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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포커스] 동유럽에서 핵전쟁 벌어지면…전 지구 식량시스템 붕괴

지난 26일은 40년 전인 1986년 4월 26일 구소련(현 우크라이나)에서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했다.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그 곳은 사람의 출입이 금지된 상태다.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범하면서 벌어진 러-우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는 곳이기도 하다. 러-우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한때 러시아의 핵무기 사용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기도 했다. 국제사회는 지금까지 핵무기의 사용을 억제해 왔지만,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면서 동유럽이 핵 충돌의 위험지대가 된 것도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은 전술핵이나 소규모 핵 사용을 '제한적 핵전쟁'으로 표현하며, 그 피해가 특정 지역에 국한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최신 과학 연구는 이러한 인식이 얼마나 위험한 착각인지를 보여준다. 핵전쟁은 결코 국지전에 머물지 않으며, 단 몇 개의 핵탄두만으로도 전 지구적 기후 붕괴와 식량 위기, 장기적인 방사능 오염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영국 엑서터대학 수학·통계학과와 물리·천문학과 연구진은 지난 22일 동유럽 핵분쟁이 전 지구 기후와 방사능 확산에 미치는 영향을 정밀 분석한 논문을 네이처 계열의 국제저널인 'njp 클린 에너지'에 발표했다. ◇태양빛 잃은 지구, 핵겨울은 어떻게 시작되는가 연구진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국경 지역에서 15킬로톤(kt)급 핵폭탄 100개가 폭발하는 시나리오를 설정했다. 15kt이면 1945년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과 비슷한 규모다. 이 경우 약 5테라그램(Tg), 즉 약 500만 톤의 검은 탄소(Black Carbon)가 성층권으로 유입된다. 이 검은 탄소는 단순한 연기가 아니다. 태양빛을 흡수하고 지구의 복사 균형을 무너뜨리는 거대한 기후 교란 물질이다. 성층권에 도달한 검은 탄소는 태양광을 흡수해 주변 공기를 가열하고, 그 열로 인해 연기 구름은 더욱 높은 고도로 상승한다. 이렇게 올라간 입자는 비에 씻겨 내려오지 않고 수년 동안 대기 중에 머물며 지구 전체를 뒤덮는다. 그 결과 북반구 평균 기온은 사고 발생 1년 안에 약 1℃ 하락한다. 특히 대륙 내부 지역의 충격은 훨씬 크다. 러시아는 평균 5℃, 미국은 약 4℃의 급격한 기온 하락을 겪게 된다. 이는 단순히 겨울이 길어지는 수준이 아니다. 농업 생산, 수자원 공급, 생태계 안정성이 동시에 흔들리는 구조적 기후 위기다. ◇식량 시스템의 붕괴, 핵전쟁은 기근으로 이어진다 기온 하락보다 더 치명적인 것은 햇빛과 비가 줄어드는 것이다. 지표면에 도달하는 태양 복사 에너지는 미국 전역에서 ㎡당 약 30W가 감소한다. 햇빛이 줄어들면 작물의 광합성이 급격히 저하되고, 곡물 생산량은 빠르게 감소한다. 강수량 감소는 더욱 심각하다. 북반구 중위도 농경지의 강수량은 평균 40% 감소하며, 일부 지역은 최대 80%까지 줄어든다. 특히 아시아와 서아프리카 지역은 농업 기반 자체가 붕괴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단순한 흉작이 아니라 전 세계 식량 시스템의 붕괴를 의미한다. 식량 부족은 곧 가격 폭등으로 이어지고, 이는 빈곤 국가의 기근, 대규모 난민 발생, 국제 분쟁 확산으로 연결된다. 핵전쟁의 첫 번째 희생자는 전장이 아니라 식탁이 될 수 있다. 연구진은 이러한 기후 교란이 열대수렴대(ITCZ)를 남쪽으로 밀어내며 전 지구적 물 순환을 왜곡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기후 시스템이 정상으로 회복되는 데는 최소 6년 이상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핵전쟁은 순간의 폭발이 아니라, 수년간 이어지는 느린 붕괴다. ◇방사능은 국경을 넘는다…즉각적 피폭과 장기 오염 핵폭발 직후의 방사능 피해는 더욱 직접적이고 치명적이다. 이번 연구에 따르면 폭발 후 48시간 이내에 약 100만 명이 급성 방사선 증후군을 유발하는 1시버트(Sv, 방사능 단위) 이상의 고선량 방사선에 노출된다. 이 가운데 약 17만 명은 중증 방사선 질환을 겪게 되며, 특히 10시버트 이상의 치명적인 선량을 직접 받는 약 8만 명은 적절한 의료 조치가 없을 경우 사실상 생존이 어렵다. 치명적 수준인 5시버트 이상의 방사능 오염 구역은 약 3500㎢에 달한다. 이 지역은 장기간 사람이 거주할 수 없는 '죽음의 땅'으로 변하게 된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방사성 물질은 성층권의 대기 순환을 타고 적도를 넘어 남반구까지 확산된다. 연구진은 사고 발생 10년 후 방출된 낙진의 약 40%가 남반구에 퇴적될 것으로 분석했다. 핵전쟁은 특정 국가를 공격하는 무기가 아니라 지구 전체를 오염시키는 장치다. 일반적으로 흉부 X-레이 1회 촬영할 때 노출되는 방사능은 약 0.1 mSv(밀리시버트(1 mSv = 1000분의 1 Sv)이고, CT 촬영도 1회 당 수 mSv~수십 mSv 정도에 노출된다. 일반인(방사선 작업자가 아닌 사람)의 경우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ICRP)가 제시한 권고 기준은 연간 1다. X선·CT 검사처럼 의료 목적으로 노출되는것 외에 추가로 노출되는 방사능 수준을 말하고, 보통 이 기준 이하일 경우 큰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다. 보통 한 번에 약 1시버트(Sv), 즉 1000mSv 이상에 노출되면 급성 방사선 증후군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한적 핵전쟁'이라는 착각…핵무기는 결코 국지적이지 않다 이번 엑스터대학 연구가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사실은 '제한적 핵전쟁'이라는 개념 자체가 사실상 성립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동유럽에서 핵탄두 100개가 사용되는 순간, 그것은 특정 국가의 군사적 충돌이 아니라 전 세계가 함께 감당해야 할 기후 재난이 된다는 것이다. 식량 안보는 무너지고, 기후 시스템은 흔들리며, 방사능 오염은 세대를 넘어 지속된다. 경제적 충격과 정치적 불안정까지 고려하면 피해는 사실상 문명 전체의 위기로 확장된다. 핵무기는 군사적 수단이 아니라 문명 파괴 장치다. 오늘날 국제사회가 핵 억제와 군비 통제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핵무기의 사용은 어떠한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반인류적 행위다. 40년 전 발생한 체르노빌 원전 사고의 재앙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우리는 이 비극을 단순히 과거의 역사로 소비해서는 안 된다. 여기서 얻은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제9회 서울에너지포럼’ 28일 개최…산업 생존과 성장 위한 에너지정책 논의

에너지경제신문과 에너지경제연구원, 에너지미래포럼, 한국자원경제학회가 공동 주최하는 '제9회 서울에너지포럼 2026'이 28일 오전 9시 30분부터 서울 서초구 엘타워 5층 오르체홀에서 개최된다. 최근 글로벌 공급망 불안과 에너지 안보 이슈, 인공지능(AI)·반도체 산업 성장에 따른 전력 수요 급증 등 복합적인 환경 변화 속에서, 산업 경쟁력 유지를 위한 현실적이고 지속가능한 에너지 정책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이번 포럼은 '산업의 생존과 성장을 위한 에너지 정책 방안'을 주제로, 급변하는 에너지 시장 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 방향과 제도 개선 방안을 집중적으로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포럼에서는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 확대와 전력시장 구조 개편, 산업계 에너지 비용 부담 완화, 공급 안정성 확보 등 주요 현안을 중심으로 산·학·연 전문가들이 다양한 해법을 제시한다. 특히 산업 경쟁력과 에너지 전환 간 균형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이어질 예정이다. 행사는 개회식과 기조강연을 시작으로 총 3개 세션으로 진행된다. 첫 번째 세션에서는 '에너지정책 및 구조개선 방안'을 주제로 김진수 한양대 교수가 발표를 하고 손양훈 인천대 명예교수(좌장), 조성봉 숭실대 명예교수, 김희집 서울대 겸임교수가 참여하는 패널토론이 진행된다. 두 번째 세션에서는 '산업 생존을 위한 지원 및 제도적 기반'을 주제로 전우영 국립서울과학기술대 교수가 발표를 하고, 박종배 건국대 교수(좌장), 박진표 태평양 변호사, 박우영 에너지경제연구원 본부장이 패널토론에 참여한다. 이어지는 세 번째 세션에서는 '산업부문 에너지 절감 및 효율화 방안'을 주제로 이유수 숭실대 교수가 발표를 하고, 조홍종 단국대 교수(좌장), 이상준 국립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 조상민 한국공학대 교수가 패널토론에 참여한다. 이번 포럼은 에너지 전환과 산업 경쟁력이라는 두 과제를 동시에 풀어야 하는 시점에서 정책과 시장의 접점을 찾는 자리가 될 것이며, 에너지 정책의 방향성과 산업 현장의 요구를 연결하는 의미 있는 논의의 장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EE칼럼] 한국 에너지 정책의 만기 불일치

이란 전쟁이 장기화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의 호르무즈 봉쇄를 무력화하기 위해 '호르무즈 이중 봉쇄' 카드를 꺼내들었다. 한편 한국은 이란 전쟁 이후 차단된 중동 석유 흐름을 유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국회는 걸프협력회의(GCC)국가 대사들을 만나 원유 최우선 공급 협조를 당부했고 청와대는 대통령 특사가 UAE를 방문해 원유 최우선 공급 약속을 받아냈으며, 4월 사우디, 카자흐스탄, 오만을 방문해 원유와 나프타 확보 방안을 타진하고 있다. 중동 국가는 왜 한국에 최우선 공급 노력과 약속을 천명했을까. 물론 청와대와 의회의 노력이 있었겠지만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한국이 중동 석유와 천연가스의 큰손, 장기계약자이기 때문이다. 업스트림 개발엔 대규모 자본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선 최소 20년 이상의 장기계약자 확약이 필요하다. 중동 걸프국 입장에서 한국은 단순히 자국 연료의 장기 수요자를 넘어 에너지 안보 자산 장기 투자자이며 경제성장 동반자이자 국가 안보 파트너다. 문제는 한국이 이번 전쟁을 계기로 중동 화석연료 의존도를 재생에너지로 대체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아무도 언급하지 않는 건 에너지 정책의 '만기 불일치'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다. 우리는 이미 과거 탈원전과 탈석탄을 진행했었고 이제 중동 석유와 가스 의존을 줄이려 하고 있다. 한국의 에너지전환은 '속도전'이다. 이는 화석연료와 탄소배출의 빠른 단절을 의미한다. 탈석탄과 탈가스가 이어질 것이고 내연기관차와 가스보일러 대신 전기차와 히트펌프로 대체될 것이다. 이를 위해 한국은 중동 석유와 천연가스 '장기계약' 비중을 빠르게 줄여야 한다. 장기계약 대신 현물 계약으로 바뀌어도 중동이 우리에게 최우선 공급을 약속할까. 아마 만나주지도 않을 것이다. 에네르기벤데로 온실가스를 줄이고자 한 독일은 지난 에너지 위기 국면에서 전 세계가 가스 수급에 혈안이 되어 있을 때에도 천연가스 장기계약을 꺼렸다. 이들은 여전히 재생에너지와 전기화가 미래라며 장기 에너지 균형 대신 단기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에 몰두했고 저렴한 파이프라인 가스 장기계약을 값비싼 현물 LNG와 저장고로 대체한 결과 급등하는 에너지비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의 에너지 전환정책은 에너지 믹스 간 균형과 함께 장기 균형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석유와 천연가스, 석탄이 단시일 내 없어지지 않는다면 연료 계약부터 전문인력, 관련 산업 생태계를 어떻게 유지해야 할지가 단기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보다 중요해진다. 중국의 에너지 정책의 대전제인 '선립후파' 역시 화석에너지 의존 감소의 큰 방향성에 동의하는 것이지 그 과정이 속도전이어야 한다는데는 반대하고 있다. 중국은 유럽의 에너지 전환을 '급진적 주장'이라 말하며 신뢰할 수 있는 대안이 마련되기도 전에 기존 에너지원을 퇴출시켜선 안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독일의 에너지전환 실패와 스페인 대정전은 단기적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에 매몰되어 장기 에너지 균형을 무시한 결과가 어떻게 에너지 위기를 불러올 수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탈원전과 탈화석연료는 쉽지만, 에너지 부족으로 추후 이들을 다시 찾을 때 제대로 운영되리란 보장이 없다. 당장 현물시장에서 연료 수급부터 쉽지 않을 것이다. 재생에너지를 늘리면 간헐성과 변동성을 지원할 가스 발전소 역시 같이 늘어나야 한다. 하지만 단기 재생 에너지 비중 확대 정책은 이 가스 발전 확대를 허락하지 않는다. 석유와 천연가스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석유와 천연가스에 의존해야 하는 역설을 이란 전쟁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특정 에너지원의 급격한 비중 확대와 축소는 장기 에너지 균형을 무너뜨려 에너지 위기에 가장 취약해진 모습으로 다가올 것이다. 독일은 이제 탈원전을 후회하고 있지만 없어진 발전소는 다시 돌아올 수 없다. 라이헤 에너지부 장관은 원전의 '엄청난 실수'를 가스로 메꿀 수 있다고 말했다. 카타르의 라스라판 복구엔 최대 5년이 걸리고 가스 발전 건설비용은 3배가 넘게 올랐다. 장기 에너지 정책 균형이 무너진 그들은 곧 2번째 실수를 고백하게 될 것이다.

ESG에 진심인 가스기술공사

가스기술공사가 실적 상승에 이어 기업의 사회적 선한 영향을 평가하는 ESG에서도 두각을 보이고 있다. 한국가스기술공사(사장 임종석)는 기관이 종합청렴도가 2024년 4등급에서 2025년 2등급으로 올랐다고 26일 밝혔다. 또한 중앙행정기관을 포함한 전국 450개 기관 중 '청렴도 평가 유공' 대상 7개 후보 기관에 선정되기도 했다. 가스기술공사는 최고경영진이 직접 부패취약분야 TF 팀장을 맡고 윤리경영을 직접 관리 함으로써 청렴문화가 제도적으로, 문화적으로 정착됨에 따라 이 같은 높은 청렴등급을 받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가스기술공사는 남성 중심 조직문화의 한계와 편견을 부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공사는 성평등가족부로부터 12년 연속 '가족친화인증'을 획득했다. 가족친화인증은 자녀출산과 양육지원, 유연근무 제도 등 일과 가정생활을 조화롭게 병행할 수 있는 조직문화를 조성한 운영 기관에 부여하는 제도다. 일례로 아빠 육아 참여 캠페인과 가이드라인 제작을 통해 남성 육아휴직 사용을 대폭 높였다. 또한 배우자 출산휴가 이용이 활발해지고 임신부터 육아까지 이어지는 전 주기적 지원 체계도 강화했다. 근로시간 단축을 위한 일하는 방식 개선을 통해 연장근로를 줄이고 쉼이 있는 일터 조성에 앞장선 점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와 함께 자녀수당 신설, 출산축하금 증액 등 경제적 지원을 확대하고 육아휴직 복귀자를 돕는 특화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가스기술공사는 실적도 크게 오르고 있다. 매출액은 2023년 3851억원에서 2024년 4123억원으로 증가했고,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162억원에서 214억원으로 증가했다. 윤병효 기자 chyybh@ekn.kr

[김성우 시평] 에너지 안보를 위한 전환의 조건

김성우 김앤장 법률사무소 환경에너지연구소장 최근 미국∙이란간 전쟁의 방향이 점점 불확실해지면서 에너지 안보를 위한 에너지 전환 필요성이 한층 더 강조되고 있다. 세계 원유 해상 수송의 약 20%가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 위기가 실제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동맥 경화를 일으키는 것을 목격하며, 지정학적 충격이 수급안정이라는 기본 전제를 허물고 에너지 시장의 전후방 공급망과 가격을 단숨에 교란시킨다는 사실을 체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포성 중에 추가로 더해진 금번 에너지안보 리스크는 앞으로도 계속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를 자아내며, 자국내에서 생산∙통제할 수 있는 재생에너지나 원자력 등으로의 전환이 공급망 수급 및 가격 충격을 완화하는 근본적 해법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영국 기후·에너지 싱크탱크 E3G는 지난 3월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특정 해협이 물리적으로 막히지 않더라도 전쟁 위험 고조로 해상 보험이 거부되어 수급 경색을 초래하는 '페이퍼 초크포인트(paper chokepoints)'를 새로운 위협으로 꼽았다. 마두라 조시 E3G 글로벌 청정전력 외교 프로그램 책임자는 “한국처럼 LNG 의존도가 높은 경제권은 장기간 시장 경색을 흡수할 여지가 제한적이어서 에너지 전환을 가속하는 것이 가장 지속가능한 회복탄력성의 길"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상술한 에너지 전환 필요성이 에너지 전환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에너지 전환이 지속가능하게 실행되기 위해서는 경제성이라는 조건이 따라붙는다. 아무리 국내산에너지가 안보 위기를 완화하더라도, 너무 비싸면 전환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경제성은 주로 기술가격과 금리에 영향을 받는다. 예컨대, 태양광 발전단지를 에너지저장장치와 함께 건설할 경우를 가정하면, 태양광 패널과 에너지저장장치가 얼마나 비싼지와 이를 구매하기 위해 은행에서 돈을 빌릴 때 이자가 얼마인지에 따라 해당 투자의 경제성이 결정된다. 다행히 그 동안 기술가격의 하락은 괄목할 만하다. 태양광 패널의 가격은 2007년 이후 95% 하락했고, 배터리 전력저장장치는 2010년 이후 93% 하락했다. 글로벌 리서치 기관인 블룸버그 뉴에너지 파이낸스가 지난 1월에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글로벌 에너지 전환 투자는 2.3조 달러로 전년 대비 8% 성장해 역대 최고규모를 기록했다고 밝혔는데, 이러한 대규모 투자 확대의 배경에는 기술가격의 하락이 큰 역할을 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전기차의 경우도 내연기관차 대비 전기차가격이 얼마인지가 중요한데, 배터리 가격하락 등이 전기차 가격에 하방압력을 가해 꾸준히 하락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중국내 전기차 가격은 이미 내연기관차 대비 약 15% 정도 저렴한 상황이다. 하지만 문제는 금리다. 미국∙이란 전쟁으로 유가가 오르고 이는 인플레이션 우려를 증폭시켜 정부가 금리를 내리기는 쉽지 않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러∙우 전쟁 이후에도 지금처럼 에너지안보 이슈가 부상했고 이는 대규모 에너지 전환을 예고했었지만, 금리가 오르면서 에너지 전환이 기대에 못 미쳐 관련 주가가 힘을 받지 못했던 사실을 시장은 기억하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사인 우드 맥킨지 분석에 따르면, 2024년 기준 금리가 2% 상승할 경우 재생에너지 발전단가는 약 20% 상승하는 반면, 가스발전의 단가는 11% 상승에 그친다. 이는 재생에너지의 초기투자비 비중이 상대적으로 커서 조달 금리 상승시 경제성에 더 불리하기 때문이다. 지난 2월 이란에서 촉발된 지정학적 위기는 과거 에너지 수급 차질과는 차원이 다른 복합위기로, 에너지 공급망 수급차질이나 장기가격 상승 위기에 산업경쟁력 위기로까지 번지다 보니 근본적 해법에 여느 때 보다 많은 관심이 쏠려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에 그 동안 상대적으로 안정성이 떨어진다고 여겨 온 국내산 저탄소 에너지로의 전환 필요성이 재조명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그러나, 에너지 전환이 실제로 실행되고 지속가능하려면 기술가격과 금리라는 경제성 조건도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는 과거 교훈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ekn@ekn.kr

[기후신호등] 유럽 식민지배의 ‘보이지 않는 유산’…사라진 언어, 무너진 생태계

21세기 인류는 기후위기와 생물다양성 붕괴라는 전례 없는 환경 위기 속에 놓여 있다. 그러나 최근 학계는 이 위기의 뿌리가 단지 산업화나 현대 경제 시스템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훨씬 더 오래된 역사적 과정, 즉 식민지배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는 사실을 점점 더 분명히 밝히고 있다. 오스트리아 빈대학교와 네덜란드 위트레흐트대학교 연구진이 수행한 한 국제 공동 연구는 이러한 문제를 정면으로 다뤘다. 연구팀은 최근 '사람과 자연(People and Nature)'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식민지배가 오늘날의 생태계와 문화 다양성에 어떤 흔적을 남겼는지를 정량적으로 분석했다. 연구의 결론은 단순하면서도 충격적이다. 유럽 식민세력의 지배 기간이 길수록, 해당 지역의 생물다양성과 언어 다양성이 동시에 더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는 것이다. ◇“100만 종이 사라질 수 있다"… 이미 시작된 붕괴 현재 지구 생태계는 과거 어느 시기보다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연구에 따르면 현대의 생물 멸종 속도는 인간이 지구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이전과 비교해 100배에서 많게는 1000배까지 증가했다. 이 같은 급격한 변화로 인해 약 100만 종이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는 추정도 제시된다. 언어 역시 상황은 다르지 않다. 전 세계에는 약 7000개의 언어가 존재하지만, 이 가운데 최소 40%가 사라질 위험에 놓여 있으며, 지난 500년 동안 수천 개의 언어가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생물 다양성 위기와 언어의 소멸이라는 두 현상은 별개처럼 보이지만, 연구진은 이를 하나의 개념으로 묶는다. 바로 '생물문화 다양성(biocultural diversity)'이다. 이는 특정 지역의 생물종 다양성과 언어·문화 다양성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는 개념이다. 실제로 토착 언어는 지역 생태계에 대한 지식, 약용 식물 활용법, 지속 가능한 자원 관리 방식 등을 담고 있기 때문에, 언어가 사라진다는 것은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의 상실이 아니라 생태 지식 체계의 붕괴를 의미한다. ◇176개국 분석… “식민지배 기간이 핵심 변수" 연구팀은 전 세계 176개국을 대상으로 생물과 언어의 위협 수준을 동시에 분석했다. 생물다양성은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의 적색 목록(Red List) 데이터를 활용해 양서류·조류·포유류·파충류를 기준으로 평가했다. 언어 다양성은 전 세계 6921개 언어를 포함한 '민족학(Ethnologue)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해 분석했다. 연구진은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산출한 '적색 목록 지수(Red List Index, RLI)'를 활용, 각 국가의 위협 수준을 0과 1 사이의 값으로 환산했다. 이 지수는 1에 가까울수록 위협이 낮고, 0에 가까울수록 위협이 높음을 의미한다. 이후 연구진은 다양한 변수—도시화, 농업, 경제 수준, 교육 수준, 기후 조건—를 함께 분석했는데,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결과가 도출됐다. 생물다양성과 언어 다양성 모두에 동시에 영향을 미치는 유일한 변수는 '유럽 식민세력의 점유 기간(occupation time)'이었다. 구체적으로 보면, 식민지배 기간이 길어질수록 언어 다양성 위협은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증가했고 (회귀계수 -0.21, p=0.004), 생물다양성 위협 역시 강하게 증가했다(회귀계수 -0.18, p=0.001). 두 요소를 합친 생물문화 다양성 위협도 증가했다(회귀계수 -0.10, p=0.033). 이 수치는 단순한 상관관계를 넘어, 식민지배가 장기적으로 생태계와 문화 모두를 훼손하는 구조적 원인이었음을 보여준다. ◇왜 식민지배는 두 영역을 동시에 파괴했나 식민지배가 생물과 언어를 동시에 파괴한 이유는 그 구조에 있다. 식민주의는 단순한 정치 지배가 아니라, 경제·사회·문화·환경을 총체적으로 재편하는 시스템이었다. 먼저 생물다양성 측면에서 식민지배는 대규모 자원 착취를 동반했다. 설탕·면화·고무와 같은 상품 작물을 생산하기 위해 숲과 초지가 농지로 전환됐고, 이는 서식지 파괴와 생태계 단절로 이어졌다. 또한 유럽에서 유입된 외래종은 토착 생태계를 교란시켰고, 대형 포유류와 조류는 식량·모피·장식품 등의 목적으로 대량 사냥됐다. 언어와 문화 측면에서도 상황은 유사했다. 식민지배 과정에서 원주민 공동체는 전쟁과 질병으로 급격히 감소했고, 강제 이주와 토지 수탈로 공동체 기반이 붕괴됐다. 여기에 더해 교육과 행정에서 토착 언어 사용이 금지되고 제국 언어가 강요되면서 언어 소멸이 가속화됐다. 결국 식민지배는 자연과 인간 공동체를 동시에 해체하는 과정이었으며, 그 결과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끝나지 않은 과거"… 수십 년 지속되는 '지연 효과' 이 연구가 특히 강조하는 개념은 '지연 효과(time-lag)'다. 이는 과거의 사건이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도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의미한다. 연구에 따르면 식민지배는 이미 수십 년 전에 종료됐음에도 불구하고, 그 영향은 여전히 현재의 생물다양성과 언어 다양성 위협 수준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으로 남아 있다. 이는 생태계와 문화 시스템이 한 번 붕괴되면 쉽게 회복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특정 언어가 사라지면 그 언어에 담긴 전통 지식도 함께 사라지며, 멸종된 종은 다시 복원할 수 없다. 또한 사회 구조와 경제 시스템 역시 식민지 시기에 형성된 경로를 따라 지속되는 경향이 있다. 연구진은 이를 두고 “과거의 인간 활동이 현재의 위기를 구조적으로 규정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국 사례: 식민지배가 남긴 생태와 언어의 상처 오스트리아와 네덜란드 연구진은 전 지구적 통계 분석을 수행했지만, 유럽 식민주의를 대상으로 수행됐다. 하지만, 이러한 분석은 한국의 역사에도 그래도 적용된다. 일본의 식민 지배 역시 유럽과 마찬가지로 자연과 문화를 말살하려는 동일한 역사적 인식과 실천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식민 지배라는 대규모 사회·정치적 사건이 지배 주체와 상관없이 생태계와 문화에 장기적인 지연 효과를 남긴다는 연구의 핵심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일제강점기 동안 한반도에서는 대규모 생태 파괴가 이루어졌다. 대표적인 사례가 조선호랑이의 박멸이다. 일본 제국은 '유해조수 구제'라는 명목으로 포획 보상금을 지급하고 군경과 사냥꾼을 동원해 조직적인 사냥을 벌였다. 그 결과 조선호랑이는 20세기 중반 사실상 멸종 상태에 이르렀다. 산림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조선총독부와 일본 학계는 '연구'와 '개발'을 명분으로 백두대간 일대의 금강소나무 원시림을 30년 이상 체계적으로 벌목했다. 이는 단순한 산림 이용을 넘어, 식민지 경제 구조에 맞춘 자원 수탈이었다. 언어와 문화에 대한 억압도 심각했다. 창씨개명 정책을 통해 한국인의 이름이 강제로 일본식으로 바뀌었고, 학교와 공공 영역에서는 한국어 사용이 금지됐다. 이는 언어 다양성 억압의 전형적인 사례로, 연구에서 지적된 식민지 동화 정책과 정확히 일치한다. ◇21세기엔 다국적 기업이 문제를 일으켜 스페인 바르셀로나 자치대학교 환경과학기술연구소(ICTA-UAB)의 마르셀 야베로-파스키나 교수는 지난해 5월 '글로벌 환경 저널(Global Environmental Change)'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세계 곳곳에서 환경 갈등을 유발하는 100여 개의 글로벌 대기업, 이른바 '슈퍼갈등기업(superconflictive companies)'을 고발했다. 베로-파스키나 교수는 세계 최대 환경 갈등 데이터베이스인 '환경정의 아틀라스 세계지도 (Global Atlas of Environmental Justice, EJAtlas)'의 데이터를 활용해, 총 3388건의 환경 분쟁과 함께 이에 연루된 5589개 기업을 분석했다. 그 결과, 2%에 불과한 104개 기업이 전체 갈등의 무려 20%에 연루돼 있다는 점을 밝혀냈다. 금·은·리튬 등의 광물과 석유·가스 같은 화석연료 채굴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전 세계 환경 갈등 가운데 5분의 1을 이들 100여 개 다국적 기업이 유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21세기 들어 다국적 기업과 거대 자본이 중저소득 국가에 진출해 자원을 개발하는 방식은 과거 식민지배와 구조적으로 유사한 측면을 보인다. 광산 개발, 플랜테이션 농업, 대규모 인프라 건설 등은 열대우림과 자연 서식지를 빠르게 농지와 산업용지로 전환시키며, 이는 생물다양성 감소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한다. 특히 이러한 개발이 현지 생계가 아니라 글로벌 시장을 위한 수출 구조에 기반한다는 점에서, 과거 식민지 시기의 원자재 수탈 경제와 닮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만 식민지배가 정치·군사적 강제에 기반했다면, 오늘날은 시장과 투자, 고용이라는 경제적 유인을 통해 변화가 이뤄진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발로 인한 공동체 해체와 도시화, 노동 이동은 소수 언어의 약화를 불러오는 간접적 효과까지 낳고 있어, 현대의 자원 개발 역시 생태계뿐 아니라 문화 다양성에도 장기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평가가 점점 힘을 얻고 있다. ◇생태와 문화는 하나다 오스트리아 연구팀의 연구가 던지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분명하다. 생물다양성과 언어 다양성은 별개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특히 토착 공동체가 관리하는 지역은 전 세계 육지의 약 30%를 차지하며, 보호구역의 최소 40%가 이들과 관련되어 있다. 이는 생태계 보전과 문화 보전이 동일한 기반 위에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따라서 생물다양성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종을 보호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언어와 문화, 그리고 공동체 자체를 함께 보호해야 한다. 연구진은 향후 정책 방향도 제시했다. △원주민과 지역 공동체의 토지 및 자원 관리권을 강화할 것 △소수 언어를 보호하는 교육과 정책을 펼칠 것 △집약 농업과 무분별한 도시화를 제한할 것 △국제 생물다양성 협약과 언어 보호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이행할 것 등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과거를 고려하는 정책 설계다. 식민지배와 같은 역사적 사건이 현재의 위기를 만든 만큼, 이를 무시한 채 미래를 설계하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이 될 수 없다는 게 연구팀의 주장이다. 결국 식민지배는 끝난 역사처럼 보이지만, 그 영향은 결코 과거에 머물러 있지 않다. 사라져가는 언어와 멸종 위기에 처한 생물종은 그 흔적을 지금도 증언하고 있다. 강찬수 기후환경 전문기자 kcs25@ekn.kr

간척지부터 베란다 태양광까지, 재생에너지 100GW 로드맵 윤곽

정부가 2030년 재생에너지 100GW 달성을 위한 밑그림을 구체화하고 있다. 간척지·군사접경지역 등 대규모 부지부터 산업단지 지붕, 지역 마을, 아파트 베란다까지 활용 가능한 모든 공간을 총동원하는 방식이다. 다만 현재 추진 물량을 단순 합산해도 목표 달성에는 부족한 것으로 파악된다. 24일 기후에너지환경부와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경기 시화·화옹지구, 파주 접경지역 등을 중심으로 GW급 대규모 태양광 단지 조성을 추진 중이다. 시화·화옹지구에는 약 3GW, 파주 일대에는 그 이상의 규모가 거론된다. 기존 최대 규모인 새만금 수상태양광(1.2GW)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인천 수도권 매립지에도 GW급보다는 작지만 수백 메가와트(MW) 규모 대규모 사업이 검토되고 있다. 이에 업계에서는 경기도 대단지를 포함해 여러 공공부지를 이용하면 2030년까지 최대 10GW까지도 늘릴 수 있지 않겠느냐는 기대가 나온다. 정부가 수도권에 주목하는 이유는 송전망 용량에 여유가 있어서다. 한국전력 재생에너지 연계 여유용량에 따르면 올해 기준 경기도는 약 107GW로, 전남(0GW), 전북(0.6GW), 충남(1.5GW) 등 지방 대비 압도적으로 크다. 다만 송전망 여유가 곧바로 설비 확대 가능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송전된 전력을 최종 수요지까지 전달할 배전망 구축이 필요하고 지방자치단 규제와 부지 확보 문제도 여전히 변수다. 그럼에도 간척지, 군사접경지역, 수도권 매립지 등 유휴부지 규제가 완화될 경우 대규모 태양광 확대가 가능하다는 판단 아래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이 같은 전략의 핵심 축으로 떠오른 곳이 시화·화옹지구다. 약 3000만평 규모 간척지로, 정부는 수도권 최대 재생에너지 잠재지로 보고 있다. 김민석 총리는 지난 22일 현장을 방문해 “에너지 전환 방향은 확고하며 이제는 속도와 집행력의 문제"라며 조속한 사업계획 수립을 지시했다. 접경지역 역시 전략 거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경기북부는 약 6GW 수준의 송전망 수용 여력을 갖추고 있다. 유휴부지가 넓고 민원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은 데다, 반도체·AI 클러스터 등 대규모 전력 수요처와 인접해 '지산지소' 구현이 가능하다는 점이 강점으로 꼽힌다. 대규모 단지 외에도 중소형 분산형 모델도 병행된다. 산업통상부는 '산업단지 태양광 활성화 방안'을 통해 2030년까지 산업단지 지붕과 유휴부지에 총 6GW 보급 목표를 제시했다. 주민이 직접 발전 수익을 공유하는 '햇빛소득마을'은 2030년까지 2500개 조성, 최대 2.5GW 규모로 추진된다. 국회와 정부는 이들 사업에 대해 전력망 우선 접속을 허용하는 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아파트 베란다 태양광도 10만 가구 보급 시 약 0.1GW 수준의 전력 확보가 가능하다. 그러나 현재 누적 재생에너지 설비는 약 38GW 수준으로, 대단지·산단·마을·주택 물량을 모두 더해도 100GW 달성에는 여전히 부족하다. 풍력 역시 보급 속도가 더딘 상황이다. 목표대로라면 2030년까지 육상풍력 6GW, 해상풍력 3GW 수준에 그친다. 이를 단순 합산하면 경기도 대단지 최대 10GW, 산업단지 6GW, 햇빛소득마을 및 베란다 태양광 2.6GW, 육상풍력 6GW, 해상풍력 3GW 등 총 28GW 수준이다. 기존 설비(38GW)를 더해도 약 66GW에 그친다. 이마저도 모든 사업이 계획대로 추진된다는 가정 하의 수치다. 결국 추가로 약 30GW 이상을 공공과 민간이 별도로 확대해야 하는 상황이다. 한 전력당국 관계자는 “2030년 재생에너지 100GW 목표는 실제 달성 여부를 떠나 재생에너지를 최대한 확대하겠다는 상징적 의미로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정부 부처, 탄소중립법 초기에 가파른 감축목표 명시 반대 의견

정부 부처들이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에 초기에 더 빠르게 줄이는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명시하지 말 것을 국회에 의견으로 제출했다. 구체적인 목표는 향후 기술 발전 등을 고려해 시행령으로 정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판단에서다. 법에 5년마다 강력한 NDC를 규정할 경우, 이를 지키지 못하면 정부가 위법 소지에 놓일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24일 국회에 따르면 기후에너지환경부, 산업통상부, 기획재정부, 재정경제부는 선형 감축을 기준으로 탄소중립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공동 의견서를 제출했다. 선형 감축이란 2050년까지 탄소배출을 '0'으로 만들기 위해 2018년부터 매년 동일한 수준으로 온실가스를 줄이는 방식을 의미한다. 이 기준에 따르면 2035년에는 2018년 대비 53%, 2040년 69%, 2045년 84%를 감축하게 된다. 이를 하한선으로 설정하고, 기술 발전에 따라 추가 감축이 가능할 경우 시행령을 통해 조정해야 한다는 게 정부의 주요 입장이다. 실제로 현행 탄소중립법에는 2030년 NDC를 35% 이상으로 규정하고 있으나, 시행령에서는 이를 40%로 상향해 적용하고 있다. 다만 산업부, 기획재정부, 재정경제부는 기후부보다 더 보수적인 입장을 보였다. 기후부는 선형 감축을 하한선으로 두고 구체적인 목표는 시행령으로 정하자는 입장인 반면, 산업부 등은 선형 감축 외에도 후반부에 감축을 집중하는 시나리오도 검토할 필요성을 제시했다. 국회 기후특별위원회는 지난 16일과 23일 탄소중립법 개정안을 심사했다. 이는 헌법재판소가 2024년 8월 탄소중립기본법에 대해 2030년 NDC와 2050년 탄소중립 목표만 포함하고, 2031~2049년 감축 경로가 빠져 있다는 이유로 위헌 결정을 내린 데 따른 후속 조치다. 현재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2035년 NDC를 65% 이상, 2040년에는 85% 이상으로 명시한 법안이 발의된 상태다. 반면 국민의힘은 선형 감축을 기준으로 NDC를 설정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정부 부처와 국민의힘이 선형 감축을 기준으로 제시하나 민주당은 국회 기후특위 공론화위원회 국민숙의단 결과를 근거로 초기에 감축을 강화하는 방안을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13일 발표된 조사에서 국민숙의단의 77.9%는 2031~2050년 기간 동안 초기에 감축을 더 가파르게 하는 경로를 지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기후특위 활동이 다음달 말 종료되는 만큼, 탄소중립법 개정안을 둘러싼 여야 간 충돌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한전 중심 원전수출 일원화, 임시방편 불과”…원전업계 ‘근본 구조개편’ 촉구

정부가 추진 중인 '한전 중심 원전수출 일원화' 방안이 오히려 구조적 문제를 반복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단순 협약 수준의 체계 개편으로는 글로벌 원전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24일 노동석 서울대학교 원자력정책센터 연구위원은 '원전수출 체계 개편' 관련 “현재 논의되는 한전-한수원 협력 협약 방식은 이원화 해소라는 취지는 인정되지만 근본적인 해법이 되기에는 한계가 명확하다"고 지적했다. 센터는 특히 한국전력공사 중심의 수출 구조에 대해 강한 우려를 나타냈다. 한전은 누적 적자와 200조 원을 웃도는 부채를 안고 있는 상황에서 수출 금융 조달과 대외 협상을 주도하기에는 신용도 측면에서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원전 수출은 수십 년 단위의 장기 프로젝트인 만큼 초기 금융 구조 설계에서 주계약자의 재무 건전성이 핵심 변수로 작용한다는 설명이다. 또한 2001년 전력산업 구조개편 이후 한전이 발전 기능을 분리한 지 20년 이상 지나면서 실제 원전 건설·운영 역량이 약화됐다는 점도 문제로 꼽혔다. 현재 해외 원전사업 인력도 200명 이하 수준에 그쳐 독자적 수행이 어려운 구조라는 분석이다. 이번 방안의 핵심인 '공동 주계약 구조' 역시 리스크 요인으로 지목됐다. 센터는 한국수력원자력과 한전 간 갈등이 표출됐던 UAE 바라카 원전 사례를 언급하며 “문제의 본질은 계약 형태가 아니라 최종 의사결정 권한이 분산된 구조였다"고 진단했다. 공동 주계약 방식은 설계 변경, 공기 지연, 추가 비용 발생 시 책임 소재를 둘러싼 해석 갈등을 근본적으로 해소하지 못해 향후 유사 분쟁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센터는 원전 수출 경쟁력이 특정 기관이 아닌 산업 전반의 '가치사슬 결집'에서 나온다는 점도 강조했다. 설계(한국전력기술), 기자재(두산에너빌리티), 연료(한전원자력연료), 정비(한전KPS), 시공(현대건설 등)까지 유기적으로 작동해야 경쟁력이 확보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번 협약은 한전-한수원 관계 재정립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어 이러한 전주기 산업 구조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정책 결정 과정에 대한 문제 제기도 나왔다. 센터는 이번 방안이 연구용역과 일부 기관 중심 논의를 통해 도출된 뒤, 공식 발표 이전에 언론을 통해 여론을 탐색하는 방식으로 추진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원전 수출 체계 개편은 국가 전략 사안인 만큼 학계·산업계·관련 협회 등이 참여하는 공론화 과정이 선행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센터는 중장기 대안으로 '원자력발전공사(가칭)' 설립 또는 원전 중간지주회사 신설을 제시했다. 한전 산하에 원전 지주 구조를 두고 한국수력원자력, 한국전력기술 등을 편입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단일 의사결정 체계를 구축하고 사업 전주기를 통합 관리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원전 수출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원자력산업 지원 특별법' 제정을 통해 금융·인력·기술 지원을 제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프랑스 EDF, 러시아 로사톰, 중국 국영 원전기업들이 모두 법적 기반 아래 수직계열화 체계를 갖춘 것과 대비된다는 지적이다. 센터는 글로벌 원전 시장이 2050년까지 600GW, 3000조 원 규모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하며 “체코 두코바니 수주 이후 유럽·중동·동남아 시장 진출이 본격화되는 지금이 구조 개편의 적기"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부에 △한전-한수원 협약 유보 △공론화 기구 구성 △복수 대안 검토 △특별법 입법 로드맵 마련 등을 촉구했다. 센터는 “원전 수출 체계 개편은 기관 간 이해관계를 넘어 국가 산업 전략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며 “임시방편이 아닌 근본적 구조 개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단독] 혈세 3조 쓰고도 부실 플랜트 구축…“1달러 매각 이제 납득 간다”

한국광해광업공단이 3조원가량 손실을 본 멕시코 볼레오 구리광산 프로젝트. 당초 포나인(99.99%)급의 고품질 전기동을 생산할 수 있는 시설로 알려져, 왜 1달러에 매각됐는지 궁금증을 자아냈으나 서서히 미스테리가 풀리고 있다. 전직 직원 등에 의하면 포나인급 제품은 시험실에서 아주 조금만 생산됐으며, 실제 상업제품의 순도는 시장경쟁력도 없는 저품질 수준으로 드러나고 있다. 24일 산업통상부와 광업계에 따르면 한국광해광업공단은 운영사로 있던 멕시코 볼레오 구리광산 프로젝트를 지난해 말에 현지 기업에 단 1달러에 매각하고, 올해 3월에 정부 승인 절차까지 모두 완료했다. 계약 내용은 이달 말에 공시를 통해 공개할 예정이다. 광해광업공단이 볼레오 프로젝트에 투자한 돈은 2008년부터 2024년까지 총 3조1689억원이다. 투자손실률은 90%를 넘는다. 산업부와 공단 측은 매년 수천억원대의 손실과 막대한 부채 때문에 1달러 매각이 어쩔 수 없었다는 입장이다. 산업부는 본지의 볼레오 프로젝트 1달러 매각 기사에 대한 해명자료에서 “매각 당시 볼레오 사업의 가치는 음(-)으로 평가돼 실질 매각가치가 없는 상황이었고, 거래를 위해 최소 명목가액인 1달러로 매매가를 설정했다"며 “2022년 이후 3차례 유찰(입찰자 전무)되는 등 인수 희망 기업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매수의향자가 나타나 매매가는 1달러로 하되 매수자가 잔여 부채를 모두 부담하는 조건으로, 조속히 매각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해 매각계획을 승인했다"고 설명했다. 볼레오 프로젝트의 현지 운영법인 MMB(Minera Metalurgica del Boleo)의 2024년 기준 경영실적은 매출액 1982억원, 영업손실 677억원, 당기순손실 3046억원이다. 재무 구조는 총자산 2986억원, 총부채 3조389억원으로, 2조7403억원 자본잠식 상태이다. 이 법인의 광해광업공단 지분율은 80.52%이다. 그동안 광해광업공단이 투자한 돈은 대부분 정제련 플랜트 구축에 사용됐다. 플랜트의 연간 제품 생산능력은 전기동(구리) 5만6700톤, 코발트 1700톤, 황산아연 2만5000톤이다. 특히 플랜트는 핵심 제품인 전기동을 포나인급으로 생산할 수 있는 최고 수준으로 설계됐다. 광해광업공단의 전신 중 하나이자 당시 볼레오 프로젝트를 이끌었던 한국광물자원공사는 2017년 발간한 50년사 책자에서 “볼레오 동 생산의 최종 형태는 가로 1m, 세로 1m, 두께 0.55cm~0.56cm, 무게 약 50kg의 순도 99.99% 전기동판이다"라고 소개했다. 산업부도 해명자료에서 “볼레오 사업의 제련 플랜트에서 2015년 순도 99.99%의 전기동을 생산한 것은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볼레오 플랜트의 포나인급 전기동 생산은 조작에 가까운 허위인 것으로 드러났다. 볼레오 프로젝트에서 근무했던 한 관계자는 “2015년 99.99% 전기동 제품을 생산한 것은 맞으나, 그것은 시험실에서 만든 것일 뿐, 절대 상업적 생산 제품이 아니다"라며 “거기 환경에서는 절대 포나인급의 전기동을 생산할 수 없었다"고 증언했다. 관계자는 포나인급을 생산할 수 없는 이유로 진흙 섞인 저품위 광석을 꼽았다. 그는 “프랑스 기업이 고품위 광석을 모두 캐내고 저품위 광석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고, 여기에 노천광산은 진흙까지 범벅돼 있어 이를 정제하려면 너무 많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한 환경이었다"며 “볼레오 광산에 처음 갔을 때 한숨이 가장 먼저 나왔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당시 광물자원공사의 상황을 잘 아는 다른 관계자는 “볼레오 플랜트는 2014년 9월 완공하고, 2015년 1월 시험생산한 뒤 7월에 첫 수출을 했다고 한다. 세계 어떤 제련회사도 설비 완공 후 몇 달만에 포나인급 제품을 상업 생산하기는 힘들다"며 “광업 및 금속업계 종사자라면 이 소리가 얼마나 엉터리인지 금방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광해광업공단의 감독 부처인 산업통상부는 본지의 취재에 확인해 보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산업부 관계자는 “볼레오 플랜트가 포나인급이라는 것은 공단으로부터 보고 받은 것"이라며 “포나인급이 아닐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 공단에 확인해 보겠다"고 말했다. 광업계에서는 혈세 3조원가량의 손실을 입힌 볼레오 구리광산 프로젝트 투자 건에 대해 철저한 조사와 필요 시 감사까지 진행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윤병효 기자 chyybh@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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