 체계에 통합한 대표적 사례로 영국을 들 수 있다. 재무부의 공공사업 평가 지침인 '그린북(Green Book)'에 자연자본 개념을 반영, 개발사업의 비용·편익 분석에 생태계 서비스 가치를 포함시키고 있다. 또한 매년 자연자본 계정을 발표해 대기 정화, 탄소 저장 등 서비스 가치 변화를 정책에 반영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생태계 계정을 제도적으로 의무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통합 자연자본 계정(INCA)을 통해 생태계 서비스 변화의 원인을 분석하고 정책 우선순위를 설정한다. 최근에는 회원국에 관련 통계 제출을 요구하는 규정을 도입해 사실상 '자연자본 회계의 표준화'를 추진하고 있다. 미국은 자연자본을 국가 경제 통계에 포함시키는 전략을 추진 중이고, 호주는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 등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생태계 계정을 구축한 뒤 이를 국가 단위로 확장하고 있다. 종합하면 해외 사례의 공통점은 세 가지다. 첫째, 자연자본을 '정책 의사결정 변수'로 편입했다는 점, 둘째, 공간 기반 데이터로 정량화했다는 점, 셋째, 공공·기업·금융이 함께 활용하는 플랫폼으로 발전시키고 있다는 점 등이다. ◇TNFD 공시와도 연계돼…'데이터 기반 자연 리스크 관리' 이 같은 국가 차원의 생태계 계정 구축은 기업이 직면한 새로운 공시 체계인 '자연 관련 재무정보 공개 협의체 (Taskforce on Nature-related Financial Disclosures, TNFD)'와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생태계 계정이 향후 기업의 TNFD 공시 대응에서도 핵심 인프라로 작용할 수 있다. TNFD는 기업이 자연자본에 대한 의존성과 영향, 그리고 이에 따른 재무적 리스크와 기회를 공개하도록 요구하는 국제 프레임워크로, 2021년 출범 이후 글로벌 금융시장과 규제 환경에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보고서에서도 지적하듯, 생태계 계정은 이러한 TNFD 공시에 필요한 핵심 인프라로 기능하게 된다. 국가 단위에서 구축되는 공간 기반 생태계 데이터는 기업이 사업장과 공급망에서 발생하는 자연 의존성과 영향을 정량적으로 분석하는 데 필수적인 기초 자료가 되기 때문이다. 특히 TNFD의 핵심 방법론인 LEAP 접근법에서 가장 중요한 초기 단계는 '자연과의 접점 파악'인데, 이때 국가 생태계 계정 데이터가 사실상 기준점 역할을 하게 된다. LEAP은 Locate(위치 파악, 자연과의 접점 식별), Evaluate (의존도 및 영향 평가), Assess(리스크와 기회 분석), Prepare(대응 전략 수립 및 공시 준비)의 첫글자를 따서 만든 말이다. 현재 국내에서는 신한금융그룹, 포스코홀딩스, SK증권, KB금융그룹 등 선도 기업들이 TNFD 권고안을 반영한 보고서를 발간하며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하지만 대신경제연구소가 2024년 12월 발간한 '생물다양성 위험과 기업 공시 현황' 보고서 등에 따르면, 상당수 국내 기업의 공시는 여전히 단순한 친환경 캠페인이나 서식지 복구 활동을 나열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기도 하다. ◇“자연자본을 재무 리스크로 인식해야" 전문가들은 기업의 대응 방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기존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활동이 단순한 사회공헌이나 환경 캠페인 수준에 머물렀다면, 앞으로는 자연자본을 재무적 리스크이자 자산으로 인식하고 경영 전략에 통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은 우선 자사 사업과 공급망이 어떤 생태계 서비스에 의존하는지 파악해야 하고, 동시에 사업 활동이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계량화해야 한다. 이후 이를 바탕으로 리스크를 평가하고 대응 전략을 수립하는 체계가 필요하다. 또한 국가 생태계 계정 플랫폼에서 제공될 표준화된 지표를 활용하면, 기업은 자연자본 관련 성과를 보다 객관적으로 측정하고 외부 공시의 신뢰성을 높일 수 있다. 이는 향후 투자 유치, 글로벌 공급망 참여, 규제 대응 측면에서 중요한 경쟁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한편 자연자본과 생물다양성 이슈에 대한 산업계 대응을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된다. 에너지경제신문과 환경재단은 오는 22일 서울 중구 대한상의에서 '2026 ESG 생물다양성 및 자연자본 포럼'을 개최할 예정이다. 이날 포럼은 개막식과 함께 △국립생물자원관이 주관하는 '자연자본 공시와 측정 동향' △국립생태원이 주관하는 '기업과 생물다양성: TNFD와 지속가능경영' △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이 주관하는 '지속가능성 공시 성공적 안착' 등 3개의 세션이 열려 자연자본 공시(TNFD 공시) 대응 전략을 중심으로 기업과 전문가 간 논의가 진행된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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