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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홈플러스 체납’ 책임이 NH투자증권?…논리 비약이 부른 오해

고려아연이 MBK파트너스를 향해 날선 비난을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이번에는 NH투자증권으로 불똥이 튀었다. 일각에서 홈플러스의 기업회생 신청으로 인한 농축산업계 피해를 NH투자증권의 MBK 차입매수(LBO) 자금 지원과 연결 짓고 있어서다. 지난달 한국농축산연합회는 성명서를 내고 “유가공 조합·업체의 경우 홈플러스로부터 40억~100억원의 납품 대금을 정산 받지 못하고 있다"며 “홈플러스의 대금 정산이 계속 지연되면서 일선 농협, 영농조합, 유가공조합 등 농축산물을 유통해야 하는 농축산업계는 큰 충격에 빠져있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농축산업계가 피해가 부각되자 MBK에 차입매수 자금을 지원한 NH투자증권에도 책임이 있다는 게 고려아연을 비롯한 일부의 주장이다. 농민들의 자금을 기반으로 한 NH투자증권이 사모펀드의 주요 자금원으로 등장한 점은 실망스럽다는 내용이 주요 골자다. 이 내용만 보면 마치 NH투자증권이 홈플러스의 대금 체납 사태에 영향을 미친 것처럼 해석된다. 하지만 금융투자업계의 시각은 다르다. 업계에선 홈플러스 사태와 NH투자증권의 차입매수 지원을 동일선상에 두고 보는 것은 왜곡이라는 지적이다. 우선 NH투자증권의 MBK 자금 지원과 홈플러스 사태는 별개의 사안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홈플러스의 대금 체납 사태는 경영 부실에서 비롯된 사안일 뿐 증권사와 무관하다는 것이다. 증권사는 공개매수 과정에서 브릿지론을 제공하기 위한 업무를 수행한다. 차입금은 브릿지론으로 주식 공개매수 등에서 활용되는 것으로 일반적인 차입 형태다. 이번 NH투자증권의 MBK 차입매수 지원도 마찬가지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금투업계에서는 NH투자증권이 이번 사태에서 거론되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반응이다. 일각에선 “고려아연이 MBK와의 경영권 분쟁의 일환으로 NH투자증권을 희생양으로 삼은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다. 고려아연 입장에서도 과도한 여론전은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업의 신뢰도 추락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불확실한 정보를 언론에 제공하면 오히려 기업 이미지에 부작용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김기령 기자 giryeong@ekn.kr

[기자의 눈] ‘대립’에서 ‘대화’로…주총장의 바뀐 공기

“주주들은 회사의 적이 아닙니다. 그 누구보다 회사가 잘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지난달 시가총액 2조원 규모 코스피 상장사의 주주총회에서 한 주주가 주주제안 안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회사를 믿고 투자한 소액주주들을 본인들의 적이라고 생각하는 상장사들을 향해 진심을 전달한 것이다. 올해 주주총회 시즌이 막을 내렸다. 지난해 주총 시즌과 비교해보면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지난해 몇몇 상장사의 주총장은 전쟁터를 방불케 할 정도로 소액주주들과 이사회가 치열하게 대립했다. 고성이 오가는 건 물론이고 물리적 충돌도 발생해 수십명의 경호 인력과 주주들이 대치하는 경우도 잦았다. 반면 올해 주총장의 공기는 달랐다. 이사회와 소액주주들이 치열하게 대립하기보다는 서로 충분한 대화를 통해 의견을 공유하는 장면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밸류업 프로그램의 영향으로 주주환원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상장사들은 주주제안을 안건으로 상정하면서 주주들을 외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줬고 소액주주들 역시 사측을 공격하기보단 좀 더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방식으로 움직였다. 액트 등 의결권 플랫폼을 중심으로 지난해부터 본격화된 주주연대 활동이 자리를 잡으면서 주총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행동주의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면서 주주연대의 힘도 커졌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주주들 사이에서 낯선 존재였던 액트가 이제는 주주행동의 상징이 됐으니 말이다. 그 결과 방만경영을 일삼은 경영진을 주주들이 직접 해임시킨 사례도 등장했고 집중투표제 도입 등으로 주주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기도 했다. 시장이 발전하면서 주주들의 요구도 배당 확대나 자사주 소각 등 전통적인 주주환원 방식에서 이사 선임 등 경영 개입으로 확장되는 것이다. 주주들은 물론 상장사들도 주주환원과 주주 권익 보호의 중요성에 공감하는 분위기가 형성됐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물론 아직도 주주들을 배척하는 기업들도 많다. 많은 기업들이 회사의 성장 저해 가능성, 소송 남발 우려 등을 이유로 상법 개정에 극구 반대표를 던지고 있음이 이를 방증한다. 올해 주총 현장에 불었던 변화의 바람이 일시적 이벤트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상장사들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주주를 동반자로 여길 때 비로소 진정한 밸류업을 실현할 수 있지 않을까. 김기령 기자 giryeong@ekn.kr

[기자의 눈] 재계 ‘민간 외교관’ 뛰는데 정치권은 ‘불구경’

“향후 4년간 미국에 210억달러 가량을 추가 투자하려 합니다." 지난달 25일(이하 현지시간)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미국 백악관에서 한 말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현대차가 미국에서 철강·자동차를 생산하게 된다"고 거들었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백악관에서 대미 투자를 발표한 기업인은 손정의 소트프뱅크 회장과 웨이저자 TSMC 회장 뿐이다. 우리나라 '민간 외교관' 위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같은달 28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났다. 중국이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국제공상계 대표 회견'에서 글로벌 기업 최고경영자(CEO) 40여명을 초청했는데 이 회장이 포함된 것이다. 미국을 중심으로 '관세전쟁'이 본격화한 가운데 중국은 조심스럽게 한국에 손을 내밀고 있는 상황이다. 이 회장은 샤오미, BYD 등 현지 대표 기업 리더들과 회동하며 파트너십도 도모했다. 대한상공회의소 소속 기업인들은 지난 2월 미국 워싱턴 D.C.를 찾아 '대미 통상 민간 아웃리치' 활동을 전개했다. 최태원 회장은 백악관 및 상·하원 고위 관계자들을 만나 한미 양국간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글로벌 통상 환경 변화 대응법을 모색하기 위한 경제단체들의 세미나·강연도 계속 열리고 있다. 민간 외교관이 이처럼 바쁜 것은 한국 경제가 기로에 섰기 때문이다. 내수 경기 침체가 지속되는데 '무역 전쟁'에 휘말릴 위기다. 환율은 치솟고 금융 시장도 불안하다. 각국이 관세 장벽을 세워 수출까지 줄어들면 상황이 더 심각해질 수 있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을 직전 전망치보다 0.7% 포인트 내린 1.5%로 잡았다. 일부 해외 경제 분석 기관에서는 우리나라 성장률이 0%대에 머물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정치권은 강건너 불구경 중이다. 12·3 계엄사태 이후 행정부 외교라인은 사실상 멈춰 섰다. 미국이 우리나라를 '민감 국가' 명단에 포함시킨 사실을 두 달 동안 몰랐을 정도다. 국회는 민생과 경제는 저버린 채 '표심 잡기'에만 몰두하고 있다. 연초부터 추가경정예산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정치 논리만 앞세우다 적기를 놓쳤다. 사상 최악의 산불이 발생한 이후에도 여야는 추경을 흥정 대상으로 보고 있다.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이 “기업은 2류, 관료는 3류, 정치는 4류"라고 일갈한 게 1995년이다. 30년이 지났다. 우리 기업들은 1류 반열에 올라섰다는 평가를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 정치는 어떠한가? 대통령 탄핵 사태라도 빨리 수습되길 바랄 뿐이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기자의 눈] 급격한 전력시장 변화 바람, 부작용 최소화해야

전력산업이 대대적인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탄소중립 정책과 재생에너지 확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불거진 국제연료비 급증과 이에 따른 한전의 적자 심화로 인해 전기요금 인상 압력이 지속되었고, 정부는 두 해 연속 산업용 전기요금을 올리는 조치를 취했다. 이에 제조업을 비롯한 대규모 산업 고객들은 비용을 절감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고 전력직접거래라는 방법을 통해 한전을 이탈하려 하고 있다. 지난 28일 전기위원회에서 전력직접거래를 위한 전력시장운영규칙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이제 다수의 대규모 제조 기업들이 한전을 거치지 않고 전력도매시장에서 직접 전력거래를 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는 법적으로 보장된 권리이기에 막을 방법은 없다. 제조업 중심인 한국에서 기업들이 전기요금 인하 방법을 찾는 것은 필연적이다. 산업용 전기소비가 전체의 절반 이상인 만큼 전력산업 개방 요구도 계속돼 왔다. 하지만 앞으로 한전의 재무구조 악화뿐만 아니라, 기존 소비자들의 권익 침해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이 크다. 산업부에서 올린 개정안에는 이러한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보완책은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 또한, 조만간 시행될 송전제약 PPA(전력구매계약) 고시로 인해 송전제약 지역에서는 용량과 관계없이 직접거래가 가능해질 전망이다. 여기에 발전사들도 한전을 거치지 않는 구역전기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상반기 분산에너지특별구역 지정까지 더해지면 산업용 전기 고객들의 이탈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처럼 산업용 고객들이 새로운 조치들을 통해 한전에서 이탈하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지만, 전력당국이 이를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산업용 고객의 대규모 이탈로 인해 한전의 적자는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크고, 이는 결국 요금 정상화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또한, 산업용 전기를 제외한 일반 소비자들의 구매 다변화 문제도 얽혀 있어 향후 시장 불안정성이 커질 수 있다. 산업용 전력 소비자들의 이탈이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한전의 지속 가능한 운영 방안을 고민해야 하며, 일반 소비자들에게 과도한 부담이 전가되지 않도록 균형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전력시장 선진화는 단순한 직거래 활성화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에너지 안보, 재생에너지 확대, 전력망 안정성 등 다양한 요소들과 맞물려 있는 복잡한 문제다. 전력당국은 급격한 변화가 초래할 혼란과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기자의 눈] 금융당국 믿지 못하는 은행…신뢰 쌓기가 먼저다

현재 은행권 내부에서는 금융당국과 외부에 대한 '불신'이 가득 차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오락가락한 정책과 불안한 정국까지 더해지며 은행들은 각종 정책과 금융당국 입을 믿을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최근엔 서울시의 토지거래허가제(토허제) 정책이 화근이 됐다. 서울시는 지난달 재산권 보호를 이유로 일부 토지거래허가구역(토허구역)을 해제했는데, 주택담보대출이 폭증하자 한 달여 만에 토허구역을 확대 재지정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한 달 만에 번복된 서울시의 정책에 시장에서는 대혼란이 발생했다. 금융당국은 가계대출 관리를 강화하겠다며 진화에 동참했다. 은행권의 가계대출 모니터링에 지역별 관리를 추가하도록 했고, 주택담보·전세자금대출 점검도 하기로 했다. 여기에 주로 서민들이 이용하는 정책대출이 부동산 시장을 자극할 경우 추가 금리 인상에 나설 수 있다는 점도 언급했다. 은행권의 혼란은 가중됐다. 금융당국은 그동안 은행권에 가계대출 금리를 인하해야 한다고 압박해왔다. 하지만 서울시가 촉발시킨 가계대출 확대를 잡기 위해 은행권에 대출 관리 강화를 주문하며 은행들은 가계대출 금리를 내릴 수도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 됐다. 연초부터 총량 관리 리셋에 따라 은행 자체적으로 조이고 풀어왔던 대출 정책에 혼선이 생겼는데, 금융당국이 금융사들의 자율 관리 강화를 주문하면서 난처함도 커졌다. 은행권에서는 금융당국이 강하게 밀어부치고 있는 제4인터넷전문은행을 바라보는 시선도 곱지 않다. 제4인터넷은행이 이번 정부에서 나온 구상인 데다, 정국 혼란으로 조기 대선 가능성이 나오고 있어 장기적으로 이어질 정책이 아닐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는 제4인터넷은행 인가는 예정대로 진행할 것이라며 의지를 보이고 있으나, 금융당국이 기존 인터넷은행에 대해 좋지 않은 평가를 내리고 있어 새로운 인터넷은행 출범에 결코 호의적으로 나설 수 없을 것이란 반응도 적지 않다. 금융위가 지난 25~26일 제4인터넷은행 예비인가 신청을 진행한 결과 한국소호은행을 비롯한 4곳의 컨소시엄이 참여했다. 유력 후보였던 더존뱅크 컨소시엄과 유뱅크 컨소시엄은 접수 일주일을 앞두고 신청을 포기하거나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각 컨소시엄에 참여 가능성이 높았던 신한은행과 IBK기업은행은 사실상 제4인터넷은행에서 발을 뺀 것이다. 정책과 금융당국에 대한 불신이 생기면 은행들은 미래에 대한 예측 가능성이 떨어지고 내부 전략을 세울 때도 불확실성을 지울 수 없게 된다. 금융산업이 건강하게 발전하기 위해서는 정책, 금융당국, 금융회사 간 신뢰가 중요한 이유다. 금융당국의 오락가락한 태도와 정책의 급격한 변화에 은행권에서 볼멘소리가 나오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일관되고 꾸준한 정책과 금융당국의 태도가 필요하며, 불안한 지금의 정국에서 어서 벗어나 금융산업 내 신뢰를 쌓는 일이 우선돼야 한다. 송두리 기자 dsk@ekn.kr

[기자의 눈] ‘산불피해’ 국회의원보다 먼저 움직인 금융지주 회장들

국회의원들이 민생은 외면하고, 정권에만 몰두한 채 유치한 싸움까지 불사하는 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산불 사태로 26명이 사망하고, 주민들이 삶의 터전을 잃은 채 목숨을 걸고 대피해야 하는 이 상황에서조차 국회의원들은 어김없이 서로를 향한 날선 공방만 이어가고 있다. 정말 이정도인가. 국회를 향한 실망이 최고조에 이른 것은 이달 23일이다. 신한지주를 시작으로 KB금융지주, 우리금융지주, 하나금융지주는 이날 오후께 앞다퉈 산불 피해지역 복구 및 이재민 구호를 위해 성금 각 10억원을 기부하고, 긴급 구호키트·급식차·생필품 등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산불 피해를 다룬 뉴스를 보면, 은행 로고가 새겨진 구호 텐트가 나오는데, 이는 모두 금융지주사들이 신속하게 대처한 덕분이다. 나아가 금융지주사들은 이재민의 경제적 어려움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은행, 보험, 카드 등 계열사들을 주축으로 특별대출, 만기연장, 금리우대 등 금융지원 프로그램을 가동하겠다고 했다. 그 시각 국회의원들은 무얼 했나. 더불어민주당은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파면을 선고할 때까지 광화문에 천막당사를 설치하고, 광장에서 국민과 함께 싸우겠다고 했다. 국민의힘도 이에 지지 않고 더불어민주당에 맹공을 퍼부었다. 국가는 산불과 목숨을 건 전쟁을 벌이고 있는데, 정작 국회는 국가 재난을 가벼이 여겼다. 다음날(24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과태료 300만원을 감수하면서도 대장동 민간업자들의 배임 혐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지 않았다. 300만원이라는 금액은, 산불로 생사를 오가는 이재민들의 상황에 비춰보면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다. 이어 이재명 대표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항소심에서 무죄를 받은 직후 경북 안동의 이재민 대피소를 비롯한 경북 지역의 산불 피해 현장을 방문했다. 그가 정말 산불피해에 진심이었다면, 왜 본인이 무죄 판결을 받고 나서야 현장을 방문하는가. 산불피해 현장에 성금을 기부하고, 각종 지원책을 마련해야 하는 주체는 금융지주사가 아닌 국회의원이다. 어떤 기업들보다 당연히 국회가 먼저 움직여야 하고 대응책을 강구해야 한다. 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이 국민과 함께 싸우고, 사투를 벌여야 할 대상은 희망 없이 고꾸라지고 있는 국가 재난과 경제 위기다. 나유라 기자 ys106@ekn.kr

[기자의 눈] 홈플러스 사태는 ‘의료사고’…김병주 회장의 ‘통 큰 사재 출연’ 기대

홈플러스의 기습적인 기업회생 신청을 들여다보며, 수년 전 심층 취재했던 의료사고 사례가 떠올랐다. 당시 만났던 유가족들이 하나 같이 분노했던 지점은 의료사고를 낸 당사자에게 책임을 물리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는 점이었다. 수술을 집도한 의사가 사고를 냈어도, 오히려 수술을 보조하거나 환자를 관리한 다른 의료진이 책임을 지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유가족은 분통을 터트릴 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현행법상 의료사고의 '입증책임'이 유가족에게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의료사고 재판에서 유가족이 승소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 결과를 낳는 원인이다. 의료사고를 입증할 증거도 부족하지만, 용어부터 수술 과정까지 의학적인 지식에 무지한 일반인이 전문가를 이기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당시 취재에서 만났던 한 남성은 자녀를 의료사고로 잃은 후 생업마저 포기하고 수년에 걸쳐 의학공부를 했다. 덕분에 다른 의사들에게 의료사고임이 명백하다는 감정까지 받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결국 담당 의사에게 법적 책임을 묻는 재판에서는 승리하지 못했다. 구체적인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에서다. 대신 간호사들만 법적 처벌을 받았다. 홈플러스 사태는 의료사고와 결을 같이한다. MBK는 의료사고를 낸 수술 집도의다. 홈플러스 사태는 인수 이후 운영부터 기습적인 회생 신청까지, MBK 방식을 고수한 결과가 만들어낸 참상이다. 유가족에게 입증책임이 전가된 것처럼, 이번 사태에서도 MBK의 책임을 입증해야 하는 역할은 투자자, 금융권, 금융당국 몫이 됐다. 홈플러스 사태는 우리나라 지역 경제에 커다란 악영향을 미치고, 단기자금 시장을 위축시키고, 상품권 사용 제한 등 소비자 불안을 키웠으며, 금융권과 투자자에 큰 손실을 안긴 전무후무한 사건이다. 조사는 이어지고 수사도 진전을 보이고 있지만, 자금이 묶인 투자자들이나 생계를 걱정하는 직원들을 지옥에서 꺼내줄 정도의 해결책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사태가 일파만파 커지는 가운데 김병주 MBK 회장이 사재를 출연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일부 투자자들로 부터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자본시장 전문가들의 시각은 다르다. 면피용일 뿐, 현실성이 없다는 의견이다. 홈플러스는 유동화증권(ABSTB)을 '상거래채권'으로 인정해 투자자들의 피해를 막겠다던 입장이었다. 그러나 그 이면에서는 또 다른 계산이 있었다는 정황도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 의료사고를 낸 집도의에게 '양심'을 기대할 수 없듯, MBK에 엑시트가 아닌 운영 정상화를 위한 노력을 기대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MBK의 주인 김병주 회장이 보여줄 '통 큰 사재 출연'을 기대해 본다. 장하은 기자 lamen910@ekn.kr

[기자의 눈] 홈플러스에서 드러난 MBK의 생각…고려아연 때는 다를까

“투자가 완료된 개별 포트폴리오 회사의 경영에는 관여하고 있지 않아 질의에 대한 충실한 답변을 드리지 못할 것이 염려된다"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이 이른바 '홈플러스 사태'에 대한 국회 정무위원회 현안질의를 앞두고 돌연 중국 출장을 떠나며 불출석 사유서를 통해 이 같이 밝혔다. 입장에 따라서 해석이 분분하다 대체적으로 홈플러스 사태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발언이라는 지적이 많다. 최근 국내 대표 대형마트인 홈플러스의 급작스런 회생신청이 재계에 충격을 주고 있다. 기업의 영속성에 대한 판단을 법원에 구했다는 점에서 결코 가볍게 지나칠 수 없는 사안임에는 분명하다. 특히 자구 노력이나 채무재조정 단계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법원의 문을 두드렸다는 것이 이례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MBK가 여전히 비슷한 방식으로 고려아연의 경영권을 확보하려고 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고려아연 측은 최근 입장문을 통해 “MBK 측은 과거 수많은 기업의 인수 과정에서 지속적인 말바꾸기를 진행해왔다"고 지적했다. 고려아연 측은 MBK가 기업을 장악한 이후 인위적인 구조조정을 하지 않고 적극적인 투자를 하겠다고 공언했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고 지적했다. 투자금 회수 극대화를 위해 핵심자산을 매각하고 구조조정을 강행해 경쟁력을 훼손하더니, 이후 최종적 매각이 어려워지자 법정관리로 단숨에 손을 떼는 무책임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고 꼬집었다. 물론 MBK 입장에서도 변명거리가 없지는 않다. 특히 최근 코로나19 사태는 오프라인 유통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홈플러스가 매장 등 부동산 자산을 매각해 차입금을 갚아나가기 시작한 것도 이 때부터로 보인다. 벌어들이는 돈으로 이자비용을 감당하기 힘들었던 홈플러스 입장에선 입지가 우수한 알짜매장을 팔 수 밖에 없는 처지로 내몰린 셈이다.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던 코로나19 사태와 그에 따른 온라인 이커머스 활성화로 인해 홈플러스는 미처 손 쓸 틈이 없이 악화됐다. 하지만 기업의 경영이 큰 어려움이 발생하지 않아야만 순항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 비슷한 처지의 기업들도 저마다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한 노력을 진행하고 있지 홈플러스처럼 신속하게 기업회생의 결정을 내리지는 않았다. 향후 MBK가 고려아연의 경영권을 확보하더라도 최근 비철금속 업황 등을 고려하면 넘어야할 난관이 적지 않다. 이 같은 난관에 부딪쳐 크게 흔들릴 때에 경영을 책임져야할 MBK가 '투자가 완료된 개별 포트폴리오 회사'라며 고려아연을 나 몰라라 하지 않을지 걱정이 앞선다. 윤동 기자 dong01@ekn.kr

[기자의 눈] 디지털 시대, 노인 배려가 필요하다

“아무 자리나 좋으니 남는 표 있으면 제발 한 장만…" 때아닌 더위에 국내 프로야구(KBO) 개막 열기가 더해진 지난 22일 야구장 앞을 서성이던 한 남성은 이같이 호소하고 있었다. 이마에 깊이 패인 주름에 머리 희끗한 그의 나이는 어림잡아 60대 중후반대. 입장권을 구매할 돈이 없어서 응원석 한 자리를 구걸한 게 아니었다. 선착순 온라인 예매가 보편화되면서 현장으로 들어설 길목이 가로막힌 것이다. 이같은 일을 겪는 건 고령층 야구 팬뿐만이 아니다. 디지털 기기의 발전은 삶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했지만, 중·장년층에게는 혜택이 아닌 장벽이 되고 있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지 않은 이들로썬 낯선 용어들과 복잡한 기기 조작, 분초 단위를 요구하는 단계별 승인 절차는 편리함이 아닌 좌절감을 높일 뿐이다. 물론 이들을 위한 조치가 아주 없었던 건 아니다. 눈이 침침한 이들을 위해 글씨를 크게 볼 수 있도록 조정했고, '쉬운 사용 모드'를 도입해 자주 사용하는 애플리케이션을 큼직하고 깔끔하게 볼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며 동작이 한층 느려진 이들이 '초 단위 스피드'를 필요로 하는 온라인 티켓팅을 스스로 하거나, 주변의 인내심 없이 키오스크로 주문을 빠르게 완료하기란 여전히 쉽지 않다. 최근엔 사회 모든 구성원이 차별 없이 디지털 기술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디지털 포용' 개념이 자리잡으며 기업 차원의 맞춤형 서비스 개발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문제는 대부분의 기술이 장애인의 신체적 특성에 기반해 일부 한계가 뚜렷하다는 것이다. 활용 역량을 일부 개선할 순 있어도 노년층의 괴리감을 좁힐 수 있는 근본 대책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 혹자는 '노인들도 기술 트렌드를 수용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하겠으나, '디지털'이란 개념을 채 익히기도 전에 바뀐 시스템을 맞닥뜨린 이들에겐 다소 부적절한 지적이란 생각이다. 사전 교육 하나 없이 실전에 투입된 신입사원에게 유의미한 성과를 기대하는 것과 다를 게 없는 상황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달부터 제공되는 '114 택시 대신 불러주기 서비스'에 눈길이 갔다. 노년층에게 익숙한 '114' 시스템을 활용해 어려움 없이 택시를 예약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에서다. 서비스 지역 전면 확대까진 시간이 다소 걸리겠으나, 올 연말부턴 전국 어디서나 이용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노년층 대상 교육도, 특화 기술 개발도 중요하겠지만 현재로썬 이들의 적응 속도에 발맞춘 서비스 도입이 시급하다. 시니어 전용 좌석 입장권을 현장에서 별도 판매하거나, 키오스크 보조인력을 배치해 주문을 돕는 것과 같은 '배려' 말이다. 이태민 기자 etm@ekn.kr

[기자의 눈] 이 상황에 또 디젤을?…폭스바겐 ‘재고떨이’ 논란

왕년에 자동차 시장을 주름잡던 '디젤차'는 친환경 정책에 따라 뒷방 늙은이 신세로 전락해버렸다. 최근 한국시장에선 전기차, LPG차에도 밀리며 점점 사라져 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런 와중에도 꾸준히 디젤차를 내놓는 곳이 있다. 지난 14일 폭스바겐코리아는 국내 시장에 '신형 골프'를 출시했다. 최근 부진한 판매실적 회복을 위해 매니아층이 단단한 대중모델을 출시한다는 전략이다. 그러나 이 전략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아무리 골프가 인기 많고 역사깊은 차량이라도 디젤차는 한국 시장서 더 이상 메리트가 없다. 여전히 연비성능은 뛰어나지만 이외에 포기해야 하는 부분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디젤차는 2010년대 뛰어난 연료 효율성, 강한 토크 등으로 인기가 많았다. 스포츠유틸리티 차량(SUV)은 물론 세단에도 디젤엔진이 탑재되는 등 전성기를 누렸다. 이후 2015년 폭스바겐을 비롯한 유럽 완성차 업체들이 디젤차의 배출가스량을 조작한 사실이 드러난 '디젤게이트' 사건이 발생하면서 인기가 식었다. 게다가 경유의 불완전 연소로 발생하는 미세먼지, 일산화탄소, 질소산화물 등은 인체에 유해한 물질로 밝혀지면서 완성차 브랜드들은 '경유차 판매 중단'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디젤차 보유자에게 6개월마다 '환경부담금'을 부과하는 등 규제를 두고 있어 감소세는 매년 가팔라지고 있다. 이로 인해 소비자들에게 디젤차는 환경오염의 주범이자 1년에 두번 세금도 더 내야하는 차로 인식되고 있다. 게다가 이런 단점들이 부각되면서 이로 인해 중고차 감가방어도 어려워졌다. 그런데도 폭스바겐은 한국 시장에 꾸준히 디젤차를 선보이고 있다. 지난해 출시했던 대형 SUV 투아렉도 디젤이고 이번에 출시한 골프도 디젤이다. 만약 지난해에 냈던 디젤 투아렉이 엄청난 성공을 거둬서 이번에도 같은 전략으로 가는 것이라면 이해하겠지만 그렇지도 않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 집계에 따르면 폭스바겐코리아는 지난해 전년 대비 19.3% 감소한 8273대 판매를 기록했다. 지난해 수입차 판매 9위에 그쳤고 올해 1월과 2월에도 각각 14위, 10위에 오르며 판매량 부진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 폭스바게코리아가 또다시 수요 없는 디젤차를 내놓으면서 소비자들 사이에선 “재고떨이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한국 소비자들을 위한 차가 아닌 유럽에서 팔리지 않는 재고를 처리하기 위해 한국으로 차를 보내는 것이 아니냐는 불만이다. 폭스바겐코리아의 최근 몇년의 성적과 출시 모델을 보면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만 한 부분으로 보인다. 폭스바겐이 주춤한 사이 렉서스, 토요타, 볼보 등 신흥강자들이 빠르게 치고 올라왔다. 이들의 판매 모델을 살펴보면 디젤은 단 한대도 찾아볼 수 없다. 물론 본사의 정책 아래 움직이는 법인이지만, 정말 한국 시장에서 살아남고 싶다면 적어도 트렌드에 맞는, 한국 소비자들을 위한 모델을 출시하길 바란다. 이찬우 기자 lcw@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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