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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MBK의 기습 회생 신청, 무서운 후폭풍이 온다

2012년 9월 26일 오전. 모 대형금융사 임원의 입에서 “당했다"는 외마디 비명이 나왔다. 웅진이 '워크아웃' 대신 '회생절차 개시'를 신청했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다. 당시 웅진은 극동건설의 부실이 계열사 전체로 전이되면서 그룹이 존속 위기에 처한 상황이었다. 웅진은 '워크아웃'을 검토했으나 법무법인 태평양의 조언에 따라 기습적으로 '회생'을 신청했다. 태평양은 웅진그룹에 왜 워크아웃 대신 회생 신청을 추천했을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극동건설만 포기하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회생계획안이 실행되면 필연적으로 대주주 무상감자와 같은 절차는 거치겠지만 금융채권 뿐만 아니라 상거래채권 등 모든 채권이 조정된다. 또 회생계획안이 실행되기 전까지 기존 주주는 경영권을 확보할 수 있어 긴급한 사안도 처리할 수 있다. 모 금융사 임원 입에서 '당했다'라고 외칠만큼 한계기업에게 회생은 달콤하다. 금융채권과 상거래채권이 동결되었으며, 워크아웃처럼 금융권에 끌려다니지도 않는다. MBK의 홈플러스 기습 회생 신청도 이와 유사하다. 금융권을 중심으로 '당했다'는 의견이 거세지고 있다. 우선 메리츠 그룹은 부동산 담보가 있어 회수가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지만, 일정한 채무재조정은 불가피할거라고 업계에서는 예상하고 있다. 신영증권의 경우, 홈플러스를 사기죄로 형사 고발할 방침이라고 전해진다. 금융사, 금융 당국을 중심으로 기습적으로 회생 신청을 한 그룹사에 대해 철퇴를 꺼내든다. 여기에 유통업이란 특수성이 고려되어 피해자가 양산될 경우에는 행정 기관과 여론까지도 동참하곤 한다. 국회는 긴급 현안 질의나 국정 감사를, 국세청은 세무조사를, 금융사는 거래 중단을, 여론은 비판을 통해 기습 회생 신청 그룹사를 압박한다. 오너들은 법원에 불려가곤 한다.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이나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이 걸어왔던 길이다. MBK파트너스와 김병주 MBK 회장의 운명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다만, MBK파트너스는 과거처럼 아시아 1위 사모펀드로서 MBK란 이름이 '신용의 상징'이던 시절은 이젠 다시 돌아오지 않을 전망이다. 한 번 깨진 신용은 수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울러 수많은 청년들의 롤모델이었던 김병주란 이름 역시 크게 훼손될 것으로 보인다. 사재출연으로 최소한의 명예를 지키는 것에 집중해야할 전망이다. 박기범 기자 partner@ekn.kr

[기자의 눈] 실손보험 개혁, 모럴 해저드 ‘부메랑’

정부가 추진 중인 비급여 관리·실손보험 개편안을 두고 의료계·법조계·보험업권 등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국회에서 연달아 관련 토론회가 열리는 등 다양한 목소리를 수렴하기 위한 정치권의 행보도 이어지고 있다. 이같은 개혁이 건강보험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고 보험 시장의 건전성도 확보할 수 있으나, 국민들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치료 선택권을 제한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기 때문이다. 보험사는 속도감 있는 개혁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상반기 4세대 실손보험 손해율이 130%에 달했던 탓이다. 전체적으로도 2022년 117.2%, 2023년 118.3%, 지난해 상반기 118.5%로 오름세다. 비급여 시장이 2023년말 20조원 규모로 형성되는 등 급증하는 것도 언급된다. 가입자의 65%가 보험금을 한 푼도 수령하지 못한 반면, 수령 상위 9%가 전체 보험금의 80%를 받은 것도 지적을 받는 대목이다. 일부가 받는 혜택이 전체 가입자의 부담으로 돌아가는 탓이다. 작년 3월 한달간 도수치료와 체외충격파 진료비만 1900억원에 육박하는 등 이번 개혁의 주된 원인으로 꼽히는 진료 항목의 비용도 무섭게 불어나고 있다. 정부가 병행진료 급여를 제한하고, 비급여 진료에 대한 자기부담률을 90% 수준으로 높인 5세대 실손보험 전환을 추진하는 까닭이다. '보험사 편을 든다'는 오해를 무릅쓰고 이번 개혁을 추진하는 것도 장기간에 걸친 보험료 조정으로 부담이 커진 1~2세대 가입자들을 돕겠다는 취지다. 이에 대해 보험사의 책임을 묻는 의견도 상당하다. 상품을 설계할 당시 이같은 변수를 계산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관심법'을 쓰지 않는 이상 예측하기 힘든 사항이 많았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 피부과 진료와 도수치료를 결합한 것이 예시로 꼽힌다. 오히려 이를 근거로 '사정변경의 원칙'을 주장하는 것도 가능한 실정이다. 의료계에서 과잉진료가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의료수가 정상화를 우선시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번 개혁의 필요성을 돋보이게 만든다. 수가를 올린다고 해도 통원으로 치료할 수 있는 질환을 입원으로 돌리는 등 보험금 과다청구를 막는다는 보장은 없고, 의료계의 수익만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현상이 지속되면 다른 가입자와 의료인들도 '사슴 사냥의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이는 다같이 협력해 사슴을 잡는 대신 눈 앞에 있는 토끼를 쫓는 플레이어가 많아지면 사슴은 사슴대로 놓치고 토끼도 얻지 못하는 상황을 면하기 위해 다같이 토끼로 발걸음을 돌리는 상황을 뜻한다. 금융당국을 비롯한 정부와 보험업권 및 의료계가 의정갈등이라는 명분 뒤에 숨지 말고 모여 허심탄회하게 해결책을 논의하고, 국민들에게 상황을 설명하는 등 이같은 파국을 막기 위한 파트너십이 필요한 시점이다. 나광호 기자 spero1225@ekn.kr

[기자의 눈] 상법 개정안, 경제 항해의 새 항로가 되길

상법 개정안을 두고 경제계의 반응이 뜨겁다. 마치 콜럼버스가 신대륙으로 항해하겠다고 했을 때 “지구 끝에서 떨어질 것"이라고 경고하던 사람들을 연상시킨다. 대한상의, 한국경제인협회,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주요 경제단체들이 일제히 “기업의 투자와 혁신을 저해하여 국가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며 마치 절벽 끝을 향해 나아가는 위험을 경고하고 있다. 일부 언론에서는 이미 “기업 발전 저해"라는 제목으로 아직 출항도 하지 않은 항해의 실패를 예견하고 있다. 이런 반응, 어디서 많이 본 듯하지 않은가? 그렇다. 금융실명제, 집단소송제, 내부자 거래 규제, 순환출자 금지, 가맹사업법 개정, 금융소비자보호법 등 우리 경제와 금융 시스템을 한 단계 발전시킨 법안이 겪었던 과정이다. 당시에도 기업들은 “경영 위축", “투자 저해", “국가 경쟁력 약화" 등을 외쳤다. 하지만 결과는 어떠했는가? 이러한 법과 제도들은 오히려 우리 경제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번 상법 개정안도 마찬가지다.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하는 것이 핵심인데, 이는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소수주주 권익 보호를 위한 필수적인 조치다. 일부에서 우려하는 “소송 남발"이나 “행동주의 펀드의 경영권 공격"은 폭풍 한 번 겪지 않고 항해하려는 선장의 기우가 아닐까? 물론 새로운 제도 도입에 따른 초기 혼란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기업 혁신을 저해할 정도는 아닐 것이다. 오히려 이번 개정안은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춰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역사는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 과거 많은 법과 제도가 도입될 때마다 기업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냈지만, 결과적으로 그것들은 우리 경제를 더욱 건강하고 강하게 만들었다. 마치 강한 면역 체계가 백신의 자극으로 형성되듯, 기업 생태계도 적절한 규제와 개혁을 통해 더 강해졌다. 기업들은 이를 위기가 아닌 기회로 삼아, 더 나은 지배구조와 경영 투명성으로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는 데 집중해야 할 것이다. 콜럼버스가 미지의 바다를 향해 나아갔듯이, 변화의 바다에서 방향을 잃지 않는 나침반을 가진 기업만이 새로운 대륙을 발견하는 영광을 누릴 것이다. 강현창 기자 khc@ekn.kr

[기자의 눈] 애플페이 확대 앞두고...당국 ‘뒷짐’ 감시 반복하나

신한카드와 KB국민카드의 애플페이 진입이 임박하면서 애플페이의 국내 확산을 두고 카드업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국내 카드사가 애플사에 제공하는 기존 0.15%대의 높은 수수료율을 감당해내야 하는 것도 그렇지만 삼성페이의 유료화 부담까지 대비해야하는데다 그렇지않아도 가맹점 수수료 인하로 크게 악화된 업황이 더 나빠질 것이란 우려가 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카드사의 본업 수익성 약화와 각종 수수료 부담은 필연 소비자들의 혜택 축소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카드업계에서 알짜카드와 무이자 혜택이 줄어들고 연회비가 10만원대인 중저가 프리미엄카드 전략이 쏟아져나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런 까닭에 애플페이의 확대를 두고 업계에선 양갈래의 시선이 나타나고 있다. 카드사들의 부담 증가와 소비자 혜택 축소로 이어질 것이란 회의론과 소비자의 결제방식 확대와 간편결제 보급화 등 이점이 보다 큰 결제 편의성을 가져올 것이란 긍정론이 그것이다. 다만 당국이 이런 카드업계의 고민과 소비자 혜택 축소에 대비하려는 움직임이 다소 미온적이란 지적이 나온다. 앞서 여러 공식석상에서 밝힌 당국의 애플페이 확산 후 소비자 피해 우려에 대한 기조는 '지켜보겠다' 혹은 '고민해보겠다' 수준이다.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앞으로 시장에 미칠 영향 부분은 계속 면밀히 지켜보는 한편 수수료 문제가 지금 입장의 변경이 필요한 상황까지로 확대될 경우 고민해보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런 행보는 소비자 혜택 축소가 머지않아 현실화할 것이란 예측에 무게감을 더한다. 지켜보는 기조를 취했다가 소 잃고 외양간 고친 격이 더러 있었기 때문이다. 당국은 애플이 한국 이용자 4000만명의 개인정보를 무단으로 중국 알리페이에 넘긴 사태 당시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의 질의에 '모르쇠식' 성의없는 답변만을 반복할 때도 침묵했다. 애플이 국내 소비자에게 무성의하고 차별적인 AS(애프터서비스) 정책을 보인다는 지적이 일었을 때도, 앱스토어 수수료 문제가 불거졌을 때도 당국은 '뒷짐'을 졌다. 당국은 국내 업체들은 규제에 따라 엄격하게 감시하지만 통상 애플과 같은 해외 기업들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이들 업체가 회피하거나 조사에 비협조적인 태도를 취해도 국내 실정법상 제재 수단이 미비하단 이유로 그들에게 피할 길을 내줬다. 애플페이 수수료 책정은 기업간 계약이기에 그렇다쳐도, 향후 애플페이 확대가 가져올 정보유출 문제나 카드사들의 소비자 혜택 감소에 대한 대비가 이번에도 너무나 미흡하단 지적이 나온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을 반복하기에 앞서 이번엔 치밀하고 단단한 대비가 선행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박경현 기자 pearl@ekn.kr

[기자의 눈] 법정에 선 기후위기, 우리는 피고가 아닐까?

최근 기후소송이 연이어 제기되고 있다. 한국가스공사의 모잠비크 가스전 투자, 포스코의 고로 개수, 삼성전자의 용인 국가산단 LNG 발전 계획 등 정부와 대기업을 상대로 한 법적 대응이 잇따르고 있다. 이전까지는 정부의 미온적인 기후 대응을 문제 삼았다면, 이제는 탄소 배출이 많은 기업들도 법정으로 불려가고 있다. 하지만 기후소송의 진짜 가해자는 누구일까? 소송이 겨냥하는 대상은 분명하다. 온실가스를 대량으로 배출하는 기업과 기후위기 대응에 미온적인 정부다. 가스공사는 7500억원을 투자해 해외에서 신규 가스전을 개발하려 하고, 포스코는 석탄 기반 철강 생산을 유지하며 탄소 배출을 줄일 계획이 없어 보인다. 삼성전자가 추진하는 용인 국가산단 역시 LNG 발전을 기반으로 해 재생에너지 확대와는 거리가 멀다. 정부 역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탄소중립기본법이 제정됐지만 기후대응 목표는 여전히 느슨하고 실제 온실가스 감축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난해 8월, 헌법재판소는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이 충분치 않다고 판단하며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소송을 제기한 환경단체와 기후활동가들은 이제 탄소 다배출 기업을 향해 소송을 본격화하고 있다. 그러나 기후위기의 책임이 오로지 정부와 기업한테만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우리는 여전히 석탄과 가스로 생산된 전기를 사용하면서도 기후위기 해결을 요구한다. 저렴한 가격의 제품과 편리한 생활을 원하면서도 이를 가능하게 하는 산업 구조가 지속되는 데에는 별다른 문제의식을 가지지 않는다. 기후위기가 이렇게까지 심각해진 이유는 특정 기업이나 정부 정책 때문만이 아니다. 기후위기의 책임은 구조적이고 우리의 무관심 속에서 더욱 공고해졌다. 기업은 화석연료를 사용한 제품을 생산하지만 소비자가 이를 외면하지 않는 한 계속해서 판매될 것이다. 정부는 탄소중립 정책을 발표하지만, 시민들의 강한 요구가 없다면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 동력이 부족하다. 기후소송은 이제 정부뿐만 아니라 기업까지 책임을 묻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법정 싸움만으로 기후위기를 해결할 수는 없다. 기후소송은 단순한 법적 다툼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에 변화를 요구하는 신호다. 기후위기의 가해자는 법정에 서 있는 정부와 기업만이 아니라 우리 개인이고 사회라는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 정부와 기업이 기후위기 대응을 주저하는 동안, 우리는 얼마나 적극적으로 변화를 요구하고 있는가? 이제 법적 책임을 묻는 것을 넘어 기후위기를 늦추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할 때다. 윤수현 기자 ysh@ekn.kr

[기자의 눈]오세훈·서울시의 ‘견리망신(見利忘身)’

'견리망신(見利忘身)'이라는 말이 있다. 코 앞의 이익에 눈이 멀어 곧 다가올 위험을 알지 못한다는 의미다. 최근 토지거래허가구역을 해제한 오세훈 서울시장과 서울시가 보여준 모습이 그렇다. 시는 지난달 강남구 삼성·대치·청담동 등 이른바 '잠·삼·대·청' 소재 261개 아파트 단지를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 해제했다. 이후 해당 지역 아파트 값이 급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그곳 집 주인들이야 좋아하겠지만 서울 전체에서 극히 일부다. 이전과 달리 서울 전체로 퍼지기는 커녕 양극화 심화, 집값 과열, 갭투기 열풍으로 이어져 전국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각종 통계를 보면 지난달 단행된 토허제 해제가 서울 부동산 시장의 양극화에 불을 지른 건 확실하다. 한국부동산원의 '3월 첫째 주 아파트가격 동향'에 따르면, 송파구는 전주 대비 0.68% 폭등하며 2018년 2월 첫째 주(0.75%) 이후 7년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보였다. 삼성·대치·청담동이 있는 강남구도 전주 대비 0.52% 상승하며 2018년 9월 첫째 주(0.56%) 이후 약 6년 반 만에 가장 치솟았다. 반면 다른 곳은 침체 일로다. 노원구, 도봉구, 강북구, 금천구 등은 직전 최고가 대비 3억~6억원 가량 낮은 가격에 거래되는 등 아파트 가격이 계속 하락하고 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시도 해명에 나서고 있다. 시는 “잠실·삼성·대치·청담 아파트 305곳의 토허제 해제 전후 실거래 자료를 비교한 결과, 전체 거래량이 해제 전 78건에서 해제 후 87건으로 9건 증가했다"며 “평균 매매가격 역시 26억9000만원에서 27억1000만원으로 소폭 상승한 수준"이라 해명했다. 이어 “가격이 상승한 사례도 있지만 직전 거래 대비 하락한 사례도 다수 확인됐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같은 주장은 토허제 해제 전후 22일간의 단기 데이터만 반영해 '숫자 장난'이라는 반박을 받고 있다. 단기간의 짧은 통계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뒤늦게 오 시장도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과도하게 오르면 다시 규제하는 것을 검토하겠다"고 한발 빼는 모양새다. 애초부터 수많은 전문가들은 토허제 해제가 투기와 집값 양극화 현상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해 왔었다. 오 시장과 시는 대선 출마를 위한 치적 쌓기·표심 얻기에 열중한 나머지 서울 부동산 시장의 고질병을 또 다시 악화시켰다는 지적을 면치 못할 것이다. 김유승 기자 kys@ekn.kr

[기자의 눈] ‘中 스마트폰 굴기’…위기 아닌 기회로 삼아야

최근 막을 내린 세계 최대 이동통신 전시회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 2025'에서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들의 존재감이 더욱 뚜렷해졌다. 한때 '싼 맛에 쓰는 저가 브랜드'라는 이미지가 강했던 중국 업체들은 이제 혁신의 선두에 서며 글로벌 시장의 주도권을 넘보고 있다. 전통 강자였던 삼성전자에게도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이번 MWC에서 공개된 중국 스마트폰들을 관통하는 단어는 '하드웨어 혁신'이다. 화웨이가 전시한 세계 최초 트리플 폴더블(트리폴드) 스마트폰 '메이트 XT'는 펼쳤을 때 10.2인치의 대화면을 제공하면서도 두께는 3.6mm로 얇아 휴대성과 심미성을 모두 잡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아너의 '매직V3'는 펼쳤을 때 두께가 4.35mm, 접었을 때는 9.2mm로 삼성전자의 갤럭시Z폴드6보다 더 얇다. 갤Z폴드6의 두께는 펼쳤을 때 5.6mm, 접었을 때 12.6mm다. 무게와 배터리 용량에서도 매직V3가 갤Z폴드6를 압도한다. 과거 스마트폰 시장에서 '패스트 팔로워'로 치부됐던 중국이 '퍼스트 무버'로 변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중국 업체들은 이제 단순한 기술 추격자가 아니라,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의 혁신을 이끄는 선도자로 자리 잡고 있다. AI 스마트폰 영역에서도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샤오미는 AI 기능을 대폭 강화한 최신 스마트폰 '샤오미 15' 시리즈를 공개했다. 신제품은 자체 운영체계 '하이퍼OS2'에 구글 제미나이를 기본 탑재해 AI 이미지 편집과 AI 음성 인식 등 갤럭시 AI폰과 유사한 AI 기능을 구사한다. 10년 전만 해도 MWC의 주인공은 국내 기업이었다. 삼성전자의 신제품에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됐던 반면, 중국 업체들은 '혁신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10년이 흐른 지금, 삼성전자는 MWC에서 타 제조사를 압도할 만한 결과물을 내놓지 못했다. 삼성전자는 이제 중국의 기술 굴기를 인정하고 대응 전략을 새롭게 짜야 한다. 단순한 브랜드 파워만으로 승부하는 시대는 끝났다. 기술 격차가 사실상 무너진 지금, 더 빠르고 과감한 혁신이 필요하다. 차별화된 소프트웨어 경험, AI 및 생태계 구축, 새로운 폼팩터 개발이 필수적이다. 또한 중국 제조사들의 약진 속에서도 프리미엄 브랜드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전략이 요구된다. 스마트폰 시장에서 한때 중국 업체들은 '추격자'였지만, 이제는 '경쟁자'가 되었고 머지않아 '선도자'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높다. 중국 스마트폰의 성장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이를 위기로 볼 것인가, 새로운 도약의 기회로 삼을 것인가는 이제 삼성전자의 선택에 달려 있다. 김윤호 기자 kyh81@ekn.kr

[기자의 눈] 크립토 서밋, 기대와 다른 현실

지난 7일 미국 백악관에서 열린 '크립토 서밋'은 미 정부가 가상자산을 제도권으로 본격적으로 포섭하려는 움직임으로 관심을 끌었다. 이날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지난 바이든 정부의 가상자산 정책에 대해 비판하고, 연방 정부 차원에서 비트코인을 전략적 자산으로 지정하고 매입할 가능성을 재차 확인했다. 주요 가상자산 기업 대표들도 참석해 정부와의 협력 가능성에 대해 논의하며 시장의 기대감을 키웠다. 그러나 서밋에서 발표된 내용은 기대만큼 구체적이지 않았다. 정부는 비트코인을 어떤 규모로, 어떤 빈도로 매입할지에 대해 구체적인 계획을 밝히지 않았다. 자본이득세 면제 논의도 모든 프로젝트가 아닌 일부 미국 기반 프로젝트로 제한될 가능성이 제기돼 글로벌 시장에서 공정성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낳았다. 결국 정부의 발표가 실질적인 정책이라기보다는 상징적인 메시지에 불과하다는 실망감과 함께 시장 불확실성만 확대됐다. 서밋 이후 비트코인 가격은 오히려 5% 이상 하락하는 등 시장의 실망감을 반영했다. 최근 벌어졌던 50억달러 규모의 옵션 만기, 11억달러 규모의 상장지수펀드(ETF) 자금 유출, 바이비트(Bybit) 거래소의 대규모 해킹 사건 등 악재들로 변동성이 커진 가운데, 흐름을 뒤바꿀 호재가 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또한 연방준비제도(Fed)의 긴축 기조로 인한 금리 인상 우려까지 겹치면서 위험자산인 비트코인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가 흔들렸다. 이번 서밋을 통해 트럼프가 가상자산 산업 발전을 위한 혁신적이고 명확한 정책 방향성을 제시하기를 기대했던 업계의 실망감도 컸다. 정부는 구체적인 규제 완화나 투자자 보호 대책 없이 원론적이고 모호한 메시지만 반복했다. 이는 트럼프가 가상자산 산업의 현실적 필요성이나 글로벌 경쟁력을 위한 지원책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는 평가로 이어졌다. 결국 이번 크립토 서밋은 정부의 진정한 의지를 보여주기에는 미흡했다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 앞으로 정부가 시장의 기대와 현실적인 요구를 반영한 명확한 로드맵과 실효성 있는 정책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가상자산 시장의 혼란은 계속될 것이다. 백악관의 다음 행보에 시장의 관심이 모이는 이유다. 성우창 기자 suc@ekn.kr

[기자의 눈] 다이소 영양제로 드러난 약사-제약사 ‘갑을 관계’

대웅제약과 일양약품이 지난달 24일 균일가 생활용품점 다이소에 3000~5000원짜리 건강기능식품을 출시하자 아니나 다를까 약사들 반발이 거세다. 오는 11일 취임하는 권영희 대한약사회 회장 당선인은 지난달 26~27일 다이소에 영양제를 공급한 대웅제약·일양약품과 이달 중 출시 예정인 종근당건강 등 제약사 관계자들과 잇따라 면담을 가졌다. 이어 다음날 28일 대한약사회는 성명을 통해 제약사들이 약국보다 저렴하게 생활용품점에 공급하는 것처럼 마케팅을 펼치는 것을 규탄한다고 밝혔다. 약사들은 제약사의 다이소 건기식 출시 자체보다 마케팅 방식을 문제삼고 있다. 해당 제약사들이 고품질의 건기식을 생활용품점에 저렴하게 판매하는 것처럼 마케팅을 해 그동안 약국이 폭리를 취해 온 것처럼 소비자에게 오해를 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이러한 제약사의 마케팅 방식에 대한 약사업계의 반발이 사실상 제약사에게 사업 철수 압박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실제로 사업 철수를 결정한 제약사도 생겼다는 점이다. 일양약품은 대한약사회가 성명을 발표한 지난달 28일 현재 출시된 제품 외에 더이상 다이소에 제품을 공급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일양약품은 공급 중단 이유를 밝히지 않았고, 대한약사회도 사업 철수 압박이 없었음을 강조했지만 일련의 사태가 전개된 정황을 보면 약사들의 반발이 영향을 미쳤음을 짐작케 한다. 반면에 대웅제약과 종근당건강은 현재 사업 철수 계획이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두 제약사 역시 약사업계 집단반발을 마냥 무시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제약사의 다이소 건기식 사업 철수는 소비자의 선택권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수개월치에 수만원대 하는 약국 제품 구매를 주저하던 소비자가 필요에 따라 부담없이 다이소 제품을 먹어보고 효과가 있다고 느끼면 약국에서 더 좋은 제품을 구매해 먹어볼 수 있는데 이러한 선택권을 박탈당하는 셈이다. 약사들은 '그동안 약국이 폭리를 취해 왔다는 오해'를 걱정하기보다 '그동안 약사들이 제약사에 막강한 입김을 행사해 왔다는 인식'을 해소시켜주는 게 우선이라고 본다. 제약사 역시 단순히 '고품질'을 강조하기보다는 약국에 공급하는 제품과 다이소에 공급하는 제품이 어떻게 다른지 소비자에게 정확히 알리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김철훈 기자 kch0054@ekn.kr

[기자의 눈] 민주당, 진정 중도보수라면 기후에너지정책 다 바꿔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민주당의 이념 정체성을 진정 중도보수라 규정했다면 민주당은 기후에너지정책을 다 바꿔야 한다. 민주당이 조기 대선 대비용으로 풀고 있는 기후에너지정책은 아무리봐도 진보적이다. 중도보수라고 우겨봐야 국민이 납득할까 싶다. 민주당은 지난 22대 총선 이후와 비교할 때 기후에너지정책에서 중도보수로 갔다고 할 만큼 변화를 보여주지 않았다. 그나마 의미있는 변화는 더이상 탈원전을 고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탈원전 기조 폐기는 민주당이 우클릭을 한 건 맞다. 그러나 에너지 고립섬인 우리나라에서 탈원전을 하겠다는 계획은 원체 실현 가능성 없는 급진적인 정책이었다. 극좌에서 오른쪽으로 한칸 갔다고 중도보수라 할 수 없다. 기후경제부, 기후에너지부는 기후 분야에 힘을 줘서 경제 혹은 에너지 산업을 통제하겠다는 민주당에서 언급된 정부부처 구성안이다. 기후위기 대응에 큰 힘을 쏟겠다는 것인데 중도보수에서는 구상하기 힘든 정부부처다. 윤석열 정부의 재생에너지 보급 목표는 이미 과감하다. 2030년까지 전체 발전량의 21.6%를 재생에너지로 채우겠다고 했는데 지금이 10% 정도니 두 배나 늘려야 한다. 이 대표가 강조해오던 에너지 고속도로는 본래 재생에너지 발전비율을 2035년까지 40%로 늘리기 위한 수단이었다. 중도보수가 추진하기엔 너무 과감하지 않나. 현재 정부가 수립 중인 2035년 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꽤 높게 잡을 생각이 있다면 접어야 한다. 한국경제인협회가 지난달 매출액 기준 1000대 제조기업을 대상으로 NDC에 대해 조사할 결과, 기업 10곳 중 8곳은 정부가 2035 NDC 수립 시 산업부문 감축목표를 현 수준으로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의 중도보수선언은 국민의힘을 극우로 몰아 고립시키겠다는 전략이라는 해석도 있다. 다만, 기후에너지정책으로 보면 윤석열 정부와 여당인 국민의힘이 차라리 중도보수에 가까워 보인다. 이 대표는 진보, 보수 상관없이 경제정책을 실용적으로 접근하겠다는 발언도 했다. 기후에너지정책은 필요하다면 진보로 가도 괜찮다고 해석된다. 하지만 이념적 기반 없이 쇼핑하듯 골라 쓰는 정책은 혼란을 불러오기 마련이다. 기후를 중시하는 규제정책은 중도보수가 지향하는 자유와 반드시 충돌할 수밖에 없다. 반대로 정통 민주당 지지층이 믿고 있는 이 대표의 이미지는 흔들릴 수 있다. 노동규제는 풀어주면서 기후규제를 옥죄면 지지층이 납득하겠는가. 이러니 이 대표가 대선을 의식해 중도층의 민심을 얻으려 전략적으로 중도보수를 선언했다는 말이 나오지 않나 싶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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