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의 통화에서 함정 유지·보수·정비(MRO) 분야 협력의 필요성이 언급되면서 국내 기업들을 둘러싼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해군 함정 MRO 시장은 올해 577억6000만달러(약 78조원)에서 2030년 700억달러(약 97조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이 중 미국은 지난해 예산만 20조원에 달하는 등 세계 최대 함정 MRO 시장으로 불린다. 그러나 자국 내 조선업 쇠퇴를 비롯한 이유로 동맹·우방국과의 협력 확대에 나서고 있다. '존스법' 개정이 정치적 이유 등으로 미뤄지는 가운데 중국의 함정 건조 능력이 급상승한 것도 미국이 외국으로 눈길을 돌리게 만든 요소다. 미국이 지역거점운영유지체계(RSF) 정책을 추진하는 것도 이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이는 전세계 각 지역에서 미군 작전의 지속적인 수행을 위해 긴급 상황이나 위협에 신속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을 확보하겠다는 개념이다. 이수억 방위사업청 북미지역협력 담당관은 지난 14일 국회에서 강대식·김성원·유용원 국민의힘 의원실 주최로 열린 '한미 방산협력 현주소와 발전방향' 세미나에서 “인도-태평양 지역을 중심으로 방산협력 구체화를 위한 협의가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담당관은 우리 정부가 최신 기술과 생산력 등을 꾸준히 해외에 알리고, 업체별 장·단점을 파악해 지원 프로젝트를 발굴하면 시장 참여에 도움될 수 있다는 제언도 했다. 지식재산권 등을 보호하면서 수출에 MRO를 연계하면 지구력도 확보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한화오션은 이미 △장보고-Ⅰ~Ⅲ급 잠수함 창정비 △장보고-Ⅰ급 잠수함 성능개량 △KDX-Ⅰ·Ⅱ 구축함 성능개량 등을 통해 쌓은 노하우를 토대로 미 해군이 발주한 MRO 프로젝트 2건을 수주했다. 김대식 한화오션 특수선 MRO 태스크포스(TF)장은 지난 8월부터 진행 중인 미국 4만t급 드라이카고십 '윌리쉬라함'에 대한 정비는 내년 1월 중순 마무리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는 검사, 선체 및 기계·통신·전자장비 정비, 수면하 선체 상가 정비 등이 포함된다. 미 7함대 소속 '유콘'함도 정비를 위해 거제사업장으로 온다고 밝혔다. 미 군함 MRO 사업을 수주한 국내 기업은 한화오션이 처음이다. 한화오션은 안벽과 육전 등 MRO 수행 역량 향상을 위한 설비를 확대하는 중으로, 클라우드 기반의 데이터베이스 공유체계 구축과 빅데이터 기반의 자재수요 예측·정비지원 계획도 수립하고 있다. HD현대중공업도 미 해군보급체계사령부와 국내 최초로 함정정비협약(MSRA)을 체결, 향후 5년간 미 함정 MRO 사업에 참여 가능한 자격을 획득했다. HD현대중공업은 인공지능(AI) 예지정비 솔루션을 결합한 것도 특징으로, 미국선급협회(ABS)와 협력도 강화하고 있다. 필리핀에서 쌓은 트렉레코드를 토대로 미국 함정 정비 뿐 아니라 특수목적선·관공선을 비롯한 신조 일감을 확보하고, 아시아와 남미를 비롯한 지역에서도 비즈니스를 전개한다는 방침이다. 한화시스템도 육상장비를 대상으로 사물인터넷(IoT)·빅데이터·인공지능(AI) 기술과 MRO 역량을 결합한 솔루션을 제공한다. MRO 패러다임이 고장 발생 후 정비하던 것에서 예방정비와 예측정비를 넘어 선행정비로 변화하는 것에도 대응하고 있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미국 시장 진출 및 이후 진행될 후속 사업이 '제2의 성장'을 뒷받침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항공기 도입부터 퇴역에 이르는 라이프사이클에서 발생하는 비용 중 MRO를 비롯한 나머지 분야의 비중이 초기 획득의 2배에 달한다는 논리다. 미 해군은 노후 T-45 대체를 위한 224대 규모의 고등훈련기(UJTS)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당초 일정은 2027년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2028년 계약 체결이지만 시기가 당겨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올해만 3차례 비상착륙하는 등 T-45의 상태가 좋지 않은 탓이다. 안혁주 KAI 미주수출팀장은 “UJTS 수주시 미 해·공군의 전술훈련기 도입 사업(TSA·ATT) 및 가상적기 등 1300대로 추정되는 글로벌 훈련기 시장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LIG넥스원도 영국 밥콕인터내셔널과 글로벌 MRO 분야에서 협업한다. 무기체계 개발로 쌓은 경험과 밥콕의 솔루션을 더해 시장에서 입지를 확보하겠다는 구상이다.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 팬데믹, 러-우 전쟁, 중동 분쟁, 미중 갈등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분절된 것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며 “납기를 준수하고 가성비가 높은 국내 방산업체들의 역량이 MRO 분야의 온기로 이어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나광호 기자 spero1225@ekn.kr