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신호등] “하늘에서 떨어지는 얼음 폭탄” 도시를 정조준하다](http://www.ekn.kr/mnt/thum/202606/news-p.v1.20260604.9e057921262c4cb4b1c77b89e21483b8_T1.jpg)
지난해 5월 3일 파리를 비롯한 프랑스와 독일 일부 지역에 지름 3~4㎝에 이르는 대형 우박이 쏟아졌다. 이 우박은 탁구공(40㎜)과 비슷한 크기였다. 이 우박으로 인해 자동차 차체가 파손되거나 찌그러졌고, 건물 유리창이 깨지고 지붕도 손상을 입었다. 도시 교통도 차질을 빚었고, 샤를 드골 공항 등에서는 항공기 운항도 지연됐다. 농촌에서는 포도밭 등 농작물 피해도 컸다. 프랑스 기후·환경과학연구소(LSCE)에 따르면 이 우박으로 인해 3억 유로(약 5000억 원)가 넘는 보험 손실액이 발생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얼음 덩어리 우박. 과거에는 봄철이나 초여름에 간헐적으로 나타나는 국지성 기상현상으로 여겨졌다. 농작물 일부를 망치거나 차량에 흠집을 내는 정도의 피해가 일반적이었다. 최근 국제 학술지에 발표된 연구들은 기후변화가 우박 발생 환경 자체를 변화시키고 있음을 보여준다. 과거에는 드물었던 대형 우박이 점차 흔해지고 있으며, 도시가 만들어내는 인위적 열이 우박 폭풍을 더욱 강력하게 만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후변화는 단순히 기온만 높이는 것이 아니라 대기의 에너지 구조를 바꾸어 우박을 '하늘에서 떨어지는 얼음 폭탄'으로 변화시키고 있다는 분석이다. 기후과학자들은 우박이 더 이상 '작은 자연재해'가 아니라고 경고한다. 우박 횟수는 늘지 않더라도, 살아남아 떨어지는 우박은 더 크고 더 무거워서 더 파괴적인 형태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인구와 인프라가 밀집한 대도시가 새로운 위험지대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은 기후변화에 따른 우박 대형화가 예상되는 중위도 지역에 속하는 동시에, 서울·수도권을 비롯한 초고밀도 도시권을 보유하고 있어 미래 위험이 결코 남의 일이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기후변화가 우박을 바꾼다…선별적 거대화 중국 베이징대학교 장스이 교수와 미국 센트럴미시간대학교 존 T. 앨런(John T. Allen) 교수 연구팀은 지난 5월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에 발표한 연구에서 기후변화가 우박의 크기 분포를 크게 바꾸고 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전 세계 1만4000건 이상의 우박 사례를 분석하고, 과거 기간인 1985~2014년과 미래 기간인 2071~2100년 예측치를 비교했다. 온실가스 고배출 시나리오(SSP585) 하에서 비교한 결과, 지름 30㎜ 이상 대형 우박의 형성 가능성이 38~51% 증가하는 반면, 30㎜ 미만의 작은 우박은 4~12% 감소할 것으로 예측했다. 이는 얼핏 모순처럼 보인다. 기온이 상승하면 얼음이 줄어들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정반대 현상이 나타난다. 핵심은 대기 에너지 증가다. 온난화된 대기는 더 많은 수증기를 품고 있으며, 이는 강력한 상승기류를 만들어낸다. 상승기류는 우박 알갱이를 구름 속에 오랫동안 붙잡아 두면서 과냉각 물방울을 계속 흡수하게 만든다. 과냉각 물방울은 0℃ 이하인데도 아직 얼음으로 변하지 않고 액체 상태를 유지하는 물방울을 말한다. 과냉각 물방울은 매우 불안정한 상태이기 때문에 작은 충격이나 얼음 결정과의 접촉만 있어도 즉시 얼어붙습니다. 이런 이유로 우박은 야구공 크기에 가까운 대형 우박, '괴물 우박'으로 성장할 수 있다. 반면 기온 상승은 어는점이 나타나는 고도(高度)도 함께 높인다. 작은 우박은 지상에 떨어지는 과정에서 녹아 사라지고, 충분히 크게 성장한 우박만 살아남는다. 우박의 '양극화 현상'이다. 결국 기후변화는 우박을 더 많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더 크고 더 위험한 우박만 살아남게 만드는 셈이다. ◇2㎝ 차이가 만든 재앙…파리가 보여준 미래 이 같은 변화는 이미 현실에서 나타나고 있다.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원(CNRS)의 다비데 파란다 박사 연구팀은 최근 '대기 과학 회보 (Atmospheric Science Letters)'에 발표한 논문에서 지난해 5월 3일 파리를 강타한 기록적 우박 폭풍을 분석했다. 이 연구는 기후변화가 특정 우박 사건의 강도를 얼마나 키웠는가를 정량적으로 분석한 유럽 최초의 우박 기후 귀속(attribution,기여도 분석) 연구다. 연구진은 지난해 5월 우박 크기가 과거 기후변화가 없었을 때보다 약 2㎝정도 더 커진 것으로 분석했다. 기후변화가 없었다면 '경미한 피해 수준'에 머물 수 있었던 사건이 '명백한 파괴적 사건'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우박 크기 2㎝ 차이는 사소해 보이지만 피해 규모는 전혀 다르다. 기상학자들은 우박 피해가 크기에 비례하지 않고 비선형적으로 증가한다고 설명한다. 우박 지름이 커질수록 질량은 급격히 증가하고, 낙하 충격력은 그보다 더 빠르게 커진다. 이 정도 크기면 차량 유리가 깨지고 태양광 패널이 손상되며 건물 외장재와 지붕, 항공기 동체까지 파손될 수 있다. 연구진은 같은 기압 배치와 같은 폭풍이 발생하더라도, 지금의 따뜻해진 기후에서는 △ 대류 가용 잠재에너지(CAPE)가 증가하고 △어는점 고도가 높아지고 △우박 발생 확률이 최대 30% 증가하고 △우박 크기는 약 2㎝ 커진다고 분석했다. CAPE는 공기가 위로 솟아오를 수 있는 에너지의 양을 뜻한다. 기후변화로 대기가 더 많은 열과 수증기를 품게 되면서 CAPE가 증가하고, 이는 강력한 상승기류를 만들어 우박이 더 크고 무겁게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도시가 우박을 키운다…'병합형 우박'의 등장 최근 연구들은 도시가 단순한 피해자가 아니라 우박을 키우는 환경이 될 수 있다는 사실도 보여주고 있다. 중국 난징대학교의 저우앙 박사와 자오쿤 교수 연구팀은 도시의 인위적 열이 우박 폭풍을 증폭시키는 메커니즘을 규명해 지난 3월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Nature Communications)'에 논문으로 발표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건물 냉난방과 자동차, 산업시설, 데이터센터 등에서 발생하는 열은 도시 경계층을 가열한다. 이 열은 대기 불안정성을 높여 짧은 시간 안에 여러 개의 뇌우 세포(thunderstorm cell)를 만든다. 뇌우 세포는 상승기류와 하강기류를 중심으로 형성되는 하나의 독립적인 '폭풍 덩어리'를 말하는데, 폭우와 우박, 번개를 발생시킨다. 문제는 여러 개의 뇌우 세포가 서로 합쳐질 수도 있다는 점이다. 연구진은 이를 '병합형 우박(Merger Hailstorm)'이라고 불렀다. 여러 폭풍 세포가 하나로 합쳐지면 상승기류가 급격히 강화되고 더 많은 수증기가 상층으로 공급된다. 결과적으로 일반 우박보다 훨씬 크고 강한 우박이 만들어진다. 시뮬레이션 결과, 도시에서 인위적인 열 방출이 증가할 경우 우박 피해 면적은 최대 71%까지 확대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도 예외 아니다…서울 등 수도권이 특히 취약 호주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학교의 티모시 로파크 박사 연구팀은 최근 '네이처 기후변화(Nature Climate Change)' 저널에 발표한 연구에서 우박 발생 지역이 점차 극지방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밝혔다. 북미 북부, 북유럽, 동아시아 중위도 지역에서는 대형 우박 위험이 증가하는 반면, 열대와 아열대 일부 지역에서는 오히려 감소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난징대 연구팀은 동아시아는 북미와 함께 우박 재해가 가장 빈번한 지역 중 하나로 지목했다. 동아시아 대도시권에서는 병합형 우박 발생 빈도가 농촌 지역보다 약 95% 높게 나타났으며, 강력한 우박 폭풍의 경우 도시와 농촌 간 발생 빈도 차이가 130%까지 벌어졌다. 광저우와 선전이 위치한 주강삼각주, 상하이를 중심으로 한 양쯔강 삼각주 등 중국의 메가시티가 대표적 사례다. 이들 해외 연구 결과에 비추어 한국은 기후변화로 인한 우박 대형화 위험과 도시 열섬 효과가 동시에 작용하는, 대형 우박 위험이 높은 지역으로 분류될 수 있다. 특히 서울·인천·수원·성남으로 이어지는 수도권은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고밀도 도시권이다. 즉 서울과 수도권은 기후변화가 키운 대형 우박과 도시 열섬이 유도하는 병합형 우박이 동시에 나타날 가능성이 있는 지역인 셈이다. 실제로 한국에서도 최근 수년간 대형 우박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 2023년 6월 강원도와 충북, 경북 북부 지역에서는 지름 5㎝ 안팎의 대형 우박이 쏟아져 사과·복숭아·포도 농가에 큰 피해를 입혔다. 2024년 5월에는 경기 북부와 강원 일부 지역에서 골프공 크기의 우박이 관측돼 차량 수백 대가 파손됐고, 비닐하우스와 태양광 시설 피해도 보고됐다. 기상청 관계자도 “한반도에서는 봄철과 초여름에 강한 상층 한기와 지상 고온이 만나면서 우박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최근에는 지상 기온 상승으로 대기 불안정성이 커지면서 대형 우박 발생 조건이 강화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농촌도, 공항도 새로운 위협에 직면 우박 피해는 도시만의 문제가 아니다. 연구자들은 동아시아에서 겨울 작물의 우박 위험이 커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기후변화로 우박 발생 시기와 작물 생육 시기가 겹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 보리, 밀, 과수 산업이 특히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사과와 배는 개화기와 어린 열매 시기에 우박을 맞으면 상품성을 거의 잃게 된다. 최근 기후변화로 인해 과수 재배지가 북상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형 우박 위험까지 증가하면 농업 부문의 경제적 부담은 더욱 커질 수 있다. 전문가들은 공항을 미래 우박 재난의 핵심 취약 시설 가운데 하나로 꼽는다. 파리 샤를 드골공항 사례처럼 대형 우박은 항공기 동체와 조종석 유리를 손상시키고 활주로 운영을 중단시킬 수 있다. 한국의 인천국제공항 역시 연간 수천만 명이 이용하는 동북아 허브 공항인 만큼 우박에 따른 항공기 파손이나 운항 차질이 발생할 경우 경제적 파급효과가 매우 클 수 있다. 특히 수도권 열섬 효과와 병합형 우박 가능성을 고려하면 향후 공항 기상예측 체계와 시설 내구성 기준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래 도시의 과제는 '우박 회복력' 과학자들은 미래의 우박 재난에 대응하기 위해 도시 설계 개념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선 건축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 태양광 패널, 외장재, 유리창, 지붕재 등이 지름 4㎝ 이상의 우박 충격을 견딜 수 있도록 설계 기준을 상향할 필요가 있다. 도시 열섬 완화 정책도 중요하다. 녹지 확대, 건물 에너지 효율 개선, 폐열 감소 정책은 폭염 대응뿐 아니라 병합형 우박 위험 감소에도 기여할 수 있다. 예측 기술 역시 발전해야 한다. 기존 기상 모델은 개별 뇌우를 중심으로 설계된 경우가 많다. 기상청과 지방자치단체는 도시형 고해상도 예측 모델을 구축해 병합형 우박 발생 가능성을 조기에 탐지해야 한다. 농업 부문에서는 우박 방지망 보급 확대와 재해보험 개선이 요구된다. 과거의 우박이 농경지를 위협하는 자연현상이었다면, 미래의 우박은 도시의 심장부를 직접 타격하는 새로운 기후 재난이 될 수 있다. 과학자들이 지금 우박을 주목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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