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23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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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사이트]집단 기억의 왜곡과 노벨상

“독일 패배에 가장 크게 기여한 국가는 어디일까요?" 1945년 5월 7일 독일이 항복했던 당시, 한 프랑스 여론조사기관이 프랑스인들에게 던진 질문에서 응답자의 57%가 “소련"이라고 답했고, “미국"이라고 말한 사람은 단 20%에 불과했다. 그해 5월 동부 전선에서 수백만 명의 소련군들이 목숨을 잃어가며, 나치군 퇴치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으나, 늑장을 부린 미군은 뒤늦게 참전한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79년이 흐른 2024년, IFOP가 프랑스인들에게 같은 질문을 던진 결과, 응답자의 60%가 미국을 택했고, 소련을 지목한 사람은 25%에 불과했다 이 같은 기억 왜곡은 지구적으로 각인되어 있다. 우리에게도 미국은 일본 패전을 이끈 구원자인 반면, 소련은 남북분단과 북한의 공산화를 초래한 악의 제국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1945년 일본의 무조건 항복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를 꼽고 있지만, 이는 사실 일본의 항복을 촉진했을 뿐 근본적인 원인은 아니다. 주한 러시아 대사관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방북을 1개월여 앞둔 지난 5월7일 홈페이지에 한국어로 게재한 '제2차 세계대전 승전 : 소련의 기여'라는 글에서 “전투력이 높았던 일본군을 소련군이 11일 만에 격파했다"며 “8월15일쯤 사실상 38선까지의 영토를 해방시켰다"고 했다. 한국의 광복은 전적으로 소련 덕분이란 뉘앙스가 짙지만, 이는 어느 정도 사실이다. 프랑스인이나 우리의 기억에 왜 소련이 지워지고, 미국이 구원자로 등장했을까? 문화를 앞세운 미국의 패권주의가 우리의 기억 회로를 바꾼 탓이다. 헐리우드는 CIA, FBI와의 긴밀한 협업을 통해 미국을 지구의 구원자로 만들어왔다. 반면에 소련은 해체되어 크고 작은 국가들이 독립을 했고, 아직도 독립이 시끄럽게 진행중이다. (1962), (1998) 등의 영화를 앞세워 미군의 영웅주의를 부추겼고, 그 바람에 영화 속에서 구소련, 이라크, 북한, 아프리카, 중남미는 늘 미개한 악당 국가로 전락했다. 미국의 영웅주의는 이제 지구를 떠나 우주적이며 은하수적이다. 미국의 영웅주의에 취한 우리는 미국이 적대시하는 모든 국가들을 똑같이 미워한다. 집단기억 왜곡은 무지에서 비롯되지만, 이처럼 무차별적으로 쏟아내는 선전술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스웨덴 한림원이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로 한강을 선정하며,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폭로하는 강렬한 시적 산문을 써 왔다"라고 평가했지만, 낯익은 시위대가 주한 스웨덴 대사관에 몰려가 “왜 빨갱이에게 상을 주느냐"고 항의하고, 일부 작가와 언론은 작가의 '왜곡된' 시각과 작품의 편향성을 비난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 국가정보원이 보수단체를 앞세워 김대중 전 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취소 청원 계획까지 세운 것처럼 작가 한강에 대해서 기이한 음모가 꾸며지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노벨상위원회가 로비를 받아 상을 주는 것도 아니고, 항의시위를 했다해서 한번 주었던 상을 뺏는 것도 아닐텐데, 왜 이런 막가파식 일들이 일어나는 것일까? 이는 전적으로 역사에 대한 기억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반도를 가른 미국 자본주의 체제와 소련 공산주의 체제 영향 탓인지 좌우가 대립하고 진보와 보수 간의 갈등이 심했던 우리 현대사는 국가권력의 폭력에 의한 비극이 유별나게 많았다. 권력을 쥔 자들은 제주 4.3 사건(1948~1954)을 비롯해, 여순사건(1948), 그리고 한국전쟁 중 노근리 학살사건, 보도연맹 사건, 국민보도연맹, 광주 5.18 등 수많은 민간인 학살을 벌였으면서도 온갖 선전술로 늘 집단기억을 단절하고, 왜곡해왔다. 국가권력에 의해 기억의 내용이 정반대로 전이 되다보니, 수많은 피해자가 가해자로 둔갑되어 저주의 대상이 된다. 작가 한강의 노벨상 수상을 평가절하고, 비난하는 것은 헌법이 사상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당연한 권리이겠으나, 더 이상 국가권력과 어용언론이 국민의 기억을 왜곡해선 안된다. 노벨상 위원회가 예찬한 작가 한강의 작품에 대한 집단적 폄훼는 우리 사회를 갈라치기하는 수많은 권력형 폭력사건의 진상규명이 시급한 이유를 말해준다. [ 성일권

[EE칼럼] 원자력 강국 vs. 핵무장, 같이 갈 수 없는 길

임은정 공주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북한의 파병설마저 불거지면서 파장이 크게 일고 있다. 그동안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에 대항하기 위해 미국을 필두로 한 서방 국가들은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긴 했지만, 직접적 개입을 피하면서 이 전쟁이 '국제전'으로 비화되는 것을 막으려 해 왔다. 그런데 북한의 개입이 수면 위로 부상하면서 이 전쟁이 유럽의 안보와 동아시아의 안보를 직접적으로 연결시키는 양상으로 발전하고 있어 심히 우려스럽다. 더군다나 그 어느 때보다 접전일 것으로 예상되는 대선이 2주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 역시 난감한 눈치다. 북한에 더 단호해야 한다는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 대통령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마땅한 대응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형국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분명 냉전 이후, 세계사에 큰 변곡점이 될 만한 일대 사건이다. 이 전쟁은 세계 최대의 핵무기 보유국이자 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이었기 때문에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라는 지위를 얻은 구 소련, 지금의 러시아가 유엔 헌장의 정신을 위배하고 주권 국가의 영토를 침범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국제 정세의 판을 뒤흔들 만한 사건이었다. 그런데다가 지난 달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필요하면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아 핵무기 사용 원칙 개정을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유럽 남부의 최대 원자력 발전소인 자포리자 원전은 러시아의 통제 하에 놓이면서 전력 생산을 위한 시설이었던 원전이 폭탄이 될 수도 있다는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한편 러시아의 천연가스에 의존해 왔던 유럽 국가들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녹색 에너지로의 전환을 가속화하면서도 에너지 안보를 그 어느 때보다 걱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러시아는 이미 전쟁 전부터 가스로 유럽 국가들에게 지정학적 레버리지(지랫대)를 활용해 왔다. 예를 들어 독일에게는 적극적으로 가스를 공급해 왔던 반면, 미국의 미사일 방어 계획을 지지했었던 체코에게는 가스 공급을 중단하는 식의 방법으로 이른바 유럽 국가들을 '길들이기' 했던 것이다. 체코의 원전 확대 방침은 이런 쓰라린 경험에 의한 측면이 있으며, 한국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한 데에도 지정학적 판단이 작동했을 것이라 추정된다. 지난 달 말 한국을 찾은 슬로바키아의 로베르트 피초 총리와 윤석열 대통령 간의 정상회담에서 원자력 및 방산 분야의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된 것 역시 이런 흐름의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 있다. 요컨대 동유럽 국가들을 필두로 국방은 물론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도 전략적 이해관계가 충돌하지 않으면서 기술적으로 뛰어날 뿐만 아니라 재정적인 측면에서도 효율적인 원자로 건설을 제안할 수 있는 한국과 원자력 분야의 협력을 도모할 국가들은 앞으로도 계속 나타날 수 있다. 이는 한국에게 또 다른 기회일 수 있다는 것은 부정하기 힘들다. 따라서 이 시점에서 대한민국 사회가 깊이 고민해 봐야 하는 것이 핵무장 지지 여론과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사이에 발생하는 논리적인 충돌이다. 한국이 북한에 비해 경제적으로나 국제 사회에서의 지위 측면에서나, 기술적으로나, 재래식 전력 및 전반적인 국방력에 있어서나 월등히 우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들 사이에는 결국 '핵무기'라는 비대칭전력으로 인한 불균형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핵 밖에는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어 왔다. 최근 한국의 자체 핵무장을 지지하는 여론이 다시금 강화되고 있다. 중앙일보와 동아시아연구원(EAI)의 최근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무려 71.4%가 북한이 핵을 고수한다면 한국 역시 핵무장을 해야 한다고 답했는데, 이는 확장 억제를 강화하고 한미 간 핵협의그룹(NCG: Nuclear Consultative Group)을 설치하기로 한 '워싱턴 선언' 등의 영향으로 다소 낮아졌던 추세가 다시 반등된 것이라는 분석이다. 물론 한국 국민들의 이러한 우려는 작금의 국제 정세를 돌아볼 때 이해가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만약에라도 한국이 자체 핵무장의 길을 가게 될 때 그것이 가져올 국제적인 파장은 북한의 핵 야욕에 비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북한이 2003년 마침내 탈퇴한 핵확산방지조약(NPT: Nonproliferation Treaty)은 불공평한 국제 조약이라는 비판이 여전히 있지만, 전 세계 존재하는 195개 국가 중 191개가 가입하고 있는 최대의 국제 조약이자 규범 체계다. 한국이 만약 핵무장의 길을 간다면 그 근간마저 흔들릴 수도 있다. 한국이 속한 아시아만 둘러보아도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몽고는 '비핵지대(NWFZ: Nuclear-Weapon-Free Zones)를 선언하고 핵무기의 개발, 배치,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한국과 같이 안정적으로 원전을 운영하여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고 싶어 하는 국가들이 늘어나고 있는 지금, 한국이 핵무장의 길을 간다면 원자력 에너지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기후위기 시대의 필요한 흐름에서 한국은 도태되고 또 하나의 외로운 룰 브레이커(rule breaker)로 전락할 수도 있다. 원자력 에너지의 책임 있는 평화적 이용을 지지하면서도 핵무기와 핵 위협에는 단호히 저항한다는 자세를 일관되게 견지할 때 한국을 지켜보고 있는 많은 신흥국가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을 뿐 아니라, 국제사회의 질서 유지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을 거듭 상기해야 하겠다. 임은정

[이슈&인사이트]중국 제조업, 세밀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

현대 기아차 그룹이 지난해 토요타, 폭스바겐에 이어 자동차 판매량 3위에 등극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심지어 향후 폭스바겐을 넘어 2위에 오를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폭스바겐은 중국에서 전기차 전환이 늦어지면서 판매량이 급감하였고 심지어 중국 내 일부 생산공장을 폐쇄하기에 이르렀다. 반면 현대차, 기아 그룹은 내연기관차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지만, 특히 전기차가 선전하면서 좋은 실적을 내고 있다. 그러면 현대 기아차 그룹은 장밋빛 전망만 있는가. 사실 현대차와 기아차의 미국 시장에서의 선전은 자체 경쟁력 외에도 미중 경제패권 전쟁에 따른 어부지리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미국 정부는 중국산 전기차에 대해 25%의 높은 관세를 부과해왔으며, 9월 27일부터는 100%로 관세를 인상하였다. 또한 미국에 투자한 전기차 및 배터리 기업에 대해 보조금을 지급하는데, 중국산 부품이나 광물을 사용하는 경우 지급대상에서 제외하였다. 유럽에서도 중국산 전기차에 대해 고관세를 부과하기로 하였다. 그럼에도 현대 기아차 그룹이 이 시점에서 마냥 기뻐하기에는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중국이 전기차 신흥강국으로 등장하면서 현대 기아차 그룹을 긴장하게 만들고 있다. 중국은 지난해 이미 전기차를 앞세워 자동차 수출 1위 국가로 등극했다. 중국 전기차 기업이 중국을 넘어 유럽시장에서 점유율을 대폭 확대해가고 있다. 중국 전기차 기업인 BYD는 중국 1위를 넘어 테슬라를 위협할 정도로 무섭게 성장하고 있다. 멕시코와 유럽 등 해외 생산공장을 건설하면서 본격적으로 해외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국내 시장에도 중국산 수입차의 점유율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전기 버스의 경우 중국산이 이미 50%를 넘어섰으며, 승용차도 중국산 테슬라와 같이 중국에서 생산하는 외자기업의 전기차 수입이 급증하고 있다. 비단 자동차뿐만 아니라 여러 산업(업종)에서 우리나라는 중국에 이미 추월당했거나 추월 위기에 직면해 있다. 중국은 의류, 완구 등 경공업이 주력산업이 아니라 철강, 조선, 자동차, 석유화학 등 중공업은 물론이고 전기차(배터리), ICT, 바이오 등 첨단산업 강국이다. 또한 완제품뿐만 아니라 부품, 소재 등 중간재에서도 탁월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철강생산의 경우 중국이 글로벌 생산의 50% 이상 생산하고 있으며, 조선산업에도 우리나라가 중국에 1위 자리를 내준 지 오래되었다. 석유화학의 경우 한 때 중국 기업의 생산이 수요를 못 따라가면서 한 동안 한국의 대중국 수출 효자 역할을 했지만 이제 우리나라 석유화학 기업의 생존을 우려할 상황이다. 태양광이나 풍력 역시 중국 기업에 밀려 국내 시장마저 잠식당했다. LCD업종은 국내 기업들이 생산을 중단하기에 이르렀고 OLED마저 쫓기고 있다. 삼성 스마트폰은 중국 시장에서 거의 존재감을 잃은 후 인도 시장에서도 중국 기업에 1위 자리를 내주었다. 국내 로봇청소기 시장은 중국산이 잠식할 정도로 높은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도 중국 기업에 비해 글로벌 시장점유율이 현저히 낮은 상황이다. 중국의 인건비가 빠르게 상승하고 중국에 진출한 외자기업이 중국을 벗어나 동남아로 생산기지를 이전하면서 중국의 제조업은 한계에 직면하는 듯했다. 그러나 중국은 신속하게 기계화, 자동화, 전자화, 스마트화 등을 통해 인력 부족을 극복하고 제조업 생산성을 끌어올렸으며, 노동집약적 제조업에서 벗어나 첨단 제조업으로 산업구조를 고도화하는 데 성공하였다. 우리나라가 향후 육성하려는 첨단산업은 대부분 중국이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산업과 겹친다. 향후 우리나라 기업들이 중국 기업의 기술수준이나 발전 단계에 대한 세밀한 모니터링과 함께 특화 전략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구기보

[EE칼럼]기후변화와 석탄화력발전소

2024년 9월 30일 자정, 영국의 마지막 석탄화력발전소인 랫클리프 온 소어(Ratcliffe-on-Soar)가 가동을 멈추면서 영국은 G7 및 주요 경제국 중 탈석탄을 완료한 첫 번째 국가가 되었고 석탄을 포함한 화석연료 시대의 종말이라는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렸다. 1882년 런던에서 세계 최초의 석탄화력발전소가 가동된 지 142년 만에 일이다. 이제 영국은 OECD 국가 중 14번째이자 유럽 국가 중 16번째로 석탄화력발전소가 없는 전력 시스템을 갖게 되었다. 전 세계 석탄 화력 발전량은 중국, 인도 및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국가의 증가로 아직 정점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유럽. OECD를 중심으로 빠르게 발전량을 줄여가고 있다. OECD의 경우 에너지 연구소(Energy Institute, EI)의 통계에 따르면 2007년 4,060TWh로 정점을 찍었고 2023년에는 1,904TWh로 약 53% 감소했다. 이 기간 석탄 화력 발전량 감소의 81%는 전례 없이 성장한 태양광과 풍력 발전이 대체했는데 태양광과 풍력 발전량은 159TWh에서 1,905TWh로 증가했다. 영국 또한 2003년 139TWh로 정점을 찍고 2023년에는 3.5TWh로 약 98% 감소했다. 그리고 2024년 10월 마침내 '0'이 되었다. 태양광과 풍력 발전량은 1TWh에서 96TWh로 증가했고, 에너지 효율도 개선되어 전력 부문에서 낭비되는 에너지를 크게 줄였다. 같은 기간 영국의 전체발전량은 398TWh에서 286TWh로 30% 가까이 줄었다. 슬로바키아 또한 원래 계획을 6년 앞당겨 2024년 3월 모든 석탄화력발전소를 폐쇄하고 OECD 국가 중 13번째, 유럽 국가 중 15번째, EU 국가 중 11번째로 탈석탄 국가 대열에 합류했다. OECD 국가 중에서 석탄화력발전소를 가동 중인 나머지 24개국 중 19개국은 2007년 최고치에서 석탄 발전량을 최소 30% 이상 줄였으며 30% 미만으로 감소한 나라는 한국과 일본을 포함하여 4개국뿐이다. 그리고 2030년까지 OECD 국가의 4분의 3이 탈석탄 국가 대열에 합류하게 될 것이다. 독일 비영리단체 Beyond Fossil Fuels에 따르면 9월 말 기준 EU 27개국 중 석탄화력발전소를 모두 폐쇄한 나라는 벨기에, 포르투갈, 라트비아, 키프로스 등 10개국에 달하며 2033년이 되면 독일, 불가리아, 폴란드를 제외한 모든 나라의 석탄화력발전소가 폐쇄된다. 유럽으로 넓혀보면 영국, 스위스, 노르웨이 등 16개국이 탈석탄을 완료했으며, 2033년이 되면 터키, 보스니아, 코소보 등 8개국만이 석탄화력발전소를 운영하게 된다. 온실가스 배출은 부정적인 외부 효과(외부불경제)를 발생시킨다. 특히 석탄화력발전은 기후변화의 주범이며, 국내의 경우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4분의 1을 배출하고 있다. 채탄 과정에서 자연환경 및 생태계 파괴, 수출입 운송 과정에 오염물질 및 온실가스 배출, 상·하역장 및 저탄장 비산먼지 발생, 석탄 하역장 해안생태계 및 지역주민 생계 터전 파괴, 석탄 공급장치 안전사고 발생, 옥내외 저탄장 자연발화에 의한 화재, 옥외 저탄장 분진 가루에 의한 토양, 인체 및 동식물 오염, 연소과정에서 황산화물(SOx), 질소산화물(NOx), 미세먼지(PM 2.5, PM10) 등 대기오염 물질 다량 배출, 냉각수로 인한 해양생태계 훼손 및 수산자원 감소, 회(타고 남은 재) 처리장 비산먼지에 의한 오염, 회 처리장 인근 지하수 및 해양 중금속 오염 등을 발생시킨다. 1952년 1만 명 이상이 사망한 런던 그레이트 스모그(Great Smog of London)는 석탄발전의 폐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올해 G7은 2035년까지 석탄화력발전소 폐쇄에 합의했으며, 유럽, OECD 등 주요 선진국들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의 약속 이행과 자국의 환경오염 및 경제성 등을 고려하여 탈석탄을 가속화하고 있다. 영국 또한 강화되는 기후변화 대응정책에 맞춰 사회로 전가하는 비용을 오염자(원인자)에게 부담시키는 피구세(Pigouian tax)의 일종인 탄소세 및 배출권 거래제의 시행과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대비 80% 이상 감축을 목표로 하는 기후변화법(Climate Change Act 2008)을 세계 최초로 제정했고, 2013년 에너지법(Energy Act 2013)을 개정해 전력 시장구조 개편(Electricity Market Reform)을 법제화했다. 장기발전차액계약제도(Feed-in Tariff with Contract for Difference, FIT CfD)와 탄소가격하한제(Carbon Price Floor), 용량 제도(Capacity Mechanism), 탄소배출 허용기준 강화 등 세부 정책들을 함께 추진했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2021년 이후 7개의 석탄화력발전소(7.26GW)를 건설중에 있으며, 올해 석탄을 포함한 화석연료 보조금만 재생에너지 보조금의 약 10배인 10.5조 원에 달하는 등 글로벌 트렌드에 역행하고 있다. 주요국의 탈석탄 동향은 석탄화력발전소를 신규로 건설할 때가 아니라 폐쇄할 때라는 걸 보여주고 있는데도 말이다. 황민수

[기자의 눈] ‘탄소중립’ 시대 리모델링 홀대 말아야

“정부 정책에 리모델링만 쏙 빠져 있다. 리모델링이 도시 정비 사업의 한축으로 자리잡으려면 규제 완화 등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최근 취재현장에서 만난 한 리모델링업계 관계자의 호소다. 정부가 재건축·재개발에 대해선 각종 규제 완화로 적극적인 지원을 하고 있지만 또 다른 주택 공급 수단인 리모델링은 홀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리모델링은 아파트의 기본 골격을 유지한 채 마감재 등 일부 설비를 교체해 노후화된 건축물을 재활용할 수 있다. 무분별한 재건축을 막고 주택 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 길게는 100년간 쓸 수 있는 주택을 함부로 허물고 새로 지으면서 자원과 돈을 낭비하지 말자는 것이다. 다른 장점도 많다. 재건축, 신규 건축보다 공사기간이 2년 안팎으로 짧다. 기후 위기 시대에 '탄소 중립'에도 필수다. 골조를 재활용하기 때문에 자원 절약 및 탄소 배출 저감 등의 효과가 크다. 재건축이 준공 30년 이상 된 아파트부터 가능하지만, 리모델링의 경우 준공 15년 이상이면 가능해 노후주택을 신속하게 재정비할 수 있다. 주택 공급 효과도 크다. 서울 시내에서 리모델링 사업을 추진 중인 아파트 단지는 142곳(조합 80곳, 추진위원회 62곳)으로 12만 가구가 넘는다. 잘 추진되면 10년간 약 14만가구가 신규 공급되며, 이중 일반 분양도 2만가구에 달한다. 문제는 정부의 정책 지원이 부족해 대부분의 리모델링 추진 단지들이 사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들어 오히려 규제만 강화됐다. 지난해 법제처는 1층 필로티(비어 있는 1층 공간) 설계에 따른 1개 층 상향도 수직증축으로 봐야 한다는 유권해석을 내렸다. 이에 서울시도 가구 수가 늘지 않는 필로티와 1개 층의 상향을 수직증축으로 판단했다. 수평증축은 1차 안전진단만으로 추진할 수 있는 반면 수직증축은 2차 안전진단을 받아야 해 리모델링 절차가 더욱 까다로워진 셈이다. 현재 수직 증축이 허용된 사례는 기존 15층을 18층으로 증축해 29가구를 추가 공급한 서울시 송파구 성지아파트 리모델링 뿐이다. 다수 조합에서 추진 중이나 대부분 안전성 검토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업계에서 요구하는 내력벽 철거도 당국이 판단을 미루는 상황이다. 정부는 2015년 내력벽 철거와 관련된 연구 용역에 나섰다. 이후 2019년 2차례에 걸쳐 내력벽 철거 허용 여부에 대한 입장발표를 미뤄오고 있는 가운데 아직까지도 깜깜무소식이다. 에너지 효율성 제고, 주택 수명 연장 뿐만 아니라 신속하고 양질의 주택 공급을 늘리기 위해선 리모델링도 재건축 못지 않은 훌륭한 수단이다. 정부는 리모델링 홀대를 멈추고 적극적인 지원에 나서야 한다. 이현주 기자 zoo1004@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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