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년간 동업해 온 영풍과 고려아연 간 경영권 분쟁이 한창인 가운데, 영풍과 사모펀드 운용사 MBK파트너스 연합이 고려아연의 공개매수 가격을 75만원으로 상향 조정하면서 '쩐의 전쟁 2라운드'에 들어갔다. 이로 인해 양측은 최근까지 지속해왔던 여론전보다는 본격적인 지분 싸움에 돌입하게 됐다. MBK·영풍 측은 이번 공개매수 가격 상향 조정으로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의 반격도 방어하겠다는 심산이다. MBK의 특수목적법인(SPC) 한국기업투자홀딩스와 영풍은 26일 '고려아연 주식회사 보통주 공개매수 공고'를 정정하면서 공개매수 가격을 기존 66만원에서 75만원으로 올린다고 밝혔다. 아울러 주요 관계사인 영풍정밀에 대한 공개 매수가도 기존 2만원에서 2만5000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앞서 지난 25일 영풍은 한국기업투자홀딩스에게 3000억원을 대여하면서 '공개매수 결제자금 조달 및 기타 투자활동을 위한 자금 대여'라고 밝혔다. 시장 관계자들은 MBK·영풍이 공개매수 가격을 올리기 위해 자금을 추가로 확보하고 본격적으로 공개매수에 돌입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공고에 따르면 MBK파트너사의 투자목적회사인 한국기업투자홀딩스는 고려아연 지분 14.56%(301만4881주)를 공개매수할 계획이다. 공개매수에 투입하는 예상 금액은 최대 2조2686억원으로, 국내 공개매수 역사상 최대 규모다. MBK·영풍 안팎에서는 이번 공개 매수가 '공격이자 방어'라는 진단이 나온다. 우선 지난 25일 종가 70만4000원, 2만2750원으로 기존 공개매수 가격 보다 높은 가격에 거래되는 고려아연‧영풍정밀 주식을 원하는 만큼 매입하기 위해서 공개매수 가격을 올리는 것이 우선 필요한 공격법이었다는 시각이다. 기존에는 주가가 공개매수 가격 이상으로 치솟으면서 MBK에 주식을 매도하도록 만들 요인이 부족했다. 그러나 이번에 매수 가격을 상향 조정하면서 이들이 공개 매수에 쉽게 응할 수 있도록 길을 열었다. 이를 통해 고려아연·영풍정밀 주식을 최대한 확보하겠다는 방침이다. 아울러 이번 공개매수 기간 이후 혹시나 발생할지 모르는 최 회장 측의 반격을 어렵게 한다는 의미에서 방어법이기도 하다는 시각이다. 실제 최 회장은 최근 MBK의 공개매수에 맞서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 16~18일 일본·홍콩·싱가포르 등 아시아 지역 해외 출장에 나서면서 북미 지역 기관을 포함해 국내외 기관들과 대항 공개매수 등 다양한 방법을 두고 협력 방안을 모색한 것으로 파악된다. 현재 최 회장이 MBK·영풍에 맞서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 가장 확실한 방법은 발빠르게 대항 공개매수를 시작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 지난해 MBK파트너스가 경영권 인수를 시도한 한국앤컴퍼니 사례를 보면 조현범 한국앤컴퍼니 회장이 공개매수 시작 열흘 안에 백기사를 구하면서 신속하게 반격에 나선 것이 주효했다. 통상 공개매수 종료 직전에 주식 매입이 활발하기 때문에 피인수 기업이 빠르게 움직일수록 유리하다는 것이다. 다만 대항 공개매수가 진행된다면 최 회장의 우군들이 너무 높아진 주가와 MBK 측의 공개매수 가격을 허들로 인식할 가능성이 높다. 최 회장과 우군들이 대항 공개매수에 성공하려면 기존 공개매수 가격인 75만원보다 더 높은 가격에서 더 많은 물량을 인수해야 한다. 이 경우 우군들이 고려아연 주식 고가 매입에 따른 배임 논란에 휘말릴 수 있다. 공개매수가 공개되기 전 최근 1년 동안(2023년 9월부터 올해 8월 말까지) 고려아연의 평균 주가는 49만543원에 불과했다. 이를 감안하면 MBK는 두 차례 고려아연의 주식매수 가격을 결정하면서 평균 주가의 34.54%(66만원)와 52.89%(75만원)를 책정한 셈이다. 결국 최 회장의 우군들이 대항 공개매수에 참여하게 된다면 평소보다 52.89% 이상 비싼 가격으로 고려아연 주식을 대규모로 인수해야 한다. 그리고 향후 해당 주식을 매입가 이상 더 비싼 가격이 매도해야 배임 논란을 완전히 잠재울 수 있다. 경영권 분쟁이 마무리되면 다시 주가가 떨어지는 경우가 대다수라는 점을 고려하면 달성하기 쉽지 않은 과제다. 재계 관계자는 “글로벌 사모펀드나 국내 대기업들은 대규모 자금을 집행하기까지 까다로운 규정이 있기에 이를 충족하지 못한다면 배임 논란이 크게 발생할 수 있다"며 “대항 공개매수도 최대 2조원 이상 자금이 투입돼야 하는데 고려아연의 기업가치를 정확히 측정해 베팅하기는 물리적으로 남은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했다. 윤동 기자 dong01@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