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가 남긴 구름, 이산화탄소보다 무섭다?…온난화 숨은 주범[기후 신호등]](http://www.ekn.kr/mnt/thum/202609/news-p.v1.20260922.8f27cff51c82402abbdb926c38acddf9_T1.jpg)
고개를 들어 하늘을 자주 쳐다보게 되는 가을. 파란 하늘을 가로지르는 비행기 뒤로 길게 늘어진 하얀 선도 자주 볼 수 있다. 흔히 '비행운(aircraft contrail)'이라고 부르는 이 구름은 단순한 수증기 자국이 아니다. 항공기 엔진에서 나온 수증기와 미세입자가 상공의 차가운 공기와 만나 만들어지는 얼음구름이다. 조건이 맞으면 수시간 동안 사라지지 않고 주변의 자연 구름과 섞이면서 넓은 권운으로 변하기도 한다. 비행운은 항공기의 기후영향을 이해할 때 매우 중요한 변수다. 지금까지 항공 분야의 온실가스 감축 논의는 주로 연료를 태울 때 나오는 이산화탄소(CO₂)에 집중돼 왔다. 하지만 항공기는 대류권 상층부를 비행하면서 CO₂ 이외에도 수증기와 질소산화물, 입자 등을 배출한다. 이 가운데 특정 기상조건에서 만들어지는 비행운은 구름의 양과 복사 특성을 바꾸면서 지구의 에너지 균형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최근 학계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뜨거운 배기가스가 차가운 공기와 만나 생성 비행운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사실 간단하다. 항공기 엔진에서 연료가 연소하면 수증기와 여러 배출물질이 나온다. 이 뜨겁고 습한 배기가스가 고도 8~12㎞ 안팎에서 매우 차가운 공기와 급격하게 섞이면 수증기가 응결하고 얼어붙는다. 이 때 배기가스 속 그을음이나 황산염, 유기물 등의 미세입자는 물이 얼음으로 변하는 '얼음핵'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작은 얼음결정들이 항공기 뒤에 길게 늘어서면서 비행운이 된다. 하지만 비행운이 생긴다고 모두 오래 남는 것은 아니다. 주변 공기가 건조하면 얼음결정은 곧바로 승화해 사라진다. 반대로 상공의 공기가 얼음에 대해 과포화된 상태인 '얼음 과포화 영역(ISSR)'에서는 얼음결정이 증발하지 않고 계속 성장할 수 있다. 이때 비행운은 수십 분에서 수시간 이상 지속되며 주변의 자연적인 권운과 섞인다. 결국 하늘에 잠시 나타났다 사라지는 짧은 비행운과 오랫동안 남아 넓게 퍼지는 비행운은 기후 측면에서 전혀 다른 영향을 미친다. ◇햇빛은 막고 지구의 열은 가둔다 비행운이 기후에 영향을 미치는 이유는 구름과 마찬가지로 지구가 주고받는 복사에너지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비행운을 구성하는 얼음결정은 태양빛 일부를 우주로 되돌려 보낸다. 이 때문에 지표에 도달하는 태양에너지가 줄어들어 지구를 식히는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특히 낮 시간에는 이 단파복사 반사 효과가 상대적으로 커질 수 있다. 반대로 비행운은 지표가 우주로 방출하는 적외선을 흡수했다가 다시 지표 방향으로 방출한다. 이는 지구 밖으로 빠져나가야 할 열을 붙잡는 온실효과로 작용한다. 따라서 비행운에는 냉각효과와 온난화 효과가 동시에 존재한다. 지역과 계절, 낮과 밤, 구름의 두께와 고도 등에 따라 어느 효과가 더 큰지가 결정된다. 모든 비행운이 항상 지구온난화를 일으킨다고 말할 수 없는 이유다. 그러나 여러 연구를 종합하면 전 지구적으로 장기간 지속되는 비행운의 경우 냉각효과보다는 온난화 효과가 더 큰 것으로 평가된다. ◇전체 항공편 2%가 비행운 기후효과 80% 차지 비행운 문제에서 특히 주목할 대목은 그 영향이 항공편 전체에 고르게 분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국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 연구팀이 지난 2024년 '대기 화학 및 물리학(Atmospheric Chemistry and Physics)' 저널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2019년 전 세계 비행운의 순 복사강제력은 연평균 ㎡당 62.1mW였다. 유럽에서는 876mW/㎡, 미국에서는 414mW/㎡로 추정돼 지역별 편차도 컸다. 더 놀라운 것은 항공편별 편차다. 연구진은 전체 항공편의 약 2%에 불과한 항공편이 연간 비행운 에너지 강제력의 약 80%를 차지한다고 분석했다. 이는 비행운 대책의 방향을 크게 바꿀 수 있는 결과다. 모든 항공편의 비행시간을 늘리거나 모든 항공기에 동일한 기술을 적용하기보다는, 비행운이 장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은 특정 고도와 항로를 찾아 집중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더 효율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비행운을 많이 만드는 항공편에는 공통적으로 기상조건이라는 변수가 작용한다. 같은 항공기가 같은 항로를 운항하더라도 어느 날은 비행운이 거의 생기지 않고, 다른 날에는 수시간 지속되는 비행운을 만들 수 있다. ◇'하얀 줄'이 사라져도 비행운은 남는다 비행운 연구를 어렵게 만드는 또 다른 문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비행운이다. 독일항공우주센터(DLR) 연구진은 지난해 11월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Nature Communications)'에 발표한 연구에서 항공기가 만든 비행운이 기존의 자연적인 권운 속으로 들어가 섞일 수 있다는 점을 분석했다. 이렇게 되면 육안으로는 항공기 흔적을 확인하기 어렵고 위성 관측에서도 자연적인 구름과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독일 율리히 연구소 연구진도 지난해 11월 같은 학술지에 발표한 연구에서 장기간 지속되는 비행운의 상당 부분이 기존 권운 내부에서 형성될 수 있고, 이런 '숨은 비행운'의 정확한 기후효과에는 여전히 상당한 불확실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현재 비행운의 기후 영향이 실제보다 과소평가됐을 가능성을 의미한다. 하늘에 선명한 흰 줄이 보이는 비행운만 계산한다면 자연 구름 속에 숨어버린 비행운의 영향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을음 배출을 1000분의 1로 줄여도 비행운은 생긴다 그렇다면 항공기 엔진의 배출입자를 줄이면 비행운도 줄어들까. 최근 연구는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고 답한다. 독일항공우주센터(DLR) 연구팀은 지난 4월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에 최신 A321네오(neo) 항공기의 린번(lean-burn) 엔진을 대상으로 한 연구를 발표했다. 린번 엔진은 연소효율을 높이고 그을음 배출을 크게 줄이는 기술이다. 연구 결과 엔진에서 배출되는 그을음 입자는 기존 엔진보다 약 1000분의 1 수준까지 감소했지만, 실제 비행운을 구성하는 얼음결정의 수는 크게 줄지 않았다. 연구진은 그을음 외에도 연료의 성분, 황산염과 유기물, 엔진 윤활유에서 발생하는 휘발성 입자 등이 얼음결정의 생성에 관여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즉 비행운은 단순히 '그을음이 많아서 생기는 구름'이 아니다. 여러 종류의 미세입자가 얼음결정의 씨앗 역할을 할 수 있다. 다만 저황 연료를 사용했을 때는 얼음결정의 수가 기존 대비 약 3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엔진 기술과 연료 조성을 함께 개선해야 비행운을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의미다. ◇가장 현실적인 해법은 '비행운 안 생기는 하늘'로 우회 현재 가장 현실적인 비행운 저감 방안으로 꼽히는 것은 비행운이 잘 만들어지는 공역 자체를 피해 운항하는 것이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 공학부 연구진은 지난 1월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발표한 연구에서 얼음 과포화영역을 피해 항공기의 고도를 조정하거나 항로를 일부 우회하면 비행운의 온난화 효과를 상당 부분 줄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핵심은 항공기 전체를 우회시키는 것이 아니다. 기상예측을 통해 비행운이 장기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좁은 지역을 찾아 그 구간만 피하는 것이다. 항공기가 수십~수백㎞를 크게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고도를 조금 바꾸거나 항로를 소폭 수정하는 방식이라면 추가 연료 소비가 크지 않을 수 있다. 케임브리지대학 연구진은 2035~2045년 사이에 비행운 회피를 단계적으로 확대해 100% 적용에 이른다면 파리기후협약의 지구 온도 상승 제한 목표(+2°C)를 지키기 위해 인류에게 남겨진 지구 온도 예산 중 9%를 회복할 수 있는 것으로 평가했다. 반면 대책 시행을 10년 늦추면 탄소 예산 절약이 약 2% 수준으로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행운 대책도 '얼마나 빨리 시작하느냐'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기상예보가 틀리면 비행운도 못 피한다 하지만 관건은 비행운이 생길 것으로 예상되는 지점을 얼마나 정확하게 찾아내느냐다. 그래서 기상예측의 불확실성은 현실적인 장애물로 등장한다. 얼음 과포화 영역은 상공의 온도와 습도에 따라 결정되는데, 항공기가 운항하는 고도에서는 작은 기상조건 차이도 비행운 형성 여부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수시간 뒤 특정 고도와 위치에서 공기가 얼음에 대해 과포화될지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은 쉽지 않다. 예보가 틀리면 두 가지 문제가 생긴다. 비행운이 생기지 않을 곳을 피해 불필요하게 항로를 우회할 수도 있고, 반대로 비행운이 생길 곳을 피하지 못할 수도 있다. 따라서 비행운 회피를 상용화하려면 고해상도 기상예측과 항공기 운항정보, 위성관측 등을 실시간으로 결합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현재의 위성 관측 역시 자연 권운 속에 섞인 비행운을 정확하게 식별하는 데 한계가 있다. ◇우회비행하면 CO₂가 늘어난다 비행운 회피에는 명확한 '역설'이 있다. 항로를 돌아가면 비행시간이 길어지고 연료소비가 늘어날 수 있다. 비행운으로 인한 단기적인 온난화 효과를 줄이는 대신 CO₂를 추가로 배출하는 셈이다. 따라서 비행운 회피의 효과를 평가할 때는 '비행운을 얼마나 줄였는가'만 볼 수 없다. 추가 연료소비로 발생하는 CO₂까지 함께 계산해 전체적인 순기후효과를 따져야 한다. 케임브리지대학 연구진은 이런 상충관계까지 고려해 비행운 회피 시나리오를 분석했다. 연구에서는 평균적인 추가 연료소비가 비행운 회피로 얻는 기후 편익을 크게 상쇄하지 않는 조건을 제시했지만, 실제 운항에서는 항로와 기상조건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지속가능 항공유(SAF)를 사용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할 수 있지만, 이것도 만능 해결책은 아니다. 항공기 설계와 엔진 특성뿐 아니라 연료의 성질과 대기환경 조건도 지속적인 비행운 형성에 영향을 미친다. SAF는 기존 화석연료와 성분이 다르기 때문에 연소 과정에서 나오는 입자의 양과 특성을 바꿀 수 있다. 이를 통해 비행운 형성을 줄일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SAF라고 해서 모두 같은 효과를 내는 것은 아니다. 어떤 원료로 생산했는지, 생산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사용했는지, 토지 이용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따라 전체 환경효과가 달라진다. 따라서 'SAF 사용=비행운 문제 해결'이라는 단순한 접근도 경계해야 한다. ◇'비행운을 없애는 것'이 항상 최선은 아니다 비행운 문제를 다룰 때 또 하나 주의해야 할 것은 온난화 효과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항공기 엔진의 배출물은 비행운뿐 아니라 대기오염과 오존화학에도 영향을 미친다. 연료를 더 많이 사용해 비행운을 피하는 것이 전체적으로 더 친환경적인지는 추가 CO₂와 다른 배출물까지 계산해야 판단할 수 있다. 또 비행운을 줄였을 때 자연 구름의 양과 수명, 복사효과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결국 비행운 저감기술은 하나의 지표만 놓고 성공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 CO₂, 비행운의 복사효과, 질소산화물, 미세입자, 연료소비, 구름 변화까지 함께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실적인 해법은 특정 기술 하나에 '올인'하는 것이 아니라 CO₂·비행운·대기오염·연료소비·생태영향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놓고 가장 비용효율적인 조합을 찾아나가는 것이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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