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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중도층도 등 돌리게 만든 극우 폭력선동

“중도층 역시 극우 세력들의 준동에 반감을 느낀 결과다." 최근 더욱 견고해진 윤석열 대통령 탄핵 찬성·정권 교체 여론 우세를 두고 한 보수 성향 정치 평론가가 한 말이다. 올초 잠시 탄핵 반대 여론이 상승세를 타고 정권교체·연장 여론간 격차가 줄어들더니 다시 흐름이 바뀐 배경에는 극우 세력의 폭력·난동과 이에 편승한 여당의 행태가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최근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중도층은 확실히 돌아섰다. 본지가 리얼미터와 함께 실시한 2월 4주차 주간 조사를 보면 '야권에 의한 정권교체' 의견은 55.1%, '집권 여당의 정권 연장' 의견은 39.0%로 집계다. 오차 범위(±2.5%p) 밖인 16.1%p라는 큰 격차를 보였다. 특히 응답자 중 중도층의 경우 정권 교체가 60.6%로 정권 연장 33.6%의 두 배에 가까웠다. 전문가들은 탄핵심판 변론과 명태균 게이트 의혹 등을 원인으로 꼽는다. 중도층이 헌재의 윤 대통령 탄핵 변론 과정을 지켜 보면서 '마음의 결정'을 내렸고, 김건희 여사의 '조선일보 폐간' 발언 등 새로운 악재가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주목할 것은 여당의 극우 세력 편승이다. 극우 세력들은 1.19 서부지법 폭력 난동으로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줬다. 이후에도 전혀 반성하지 않았다. 오히려 헌법재판관들을 위협하고 부정선거론 등 가짜 뉴스를 배포하면서 기세를 올렸다. 최근엔 대학가에서 여학생들을 폭행하고 신상을 공개해 집단 괴롭힘을 가하는 등 테러 행위를 저질렀다. 여당은 이같은 극우 세력에 선을 긋기는 커녕 오히려 힘을 실어 주는 듯한 모양새다. 압권은 3.1절 서울 광화문 집회에서 서천호 국민의힘 의원이 “불법과 파행을 자행해온 헌법재판소를 때려부수자"는 발언이었다. 다른 의원들도 부정선거 음모론을 제기하거나 부추기고, '간첩 횡행론' 등 색깔몰이, 중국인 혐오 부추기기 등을 검증없이 옮기기에 바쁘다. 최근 여론조사에서의 여당의 약세, 야당의 강세는 이같은 여당의 행태에 염증을 느낀 중도층들이 '무게 중심'을 옮기기 시작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문제는 중도층은 모든 선거의 승패를 좌우한다는 점이다. 윤 대통령 탄핵 인용시 조기 대선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런 점에서 최근 여당의 행태는 중포당(중도층을 포기한 당) 또는 대포당(대선을 포기한 당)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서예온 기자 pr9028@ekn.kr

[기자의 눈] 소상공단체 사무실이 보여준 ‘민생 현주소’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앞두고 헌재 후보자 임명 문제로 여야 정치권이 대립하면서 국정협의회마저 무산됐다. 가장 시급한 민생경제를 지원하려는 '추가경정예산안' 논의도 후순위로 밀려버린 상태다. 오죽하면 우원식 국회의장이 “추경만큼은 일체의 다른 사안을 결부하지 말고 추진하자"고 호소했을까. 에너지경제신문은 새해 들어 윤 대통령 탄핵 이후 우려되는 민생경제 현장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소상공인연합회(소공연)와 전국상인연합회(전상연) 두 단체의 회장들과 인터뷰했다. 소상공업계를 대표하는 두 법정단체는 사실상 민생을 대변하는 쌍두마차다. 전상연은 2006년 중소벤처기업부의 승인을 받아, 소공연은 2016년 '소상공인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각각 설립됐다. 두 단체장의 인터뷰 내용도 중요했지만, 무엇보다 기자가 충격은 받은 것은 두 조직의 위상에 비해 단출한 사무국의 모습이었다. 전국 776만 소상공인을 대표하는 소공연은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인근 건물에 세 들어 있다. 올해 공직유관단체로 신규 지정되면서 소공연의 위상은 더 높아졌다지만 중기부의 지원 보조금은 지난해나 올해나 차이가 없다. 전국 1700여개 전통시장을 대표하는 전상연의 사무국은 경기도 수원의 영동시장 건물에 있다. 지난해 경기도상인연합회 회장 출신의 회장이 당선되면서 경기도연합회가 사무국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변변한 둥지가 없어 회장이 바뀔 때마다 사무국이 철새처럼 전전한다. 단체의 운영비를 반드시 국민 세금으로 지원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소공연과 전상연은 '지역 및 민생' 경제의 종사자들을 대표하는 단체다. 더욱이 선거철만 되면 여야를 가리지 않고 가장 먼저 '민생'을 들먹이며 찾는 곳도 두 단체가 아닌가. 과연 정부와 정치권이 민생에 진정성이 있는지 의심된다. 요즘처럼 만성적인 내수 부진으로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는 소상공인들은 두 단체에 거는 기대가 클 수밖에 없다. 날로 악화되고 있는 민생경제의 실태를 잘 파악하려면, 소공연·전상연의 '가교 역할'이 필수다. 정부와 정치권이 필요에 따라 방문하고, 정책 풍선을 띄우기보다 이들 단체에 대한 실질적 지원이 먼저 뒤따라야 한다. 민생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줘야 진정성이 통한다. 정희순 기자 hsjung@ekn.kr

[기자의 눈] 업계 무관심 속 출범하는 대체거래소

“솔직히 크게 달라지는 건 없을 것 같아요. 잘 운영될지도 모르겠고요." 다음 달 출범을 앞둔 국내 최초 대체거래소(ATS)의 향후 전망에 대해 한 증권사 관계자에 묻자 이렇게 말했다. 이 관계자뿐만 아니라 대체거래소를 향한 증권업계의 반응은 대체로 비슷했다. 다음 달 4일부터 국내 주식 시장에서 정기거래소인 한국거래소(KRX)와 대체거래소인 넥스트레이드(NXT) 등 2개 거래소가 운영된다. 대체거래소가 도입되면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하루 12시간 주식 매매가 가능해진다. 퇴근 후에도 주식 거래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국내 주식 시장에 없던 완전히 새로운 시스템이 도입되는 것임에도 업계는 ATS 담당팀 외에는 생각보다 무관심하다. 대체거래소 준비 초기 단계에 넥스트레이드가 전체 증권사에 ATS 참여 의향을 묻는 설문조사를 실시했을 때 일부 중소형 증권사들은 비용 등을 이유로 불참을 선언하기도 했다. 대체거래소 거래를 위해 필수적으로 마련해야 하는 자동주문전송(SOR) 시스템 구축에도 증권사들은 비용이 많이 든다며 미온적인 반응을 보인 바 있다. 김학수 넥스트레이드 대표가 지난 20일 금융감독원 주최 열린토론회에서 “넥스트레이드의 등장으로 시장이 경쟁하다보면 전체적인 시장의 역동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며 넥스트레이드의 도입 취지를 설명했다. 하지만 투자자들은 물론 업계에서도 크게 공감하지 않는 분위기다. 그렇다보니 홍보도 많이 되지 않았다. 온라인 주식 커뮤니티에서도 투자자들 사이에서 “대체거래소가 왜 필요한 거냐", “오히려 주식 매매할 때 손해보는 것 아니냐" 등 우려하는 시각이 더 지배적이다. 심지어 부산에서는 한 시민연대가 “대체거래소로 거래가 몰리면 부산에 본사를 둔 한국거래소와 부산의 금융중심지로서의 지위, 역할, 비중이 감소되는 위기 상황이 발생한다"며 성명서를 내기도 했다. 물론 새로운 제도가 자리를 잡기까지는 혼란이 있을 수밖에 없다. 대체거래소 운영도 초기 단계에서는 여러 시행착오를 겪을 것이다. 그러나 혼란이 당연한 수순이라며 손 놓고 있을 일은 아니다. 당장 주말만 지나고 나면 대체거래소에서 주식 거래가 시작된다. 새 제도가 시장에 빠르게 녹아드는 것이 투자자들을 위해서도, 업계의 발전을 위해서도 중요해서다. 안정적인 제도 정착을 위해 무관심이 아닌 업계의 적극적인 태도를 기대해 본다. 김기령 기자 giryeong@ekn.kr

[기자의 눈] 회사가 있어야 노조도 있다

우리나라 경제 환경이 을씨년스럽다. 글로벌 '관세전쟁' 눈치를 보느라 수출 전략을 제대로 짜지 못하고 있다. 내수경기는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자영업자 10명 중 4명이 3년 내 폐업을 고려하고 있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나왔다. 한국은행은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9%에서 1.5%로 내려잡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정치 상황까지 불안하다. 이럴 때 고용을 창출하고 달러를 벌어야 하는 기업들 입장에서는 노동조합의 '묻지마 파업'이 더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현대제철은 창사 이래 처음으로 직장폐쇄라는 결정을 내렸다. 노조가 1인당 4500만원씩 성과급을 달라고 막무가내로 파업을 벌였기 때문이다. 이 회사의 작년 연결 기준 영업이익은 3144억원으로 전년(7983억원) 대비 60% 이상 급감했다. 전망도 어둡다. 중국·일본 업체들은 저가에 물량을 쏟아내고 미국은 관세장벽을 쌓고 있다. 사측은 수백억원 적자를 감수하고 1인당 2650만원씩 성과급을 준다고 제안했지만 노조는 쟁의행위로 화답했다. 야심차게 출범한 광주글로벌모터스(GGM)는 좌초 위기에 놓였다. GGM 노조가 임금인상 등을 요구하며 올해 들어서만 4차례 파업을 벌였다. '노사 상생' 기치를 걸고 출범한 지역상생형 일자리모델이지만 취지가 무색해졌다. 민주노총은 도를 넘어선지 오래다. 최근 정기대의원 대회에서 올해 계획을 수립하며 '예고 파업'이라는 황당한 목표를 제시했다. 6월에는 최저임금 투쟁, 7월에는 사회대개혁 쟁취 총파업을 벌인다는 식이다. 노동권 보호를 위한 '최후의 수단'이어야 할 파업이 일상이 돼버린 순간이다. 노조가 생떼를 부리다 여론의 질타를 받는 일은 수년째 계속되고 있다. 생산라인을 쇠사슬로 묶는가 하면 사장실에 무단 침입해 물건을 부수는 등 법·질서도 안중에 없다. 삼성전자 노조는 지난해 단체행동을 시작하며 '생산 차질이 목표'라는 기치를 내걸어 논란이 됐다. 한국경제인협회가 2009년부터 2019년까지 파업으로 인한 연평균 근로손실일수를 집계한 결과 한국은 38.7일로 영국(18일), 미국(7.2일), 일본(0.2일) 등을 압도했다. 회사가 있어야 노조도 있다. 이미 제조업체들은 줄줄이 해외로 나가고 있다. 거대 권력으로 부상한 노조 기득권이 밥그릇 챙기기에 몰두하는 사이 우리 자식들의 일자리는 계속 사라져 가고 있다. 우리 경제 구조개혁을 위해 노동시장 비효율성 개선이 필요하다는 한은 총재 목소리가 귓가를 계속 맴돈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기자의 눈] 한전-한수원 집안 분쟁, 산업부 방관 괜찮나

모자(母子) 관계인 한국전력과 한국수력원자력 간의 바라카 원전 비용 분쟁이 국제 중재위원회로 넘어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는 국가적 손실로 이어질 수 있는 중대한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방관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탄핵정국으로 인한 정권교체 가능성에 눈치를 보는 공무원들의 소극적 태도가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한전과 한수원 간의 바라카 원전 비용 분쟁은 이미 오랜 시간 지속된 문제다. 그동안 '어련히 합의하겠지'라던 업계의 예측과 달리 두 기업 간의 합의는 쉽사리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국제 중재는 시간과 비용이 많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국가적 이미지에도 큰 타격을 줄 수 있다. 그럼에도 산업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어 의문을 자아내고 있다. 산업부가 이 문제에 소극적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탄핵과 정권교체 가능성 때문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원전 최강국'을 내세운 윤석열 정부에서는 원전 관련 부서가 힘을 얻었고, 공무원들도 원전 부서를 선호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탄핵정국으로 접어들면서 공무원들은 원전 관련 업무를 기피하고, 차기 정권의 눈치를 보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특히, 차기 정권에서 원전 업무를 열심히 했던 공무원들이 인사상 불이익을 받을까 우려하는 분위기가 만연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 정부에서 무슨 일을 했느냐는 식으로 차별하고 불이익을 주는 관행이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공무원들이 정권에 상관없이 주어진 과제를 열심히 수행해야 할 책무만 있다는 기본 원칙을 훼손하는 폐습이다. 산업부는 한전과 한수원 간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국제 중재로 넘어가기 전에 두 기업 간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를 위해 산업부는 중재자 역할을 자처하고, 두 기업 간의 협상을 주도해야 한다. 또한, 정치권에서 먼저 공무원들이 차기 정권을 걱정하지 않고 업무에 전념할 수 있도록 인사상의 안정성을 보장해야 한다. 이번 기회를 통해 산업부와 공무원들이 국가적 사안을 해결하는 데 있어 정치적 영향력을 배제하고, 오직 국가와 국민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기자의 눈] “기준금리 인하 반영할 때” 금융당국의 손바닥 뒤집기

“기준금리 인하를 반영할 때가 된 것 같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24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은행들의 대출 금리를 또다시 비판했다. 지난해 10월부터 기준금리 인하가 시작됐지만 은행들이 이를 반영하지 않고 대출 금리를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올해 들어 금융당국은 은행의 대출 금리 인하를 연이어 압박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열린 간담회에서도 “기준금리 인하가 대출 금리가 반영돼야 한다"며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지난 18일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도 “(은행권이) 올해 신규 대출 금리를 인하할 여력이 분명히 있다"며 재차 은행의 대출 금리 인하 필요성을 언급했다. 금융감독원은 은행권의 대출금리 산출 근거 점검에 들어갔다. 지난 21일 은행 20곳에 공문을 보내 차주·상품별로 지표, 가산금리 변동 내역과 근거, 우대금리 적용 현황 등의 내용이 담긴 자료를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은행권의 대출 금리에 기준금리 인하 효과가 충분히 반영되고 있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실제 은행들은 지난해 기준금리 인하 흐름에도 역대 최대 이자이익을 기록했다. 은행권에 따르면 지난해 KB·신한·하나·우리은행 등 4대 은행의 이자이익은 34조원을 넘어섰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17개 국내은행의 신규 취급액 기준 가계대출 평균 금리는 올해 1월 연 5.22%를 기록했는데, 기준금리 인하가 시작된 지난해 10월(연 4.76%)에 비해 오히려 더 높아졌다. 문제는 금융당국도 은행권의 대출 금리 인상에 책임이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가계대출이 폭증하자 당국은 은행권에 가계대출 속도 조절에 나설 것을 주문했고 은행들은 작년 하반기께부터 대출 금리와 한도 조절 등으로 대출 증가에 대응했다. 기준금리 인하가 시작된 후에도 은행들은 당국과 가계대출 관리를 이유로 대출 금리 인하에 주저하는 모습을 보였다. 물론 기준금리 인하에도 불구하고 대출 금리를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에 대한 비판을 은행들도 피하긴 어렵다. 다만 지금의 금리가 형성되기까지 금융당국의 입김이 얼마나 작용했는지 당국이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말 바꾸기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김 위원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대출 금리도 가격이기 때문에 시장 원리가 작동해야 된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의 말처럼 시장 원리가 올바르게 작동하기 위해서 금융당국은 어떤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지 돌아봐야 한다. 송두리 기자 dsk@ekn.kr

[기자의 눈] “임기 채워라” 이사회 역할 자처한 이복현 금감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2022년 6월 취임 이후 항상 금융권 내 화제의 인물이었다. 1972년생 검찰 출신, 윤석열 대통령의 초대 금융감독원장, 윤석열 사단 막내 등 그를 따라다니는 수식어들은 언제나 화려했다. 금융위원회 산하 특수기관으로 기를 펴지 못했던 금감원의 위상이 한층 강화된 배경에는 단연 이 원장의 힘이 컸다. 이 원장은 자신이 윤석열 정부의 실세라는 세간의 평가를 굳이 부인하지도, 의식하지도 않은 듯 했다. 오히려 각종 사안마다 금융위원회 패싱, 월권 비판을 감수하면서도 금융권의 사사로운 일까지 세세하게 관여했다. 이 원장은 재임 기간 금융권에서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CEO의 책임론을 강조하는 한편, 사안과 무관하게 CEO의 거취나 지배구조에 대해서도 서슬 퍼런 발언들을 쏟아냈다. 이 원장은 오는 6월 임기가 만료되지만, 여전히 자신의 '세'를 과시하고 있다. 이 원장의 도 넘은 발언도 재임 기간 내내 계속됐다. 급기야 이 원장은 이달 19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임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에 “임기를 채우시는 게 좋겠다"고 강조했다. 우리금융지주, 우리은행에 부당대출이 발생하는 등 내부통제 부실이 드러났지만, 임 회장이 책임지고 사태를 수습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기업 CEO의 거취는 금융, 산업 등 업종 불문하고 해당 기업의 이사회에서 결정한다. 기업의 주요 의사결정 기구인 이사회는 경영진의 성과, 역량을 평가하고, CEO의 독단적인 의사결정을 견제하는 한편 기업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소위 '주인 없는 회사'로 불리는 금융지주사 CEO들의 거취를 결정하는 기구도 단연 이사회다. 특히 CEO 거취를 향한 금감원장의 발언은 금융사 이사회의 의사결정에도 단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부분이다. 이 원장도 자신의 발언에 대한 무게감을 결코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이 원장의 기세등등한 모습과는 달리 금감원도 내부통제 부실과 임직원들의 일탈 문제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 금감원 직원 8명은 지난해 11월 증권선물위원회에서 금융투자 상품 매매 제한을 위반한 혐의로 과태료 1370만원 등의 제재를 받았다. 김남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금감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금감원 임직원이 신고대상 금융투자상품 관련 법, 행동강령을 위반한 사례는 최근 5년간 총 97건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원장 특유의 철학과 잣대를 그대로 적용하자면, 이 원장 역시 이같은 직원들의 일탈 행위에 대해 책임을 져야한다. 만일 이 원장이 금감원의 위상을 올리는 것을 우선순위로 삼았다면, 내부 사안에 대해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것을 단연 1순위로 삼고, 금감원에서 발생한 각종 일탈에 대해 몸을 낮춰야 한다. 금감원장으로 해야 할 역할과 금융사 CEO 및 이사회의 역할을 엄격하게 구분하고, 이를 지키는 것은 거론하는 것조차 불필요할 정도로 당연한 이야기다. 이 원장 퇴임 이후에도 금감원과 이 원장 본인의 기세가 지금과 같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나유라 기자 ys106@ekn.kr

[기자의 눈] 소액주주의 유상증자 반대, 기업은 귀 기울여야 한다

누구도 타인을 위한 '현금인출기' 역할을 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최근 차바이오텍, 티웨이항공, 고려아연, 현대차증권, 테라사이언스, 이수페타시스 등 여러 기업이 유상증자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소액주주들의 강한 반발에 직면했다. 기업은 성장과 확장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주장하지만, 소액주주들의 반대도 단순한 감정적 대응이 아니라 나름의 합리적 근거를 갖추고 있다. 소액주주들이 유상증자에 반대하는 원인은 기업에 따라 다르지만, 가장 큰 이유는 지분이 희석되면서 주주가치가 훼손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유상증자는 새로운 주식을 발행해 추가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으로, 기존 주주들이 유상증자에 참여하지 않으면 보유 지분율이 낮아진다. 이는 향후 배당과 의결권 행사에 불이익으로 작용할 수 있다. 특히 조달한 자금이 계열사 지원에 활용될 경우, 주주들은 자본 이득을 누리지 못한 채 지분 희석의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소액주주들이 반발하는 또 다른 이유는 유상증자의 필요성을 느낄 수 없는 상황이다. 고려아연과 현대차증권의 유상증자 계획에 주주들은 '왜 지금 유상증자가 필요한지'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부족하다고 반발했다. 기업의 재무상태는 유상증자 반대의 핵심 논거 중 하나다. 현대차증권은 재무적으로 충분한 현금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상증자를 추진했다는 지적을 계속해서 받아왔다. 기업이 유상증자를 통해 추가 자금을 조달해야 한다면, 기존 현금흐름과 자금 운용 계획을 명확하게 공개하고, 주주들에게 설득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 재무적으로 여유가 있는 기업이 단순히 대규모 투자를 이유로 유상증자를 추진할 경우, 주주들의 반발은 더욱 거셀 수밖에 없다. 소액주주들의 유상증자 반대는 단순한 불만 표출이 아니다. 이는 기업 경영진에게 보다 투명하고 신중한 의사결정을 요구하는 일종의 견제다. 기업이 경영 전략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주주의 신뢰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장기적으로 기업 가치가 훼손될 가능성이 크다. 또 주주 신뢰를 잃으면 향후 기업의 다른 경영 활동에서도 주주들의 협력을 얻기 어렵다. 기업의 성장과 재무 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해 유상증자가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소액주주와의 소통이 부실한 상태에서 일방적인 결정을 내린다면, 이는 결국 기업의 평판과 신뢰도 하락으로 이어진다. 신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유상증자의 필요성과 그 효과를 주주에게 명확하게 설명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나오는 소액주주의 의견을 검토하고, 이에 대한 적극적인 소통과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애초에 주주 반대가 나오지 않도록 하기 위해 기업은 주주와 소통을 지나칠 정도로 많이 해야 한다. 어쩌면 '과한 소통'이 기업과 주주의 '의견 일치'를 이끌어내는 가장 편한 방법일 수 있다. 장하은 기자 lamen910@ekn.kr

[기자의 눈] 반년 가까이 지속되는 후판 협상…경쟁력 고민은 뒷전

“차라리 정부에서 나서 조정자 역할을 해주면 좋겠다" 지난해 9월부터 이어진 후판 협상이 반 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지만 출구가 없다는 목소리다. 철강·조선업계가 각자 한 치의 양보도 없이 각자의 입장을 고수하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정부 차원에서 나서야 한다는 다소 엇나간 의견마저도 힘을 얻고 있다. 후판은 두께 6mm의 두꺼운 철판으로 주로 선박 건조에 쓰이는 철강재다. 매년 상·하반기 두 차례에 걸쳐 철강과 조선업계 사이에서 진행되는 후판 가격 협상이 갈수록 장기화되는 추세다. 현재 철강업계의 경우 원자재 가격 상승과 글로벌 경기 둔화, 중국산 철강 제품의 밀어내기 공세까지 겹치면서 수익성이 급격히 악화된 탓에 후판 가격 인상이 필요불가결하다는 입장이다. 앞서 조선업계가 불황을 겪던 시절, 상생 차원에서 후판 가격을 낮춰 줬던 만큼 이제는 조선업계가 양보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반면 조선업계는 3~4년 동안 지속된 장기 불황의 터널을 지나 겨우 수익성 회복을 시작하는 시점이라 원가 절감이 간절하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최근 국내 철강사의 후판보다 훨씬 값싼 중국산 후판이라는 대체제가 있다는 점에 대해서도 지적하고 있다. 국산 후판의 가격이 인상될 경우 그만큼 중국산 후판을 많이 활용할 수밖에 없어 후판 가격을 인상하더라도 실익이 없다는 주장이다. 양 측의 입장의 옳고 그름도 중요한 문제이나 결국 이번 가격 협상의 본질은 '경쟁력'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철강·조선업계 모두 가격을 제외한 다른 경쟁력을 유지하지 못한 탓에 사활을 걸고 가격 협상을 진행할 수밖에 없다는 시각이다. 조선업계는 대규모 수주 성공으로 눈에 띄는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글로벌 무대에서 위상은 더 이상 과거처럼 압도적이지 않다. 지난해 9월 20일 기준으로 8000TEU급 대형 컨테이너선의 수주 집계를 살펴보면 중국 조선사가 70%를 차지했으나 국내 조선사는 25%를 수주하는데 그쳤다. 지난 2011년 국내 조선사는 8000TEU급 대형 컨테이너선의 75%를 수주에 성공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13년 만에 점유율이 완전히 역전된 셈이다. 압도적이었던 기술 경쟁력이 점차 따라잡히는 상황에 국내 조선업계도 원가 절감을 통한 가격 경쟁력에 집중하고 있다. 철강업계는 이와 유사한 문제를 더욱 가혹하게 체험하고 있다. 중국 철강사들이 글로벌 수출처를 가져가는 것을 넘어 국내 시장까지 잠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철강협회에 따르면 중국산 후판 수입은 지난해 상반기 68만8000t(톤)으로 2023년 상반기보다 12% 늘었다. 안방마저 내주고 있을 정도로 경쟁력이 흔들린 상황이기에 가격만큼은 유리한 구도를 만들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가격이 이토록 중요해진 상황에서 양 측에 상생을 강조하더라도 우이독경(牛耳讀經)에 그칠 뿐이다. 가격 협상에 사활이 걸린 상황이라 상생은 자연스레 뒷전이 될 수밖에 없다. 다만 양 측이 가격 협상을 반 년 가까이 지속할 정도로 치열하게 하는 만큼 다른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고민과 노력이 크게 보이지 않는 다는 점이 아쉽다. 윤동 기자 dong01@ekn.kr

[기자의 눈] ‘한국형 AI’의 개념·방향성 재점검할 때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말에서 따온 이 문장은 우리 고유 개성이 세계시장을 공략할 수 있다는 표현을 함축한다. 오랜 기간 민족의 자긍심을 고취시켜온 가치는 이른바 'K-○○'로 치환돼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K-팝(POP)과 K-콘텐츠는 세계인의 눈과 귀를 사로잡으며 국제적 위상과 품격을 높였다. 이제 K-게임, K-반도체, K-푸드, K-스포츠, K-문학 등으로 외연을 넓히는 모습이다. 알고리즘은 자연스럽게 봉준호 감독과 한강 작가, 손흥민 선수, 불고기 등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한국적(K) 인공지능(AI)의 정의는 아직 명확히 내려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다 떠나서 추상성을 물성으로 변환할 수 있는 큰 틀이 없다. 최근 국회 문턱을 넘은 AI 기본법엔 '한국형 AI'의 개념과 기준이 명시적으로 포함돼 있지 않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경쟁력 제고 방안을 모색해 오고 있지만, '가장 한국적인' AI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 적은 없다. 그렇다 보니 기업의 구상에 따라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 한국어를 가장 잘 아는, 한국인의 감정을 가장 섬세히 고려한, 한국 문화·법규 등 상황을 가장 잘 이해하는, 한국인의 일상에 가장 최적화된… 일견 엇비슷한 듯 보여도 추구하는 결과값은 천차만별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론 다른 국가와의 차별점을 설명하기 힘들다. 이를 뒷받침해야 할 기능 구성은 전체적으로 대동소이한 탓이다. 우리나라 정체성을 가장 정확히 반영한 대표주자를 떠올리기 어려운 건 이 때문이다. 대중은 '한국적이어서 믿을 수 있는' 게 아닌 '성능 좋은' AI를 찾게 되고, 국내 기업의 AI를 사용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자체 모델과 외부 모델을 동시 활용하는 '오케스트레이션'이 주류가 된 양상에 대한 회의적 시선이 나오는 이유다. 합종연횡을 통한 비용 절감·기능 고도화로 해석하는 움직임이 있지만, 빅테크의 AI를 활용한 앱 서비스를 개발하는 수준에 그칠 뿐이란 비판도 적잖다. 이는 AI 개발 방향이 성과와 편의에 치우쳐진 결과다. AI에 대한 철학을 정립하면서 개발이 이뤄져야 하는데, '일단 하고 보자'는 생각에 준비 없이 진행되다 보니 갈피를 못 잡게 된 것이다. 독자적 경쟁력을 확보하기보단 빅테크의 움직임에 편승한 모양새가 됐다. 글로벌 시장에서 후발주자로 밀려난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K-콘텐츠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독창적인 매력에 진정성을 더했기 때문이다. 세계에 'K-AI'를 새기기 위해 우리나라가 잘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짚어봐야 할 시점이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수익을 벌어들일 수 있을까'보다도 '한국만의 AI를 만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궁리해야 한다. 이태민 기자 etm@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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