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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사이트]살아날 기미 없는 내수경기, 기다리지 말고 세계로 나가자

2025년 들어서도 내수경기의 반등 신호는 좀처럼 감지되지 않는다. 유통·관광·외식 업계를 중심으로 소비심리는 여전히 얼어붙어 있고, 대형마트와 백화점, 면세점 등 전통 오프라인 유통 채널은 구조적 한계와 온라인 소비 확산이라는 이중고에 직면하고 있다. 국내 경제의 큰 축을 담당하던 소비가 침체된 지금은 시선을 바깥으로 돌려야 할 시점이다. 이미 우리 제품과 콘텐츠를 기다리고 있는 세계 소비자들을 향해 보다 적극적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브랜드의 본질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많은 연구들은 구매의 과정을 '이성의 문지방'을 넘은 후 '감성의 세계'로 진입하는 흐름으로 설명한다. 제품의 품질이 일정 기준 이상이 되어야 구매 고려 대상이 되며, 그 이후에는 디자인, 스토리텔링, 문화적 상징성 같은 감성 요소들이 브랜드의 힘을 결정짓는다. 브랜드는 단순한 상품명이 아니라, 소비자와의 정서적 연결고리다. 이 연결고리가 만들어질 때, 제품은 '필요'가 아닌 '욕망'의 대상이 된다. 그렇게 되면 가격은 원가나 기능이 아닌, 브랜드가 만들어낸 감정적 가치에 따라 매겨진다. 바로 이 지점에서 고부가가치 창출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한국은 이미 품질의 관문을 넘어섰다.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산 제품은 기술력, 신뢰도, 완성도 면에서 충분한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이 제품들을 감성적으로 연결해줄 수 있는 브랜드 전략이다. 소비자의 정서에 깊이 스며드는 브랜드, 다시 말해 갖고 싶은 브랜드가 될 수 있어야 한다. 그 사례를 확인하기 위해, 필자는 작년 여름 도쿄 오모테산도 거리를 찾았다. 이곳은 일본의 아트, 건축, 고급패션이 집약된 거리로, 세계 명품 브랜드들과 일본 토종 고급 브랜드들이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고 있는 상징적 장소다. 그런데 가장 눈에 띄는 곳은 놀랍게도 한국 브랜드 '젠틀몬스터' 매장이었다. 안경 브랜드임에도 불구하고 파격적인 인테리어, 예술 전시를 방불케 하는 공간 구성, 강렬한 스토리텔링이 젊은 세대의 감성을 강하게 자극하고 있었다. 유럽의 명품도 아닌, 일본의 톱 브랜드도 아닌 이 한국 브랜드 앞에 줄을 선 고객들의 상당수는 일본 현지인과 중국 관광객이었다. 이는 단순한 패션이 아닌, '문화적 체험'으로서의 브랜드가 세계 시장에서 통하고 있다는 명확한 증거다. 브랜드의 성공은 단기간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일본이 그랬다. 1960~1980년대, 일본의 단카이 세대는 고도 경제성장의 시기를 살면서 세계적 브랜드를 다수 배출해냈고, 그 과정에서 'Made in Japan'은 품질의 대명사가 되었다. 음악, 애니메이션, 게임, 패션 등의 문화 콘텐츠도 이와 함께 성장하며 '쿨 재팬(Cool Japan)'이라는 브랜드 가치를 만들어냈다. 세계의 젊은이들은 일본 브랜드를 단순히 기능적인 제품으로 소비한 것이 아니라, 일본 문화를 소비한 것이었다. 그 문화적 자부심과 감성은 프리미엄의 근거가 되었고, 일본은 문화 강국이자 소비 선도국으로 군림했다. 지금 한국은 그와 유사한 기점에 서 있다. 전 세계에서 K-pop, K-드라마, K-무비, K-뷰티, K-푸드에 이르기까지 'K'로 시작되는 수많은 브랜드들이 하나의 글로벌 문화 트렌드가 되었다. BTS가 전 세계의 소셜 문화를 주도하고, 봉준호 감독의 영화가 오스카 무대에서 조명을 받고, 한강 작가의 문학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지금, 한국은 더 이상 문화의 변방이 아니다. 감성의 흐름 속에서 주도권을 가진 국가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한국 제품은 품질 경쟁력을 넘어서 감성적 스토리텔링과 연계된 브랜드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이른바 '감성 소비 시대'에 적합한 제품과 브랜드 전략이 필요하다. 소비자들은 더 이상 단순히 좋은 물건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선택한 브랜드를 통해 정체성을 드러내고 감정을 표현한다. 한국이 가진 감성과 품질, 그리고 문화적 역량은 이미 세계 수준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이 자산들을 전략적으로 연결해주는 촘촘한 브랜드 정책과 과감한 글로벌 진출 전략이다. 세계는 지금도 '다음 한국'을 기다리고 있다. 박주영

[이슈&인사이트] 트럼프, 중국과의 관세전쟁에서 얻은 것이 있는가?

미중 양국이 치킨게임 속에 서로 부과한 상호관세를 일단 90일간 대폭 낮추기로 했다. 미국은 지난달 2일 이후 중국 상품에 부과한 추가 관세 125% 중 91%는 취소하고 24%는 90일간 유예하기로 했다. 중국도 미국에 대한 보복관세율을 미국과 같은 폭으로 115%포인트 내려 기존 125%에서 10%로 조정했다. 보복 악순환 속에 관세율이 100% 넘게 치솟았던 점을 고려하면 파격적인 수준이다. 휴전 기간에 경제, 통상 현안에 대한 추가 협상을 하기로 하였다. 양국이 합의에 이르게 된 데는 강대강 대치가 지속될 경우 경제가 회복할 수 없는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위기감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관세 폭탄으로 중국과의 무역이 사실상 스톱된 상황에서 물가가 크게 오르고 올해 1분기 GDP 성장률이 마이너스 수치를 기록하는 등 경고등이 켜졌다. 월마트, 타깃, 홈디포 등 미국의 주요 소매업체 대표들이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조만간 '매대가 텅 비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특히, 희토류 수출 규제와 보잉사에 대한 항공기 인도 중단 조치라는 미국의 아킬레스건을 노린 조치가 심각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중국도 대미 수출액이 급감하고 이에 따라 공장 가동에 어려움이 야기되는 등 무역 전쟁으로 인한 피해가 본격화하고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우호적이지만 건설적인 형태로, 전면적인 리셋(reset·재설정) 협상이 있었다며 큰 진전이 이뤄졌다고 평가했지만, 관세를 대폭 부과한 지 한 달여 만에 크게 인하키로 하면서도 중국으로부터 구체적인 양보를 얻어내지는 못했다. 트럼프가 손에 쥔 것이 보이지 않는다. '거래의 달인'으로서 협상 기술을 자랑해온 트럼프가 사실상 기싸움에서 시진핑에게 밀린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온다. 중국에 대한 트럼프식 관세전쟁은 처음부터 실패가 예고되었다고 할 수 있다. 미국 소비자들이 값싼 중국 제품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높은 관세를 부과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수입 제품 부족과 물가 상승을 초래하여 유권자들의 불만이 야기되기 때문에 정치적 압력을 견딜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중국과 같은 사회주의 국가와 싸우기 위해서는 조직적으로 임해야 하는 데, 트럼프 개인의 임기응변에 의존하고 있다. 또한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하는데, 중국과 무역전쟁을 선언하면서도 우방국 등 세계 각국에 대해서도 관세폭탄을 퍼부었다. 세계를 사실상 적으로 돌려세우면서 어떻게 중국의 항복을 받아낼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대단한 착각이자 오만이다. 섣부르고 무모한 '트럼프발 관세전쟁'이 미국의 발목을 잡아버렸다. 정치적 압박 속에서 서둘러 타협하는 방향으로 돌아섬으로써 강력한 사회주의 통치력에 기반한 지구전 전략으로 맞서는 중국에 대해 미국이 또다시 압박 전략을 구사할 수 있을 지 의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에서의 실패를 다른 국가들과의 협상에서 만회하려고 할 것이다. 그중에서도 한국, 일본 등이 타겟이 될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경제규모가 큰 EU는 대응수단이 있고 인도는 중국과의 관계에서 전략적 가치가 크기 때문에 압박이 용의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특히 중간선가가 가까워질수록 트럼프 대통령은 초조하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무디스가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최고 등급인 'Aaa'에서 'Aa1'으로 강등하여 뒤숭숭하다. 한국으로서는 조속한 관세 협상에 얽매이기 보다는 다른 나라들의 협상을 보고 진행하여야 한다. 상호관세 유예기간이 7.8 종료되어 그전에 관세부과 폐지를 목적으로 패키지(July Package)를 마련하기로 합의한 바 있지만, 이번 미중 합의로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안덕근 산업부 장관이 지난 16일 제주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통상장관회의 참석차 방한한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양자 회담을 갖고 기술협의를 통해 양국의 관세 협상을 본격화하기로 의견을 모았지만, 실제로 본격 협상은 차기 정부에서 하도록 협상기간 유예를 요청해야 한다. 그리고 특히, 패키지 합의에 매몰되어 한미간 기합의한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을 깨면서까지 협상을 서둘러서는 안 될 것이다. 이강국

[이슈&인사이트] 국힘의 신랑 바꿔치기와 음주운전

이강윤 정치평론가 요즘 국민의힘을 보면 '선거 치르는 정당 맞나?'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며칠 전 김문수 후보가 계엄에 대해 사과하자 윤석열 전 대통령측에서 “무슨 근거로 왜 사과하느냐"고 항의했다고 한다. 김 후보가 가타부타하지 않는 걸로 봐서 항의 비슷한 게 있긴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입장 하나 명료히 밝히지 못하면서 어떤 자세로 대선을 치르고 정당으로 기능하겠다는 것인지 의문이 들 수 밖에 없다. 최근 국힘을 요약하자면 이 두 단어가 떠오른다. 멀리 거슬러 올라갈 필요도 없다. 대선후보결정과 윤 전 대통령 탈당 문제가 극명하다. 비유컨대 이렇다. 결혼식에 신랑이 두 명이었다. 식 직전 신랑대기실에서 신랑을 급히 바꿔쳤다. 하객들이 “날치기 바꿔치기는 안된다"며 항의하자 부랴부랴 없던 일로 돌리고 처음 정했던 신랑을 입장시켰다. 참극도 이런 참극이 없다. 그 뿐인가. 선거운동이 시작된 지난 12일 이후 1주일이 지나도록 윤석열탈당 문제로 옥신각신 낮밤을 지샜다. 결국 탈당했지만 표심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어 보인다. 이게 과연 선거 치르는 정당의 모습인가. 그동안 국힘은 몇 차례 계엄에 대해 사과했다. '쌍권총'이라는 비대위원장과 원내대표는 물론 김 후보도 사과했다. 그런데도 탈당 우왕좌왕으로 이제는 사과했는지조차 가물가물하다. 그러니 그 사과의 진정성을 따지는 건 사치다. 필자가 걱정할 일은 아니지만, 국힘을 보면 대선이 한 6개월 쯤 남은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고양이 손도 빌린다'는 선거 코앞에 이렇게 '세월아 네월아…'일 수 있는가. 당 따로 후보 따로 당직자 따로. 완전히 따로국밥이다. 국힘 걱정해서 하는 말이 결코 아니다. 명색 원내 2당이고, 직전 여당이기에 하는 얘기다. 이미 지도력을 상실한 지도부야 그렇다 치고, 김 후보도 이해 불가다. 김 후보는 계엄에 대해 사과하면서도 “윤 전 대통령의 탈당은 굳이 요구하지 않겠다"고 했다. 비유하자면 이렇다. 누가 음주운전을 했다. 그런데 음주 부분은 사과하면서 막상 범죄의 핵심인 운전에 대해서는 애매하다. 운전자 처벌이 당연하건만 “본인 뜻에 맡기겠"단다. 이게 올바른 대처인가. 이뿐만이 아니다. 김 후보는 1980년 광주항쟁 당시 살인진압으로 유죄판결 받고 형를 치른 정호용 전 특전사령관을 선거캠프 상임고문으로 임명했다. 항의가 거세자 취소했지만 그의 역사인식과 용인(用人)을 보니 말 그대로 어이상실이다. 오욕의 전 정치군인을 무슨 이유로 위촉했을까. 보수표 때문일까. 사법적 단죄는 물론이고 정치적 위상도 상실한지 오래인 5.18신군부세력이나 계엄내란세력이 무슨 의미가 있다고 이럴까. 손 잡자고 와도 내쳐야 할 판에…. 극우강경집단과의 철저한 단절과 민주공화정의 재수립이 이번 대선의 시대정신임은 자명하다. 그런데도 김 후보가 그들과 절연하지 못하는 것은 후보 본인의 시대 인식에 심각한 결함이 있는 거 아닌가. 정책이나 공약이 문제가 아니다. '김문수정부'의 정체성과 지향점은 뭔가. 국힘과 김 후보에게 필요한 것은 이 텐트냐 저 텐트냐가 아니고 우선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다. 무엇을 지켜내는 '보수'이고, 사회를 어떻게 만들겠다는 것인지부터 명확히 밝혀야 한다. 이런 게 지금 보수세력의 수준이자 민낯이라면 궤멸 수준의 참패가 당연하다. 최소한의 상식과 원칙조차 체화시키지 못하면서 무슨 염치로 표를 달라고 하는가. 진짜 문제는 이런 것일 게다. 실은 국힘 사람들도 이건 아니라는 것쯤은 다 알지만 선거 이후 '정치공학'을 생각해서 이러고들 있는 것은 아닌지…. 국힘 표 선거의제는 실종된 지 오래다. 아니, 아예 없었다. 한심하다 못해 어처구니가 없다. 국힘은 계엄을 반성하기는 하는가. 이강윤

[박원주 칼럼]한국사회의 역동성을 지키기 위한 제언

2025년 4월 28일 현지 시간 낮 12시 33분경, 스페인에서 대규모 정전이 발생했다. 정전사태는 포르투갈 전역과 프랑스 남부 지역까지 확산되었고, 약 10시간 동안 전력 공급이 끊기면서 통신, 항공 및 교통망, 병원 등 대부분 공공 인프라의 작동이 마비되었다. 약 5,000만명 이상이 이 사태로 피해를 입었고 심지어는 사망자도 발생했다. 아직까지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사고 전후의 이상 현상들은 확인되고 있다. 정전 몇 분 전부터 송전망에 공급되는 전력량의 요동이 감지되었다. 풍력발전으로부터의 전력 공급이 순간적으로 급증했고, 프랑스가 스페인으로부터 전기를 공급받는 전력망이 자동적으로 끊겼다. 이 전력망 단절로 이베리아반도내 전력 수급 불균형이 더 악화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원전 몇기가 송전망 공급물량이 꽉 찼다는 시그널을 받고 자동적으로 운전정지에 들어갔다. 태양광 발전으로부터의 전력 공급도 18,000MW에서 순식간에 8,000MW로 급락하였다. 태양광 설비들을 자동적으로 셧다운하는 기능이 작동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재생에너지 전력 공급이 줄어드는 경우 수력발전 등을 통해 이를 보완하는 것이 보편적인데 이번 사태에서는 그런 기능도 한계에 부딪혔던 것 같다. 대량의 발전설비들이 그리드에서 이탈하면서 결국 유례가 없는 대규모 정전이 터지고 말았다. 스페인 정전 사태는 재생에너지 탓? 사건 이후 유럽의 많은 언론들, 특히 재생에너지에 대해 비판적인 언론사들이 정전 사태의 원인을 재생에너지로 지목했다. 심지어는 미국 에너지부의 크리스 라이트장관마저도 TV에 나와 재생에너지에 사고 책임을 돌리는 발언을 했다. 아직까지 원인 조사가 지속되고 있고, 벌어졌던 현상으로부터 볼 때 송전망 운영시스템이 적절하게 작동하지 못했던 것으로 읽히는데도 기다렸다는 듯이 재생에너지에 대한 거센 공격이 벌어진 것이다. 라이트 장관이야 원래 석유회사 출신이고 트럼프 행정부 자체가 친화석연료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는 만큼 그의 발언에 공감은 못하지만 그렇게 말한 심정이 이해는 된다. 그러나, 스페인을 비롯한 유럽 각국 정부에서도 이번 사태를 재생 에너지 탓으로 돌려서는 안된다는 점을 역설하고 있고, 이번 일을 계기로 21세기의 에너지 믹스에 걸맞는 송전망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미 세계적인 대세가 된 재생에너지의 확산이 이번 일로 주춤할 우려는 그다지 커 보이지 않는다. 이번 사태가 보여주는 더 우려스러운 시사점은 인류 사회가 새로운 혁신에 대해 대체로 부정적이라는 사실이다. 혁신의 도입이 문제를 일으키면 이를 해결하는데 힘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혁신을 거부하는 명분으로 삼는 경우가 더 많아 보인다. 그리고 지금까지 혁신을 거름삼아 성장해 왔던 우리나라가 특히 더 그런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은 1997년 미국 하버드대학 교수인 클레이튼 크리스텐슨이 소개한 개념이다. 기존 시장의 작은 틈새에서 열악한 기술로 출발한 시도가 빠르게 발전하여 기존 시장 점유자들을 몰아내고 새로운 시장지배자로 자리잡는 형태의 혁신을 의미한다. 그래서 더욱 필요한 파괴적 혁신 파괴적 혁신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초기 시장에서 소비자들의 인내와 포용이 필수적이다. 흔히 얼리어댑터로 불리우는 호사가들이 혁신의 초기 시장을 제공해 주면, 그 기반에서 제품과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개선하여 궁극적으로 기존 시장을 대체하는 것이다. 초창기에 음질이 너무 나빠 알아들을 수도 없었다던 전화가, 대서양 너머까지 명확하게 메시지가 전달되는 전보를 이겨내고 통신 시장을 장악했던 것이나, 짧은 주행거리와 불편한 충전 인프라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의 이타적 혹은 과시적 소비를 바탕으로 성능을 개선하고 점유율을 넓혀가고 있는 전기차, 저급한 기술이라고 퇴물 취급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중국 정부의 노골적인 비호하에 성능을 개선하고 시장 점유율을 늘려 지금 와서는 리튬이온 배터리의 아성을 함락시켜 버린 리튬인산철 배터리 등 성공적인 파괴적 혁신의 사례는 무수히 많다. 그리고, 자원도, 자본도, 인력도 빈약한 우리나라가 앞으로도 지속 성장을 유지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 바로 이러한 파괴적 혁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혁신 환경은 우리 경쟁국들보다도 오히려 열악하다. 2017년 일본의 반도체부품 수출규제로 소부장분야의 경쟁력 확보가 절체절명의 과제가 되었을 때 가장 크게 문제 되었던 관행은 우리 기업들이 국내에서 개발된 새로운 소재나 부품의 사용을 꺼린다는 것이었다. 일본이 수출규제 대상으로 삼았던 고순도 불화수소의 경우, 이미 국내에 우리 기술로 제조할 수 있는 특허가 있는 상태였지만 반도체 업계는 신뢰성이 검증된 일본산 소재를 선호했고, 그 결과 공급망 충격을 피할 수 없었다. 새로운 혁신 시도는 매우 어려운 큰 모험이기에 지멘스 등 글로벌 업체들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첨단 발전용 터빈이나 풍력발전 설비 등의 경우도 국내 기술로 제품이 개발돼도 이를 적용해주는 현장을 찾기 어려웠다. 이런 상황에서 발전 설비의 국산화는 매우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우리 시장 환경이 이처럼 글로벌 스탠다드 이상으로 파괴적 혁신에 대해 엄격한 것은 '실패하면 안 된다'는 문화적 성향에 뿌리를 두고 있다. 새로운 기술을 생산현장에 적용해서 실패하는 경우 이를 결정한 회사 임원은 그 책임을 피할 수 없다.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해야 먹고 살수 있는 나라에서 새로운 시도 자체가 생각하기 어려운 큰 모험이 되고 있는 것이다. 간단한 계산을 해보자. 1961년 우리나라의 신생아 수는 약 105만명으로 추산된다. 이들이 성장하여 한국의 경제 성장을 견인해 왔고 65세가 되는 올해부터는 공식적으로 경제활동 인구 통계에서 벗어나게 된다. 2012년 신생아 수는 48만 5천명이다. 이들이 실제 일을 시작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14세가 되는 올해부터 우리나라의 경제활동인구 통계에 새로 잡히게 된다. 단순 비교로 경제활동인구에서 빠지는 사람이 신규 진입하는 이들의 2배가 넘는다. 우리 경제가 지금의 성취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제 14세가 된 친구들이 65세가 될 때까지 지금 65세 연령층이 해왔던 일의 2배 이상 일을 해줘야 한다. '혁신 장려하고, 실패 포용하는' 문화 만들어야 두 배의 노동을 한다는 것은 물리적으로도 불가능한 일이고, 그렇게 할 리도 없으니, 결국 2배 그 이상으로 창의적으로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어 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1961년생 선배들보다 2배나 더 혁신의 자질이 뛰어나기를 바랄 수도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지금 14세 연령층의 혁신성을 소중히 여기고 몇 번이고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하는 것이다. 초고령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국가공동체 쇠퇴의 위기를 맞고 있는 우리나라가 앞으로도 지속성장의 궤도에서 탈선하지 않으려면 혁신을 장려하고 실패를 포용하는 너그러운 문화를 만들어 가야 한다. 모두에 소개했던 정전사태로 돌아가서, 이번의 재앙을 재생에너지로부터 발을 빼는 기회로 활용하려는 근시안적인 행태가 벌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전력공급시스템의 총체적 붕괴라는 전대미문의 사태로 오히려 새로운 시대의 에너지믹스에 부합하는 최첨단의 송전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빈약한 재생 에너지 자원으로 간헐성 문제의 해결이 더 시급한 우리나라가 이러한 과제에 대한 해법을 제시할 수 있다면 K-Renewable이 우리의 새로운 미래 먹거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는 먼 과거의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Dynamic Korea'라는 구호를 되살리려면 우리는 혁신을 혁신하는 창의공동체로 거듭나야 한다. 박원주

[신율의 정치 내시경] 선거 흐름을 잃은 국민의힘

대선이 이제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여느 대선 시즌 같으면, 이 시점에는 판세 분석이 한창일 것이다. 세대별 투표 성향을 분석하고, 이른바 스윙 보터 지역의 민심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때라는 말이다. 그런데 요즘은 어떤 정치 전문가도 이런 분석을 내놓지 않는다. 이는 단지 이번 선거가 윤 전 대통령 탄핵에 따른 선거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현재 국민의힘이 만든 상황 자체가 판세 분석을 무의미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이, 대선 후보 경선을 통해 선출된 김문수 후보의 자격을 박탈하자, 상황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됐었다. 자신에 대한 후보 자격 박탈 결정 직후 김문수 후보는 “야밤에 정치 쿠데타가 벌어졌다"고 말했다. 현재 국민의힘은 '친위 쿠데타' 논란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정당이다. 그런데, 정당한 절차를 통해 선출한 이 정당의 대선 후보의 입에서 '쿠데타'라는 표현이 나온 것이다. 이는 충격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가뜩이나 '내란 세력' 혹은 '친위 쿠데타 세력'이라는 말이 나도는 상황에서, 해당 정당의 대선 후보가 직접 '쿠데타'라는 표현을 쓰니, 국민의힘이라는 이름은 '쿠데타'라는 단어와 분리해 생각하기 어려울 지경이 됐었다. 이런 이미지를 안고 대선을 치르겠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이 같은 사태를 초래한 것은 물론 국민의힘, 그중에서도 친윤 세력이라는 평가가 많다. 이들이 어떤 의도로 이 같은 행동을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이는 보수 유권자에 대한 명백한 배신 행위임은 분명하다. 이를 단순히 '한심하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할 정도다. 문제는 이미지뿐만이 아니다. 선거는 흐름을 타야 한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선거의 흐름을 타기보다는 오히려 상대방을 돕고 있다.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민주당에 타격을 줄 수 있는 사안들이 발생해도 국민의힘 주류들의 행동이 그것들을 덮어주는 결과를 낳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민주당은 대통령이 당선될 경우 형사 재판을 재임 기간 중 중단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형사소송법 306조 제6항)을 신설한 개정안을 단독으로 통과시켰다. 그런데 이 개정안에는 “다만, 피고 사건에 대하여 무죄ㆍ면소ㆍ형의 면제 또는 공소기각의 선고를 할 때는 재판을 계속할 수 있다"는 예외 조항도 포함돼 있다. 이 개정안이 '신기한' 이유는, 재판 결과를 사전에 알아야만 재판의 개최 여부를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재판 결과를 미리 안다면 그것은 더 이상 공정한 재판이라고 할 수 없다. 대통령 관련 재판만은 공정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인지 묻고 싶다. 또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7일 공직선거법상 허위 사실 공표 구성 요건에서 '행위'라는 문구를 삭제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개정안을 민주당 주도로 가결시켰다. 그런데 이 법안을 가결한 바로 다음 날, 민주당은 출마를 저울질하던 한덕수 전 총리를 공직선거법상 허위 사실 공표와 형법상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 혐의로 서울지방경찰청에 고발했다. 자신들이 우리나라 법이 지나치게 엄격하다고 주장하며 이를 완화하는 개정안을 의결해 놓고, 하루 만에 그 '지나치게 엄격한' 법 조항을 근거로 고발한 것이다. 게다가 이들이 의도한 대로 개정 법안이 시행되면, 정작 한 후보는 처벌 대상이 되지 않게 된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고발을 했는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 이런 논리적 모순이 가득한 법안을 민주당이 남발해도, 국민의힘은 내부 갈등으로 인해 이러한 문제들을 제대로 부각시키지 못하고 있다. 만약 이번 대선에서 민주당이 승리한다면, 그들은 국민의힘에 진심으로 감사해야 할 것이다. 한편, 현재 김문수 후보로 당의 후보가 결정되었다고 해서 국민의힘 내부의 자중지란이 끝난 것 같지는 않다. 여전히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파괴하고 있는 국민의힘의 모습을 보며, 그저 할 말을 잃게 된다. 신율

[이슈&인사이트]트럼프의 관세 전쟁과 세계의 선거

#2025년 5월 3일 토요일. 호주 총선에서 집권 노동당의 앤서니 앨버니지 총리는 하원 의석 150석 가운데 85석 이상을 확보하면서 승리를 선언했다. 두 달 전만 해도 야당인 자유당과 국민당 연합에게 패색이 짙었으나 극적으로 선거의 운명을 뒤집었다. 이번 총선에서 자유당과 국민당 연합의 대표 피터 더튼 자유당 당수는 트럼프 미 대통령과 같이 머스크의 정부효율부(Department of Government Efficiency)를 설치해 공공부문 인력을 대폭 감축하겠다고 공약했다. 자신을 부자로 만들고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 것으로 믿었던 유권자가 트럼프와 머스크의 대량 해고에 따라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으면서 트럼프를 괜히 뽑았다고 후회하는 사이, 호주에서도 유권자의 마음이 동요했다. 자유당 당수는 지지율만 떨어진 게 아니라 자신의 지역구도 잃고 선거에서 패배했다. # 4월 28일 월요일. 호주와 같은 영연방국가이자 미국과 국경을 마주한 캐나다의 총선에서 집권 자유당이 과반에 3석 부족한 169석을 차지하면서, 144석을 얻은 보수당을 이겼다. 쥐스탱 트뤼도 총리는 2015년부터 10년 동안 캐나다를 이끌어오면서 지지율도 떨어졌고 정치적 피로감에 입지도 크게 흔들렸다. 코로나19 시절 트뤼도는 대규모 재정지출로 경제를 지탱했으나 그 여파로 물가는 나빠졌고 금리도 올랐다. 유권자는 높은 생활비와 주택 가격에 시름을 겪었다. 연초까지만 해도 보수당에 20% 포인트 이상 낮은 지지율로 패색이 짙었는데 결국 자유당은 대역전에 성공했다. 트럼프가 캐나다를 “미국의 51번째 주(州)"로 편입시키겠다고 했고 25%라는 높은 관세를 매기겠다고 위협했다. 또 트럼프는 트뤼도 총리를 주지사라고 부르면서 캐나다인의 자존심을 긁었다. 이에 자유당은 영국의 중앙은행 총재까지 역임한 전문가인 마크 카니를 얼굴로 선거를 치러 승리했던 것이다. 이와 반대로 차기 총리를 넘겨보던 피에르 포일리에브르 보수당 당수는 20년간 지켜온 자신의 지역구에서 패배해 의원직마저 잃었다. 포일리에브르는 '캐나다 우선'(Canada First)이라는 슬로건을 들고 나왔다. 그는 트럼프를 연상시킬 정도로 인기영합주의적인 정책을 공약했다. # 5월 4일 일요일. 원래 11월로 예정되었으나 조기에 치러진 싱가포르의 총선에서는 집권 인민행동당이 압승했다. 싱가포르의 국부로 불리는 리콴유 초대 총리가 만든 인민행동당은 1965년 독립 이후 모든 총선에서 승리했고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선거의 관심은 누가 이기느냐보다는 인민행동당이 얼마나 이기느냐였다. 지난해 5월 싱가포르의 새 지도자가 된 로런스 웡 총리는 취임 뒤 첫 선거에 승리함으로써 안정적인 국정 운영의 동력을 확보하게 되었다. 리콴유의 장남인 리셴룽 전 총리가 코로나19를 이유로 2020년으로 약속된 퇴진 시기를 2024년까지 늦췄고 그 뒤에도 정계 은퇴 대신 초대 총리와 같이 선임장관직을 유지하자 비판을 받았다. 교통부 장관은 뇌물을 받다가 걸렸고 고위 관료 둘은 국유 주택을 사적으로 유용했으며 국회의장은 의원하고 불륜 스캔들을 일으키는 등 유권자의 마음이 많이 돌아선 상황이었다. 선거 결과는 인민행동당이 전체 97석 중 87석을 차지하는 승리로 끝났다. 2020년 총선에서는 93석 중 83석을 차지했는데 이번에 선거구 개편으로 늘어난 의석수 4석만큼 더 많은 의석을 확보한 것이다. 트럼프의 관세 전쟁의 여파로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자 싱가포르 유권자는 안정 추구 심리를 표출한 것으로 보인다. 웡 총리는 선거 과정에서 미중 사이의 관세 전쟁에 따른 경제 위기를 강조하며 안정적인 여당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 # 2025년 6월 3일. 한국도 조기 대선이다. 한미 관세 협상을 앞두고 “미국이 원조, 기술 이전, 투자, 안전 보장을 제공해줬다"라고 하면서 “우리의 산업 역량과 금융 발전, 우리 문화, 성장, 부유함은 미국한테 도움을 크게 받은 덕"이라고 주장한 자를 후보로 옹립하려 했던 당이 있다. “미국의 행동을 맞서야 하는 대상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양쪽에 윈윈이 되는 해법"을 찾겠다고 했다. 벌써 두 번째인 조기 대선에서 한국의 유권자는 어떤 정당을 선택할까. 이준한

[신연수 칼럼] 소프트 파워의 시대는 끝났나

'소프트 파워(soft power)'의 개념을 정립한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석좌교수가 지난 주 별세했다. 강압이나 물질적 보상을 통해 상대방의 행동을 바꾸는 능력이 '하드 파워'라면, 매력이나 설득을 통해 상대방의 마음을 사로잡는 능력이 소프트 파워다. 미국이란 나라가 냉전 이후 세계 원 톱이 될 수 있었던 첫 번째 이유는 물론 막강한 군사력과 경제력 덕분이다. 그러나 민주주의와 자유주의라는 보편적 가치와 문화, 외교적 매력으로 사람들을 끌어당긴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조지 워싱턴 대통령이 3선 출마를 거절함으로써 민주적 정권교체 전통을 확립한 것이나, 링컨 대통령이 노예해방을 한 사례는 수많은 책과 영화를 통해 세계인들의 머릿속에 미국의 문화와 가치를 새겨 넣었다. 미국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국제연합(UN) 설립을 주도하며 지금의 국제질서를 만든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랬던 미국이 스스로 소프트 파워를 파괴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멋대로 다른 나라를 협박하고 불안하게 한다. 미국의 가치관을 세계에 퍼뜨리는 하버드, 스탠퍼드 같은 명문 대학들에 대한 지원을 끊고, 다양성과 포용성 정책을 폐기하라고 압력을 넣고 있다. 트럼프 정부는 가난한 나라들에 대한 해외 원조를 중단하고, 담당 부처인 국제개발처 직원들을 해고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미국의 국익이 우선이라고 하지만, 단기적인 시야로 국익을 챙기다가 장기적이고 포괄적인 국익을 잃게 될 지도 모른다. 중국은 덩샤오핑의 개혁 개방 이후 국력이 무척 커졌지만 국제사회에 새로운 가치관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한계를 갖고 있다. 2030년이면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이 미국을 추월하리라는데, 미국은 소프트 파워조차 버리고 무엇으로 중국을 이기려고 하는지 의아하다. 소프트 파워의 결핍은 국제 정치 뿐 아니라 국내 정치에서도 두드러진다. 국내 정치야말로 유권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소프트 파워의 경연장이어야 한다. 그러나 그동안 거대 양당이 벌인 행태는 실망스러웠다. 자기네 대장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다고 대법원장 탄핵을 외치는 민주당에는 독재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삼권분립이라는 것이 이제 막을 내려야 될 시대가 아닌가"라며 아예 대놓고 삼권분립을 부정하는 말까지 한다. 다수당의 힘을 내세워 장관들과 검사들을 줄줄이 탄핵한데 이어 법관들도 탄핵할 참이다. 민주당이 국회 다수당으로서 입법권을 장악한데 이어 행정권, 사법권까지 갖는다면 브레이크 없는 독주 체제가 될까 걱정이다. 이재명 후보는 “복수를 하지 않겠다"고 말하지만 지난해 총선에서 '비명횡사' 공천으로 '뒤끝 작렬'을 보여준 바 있다. 반대파를 포용하기보다 확실한 보복으로 모두 엎드리게 만든 노골적인 '하드 파워'였다. 국민의힘도 더하면 더했지 나을 게 없다. 김문수 후보는 경선에서 단일화를 외쳤지만 당선된 뒤에는 공식 후보라는 '권력'을 믿고 약속을 저버렸다. 당 지도부는 자신들이 뽑은 대선 후보를 한밤중에 날치기로 바꾸는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단일화를 관철하려 했다. 무엇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령이야말로 소프트 파워를 무시한 전형적인 사례다. 윤 전 대통령은 3년 전 대선 때 야당과의 협치, 국민 통합을 외치며 당선되었다. 그러나 집권한 뒤에는 소통하고 설득하기보다 야당과 강 대 강 대치를 이어갔고, 결국 군사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대착오적인 계엄령까지 선포했다. 미국의 정치학자 스티븐 레비츠키는 저서 에서 상호관용과 제도적 자제가 민주주의의 탈선을 막는 가드레일 역할을 한다고 했다. 정치적 상대를 정당한 경쟁자로 인정하고, 주어진 권력을 행사할 때 자제심을 발휘하는 관행이야말로 민주주의를 지키는 보루라는 것이다. 관용과 절제의 미덕을 저버리고 극단적 대립을 일삼는 정치인들이 새겨야 할 말이다. 엊그제 공식 선거운동을 시작한 대선 후보들은 모두 계파를 초월한 화합과 국민 통합을 외치고 있다. 그러나 정작 권력을 쥐게 되면 소통과 타협보다 제도적 강제력을 앞세울까 걱정이다. 어느 후보가 약속을 잘 지킬지 눈 밝은 유권자들이 승리하는 대선이 되길 바란다. 나이 교수는 떠났지만 소프트 파워의 중요성은 사라지지 않았다. 신연수 기자 ysshin@ekn.kr

[이슈&인사이트] 내수 부진과 신용카드 이용

최근 신용카드 이용이 줄고 있다. 10%를 웃돌던 지난 2021년 신용카드 이용(금액 기준) 증가율은 2024년 들어 급격히 하락했다. 2025년 들어서도 이용률은 4월에 처음으로 마이너스로 전환했다. 2025년 2월말 기준의 신용판매 이용실적은 전월대비 3.5% 감소하는 등 신용카드 이용이 감소하는 경향을 보여준다. 특히, 20~40대의 신용카드 이용은 2024년 3분기를 계기로 급격히 감소하기 시작해 해당 시점에 전년동기 대비 9%나 감소한 바 있으며, 30~40대도 동 기간동안 신용카드 이용이 줄었다. 민간 소비의 판단 지표인 신용카드 이용실적 부진은 대체로 카드사의 부가 혜택 축소와 관련 있다. 합리적 소비에 익숙한 20~40대 소비자는 카드사의 무이자 할부개월수 단축, 할인 및 포인트 축소, 부가 혜택을 제공하는 소위 '알짜카드' 단종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기존 6개월 무이자할부 서비스 기간은 최근 3개월로 줄었다. 최근 3년간 국내 카드사들은 약 80건의 부가서비스(포인트 적립, 할인, 캐시백 등) 축소 및 폐지를 신고했다. 지난해 동안 국내 카드사는 595종의 카드발급을 중단했다. 이는 이전년도 대비 약 30% 증가한 수치이다. 카드사는 저렴한 연회비 대비 혜택 많은 '알짜카드'를 비용절감 차원에서 단종한 것으로 판단된다. 한편, 소비심리와 내수시장도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올해 4월 기준의 가계소비심리지수(CSI)는 93.8로 여전히 100을 밑돌고 있다. 이는 소비자들이 경제 상황을 비관적으로 인식해 소비에 부정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민간 소비현황을 나타내는 소매판매액 지수 증감률도 감소세를 보인다. 올해 3월 기준 동 지수(계절조정지수: 계절별 소비패턴 등 일시 변동을 배제한 실질적 지수)의 전년동월대비 증감률은 –2.4%이다. 동 기간중 승용차·가전제품·통신기기 및 컴퓨터를 포함한 내구재 지수 증감률은 –3.9%이다. 통신기기 및 컴퓨터의 지수 증감률은 무려 –28.9%이다. 이는 민간 소비 부진의 중심에 내구재 소비 부진이 있음을 시사한다. 필자의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고가의 내구재 소비 감소는 신용카드를 이용한 신용판매 감소와 밀접한 연관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동 연구는 카드사의 비용절감을 위한 소비자 부가 혜택 축소가 내구재 소비 감소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한다. 결국, 내수 부진의 원인이 되는 신용판매 부진은 금융당국의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율 규제와 관련 있다. 금융당국은 지난 2012년 이후 지속적으로 소규모 카드 가맹점에게 부과하는 수수료율 규제인 적격비용 제도를 시행 중이다. 이는 3년 주기로 시행되며, 카드사 신용판매업의 주요 수익원인 가맹점 수수료 수익 감소를 초래했다. 적격비용 제도 시행 후 지속적으로 가맹점 수수료율이 인하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적격비용 제도가 당초 취지인 가맹점이 합당하게 부담하도록 가맹점 수수료율의 원가를 정확하게 판단하여, 수수료율을 재산정한다는 것에서 벗어났다는 데 있다. 소상공인의 비용을 줄여준다는 명분으로 당초 취지와는 다르게 적격비용 제도를 통해 시장상황과 무관하게 가맹점 수수료율의 지속 인하가 진행되어왔다. 카드사는 가맹점 수수료율의 지속 인하에 따른 신용판매업의 수익성 감소로 소비자 부가 혜택에 들어가는 비용을 절감하고, 오히려 카드론 등 고금리의 수익 마진이 큰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카드사는 신용판매 촉진을 위한 가맹점 지원행사 축소 등 각종 마케팅 활동도 줄이면서, 카드 소비자의 신용카드 이용 유인을 낮추고 있다. 신용판매 수익성 부진을 보존하기 위한 카드사의 카드론 공급 증가는 최근 연체율 상승으로도 이어져 카드사의 건전성 악화 등 국민경제에도 많은 부담을 주고 있다. 대출채권 부실에 따른 대손충당금 적립과 대손 발생에 따른 위험관리비용 보전을 위해 카드 소비자 부가혜택 감소에 더욱 주력하며, 소비자 후생이 위협받고 있다. 또한, 서민 등 중저신용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카드사의 중금리 대출 공급도 감소하고 있다. 올해 1분기 카드사 중금리 대출 취급액은 전년동기 대비 7.6%나 감소했다. 이는 서민들의 고금리 대출 또는 불법 사금용 이용 가능성을 높인다. 결론적으로 금융당국의 소상공인을 위한 비용 절감 차원에서 진행중인 적격비용 제도는 민간소비 부진과 소상공인의 매출 감소로 인한 폐업률 증가, 카드소비자에 대한 부가혜택 축소, 중금리 대출 이용 제한이라는 각종 부작용을 낳고 있다. 빠른 시간내에 적격비용 제도의 대폭 개선 또는 폐지가 시급한 상황이다. 서지용

[특별기고] 영국 보건의료 혁신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

지난 4월 7일(현지 시간) 영국 키어 스타머 총리는 국가 보건의료 데이터 연구 생태계 혁신을 위한 총 6억 파운드(한화 약 1조 1000억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건강 데이터 연구 서비스' 통합 플랫폼을 구축하고 그곳에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HS)가 보유한 방대한 데이터를 모아 연구자들이 손쉽게 접근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불필요한 절차를 없애 행정에 소모되던 시간을 줄이고, 의약품과 치료제 개발에 필요한 임상시험 설정 시간도 250일에서 150일로 단축하기로 했다. 영국은 데이터 기반 의료 분야에서 이미 세계적인 선도국가이다. UK바이오뱅크와 지놈잉글랜드(Genomics England) 설립에 이어 보건의료 데이터 통합 플랫폼을 구축하면서 첨단 의료분야에서 한 발 더 앞서 나가는 모양새다. 급변하는 의료 환경에서 이같은 영국 정부의 조치는 자연스럽게 우리나라의 현실을 돌아보게 만든다. 우리나라는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 공공기관과 의료기관 등 여러 경로를 통해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 데이터를 축적해 왔다. 하지만, 이 데이터들은 기관별로 분산돼 있으며, 데이터 연계 및 접근은 복잡하고 제한적이다. 한국보건의료정보원은 이런 데이터들을 표준화하고 연계·관리하며,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디지털 헬스케어 전문기관으로 역할을 수행 중이다. 먼저 보건의료데이터의 상호운용성을 높이기 위해 표준화하고, 데이터가 효율적으로 관리·활용될 수 있도록 병원에서 사용하는 전자의무기록(EMR) 시스템을 인증하고 있다. 동시에 국립병원정보화 사업을 통해 고품질의 보건의료 데이터를 생산하고 있다. 그리고 수집된 정보가 의료기관 간, 의료기관-개인 간 안전하고 정확하게 전달·공유될 수 있도록 진료정보교류 사업과 의료마이데이터 사업 등을 벌인다. 영국에 50만명의 유전체를 모아놓은 UK바이오뱅크가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100만명의 임상정보와 유전체를 모으는 국가통합바이오빅데이터가 있다. 보건복지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 질병관리청 등 4개 부처가 참여해 정밀의료 연구 및 바이오헬스산업 연구 활용 기반을 마련하는 이 사업에서 한국보건의료정보원은 통합 데이터를 수집·제공·보관하는 데이터뱅크를 구축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밖에도 여러 국가기관과 공공기관이 보유한 보건의료 빅데이터를 연계·결합해 다양한 임상·정책연구를 지원하는 '보건의료빅데이터 플랫폼 구축' 사업, 암·심뇌혈관 등 한국인 주요 질환을 대상으로 빅데이터를 구축하고 연구기반을 확대하는 '케이 큐어(K-CURE) 임상데이터 네트워크' 등 보건의료 데이터 활용을 위한 혁신 생태계를 만들고 있다. 이러한 데이터 기반 사업들은 단순히 치료 기술을 고도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예방 중심의 의료로의 전환과 국민건강 증진이라는 궁극적인 목표로 이어진다.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을 통하면 유전체 기반 맞춤형 질병 예측이 가능해지고, 개인은 자신의 건강 정보를 통합관리하며 자기주도형 예방전략을 수립할 수 있다. 국가 차원에서는 취약계층 발굴, 지역 건강 격차 분석 등을 통해 선제적 정책 대응이 가능해진다. 그러나, 이런 기능들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데이터 활용을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법·제도의 정비가 필요하다. 특히, 국회에 발의된 '디지털헬스케어법'은 보건의료 데이터 활용을 제도적으로 정립하는 데 있어 중추적인 전환점이 될 것이다. 개인정보보호와 데이터 윤리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쌓는 노력이 병행돼야 함은 물론이다. 영국의 선택은 단지 기술 혁신이 아닌 보건의료 시스템 전반을 다시 설계하려는 국가적 비전임을 참고하면 우리도 국가적 정책 수립과 역량 결집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국보건의료정보원 국민건강 증진이라는 목표 아래 단순한 데이터 전달자가 아닌 전략적 기획자로서 동참할 것이다.

[이슈&인사이트] 트럼프의 중국 시장 개방 요구와 제 2 루브르 협정

금융시장, 특히 머니 마켓이 흔들리자 트럼프는 관세를 90일 유예했다. 다만 자기가 대통령이 될 수 있게 해 준 러스트 벨트의 주요 산업인 자동차와 철강에 부과한 25% 관세는 현재 발효 중이다. 여전히 트럼프의 관세 부과가 적대국은 물론 동맹국의 반발이 커지고 특히 국내 인플레이션과 머니 마켓이 심하게 요동치자 일단 뒤로 한발짝 물러나 있는 상태다. 어차피 관세를 들고 나온 트럼프의 속내는 자기 1기 때 실패한 중국을 손 봐주기 위함이기에 관세라는 삐걱거리는 플랜 A과 함께 플랜 B를 가동하기 시작했다. 중국 시장의 개방 요구다. 머스크와의 싸움에서 이기고 경제 정책권을 쥐게 된 베센트는 계속해서 중국 시장의 개방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는 중국이 시장을 더 개방하고 내수 중심으로 경제 구조를 전환하여 미국산 제품 수입을 늘려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이는 무역 불균형 해소와 글로벌 경제 재균형을 위한 조치로, 사실상 위안화 강세를 유도하는 압박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1987년 루브르 협정이 다시 나오게 되는 것이다. 85년 플라자 협정 이후 엔화가 달러 대비 25% 이상 상승했고 87년에는 1달러당 150엔 수준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엔화 강세로 미국의 무역 적자는 줄어들지 않았다는 것이 판명되자 미국은 다시 87년 루브르에서 회의를 개최한다. 루브르 협정의 주요 목적은 플라자 합의 이후 급격히 하락한 미 달러화의 추가 하락을 막고 주요국 통화 간 환율을 안정시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각국은 재정적자와 공공지출을 줄이고 세금 인하와 금리 인하 등 경제정책을 조정하기로 합의했다. 특히 일본 등 주요 교역국의 내수 확대를 유도해 미국 제품 구매를 늘려 무역수지 개선을 도모하는 것이 핵심 목표였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일본 등 주요 교역국의 내수 확대'다. 루브르 협정 이후 일본은 급속하게 절상된 엔화 가치와 경기 후퇴를 막기 위해 시행한 최악의 정책, 즉 금리 인하로 엔화의 구매력은 증가하고 싼 금리로 인해 대출이 늘어나 통화 팽창을 가져오게 되었다. 당시 엔화의 강세로 모든 돈이 일본으로 몰리자 일본은 버블을 키웠고 마침내 부동산에서 먼저 버블이 꺼지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잃어버린 20년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이 루브르 협정 2편을 중국에 적용하겠다는 베센트와 트럼프의 속내다. 일본이 루브르 협정 이후 수입을 늘릴 수 있었던 것은 엔화의 지속적인 강세로 수입 물가가 오르지 않아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이 수입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일본에게 했던 것처럼 위안화를 절상시켜야 한다. 이런 의도를 외환 시장도 감지하기 시작했다. 다만 중국 외환시장이 전면 개방이 안되어 여전히 달러당 7.2 위안에 걸쳐 있지만 위안화를 달러당 6위안 초반 또는 그 이하로 절상시켜 중국이 인플레 걱정에 벗어나 미국 물품을 살 수 있게 만든다는 것이 미국이 들고 나온 플랜 B다. 중국 위안화는 완전한 변동환율제가 아니기에 먼저 그 주변 국가인 대만과 우리나라 환율이 절상을 시작했다. 대만은 GDP 성장이 좋게 발표된 이유도 있고 대만의 생명보험 회사의 헷지가 안된 미국 투자 자금 1.7조 달러의 청산 이유도 있지만 3일만에 미 달러당 33 TWD에 머물던 대만달러가 30 TWD 밑으로 내려왔다. 우리도 1430-1450원에 머물던 환율이 1400원 아래로 급하게 절상을 하여 우리 연휴 때 역외 환율이 1370원대까지 빠져 있는 상황이다. 중국 위완화가 강세가 되고 중국에 자금이 몰려 과거 일본처럼 버블이 생긴다면 우리에게는 중국 시장이 또 다른 기회가 될 것이다. 수출과 교역을 늘릴 수 있는 기회, 이 기회를 잡아야 할 것이다. 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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